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致, 順理, 事理~思理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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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 춘향전
----- 차 례 -----
1. 외설 춘향전
2. 어휘 해설
* 외설 춘향전 *
숙종대왕 즉위 초였다.이때 전라도땅 남원(南原)에 월매라는코머리 기생이 있었다.월매는 자색도반반하고 신색 또한 밴댕이 뱃바닥처럼흰데다가 육덕도 남부럽잖게 푸짐한지라한때는 남원부중에서 이름자가 떠르르했던상화방(賞化坊)의 기생이었다.
서울에서 남원으로 도임해서 내려온벼슬아치들이 소문 들어 알게 된 월매를탐하여 사방에서 수청들이라고 엄포에채근이었으므로 월매의 집 대문턱은조방꾼들의 뻔질난 출입으로 닳고 앓아들기름을 먹인 것과 흡사하였다.
그러나 피아말 엉덩이 둘러대듯 재아무리하나뿐인 몸뚱이로 그 많은 채근을 모두감당해 낼 재간이 있을 수 없었다. 비내리기 전 연못에서 개구리 지절거리듯사방에서 수청 들라는 분부가 지엄하다한들 하룻밤에 한 사내만을 육공양한다는일은 관기들이 지켜온 상화방의 규율이기도하였다.
그래서 육허기에 게걸 들린 벼슬아치들은혹은 저희들끼리 시기하고 아귀다툼하며월매를 수청 들게 하려고 온갖 모략과간계를 동원하였으나, 월매는 그때마다손사래 사이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유혹을뿌리치곤 하여서 그나마 코머리 기생의채통을 깡그리 더럽히지는 않았다.
원래 자색이 해반주그레하고 육덕이푸짐한 계집이란 간계에 능수단으로조방꾼들의 모략에 말려들기 십상이었지만,월매는 소년시절부터 총기가 남다른데다가또한 입담도 걸고 성깔도 매몰찬 구석이없지 않았기에 관기생활을 대과 없이청산하고 나이 사십에 퇴기로 여염으로물러앉아 들어앉은 계집이 되었겠다.
그러나 퇴기로 물러난 월매에게 한 가지소슬한 고민이 없지 않았다.그것은 바로 그 나이 사십 세에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계집 나이사십이라면 폐경기를 코앞에 두고 있게마련이었다.
달거리니 몸것이니 하는 그 경도(經度)가멎게 되면 월매 아니라 월궁항아라하더라도 계집으로서의 값어치는 한낱허섭스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자궁에서글픈 인생도 없다는 얘기였다.
더욱이나 월매처럼 슬하에 일점혈육도점지하지 못한 처지라면 그 참담한 심정이오죽 소슬할까. 그래서 바람 스산하게 불고있는 가을밤 저녁이나 처마 끝에 흩뿌리는빗소리 들리는 저녁에 촛불 켜고 앉아있노라면 가슴에 찬바람 불어 오지랖허전하기가 그지없었다.
처지가 딱하긴 하였지만 명색 혈육을점지해 줄 사내가 곁에 없는 것은아니었다. 그가 바로성참판(成參判)이었다. 그러나 뒤늦게얻은 기둥서방인 성참판이란 위인으로말하면 시쳇말로 그 됨됨이가 맹물이었다.물에 물 탄 사람이요 술에 술 탄사람이었다.
준수해서 남원부중에서 서울 흥인문까지서캐 잡듯 뒤진다 하더라도 남원 성참판두고 막된놈이라고 섣불리 헐뜯거나 매도할위인은 찾지 못할 사람이었다.
가산이야 보잘것없고 그 역시 퇴물벼슬아치여서 참판이란 지난날의 직함으로불려지고 있지만 저자거리에 나가러상것들을 상종하여 목청 돋궈 꾸짖기를일삼거나 양반 입네 하고 옷소매에 바람을일으키며 뽐내는 버릇은 일찍부터 삼갔던위인인 터라 동류들께보다는 남원의상것들에게는 존경받는 처지로서 실속은없었다.
물에 물 탄 성품의 사내들이 그러하듯허우대는 멀쑥하지만 잠자리에서의 일은암팡지지 못해서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하였지만 열에 아홉은 월매의 몸도 달기전에 슬쩍 헛물만 켜고 마는 것이었다.
명색 양반의 처지이었다지만 가계가옹색하여 아침 잣죽에 저녁 깨죽으로몸보신할 입장이 못 되겠으니 잠자리를질탕하게 잡도리 못할 것은 뻔한 이치였다.
다소 근력이 부친다 할지라도 나이사십에 다급해진 월매를 생각해서라도어금니를 사려 물고 발뒤축에 삐득하니기력을 불어넣어 삼이읏의 구들장들이들먹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마 위에샛별이 들쭉날쭉하도록 잠자리를 화끈하게달궈주었으면 여한이 없겠는데 그것이여의치 않았다.
한때는 남원부중을 한 손바닥 위에 놓고으름장이던 성참판도 늘그막에 이르고 보니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소일하는 무골충에다름 아닌 것이었다. 뭔가 돌파구를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월매가 하룻밤에는쑥스러운 한마디를 뇌까린 것이었다.
"이녁 보시오.""벌써 보고 있네.""내 하는 말 횡 듣지 말고 귀여겨들으시오.""이 방안에 임자와 나뿐이겠으니귀여겨듣고 자시고가 있겠나.""제 말에 자꾸 왠새끼만 꼬시오.""내가 손수 새끼 꼬아본 이력이야 없지만왼새끼는 상가에서만 쓰는 새끼라 하더군.""우리 잠자리가 너무 허황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우리가 젊지 않은 터에 허황된 것은"날 음탕한 계집이라 해서 손찌검이라도당할까 봐 발설하기 두렵소.""손찌검 당할 위험성이 있는 말을아득바득 발설해야 할 까닭이 뭔가.""애간장이 타서 그렇지 않소.""애간장 타버리면 된장 먹으면 되었지.""말문 막으려 들지 마소.""말만 잘하네.""내 나이 사십인데 아직 슬하에일점혈육이 없어 소슬한 나날을 보내고있다는 것 이녁도 잘 알고 있지 않소.""새삼 깨우칠 것 없지.""내 자궁이 기박한 탓이겠지만 내가탄식과 수심만으로 남은 여생을 보낼 수야없지 않소.""탄심과 수심이란 게 별로 좋지 않은자주 성내고 이웃과 불화되는 모든 시초가거기에 있네. 나로 말하면 소시적부터 그런것들과는 인연 두지 않아서 무골층이란평판을 듣고 있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살고있네.""말씀을 옆길로 가져가지 마오.""난 옆길로 갈 것이니 임자는 곧은 길로 가게.""그래서 말인데요.""말에는 두 가지가 있는네 입으로 하는말은 설경(舌耕)이라 하고 타는 말은안장마(鞍奬馬)라 하네.""제가 드릴 말씀이 바로 타는 말의 얘기오.""무슨 말이오.""우리 잠자리가 너무 허황된 탓으로말롱질이 어떠어겠소."
그때 성참판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식지가락을 내뻗치며 월매를 꾸짖었다."말이면 다 말인가? 소나 말이 하는 짓을명색 인두겁을 쓰고 있다는 우리가흉내하자는 젓인가? 천하에 그런 상없는말이 어디에 있는가."
성참판이 노발대발하여 시뻘건 눈을부릅뜨고 꾸짖었으되 월매는 기왕에 내친김에 죽을 셈 잡고 한마디 던졌다."그럼 멧돌치기는 어떻소."성참판의 손바닥이 귀쌈에 와 닿을조짐이라 생각하고 월매는 눈을 딱 감고있었는데 손찌검은 당하지 않았으나,
"몹쓸 것, 그런 법이 어디 있나.""잠자리에서 무슨 법을 찾소."게야.""법도라니요?""고려 적부터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땅이라 하였네, 음양의 이치와 도리가그러한즉슨 어찌 하늘과 땅을 바꿔놓는일을 홀딱 벗고 낭자하게 벌이자는것인가."
"그 역시 불가합니까?""불가는 부처님 계신 곳일세.""그러고 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생각 많은 계집 치고 팔자 기박하지 않은 계집이 없네.""명산대찰을 찾아 신공(神功)하여사내아이든 계집아이든 점지 받게 되면평생 소원 풀 것 아니겠소."무자식이 있을 수 있을까.""빌기도 전에 타박부터 먼처시오.""이치가 그렇지 않은가.""천하의 성인이신 공부자(孔夫子)도니구산(尼丘山)에 빌었고, 정나라의정자산(鄭子産)도 우성산에 빌었답디다.공든 탑이 무너질 리 없고 뿌리 깊은 나무꺾길 리 만무지요.""임자 좋도록 하게만 명산대찰 찾아 십년을 축원한다 해도 끝 조짐은 필경 내차지가 아닌가.""그것도 옳은 말씀이오만 치성부터드립시다. 이도저도 마다시면 제가 갈 곳은천길 낭떠러지밖에 더 있겠소.""명산대찰 찾아다니자면 도처에낭떠러지가 많은 법이겠으니 자칫 실족하여적공(積功) 물거품 되네.""동냥은 못 줄 망정 쪽박 깨려 들지 마소.""내가 무슨 억하심정 있어 임자의 쪽박을깨뜨릴까.""신공하고 돌아올 동안 딴 계집 상종하여군것질이나 하지 마소.""소피가 발등으로 떨어지고 있는 내분수에 설마하니 그런 여망이 있을까."
월매는 그날부터 목욕재계 정히 하고명산승지를 찾아 나섰겠다. 오작교 썩나서니 동쪽으로 장림(長林)깊은 곳에선원사(禪院寺)은은히 바라보이고남쪽오로는 지리산 웅장한데, 그 가운데요천수(寥川水)는 동남으로 둘러일대장강이었다.
줄이고 산굽이 돌아서 과객질하여반아봉(槃若蜂)에 올랐겠다.반야봉 올라서서 사방을 휘둘러보니 월매찾던 명산대천이 바로 거기에 펼쳐졌더라.
정상에 허위단심 다달아 가져온 제물 규 모있게 벌여놓고 엎드려 축원할진대, 월매사십 년만에 빌기를 그토록 극진했던 적이없었다. 엎드려 꿇었으니 무릎이터져나가는 듯 아리고 쓰렸고 손바닥을부볐으니 손금이 닳고 지문이 손상될지경이었다.
산정에 비바람 불거나 안개 또한자욱하고 천둥번개가 지나가도 일점혈육점지하고 싶은 일편단심 한 가지로 제단앞을 떠난 적이 없었다. 닷새가 지나고엿새가 지나도록 곡기 한 번 못 하고 오직꿈을 얻었더라.
어느덧 주위에 서기(瑞氣)가 차고 하늘또한 영롱하더니 한 선녀가 푸른 학을 타고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머리에 꽃관쓰고 입은 옷이 또한 꽃무늬 수놓은 얇은비단이었다. 손에 월계수 가지를 들고 재단앞에 내려온 선녀는 월매에게 공손히절하고 난 뒤 사근사근 배 씹는 목소리로물었다.
"어디 사는 뉘신지요.""남원땅에 사는 퇴기 월매요.""퇴기란 무엇이오?""기적(妓籍)을 박탈당해서 여염으로물러나 앉은 퇴물을 일컬음입니다."그 말 듣고 난 선녀의 입에서노루꼬리만치 짧은 한숨소리 흘러"이 경개 좋은 산정에서 한숨소리가 어인까닭입니까.""내 처지와 퇴기의 처지가 방불함에그리한 것입니다.""방불함의 내막은 무엇이오?"
"저는 원래 옥황상제께서 살고 있는백옥경(百玉京)에서 시중 들던 선녀랍나다.옥황상제의 분부를 따라 복숭아를 들고광한전(廣寒殿)으로 갔다가 그곳에서적송자(赤松子)라는 신선을 만나 회포를풀다가 백옥경으로 돌아갈 시각을 깜빡잊어먹고 말았답니다.
그 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속계로 내침을 받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이속계에 선녀가 묵을 곳이 어디 있겠으며속계의 구미(口味)에도 버릇 들지 못했으니그런데 때마침 두류산(頭流山)신령께서,지리산 산정에 부인이 있으니 가보라시기에이곳으로 찾아온 것이니 어여쁘게 여기시고내치지 마시기 바라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선녀는 문득학으로 변하여 하늘로부터 날아들어 월매를낚아채듯 덮치는 것이었다. 그 사품에월매는 뒤로 나둥그러졌고 나둥그러짐에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엉덩방아를 찧고나둥그러졌으나 꿈의 내막이 아무래도심상치가 않았다.
지리산 정상에서 그런 꿈을 꾸었으니이는 필경 태몽일시 분명하였다. 서둘러치행하여 집으로 돌아온 월매는 급히성참판을 불러 꿈을 얘기하였더니 성참판크게 놀라 말했다."태중이라니오? 이녁이 가진 못난고기방망이 주제로선 그럴 만한 여력이없다 하지 않았소."
성참판 화를 버럭내고 되받았다."내 주제꼴이 어떻다고 말끝마다 면박에투정인가. 내가 헛물만 켰더라면 그런 꿈을꿀 리가 만무일 터. 내가 벼슬자리에서끈이 떨어진 하찮은 선달이라 하지만 아직사내 구실은 하고도 남는다는 뜻이니임자는 그리 알고 몸 가축하면서기다리기나 하게.""제가 배태하였다면 그만한 천행이없겠소만 그 꿈이 정녕 배태하였다는것이었을까요?"
"내 말이 객쩍은 흰소리인지는 달포만기다려보면 알 것 아닌가?"기다려보십시다."성참판의 말을 첫고지 듣도 달포를기다려보기로 작정한 월매는 그 달포 동안몸 가축 정히 하며 바깔 출입 삼가고상서롭지 못한 것 보지 않으며 저자거리출입을 삼갔다. 성참판이 달포를 근신하며월매더러 기다리라 한 것은 다음달의달거리가 있고 없음에 따라 배태를 한것인가 아닌가를 가려낼 수 있었기때문이었다. 경도가 없다면 필경 핏덩이가월매의 뱃속에 들어앉은 것이리라.그런데 그 달포가 거의 지난 어느 날해질녘에 성참판은 그 일은 까맣게 잊은 채무심코 월매의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섰겠다.
대문을 밀치고 호기 있는 걸음걸이로 막첫발을 디미는 찰나였다.장지문이 획 열리면서 걸레쪽 같은 것이날아오더니 성참판의 풍체 좋은 얼굴을덮쳤다. 어마지두 놀란 성참판이 땅에떨어진 거지 발싸개를 얼떨결에 주워들었겠다.
언뜻 보면 수건에 돼지 피를 적신 것같기도 하였고, 또다시 보면 수건에 닭의피를 적신 것과 방불함인데 콧등으로비린내가 확 풍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명색여자들이 달거리가 있을 때 사타구니에끼어 차는 개짐이란 것을 양반 체통인성참판이 얼른 눈치챌 수는 없는노릇이었다. 게다가 앙칼진 목소리가방으로부터 들려왔다.
"보기도 싫으니 썩 나가시오."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다 싶었던것이었다."들어가겠다는 사람 반색으로 맞아들여야할 처지에 비린내 나는 수건을 던지며내치다니. 임자에게 개구멍 서방이라도생겼단 말인가.""개구멍 같은 수작 집어치고 썩 비켜나서다신 코빼기도 디밀지 마시오."
서슬 퍼런 월매의 말이건만 체통에 손상입은 성참판 역시 호락호락하진 않았다.그는 뜨락 한복판에 딱 버티고 서서,뒤축을 꿇리고 소매를 떨쳐 바람을일으키며 창피당한 설분을 톡톡히 하려 들었다."명색 여염에 들어앉은 계집 사람의행패가 어찌 이토록 지저분하고 비루하단말인가. 내 설령 백수건달일망정 임자의사타구니에 끼고 있던 피칠 갑이 된 개짐을면상에 던지다니. 이놈의 집구석에 불을 확싸질러 버릴라."
