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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공격병법 - 완벽 해설


       


       

理致順理事理~思理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손자의 공격병법 - 완벽 해설

1. 가도벌괵(假途伐?):약자의 심리를 찌른다. 


'가도벌괵'이란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친다는 뜻인데, 춘추 시대 우와 괵 두 나라는 서로 이웃 나라로서, 모두 진(晋)나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는 일찍부터 이 두 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진왕은 순식(荀息)의 전략을 이용하여 먼저 우공(虞公)에게 좋은 말과 보옥을 보내서 우나라를 매수하고 진나라가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칠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괵나라가 망하게 되자, 우나라도 곧 이어 멸망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적과 자기 나라 사이에 낀 약소국이 만약 적의 침공을 받게 되면 이쪽에서 곧 군사를 동원, 위력을 보이며 구원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곤란에 직면한 약소국에 대해서는 입으로만 말하고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어느 날 진(秦)나라의 사신이 조나라에 와서 말했다. 


"우리 두 나라가 협동하여 이웃 연나라를 칩시다.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 연나라 영토의 반을 떼어 주겠습니다."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조나라 왕이 군사를 동원하려 하자 한 신하가 나서서 간했다. 


"연나라를 치게 되면 미처 식사도 끝나기 전에 진나라의 군사가 우리 나라를 덮치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끼리인 조나라와 연나라가 협동하여 견제하고 있으므로 강대국인 진나라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만약 한쪽 나라가 힘을 잃게 되면 나머지 나라도 쉽게 진나라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떠한 책략도 상대가 먼저 그것을 간파해 버리면 쓰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 따라서 책략이란 고도의 '머리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가도벌괵'의 책략이 실패한 경우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주유는 남군(南郡)을 총령하게 되자, 더욱 마음에 유비를 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형주를 차지할 욕심으로, 유비에게 서천을 치러 갈 테니 형주에 길을 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계략을 눈치챈 제갈량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2. 공 성 계(空 城 計):성을 비우는 계략. 


방비가 허술할 때는 차라리 무방비한 것처럼 보여라. 그렇게 하면 적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적은 대군이고, 이쪽은 아주 적은 병력일 때 이 계략을 쓰면 이쪽 전술을 적이 알지 못하게 된다. 


'삼국지' 촉지(蜀志) '제갈량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양평관에 주둔하고 있던 제갈량은 위연(魏延)에게 군사를 지휘하여 동쪽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양평관 수비 병력은 불과 1만이었다. 


한편 사마의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연과는 다른 방향에서 양평관을 공략해 왔다. 60리 상거에서 척후를 놓아 정찰케 하였더니, 제갈량은 성안에 있고 수비 병력은 얼마 안된다는 보고였다. 


제갈량 쪽에서도 사마의의 대군이 접근해 오고 있음을 알고 위연의 군사와 합류하려 했으나 떠난 지 오래되어 때는 이미 늦었다. 장병들은 모두 대경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홀로 태연하게 전군에 명하여 깃발과 장막을 거두고 자기 위치를 떠나지 말라고 엄명했다. 이래서 거기에 사방의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깨끗이 청소까지 시켜 놓았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지략에 뛰어남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틀림없이 어딘가에 복병이 있을 것이라 믿고, 군사를 근방에 있는 산속으로 일단 후퇴시켰다. 


다음 날 제갈량은 박장대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마의는 나를 아주 주의깊은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복병이 있는 줄 알고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마의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  

 

3. 공심위상(攻心爲上):마음을 공격한다. 


'공심위상'이라는 말은 '양양기'에서 처음 볼 수 있다. 건흥 3년(기원 225년), 제갈량이 남정(南征)하려 떠날 때, 마속이 몇십 리를 전송하였다. 제갈량이 말했다. 


"우리가 여러 해를 함께 일을 해 왔는데 오늘 더욱 좋은 가르침이 없겠소?" 


이에 마속이 대답했다. 


"남쪽의 소수 민족이 멀고 험한 것을 믿고 불복한 지 이미 오랩니다. 비록 오늘 격파한다 하여도 내일이면 또 불복할 것입니다. 그 동안 공께서 북벌에 온 힘을 다하니 그들은 관리들의 속이 허하고 겁이 많은 줄 알고 이렇게 

빨리 반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무리를 몽땅 죽여 후환을 없애자면 어질지 못한 일이고, 또 창졸히 해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대저 군사를 쓰는 법에 마음을 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치는 것이 하책이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

이 상책이고 군사로 싸우는 것이 하책인가 합니다. 그러니 공께서는 그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마속의 말을 들은 제갈량은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유상(마속)은 내 폐부를 아는구나." 


이러한 분석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으로서, 높이 서서 멀리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촉나라에 의한 천하 통일 전략면에서 볼 때도 서남을 평정하는 것은 한 차례의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남을 

하나의 안정된 후방으로 만듬으로써 앞으로 전 병력을 중원에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마속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군사력에만 의거하여 서남의 맹획을 이긴다면 중원의 전쟁이 불리하여지기만 하면 서남은 다시 반란을 일

으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제갈량은 이러한 방침을 세우고 그것을 굳게 믿었기에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이른바 칠금칠종의 귀신같은 용병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관문착적(關門捉賊):퇴로를 차단하고 잡는다. 


'관문착적'이란 문을 닫고 도적을 잡는다는 것으로, 약한 적에게는 포위 섬멸의 계략을 쓴다. 원뜻은 도적이 물건을 훔치러 들어오면 문을 잠가야 잡히게 된다는 뜻이다. 


약한 적은 포위해서 완전 섬멸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을 놓쳐 이를 너무 깊숙히 쫓아갔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수 있다. 


'오자(吳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 한 사람이 넓은 들판에 숨었다고 하자. 여기에 비록 천명이 쫓아간다 해도 조마조마한 쪽은 쫓는 쪽이다. 왜냐하면 숨어 있는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서 덮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에 죽음

을 각오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는 천 명의 군사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5. 금적금왕(擒賊擒王):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쏜다. 


'금적금왕'이란 원래 적을 잡으려면 먼저 임금을 잡으라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시 '전출새'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을 쏘려거든 먼저 그말을 쏘고, 적을 잡으려거든 먼저 그 왕을 잡으라." 


적의 주력을 격파하고 그 근거나 두목을 잡아 버리면 적의 전체 병력을 와해시킬 수 있다. 이것은 용이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서 싸우면 고전하게 되는 이치와도 같다. 


당나라 숙종 때, 장순(張巡)은 윤자기(尹子奇)와 싸워 적진으로 쳐들어가 바로 적장의 깃발이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 적진은 혼란에 빠져 장순은 적장 50여 명과 군졸 5천여 명을 베어 죽였다. 


그런데 정작 윤자기를 죽이려 했으나 도무지 눈에 뛰지 않았다. 그는 군사들에게 화살 대신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했다. 그런 화살에 맞은 적들은 장순 쪽 군사들이 이미 화살이 떨어진 줄 알고, 이 사실을 알리러 급히 윤자

기에게로 달려갔다. 


이렇게 해서 윤자기가 있는 곳을 알게 된 장순은 남제운(南齊雲)으로 하여금 활을 쏘도록 명령했다. 그가 쏜 화살은 어김없이 윤자기의 왼쪽 눈에 꽂혀 자칫하면 사로잡힐 뻔했다. 윤자기는 참패하여 퇴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려면 오직 한 군데에다 전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 지향점은 적의 요점이나 약점이라야 한다. 요점이란 그곳을 뺏으면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이며, 약점이란 공격하기 쉬운 곳을 말한다. 

 

6. 미 인 계(美 人 計):미인을 쓰는 계략. 


병력이 강대하고 그 지휘자가 뛰어난 장수라면 싸워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쪽에서 일시적이나마 순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적에게 순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국 시대의 6개국처럼 진나라에 국토를 진상하는 방법은 적의 세력만 강대하게 해 주기 때문에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또 송나라가 요·금나라에게 그랬듯이 돈이나 비단을 헌납하면 적의 재력이 불어나므로 이것도 또한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미인계에는 이러한 약점이 없다. 월왕 구천(勾踐)이 오왕 부차에게 그랬듯이 미인계를 써서 부하들의 불만을 자극함으로써 질 것을 이기게, 약한 것을 강하게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후한 말엽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동탁에게, 사도 왕윤(王允)은 가기(歌妓) 초선을 보내어 여포(呂布)와 동탁을 이간질시켜,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진(秦)나라 목공(穆公) 때의 일이다. 서쪽의 이민족인 융(戎)이 강대해지자, 위협을 느낀 목공은 융 왕실에 아름다운 무희(舞姬) 16명과 함께 솜씨 좋은 요리사를 보냈다. 


