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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찬란한 빛/한국을 빛낸 사람들

십경도8 죄인의 몸


       


       

理致順理事理~思理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십경도8 죄인의 몸

정창섭, 문학진


1596년에 4년간을 끌어오던 강화협상이 깨어지자, 일본군은 다음해 1월에 가토오 및 고니시 등을 동원하여 재침략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먼저 조선 수군을 격멸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이 순신과의 정면대결은 오히려 저들에게 불리하고 참패를 면하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새로운 간사한 계책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조정의 당쟁과 원균과 이 순신의 미묘한 갈등 관계를 이용하여 이 순신을 제거하려 하였다.


고니시는 그의 부하 요시라를 경상좌병사 김 응서(金應瑞)의 진중으로 보내어 밀서를 전달하고, “가토오의 부대가 모일(某日) 바다를 건너 올 것이니 해상에서 맞아 싸워 달라.”는 정보를 제공케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순신은 밀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왜적의 간계임을 간파한 나머지, 척후선을 보내어 정탐케 하고 직접 출전하지 않았다. 고니시는 다시 요시라를 시켜 김 응서에게 보내어 “가토오가 도착하였다는 사실과 기회를 놓쳤으니 원망스럽다.”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이에 앞서 이 순신을 제거하려는 원균의 활동이 급진전하여 김 응남 일당들을 시켜 조정회의에서 이 순신을 비방하게 했다. 또한 요시라의 간계는 김 응남 등의 서인(西人)들에게 비방하기에 좋은 자료가 되어, 그해 2월 26일 이 순신은 공직을 박탈당하고 서울로 압송되는 이변을 맞게 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공은 사형처분을 받을 뻔했으나, 판중추부사 정탁(鄭琢)의 청원으로 4월 1일 간신히 출옥하여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이것이 두 번째 백의종군이었다. 


옥에 풀려나온 공은 뒤늦게야 홀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6월에 도원수 권 율의 막하로 들어갔다.


이 순신은 또 다시 인고(忍苦)의 세월을 지낸지 한 달이 지난 7월 15일 이 순신의 후임자였던 원 균이 칠천량에서 일본 수군의 기습을 받아, 전 함대를 잃고 목숨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원 균의 연합함대가 전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권 율은 이 순신에게 명하여 조선 수군의 뒷수습을 하도록 하였다.


이 순신은 백의종군의 몸으로써 수군 재건의 중대 임무를 맡아 남해 등지를 돌아다니며 패전의 원인과 일본 수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칠천량해전에서 탈출했던 12척의 전선을 찾아냈다. 


이후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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