무골충으로만 여겼던 성참판의 험담이평소 같지 않게 매우 험악한지라 가위 질린월매가 한풀 꺾이긴 하였지만 분김을죽이진 못한 것이라 내친 김에 다시 한마디쏘아붙였다."그걸 개집이란 것을 알고 있다니다행이구려. 그렇다면 내가 왜 상서롭지못한 물건을 내던진 것인지 필경 짐작하고있으리라.""짐작이라니 무슨 놈의 있지도 않은 개뿔같은 짐작이란 말인가.""지리산에 치성 드리고 와서 달포를기다리라고 지성껏 권유한 것이 종국에이녁이 가져가서 발싸개나 하시라고던져주었소."
"내가 멀쩡한 쇠가죽 신을 가지고 있는데어째서 개집짜투리로 발싸개를 해서동접(同接)과 친우들에게 창피당할 일을자초한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미련한위인인 줄 알았는가."
"미련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달포를기다리면 상서로운 일이 없지 않다고밑절미도 없는 장담을 하시었소.""내가 달포를 기다려보자 했지 핏덩이를배태했다고 장담하던가. 삼강행실도를 어깨너머로나마 얼추 곁눈질했던 계집이라면,지난번 치성에서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도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장차의 도리가어찌하면 올바른 것인지 근신하며 궁리나먼저라니."
성참판의 일갈도 그럴법한지라 더 이상대꾸하면서 포달을 떨만한 빌미가 없어진월매는 입귀를 삐죽거리고 있던 차에 그만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팔자 기박하게 된 가신의 처지도 한스러웠지만 성참판의 꾸지람과 면박이서릿발같이 차가운지라 설분을 못해 터진울음이었다. 넉장거리를 하며 슬피 울고있는 월매를 바라보고 있던 성참판은 혼자빈정거렸다.
"피칠갑이 된 개집 한 개 내지르고저렇게 넉장거리로 곡지통을 내 쏟는계집이라면 정말 사람의 형용을 갖춘핏덩이를 내지르고 나면 까무러치겠네."그렇게 내 쏟은 월매의 곡지통은 그날 밤이죽거리고 있던 성참판이 돼지 멱따는소리 진작 그치지 않으면 작파하고본댁으로 돌아가 버리겠다고 공갈에으름장을 여러 번 놓았기 때문이기도하겠지만 월매 자신도 이젠 근력에 부친나머지 더 이상 껄떡껄떡 돌고 있을 수만은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럽고 원망스런 중에서도 밥상을 차려저녁 대접을 하니 그 또한 측은하게 여긴성참판의 성깔이 다소 수그러져 월매를달래는 것이었다."임자도 한 숟갈 떠보게, 그려.""난 목이 칼칼하여 곡기가 입에 넘어가들않소.""그런 임자 두고 난 돼지새끼처럼혼자서만 꾸역꾸역 뱃구레를 채우란"계집 나이 사십 되도록 슬하에 살붙이하나 두지 못한 이 기박한 계집이 입에곡기는 붙여서 무슨 여망이 있다 하고수저질을 하겠소."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있다 하였네. 사십 넘은 임자에게 아직경도가 있다 함은 장차 배태할 가망이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 우선 곡기를끊지 말고 신색을 보전하시게.""품어줄 닭이 없는데 달걀이 있어 무슨소용이오.""날 두고 닭에 비견한 것이라면 내 또한엄연하거늘 그런 섭한 말은 함부로 말게.""정말 그렇소?""그렇다마다."월매가 마주앉아 수저질을 하는 시늉이자한마디 퉁겼다.
"옛말에 열 번을 찍어서 안 도는 도끼가없다 하였네. 임자가 지리산을 한 번 더다녀오는 것은 어떨까.""길 멀어 난 못 가오.""가고 싶으면 이녁이나 가시오.""거 섭섭하게 되었네. 이번에 임자가다시 한 번 치성을 드리러 가겠다면 어렵긴하지만 나 또한 동행할 엄두를 가졌거늘임자가 굳이 싫다면 딴 도리가 있겠는가."그 말이 월매에겐 적지 아니 솔깃하더라.정말 지난번 치성에 상서롭지 못한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혹은 무슨동티라도 있어 배태하지 못했던 것은아닐까.
또한 그 모든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드림에 동행하자는 것인데 그 또한 메몰차게 내친다면 정녕 산신령의 노여움을받아 배태는 고사하고 동티를 입을 가망도없지는 않을 터였다. 곰곰이 생각하니 또한설패를 볼 성부르더라도 다시 한 번 치성을드리는 것이 계집의 도리라는 생각이가슴을 치는 것이더라."내가 가면 필경 이녁도 따라 가시겠소?"월매가 솔깃해 하는 기색이 완연한지라성참판은 밥을 먹다 말고,"가다말다. 임자와 동행이라면 저승문턱인들 내 결코 사양 않겠네.""저승 문턱이라니오. 그런 상서롭지 못한말씀은 왜 하시오.""일테면 임자를 아끼는 내 심정이그렇다는 얘길세.""내가 말미를 내자면 내일 해질녘이좋겠네.""당장 떠나자 더니 그 무슨 해괴한말씀이오.""임자와 내가 동행하여 발행하게 된다면삼이웃의 주둥이 해픈 계집들이 내가 계집끼고 산천경개 구경 간다는 소문이남원부중에 짜하니 퍼질 것 아닌가.치성이란 발행임시부터 호젓하고은근하여서 잡귀가 끼여들 빌미를 주지말아야 되는 법이니 내 말 고깝게 듣지말고 그대로 시행함이 어떤가?"
내일 해질녘에 남원부중 하직해서지리산으로 발행하자면 월매 역시 꼬박하루 말미밖엔 남지 않았다. 제기(祭器)정갈하게 손질하는 일변 썩고 비뚤어지지떡을 쪄서 이튿날 서둘러 떠나려 하니날씨는 어두웠으나 간혹은 치성 드리러가는 월매의 거동을 알아챈 마을의여편네들이 까닭없이 입을 비쭉거리기도하였으나 월매는 곁눈질 한 번 않고 못 본척을 하였다.
서문 밖에서 성참판 만나니 당나귀 두필을 대령시킨지라 나귀 두 마리에 서로나눠 타고 지리산 반야봉으로 오르니 월매성참판 길벗해서 산천 유람은 평생 살다처음이었겠다. 때로 비 내리고 안개 스쳐길을 잃는다 하여도 마음이 다급하지않더라.
산정에 올라 재수 정갈하게 차리고 또한목욕재계하고 치성을 드리니 그 동안성참판은 손수 도끼질하고 낫질하여 두성참판 평생에 도끼질과 낫질은 난생처음이어서 더러 생채기 나고 팔뚝이찢겨져도 별반 개의치 않았다.사흘 치성들이고 난 뒤 발막으로 들어온월매의 손을 잡고 성참판이 일렀다."임자 경도 끝난 지 며칠째 인가.""이제 보름이 되었소.""그렇다면 자네 자궁이 피붙이를 앉힐 때가 되었네.""이 누추한 발막 속에서 희학질을벌이자는 것입니까.""이곳은 발막이기 이전에 지리산 산정이 아닌가.""그렇긴 하오만 어째 쑥스럽소.""임자와 나 사이에 쑥스러울 게 무언가.설혹 거처가 비좁고 누추할지언정 우리가살붙이를 두려는 우리 부부의 애끓는소원을 결코 외면하지 않아 살붙이 하나를점지할 것 아닌가.""산신령이 감히 지리산 산정에서 일을벌이는 우리보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할지언정 그런 대덕(大德)을내리겠습니까.""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거동이다소 비루하고 데데하다 할지라도 그 뜻이상서럽다면 산신령이 결코 진노하지 않을것이고, 또한 요행히 이로써 배태한다면 그아이는 필경 지리산의 정기를 한 몸에타고날 것일세.아이는 건강하고 영리하여 학문은청나라의 육룡기(陸龍其)에 버금갈 것이고,문장은 왕사징(王士徵)에 방불할 것이며,있을 것이네.""필경 그러하리까?""의심 두지 말게."드디어 두 사람이 옷을 활활 벗어 던지고홀딱 벗은 알몸으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질탕한 구들막 농사를 벌이는 것이었다.성참판은 어금니를 사려물었다. 오십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월매의 옥문에정기를 쏟아 넣으려 함이었다.두 사람의 몸이 뜨거워지고 코에서단내가 훅훅 풍길 제 성참판의 등때기에월매의 손톱자국이 낭자하였다. 그 순간성참판의 눈앞에 아찔한 서광이 비치었다.실제로 그 서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없었으나 눈앞에 번개같기도 하고 무지개같기도 한 서광이 번쩍하여 성참판은그리고 온 삭신의 기를 한데 모아 월매의옥문에 기력을 쏟아 부으니 온 삭신이순간적으로 통나무처럼 뻣뻣해지면서하체로부터는 큰 강물이 쏟아져 내리는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성참판은 허공을 향하여 포효하였으니그것은 마치 여산대호(如山大虎)가아가리를 벌리고 부르짖는 것과 방불하여지리산 칠백리 산자락이 한번 들썩하며떠올랐다가 다시 내려앉는 역발산의 기백을능가하였어라. 월매 또한 눈앞에 서광이비치었으니 그로써 배태된 것을 느낄 수있었다.그러나 사대육신이 뻣뻣해졌던 성참판은놀랍게도 눈자위를 허옇게 치뜨고 옆으로나둥그러졌으니 그는 다시 살아나지대고 기를 불어넣었으나 성참판은 두 번다시 살아나지 못하였다. 놀란 월매 발막밖으로 뛰어나가 소리질렀지만 그 산정에두 사람밖에는 인적이 없었으니 어느 한사람 죽은 시신을 되살리는 데 거들어 줄리또한 없었다.포달을 떨고 울부짖는다 한들 소용없는짓이었다. 월매 다시 발막으로 돌아와서둘러 시신을 거두고 발막이 그대로초분(草墳) 되게 두었으니 지리산 우렁찬바람에 살점이 삭고 그 뼈는 흙이 되어또한 지리산 정기로 살아남게 하였다. 일변서럽고 일변 기쁜 마음으로, 올라갈 때 두사람이었던 것이 한 사람 되어 하산하니 그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더라.그러나 그 달포가 지난 뒤 경도는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근신하고 몇달을 기다렸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온 방안에 이상한 향기 그득 차고 안개자욱하더니 엉덩짝이 스물스물 아파왔다.사십 평생에 첫 출산이었으니 순산일까난산일까 쌓인 걱정이 태산에 방불함이였었는데, 일순 엉덩짝이 찡한가 하였더니일 같잖은 순간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한 옥녀(玉女)를 순산하였다.옥문에서 삐죽삐죽 기어 나오는 태아의사추리를 슬쩍 만져보았더니 방아고와 같은고기방망이가 손바닥에 걸렸다. 어마지두든든하여 좋아라 하고 가랑이 아래를 다시한 번 내려다보았더니 태아의 양도(陽道)를잡았던 게 아니라 경황중인 얼떨결에여아의 한 쪽 다리 잡은 것을 남아의사내아이 낳지 못해 섭섭하기 형언키어려웠으나 기박한 자궁에 계집아인들배태하여 생산하였으니 그 기쁨 어디다비견할꼬. 성참판 살아 생전 지어놓았던춘향(春香)이란 이름 붙여주고 손바닥에올려놓은 수정처럼 길러내니 그 미모와총기가 남달리 빛나더라.어머니 월매에 대한 효행은 남원부중이발칵 뒤집히도록 소문이 짜하였다.그 인자함은 산 풀을 밟지 아니하고생물을 먹지 아니한다는 어린 짐승 기린에비견할 만하였다. 어미 월매가 서책을구걸하여 갖다주면, 도장방에 들어앉아곡기를 잊은 채 읽고 쓰기를 한푼 어치도게을리 한적이 없거늘 오히려 월매가걱정되더라.예절을 지키게 되었으니 퇴물 기생의딸이라 하지만 그 인물의 출중함은대갓집에서 내질린 내노라는 규수가 감히뒤따르지 못하더라. 삼강행실 하면남원부중 성춘향이요, 성춘향 하면 바로그게 삼강행실도였으니 그 어미 월매는오히려 계집아이 낳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여겼다.그렇게 자란 춘향이가 어느덧 나이를먹어 이팔이 되었을 때였다.이때 서울 삼청동(三淸洞)에이한림(李翰林)으로 일컫는 한 양반이있었더라. 누대에 걸친 명가요, 충신의후예라 하루는 전하께서 충효록(忠孝碌)을뒤적이다가 이한림이 백두(白頭)로소일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당장제수하였다.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금산군수(錦山郡守)로 이배(移拜)하여 곧장남원부사(南原府使)에 제수하였다.이한림이 사은 숙배 하직하고 곧장치행하여 남원부에 도임하였다. 도임부사선치민정(善治民政)에 방곡의 백성들은이한림이 더디게 왔음을 한탄하였다.그런데 그 이한림에게는 한 가지두통거리가 없지 않았더라. 그것은 바로외아들 이몽룡(李夢龍)이 때문이었다.이도령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이 총각녀석의허우대틀 볼짝시면 키꼴이 껑충하고 면상도시원시원하여 외양이 썩 의젓하고걸출하였다.눈, 코, 입이 오종종하게 박혀서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준수한용모였다.키꼴이 그런 만치 옷걸이도 출중하여도포를 대충대충 바느질하여 입혀놓아도하늘의 학이 땅에 내려와 걷는 것 같은황홀경을 연출하기에 결코 손색이없었더라. 그 허우대 준수한 만치 언변또한 출중하여서 아는 것은 없어도언변에는 감히 따를 만한 작자가 없었다.아버지 이한림을 따라 경기지경 과천과충청도땅 금산, 그리고 전라도땅 남원까지발섭하게 되었으니 경상도를 제외한다면모르는 사투리가 없고 곳곳의 산천경개의아름다움을 꿰는 출중한 솜씨가 모두 그혓바닥에 있더라.초립동이 시절을 제외하고는 곳곳의떨군 지 오래되어 총기 있던 두뇌가 근자에이르러 돌대가리가 되니 옷치레, 입치레에놀기 좋다 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일어나고 밥을 먹다가도 지체없이 수저를딱 던지고 일어섰다.