융왕은 이를 기뻐하여,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춤과 좋은 음식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들어갔다. 좌우의 신하가 진나라의 침략을 염려하여 충간하면 융왕은 대노하여 활로 쏘아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얼마 후 진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융왕은 술통 옆에 취하여 곯아 떨어져 있다가 생포되고 말았다. 


그는 생포될 때까지도 진나라의 침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생포가 된 뒤에도 취하여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한비자'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晋)나라 헌공(獻公)은 우·괵 두 나라를 치기 위해 먼저 명마와 보석과 미녀 16명을 보내,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정을 혼란케 했다." 

 

7. 반 간 계(反 間 計):반목시키고 이간시키는 계략. 


간(間:첩자 또는 간첩)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손자'는 이것을 오간(五間)이라 이름하고 있다. 


향간(鄕間:적국 사람을 이용함), 내간(內間:적국의 관리를 이용함), 반간(反間:적국의 첩자를 역이용함), 생간(生間:이쪽 사람을 적국에 잠입시켜 몰래 상황을 탐지 보고케 함), 사간(死間:적의 간첩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혼란에 빠트림)의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손자'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반간이다. 


'간(間)'이란 적이 서로 의심하여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간(反間)이란 우리 쪽을 이간시키려는 적의 음모를 이용하여 거꾸로 적을 이간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국 시대 연나라의 소왕(昭王)이 죽은 뒤에 왕위를 이어받은 혜왕(惠王)은 태자 때부터 장군 악의와 뜻이 맞지 않았었다. 


제나라의 명장 전단(田單)은 이러한 갈등 관계를 이용하여 첩자를 연나라로 잠입시켜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했다. 


"악의는 혜왕의 미움을 받아 혹시나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구실로 제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연나라의 왕이 되려고 노리고 있다. 그런대 아직까지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즉묵(卽墨) 공략을 지금까지 늦추

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제나라가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은 연나라가 다른 장군을 파견시켜 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즉묵은 당장 함락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은 연나라 혜왕은 악의를 파면시키고 후임에 장군 기겁을 파견했다. 이렇게 해서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후 기겁(騎劫)은 제나라 군에 대패하여 연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이 밖에 삼국시대에도 오나라 장군 주유(周瑜)는 조조가 보낸 첩자를 이용하여 조조측 장군을 이간시킨 일이 있다. 


제갈공명도 "적이 이쪽을 속이려 들면 이쪽에서 계략을 쓰기가 쉽다"고 말하고 있다. 

 

8. 반객위주(反客爲主):주객을 전도시킨다. 


'반객위주(反客爲主)'란 손님이 주인으로 바뀐다는 뜻으로, 때를 보아 실력을 강화하고 남의 군대를 겸병하여 객군을 주군으로 바꾸는 계략을 말한다. 


'삼국지'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촉나라의 전략가 법정(法正)이 황충(黃忠)에게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하후연(夏侯淵)은 경박한 사나이입니다. 무용뿐이지 계략이 없습니다. 군사를 격려하여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한 걸음씩 전진하여 그를 유인하면 반드시 포로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객을 바꾸어 주가 되는 계략

입니다." 


황충은 이 반객위주의 계략에 따라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며칠 동안 쉬었다가 또 전진하고 했다. 


하후연은 이 소식을 듣고 황충을 공격하려 했다. 


"이건 반객위주의 계략입니다. 지금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싸우면 반드시 패하게 될 것입니다." 


장합이 한사코 말렸으나 하후연은 끝내 듣지 않았다. 


과연 하후연은 황충에게 유인되어 마침내 함정에 빠져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반객위주라는 말의 본뜻은 주인의 대접이 서툴러 오히려 손님이 대접을 한다는 뜻이다. 

 

9. 방압득봉(放鴨得鳳):새우를 미끼로 해서 도미를 잡는다. 


'방압득봉'이란 오리를 풀어 봉을 당겨온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미끼로 큰 잉어를 낚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촉나라와 위나라가 싸울 때였다. 위나라의 태수 마준은 하후무가 남안성에서 촉나라의 제갈량에게 포위되어 곤경에 빠져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는 문무 제관을 모으고 말했다. 


"하후 부마로 말하면 곧 금지옥엽의 몸인데, 만일에 소우한 바 있으면 대죄를 면치 못할 터라,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하후 부마께서 심복 장수 배서를 보내왔습니다." 하고 보한다. 


이윽고 배서가 부중(府中)으로 들어와, 공문을 마준에게 전한 다음, "태수께서는 지체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안성의 포위를 풀어주십시오." 하며, 총총히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마준은 더 지체할 수 없어, 서둘러 기병(起兵)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밖에서 나타나며, "태수께서는 제갈량의 계교에 빠졌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유(維), 자는 백약(伯約)이었다. 


"요사이 듣건대, 제갈량이 하후무를 깨트리고 남안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다는데, 또 배서로 말하자면 한낱 무명 하장(無名下將)이라 일찍이 본 적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이 사람은 바로 촉장이 거짓

으로 배서라 일컫고 태수를 속여 성밖으로 나오게 한 후, 그 빈틈을 타서 근방에 매복했던 일군으로 우리 천수성을 빼앗으려는 계책임이 틀림없습니다." 듣고 나자 마준은 무릎을 치며 크게 깨달았다. 


"백약이 일러주지 않았더라면 간계(奸計)에 빠질 뻔하였구려!" 


강유는 웃으며, "태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에게 일계(一計)가 있으니, 가히 제갈량을 사로잡고, 남안의 위태로움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윽고 강유는 계교를 말하였다. 


"제갈량이 반드시 성의 뒤에다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우리 군사가 속아서 성밖으로 나가면 그 빈틈을 타서 엄습할 것입니다. 태수께서 저에게 정병 3천만 주시면 요로에 매복하고, 태수께서는 뒤따라 발병(發兵)하되 성을 멀리 나

가지 않고, 한 30리쯤 갔다가 돌아오십시오. 제가 불을 올려 신호할 것이오니, 그때에 전후로 협공한다면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갈량의 계교는 과연 강유가 짐작한 바와 다름이 없었다. 원래 제갈량은 일군을 산벽 속에 매복케 하였다가 천수성의 인마가 비울 때를 노리어 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책략이 간파된 이상,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싸움에 패한 제가량은 군사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와서도 그의 머리에는 강유 생각밖에 없었다.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제갈량이 물었다. 


"강유의 어미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기현(冀縣)에 살고 있습니다." 


듣고 나자 제갈량은 한 장수를 불러, "그대는 일군을 이끌고 허장성세(虛張聲勢)하며 기현을 빼앗을 듯이 하다가, 만약에 강유가 오고든 성으로 들어가게 놓아 두라." 하고 명령했다. 


위나라의 첩자가 이 사실을 천수성으로 전하되, 촉병(蜀兵)이 기현을 치러 떠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강유의 두 눈으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뭇 사람들이 강유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여 의아해 하자, 강유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마준에게 고하였다. 


"용서하십시오. 저의 어미가 지금 기현에 있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라건대 저에게 일지군을 빌리시면, 기성도 구할 겸 노모를 모실까 합니다." 


워낙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난 강유인지라, 아무도 그의 말에 두 말이 없었다. 마준은 강유로 하여금 3천병을 거느리고 기현으로 가게 하였다. 


강유는 군사를 재촉하여 노모가 살고 있는 기현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도중에 촉군이 나타나 싸움이 벌어지는가 했더니 곧 달아나고 말았다. 


강유는 그대로 군사를 몰고 성으로 들어가자, 성문을 굳게 닫고 군사를 시켜 엄히 지키게 한 후 자기는 노모가 거처하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제갈량은 사람을 남안군으로 보내어, 사로잡아 둔 하후무를 데려오게 하여 한 마디 물었다. 


"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하후무는 황급히 절하며, 목숨만 살려 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제갈량은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지금 강유가 기성을 지키고 있는데, 글을 보내 말하기를, 오직 그대만 놓아준다면, 나와서 항복하겠다고 한다. 그대 생각은 어떤가? 내 이제 그대의 목숨을 살려 보낼 것이니 강유를 항복하게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것은 물론 제갈량이 꾸며낸 거짓말이엇다. 그러나 하후무는 놓아준다는 말에, "네,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제갈량은 사람을 시켜 새 옷 한 벌을 가져오게 하여 하후무에게 입히며, 다시 말에 안장까지 얹어 주어, 혼자서 돌아가게 하였다. 


이리하여 제갈량의 계략에 빠져 진퇴양난이 된 강유가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자, 제갈량은 강유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모려를 나온 이래로 널리 현자(賢者)를 구하여, 평생 배운 바를 전하고자 하였으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을 얻지 못하여 자못 초조함을 느꼈더니,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소원이 이루어지려나 보오." 


