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흥 선생
#1. 글자라는 업
이용제: 글자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남흥: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각을 했어. 쉽게
말해 도장을 만든 거지.
우리 집에 책 궤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든 것
전부 도장이 찍혀있었어.
낙관 같은 것들. 어려서부터 그것만 가지고 놀았거
든.
그래서인지 전각을 곧잘 했었어. 초등학교에 가니
까 교장 선생님께서 내 재주를 예쁘게 보셨는지,
도장 파는 칼이 아니라 일반 조각도를 주시면서 초
등학교 직인을 파보라는 거야.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래서 그 도장 찍은 졸업장을 받았어.
이용제: 전각을 했던 경험이 굉장히 중요했었네요?
이남흥: 문자의 꼴은 거기서 다 나와.
말하자면 도장에서 쓰는 전서체에 글자꼴 방식이
다 나와 있는 거지. 활자를 만드는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서부터 인장을 잘 했었기 때문인
것 같아. 당시 인쇄소에서는 글자를 몇 개 안 사다
놓고 쓰니까 이상한 글자가 나오면 만들어서 합성
을 시켜야 됐거든.
이상한 글자가 나오면 여러 글자에서 필요한 부분
만 떼어다가 글자를 합성해서 썼지.
그래도 안 되는 글자가 있어.
그러면 종이에 글자를 써서 파는 거야.
나무에다 파는 게 있고 납에다 파는 게 있지.
주로 인쇄소에 가면 납 활자 꽂아서 인쇄하는 방식
이라, 이 활자들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야 되는데
글씨 쓸 사람이 없었거든. 내가 그걸로 시험 봐서
인쇄소에 들어갔어.
글자라는 게 명필이라고 되는 게 아냐. 간결하게
쓰면서 알아보기 쉬워야 되거든.
빨리빨리 찍어내야 되니까.
이용제: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어떻게 글자를 업으
로 삼으셨어요?
이남흥: 먼저 최정호, 최정순 선생 이야기부터 해
야겠네. 최정호 선생의 글씨는 이야기책(서적용)에
주로 쓰였지. 가로쓰기로 만드는 책 말이야.
그 분이 재주가 많았어. 일본에서 예술고교(요도바
시 미술학원)를 졸업하고 글씨 그리는 걸 연구하고
왔어.
최정순 선생은 서울신문에서 동판을 조각기에 넣고
조각해서 활자를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 상품화할
만큼 되니까 신문사를 퇴사하고 자기 글씨를 그려
서 납품하기 시작했지.
최정순 선생이 하는 걸 보니까 나도 글자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최정호 선생을 모셔서 내가
만든 글자를 보여드렸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내가 그분께 가르침을 받은 거지.
누군가에게 글자를 배운 건, 최정호 선생께 받았던
그 한 번이 전부야.
당시 최정호, 최정순 선생이 그린 글자들을 조금씩
갖고 있어. 샘플 식으로.
중국이니 일본의 글자들도 구색을 맞춰 조금씩 갖
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따라 그리기 시작했지.
조선일보의 납활자 시대를 종언할 때 만들었던 기념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남흥 선생의 전각 도구들
#2. 신문 서체의 파랑
이용제: 조선일보에 입사하신 건 언제인가요?
이남흥: 1976년 6월 25일에 입사했지. 내가 나이
가 먹어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그건 절대 안 잊어
버려.
이용제: 조선일보에서 일하시면서 서체의 많은 변
화를 겪으셨죠?
이남흥: 당시 서체가 대부분 4:5의 비율로 옆으로
조금 넓은 서체였어. 그래서 편평체라고 불렀지.
안정되고 튼튼한 글자였어. 작은 글씨지만 크게 잘
보이고. 그런데 컴퓨터가 생기면서 글자를 바꿔야
되는 상황이 생긴 거야. 정방형으로 글씨를 고친 거
지. 문제는, 정방형으로 그리는 감각으로는 정체를
그리기가 힘들어. 자꾸 원래 형태로 가게 돼서 글자
가 넓고 좁고 해.
지금은 장체로 돼 있을 거야. 그러면 한글은 좀 늘
씬해 보이는데, 문제는 한문이지. 한글은 장체로
되어 있는데 한자는 여전히 정방형에 가깝거든.
그래서 제 꼴이 안 나오는 거야. 지금도 신문 보면
덜 좁혀져서 나오는 게 있어. 날씬하게 보여야 되
는데.