그래서 곳곳에서 모시었던 서당의 훈장들얼굴만 대충 기억하고 있다 뿐 그들훈장들이 가르쳐준 논어,맹자는 잊어버리고까먹은 지 오래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떤사람 어떤 못난일 망정 사람은 저마다 한가지씩의 재간과 술수만은 갖고 태어나는법이고 그것으로 겨우 살아 있음에 대한체면을 유지하게 되는 법이다.이도령에게도 그러한 재간 한 가지는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여자를잡아먹는 기량이었다. 잡아먹는다는 표현이그것이 꽤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하더라. 먼저 규수들이 그의 꼬임수에 일같잖게 걸려들 수 있는 좋은 조건 세가지를 그는 갖고 있었겠다.첫째는 그의 가문이 전하의 총애를 한몸으로 받고 있는 명가의 후손이란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의 허우대가걸출하고 준수하여 꽃다운 규수들이 한눈에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소년의나이부터 바람피고 다니기를 일삼았으니행방술(行房術)까지 능수능란하여 걸려든규수라 하면 하나에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색정에 기걸들게 만들어 이도령을 잊어버릴방도가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눈동자까지 서글서글하여 그가마음속으로 일단 점지하고 곧은 시선으로자지러져 고쟁이에다 질질 오줌을 싸고말았다. 그런 한량이 없었고 그런 팔난봉이있을 수 없었더라.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것은 그런 팔난봉이었는데도 그 소문이경향 각지로 퍼져나간 일이 없었다는일이었다.물론 그것은 아버지 이한림의 닦달때문이었다. 자식이 천하에 짝이 없는바람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그 순간부터이한림은 수하에서 부리고 있는 아랫것들과혹은 문중 사람들로 하여금 주둥이를해프게 놀리지 않도록 잡도리하기를게을리한 적이 없었다.자식의 모양새가 그러하다는 소문이 혹여궁궐에 입문이 라도 된다면 음직(蔭職)으로얻은 벼슬은 당장 날아가 버릴 것은 뻔한가문의 표적에도 똥칠되기 십상이란 것을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더라.이 소생이 또한 어떤 일을 저질러 문중을발칵 뒤집어놓을지 안심할 수 없었던 이한림은 다른 가속들은 삼청동 집에다 두고부임지를 떠돌 망정 아들 이몽룡만은 가는곳마다 데리고 다녀야 안심할 수 있었겠다.일테면 이한림으로선 소생의 방만한버르장머리를 바로잡아 주겠다는철두철미한 생각으로 부임지마다 데리고다니는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소생인이도령으로 봐선 오히려 그것이 빌미 되어닿는 고을마다 박힌 처녀들의 고쟁이벗기기를 삼간 적이 없었으니 그 폐단은옴처럼 번져 창궐할 조짐이었다.이도령이 남원 와서 책방 도령으로발장고만 치고 있다가 나들이 나갈 생각을갖게 된 것은 처녀들의 심기가싱숭생숭하여 바람둥이 총각이 놀기 좋은춘삼월 경이었다. 하루는 일기 화창하여엉덩이가 저절로 들썩거리는 것을 참지못하고 누마루 아래 대령해 있던 방자를불렀다."얘, 방자야.""예.""이 고을 광한루의 경개가 빼어나단얘기를 수차 들었다.""쇤네는 수차 가보기도 하였습죠.""그렇다면 나도 가볼 것인즉 너 곱게나가 나귀에 몰래 안장 지워라."방자 그 말 듣고 눈깔을 화등잔만하게뜨고 손사래를 쳤다."말잔등에 안장 지우랬지 저고리에 안대라 하였더냐.""그것이 아니오라, 지엄하신 사또의 분부없이 출입을 시킬 수 없사옵니다..""그러니까 몰래 안장 지우랬지 알게지우라 했느냐. 이놈이 시방 뉘게 대고핑계하는 소리가 낭자하냐.""나중 견책을 어찌 감당하려고이러합니까.""지난 겨울 동안 칩거하여 찍소리 없이견책(見冊)하였더니 더이상 견책할 책이없다. 잔소리 말고 앞장서거라.""쇤네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 견책이아니라 나으리께 꾸중을 들으신다는말씀입니다요.""이놈이 시방 뉘 앞에서 문자 씀이불용문자(不用文字)하는 줄 아느냐. 섣불리냅뜨지 말고 분부 시행하렷다."방자놈이 똥 본 개처럼 쭈르르 달려나가나귀에 안장 지우고 나서 돌아와 아뢰었다."나귀 등대하였습니다."이도령이 누마루 위로, 썩 나서는데 그준수한 풍골 한번 보소.옥안 선풍 고운 얼굴 인두관 갈은채머리를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우고비단 댕기 석황(石黃)물려 맵씨 있게 잡아땋았다. 성천(成川)이 물항라 접동배세백저(細白苧) 상침바지, 극세모(極木)겹버선에 남갑사(藍甲紗)대님 치고,겹배자에 밀화 단추 달아 입었겠다.통행전 무릎 아래로 언짓매고 긴 동정중치막에 도포 받쳐 검은 띠 흉중에"나귀 불 들어라."등자(橙子)딛고 선뜻 올라 삼문 밖을나설 적에, 호당선(胡唐扇)으로 햇살가리고 산호 채찍 휘두르매 관아 앞 넓은길을 생기있게 나가는 것이었다."이랴."나귀 바삐 몰아 광한루에 당도하여하마석(下馬石)에 선뜻 내려 누각에올랐것다. 광한루 주변에 늦은 아침 안개끼었고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고즈넉이불어오는 바람이 입술에 간지러웠다."얘, 방자야.""예.""부담(負擔) 풀어서 주안상 올려라.""벌써 등대하였습니다.""우리 오늘 서로 눈치보지 말고차리면 빡빡해서 못쓴다. 담배도 마음대로먹거니와 나이 차례대로 술을 먹자. 이좌중에 누가 좌상이냐.""이 자리에 도령님과 쇤네뿐이니 어찌 또다른 좌상이 있을 수 있겠소.""그렇다면 네가 존장뻘이로구나. 넌상좌에 앉고 내가 연소자이니 말석에앉으리라.""황송하오이다."이도령과 방자는 나란히 앉아 겨끔내기로파탈하고 잡수시더라.그러다가 이도령은 취흥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더니 두루 거닐며 주변을구경하였다. 이도령이 경개에 탄복하여가로되,"악양루(岳陽樓) 봉황대의 풍광과이에서 더할까."방자놈이 입맛을 맞추느라 거짓둘러대기를,"경개가 이러할 제 일기 청명한 날이면운무가 잦아지고 종종 선녀가 내려와 놀곤한답니다."이때 마침 본읍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그네를 타기 위해 광한루 어름에 와있었다. 삼단 같은 검은 머리 반달 같은와룡소(臥龍梳)로 솰솰 흘려 빗어인두자루같이 길게 땋아 자줏빛 항라 댕기맵시 있게 드렸다.흰 모시 깨끼적삼 아래로 솜털보송보송한 겨드랑이 살짝살짝 보이게떨쳐입고, 물명주 고쟁이에광월사(光月紗)로 곁바지에 난봉 항라날 출 자로 제법 멋지게 신고 손에는옥반지, 귀에는 은귀걸이요 앞에는노리개를 드리웠다.몸단장 곱게 하고 그네를 타는데,기엄둥실 올라가더 꽃도 주루룩 훑어다가맑고 맑은 구곡수(九曲水)에 풍덩 띄워도보고 두 손으로 조약돌도 덥석 쥐어다가나뭇가지에 던져 꾀꼬리도 날려보내었다.섬섬옥수로 그네줄을 갈라 쥐고 한 번구르면 앞줄이 높고 두 번 구르면 뒷줄이높아 멀리서 보면 마치 낙화와 같았고방자의 거짓말처럼 선녀가 내려온 듯황홀한 것이었다.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던이도령이 놀라서 물었다."저 건너 저것이 무엇인고?""어데 무엇이 보입니까?"선녀가 내려온 것 아니냐.""무산십이봉(巫山十二蜂)이 아니거늘어찌 선녀가 있겠습니까.""그러면 숙향(淑香)이냐?""이화정(梨花亭)이 아닌데 어찌 숙낭자가있으리까.""그렇다면 서시(西施)가 분명타.""오(吳)나라의 궁중이 여기서 몇만리관데 서시가 있을 수 있겠소.""그렇다면 옥진(玉眞)이다.""장생전(長生殿)이 여기서 먼데 어찌,양귀비를 들먹이십니까.""그럼 해당화냐?""무릉도원이 아니거늘 그 또한아닙니다.""그럼 네 할미냐?""그럼 네 누이냐?""쇤네 누이 채독 걸려 죽은 지 오 년 전일이오.""그럼 저게 귀신이냐 혼백이냐.""이곳이 북망산천 아니거늘 어찌 뜬귀들이 설쳐대고 있으리오.""그렇다면 광한루라는 곳이 필시 도깨비소굴이로구나."방자놈이 실컷 딴청을 피다가 짐짓정색하고 나서,"아니, 저기 그네 뛰는 처녀 말씀입니까.마침 녹음방초 우거진 계절이라 어느여염집 규수가 싱숭생숭하여 그네 타려고나왔나봅니다.""여염집 규수라 했겠다? 저 처녀를 먼빛으로만 보아도 높은 하늘에 떠 있는제비와 방불하다. 여염의 처녀라면 저토록찢어지게 절색일 수 없는 법인데 필경네놈이 나를 농하여 조롱함이라."이도령이 정색하고 눈자위를 부릅뜨고바라보매, 방자놈은 그제사 찔끔하여 바른대로 아뢴다."진정 아시려 하신다면 바른 대로직토하리다. 저 계집아이는 본읍 기생윌매의 소생으로 춘향(春香)이라 하는데이제 나이 이팔입니다."이도령 그 말 듣고 허둥지둥 허튼 말로,"방자야, 너 나와 의형제 하자.""의형제 사양할 마음 조금도 없으나 누가아우 되고 어느 놈이 형님 된다는것입니까?""나이로 따지자면 내가 손아래이고 네가내 지체로 말하면 한양 장안도떠르르한다는 한골 양반의 자제이고, 너로말하면 미천하여 작사청 아전놈들의대궁상이나 받아먹는 불상놈이겠으니 네가내 아우 됨도 분수에 넘쳐 과분하겠으니애당초 불퉁가지 낼 요량은 말아라. 얘,아우야.""그런 아우 난 싫소.""싫다니, 이놈이 엇따 대고 언감생심싫다는 언사가 대중없음이냐.""한골 나간다는 사대부집 자제분께서천하에 짝이 없는 상것과 의형제를하였다는 소문이 남원부중에 퍼지고 보면그 창피와 수모를 어찌 감당하시려고대중없는 언사가 낭자하십니까.""못 하겠다는 것이냐."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얘기십니다. 내비록 상것의 씨종으로 구차하게 내질려서구실아치 놈들의 떡찌끼로 허기진 뱃구레를채우고, 길 가다가 지체 있는 내행이라도만나게 되면, 땅에 콧등을 쓰리고 엎드려콧둥에 흙 묻지 않는 날이 없고 아침에홍살문 안으로 들면, 마방(馬房) 으로쭈르르 달려가서 설사한 말똥이며 수채나치우면서 하루해를 보내는 하찮은 천예로되산전수전 다 겪어서 인생의 짠맛 쓴맛 겪지않았음이 없었고, 달팽이집이라지만 집에가면 지엄한 지아비로 대접받기 미흡한적이 식산(殖産)에만 누깔이 시뻘건벼슬아치놈들과 결탁한 적이 없어 시렁에놓인 그릇이라야 바가지 너더댓 개밖에없지만 분수 이외 것을 바라 탐욕한 적이남원부중에서 마방을 지키며 이십여 년을견마잡이로 거행하였지만, 아직 한번도모시던 상전 낙마시켜 발목쟁이 부러뜨리게거행에 소홀한 적도 없으니 지끔까지 삼접연합의 나이를 먹었으되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으니 어찌 제 나이를대수롭지 않게 여겨 이토록 욕보이신단많입니까.""아니, 네 놈의 말인즉슨 의형제를하자면 필경 내 손위가 되겠다는 것이아니냐. 치도곤을 당하고 싶으냐?""형님을 무작스레 다스리는 아우도있답디까?""그럼 좋다. 무리 두 사람 소슬하게 있을때만 네 형님하고 나 아우 하자.""좋을 대로 하시오."봐야겠으니 지체없이 데려오소.""아우님의 간절한 심사를 짐작 못 하는것은 아니로되 분부 거행하기가 극난한사정이 없지 아니하오. 저기 있는 춘향의어미되는 월매라 하는 계집은 가근방에이름자가 짜했던 명기였소.그 이름이 경향간에 유명 짜해서 본읍에부임하신 사또님들께 수청도 많이 들고뽑내는 아전에게 육공양하고 돈 있는부자서방 풍류 잡는 한량들께 살꽃 바치고명산대첩 큰스님들께 살보시도 하였지만일점혈육 없었기로 사십이 넘은 후늙바탕에 얻은 기둥서방, 작배(作配)터니지리산에서 치성 드려 딸아해를 낳았다오.애지중지 기를 적에 아해 생긴 것이절색이요, 총기 또한 남달라 남원부중이잔소리요, 침선(針線)과 음식에도 막히는것이없다오. 어디 그뿐입니까, 열녀전내칙편(內則篇)을 밤낮으로 공부하여일거수일투족 하는 행실이 사대부집 규수뺨치고 나가기로 대비(代碑)넣어속신(贖身)하고 외인상통(外人相通)한 적없이 도도하기 짝없으니 도령이 부르신다해서 똥 본 개처럼 쭈르르 달려와 대령할규수가 아닙니다.""그런데 형님은 춘향의 뱃속에서빠졌나?""내 어미 허벅다리에서 빠졌소이다.""춘향이 뱃속에서 빠지지 않고서야 그 집내력을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꿸 수있겠느냐."사람 남원부중에 많소.""어쨌든 자색이 그러하고 행실이그러하다니 희한할 일이다. 그럴수록심란하니 형님은 살같이 달려가서 규수를불러오라.""아우님의 소원이라면 내 어찌 형님치레마다할 수 있겠소."방자 끝내 마다할 수 없어 춘향 부르러건너갈 제, 버들가지 질끈 꺾어 헛채질도하여 보고 조약돌 냉큼 쥐어 새도 쫓곤하며 느릿느릿 걸어가니 멀리서 다급한마음으로 바라보며 조바심하고 있는이도령의 속을 태우는 것이었다.방자가 화림(花林) 중에 당도하니 때마침춘향이는 오래 그네 뛴 뒤 풀밭에 내려앉아두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구슬 같은 땀을향단(香丹)이가 유리병에 귤병차(橘餠茶)부어들고,"목마른데 잡수시오."하는데 난데없는 방자놈이 썩 들어서면서뇌까리는 언사가 고이하다."얘, 춘향아. 너 본 지 오래로구나.노모시하(老母恃下)잘 있었더냐."넌짓 놀라 돌아보니 안면 있는방자였지만 조금도 반가운 기색없이시큰둥하게,"너, 어찌 왔느냐 ?"