그러자 뭇 장수들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 하후무를 뒤쫓아가 사로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위왕의 부마가 아닙니까." 제갈량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하후무 하나쯤 놓아주는 것을 마치 오리 한 마리 놓아주는 거나 다름없게 여기는데, 항차 이번에 우리가 강백약(姜伯約)을 얻었으니, 어찌 봉(鳳)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거듭 껄껄 웃었다. 

 

10. 사면초가(四面楚歌):상대를 고립시킨다. 


'사면초가'란 사면에서 모두 초나라 노래를 부른다는 뜻으로, 세인이 다 아는 공성계(攻城計)의 하나이다. 전거는 초·한이 서로 다투던 해하 싸움에서 나왔다.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항왕의 군대는 해하에 둔치고 있었는데, 병사는 적고 양식이 다한 데다 한군과 제후들의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군은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 항왕은 크게 놀라 "한나라가 벌써 초나라를 다 점령했는가? 무슨 초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하고 탄식하였다. 


한신은 '사면초가'의 방법으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싸움을 싫어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계략을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군심이 흩어져 뿔뿔이 도망치고 항왕이 아끼는 심복 정예 부대인 8천 자제도 애간장이 다 끊어지는 돗하여 싸울 생각이 사라졌다. 몇 년 동안이나 항우를 따르던 장군들도 슬그머니 떠났고 항우의 숙부 항백도 가만히 달아나고 말았다. 


항우는 사면초가 속에서 오희와 이별하고 오강(烏江) 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초나라도 따라서 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신이 채용한 심리전이 성공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 연의'에는 오나라의 여몽(呂蒙)이 형양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계책을 써서 관우(關羽) 군중의 장수와 병사의 가속들로 하여금 산 위에서 높이 외치게 하여 군심을 동요시킨 사실을 서술하였다. 


"형주 사병들의 형제가 서로 부르고 부자가 서로 찾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군심이 변하여 모두 그 소리에 따라 달려갔다. 관우가 호통쳐도 불러 세우지 못하니 부하는 겨우 300여 명이 남았다." 


위풍이 천하에 떨친 관우도 항우와 마찬가지로 무리가 배반하고 친인들이 떠나는 외롭고 구슬픈 사람이 되고 말았다. 

 

11. 상루추제(上樓抽梯):다락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운다. 


'상옥추제(上屋抽梯)'와 같은 말로서, 상대를 이익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작은 이익으로 유도만 하고 수단을 쓰지 않는다면 적은 주저하여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락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 버리는 계략을 쓰려면 먼저 사다리를 단단히 걸쳐놓고 그것을 상대에게 똑똑히 보여 상대가 완전히 믿도록 해야 한다. 


'상루추제'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적군을 유인한 다음 그 퇴로를 차단하여 격멸한다. 둘째는 스스로 퇴로를 끊고 배수진을 친 다음 필사적인 각오로 분전케 한다. 셋째는 자기쪽만 유리한 데로 가고 상대방은 오지 못하게 한다. 

 

12. 상옥추제(上屋抽梯):지붕에 오르게 한 다음 사다리를 치운다. 


'손자·구지편'에는 "군사를 일으켰을 때 이미 높은 데 올랐으면 사다리를 치워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삼국지·촉서·제갈량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후한 말엽 유표는 후실 자식인 유종을 사랑하고 장자 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위험을 느낀 유기는 제갈량에게 자기의 안전을 기할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제갈량은 남의 가사(家事) 문제라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하루는 유기가 제갈량을 청하여 후원에서 산책하며 구경하다가 함께 높은 다락에 올라 연석을 차려 놓고 먹는 사이에 유기는 가만히 사람을 시켜 사다리를 치워 버리게 한다음 제갈량을 향해 말했다. 


"이제 위로는 하늘에 오를 수없고 아래로는 땅에 내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입으로 하신 말씀은 내 귀로 들어올 뿐입니다." 


진퇴양난이 된 제갈량은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춘추 시대 진헌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자께서는 신생(申生)과 중이(重耳)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까. 신생은 안에 있다가 죽고 중이는 밖에 나가 있어서 화를 면하였으니, 공자는 하루 바삐 형주에서 떠날 방법을 찾으십시오." 


유기는 문득 깨닫고 곧 아버지에게로 가서 자기를 강하로 파견하여 줄 것을 간청하여 지방의 수비군 사령관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리하여 권력 내부의 암투를 피하고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사람을 얼러 높은 곳에 오르게 한 다음에 사다리를 옮겨 버리면 물러날 길이 없게 되어 하는 수 없이 토실(吐實)하게 마련이다. 

 

13. 선발제인(先發制人): 선수를 써서 상대방을 제압한다.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기원전 209년 9월에 진승과 오광이 기의(起義) 하였다. 회계의 수장 은통도 승세하여 군사를 일으켜 탈권해 보려고 항우의 숙부 항량을 찾아가 말하였다. 


"지금 진조(秦朝)의 기력이 다하여 장강 북안에서는 이미 힘있는 세력들이 분분히 일어났다고 하오. 내가 듣자니 앞서면 남을 제어하고 뒤떨어지면 남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하오." 


항량과 하우도 언젠가 기의하려고 생각했지만 은통의 부하가 되기는 싫었다. 그들은 밀모하여 은통을 죽인 다음 은통의 대인(大印)을 가지고 회계군 8천여 인을 휘하에 장악하였다. 그리고는 "진나라를 뒤엎고 초나라를 복구하자"는 기치를 높이 들고 기의하였다. 


'한서·항적전'에도 "선수를 쓰면 남을 제압하고 후수를 쓰면 남의 제재를 받는다"는 말이 있다. 


'좌전·선공 12년'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먼저 손을 써 적을 타격 할지언정 적이 앞서 손을 써서 나를 치게 해서는 안된다. 먼저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적의 기도를 타파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손을 써야한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전승(戰勝) 경험을 총결산할 대 득의양양하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남들이 미처 깨닫지도 방비할 수도 없을 때 나는 무엇을 말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14. 선성탈인(先聲奪人): 먼저 성세를 올려 상대방의 기를 꺾는다. 


'좌선·선공 12년'의 기록에 의하면 진(晋)나라 군대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초나라 군대와 충돌했을 때 손숙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병서에 이르기를 남보다 앞서 이기려면 단번에 상대방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이 후에 와서 "먼저 성세를 올려 상대방의 기를 꺾어야 한다"는 말고 되었다. 뜻인즉 우선 자기의 성세를 올려 상대방을 위압하거나 여론상에서 한 발 앞서 주도권을 쟁취하라는 것이다. 


'좌선·소공 21년'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화추·장갈 등은 송나라의 동성 남문을 점령하고 진나라에 있던 화정 등도 소식을 접하자 즉시 올라왔으며 화등은 오나라의 군사를 빌려 와서 접응하였다. 


송원공은 송나라의 옛성 상림문에 군사를 파견하여 지키게 하고, 제나라의 대부 오지명도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송군을 도와 방어에 임하였다. 


복이라는 송나라 대부가 말했다. 


"병서에 이르기를 만약 빨리 이기려면 단번에 상대방의 기를 꺾고 천천히 이기려면 상대방의 사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나라의 군대가 고생스럽게 와서 아직 쉬지 못한 틈을 타소 진공하지 않고 무얼 합니까? 만약 그들이 진지에 들어가서 안정되고 강화된다면 화씨의 사람이 많아지고 형세가 커져서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그때에 가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이 의견은 즉시 받아들여져서 제·송 두 나라가 협력 진격하여 화씨와 오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말았다. 

 

15.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을 친다. 


전한(前漢) 경제 때 오·초 등 분봉된 왕족 7국이 영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한나라 장군 주아부(周亞夫)는 성루를 고수하여 결코 밖으로 쳐 나가지 않았다. 


오나라 군사가 성의 동남쪽을 공격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곧 성의 서북쪽 수비를 단단히 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보고 수행 군사가 의아하여 물었다. 


"적이 동남쪽을 치려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서북쪽의 수비를 명령하십니까?" 


그러나 주아부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과연 오왕은 주력 군사로 서북쪽을 공격해 왔는데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공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은 지휘자가 침착 냉정하여 적에게 속지 않은 하나의 예이다. 


또 후한 말기, 주준(朱寯)이 완성(宛城)에 있는 황건군(黃巾軍)이 공격했을 때의 일인데, 그는 적정을 살필 수 있도록 우선 성밖에 작은 동산을 쌓았다. 


그리고는 북을 치며 군사들이 성의 서남쪽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황건군이 당황하여 우루루 서남쪽 수비로 몰렸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주준은 친히 주력군 5천을 이쓸고 성의 북쪽을 불의에 공격하여 완성을 빼앗았다. 이것을遁 황건군의 지휘자가 혼란하여 급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예이다. 