이용제: 신문에 사용하는 글자수가 굉장히 많은데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이남흥: 당시 회사에서는 서체개발팀을 구성해서
서시철, 민창기 씨한테 맡겼지. 컴퓨터로 서체를
개발하라고 했어. 나는 고수하던 한글, 한문을 만
들었어. 인원도 부족했고, 또 내가 실력을 보여준
적도 없는 말단 사원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양쪽에 같은 일을 시킨 거야. 그게 회사의 운영 방
식인 거지. 어떤 회사고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
는 게 아니라 경쟁을 붙이는 게 운영 방식이거든.
서시철 씨는 미술부에 있으면서 타이포그래피를
붙들며 편집도 하니까 회사에서 보기에는 곧잘 할
것 같았는지 팀을 만들어 줬어.
그런데 나는 누구랑 같이는 안 하거든. 글자라는
게 같이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여러 사람이 한 글자
를 만들면 서로 모양이 달라져서 일이 되지 않아.
어쨌든 그렇게 시작해 중국까지 가서 글자를 얻어
오고 별 짓을 다 했는데도 깨끗한 글씨를 만들기가
힘들더라고. 회사에서 좋은 글씨를 한 번에 사오지
않고 나눠 사서 조합해 쓰니까 글자가 깨끗하질 못
한 거야.
그것까지 파악하진 못했어. 자꾸 신문 활자를 놓고
크게 만들어라 작게 만들어라 지적만 하고. 그러니
부장들은 매일 깨지는 거야. 인쇄 잘못됐다고.
이용제: 전산화 과정을 직접 작업하셨나요?
이남흥: 전산화가 시작되니까 일본에서 전산 교육
을 받아야 했어. 내가 갔어야 했는데 위암에 걸려서
못 가고 밑에 있던 사람 둘을 보내서 글자 만드는
훈련을 시켰어. 그렇게 훈련을 시킨 다음에 여직원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을 데리고 글자를 만들기 시작
했지. 내가 직접 배웠어도 손이 느려 소용이 없으
니까 안 배웠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사무
원들 쭉 앉혀 놓고 화면 띄우게 한 다음 그 옆에 앉
아서 이래라, 저래라 수정을 시켰던 거야.
컴퓨터가 안 되니까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수
정을 지시했지.
그중 김영균이라는 친구가 있었어.
내가 그 친구를 뽑아서 그렇게 훈련시켰지.
이것만 할 수 있으면 굶을 걱정은 없으니 소질이 있
는지는 모르나 죽기
살기로 매달리라고 했지.
그 친구가 컴퓨터에는 소질이 있었는데, 어지간히
잘 하더라고.
내가 데리고 있던 잘 하는 사람들은 여러 회사에서
다 데려갔지.
이용제: 그러면 조선일보 계실 때 한글, 한자 서체
는 모두 끝내신 건가요?
이남흥: 끝냈는데, 3~4년 전에 김영균 씨와 조의환
씨가 중국, 일본, 대만에 가서 서체 일부를 받아왔
어.
조선일보 서체를 가운데 놓고 비교하는 거지.
좋은 건 심으면 되니까. 조의환 씨가 자꾸 점심 먹
자고 해서 만났더니 글자 가져와서 수정을 해달라
고 하더라고.
중국식으로 글자를 써도 되냐 안 되냐 물으면서.
당시에 내가 중국 책을 많이 보고 있었거든.
나는 낯설지 않아서 좋은데 독자가 반발하면 어떻
게 할 거냐고 그랬지.
하지만 사람들은 메시지만 전달받으면 되지 글자
에는 관심이 없잖아.
이용제: 지금의 조선일보 글자는 어떻게 보세요?
이남흥: 뜯어보면 문제가 많아. 그 전에는 가로로
‘ㅡ’자를 그을 때 이게 사선으로 올라갔어.
그러다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넘어가면서 직
선으로 갔단 말이야.
‘ㄷ’자의 이음부분도 확 올렸다고. 최정순 체가
그래. 최정순 선생이 그거 하나는 고집했어.
그런데 이렇게 해 놓은 글자를 확대하면 ‘ㄷ’자 한
자만 이상해지거든.
그런 문제 말고도 문제점이 아직 있어.
#3. 폐기된 역사
이용제: 퇴임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남흥: 여기저기서 제안이 있었지. 근데 일을 많
이 하진 않았어.