그런데 방자놈이 뜸도 들이지 않고다짜고짜 들이댄다는 말이,"사또 자제 도련님이 구경 왔다가추천하는 네 요염한 거동을 바라보고싱숭생숭햐여 널 냉큼 불러오라는 분부시니향단이가 입귀를 비쭉하는데, 춘향은심기 불편한 것을 크게 내색 않고 방자를꾸짖어 가로되,"서울에 계시던 도령님이 여염집 규수의이름을 어찌 알며 설령 알고 부른들 네가나를 무얼로 알고 당돌하게 쭈르르달려와서 대중없는 조방질이냐. 도령을수행하는 배행꾼 노릇이나 여축없이 거행할노릇이지 이 무슨 상없는 짓이더냐."듣자 하니 옳은 말인지라 자칫하면 크게창피볼 일이었다. 방자 어이없어우두망찰로 서 있다가 얼른 꾸며댄다는말이,"도령님은 사대부요 너는 일개천기(賤妓)의 소생인 터에 네 아무리매몰차게 내친다 한들 아니 가고 버틸 것춘향이가 그제사 발끈하여 가파른시선으로 방자를 쏘아보며,"명분도 중요하지만 예법 또한 위중한일이다. 네가 나를 두고 천기의 소생인것을 험담하고 있다만 난 이미 대비 넣어속량(贖良)받은 지 오래일 뿐더러, 그 동안기안탁명(妓案託名)한 일도 없으니 너의언사 괘씸하여 손발이 떨릴 지경이다.내 명색 여염의 처녀로 백주 대로에서여러 눈총이 바라보는 앞인데 무슨 면목을쳐들고 너와 함께 가자느냐."춘향의 꾸짖는 말에 주눅들어 언사에대중없던 방자가 그 말 채 땅에 떨어지기전에 되받아 치는 것이었다."네가 여염의 규수로 자처한다면 나도 할말 없지 않다. 자고로 계집 아해 행실로줄을 매고 이웃이 알까 모를까 암암리에매고 뛰는 것이 당연 예의요 범절이아니냐.광한루가 코앞에 있는 이런 되바라진곳에서 늘어 진 버들가지는 광풍에 겨워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외씨 같은 두발길로 백운간(白雲間)을 노닐 적에 붉은옷자락 바람에 요염하게 나부끼고,백방사(白紡絲) 속것 가랑이가 학의나래처럼 동남풍에 벌렁 자빠지니 박속같이흰 네 허벅지살이 허공중에희끗희끗하였다.이는, 네가 그네를 핑계삼아 광한루구경처에 나와 있는 사내들의 시선을어지럽히려는 속셈이 없지 않았던 것이아니냐. 그런데도 네가 문득 명분을 들추고자고로 기생이었던 내 어미의 교태를 익혀오늘 한번 시험삼자는 잔속이 아니더냐.""네가 내 말의 꼬투리를 잡아 나를회롱함이다. 그러나 얼른 듣기에는 네 말은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라 비단나뿐이겠느냐. 다른 집 처자들도 모두 울밖으로 쏟아져 나와 그네를 즐기고 있는것을 너 또한 빤히 보고 있지 않느냐.그럴 뿐만 아니라 설혹 네 말이그럴싸할지라도 규중 처녀인 내가 낯모르는 사내가 부른다 해서 체통없이쪼르르 달려가서 똥칠을 자초할 성부르냐."방자가 별다른 궁리가 없는지라 광한루로돌아와 이도령께 여차 여차하여 데려오지못하였다고 여쭈었다. 이도령이 그 말 듣고크게 섭섭한 안색 짓지 아니하고,하고 방자에게 귓속말 몇 마디를나누었다. 방자 다시 건너가니, 그 사이에춘향은 향단이 재촉하여 재 집으로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보니, 때마침모녀간 마주앉아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방자놈 얼른알아보고 춘향이 하는 말이,"참으로 끈질기기도 하구나."방자 그 말 되받아,"상것이 끈질기지 않으면 양반놈들만대접하는 세상에서 살아날 가망이있겠더냐.""이번에는 왜 왔느냐.""황송하게 되었다고 도령님이 다시전갈하라시더라, 도령님이 널 기생으로알았음이 아니라 듣자 하니 네가 글을 잘처자를 함부로 불러 괴이하나 양해 하고잠깐 다녀가라 하시더라."솔깃해 하는 눈치였던 춘향이가 한마디로거절치 못하고 주저하는 중에 방자는,"내가 모시는 도령님은 연안 이씨(延安李氏)로 풍채와 문장과 음률에 가위 따를사람이 없더라. 연안 이씨라면삼한(三韓)의 갑족이 아니더냐.장안(長安)에 명공거경(名公巨卿)내외족척(內外族戚)이 벌열하니 가세가또한 서울 장안에서도 떠르르하지 않더냐.또 한 미구에 도령님 장원급제하여성천부사, 의주부윤, 전라감사, 평안감사차례대로 밟아간다면, 그 팔자가 모두춘향이 네 팔자이지, 지금 여기 와서팔촌에 벌초(伐草) 빌듯 구차히 빌고 있는오늘날 이 기회란 두 번 다시 오기어렵겠는데, 네 아니 간다 버티면서 쪼만빼고 있으니 그 데데한 잔속은 알다가도모르겠다. 연소하신 도령님이 한 번 부르고두 번 불러도 시종 거역한다면, 필경화증이 돋아 너의 노모를 홍살문 안으로잡아들여 없는 죄 덮어씌워 무수히 물볼기쳐서 어육으로 만든다면, 무남독녀의 네애끓는 심사는 오죽 쓰리고 아프겠나.쓰리고 아픈들 어디 가서 하소연하며넋두리할 것인가.네가 여염의 처자로 거조가 도도한 것은좋겠으나 그로 하여 네 어미가 보지 않아도될 봉욕을 당한다면, 효성 지극한 너로썬차마 못 할 노릇이 아닌가."춘향이 처음에는 께름칙한 증에서도일을 그의 노모에 연좌시켜 은근히공갈하여 협박하고 드는 것에 심지가돌변하고 말았겠다. 여염의 처자가 생면부지한 사대부의 자제를 내친다 해서 그어미를 연루시켜 홍살문 안에 잡아들여물볼기로 다스리기로 한다면, 도대체사대부의 대의와 체통은 어디에 있는것인가.그 말이 설령 방자놈 혼자 꾸며 댄얘기라 할지라도 가슴속 부글부글 끓어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더라. 이런 못된언사를 일개 배행꾼 따위가 공공연하게농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춘향에게는배알이 뒤틀리는 것이겠다."대중없이 지절거려 남의 심사 건드리지말고 냉큼 돌아가거라.꼼짝않을 것이니 그리 알고 오던 길 다시가거라."그러나 방자놈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내 너를 위하여 하는 말을 암만해도듣지 아니하니 가기는 간다마는 정녕 다시올 것이니 염려는 놓지 마라. 알고 보면좋은 흥정 놓쳤네."방자놈의 그 말 듣고 나니 홀연히일어나서 방자 안동하는 대로 다시금광한루로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모친의뜻을 몰라 또한 주저하고 있는데, 먹다 만밥상머리에 앉아 춘향과 방자놈이 겨끔내기로 주고받는 언사를 듣고 있던춘향어미 월매가 말하였다."이제 보니 꿈이라는 것이 전혀 허사는아닌가 보다.""백주에 꾼 꿈이 아니라 지난밤 야삼경에있었던 꿈이었다. 밤에 꿈을 꾸니 난데없는청룡 한 마리가 벽도지(碧桃池)에 잠겨있어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구나.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령님 성명이몽룡(夢龍)이라 하니 꿈몽자 용용 자를신통하게 맞춘 게 아니냐. 그러나저러나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간다고 내칠수만은 없지 않느냐. 내 홍살문 안으로질질 끌려가서 물불기 많는 일이야곤장사령과 알음이 있어 크게 두려울 것이없다만, 나 아닌 너를 잡아들여 악형을내럴까 그게 두렵다."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하고 겨우일어나 방자 안동 받아서 광한루로 향할마당에 씨암탉 걸음이요, 백사장 위로기어가는 금자라 걸음이어서 느린 듯보이지만 재빠르기 그지없다.그때 기다리기 진력난 이도령이 광한루누마루 난간에 기대서서 바라보노라니먼데서 걸어오는 춘향의 자용이 그대로월태화용(月態花容)이었다. 모색은단정하고 우아하여 마치 푸른 강가에서노니는 한 마리 학을 방불하앴고 가뿐 숨몰아쉬느라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반짝이는 치열이 별과 같기도 하고 옥과같기도 하였다.붉은 안개처럼 고운 치마는 그 모두가연지(燕脂)를 품은 듯하였다.조선 팔도 삼백육십 고을을 메주 밟듯발섭하여 서캐 잡듯 뒤진다 하여도 춘향않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몽룡 지금까지노닐어 농락하였던 몇몇 고을의 계집아해들면상이 뇌리에 떠올랐으나 남원부중 코머리기생 월매 딸 춘향만한 자태가 있을 수없었다.그랬으니 알천은 남원에 두고 경기도로충청도로 아비 뒤따라다니며 못된계집아해들과 소꼽이나 놀게 된 꼴이 되어스스로 개탄스럽고 부끄러운 것이었다.드디어 연보(漣步)를 정하게 옮겨 누마루위로 올라 춘향이 부끄러이 서 있거늘이도령이 가다듬었으나 떨리는 목소리로땀을 찔찔 홀리고 있는 방자에게 일러가로되,"앉으라 일러라."춘향의 앉는 자세를 보가 하니 비 온보고 놀란 듯 눈자위 동그랗게 뜨고 있는자용이 비길 데 없는 국색(國色)이었다.과연 월궁(月宮)에 살던 선녀들이 벗하나를 잃었구나 할 만하였다.이때 춘향 역시 추파를 살짝 들어이도령을 살펴보았다. 과연 방자놈지절거린 대로 준수한 호걸이요 늠름한기상이 남원부중에선 찾기 어렵던 준수한총각이었다. 춘향이 얼른 이마를 숙이고단정히 앉아 있음에 이도령 하는 말이,"성현이라 하여도불취동성(不娶同姓)이라 하였다. 네 성은무엇이며 나이는 몇이뇨?""성은 성가(成哥)이옵고 나이는 십육세입니다."그 말 떨어지기 바쁘게,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 아니더냐. 너의부모는 구존하시냐?""편모슬하이옵니다.""몇 형제나 되느냐?""무남독녀입니다.""네 집은 어디냐?""초면에 여염집 규수의 집을 묻는 것은범절에 어긋남이 아닙니까.""너와 내가 이토록 어렵게 만났거늘 또한구차한 범절을 찾음인가.""범절 찾는 것이 구미에 당치 않으시면물러나겠습니다.""너도 남의 속태우는 데는 이골 난규수로다. 어찌 내 마음을 이토록 몰라주고해살만 놓는 게냐.""아득바득 해집고 드는 도령님의 언사를아닌 것 같아 꺼림칙해서입니다."이도령이 속으로 질끔하였으나, 겉으로내색 않고 선웃음 친 뒤에 짐짓 둘러대는것이었다."그것은 네가 나를 은연중 경계하고있음에 비롯된 것이지 내가 팔난봉으로동네 아해들이나 해코지하고 다닌 이력때문이 아니란 걸 왜 모르나.""둘러대는 폼이 피아말 엉덩이 둘어대듯잘도 둘러대십니다.""말뽄새를 보자 하니 너도 한 사람 부아돋우는 데는 한 수 톡톡히 하겠구나,그러지 말고 주지(住址)를 대어라.""방자 불러 물으소서."이도령 허허 웃고 짚신 벗어 깔고 앉아땀을 들이고 있는 방자에게 일렀다."예.""네 춘향이 집을 일러라.."방자 넌짓 손들어 먼데 가리키며 하는말이,"저기 저 건너 동산숲 자욱하고 밝은연당(蓮塘)자리한 곳 버드나무 전나무측백나무 가득한대, 행자목(杏子木)은음양을 좇아 마주서고 오동나무 대추나무물푸레나무 포도 다래덩굴 담장 밖으로휘휘 넘쳐 감긴 죽림 가운데 서 있는 집이춘향의 집입니다.""춘향의 집엔 어찌해서 나무치래더냐.""나무 많이 심고 가꾼 까닭이 없지않습니다.""무슨 연유인고.""남원부중 무뢰배며 쓰잘데없는 한량들이월매가 일찍이 나루 심어 닥달한까닭입니다.""선견지명이 있는 모친이로다.""월매가 고치는 치지 않았습니다.""선견(選繭)이 아닌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 하였다."그때 춘향이 소슬히 얼어나며 부끄러이여쭙기를,"시속이 인심이 고약하니 여러 눈총 보기전에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이도령이 그 말 듣고 홈칫 놀라서"기특하다. 그럴 듯한 말이로다. 오늘밤틈을 봐서 너의 집에 갈까 하나 그때문전박대하지 마라.""나는 몰라요.""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춘향이가 광한루를 떠나 집에 당도하니기다리고 있던 월매가 호들갑 떨며뛰쳐나와,"애고, 내 딸 다녀오느냐. 도령님이무엇이라 하더냐?"춘향이 샐쭉하여 응석으로 대답키를,"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열없어서 가겠다 하였더니 저녁에우리집으로 오겠다고 하십디다.""그래 무어라 대답하였더냐.""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총명한 아이다. 본디 초면의 사내에겐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두리뭉실한 대답을하는 법이다. 가르쳐준 적도 없거늘 넌어찌 그렇게도 자질이 소명하더냐.""모르겠습니다."방자 재촉하여 책방으로 돌아온 이도령은책상 밀쳐두고 팔베개로 가로누워 글 읽는흉내로 낭랑하게 소리높여 가로되,"보고지고, 보고지고, 잠깐 만나보고지고, 지금 만나 보고지고, 어둑어둑한빈 방안에서 불현듯이 보고지고,천리타향에서 만난 친구같이 얼른 만나보고지고, 칠 년 대한 가뭄에 소낙비같이보고지고, 삼 년 동안 내린 빗속 햇살같이보고지고, 서산에 낙조처럼 뚝 떨어져보고지고, 오매불망 보고지고, 답답히도보고지고, 야속히도 보고지고, 알뜰히도보고지고, 맹랑케도 보고지고, 살뜰히도보고지고, 뜨끔하게 보고지고."보고지고 소리를 한껏 크게 질러놓았더니멀지 않은 동헌에까지 들렸겠다. 괴이쩍게"책방에서 지금 난데없이 한창 볶고지지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오라."통인이 엎어질 듯 달려가넉 도령께묻자오니,"사또께서 무슨 음식을 볶고 지지고계시는지 수탐하여 오라 하시었습니다.볶는 것은 무엇이며 지지는 것은 무슨전병입니까."도령이 덜컥 놀라 별안간 딴전 피워둘러대었겠다."삼문 밖 주막거리 술청에서 하는 짓을내게 다 물으시니 내가 매우 만만하신가보구나.""사또께서 도령님 목소리를 똑똑히들으시고 알아오라 하셨습니다.""딱한 일이로다. 남의 집 늙은이는늙은이는 귀가 너무 밝아 탈이로다."