이상의 두가지 예로 보아 "동쪽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을 치는"계략을 운용하려면 먼저 적측 지휘자의 머리가 혼란에 빠져 있는지의 여부를 알고 난 후에 결정해야 한다. 


적의 의지가 혼란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패배를 맛볼 수 있다. 이것은 모험적인 계략이다. 

 

16. 수상개화(樹上開花): 위엄있게 보이도록 한다. 


'수상개화(樹上開花)'란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는 뜻으로, 남의 병력을 빌려 적을 굴복시키는 책략을 말한다. 원래의 뜻은 그 동안 피지 않던 나무에 뜻밖에도 꽃이 피었다는 뜻인데 "쇠나무에서 꽃이 핀다"에서 나온 말이다. 


부대의 다른 국면을 뻗쳐 유리한 진형을 만들면 비록 병력이 약하다 하더라도 진용을 강대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옛날 싸움에서는 선봉(先鋒)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봉이란 창끝, 즉 무기의 끝에 붙어 있는 뾰족한 금속 부분을 말한다. 


중국 군대에는 전통적으로 선봉이라고 하는 특별 정예 부대가 있다. 이것은 우수한 자들만 골라 특별 훈련을 실시하고 또 우수한 장비로 무장시킨 호랑이 부대이다. 


주장(主將)은 기회를 엿보아 이를 결전장에 투입하여 적의 진지를 돌파한다. 그렇게 하면 이제까지 기가 죽어 있던 일반 부대도 갑자기 의기가 충천하여 선봉이 뚫어 놓은 곳으로 돌입해 간다. 


이 선봉을 일반 부대의 선두에 세움으로써 전군의 전력을 폭발시키는 것--이것이 재를 뿌려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는 수상개화이다. 그런데 주장이 무모하면 뜻밖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없지 않다. 

 

17. 순수견양(順手牽羊): 작은 실수를 찌른다. 


'순수견양'은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는 뜻인데,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지 말고 널리 눈을 돌려 이용할 수 있는 이익을 모두 이용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작은 이익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티끌모아 태산이 된다는 말이다. 


명심할 만한 충고이지만 이 계략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사소한 이익에 눈이 어두워 본래의 목적에 소홀해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삼국지'에 따르면 후한(後漢)의 헌제는 역신들의 난동 때문에 장안으로 납치되어 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는 학대에 못 이겨 몰래 탈출, 낙양으로 도망가다가 도중에 도적 기마대에게 쫓기게 되었다. 


헌제는 수레를 타고 있었는데 수레와 그를 추격하는 기마대와는 속력에 차이가 있었다. 쫓기고 쫓기다가 어느덧 곧 붙잡히게 되었다. 그때 헌제를 시종하던 늙은 신하 동승이 소리를 질렀다. 


"갖고 있는 패물이나 돈을 있는 대로 길바닥에 버려라!" 


함께 달리던 사람들은 목숨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지니고 있던 패물이나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길바닥에 던지고, 황후까지 패물을 있는대로 길바닥에 버렸다. 


맹렬하게 뒤쫓아 오던 도적들은 추격을 멈추고 급히 말에서 내려 서로 앞을 다투어 땅위에 흩어져 있는 보화들을 줏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에 당황한 도적의 대장이 소리소리 지르며 이를 제지하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내내 목숨을 걸고 일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값진 물건들이 늘려 있는데 그걸 버리고 헌제를 쫓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적은 닥치는 대로 양(羊)을 끌어가기는 했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잃고 만 것이다. 

 

18. 암도진창(暗渡陣倉): 우회 작전을 취한다. 


'암도진창'은 본래 잔도 보수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몰래 딴 길을 택하여 돌아서 진창으로 건너갔다는 뜻이다. 


삼국시대 위나라 장수 등애는 백수(白水)의 동쪽 강언덕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3일 후 촉나라의 강유(姜維)도 요화 장군에게 명하여 백수 남쪽 강언덕에 군사를 진출시켜 진지를 구축했다. 


등애가 모든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강유의 부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쪽 군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전쟁의 상도로 봐서는 당연히 그는 다리를 놓기 전에 먼저 강을 건너 공격해 올 것이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 군사의 퇴로를 차단하고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요화를 시켜 진격하게 한 것이다. 그 사이 강유는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동쪽에서 조성(?城)을 습격할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말하고 그날 밤으로 지름길을 이용하여 군사를 급히 조성으로 보냈다. 


과연 강유는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등애의 대군이 먼저 와 있었으므로 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이것은 강유가 은밀히 진창으로 건너는 계략의 운용에 서툴렀고, 등애 쪽은 강유의 계략을 재빨리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19. 애병필승(哀兵必勝): 비분한 군대가 이긴다. 


'손자병법·작전편'에는 "적을 죽이는 자는 노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백전기법·노전'에는 "무릇 적과 싸울 때는 반드시 군사를 격려하여 분노케 한 다음에 출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기원전 279년, 제나라의 전단(田單)이 즉묵에서 연나라군에게 포위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연군을 무찌를 일련의 전략을 세웠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애병지계'였다. 


그는 선전하여 말하기를, 


"나는 연군이 우리 제나라 군사를 포로로 잡은 후 코를 베어 버리고 그들을 공격 부대의 맨 앞에 세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즉묵은 곧 격파되고 말 것이다." 


연군은 이 말을 듣고 과연 그렇게 하였다. 명령을 내려 포로들의 코를 몽땅 베어버린 다음, 공격 부대의 맨앞에 세웠다. 


성중의 군민들은 포로가 된 군사들이 모두 코가 베인 것을 보고 전례없이 본노하여 결사적으로 성을 고수하여 굴복하지 않았다. 전단은 또 간자(간첩)을 파견하여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나는 연나라 군대가 즉묵성 밖의 묘들을 파헤치는 것이 가장 두렵다. 만약 그렇게 되면 성중의 군민들은 모두 마음이 얼어붙어 투지를 잃고 말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연나라 장군 기겁은 명령을 내려 묘를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해골들을 불태워 버리며 제나라 사람들에게 빨리 투항하라고 핍박하였다. 


성중의 군민들은 이 광경을 보고 비통하여 눈물을 흘리며 의분에 넘쳐 연군과 사생결전을 벌일 결심을 하였다. 


전단은 군민들의 드높은 사기를 보고 가히 결전의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군민들을 이끌고 대거 반격하여 연군을 대파하고 일거에 제나라의 실지를 수복하였다. 

 

20. 연 환 계(連 環 計): 적이 스스로 얽히게 해 놓고 그 다음에 친다. 


적의 병력이 강대할 때는 정면에서 대결해서는 안된다. 계략을 운용하여 먼저 적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해서 그 힘을 빼야 한다. 이 경우 주장의 지휘가 교묘하고 자쥬자재로 군사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연환의 계략'이란 적들끼리 서로 밀고 당기도록 하여 행동력이 약해지면 공격을 하는 계략이다. 처음 공격에서 적을 신경질적으로 지치게 하고 다음에 공격하는 두 가지 공격을 종합해서 잘 운용하면 아무리 강적이라도 이를 격멸시킬 수 있다. 


송나라의 명장 필재우(畢再遇)는 유적지계(誘敵之計)를 써서 적이 공격해 오도록 유인하는 데 명수였다. 진격하다가는 후퇴하고, 후퇴하다가는 다시 진격하여, 이렇게 집요하게 적을 골탕먹였다. 


해질 무렵에 그는 향료를 섞어서 삶은 콩을 땅바닥에 뿌려놓고 싸움을 거는 척 하다가 다시 후퇴해 버렸다. 적은 쏜살같이 추격해 왔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이미 허기가 져 있었다. 


콩냄새를 맡은 말들은 모두 정신없이 그걸 먹기 위해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 때 필재우는 전 병력을 동원하여 폭풍처럼 역습했다. 승부는 뻔한 일이었다. 이것이 연환계의 운용이다. 


삼국지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적벽 대전 직전, 조조는 방통(龐統)에게 육상 진지와 수상 진지를 안내해주고 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방통은 장기전에는 무엇보다도 당병들의 건강이 중요한다고 말하면서, 


"환자는 없는지요?" 라고 넌지시 물었다. 


온갖 질병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더욱이 장기간에 걸친 비위생적인 수상 집단 생활을 계속해 온 터라 조조군에게는 많은 환자가 생겼고, 조조 자신도 그걸 몹시 걱정하고 있던 중이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방통이 대답했다. 


