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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인문학

시간을 이기고 오래 살아남은 것들에 관심이 간다 - 박칼린 음악감독

시간을 이기고 오래 살아남은 것들에 관심이 간다 

- 박칼린 음악감독 -


http://inmun.yes24.com/articles/commonview/28?articleNo=147&sortgb=0&pageNumber=1

지난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해 열정적인 모습으로 ‘남격 합창단’뿐 아니라 많은 시청자의 멘토가 된 박칼린(45). 이후 무대로 돌아가 뮤지컬 <아이다>를 연출하고, <넥스트 투 노멀>에는 배우로 도전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예술원 뮤지컬 학부장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박칼린은 올해도 일정이 빼곡하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코리아 갓 탤런트 시즌 2>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명사의 인문학 서재, 두 번째 주인공 박칼린. 자신의 삶의 영향을 끼친 중요한 책, 영화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박칼린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녀의 말인즉, 예술에 ‘더 좋은 것’은 있을 수 있어도 ‘가장 좋은 것’을 어떻게 꼽을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그때그때의 박칼린이 있었고, 그때마다 더 좋은 예술 작품들이 있었을 뿐, 어느 일관된 기준이나 총합으로 자신을, 자신의 삶을 규정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하면서, 클래식부터 월드뮤직, 레게, 한국음악까지 섭렵. 한국에 들어와서는 명창 박동진 선생님 아래에서 국악을 배웠다. 이후 뮤지컬 음악감독, 연출가로 활동하며 책도 쓰고, 방송 출연도 하고, 다시금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칼린의 폭넓고 거침없는 활동의 스펙트럼을 보자면, 그녀가 무엇을 경계하는지 짐작도 간다. 

“이왕 사는 거 재미있는 일로 꽉 채워서, 재미있게 살다 가려고요.” 욕심도 많고 재주도 많은 박칼린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인 셈이다. 2012년 3월, 지금을 사는 박칼린이 자신을 만든 여러 가지 몇 권에 책과 생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상에 널린 게 영감이라고 말하는 박칼린. 그는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혼자 앉아서 온갖 상상을 하다 보면 복잡했던 게 정리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간을 이기고 오래 살아남은 것들에 관심이 간다” 


평소 어떤 책을 좋아하나? 


“까다로운 편이에요. 편식해요. 미국에서는 열여섯 살 미만 아이가 집에 혼자 있으면 불법이잖아요. 동네에 도서관이 많아서, 늘 도서관에 있었어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책장에 꽂힌 책을 끝내는 재미로 읽었어요. 그때는 마구잡이로 읽었는데 추리 소설이나 마녀가 나오는 소설을 좋아했고, 요즘에는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논픽션 장르가 좋아요. 


최근에는 『동물원을 샀어요』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동물원을 사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 동물원을 사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디즈니랜드 한복판에 사는 기분일 텐데. 게다가 이게 실화래요. 정말 그렇게 재미있게 사는 가족이 있더라고요.” 


2, 3년마다 다시 펼쳐보게 되는 책이 있다면? 


“내가 왜 여기 와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책들이죠. 원초를 생각하게 하는 책. 시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려주는 과학책이나 역사책이요. 집에서 즐겨보는 잡지들이 제가 읽는 스타일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셔널 지오그라피’, ‘디스커버리’ 같은 과학 잡지. ‘타임즈’ 같은 시사지를 읽어요.” 


편식이 심하다고 하지만, 다양하게 보는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책의 호불호가 생기는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남자인지는 알지만,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해요.


” 평소 책은 어떻게 고르나? 


“주로 오프라인 서점에서 골라요. 베스트셀러나 뜨는 책은 관심이 없고요. 걸러져 오래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보게 돼요. 그래서 제가 접하는 책이나 음악은 현장감이 없어요. 남들이 좋다고 판단해주길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유행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오랫동안 그 책이 이야기되고 난 후에야 저는 뒤늦게 그 책에 관심이 생기는 편이에요.” 


공연 연출, 음악 감독을 하려면 누구보다 유행에 촉수를 세우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작품을 그렇게 만들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감이 자연스럽게 몸에는 배어 있겠지만, 남의 시선을 생각하거나, 지금 저게 유행하니까 저렇게 해야지,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저는 트렌드가 궁금하지 않아요. 오래 살아남은 것이 트렌드로 기록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것, 나쁜 것 둘 다 경험해봐야 좋은 걸 안다” 


에세이집 『그냥』을 보면, 설거지하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어떤 자극이나 영감은 바깥에서 오는 거라고. 