부복하고 있던 통인놈이 냉큼되받아치기를,"그렇게 전해 올립깝쇼."이도령 벌떡 일어나 체수 잔망스런통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이놈아, 그러지 말고 너 죽고 나 죽자.내 속에 천불 나서 내 뱉은 대중없는넋두리를 사또께 그대로 아뢴다면, 너는살고 나만 죽이자는 고얀 심보가 아니냐."소리 질러 목자를 부라리니 통인놈의반죽이 방자놈을 따르지는 못하는지라 당장가위가 질려 금방 오줌을 쌀 듯 쩔쩔매더라."그럼 사또께 돌아가서 쇤네만 죽여달라고 여쭙겠습니다."연민을 금할 수 없어 이도령은 오히려 낮은목소리로"너 꼭 먼저 죽고 싶더냐.""죽으면 저승 가겠으나 살아봐야 이꼴인이승보다야 낫겠지요.""개똥 위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했다. 네가서 사또께 일러바쳐라. 네가 말하기를,내가 미구에 과거 되면, 장원급제 출신하여쌍개(雙蓋) 띠어 보고지고, 내 소원이이렇기로 자연 보고지고를 연이어 옮조리게되었더니라."통인놈 동헌으로 달려간 뒤에 숨어 있던방자가 은근하게 하는 말이,"소리를 낮추시오. 공연히 모르시는 일이발각될까 두렵습니다.""방자야.""사방 해가 얼마나 짓질렸느냐.""아직 아귀도 아니텃소.""이놈의 해가 어제는 누구 부음편지를가지고 달음박질하듯 빨리도 지더니,오늘은 어이 이다지도 완행이란 말이냐.발바닥에 종기가 났나. 넓적다리에가래톳이 났는가. 발목에 삼줄 잡아매고말뚝을 박아버렸나 이다지도꾸물거리는가."그때 동헌 나갔던 퉁인놈이 난데없이다시 나타나 등촉 두 개를 대령하며가로되,"사또님 분부에 이 등촉 두 개가 모두닳도록 밤새 글을 읽으시되 동헌까지낭랑하게 들리도록 하라십니다."도령이 받긴 하였지만 발끈하여 애꿎은"이놈 누가 너더러 이런 것가져오랬느냐.""사또의 지엄한 분부시니 소인인들어찌합니까.""냉큼 물러나라."통인놈 면박주어 물리친 뒤에 등대하고있는 방자에게 물었다."너 냉큼 달려가서 상방에 불 꺼졌는지보고 오너라.""아직 일색도 저물지 않았는데퇴등(退燈)이라니 실성을 하시었소.""네가 날 살리는 셈치고 어떻게 퇴등케할 계책이 없느냐.""파루(罷漏) 치기 전에는 퇴등치않습니다.""파루 치는 놈에게 술잔이나 먹여서 지금"발각이 되는 날에는 도령님이 쇤네대신하여 다리몽댕이를 부러뜨리겠습니까?"이도령이 원망하는 눈길을 동헌 쪽으로보내고 있는데 방자놈이 거들었다."늙으면 잠이 없는 법이오.""너 남의 속 지르지 말고 해가 얼마나갔나 보아라.""서산에 걸쳐서 꿈쩍도 아니 하오.""책이나 가져오너라.""무슨 책을 가져오리까.""닥치는 대로 가져오너라."방자가 한아름 안고 온 책을 되는 대로집어서 읽는데,"강선동(降仙洞) 성춘향은 이몽룡의호구로다. 성춘향의 코는 내 코이고이몽룡의 코는 성춘향의 코로다. 코와 코가한데 대고 이러코저러코 새코 나코.아뿔싸, 정말 새코가 들어왔군.""도령님, 무얼 하십니까.""새코가 왔다지 않았느냐."방자놈 그 말 듣고 혼잣소리로 한마디중얼거렸는데,"중화 무렴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실성하기 잠시 잠깐이군 그랴."하고 목청 돋워 청하기를"도령님 인심 쓰시는 터에 보잘것없오만쇤네의 코도 한몫 넣어 주시오.""네 놈의 코는 상것의 코라 양반 코나가시는 데 범접할 수 없느니라.""콧대 드센 체 대강하십시오. 퇴기월매딸 성춘향에겐 드센 체 못하시면서못난 쇤네에겐 코자랑이 낭자하십니까."퇴등하였느냐.""아직 멀었오.""면박당한 것 설분한답시고 거짓둘러댐이 아니냐.""다급하시거든 손수 나가보십시오.""나중 치도곤당하고 후회 말고 분부거행하거라.""수하에 거느리는 하님들 호형하시는데는 이골 나셨다 하나 아직 퇴등하지 않은것은 적실하오."한동안 글 읽는 척하던 이도령은 또한다시 물었다."동헌에 퇴등하였느냐.""이직 멀었오.""이 글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구나, 하늘천 자(天)가 살 시 자(矢)가 되고,시전(詩傳)이 되고, 심전(十錢)이 되고,서전(書錢)이 딴전이되고, 통감(通鑑)이곶감되니 이런 빌어먹을 조화는 평생에처음이다.논어(論語)가 놀가리가 되고맹자(孟子)가 탱자되어 눈에 뵈는 것이라곤모두가 춘향이 치레뿐이니 너 말대로 내당장 춘향이 집으로 가지 아니하면 필경실성하여 거짓귀신되기 십상이겠다."이도령 넋두리 듣고 있던 방자놈은 그때비로소,"서산에 지는 해가 이제 보금자리를찾느라고 눈을 그물그물하고 있으니 일색이다한 게 적실하오."그 말 듣던 이도령은 불에 엉덩이 덴놈처럼 벌떡 몸을 솟구치며 눈자위 허공에"방자야, 가자.""가자 소리 작작하오. 여기서 소란피시면사또 분부 또한 어떨까 두렵소. 폐문이나한 연후에 사또 취침 기다려 새앙쥐처럼빠져나가오.""새앙쥐라.""딴 궁리가 없지 않습니까.""내 아무리 다급하기로 어찌 새앙쥐에비유함인가.""그럼 여산대호(如山大虎)처럼 동헌솟을대문 박살내고 뛰쳐나가리까."그때 이도령 시무룩하여,"그럴 수야 없지.""딴 궁리 없거든 입이나 닫고 계시오."방자놈이 동헌 가서 퇴등한 것 보고 와서누마루 끝에 나와선 이도령을 손짓하였다.빠져나갈 제, 방자는 앞에 서서양각등(羊角燈)에 불을 켜고 염설문네거리, 홍전문 세거리 이모퉁이 저모퉁이일부러 먼곳을 감돌아 엄벙덤벙 돌아들어춘향집 찾아갈 제 방자놈 별안간에뇌까리는 말이, 공대 아닌 너나들이었겠다."우리 심심한데 농담이나 하며 가세."뒤따르던 이도령이 처음엔 귀를의심하다가 어이없어 가로되,"방자야, 상하 체통이 있지 않느냐. 네가끼니를 놓치고 난 뒤 실성을 하였구나."방자놈 짐짓 정색하고,"우리 두 사람이 야밤중에 소술한데기롱함이 망발인가. 자네 뒤통수에양반이라 적바림해 붙인들 누가 알며, 내등뒤에 상것이라 써 붙인들 어느 뉘화증이 치미는 대로 할라치면 당장방자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뽑아아랫구멍에다 박아 주어도 설분을 못 다할지경이나 때가 때인지라 주리 참듯 눌러참고,"길이나 잃지 말거라.""그리 채근 말게. 속담에 시집가는 데강아지 따르는 게 제격이라 하였지만 자네계집 보러 가는데, 내 무슨 망신살 있어남의 잔치에 깨끼춤인가.""제발 속태우지 마라."때마침 밤하늘에는 월색이 걸려 있고,송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은은한데,남원부하(南原府下) 강선동에 밤자취가고요하다. 춘향모 월매는 안석에 의지하고잠깐 잠이 들었다가 소스라쳐 깨어나"꿈도 이상하다. 아가씨는 주무시느냐?"침선하고 있던 향단이 아뢰되,"아직 글을 읽고 계십니다.""어디 건너가 볼까."월매가 장죽 왼손에 들고삼둥초(三燈草)담으면서 사창을 드르륵열고 마루로 썩 나서니, 천하는 고요한데월색만 소슬하였다.아장아장 뜰에 내려 후원초당으로들어가니, 이때 춘향은 독서중이었다."어머님, 야밤에 어인 일이십니까.""꿈이 이상해서 그런다.""무슨 꿈인데요.""내 방에서 안석에 기대어 잠시 잠이들었지 않았겠나. 비몽사몽간에 너 자는침상 위에 채운(彩雲)이 일어나며 청룡이껴안고 이리 튕굴 저리 튕굴 하다가소스라쳐 잠이 깨니 전신이 땀으로 흠뻑젖었구나."그때 마침 이도령과 방자는 월매집 대문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장가인 이도령도차마 엄두가 나지 않아 머뭇거렸다."얘, 방자야.""예- 이.""좀 작은 소리로 대답하거라.""버릇이 그렇게 되었오.""대문에 빗장이 걸렸구나.""밤중에 걸지 않고 열어둘까요.""어떻게 들어가느냐.""대문 안으로 들어가시오.""동네가 요란하지 않겠느냐.""그러면 월장을 하시구려.""동헌 나설 제는 도적이어서 개구멍으로빠져나왔오.""내 언제 내놈 두고 설분할 때있으리라."딱딱 벼르는 말에 방자는 심술이 나서 온동네가 떠나가라 하고 큰소리로 외쳤겠다."에, 춘향아 문 열어라."와지끈 탕탕 두드리니 이도령 민망하여,"나직이 불러라.""잠귀 질긴 계집들만 사는 집인데 진작깨나요."별안간 호통치는 서슬에 월매가 깜짝놀라긴 하였으나 속으로는 대문 밖에당도해서 분탕질하는 위인이 누구란 걸익히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대문 열고마주 호통치기를,놈이라면 대강 인사치레는 할 만한테,남정네 없는 남의 집에 대중없이 들이닥쳐상없는 발길질이냐, 이 집이 네 집처럼보이느냐, 이 천하에 본데없는 놈 같으니."언사인즉슨 방자더러 꾸짖는 것이었으나시선은 방자 뒤에 선 이도령을 보며 하는말이었으니 방자를 꾸짖는지 이도령을욕보이는 것인지 얼른 갈피잡기 어려웠다.윌매의 걸찍한 욕지거리에 놀란 방자놈이한 발 뒤로 물러서긴 하였으나 남의 잔치에배행하였다가 애꿎은 욕대접을 받고 나니적지 아니 배알이 뒤틀리는 터라,"여보시오 마누라님, 야밤의 길손 냉큼맞아들이지는 못할 망정 다짜고짜 대중없는욕지거리로 행악이니 이것은 어인푸대접이란 말이오. 뉘 아들놈이우리 책방 도령님께서 낮에 광한루 구경나셨다가 마침 그네 뛰는 춘향보고 저절세가인이 뉘집 소생이냐고 물었다오.도령님 분부 거역지 못하여 서로 만나게주선하였더니 오늘밤에 찾아온다고흰떡집에 산병(散餠)맞추듯, 사기전에종자굽 맞추듯 약조되어 찾아온 것인데,누가 무엇을 잘못하였다고 상스런 말로문전박대시오.""그런 약조가 있었다는 얘기 듣지못하였으니 썩 물러가거라.내가 소시적부터 관변에서 물잔께나마시던 놈들은 노소를 막 론하고 딱 싫은처지이다. 벼슬아치입네 선비입네 하는것들이란 겉은 잘 닦은 장판처럼번지르르하되 오장육부는 돼지우리알고 있기에 애당초 우리집에는 불러들인적이 없었느니라.""마누라님, 그럼 내가 관변 것이란말이요?""아전놈들의 대궁밥으로 연명하는처지라면, 관아에서 구실 사는 놈이아니더냐.""정녕 그렇소?""그렇다마다."방자놈이 손바닥으로 잔털이 보송보송한턱을 만지더니,"마누라님은 소시적에 장판(杖板)에 엎뎌물볼기 맞아본 적 있으시오."월매가 뒤통수 치고 나오는 방차의은근한 공갈을 분명 들었을 것인데 그말에는 얼른 대답을 않고 방자 뒤쪽에서"도령님, 이 늙은 것이 혼자 나와서함부로 입정 놀린 것을 탓 하지 마시오.쇤네 도령님을 미처 알아보지못하였습니다.""마음에 두지 않으니 염려 마오.""도령님깨서 내 집에 오시기는 천만뜻밖입니다. 내 방이 누추하지만 잠깐들어오시지요.""글쎄, 젊은 주인이 있으면 들어갈까.우리 집안 내력이 늙은이는싫어하는데......""춘향은 아직 미거하여 손님 접대하기는부끄러워 제 방으로 가서 숨어버렸나봅니다.""우리 집안 내력이 늙은이와 오래 앉아담소하기를 딱 질색으로 안다네."잔소리 많은 젊은이는 사매질해서 내쫓은내력이 있답니다."이도령이 월매를 뒤따라 방으로 들어가긴하였으나 방 한구석에 보자기로 싸들은것이 기대서 있는지라 혹여 춘향이 숨어있는가 해서 앉기도 전에 얼른 물었다."저기 서 있는 것은 사람 아닌가.""사람이 아니라 거문고요.""검은 것이라니, 옻칠한 것인가, 먹칠한것이가.""검은 것이 아니라 줄을 타는거문고입니다.""줄을 타면 하루 노정에 몇 리를 갈 수있는 것인가.""가는 것이 아니라 뜯는 것이오.""종일 뜯으면 하루에 몇 조각이나"뜯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줄을 희롱하면풍류소리가 난다오.""자네 딸 춘향이도 그 소리를 낼 줄아는가.""너무 채근 마시고 우선 좌정하시어술이나 돌리십시오."이도령 앉혀두고 월매가 나가더니향단이가 먼저 마련하여 두었던 주안상올들고 들어왔다. 나주철(羅州漆)팔모반에행주질 정결하고, 왜물(倭物)젓가락 상하알아 씻어놓고, 계란 다섯 수란하여청채기(靑彩器)에 받쳐놀고, 갖은 양념많이 넣어 초지렁을 곁들이고 봉산(鳳山)문배, 임실(任實) 곶감, 호도(胡挑),백자(柏子), 곁들이고, 문어, 전복,약포(藥脯), 조각(租角), 백채(白寀)돈어치 약주 받아 춘향어미 상들이며,"밤중에 마련한 주안이라 두서가없습니다."이도령 엉거주춤 당겨앉는 시늉만하면서,"천만의 말이로세."술 한 잔 가득 부어 도령께 드리면서,"약주 드시오.""주주객반이라 자네가 먼저 먹소."춘향어미 먹은 후에 다시 부어드리니이도령 마지 못해 한 잔마시고 속으로만굴리고 있던 한마디를 꺼내놓았다."자네 딸이 몇 살인가.""임자년(壬子年) 사월 초파일에 이자식을 낳았오.""노모 있는 여염처자를 한부로 대할 수자네 의향 어떤까."춘향어미 윌매가 처연히 가로되,"무남독녀 저 자식을 제 아비 일찍 죽고어미 혼자 유복자로 길러내어 저와 같은배필 얻어 이 몸이 늙바탕에 의탁하자하옵는데, 도령님은 서울 장안에서도내노라 하는 귀공자라 일시 풍정 (風情) 못이기어 한 번 보고 버리시면, 청춘 백발 두목숨이 그 아니 불쌍하오."이도령 그 말 듣고,"자네 그게 웬 소린가. 경솔한 말일세.명색 대장부의 행사가 그토록 매물차고범절 없을까. 우리 집 내력에 한 번 사권여자 까닭없이 버린 적 없고 한 번혼인하면 귀밑머리가 파뿌리처럼 희게되어도 동혈해로하기가 가문의 내력일세.똥칠하지 말게나.""가문의 내력이 정녕 그러하옵니까.""그렇다마다.""맹세하시겠소?""자네 만일 내 말을 의심하여 첫고지듣지 아니하면, 혼서지(婚書紙)는 못할터나 불망기(不忘記)를 건네줌세."용의 비늘 새긴 벼루 뚜껑 선뜻 열고먹을 갈아 호지산(胡地産) 중국의 동북부지방) 담비털로 만든 붓에 먹물 가차없이듬뿍 찍어 두루마리 종이에 진서(眞書)와언문을 한데 섞어 일필휘지 써갈제,
남원 절색 춘향과 백년 두고해로(偕老)키로 작정하고 저의 모녀 데리고굳은 언약 성표(成標)하니 만일에춘향을 버리기로 한다면 귀신이 버티고하늘이 앙화를 내릴 것이니 이로써증거하여 증표로 삼다.