"장병들이 모두 너무 오래 수상 생활을 해 왔고, 육지를 밟지 않은 게 탈이지요. 그렇지만 적을 눈앞에 두고 배를 비운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수상 진지를 육지처럼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큰 배 30척과 중간 배 50척을 쇠줄로 한데 묶어 그 위에다 넓은 판자를 놓아 한 척의 큰 배처럼 만든다면 장병들은 마치 육상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어서 건강 회복에도 좋을 듯 싶습니다. 또 풍화가 있어도 거뜬히 돌진할 수 있으니 보잘것없는 오나라 군선쯤이야 단번에 격퇴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곧 군중에 있는 대장장이를 총동원하여 쇠줄을 만들게 하여 병선들을 연결시켰다. 배가 한데 모아지고, 게다가 그 위에 판자가 깔렸으니 웬만한 파도에도 배가 흔들리지 않아 모두들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훗날 이것이 조조에게 참패를 안겨주는 원인이 되었는데, 그것이 주유의 화공을 성공시키기 위한 계략인 줄을 조조는 몰랐던 것이다. 

 

21. 원교근공(遠交近攻): 멀리 있는 적은 사귀고 가까운 적은 공격한다. 


지형상의 제약을 받을 때에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데 있는 적을 공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경우가 흔히 있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흐른다. 같은 적이라도 대책은 달리해야 한다. 


이 '원교근공'책은 전국 시대 위나라의 범수(范紙)가 주장한 대외 전략으로서, 당시 진(秦)나라는 국력을 믿고 멀리 있는 강국 제나라와 대결하려 했다. 


그러자 범수는 이웃에 있는 한(韓)나라와 위나라를 놓아두고 제나라를 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이렇게 간했다. 


"대왕께서는 멀리 교섭하고 가까운 것을 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 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것이 될 것이며 한 자의 땅을 얻어도 역시 대왕의 것이 될 것입니다." 


범수는 전국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자는 숙(叔)이며 장록(張祿)이라고 이름을 바꾼 적도 있었다. 진(秦)나라로 들어가서 소왕(昭王)을 설득하여 전권을 휘두르고 있던 외척을 몰아내고 상국에 올랐다. 


원교근공의 계략을 써서 여섯 대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진나라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케 하였다. 

 

22. 위위구조(圍魏救趙): 분산시켜 놓고 친다. 


병력이 집중되어 있는 적을 치기보다는 적을 분산시켜 놓고 치는 편이 좋다. 


일찍이 손자(孫子)는 전기(田忌)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헝크러진 실을 풀려면 억지로 잡아당기면 안됩니다. 요소를 찌르고 혀를 찔러 상대의 방비나 세력을 깨뜨려 버리면 자연히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나라의 공격을 받고 수도인 한단을 포위당한 조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제나라의 현신 단(段)이 제왕에게 진언했다. 


"위나라가 한단을 함락시켜 그 세력이 강해지면 제나라도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이 진언에 따라 급히 출병한 한단 교외에까지 군사를 진출시켰다. 바야흐로 한단을 포위하고 있는 위나라 군사의 배후를 치려는 제왕에게 다시 단이 간했다. 


"조나라를 돕는 것도 제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방비가 허술한 남쪽 위나라의 책원지 양양을 공격케 했다. 


제나라 군사가 양양을 공략하고 있는 동안에 한단이 함락됨으로써 조나라의 전력도 약해지고, 양면에 걸쳐 싸운 위나라도 역시 지쳐 있었다. 


제나라는 일거양득, 더욱이 별로 전력을 소모하지도 않고 이웃에 있는 두 강국의 위협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었다. 

 

23. 이우위직(以迂爲直): 굽은 것으로써 곧은 것을 이루다. 


'손자 병법·군쟁편'에서는 "군사를 씀에 있어서 어려운 것은 굽은 것으로 곧은 것을 이루고 재앙을 이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우위직, 즉 우회함으로써 곧게 가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명한 책략가들에게 있어서 목적 달성을 위한 상용적 수단이다. 


동쪽으로 가려 하면서 서쪽으로 떠나며, 빨리 가려 하면서 천천히 둘러가는 것은 표면상으로 보면 목표와 멀어지는 것 같지만 기실은 곧은 길을 가는 것이 된다. 


기원 263년 9월에 위나라 군대가 두 갈래로 나뉘어 촉나라를 공략할 때였다. 진서장군 종회는 위군의 주력을 거느리고 한중으로 쳐들어가 양평관을 따라 곧게 내려감으로써 검각을 일거에 탈취하고, 이어서 성도를 위협하려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촉장 강유가 험요한 지리 조건을 이용하여 완강하게 항거하는 바람에 종회의 부대는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쌍방이 검각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종회가 검각에서 몇 차례 접전을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게 되자 정서장군 등애는 음평으롤부터 작은 길로 덕양정을 거쳐 부성을 치자고 건의했다. 


부성은 검각에서 서쪽으로 400여 리나 되고 성도까지 이르자면 그곳에서 또 300여 리를 더 가야 했다. 


검각을 지키는 강유가 부성을 구하러 간다면 종회는 싸우지 않고 검각을 점령할 수 있는 것이고, 만일 강유가 부성을 구하지 않는다면 부성을 일거에 빼앗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등애는 정예 부대 1만 명을 이끌고 산을 파서 길을 내고 나무를 찍어 다리를 놓으며 700여 리를 전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천병마냥 갑자기 부성에 나타났다. 


표면상으로 보면 등애는 굽은 길을 간 것 같지만 기실은 촉나라의 주력을 에돌아 곧게 간 것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일거에 촉나라를 멸망시킬 수 잇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우위직의 계략으로 성공한 가장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24. 이이벌이(以夷伐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 


'후한서·등훈전'에 의하면 원화3년(기원86년)에 노수호가 반란을 일으켜 황제는 등훈을 장액의 태수로 임명하였다. 


기원 88년에 호강교위 장우가 소당종·강미오 등을 유살하여 강족 여러 부락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는데, 그들은 함께 복수할 것을 꾀하였다. 


승상 공경은 등훈을 천거하여 장우와 바꾸게 하였다. 이에 강족들은 4만여 명을 모집하여 얼음이 얼면 황하를 건너 등훈을 칠 준비를 하였다. 


그 지역에는 또 소월씨호라고 하는 소수 민족이 있었는데, 매우 용맹한 기병 2,3천 기가 있어 매번 강족과의 싸움에서 적은 수로 많은 수를 이기곤 하였다. 그들은 한조(漢朝)와 별다른 원한이 없었고 한조도 그들을 때때로 이용하곤 했다. 


강미오의 아들 미당은 강족과 함께 1만여 명을 모아 산에서 내려왔지만 감히 등훈을 치지는 못하고 먼저 소월씨호를 쳤다. 등훈은 군대를 파견하여 소월씨호를 보호하여 주었기 때문에 미당은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측근 막료가, "그들이 서로 싸우면 우리가 강족을 정벌하는 데 유리하므로 소월씨호를 보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주장하였다. 즉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자는 것이었다.(당시 한족 통치자들은 소수 민족을 모두 오랑캐로 보았다) 


그러자 등훈이 조용히 말했다. 


"옳은 말이네. 그렇지만 소월씨호가 절멸되면 오히려 강족의 힘이 강대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균형을 잡아 주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일세." 실로 무서운 책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소수 민족에 대한 통치라는 이 한 점에서 볼 때 소수 민족으로 소수 민족을 치는 것은 그리 고명한 책략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책략은 모직 특수한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이다. 

 

25. 일전쌍조(一箭雙雕): 화살 한 대로 두 마리를 잡기. 


광무제 건무 5년(기원 129년)에 한나라 장수 경감이 군사를 이끌고 기의군 수령 장보를 쳐서 기의군의 40여 개 영채를 빼앗고 제남을 공점하였다. 


이 때 장보는 극현을 서울로 하고 동생 장란을 파견하여 정병 2만을 거느리고 서안을 지키게 하는 한편, 여러군의 태수들로 하여금 만여 명의 군사를 모아 가지고 임치를 지키게 하였다. 


두 성은 겨우 40여 리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경감군은 두 성의 중간에 있는 화중을 점령하였다. 


서안은 성이 작아도 견고하고 장란의 군대는 매우 정예하다는 것과, 임치는 크기는 하지만 여러 군의 태수와 군대가 모인 것이어서 군령이 통일되지 못하여 비교적 쉽게 빼앗을 수 있다고 영감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경감은 성동격서의 책략을 쓰기로 하고 5일 후에 서안을 공격한다고 떠들썩하게 공개하여 사람마다 모두 다 알게 하였다. 


5일 후 경감은 밤중에 명령을 내려, 날이 밝을 때까지 임치성에 이르러 전력을 다해 임치를 치게 하였다. 


어러 장수들이 그 연유를 몰라 물으니 경감은 이렇게 대답했다. 