“영감이 어디에서 오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영감이라는 게 어디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자기가 기존에 가진 재료가 바깥 자극으로 새롭게 볶아지는 거에요. 본인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밖에서 자극이 와도 영감이랄 게 안되거든요. 기회가 지나갈 때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 준비된 사람이 낚아챌 수 있는 것처럼요. 그렇게 죽이 맞아야 해요. 빨랫줄에 널린 빨래를 보고 그냥 ‘누가 빨래를 했구#인생,나’ 지나치는 사람과 ‘정말 멋지다. 사진으로 찍고 싶어. 저 색의 조화가 내 마음을 울린다. 저 소재로 슬픈 여인에 대해 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죠.” 

박칼린 음악감독 에세이 『그냥』


자신에게 특별히 영감을 준 책이 있다면? 


“그런 게 없어요. 자극됐던 건 많지만,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떠올릴 수가 없어요. 그렇게 대단한 하나는 지구 상에 없는 것 같아요. 그 나이대마다 영감을 줬던 건 있겠죠. 그때마다 달라지는 거라서,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이제껏 답변해본 적이 없어요. 멘토가 누구냐고 많이 묻는데, 여러 선생님이 있지만, 저를 변화시킨 어떤 대단한 한 사람은 역시 없는 것 같아요. 더 좋아하고, 더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한 명의 멘토를 말하라고 하면, 저를 가르친 부모는 어디로 가고, 스승들은 어디로 가는 거겠어요. 모든 상황이나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어떤 하나 때문에 인생이 바뀐 적은 없어요.” 


그럼 이렇게 얘기해보자. 최근에 접한 것 중, 남들에게 권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영화 <아티스트>요. 정말 잘 만들었어요! 웃다가 울다가 봤어요. 스토리도 좋고, 연기도 좋고, 이 시대에 그런 무성영화 기법을 당당하게 해보겠다는 발상이 정말 재미있고요. 무성영화의 스타가 음성영화가 생기면서 설 수 있는 자리를 잃는 이야기잖아요. 어떤 한 인간이 인생의 최고 정점에서, 자기와 무관한 것 때문에 아이덴티티를 잃었을 때의 아픔을 알 것 같았어요. 빙의하듯이 봤어요.” 


“매 순간, 낭비하지 않고, 한껏 빨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많은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사람들을 파악하는 기준이 있다면? 


“얘기하고 있을 때 눈빛, 몸짓을 보면, 그냥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못해도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이 작품의 방해는 하지 않을 거다 싶은 사람을 봐요. 기술만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태도가 좋아서 자기 몫은 어떻게든 해낼 사람, 그 태도로 남까지 부흥할 에너지가 있는 그런 사람이 좋아요.” 


그렇게 사람을 보는 시각이 작품이나 책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나? “어떤 조건이 없어요. 닥쳐봐야 알아요. 작품을 선택할 때도, 얘기를 들었을 때, 소재에 꽂히거나, 작품을 들고 온 사람의 마음이 어떻거나, 내가 이 작품에 도움이 되거나 배울 게 있거나 다양한 선택 기준이 있죠. 완벽한 작품을 고르는 게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을까? 뭔가 배울 수 있을까?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보는 재미를 즐겨볼까? 싶어서 선택할 때도 있죠. 어떤 기준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럼 반대로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 낭비를 무지하게 싫어해요. 시간에 쫓겨 살지는 않지만, 비효율적인 걸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정리 정돈이 생활 방식의 진리가 됐어요. 책에 쓴 것처럼 타월을 접을 때도, 거울을 보고 하면 30퍼센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은데 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요. 학교에 가든 공연을 하든, 매일 그 상황을 낭비하지 않고, 빨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삶의 기준은 매일 달라지긴 하지만, 그 중에 제일 큰 기준은, 이왕 태어났으면 불사르고 가자는 거거든요. 아직 왜 이 세상에 왔는지 답변을 얻지 못해서,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워 죽겠어요.(웃음)”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혼자 있을 땐 어떤 시간을 보내나? 