정묘(丁卯) 4월표주(標主)자필 이몽룡
성명 삼 자 적바림하고 수결(手決) 두어월매에게 건넜다. 월매 글발 읽을 동안조바심한 이통룡은 또한 다짐함이 사내의절개였다."두 번 다시 날 의심 두지 말게. 내 마음스스로 헤아리니 간절하고 굳은 마음흉중에 가득하다네. 서로의 지체는 다를망정 저와 내가 평생기약 맺을 제전안(廛雁) 납폐(納幣)아니 한들 바다외면하겠는가.""도령님의 언사는 조청과 같이달짝지근합니다만 예로부터 사내의마음이란 음흉하여 늑대와 같다 하였고,계집 희롱하기를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로여기는 대갓집 도령들이 허다하다 하였오.""자네 보자 하니 시방 날 부아채우고있군 그려. 내가 춘향을 아내와 갈이여김에 일호의 어그러짐도 없이 할 것일세.내 설령 지엄한 어버이가 있어 그 분부가서릿발 같더라도 대장부의 한 번 먹은마음인데 춘향 박대 있을 수 있을 것인가.남의 안 채우지 말고 춘향 만나도록주선하시게.""앞에 앉혀두고 허물잡기가거북살스럽소만 쇤네도 도화진 육덕을내노라 했던 관기였다는 것을 잊지마시오.""그걸 누가 잊었다 하였나.""관기였다는 것을 생색 내자는 것이아니라 관기시절 명색이 먹물께나 먹었다는선비하며 벼슬아치며 대가댁 도령이란것들의 야박하고 음흉한 켯속을 보름달쳐다보듯 환하게 꿰고 있었다는 것이오.""그중에서 누굴 꿰어찼었나?""꿰어찼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음흉하고괴씸한 심보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있는 안목울 터득하였더란 얘깁니다.""그들의 못된 심보가 도대체 어떠했길래그로부터 십수 년 뒤에 태어난 내게다험담을 하는 겐가 .""험담이라니오. 언감생심 그런 상서롭지"험담할 요량이 아니라면 냉큼 춘향만나게 주선하오."그때 월매는 문 밖을 바라보며 말하였다."봉(鳳)이 나매 황(凰)이 나고 장군 나매용마(龍馬) 나고 남원에 춘향이 나매이화춘풍(李花春風)꽃다웁다. 얘 향단아,도령님 춘향방으로 안동하여 드려라.""장모 거동 한번 시원시원하다."그 말 하고 벌떡 일어서는 이몽룡을 월매또한 무엇이 미심쩍고 무엇에 미련이남는지, 이몽룡 손목 낚아잡고 한 마디오금박기를 잊지 않았다."근력 있다고 기운껏 다루지 말고 농익은홍시 만지듯 반숙된 계란 만지듯떨어뜨리면 깨어질세라 애지중지 살살다루시오. 앙탈부린다고 삼이웃 떠나가도록말며, 근력께나 장하답시고 남의 귀중한딸자식 잔허리 부러 뜨리지 마오.""장모 말씀 뼈에 아로새겨 일호의 실수도없게 할 터이니 제발 고비마다 사람잡아두고 지체시키며 횡설수설로 안 채우지말게."이때 춘향이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칠현금(七絃琴) 비껴안고영산회상(靈山會上) 한 곡조를 시름없이자아내니 음률은 청아한데 밤은 이미삼경이라 낮에 광한루에서 있었던 일들이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잠을 이룰 수없더라. 그때 문 밖에서 신발 끄는 소리나니 그것은 향단이오, 그 뒤에 또한발자국 소리는 필경 남정네인 것이틀림없었다.나서는 춘향의 고운 자용은 이슬 머금은해당화요, 햇살 받은 부용(芙容)에 비겨 한줌의 모자람도 없었다. 이도령 안동하여 제방에 좌정시킨 후 고개 숙여 절을 한 뒤에,"도령님 누추한 집을 찾아주시니 몸들 바모르겠습니다.""천만에 말이로다."그때 또한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 역력한터라 그 또한 헤살 놓으려는 월매로 짐작한이몽룡은 심기 적지않게 불편하였다. 그는장지문올 열고 무턱대고 쏘아불였다."이번엔 무슨 훼방을 놓으려는 것인가?"그렇게 묻는데 소반에 합환주(合歡酒)얹고 서 있는 것은 월매 아닌 향단이겠다.이몽룡은 무턱대고 꾸짖은 게 무안하여우두망찰하고 있는데, 향단이 소반 들고춘향이 술 한 잔 가득 부어 이몽룡께권하면서,"약주 드십시오."자리 펴고 자자는 말은 아니하고 술만권하는 것이었다. 그렇다해서 체면손상두려우니 권하는 술잔 냉큼 내칠 수도 없어술잔 받아 반 잔만 벌컥 들이켜고 남은 잔그대로 권하니 춘향이 고개를 왼쪽으로숙이고 앉아 은연중 사양하는지라 이몽룡짐짓 정색하고 타일렀다."백년해로하자 하고일배반분(一盃半分)하였으니 사양 말고마시거라."부끄러운 춘향은 권유에 못 이겨섬섬옥수 내밀어서 술잔을 받았다.이몽룡이 눈을 들어 방안을 살펴보니붙어 있었다.동쪽 벽을 바라볼 제삼국풍진(三國風塵)요란할 때한종실(漢宗室)이와룡선생(臥龍先生:제갈량)찾으려고 걸음조은 청려마(靑驢馬)를 채찍으로 빨리 몰아제갈량이 사러던 남양융중(南陽隆中)으로달리는 모양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다.남쪽 벽을 바라보니, 세상의 표진을 피해상산(商山)에 숨어살던 네 늙은이의 그림이그려져 있었다. 네 노인이 바둑판을 앞에놓고 한 점 두점 놓아갈 제학창의(鶴敞衣)에 망건 쓴 노인은백기(白基) 쥔 채 홀연히 앉아 있고갈건도복(葛巾道服)떨쳐입은 노인의 손에는흑기(黑碁)가 들려 있다.짚고 바둑 훈수하느라고 어깨 너머바라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북쪽 벽을바라보니육관대사(六觀大篩)손성진(性眞)이 봄바람돌다리 위에서 여 덟 선녀 희롱타가 잡았던육환장(六環仗)을 구름 위에 던져두고합장하는 비는 모양 그려져 있었다.그림 아래 앉은 춘향은 도대체 달인가꽃인가. 서시(西施)같기도 하고숙낭자(淑娘子)같기도 하였더라.방안치레 둘러보니 자개 박은 책상 위에온갖 한서(漢書)쌓여 있고 문채(紋彩)좋은대모면경(玳瑁面鏡)에 단목문갑(檀木文匣),비취연상(翡翠硏床), 산호필통(珊蝴筆筒),만호연적(滿糊硯適), 용지연(龍池硯)에봉황필(鳳凰筆)을 갖추었고 쌍요강에금자병풍(金字屛風) 구석에 세워두고,거문고 가야금이 또한 세워져 있었으니월매가 딸 춘향이 수발에 얼마나 알뜰하고지성인지 미루어 알아차릴 만하였다.간단한 잔채(盞采)나마일배일배(一盃一盃) 부일배(復一盃)로취흥이 가득 돌아가는지라 어느덧 술상을밀치며 이몽룡 계면쩍었으나 용기 내어한마디 불쑥 던졌다."이제 밤도 이슥하였으니 잠자리에 드는것이 순서 아니냐."이몽룡이 띠를 끌러 건네주었더니춘향이가 다소곳이 받아 의장에 집어넣고부끄러운 듯 돌아앉는다."이제 너도 옷을 벗어라.""도령님이 먼저 벗으셔요.""도령님 먼저 벗으셔오.""매사는 간주인(看主人)이라는데 주인먼저 벗는 게 도리 아니냐.""매사는 간주인이라는데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셔야지요.""아무래도 오늘밤이 심상치가 않구나.""무엇이 심상찮으십니까.""너를 이리저리 뜯어보아도 세상 인물이아닌 듯하였다. 백옥루(白玉樓)의 선녀로서황정경(黃庭經: 老子의 경전으로 道亮家의서책)을 잘못 읽고 옥황상제께 득죄하여인간세상으로 떨어진 선녀로만 알았더니 너고달 빼고 있는 모양새가 선녀는 백번아니로다.""그 말씀 한번 잘하시었오. 소녀는여염에 들어앉은 견문없는 처자일 뿐 감히천부당만부당입니다.""너의 머리와 눈썹과 눈은 화공이 그린듯하고 손길은 부드럽기 고사리와 같고깁으로 묶은 것처럼 가느다란 허리는 감히누구와 쌍이 될까. 그 붉은 입술과 하얀이로 말하면 해어화(解語花): 양귀비를일컬음)가 너 아니더냐. 그런데 오늘밤주저하는 너의 모양 보자 하니 실망스럽기그지없구나.""소녀가 도령님께 어여쁘게 보이다 말고실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도령님의 심지가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내가 아름답지 못하다니 그것은어불성설이다. 우리 이씨 문중 혈손 중에서내 또한 심지가 곱고 무던하기가 소문이짜한 중에 그 무슨 엉뚱한 말로 나를"소녀 아직 오늘밤 이 자리처럼 남정네를가까이한 적이 없거늘 소녀더러 옷부터벗으란 분부는 아름답기 이전에 음탕함이먼저란 얘기가 아니겠습니까.""보아하니 네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하긴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부중 벗어난 적없겠으니 네 견문 있다 한들 또한 얼마나졸렬할까.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날 봉자(蓬) 비점(批點)이요, 우리 둘이마주앉았으니 좋을 호 자(好) 비점 아닌가.불망기 적어주어 백년가약 맺었으니 즐긴락 자(樂) 비점이요.야반무인(夜半無人)적막하니 벗을 탈자(奪)비점 아닌가. 한 베개를 너와 나 두사람이 베게 되었으니 안을 포 자(抱)비점이요.비점이요, 네가 내 하초를 굽어보고 내가네 넓적다리를 굽어보겠으니 웃음 소자(笑) 비점이요, 남대문이 개구멍이요,인경에 매방울이요, 선혜청(宣惠廳)이오푼이요. 호조가 서푼이요. 하늘이 돈짝같고 땅이 매암을 돌 것인데 어찌 시골처녀를 차지하고 있는 너는 고비마다허물만 잡고 깐죽거리며 토라지는 꼴이흡사 음흉한 네 어미의 버르장머리와방불하구나.""아니 어찌하여 이 자리에 계시지도 않은제 어미를 헐뜯으려 드십니까."모잡이로 꺾어 앉아 있던 춘향이발끈하여 가파른 시선으로 이몽룡 쏘아볼제, 매서운 눈초리가 오히려 꽃답다. 벌써양기가 차 오른 사추리는 뻐근하여 정신을벗기려 한다면 또 무슨 까탈이 생겨 공든탑 무너질까 두려운데 춘향은 정색하고다시 묻겠다."선혜청은 어디 있기에 오 푼 어치밖에되지 않으며 호조는 어찌하여 서 푼밖에되지 않소.""너와 내가 부둥켜안고 이불 속에서 뒹굴제 서슬 시퍼런 호조인들 서 푼 값어치밖에되지 않으며 곡식 섬이 산처럼 쌓인선혜청이라 한들 불과 오 푼 어치로 보인단말인즉슨 다른 오해는 두지 말게.""그러고 보니 소녀 짐작가는 게 없지아니하오.""무슨 짐작 또 있어 남의 속을 태우려드는가.""도령님 소시적에 계집과 어울려선혜청이 오 푼 짜리인지 호조가서푼짜리인지 알 턱이 있겠습니까."듣자하니 그럴싸한 말이라 당장 둘러댈말이 튀어나오지 않았으나,"그런 말로 날 면박할 요량 말게.그렇다는 것은, 내가 동헌에 출입하는 늙은벼슬아치들이 화롯가에 할 일없이 둘러앉아서로 농하는 것을 귀동냥하였던 풍월일 뿐내 어찌 소년의 나이로 대중없는 방사를저질러 터득할 것이 있겠는가.""귀동냥한 풍월을 도령님께서 몸소경험하신 견문처럼 자랑하시니 도령님허세도 알 만한 것이 아닙겠습니까.""너 정녕 속만 채우고 기어코 벗지 않을작정이냐."견디다 못한 이몽룡이 정색하고 묻는데,일어설 기세가 역력하였다. 그러나이몽롱의 볼멘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너는 처녀, 나는 총각.결발부부(結髮夫婦)가 그 아니며 불망기와합환주가 납채(納采) 행례(行禮)와 조금도손색이 없거늘 이성지합(二姓之合)이우리의 연분인데, 내가 이 방에 들어와너와 수작하기를 벌써 이슥하여 닭이 울녘까지 이르렀음인데, 네가 나를시험삼자하고 요리 비켜나고 저리 빼치면서이토록 괴롭히고만 있으니 네가해어화(解語花)에 서시(西施)를 뒤집어 쓴절세가인이라 한들 내 단념하지 않을 수없구나."한숨소리가 구들장이 꺼지도록 들리고 난뒤 사위 적막하고 촛불 소슬한지 한참이나들렸다."가지 마셔요."가지 말라는 춘향의 한마디가 귀에둘려옴에 그 달기가 조청이요 꿀이었다.귀가 번쩍 뜨이고 하초가 저절로들썩하였다. 그러나 계집 다루기에 이골 난이몽룡은 짐짓 못 들은 척하고 태연하게되물었다."이제 뭐라고 하였더냐?""가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분명 그런 말을 하였더냐?""그 말 아니면 무슨 말을 하였겠습니까.""너로 말하면 야속하고 뻔뻔스럽구나.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소녀가 가지 말라고 잡는 것이 야속하단것입니까."주다가 이제 동이 터서 닭이 울 때가되어서 가지 말라고 잡는다면 병 주고 약주고 약 주고 병 주는 조롱이 아니고무었이냐.""그래서 역정이십니까.""이 지경당해서 역정 아니 할 사내가있다면 필경 배냇병신이거나 반편이일시분명할 게야.""닭 울녘이 되었다 하나 도령님과 사랑할말미는 아직 많겠으니 염려 놓으시고 얼른주무세요."이몽룡이 허리띠를 끌러 내려놓으려하자, 춘향이 냉큼 받아 의농에 집어넣고부끄러운 듯 돌아앉아 고개 숙이고 있으니그 자태가 한 입 배어먹고 싶도록아름답다."도령님 먼저 벗으셔요.""네가 먼저 벗어라.""도령님 먼저.""매사는 간주인이라 했다면 네 먼저 벗는것이 순서다.""매사는 간주인이라면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셔요."다투다 못한 이몽룡이 달려들어 춘향의옷을 벗기려 들었다. 춘향이 계면쩍고부끄러워 두 손으로 옷고름을 잡았다.이몽룡 짐짓 낭패한 표정으로 춘향을나무란다."이게 웬일이냐. 신랑신부 첫날밤에옷고름이 떨어지면 상서롭지 못하다하였다. 벗자, 어서 벗자, 불두덩에서야단났다."하시다니, 양반행세 이것 아니지않습니까.""이 판국에 양반 어디 있고 염치는 무슨개뼉다귀냐."고개 숙인 춘향이가 반몸을 비틀 제,이리 곰실 저리 곰실 하는 폼이 미치 붉은연꽃이 미풍에 시달림을 받는 듯하늘거린다. 치마 벗겨 내던지고 속옷조차벗길 제 춘향의 콧잔등에는 땀방울이맺히었고, 되바라진 입술은 한껏 부풀어터질 것만 같았다.이몽롱이가 춘향의 옷끈을 끌러 발가락에딱 걸고서 기지개를 쓰니 속옷자락 활랑벗겨져 발길 아래로 떨어졌다. 