"서안의 수비군은 우리들이 서안을 친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준비하며 시각마다 우려하고 있는데 무슨 여유가 있어서 구원하러 오겠소. 이와는 반대로 임치의 적들은 우리가 서안을 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르면 조금도 준비가 없어 어쩔 줄 모를 것이니, 우리는 하루도 못 걸리어 점령할 수 있소. 임치를 점령하고 보면 서안은 고립될 것이고, 또 서안과 극현도 멀리 떨어져 있어 장보도 감히 어쩌지 못할 것이오. 우리는 가히 하나를 쳐서 둘을 얻을 수 있소." 


경감은 군사를 휘몰아 동쪽으로 가서 반나절도 안되어 임치를 점령하였다. 서안 수장 장란은 임치가 점령당했다는 말을 듣고 위험을 느낀 나머지 부대를 거느리고 서안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26. 조호리산(調虎離山): 적을 꾀어낸다. 


'손자'는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턱대고 공격만 하는 작전은 스스로 실패를 불러올 뿐이다. 


적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뺏으러 들어서는 안된다. 하물며 적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고 병력도 많을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후한 말기, 우후의 군사가 진창(陳倉) 효곡에서 강족(羌族)의 저지를 받게 되었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된 우후는 구원병을 청하고 그들이 도착하면 전진을 계속하겠다는 포고문을 내걸었다. 


강족은 이 기미를 알고 구원병이 오기 전에 패를 나누어 근방 고을을 습격, 재물을 약탈하게 했다. 


이렇게 강족이 군사를 분산시키는 것을 본 우후는 즉시 군사를 몰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백리 이상이나 전진해 갔다. 거기에 쉴 때마다 군사들에게 명하여 밥짓는 곳을 두 배로 만들어 날마다 군사가 불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것을 본 강족은 구원병이 온 걸로 알고 아예 공격을 포기하였고, 우후는 봉쇄를 뚫고 강족을 대파하였다. 


이때 우후가 구원병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전진한다고 포고문을 낸 것은 강족을 꾀어들여 분산시켜서 재물을 약탈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밤낮으로 군사를 강행군시킨 것은 강족으로 하여금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또 밥 짓는 것을 두 배로 늘려간 것은 강족을 현혹시켜 구원병이 온 것으로 착각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27. 좌향기리(坐享其利): 앉아서 이익을 본다. 


정치·군사 등 여러 영역에서 어떤 때는 자기가 친히 나서서 크게 싸울 필요도 없이 모순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앉아서 이익을 보는 때가 있다. 


종회와 함께 두 길로 나누어 촉나라로 쳐들어간 위나라 장군 등애는 성도를 손아귀에 넣고 나자 스스로 면죽성에다 축대를 모으고 전공(戰功)을 표창하며 은근히 모반할 뜻을 품었다. 


이를 알게 된 위나라 대장군 사마소는 크게 당황하여 가충과 더불어 의논했다. 


"등애가 마침내 자기의 공로만 믿고 교만하여 제멋대로 행사하려 드니,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가충이 아뢰었다. 


"명공(明公)께서는 종회를 시켜서 막아내게 하십시오." 


듣고 보니 가장 근사한 방법이었다. 


사마소는 마침내 가충의 의견에 따라 조서를 내려 종회를 사도(司徒)로 삼고 위관으로 양로군마(兩路軍馬)를 감독케 함으로써 종회와 함께 등애를 살피어 그 변절함을 막게 하였다. 


그러나 종회도 또한 이미 마음이 굳어 있었다. 그도 이번 기회에 촉나라를 항복 받고 스스로 홀로 서기를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눈엣가시가 등애였다. 등애는 일군을 거느리고 음평을 넘어 촉나라의 수도를 먼저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종회는 한 계교를 꾸몄으니, 등애가 조정에 보내는 표문을 도중에 빼앗아 오도록 하여, 등애의 필법(筆法)을 교묘하게 본떠 한두 글자를 고쳐 말투를 심히 거만하게 만들고 내용만은 조금도 손을 대지 않았다. 


과연 등애의 표문을 읽고 나자 사마소는 그의 교만 무례함에 크게 노하여 즉시 사람을 종회의 군전(軍前)으로 보내어 그로 하여금 등애를 거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는 일방으로 3만 대병을 거느리고 위왕과 함께 친정(親征)의 길에 오르기로 하였다. 


이를 보자, 측근이 의아하여 물었다. 


"종회의 군사가 등애의 군사보다 여섯 배나 더 많아 종회로 하여금 등애의 군사를 거두게 해도 충분한데, 하필 명공께서 몸소 가실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제야 사마소는 웃으면서 한 마디 하였다. 


"내 이번 걸음이 등애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실상은 종회를 단속하려는 것이지…" 


사마소가 위왕과 함께 친정 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깜짝 놀란 종회는 서둘러 참모들을 불러 등애의 군사를 거둘 의논을 하니, 한 사람이 방법을 말하였다. 


"우선 감군 위간을 보내어 등애의 군사를 거두게 하여 봅시다. 등애가 위관을 죽이려 들면, 반정(反情)이 드러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엔 장군께서 마음놓고 기병(起兵)하여 치십시오." 


종회는 곧 영을 내려 위관으로 하여금 성도(成都)로 나아가 등애를 체포하게 하였다. 


"조서를 받들고 등애를 거두노라!" 


바람같이 등애의 부중(府中)에 나타난 위관은 무사들을 꾸짖어, 순식간에 등애를 결박하여 함거에다 실었다. 


이 놀라운 광경에 부중의 장리(將吏)들은 비로소 정신이 버쩍 나서, 각기 손에 잡히는 무기를 들고 빼앗으려고 덤벼들었다. 그때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며, 종회의 대병이 짓쳐오자, 겁을 먹은 무리들은 사방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나는 듯이 달려온 종회는 말에서 내려 부중으로 들어오다가, 등애가 결박을 당하여 함거에 갇혀 있음을 보자, 채찍을 들고 등애의 머리를 후리쳤다. 


"이놈! 송아지나 먹이던 놈이 감히 모반을 하다니!" 


종회는 욕설을 퍼붓고 다시 두어 차례 채짹으로 등애를 쳤다. 


종회는 눈엣 가시였던 등애를 잡자 크게 마음이 기뻤다. 득의만면하여 큰소리로 말하였다. 


"내 오늘에야 비로소 평생 소원을 풀었구나!" 


이 때부터 종회는 본격적으로 모반할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이러한 기미를 눈치챈 군사들이 마침내 들고일어났다. 자칫 모반에 가담했다가는 삼족이 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종회의 부중 밖으로는 사면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군사들은 문을 깨트려 열고 아우성치며 몰려들었다. 


종회는 드디어 칼을 뽑았다. 앞서 오는 군사부터 차례로 맞아, 순식간에 대여섯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빗발치듯 날아오는 난전(亂箭)은 마침내 종회를 그냥 두지 않아, 그는 너무도 허황하게 거꾸러지고 말았다. 


등애의 부하들은 종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장안으로 압송 중인 등애를 데리러 길을 떠났다. 이 일을 재빨리 위관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위관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내가 등애를 잡았으니, 이대로 둔다면 나야말로 목이 열 개라도 살아 남지 못하겠구나…" 


옆에서 듣고 있던 호군 전속(田續)이 말했다. 


"장군은 염려 마십시오. 제가 등애를 처치하겠습니다." 


전속이 잠시 쉬지 않고 말을 달려 면죽성에 다다르고 보니, 마침 먼저 도착한 등애의 부하들이 그를 함거에서 나오게 하고 성도로 떠나려는 참이었다. 


등애가 바라보니, 다른 군사 아니고 저희 본부병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않고 마음놓고 있다가, 군사들이 가까이 이르자 등애는 한마디 물었다. 


"어인 군사들이 이렇듯 바삐 오느냐?" 


전속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갑자기 칼을 뽑아 등애의 머리를 후리쳤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등애는 몸을 피할 겨를도 없이 어처구니없게 죽이고 말았다. 


이렇게 사마소는 화근이 될 뻔했던 종회와 등애를 이간시켜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별로 힘들이지 않고 두 사람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28. 지상매괴(指桑罵槐): 넌지시 경고를 발한다.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키는 방법 중에 경고의 방법이 있다. 웬만한 강경책이면 상대의 지지를 얻을 것이고, 과감한 수단을 쓰면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 


'지상매괴'란 뽕나무를 가리키며 회나무 흉을 보는, 즉 직접적으로 상대를 비판하지 않고 제삼자를 비판함으로써 자기가 뜻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상대에게 전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직접 본인에게 명령하는 대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의사와의 일치를 꾀하는 것이다. 