한 번은 삼성 서체를 개발해야 되는데 감수를 해
달라더군. 기존 서체를 수정해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
그것도 안 한다고 했어. 납품할 때 누가 감수했느
냐가 관건이거든.
나는 무명이지만 조선일보 서체를 완성한 사람이
라는 타이틀을 이용하려는 것이지 좋은 글자를
만들어서 납품하려는 게 아니잖아.
필요하다면 자문은 해 줄 수 있지만 감수는 싫다
고 했어.
그래서 내가 고집쟁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고집
없으면 어떻게 글씨를 만드나.
물론 내 얘기가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주장
하고 살았어.
하지만 사람들이 한 번 볼 수 있느냐고 연락하면
오라고 해.
알려 달라는 건 다 알려줘.
요즘 세상에 혼자만 갖고 있어선 안돼. 오픈하면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보이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니까.
이용제: 저도 글자 디자인한 지 19년 정도 됐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럴 때에는 최정호 선생님
이 그린 원도 보면서 공부해요.
이남흥: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해. 인쇄 공학을 모
르고는 글자 만들어 봐야 허탕이잖아.
예를 들어 ‘木’자도 가로 획 두께는 이렇게, 세리프
는 저렇게, 또 기둥 두께는 또 이렇게 하고… 그게
관건이야.
공학적으로 이걸 1mm로 놨을 때 35% 확대되고,
잉크가 번지고 이런 게 중요한 단서거든.
일본에서 인쇄에 관해 나오는 출판물을 보면 아무
렇게나 놓고 그리는 게 아니고 이런 공학적인 것들
을 생각하면서 설계를 해.
같은 군의 글자끼리 모아서 설계를 한다고.
뚱뚱한 글자, 날씬한 글자끼리 모아놓고 같이 연구
를 해야 돼.
기술만 가지고 글자 꼴만 예쁘게 만드는 건 아니야.
그래서 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용제: 예전에 작업하신 원도를 정리해서 사용하
실 생각은 없으세요? 자료가 아깝잖아요.
이남흥: 원도는 회사에 있고, 복사본을 갖고 있지.
나름대로 갈무리해서 모아 놓은 것이지 완전무결
하게 정리해서 갖고 있는 건 아니야.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또 쓸 데가
있어야지.
이용제: 글자꼴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실제로 글자들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혹시 선생님께서 글자 그리시면서 쌓으신 경험을
기록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남흥: 내가 고집쟁이긴 해도 오픈된 늙은이야.
만나자고 해도 고민인 게, 뭘 알려주나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게 잘 안돼.
내가 편지글도 못 쓰는 사람인데,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해.
이용제: 후배 입장에서 선배님들이 하셨던 걸 보
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자료
가 거의 없거든요.
이남흥: 조선일보의 활자 역사 자료는 내가 따로
가지고 있긴 하지만 관리
하고 보관하는 사람이 없어. 원도도 다 폐기처분
했을 거야.
잘못된 역사라도 보관해야 하는데, 그 많은 자료를
다 창고에 쌓아 놓으니
나도 애석한 부분이 많아.
조선일보 나오면서 잘 보관해 두라고 했는데 다 버
렸더라고.
담당자가 있어도, 떠나면 그만이잖아. 우리나라는
보관하는 게 없어.
자리에 있을 때나 써먹지 떠나면 그만이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자료들이지.
작은 칼 하나라도 말이야.
어떤 사람이 활자 역사 편찬하는데 쓰던 칼 한 자루
달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 글자 다 버리고 칼만 주면 뭐 할 거야.
그냥 이게 활자 파던 칼이다, 하고 마는 거지. 이치
를 모르니까.
어쨌든 이런 것들이 잘 정리되어야 하는데….
이용제: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이남흥: 재주 있는 젊은이 보고 글자 하라고 권하
고 싶진 않아.
먹고 살 걱정이 해결되지 않는데다, 10년을 매달
려도 눈에 보이게
진전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
여도 애써 찾다 보면 보이겠지. 그리고 공부라는
건 훔치는 기술이 있어야 하거든.
아무리 책을 들여다 본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더라
고. 어깨너머로 배웠다고들 하잖아.
옆에서 슬쩍 보고도 딱 들어오는 게 있거든.
그게 진짜 자기 걸로 만드는 거야.
[출처] http://cafe.daum.net/stargeter/e2zN/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