옷이 활짝벗겨지니 춘향이 소스라쳐 놀라미꾸라지처럼 미끄러져 금침(衾枕)속으로왈칵 뒤쫓아 들어가 저고리를 벗겨내니 그희디흰 살신이 형산(荊山)의 백옥인들비견될 바 아니었다.벗긴 옷 둘둘 말아 한면 구석에 던져두고골즙(骨汁)을 내기 시작하는데, 삼승(三升)이불은 방 네 귀퉁이의 먼지를 쓸어가며춤을 추고, 윗목에 놓여 있던 자리끼사발과 발치에 놓여 있던 자기 요강은 이불속의 장단과 높낮이에 맞추어 정그렁 생쟁숭어뜀을 하더라.문고리도 질세라 달랑달랑 섣달 추위에사시나무 떨 듯 몸부림을 쳤고, 등잔불도이불 귀퉁이가 들썩거릴 적마다 까물까물까무라쳤다간 다시 일어나더라. 날이 새는것도 아랑곳 않고 이합, 삼합(三合)으로이어지는데, 이불 속에서 입맞추는 소리가마개를 따는 소리와 방불하여 자주 귀를의심하게 하더라. 그러더니 또한 사랑가로이어진다."맹호연(孟浩然: 당나귀의 시인)은 나귀타고, 이태백은 고래 타고, 적송자(赤松子:옛 선인을 일컬음)은 학을 타고,장강(長江:揚子江)의 어부는 일엽편주올라타고 찌걱찌걱 저어갈 제, 이몽룡은 탈것이 없어 춘향이 너나 타고 놀까. 등등 내사랑아. 너 죽어도 나 못 살고 나 죽어도네 못 살리라.우리 둘이 사랑타기 아차 한 번 죽게되면, 후생기악(後生期約) 먼저 두자. 너는죽어 무엇 되며 나는 죽어 무엇 되리. 너는죽어 물이 되어 칠 년 가뭄에도 마르지않은 음양수(陰陽水)라는 물이 되거라.""나는 새가 되되 원앙이라는 새가 되어그 물 위에서 주야로 놀게 되면 나인 줄네가 알리.""제가 죽어서 물이 안 되고 꽃이 되면어찌 하시겠소.""복숭아꽃, 살구꽃, 버들꽃, 영산홍,황국 백국 다버리고 목단화 되어 피어 있을제, 나는 죽어 나비 되어 꽃 위에 앉아노닐 제, 그 나비 나인 줄 알려무나.둥둥둥 내 사랑아. 월(越)나라의서서(西施)인가. 너 무엇을 먹고 싶으냐.수박통 옷꼭지를 떼버리고 강릉(江陵) 백청주르르 부어 은수저로 뚝 찍어먹으려느냐.""싫소.""그러면 은을 주랴 금을 주랴. 시금털털"그것도 싫소.""그럼 무엇을 먹으려느냐.""먹는 것 입는 것 다 싫으니 한 번 더안아주오.""나만 음탕한 줄 알았더니 너 또한색골이니 이를 두고 상것들 말로는 묵은된장에 풋고추 궁합이라 한다더라."춘향이 그 말에는 대답 않고 문득정색하더니 단내 나는 입으로 뇌까린다."도령님.""웨야.""도령님과의 인연이 용두사미되지 않도록우리들의 백년가약 도중변경 마옵소서."이몽룡은 그 순간 벌떡 일어나 앉으며가부좌 틀고 앉아 나무라듯 대답하였다."양반의 한마디는 바윗돌보다 굳다있겠는가. 염려 붙들어 메어라."미명(未明)에 일어나 책방으로 돌아갈 제밤새 꼬박 문 밖에서 망을 보던 방자에겐수고하였다는 말 한마디 없었으니 미천하긴하나 배알이 없지 않았던 방자가 한마디건넸다."도령님.""웨야.""지난밤의 음탕했던 구들농사에 하초를다치셨소?""내가 하초를 다치다니? 멀쩡한 하초를두고 어째 시까스르느냐?""골즙(骨汁)을 과도하게 내지 않았다면,어째 발걸음이 가재걸음처럼 모잽이로 가고있소?""네가 날 조롱함이니 예사로 두고 볼"역정 내지 마시고 고정하십시오. 지난밤도령님께서 춘향이와 홀딱 벗고 네방퀴퉁이가 좁다하고 들썩거리며 깔딱깔딱넘어가는 감창소리가 밤새 낭자할 제,가랭이에 달린 고기방망이만 뒤틀어 잡고찬이슬 맞아가며 문 밖에서 수직하던쇤네의 그 고초를 짐작이나 하고 계시었소?쇤네 비록 불상놈이긴 하나 배알조차없지는 아니하고, 쇤네 비록 체수잔망스럽고. 염소 수염을 달고 다니는처지이긴 하지만, 사내 구실조차 못 하는고자는 아니랍니다.""너 하는 말이 적지 않게 수상 쿠나.""수상하다니요.""고자가 아니라면 본데없는 상놈 주제에남의 신방에 뛰어들 작정이었더냐."아닙니다.""그럼 네 말의 골자가 무엇이냐.""도령님께서 방사를 즐기실 제 문밖에서고초받는 쇤네와 같은 부류도 있다는 것을염두에 두셔야 한다는 것입니다.""내놈 말뽄새 보아하니 설경료(舌耕料)를달라는 게냐. 아니면 밤새 망을 본행하돈에 군침이냐.""행하를 바라고 도령님을 배행하지는않았습니다."방자놈 하는 말이 은연중 언중유골이라이몽룡이 잠자코 있었다.그날부터 낮이면 글을 읽고 밤이면춘향이를 찾아다녀 온갖 희롱에 온갖교태를 자랑하니 두 사람의 정은 깊어만갔다. 어쩌다가 사또가 출타하여 동헌이손바닥만한 남원부중에 소문 아니 날 수없었다.사또 이한림은 아들 몽룡의 소문을 듣고있었으나 어찌할 묘방이 없어서 다만 색을과도하게 탐하게 되면 병이 나지 않을까염려만 하던 중에 서울의 내직으로발탁되어 경방자(京房子)가 남원으로내려왔겠다.그러나 그것 알 리 없는 이몽룡은 그날밤에도 책방에서 몰래 빠져나가 춘향의방에서 질탕하게 색탐하고 있었다. 방자가밖에서 듣자하니 방안의 잡담이가관이었다."얘 춘향아. 우리 업음질이나 해보자.""애고 잡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한단말이여요."것이었다. 방자 문밖에서 바지가랭이뒤틀어잡고 귀를 기우릴 제, 이몽룡의목소리가 들렸다."업음질이란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아니다. 너와 내가 활활 벗고 업고 놀고안고 놀면, 그게 바로 업음질이 아니냐.""부끄러워 못 벗겠소.""네 말이 무척 수하구나. 이때까지 사뭇벗고 논 터에 때 아니게 아니 벗겠다니 그무슨 해괴한 언사냐.""그래도 못 벗겠소.""네 아니 벗겠다면, 내 먼저 벗으마."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활딱 벗어한편 구석에 밀쳐놓고 고기방망이 움켜잡고방 한가운데 우뚝서자, 춘향이소스라쳤으나 금방 웃고 돌아앉으며 하는"영낙 없는 낮도깨비요."낮도깨비든 밤도깨비든 천하의 만물 중에짝없는 생물이 없거늘 오늘밤은 두도깨비끼리 놀아보자.""그러면 불이나 끈 뒤 놀아보지요.""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밝은 데서 어서 벗거라.""애그 난 싫소."이몽룡이 싫다는 춘향에게 달려들어 옷을벗기려 들었다. 그 어르는 품이 만첩첩산늙은 범이 살찐 암캐 물어다 놓고 이는없어 먹지는 못하고 으릉으릉 아웅 어르듯,북해의 검은 용이 여의주 입에 물고 안개속을 넘노는 듯, 단산(丹山)의 봉황이죽실(竹實)을 물고 오동나무 가지 사이를노니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답숙빨며 입술도 쭉쪽 빨며 주홍 같은 혀를물고 모이 찾는 비둘기같이 꾹꿍꾹꿍을흥거려 뒤로 돌려 답숙 안아 젖무덤을감아쥐고 저고리 치마 바지 속옷까지 활딱벗겨놓으니 춘향이가 부끄러워 홍당무가 된얼굴로 고개 들고 앉았다.이몽룡이 답답해서 가만히 살펴보았더니콧등에 구슬땀이 맺혀 있다."춘향아 이리 와서 업혀라."춘향이가 더욱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부끄러워 말고 업혀라. 이 방에는 우리둘뿐이지 않은가."춘향을 와락 당겨 업고 추스르며,"아따, 엉덩이가 무척이나 무겁구나. 내등에 업혀보니 어떠냐.""한껏 좋습니다."있었더냐. 정말 좋으냐.""좋아요.""백사만사가 모두 품앗이가 있느니라.내가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업어줘야지.""난 기운 없어 못 업어드리겠소.""업는 방도가 없지 않느니라. 나를 등에올려 업으려 말고 업는 시늉만 하면되느니라."이몽룡이 업히는 시늉이자 춘향이 하는말이,"애고, 잡스러워라.""자고로 방사란 잡스러울수록 정이도탑게 쌓이는 법이다. 우리 말놀음을 하여볼까.""말놀음이 무엇이오."너와 내가 벗은 김에 너는 온 방안을 기어다녀라. 나는 네 궁둥이에 딱 붙어서 네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짝을 내 손바닥으로탁 치면서 이랴 하거던 너는 뒤로 물러서며알심 있게 뛰면 되느니라.""애고, 잡스러워서, 난 싫소.""넌 싫다는 것도 많다.""그런 잡스런 일이 어디 있소. 양반 행세깎이오.""양반 행세 버린 지 오래 전 일이다."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듣자하니 방자놈의 목소리였다."도령님, 사또께서 부릅시오."방안에선 이 무슨 밤도깨비 같은 말인가했던지 코대답도 없었다. 방자가 목청을높였다.이몽룡이 허둥지둥 동헌으로 들어가니사또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너부죽하니절을 올리는데 사또는 과색하여 파리하게된 아들의 처량한 신색을 뚫어질 듯바라보다가,"서울서 교지가 내려왔느니라."이몽룡이 금시초문이라 무슨난데없음인가 하고,"아버님 무슨 교지입니까.""경사(京司)로 승직이 되었다."화들짝 놀라는 시늉하며 반겨 말하기를,"아버님 가문의 영광이옵니다.""나는 문부(文簿) 사정(査定)하고뒤따라갈 것이니, 너는 내행(內行)을배행(陪行)하여 내일로 곧장 떠나거라."이도령 그 말 듣고 보니 갑자기 절벽가문의 영광이요,즐거운 경사가 난 것은틀림이 없었으나 눈앞이 캄캄하여 잠깐사이에 희고 검은 것조차 분별할 수 없게되었다. 사세가 위급하게 되었으니 되든지안 되든지 잔기침 여러 번에 주저하다가어린 양울 부리매,"아버님 먼저 행차하시면 소사가중기(重記) 닦고 가겠습니다.""이제 뭐라 하였더냐.""소자가 중기 닦고 나중 간다하였습니다.""남원고을 수령이 나였더냐 너였더냐.""아버님이십니다.""이놈이 실성끼를 보이는가 하였더니멀쩡한 놈이 아니냐. 네놈이 남원고을관장이 아니관대 어찌해서 내가 닦을"소자는 다만 아버님의 고초를 덜어드릴욕심으로.....""이런 오줄없는 놈을 보았나. 내가네놈의 속셈을 모르고 있는 줄 아느냐.관장질로 외읍(外邑) 오면 자식 버리기십상이란 말이 있더니 이는 필경 네 같은놈을 일컬음이다.아비 고을 따라와서 하라는 글공부는소홀하고 밤낮으로 몹쓸 장난에 발목이빠져 있더니 이제 와선 아비의 분부까지허섭스레기로 알고 내침이 아니냐. 서울가면 급제는 고사하고 혼로(婚路)조차 막힐테니 이런 낭패가 없게 되었다."그리고 통인을 돌아보며,"이놈을 내아(內衙)의 골방에다 가두라."내아에 있는 모친께는 허물이 적은지라들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방자가 밤중에내아로 들어가서 사또가 다시 동헌으로불러낸다 거짓 들이대고 이도령을 밖으로불러내었다. 방자의 속셈을 몰랐던이도령이 내아에서 뛰쳐나오매,"아버님이 어찌하여 또 다시 나를부르신단 말인가.""아버님 아니라 쇤네가 비계(秘計)를 쓴것입니다"비계라니, 그건 삼겹살에 낀 비곗덩이가아니냐.""비겟덩이가 아니라 남 모르게 꾸민 꾀란뜻입니다.""이놈아, 시방 내가 곡경을 치루고있다는 것을 네놈이 몰라서 계략이나꾸미고 있는 게냐. 비곗덩이 좋아하거든방자놈이 대문 벗어나다 말고 우뚝 서서이도령을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이죽거렸다."안됐소. 그만 실성을 하고 말았구려.""이 박살할 놈, 내가 실성을 하다니엇따대고 양반 욕보이려 드느냐.""춘향이 집에 말미 내어 다녀오시라고쇤네가 비계를 짜낸 것인 데 쇤네를박살하려 드시다니....."그제서야 이도령 알아차리고 방자에게사죄하였다. 그길로 집을 나와 춘향의집으로 향하는데 설움은 북받쳐 올랐으나차마 노상에선 오줄없이 울 수가 없어 참고있다가 춘향이집 문 앞에 당도해서야 아예건더기째 왈칵 곡지통이 터지는 것이었다.영문 모르는 춘향이 깜짝 놀라 뛰어"애고, 이게 왠일이요.""글쎄, 나도 모르게 울음이 건더기째왈칵 쏟아진다네.""불러가시더니 꾸중을 들으셨소. 아니면노상에서 조롱을 당하셨소. 서울서 무슨기별이 왔다더니 상서롭지 못한소식이었소?"춘향이는 이도령의 목덜미를 담북 안아서허벅진 젖무덤으로 이리 문지르고 저리문지르는 일변 치맛자락 걷어올려 눈물자국을 씻어주면서,"도령님 울지 마오."그러나 눈물이란 것이 고이한 것이여서만류하고 드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기승을부리기 마련이더라. 울음이 그치기는커녕울대가 껄떡껄떡 넘어갈 듯 서러운지라치맛자락으로 이도령의 콧날를 잡아 비틀듯닦아내며,"그만 울고 이러시는 내막을 소상하게말이나 해주오."그제서야 이도령 얼추 반정신을 차리고,"사또께서 경사의 부승지(副承旨)로승직하셨단다.""그게 참말이오.""참말이 아니었으면 내가 왜 울겠느냐.""가문의 경사인데 도대체 왜 우신단말입니까.""너를 두고 가게 되었으니 내 어찌서럽지 않을꼬."그런데 춘향의 대꾸가 놀랍고 아금받다."언제는 남원땅에서 평생 두고 사실 줄아셨소. 또한 어찌 저와 함께 가기를저는 여기서 가산을 정리한 연후에 뒤따라올라가겠소. 그러나 큰댁으로 가서 살 수는없을 것이니 큰댁 가까이 있는 막살이오두막에 툇마루 딸린 협소한 방 두 개면족하니 수소문해서 사두십시오.우리 식구가 가더라도 공밥은 먹지아니할 터이니 그럭저럭 지내다가 도령님나만 믿고 장가 아니 갈 수 있겠소.부귀영총(富貴榮寵)재상가에요조숙녀(窈窕淑女) 가리시어혼인하실지라도 저를 아주 잊지는마십시오. 도령님 과거하여 벼슬 높아외방의 관장(官長)으로 도임하시면 저와같은 계집을 대방마님으로 내세운다면 무슨체면이 되겠습니까."이제 와선 만류하던 춘향이가 눈물을본심을 미쳐 짐작치 못했던 이도령은 얼른둘러 대기를,"그게 이를 말이냐. 사정이 그러하기로지금 네가 한 말 그대로를 사또께는 차마여쭈지 못하여 대부인 앞에 여쭈었더니꾸중이 대단하시었네. 양반의 자식이어버이 따라 하향하였다가화방작첩(花房作妾)하여 데려간다는 말이고려 적부터 있을 수 없었던 일이고, 또한조정에 들어간다 한들 벼슬길 막히기도십상이라더라.