거기다 전황이 긴박해지면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니, 명령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에서도 여간해서는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명령보다도 정보가 더 효과적이다. 


1905년 봉천(奉天) 회전에서는 각 군의 진격이 시원치 않아 곤경에 빠져 있던 만주군 총사령부의 다나카 참모는 각 군에 대해, 


"다른 부대들은 모두 전선에서 잘 싸우고 있다." 


라고 하는 거짓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각 군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독전에 성공했던 것이다. 

 

29. 친이리지(親而離之): 친하면 이간시킨다. 


제갈량의 남만(南蠻)정벌 때, 반기를 든 옹개·고정·주포 등은 서로 상의한 후 병사를 삼로(三路)로 나누되, 고정은 중로를 맡고, 옹개는 좌로, 주포는 우로를 맡아, 각기 5,6만의 군사를 이끌고 촉군(蜀軍)과 맞싸우기로 했다. 


고정은 악환으로 전부(前部) 선봉을 삼았다. 악환은 본부군을 거느리고 촉군과 싸웠으나 역불급이었다. 


마침내 악환이 사로잡혀 대채로 끌려오자 제갈량은 악환의 결박을 풀어주게 한 다음,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며 물었다. 


"너는 누구의 부장인고?" 


"고정의 부장입니다." 


"내 아노니, 고정은 충의지사(忠義之士)라 공연히 옹개의 꼬임수에 넘어가 이렇게 되었도다. 내 너를 놓아주겠으니, 고정으로 하여금 속히 항복케하여, 장차 올 대화(大禍)를 면하게 하라." 


악환은 너무나 의외의 말에 감격하여 절하고 사례하였다. 그는 돌아가자, 즉시 고정에게 제갈량의 덕(德)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니, 고정 역시 감격할 뿐이었다. 


이튿날 옹개가 고정의 채로 왔다. 서로 예(禮)가 끝나자 자리를 정한 후 옹개가 물었다. 


"악환이 사로잡혀 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답니까?" 


고정이 대답했다. 


"제갈량이 의(義)로써 놓아주더랍니다." 


"흐흥! 이건 틀림없는 그놈의 반간지계(反間之計)로구려.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꾀를 쓰는 것이 틀림없소." 


고정은 옹개의 말을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였다. 


그후 나흘째 되는 날, 옹개와 고정은 군사를 두 길로 나누어 촉채를 쳐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촉병이 일제히 무찌르며 짓쳐나오니 옹개와 고정의 군사는 무수히 죽고, 사로잡힌 자만 하여도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촉장 위연은 무수한 포로들을 대채로 끌고 와서, 옹개의 군사는 왼편에다 가두고 고정의 군사는 오른 편에다 가두었다. 이렇게 포로들을 나누어 감금한 후 위연은 군사들을 시켜서, 


"고정의 군사는 살려줄 것이며, 옹개의 군사는 모조리 죽인다." 


이렇게 외치게 하였다. 


모든 포로들은 이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제갈량이 옹개의 군사들을 모조리 장전(帳前)으로 불러들인 후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의 부하들이냐?" 


포로들은 모두 거짓말로 둘러댔다. 


"저희들은 모두 고정의 부하들입니다." 


제갈량은 그들을 죽이지 말라 하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한 후, 사람까지 딸려 그들을 영채 바깥까지 전송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제갈량은 고정의 군사들을 불러들여 같은 말로 물었다. 그들은 모두 의기양양하게 고정의 부하라고 대답하였다. 제갈량은 또한 그들도 죽이지 말게 하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며 말하였다. 


"오늘 옹개가 사람을 보내어 항복하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너의 주인 고정의 머리와 주포의 머리를 바쳐 공을 세우겠다고 하였으나, 내 어이 차마 그렇게 하라고야 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다 고정의 부하라기에 돌려보내 주겠으니, 다시는 배반하지 말라. 만일 또 잡혀 온다면 그때에는 결코 용서 없으리라." 


고정의 부하들은 백배사죄하면서 돌아갔다. 


군사들은 본채로 돌아오자, 그 길로 고정에게 사실대로 아뢰었다. 듣고나자 고정은 심사가 불안하여, 참지 못하고 부하 한 사람을 불러, 


"네 비밀히 촉군의 영채로 가서 동정을 살피고 오너라." 


하고 분부하였다. 


이럴 줄 미리 알고 고정의 부하를 옹개의 부하로 잘못 안 것처럼 꾸미고, 장중(帳中)으로 불러들여, 


"너의 대장이 이미 고정과 주포 두 사람의 목을 바치겠다고 언약까지 해 놓고 기일을 어기느냐. 이렇듯 만사에 범연(凡然)하고서야 무슨 일을 하겠느냐!" 


하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고정의 부하는 속으로 깜짝 놀랐으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 한 마디 못하고 있다가, 돌아와서 자초지장을 말하자, 고정의 손은 와들와들 떨리며, 드디어 그의 분노는 폭발하였다. 


"이런 죽일 놈!" 


그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나는 진심으로 제놈을 대했거늘, 제놈이 나를 죽이려 하다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날 밤 고정은 군사를 이끌고 옹개의 진지로 짓쳐 갔다. 일은 생각보다 쉽게 되느라고 제갈량에게서 놓여 나온 옹개의 군사들은, 고정의 덕을 기리고 있었던만큼, 오히려 싸움을 도와 옹개를 잡으려고 하였다. 옹개는 혼비백산하여 말에 올라 산길로 달아났다. 


바로 그때 악환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덤벼드니, 옹개는 한순간에 창에 찔려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고정은 양로군을 거느리고 제갈량에게 내항(內降)하며, 옹개의 목을 장하(帳下)에 바쳤다. 


그러나 이 어찌된 영문인가. 제갈량은 장상(帳上)에 높이 앉아 좌우 군사에게 추상같이 호령했다. 


"저놈을 밖으로 끌어내어 냉큼 목을 자르라!" 


고정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정신이 아찔하였다. 


"소장이 승상의 대은(大恩)에 감격하여, 이제 옹개의 목을 가지고 항복하러 왔는데, 오히려 저를 죽이려 하시니,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제갈량이 소리 높여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네 누구를 속이려 하느냐. 네 감히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승상은 무슨 까닭으로 제가 거짓 항복한다는 것입니까?" 


제갈량은 문갑 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더니 고정에게 주며 말했다. 


"네 그 글을 읽고도 변명할 텐가. 주포가 비밀리 사람을 시켜 나에게 보낸 글이니 네눈이 있거든 자세히 읽어 보라. 너와 옹개는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한 벗이라 했으니, 네 어이 하루 아침에 그의 목을 베어 올 수 있단 말이냐. 그러므로 네가 거짓 항복한다는 걸 알고 있은 지 오래다." 


고성은 주포의 편지를 읽어보자 어떻게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지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물론 이것은 제갈량이 꾸며서 만든 거짓 편지였다. 


"주포가 이런 밀서를 올린 것은 참으로 반간(反間)하려는 계책입니다. 승상께서는 이런 말을 믿지 마소서." 


"내 또한 한 조각 글로써 믿기도 어렵거니와 또 믿지 아니할 수도 없다. 그러니 네 만일 주포를 잡아온다면 비로소 네 말이 진심인 줄 믿을 수 있겠다." 


고정은 즉시 부장 악환을 거느리고 본부병과 함께 주포의 영채로 질풍같이 달렸다. 


그들이 주포의 영채에서 한 십리 가량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였다. 문득 산 뒤에서 일군이 나타나며 앞장서서 말타고 오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주포였다. 


주포가 앞으로 다가오는 군사를 바라보니 바로 고정의 악환이 아닌가. 그는 멋도 모르고, 반가운 마음에서 고정을 영접하려고 황망히 말을 앞으로 달려왔다. 


이때 옆으로 말고삐를 제켜 슬슬 돌아가던 악환이 문득 쏜살같이 달려들어 주포를 창으로 찔러 말 아래 거꾸러 뜨리니, 주포는 죽는 줄도 모르게 죽고 말았다. 


이러고 촉채에 이르자 고정과 악환은 주포의 목을 장하에 바쳤다. 주포의 목을 내려다보던 제갈량은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엄숙한 목소리로, 


"내 일부러 계책으로써 너로 하여금 옹개와 주포 두 도적을 죽이게 하여 충성을 나타내게 한 것이니, 앞으로 능히 천명(天命)에 거슬림이 없도록 하라." 


고정과 악환은 이번 일을 기회로 다시는 반역하지 않겠노라고 울면서 맹세하였다. 이렇듯 제갈량은 '친이리지'의 계책을 써서 힘들이지 않고 반군을 평정한 것이었다. 

 

30. 타초경사(打草驚蛇): 숨어 있는 적을 찾는다. 