“별거 다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차를 앞에 놓고, 이것저것 다 생각해봐요. 어릴 때부터 자기 전, 한두 시간 동안은 모든 걸 상상해 보곤 했어요. 만약 도둑이 들어오면, 내가 저 창문을 열어서, 내 신발을 어떻게 놓고 달아나면? 그래서 이렇게 도망치면? 모든 시나리오를 끝까지 따라가 보는 거죠. 죽음이 뭔가, 삶이 뭔가. 아이를 낳는다는 건 뭔가. 생각을 무지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기만의 시간이 꼭 필요해요. 사람들이 자기 정화가 되어야 자기 답변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 자기 삶에 본인이 책임을 지죠. 다른 것에 의지하면 변명이 많이 생겨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문제는 퍼즐로 바뀐다” 


균형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되돌아보니, 균형을 중요시했구나 싶은 거죠. 언제나 상대적인 게 있어야 좋다, 나쁘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니까요. 나쁜 것 없이 좋은 것만 있으면, 그것이 얼마나 왜 좋은지 알 수가 없어요. 선과 악이 있어야 존재성이 생기는 거죠. 다 느껴보고, 걸러낼 것을 걸러내고 나야, 자기 것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감각을 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항상 감각을 살려놓으려고 하는 거고요.


” 책이나 예술작품 말고, 어려운 순간 힘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에서 학교 마치고, 한국에서 국악 하겠다고 혼자 지냈던 시절이 있었어요. 미국에도, 부산에도 집이 있었는데, 한 번도 가족에게 손내민 적이 없었어요. 주머니에 딱 몇천 원이 남아있었는데, 내가 며칠이나 살 수 있을까? 200원짜리 라면으로 몇 끼를 먹을 수 있을까? 하숙집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무더운 여름날이었죠. 그렇게 돈 한 푼 없이 지내다 보니까, 문득 우리 엄마나 나를 아꼈던 친구들은, 어떻게 이제까지 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믿어왔을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엄마와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어요. 유서처럼.(웃음) 아무 가진 것이 없었을 때, 그 말을 꼭 남기고 싶었어요. 여태까지 나를 믿어줬던 게 정말 고마웠고, 그게 어마어마한 사랑으로 느껴졌거든요. 엄마로서 아이를 겪는 건 일종의 모험이잖아요. 엄마는 저를 키우면서, 한 번도 의심도 강요도 하지 않았어요. 어려서부터 ‘칼린이는 터치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믿음이 어마어마한 힘이었던 거예요. 그때 그걸 깨닫게 된 거죠. 여전히 그건 제게 큰 힘이에요. 그 믿음과 사랑을 되갚기 위해 나 스스로 하는 채찍질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청춘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정말 하고 싶은 걸 찾으세요. 남에게는 거짓말하기 쉽지만, 본인은 잘 알거든요. 혼자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자기를 발견할 수 있어요. 진지한 생각 끝에는 자기가 노력해서 하고 싶은 일이 분명히 있어요. 사람들은 보통 결과만 바라요. 과정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문제라고만 생각해요. 문제는 풀면, 그 문제를 푸는 힘이 생기는 거잖아요. 계단을 올라가는 일이고요. 문제는 곧 능력이라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아요.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일이 생기면, 문제라는 게 없어져요.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는 상황이 퍼즐로 바뀌는 거죠. 고민거리는 모험이 되는 거고요. 우리가 게임을 하잖아요. 왜 굳이 보물을 찾으러 가려고 해요? 게임을 안 하면 되지. 게임을 할 땐 그 과정이 재미있어서 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그 일을 좋아하게 되면, 단어가 바뀌게 돼요. 


또 자기가 선택한 것에 스스로 반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미술, 음악 하고 싶었는데 먹고 살기 위해 회사에 다닌다. 그럼 뭘 선택한 것 같아요? 본인이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잖아요. 그래서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한데 왜 만족을 못하느냐는 거죠. 만약 이런 사람이 미술을 선택해도, 그땐 또 먹고 살기 어렵다고 불평을 할 거예요.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해요. 그 선택은 결국 본인이 한 거거든요. 깊게 생각하고, 결국 본인이 선택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칼린 내 인생의 책

“내가 왜 여기 와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책. 원초를 생각하게 하는 책.”


“상상세계의 백과사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있는 것처럼 마치 있는 곳처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즈의 나라 지도도 있고, 반지의 제왕의 공간도 있고, 그 세계의 문화, 습성, 음식을 사전처럼 열거하고 있다.”

“동물원을 샀다니! 디즈니랜드 한복판에 살고 있는 기분일 것 같다. 게다가 이게 실화라니! 공항에서 우연히 샀는데, 비행 내내 깔깔거리며 읽었던 책”

“허공의 공간들을 담은 사진집. 사막 한 가운데, 돌로만 가득 찬 달나라 같은 허망한 공간, 지구상의 진짜 험한 곳을 담고 있는 이 사진집을 보고 있으면 ‘아, 지구가 이렇지!’ 무릎을 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