'타초경사'란 풀을 두들겨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인데, 이에는 그 밖에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뱀을 직접적인 목표로 하지 않고 뱀을 때리는 대신 그 근방의 풀을 때려서 뱀의 상황을 알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요즘 흔히 행해지고 있는 수법과도 같이 거물의 범죄를 수사할 경우, 직접 본인을 조사하지 않고 그의 비서나 운전수 등을 추궁하는 것과도 같다. 


당나라 때 당도현 지사인 왕로(王魯)라는 자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관리였다. 어느 날 주민들이 연명으로 그의 부하들이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해 왔다. 


깜짝 놀란 그는 얼떨결에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풀을 쳤지만 나는 이미 뱀을 놀라게 했다." 


즉, 네가 친 것은 풀뿐이지만 나로서는 풀 속에 숨어있는 뱀이 놀라듯 깜짝 놀랐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진짜 숨어있는 적이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1. 투량환주(偸梁換柱): 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꾸기. 주력을 바꾼다. 


'투량환주(偸梁換柱)'란 대들보를 빼어 기둥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다른 나라 군대와 합동하여 싸울 때, 몰래 그 주력을 빼내서 전투하기에 불리하게 하고, 기회를 봐서 그 병력을 내 쪽으로 끌어들이는 계략을 말한다. 


이 말의 본뜻은 몰래 어떤 사물의 본질이나 내용을 바꿔쳐서 상대를 속인다는 뜻이다. 


밀본 병법 '36계'의 25계로서 원문에는 "여러 번 진용을 바꾸면서 주력을 옮기다가 기회를 타서 제압하는 기술"이라고 하였다. 


기원전 205년 한신(韓信)이 군사를 거느려 위왕을 칠 때 한신은 위왕이 대군을 포판에 집결시켜 놓은 것을 보고, 그는 곧 포판 서안의 임보에 전선(戰船)을 집결시키면서 임보로부터 황하를 건너 포판을 친다고 소문을 냈다. 


그리고는 은밀히 주력부대를 임보 북쪽의 하양에서 나무 앵부(아가리가 작고 배가 큰 용기)를 타고 황하를 건너 위왕이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들이쳐서 위왕을 사로잡아 버렸다. 


'투량환주'는 사물의 내용을 고치거나 바꿈으로써 얼르고 속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32. 파부침주(破釜沈舟): 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히기. 


'파부침주'의 핵심은 군사들을 죽음의 처지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살아나갈 생각을 버리고 필사의 결심을 갖게 하며, 나아가서는 용맹을 다하여 싸우게 하는 것이다. 


'손자병법·구지편'에는 "사지에 빠진 다음에 도리어 살아난다"고 하였는데, 군사들을 격려하여 적들과 한판 싸움을 하자는 데 있다. 


한 부대가 만약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생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능히 한 명이 열 명을 당할 수 있고 열 명이 백 명을 당할 수 있다. 바로 '오자병법·치병 제3'에서 말한 것처럼 '필사즉생(必死則生)'하는 것이다. 


'사기·항우 본전'에는 "항우는 군사들을 이끌어 강을 건넌 다음 배를 몽땅 침몰시켜 버리고 밥솥과 식기들을 부수고 집을 몽땅 불살라 버린 후 3일간 먹을 양식만 남겨놓게 함으로써 군사들로 하여금 모두 죽고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적혀 있다. 


'파부침주'는 하나의 중요한 책략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도자가 사람들의 사기를 앙양시키고 사상을 통일하며 결심을 내리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33. 허실상란(虛實相亂):허위와 진실이 서로 교란하게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만약 상대방이 처음에 거짓말을 할 경우, 듣는 사람이 그것을 눈치채었다면 그 다음의 말들은 모두 거짓말로 인정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처음에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 아울러 인상이 매우 깊었다면 후에 거짓말을 하여도 그것을 정말로 여기게 된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선입위주'라고 한다. 이 원리를 원활하게 운용하면 곡 허실을 뒤섞고 거짓으로 진실을 교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진(秦)나라의 저명한 상국 감성은 바로 이 방법을 이용하여 정적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진왕이 갑자기 장군 공손연을 중히 여기고 자신을 내쳐버리곤 하기 때문에 감성은 의기 소침하였고, 이에 대해 몹시 분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감성에게 진왕이 상국을 공손연으로 바꾸려 한다고 일러 주었다. 


원래 진왕은 사사로이 공손연에게, 


"내가 공을 상국으로 삼을까 하고 생각 중에 있소."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말을 감성의 부하가 훔쳐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정보는 틀림이 없었다. 


감성은 곧 진왕을 배알하여 말했다. 


"대왕께서 유능한 상국을 얻게 된 것을 축하드리옵니다." 


진왕은 깜짝 놀라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을까?'하고 생각하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국사를 모두 경에게 맡겼는데 또 무슨 다른 상국이 필요하단 말이오?" 


진왕은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공은 어디서 그런 요언을 들었소?" 


감성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정적인 모함을 하였다. 


"공손연 장군이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진왕은 입을 딱 벌리고 혀가 굳어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진왕은 가만히 생각했다. 


'공손연, 이 사람은 정말 믿지 못할 사람이구나.' 

하고 분개했다. 


얼마 안되어 공손연 장군은 면직되고 말았다. 진왕은 감성이 먼저 한 말이 사실에 맞으니 뒤에 한 거짓말도 진실로 여겼던 것이다. 

 

34. 혼수막어(混水摸魚):혼전을 틈타 쳐들어간다. 


'혼수막어'란 물을 저어서 고기를 찾는다는 뜻으로, 적이 난입하여 혼전하는 때를 이용하여 약해진 적을 섬멸하는 계략을 말한다. 본래의 뜻은 물을 저어 고기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해 놓고 그 틈에 고기를 잡아낸다는 뜻이다. 


적의 내부에 혼란이 생기면 그때를 틈타서 쳐들어가 힘이 빠지고 갈팡질팡하는 자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흡사 방이 되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가 휴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병법의 요결은 집단을 이끌어 승리를 획득하는 것이며 '손자'가 주장하듯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삼는다. 


삼국 시대 조조는 나중에 서로 적이 되어 싸웠지만 어릴 적에는 명문 자제인 원소(袁紹)와 한 패가 되어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 


어느 날 이웃 동네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둘이 짜고 신부를 겁탈하기 위해 몰래 신부집에 침입했다. 밤이 되는 것을 기다려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도둑이야!" 


온 식구들이 깜짝 놀라 우왕좌왕하는 틈에 신부방에 들어가 칼을 들이대고 신부를 납치했다. 그런데 도망치다가 원소가 잘못해서 탱자나무숲에 빠져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 같으면 혼자 도망을 하거나, 아니면 친구를 구하려다 함께 붙들리게 마련인데, 조조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는 느닷없이, 

"도둑이 여기 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그만 정신이 번쩍 든 원소가 살이 찢어지는 것도 돌볼 겨를이 없이 젖먹던 힘을 다해 숲을 빠져나와 함께 도망쳤다. 이 일화는 후한 말에서 진(晋) 초에 이름을 날린 명사들의 언행을 기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35. 후발제인(後發制人):후에 손을 써서 상대를 제압한다. 


'백전기법'에는 "무릇 싸움이란 적들의 대열과 진이 정연하고 예기가 있으면 싸우지 말고 굳게 지켜야 한다. 오래 진을 치고 있으면 예기가 쇠하는데 그때 일어나 치면 못 이기는 법이 없다. 후에 손을 쓰는 것은 상대방이 쇠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고 하였다. 


역사상 현원 시대의 판천 싸움에서 현원씨가 쓴 것이 바로 후발제인의 전략이다. 당시 현원씨족은 유목 경제로부터 농업 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그들은 유목 생활의 습관이 있어 행동이 영활하였고, 멀리 싸우러 가도 그저 소와 양만 몰고 가면 곧 양식 공급을 할 수 있어 후방 병참에 대한 근심이 없었다. 


이들과 맞선 것은 유강(신농씨족의 28대 황제)이 영솔하는 씨족이었는데, 오직 농경 생활에만 습관되어 병마가 움직이기 전에 양초가 앞서 나가야 하며, 일단 곡식을 심지 않는 목축구의 황야에 진입하면 후방 공급이 단절되었다. 


적들에게서 양식을 해결하려 해도 황야에는 빼앗을 것도 없이 주동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었다. 


현원씨는 웅재 대략이 있었기 때문에 적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기동성있게 후퇴하는 전술을 쓰기로 했다. 


그는 하남에서 싸우고 다시 하북에서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판천의 번판까지 퇴각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형과 위치가 자기에게 유리하고 적에게 불리한 곳에서 결전을 벌여 일거에 승리를 쟁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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