불가불 임시나마 이별이 될 수밖에 없어내 이렇게 껄떡껄떡 울고있다."춘향이 그 말 듣고 있더니 돌연 안색을차갑게 고치고 눈자위를 둘 곳 몰라붉으락푸르락 눈을 간지럽게 치뜨고 온몸을"이게 웬일이오."왈칵 달려들어 치맛자락을 와드득쥐어뜯어 이도령 앞으로 내던지며,"이것 모두 필요 없소."그리고 와르륵 방안으로 내달아엎어지면서 체경(體鏡)조차 엎질렀다."서방 없는 춘향이가 살림살이 무엇하며화장은 하여서 뉘에게 보여줄까. 몹쓸 년의팔자. 이팔청춘 젊은 것이 이별될 줄 누가알았으랴. 부질없는 일에 신세만버렸구나."그러더니 천연스레 돌아앉아 정색하고되물었다."여보 이도령. 이제 막 하신 말씀참말이었소 농말이었소. 우리 두 사람 처음만나 백년가약 맺을 적에 대부인 마님께서일이었소. 아니면 사또의 엄중한 분부 따라하신 일이었소. 두 분 빙자하여 발뺌하니도대채 당신이 사람이오.짐승이오? 광한루에서 잠깐 보고 내 집에찾아오셨을 때 도령님은 저기 앉고 춘향나는 여기 앉아 결발부부(結夫婦) 맹세키를하늘을 천 번이나 가리켰고 몇 번이나맹세할 제 내 정녕 믿었더니 이런 날벼락에거짓됨이 어디 있소.모질도다 모질도다 이도령이 모질도다.야속하고 야속하다 양반지체 야속하다.원수로다 원수로다 양반상놈 원수로다.천하에 다정한 것이 부부의 정이라하였건만 속셈을 떠본다 하고 한마디 해본말에 늙은 암말 엉덩이 둘러대듯 댓바람에둘러대는 말이 괘씸하기 짝 없어라. 여보버리셔도 그만인줄 알지 마오.상사로 병이 들어 죽게 되면 내 필경악귀가 될 것이니 천하 없이 걸출한도령인들 재앙입지 않을까. 사람 대접 그리마오."넋두리하며 엎드려 슬피우는데 춘향어미월매는 물색 모른 체, 혼자 앉아중얼거렸다."애고, 저것들이 이젠 사랑싸움까지벌이는구나. 아니꼽다 하였더니 눈꼬리에쌍 가래톳이 설 일도 많이 보네."그러나 당장 내달아 가로막고 선다는것도 일단 점잖치 못한 일이라 두고만 보고있는데, 울음이 진작 그치지 않고 길게빗나가고 있는지라 하던 일 밀쳐놓고 춘향방 영창 아래로 가서 엿듣자 하니월매가 제 복장을 손바닥으로 탕탕치며,"어허, 동네사람 들어보소. 오늘우리집에 사람 둘 죽네에-."두 간 마루로 쭈르르 달려가 문 밖에서마루장을 탕탕치며 목청 돋궈 딸을원망하였다."이년, 차라리 자진하여라. 너 죽은시신이라도 지체 있다는 저 양반이 지고가게 차라리 죽어라. 저 양반 올라가고 네여기 있으면 누구 간장 녹이려느냐. 내가일면 귀가 젖도록 일러주지 않았더냐.후회되지 않게 도도한 마음먹지 말고여염사람 중에 수소문하여 지체 또한 너와같은 사람을 배필하여 봉황이 짝을 얻어노는 양을 보고 싶다 않았더냐.내 말 듣지 않고 꼴에 양반 골라익히 짐작하고 살얼음 밟듯 지켜본 지 몇달포가 되지 않아 이꼴 났으니 이제 나는모르겠다 ."방문을 획 열고 방으로 뛰어들어이도령의 멱을 뒤틀어 잡았다.그러나 차마 패대기치지는 못하고넉장거리면서,"내 딸 춘향을 버리고 간다니 무슨 죄로그러시오. 행실이 글렀든가 예절이 남에뒤지든가. 언어가 불순했든가. 노류장화와같이 길거리에 나가 웃음을 팔든가. 이봉변이 왠일인가. 군자가 숙녀를 버리는법이 칠거지악이라면 못 비리는 법은없는가.내 딸 어린 춘향 데리고 밤낮으로 홀딱벗겨 사랑할 제 맷돌치기로 희학질하다가그것조차 싫증 나면 소타기, 말타기,죽마(竹馬) 타기 흉내하며 삼이웃에서밤잠을 설치도록 기운껏 감창소리 내질러늙은 나까지 싱숭생숭하고 삼이웃 젊은여편네들이 모두 아이를 가지게 질탕하게노닐 제 내 딸 춘향이 배꼽노리가 아프고이웃에 창피한 들 한마디 원망이나주책이라고 면박이라도 하던가.쇠가죽으로 지은 노리개였다 하더라도벌써 맞창나고 말았을텐데 사랑이 뭐길래원망 한마디 없었지 않았던가 백 년삼만육천 날에도 떠나살지 말자 하고맹세하기 인색하지 않더니 말경에 와서는칼로 무 자르듯 뚝 떼어버리다니.우리 춘향 버린 몸으로 낙엽 되면, 어느나비 다시 올까, 백옥 같은 우리 춘향다시 젊지는 못하리니 무슨 죄가엄중하여 남의 딸을 허송 백년 시키려드오. 그 긴 세월 한숨마다 솟는 눈물로치맛자락조차 다 적시고 제 방으로들어가서 의복조차 아니벗고 외로운 베개위에 벽을 안고 돌아누워주야장탄(晝夜長嘆)울게 되면 그것이 병아니고 무엇이오.뼈에 사무친 상사(相思)를 어미된 내또한 다스리지 못할진데 그로하여 죽게되면 이 늙은 것이 딸 잃고 사위 잃고태백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 던지듯이혈혈단신 늙은 몸은 누굴 믿고 산단말이오.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고 춘향아니 데려간단 말이오. 양반자세한다는도령의 모가지는 둘 가지고 다니시오?"필경 이도령에게 원수 갚겠다는 말인즉슨이도령이 불퉁가지를 내면서,"여보소 장모 날 두고 험담 마소. 춘향만데려가면 그만 아닌가.""그 말 한번 듣기 좋소, 아니 데려가고견뎌낼까.""너무 거칠게 야단 말고 여기 앉아 내 말들어보오. 춘향을 데려간다 해도 가마 태워간다면 필경 소문 나서 낭패볼 것인즉 달리변통할 궁리가 없네. 지금 기가 막히는중에 꾀 한 가지를 생각하고 있네만 이말을 입밖에 내게 되면 양반 망신만 하는게 아니라 선조양반까지 모두 망신할말이로세.""무슨 말이길래 그렇게 거북하단말인가."들어보소. 내가 창피를 무릅쓰더라도 필경춘향을 데려가겠네. 조금 전 한 말은춘향의 심사를 떠보려고 흰소리 한번하였네. 내일 올라가는 내행 앞에는 신주를모신 가마가 앞장을 설 것이야.그때 신주는 모셔내어 내 콩소매 속에감추고 춘향이를 가마 속에 태운다면남이야 신주가 마로만 알았지 그 속에춘향이가 탄 줄 뉘 알겠나."그 말 듣고 월매가 땅이 꺼지게 한숨토해내며"시방 그걸 대장부가 궁리해 낸 계략이라해서 지절거리고 있오.""그만한 꾀가 어디 또 있을 수 있겠나.""양반입네하고 설치는 작자들의 꾀가모두 그 모양이던가."물끄러미 바라보던 춘향이는 애간장이 더욱타는 듯하여,"어머니 건너가오. 만사는 제가 알아서처분할 것이니 아무 염려말고 건너가오.양반 체통에 오죽 답답하였으면 그런말씀까지 하였겠소."춘향이 말에 월매는 성질이 발끈 나서 두사람을 싸잡아 삿대질하며,"처분 처분하지 마라. 이때까지 처분은어쨌길래 이 꼴이 되었더냐. 엉덩이둘러대라면 지체없이 들러대고, 벽치기등치기 시키는 대로 농락당하고 난 뒤이별이면 가차없는 이 꼴이 잘된처분이나.""어머니, 사세 다급한들 어찌 그런음탕한 말까지 다하오. 입이 있다고 해도사람, 음탕한 것 삼이웃에 소문 나겠소.""이판사판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소문날 게 두렵더냐. 상것들 주둥이는하나뿐이고 양반 주둥이는 둘씩가졌다더냐. 하나 둔 주둥이는 피차매일반일 터에 주눅 들어 못할 말이무어냐."넉장거리하고 있는 월매를 달래어내려보낸 뒤에 춘향이 사죄하기를,"도령님, 어머님 망령을 노여워 마오."머쓱해 있던 이몽룡은 그나마 드잡이를당해서 창피한 꼴 보이지 않았던 것만다행으로 생각해서,"노여운 게 무엇이냐. 되려 내가부끄럽다. 해로백년 굳은 맹세 잊지는않았지만 사정이 약차하여 널 두고 가려몹쓸 놈으로 지목되어 가문에서 쫓겨난다하더라도 너와 내가 손을 잡고 농사인들 못짓겠나.문전걸식인들 사양할 수 있겠나.문전걸식하게 되면 신세는 고단하고입성남루 하여 똥개들에게 발뒤축 물어뜯겨 일생동안 하초에 피칠갑으로지내겠지만 마음 고생이야 있겠느냐."어찌보면 언중유골(言中有骨)이요,어찌보면 언중무골(言中無骨)인 그 말 듣고춘향이 나직하게 아뢰었다."아닙니다. 도령님 혼자서 먼저 가오.도령님이 어버이의 분부를 거역하게 되면가문에 똥칠이요. 자식으로서 불효됨도막급이 아닙니까. 도령님은 불효가 되는데춘향이는 열녀 되겠습니까.따르라 하였는데 어찌 내가 불효의지아비를 두고 열녀가 될 수 있겠소. 춘향생각 떨쳐버리고 멀고 먼 길 편안히가시오. 가서는 길에 비 만나면 고뿔 날까두려우니 몸조심하시옵고, 올라가신후에라도 행락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글을읽어 대과급제 영달하면 그때 가련한 춘향잊지 말고 찾아 주옵소서. 도령님 입신양명신명께 축수하며 고이 기다리겠습니다."춘향이 그 말하고 눈물 내 쏟을 제,"춘향아 울지 마라. 내가 올라간뒤에라도 사창에 달 밝은들천리상사(千里相思) 부디 마라. 타향천리먼길에 너를 두고 내가 떠난 후 백만 장안넓은 곳에 미녀가인 많다 하나 너 하나잊지 못해 내 가슴이 어이 편할 건가. 제발첫 정분에 첫 이별이라 울지 마라만류하고 있는 도령부터가 눈물이비오듯하니 춘향인들 또 다시 아니 울고견딜 수 없었다. 도령이 수건 꺼내어눈물을 씻어준다."울지 마라. 오늘은 만부득하여 이별한다하여도 만날 기약 없는 것이 아니다. 마음한 가지 변치 않는다면 그 어디 대순가. 한시 바삐 치행(治行)하란 독촉이 삼엄하니나는 다시 아문(衙門)으로 들어간다마는내일 떠나기 전에 다시 또 올 것이니 울음그치고 나가서 어머님 위로하여라.장모의애간장인들 오죽 타겠느냐."이몽룡이 춘향 작별하고 관가로들어갔더라. 이튿날 밝기 전에 치행하여서울로 올라갈 제, 사또께 하직하고 내아에내어 안장 곱게 지어타고 오리정(五里程)을다달아서 육방하인 하직하는데, 하인들이란본래 귀에 듣기 좋은 소리하는 데는 이골난 위인들인지라,"한양 천리 먼 길 조심하여 가옵시고,장차 전라감사로 배수(拜受)하시기를바라나이다.""오냐 고맙다. 오랫동안 너희들께 폐만끼치고 간다. 신관사또 오시더래도 전과같이 아금받게 시중들지어다."얼른얼른 대충 작별하고,"방자야, 춘향이 집으로 나귀 돌려라."이때 춘향이는 오직 가슴 답답하고눈앞은 아득하기만 하여 정신없이 그날밤을 보냈더니 닭이 홰를 쳐 날도 벌써밝아왔다. 하기 싫은 이별이고 보내기 싫은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밤새도록앉아 깨닫게 된 일이었다.떠나시는 도령님께 하직인사나 하려고어머님 모시고 향단에게 다담 들려 오류정아래에서 기다리다가 급기야 말머리 돌린이도령을 만났다. 와락 반긴 춘향은,"도령님 가시는 길 잠시 나귀에서 내려쉬어 작별하사이다."이도령 얼른 나귀에서 내리며,"오냐 춘향아. 불경에 이르기를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회자필리(會者必離)라 하였다. 이것이 바로우주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이 겪어야 할천리요, 공도(公道)일진데 지금 이별서럽지만 장차를 생각하여 서로보증(保重)하자꾸나."꺼내어 춘향에게 건넨다."대장부의 맑은 마음 이 명경과 같을진데 천만년이 지나간들 변할 리가있겠는가. 장부의 마음을 비치는 바이니고히 간수하여 두면서 나를 본 듯반기어라."명경 받은 춘향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지환을 벗어 이도령께 건네었다."이 지환은 천길 깊은 땅에 천년을 묻혀있다 한들 변함없는 옥지환입니다.드리오니 낭군께 비는 말씀 옥과 같이불변하고 둥근 환과 같이 헤어짐이 없도록하옵소서."춘향어미 월매는 차마 넉장거리하며 소란피우지는 못하고 혼자서 훌쩍훌쩍 울다가이윽고 도령님 앞으로 나와 어제와는 달리"도령님 내 말 듣소. 내 나이 육십이라늦게야 저걸 낳아 금옥같이 길러낼 제,하나님께 축수하고 칠성님께 기도하고나한불공(羅漢佛供), 삼신불공(三神佛供),용왕제(龍王祭), 산신제(山神祭)를오늘까지 성심성의 다했던 것은, 인물도부족없고 지벌도 부족없는 봉황의 싹을얻어 금끝 좋게 노는 양을 눈앞에 두고보자 하였던 것이오.그런데 뜻밖에 도령님이 내 집에찾아와서 춘향을 간청하니 상것의 신분에눈이 뒤집히도록 환장되어 선선히 허락하여금옥 같은 내 자식의 가슴에 못 박히게 한것은 오직 이 늙고 미욱한 어미의불찰이었소.나 같은 년이 바로 천하 잡년, 지하혀를 끊어 돼지 줄 년이오. 내 소시적관기로 살면서 생이별 몇십 번에도 심에차지 않아 이제 와선 딸년까지 이별하게만들고 말았으니 더러운 년의 팔자요, 젊은시절 저지른 죄값을 하는 게요. 그러나대하장강(大河長江)흐르는 물살을 뉘라서막아내며 서산에 지는 해를 뉘라서 잡아 맬수 있겠소.어찌할 수 없는 지난 일을 말한들 무얼하겠소. 오직 한양 천리 먼 길에 병이 날까두려우니 우리 모녀 생각 말고 부디 안녕히가시오.한 가지 당부 말씀 드릴 것은 내 나이반백이라 오늘이나 내일이나 죽을 날이언제 올지 알 수가 없지만 내 비록 죽고없더라도 내 딸 춘향 잊지 말고 백년기약하리다.""장모 너무 서러 마소. 홍진興盡)하면비래(悲來)하고, 고진(苦盡)하면,감래(甘來)라네. 오늘날 슬픈 이별이나중의 기쁜 만남을 기약함이 아닌가. 내년봄에 내려와서 자네 모친 데려갈 것이니그리 알고 너무 달달 들볶지 말게.자네 딸 춘향이가 금지옥엽이란 것은골백번 들어서 내 이미 알고 있고 나 도한춘향이를 깨어진 요강단지 모시듯 하고있다는 것을 자네도 번연히 알고 있음이아닌가. 내 설령 춘향을 사랑 않는다할지라도 자네 모녀 뿌린 눈물 가슴 간직아니하고 나 좋을 대로 놀아날 성부른가.내 허우대를 보게나. 내가 그만한덕목조차 갖추지 못할 볼상놈으로만때 아닌 입씨름이 다시 부리를 헐게되는가 싶은데 난데없는 방자란 놈 이마에땀이 노드린 듯해서 헐레벌떡 달려왔다."이보서 사랑님네들. 사랑도 좋지만 이게무슨 장난들이오. 사랑하면 이별조차이토록 오래시오? 잘 있거라 잘 가거라다시 오마 기다리겠소. 서로간에 두마디씩만 지절거리고 나면 짧아서 좋은 게이별이오.머지 않아 다시 만날 좋은 이별에 한 번서로 마주보고 웃고 나면 그만일 텐데오장육부 녹아나게 무슨 놈의 이별이심봉사와 딸년의 이별처럼 서럽고 길기도하오.대부인 행차가 벌써 오수역(鰲水驛)을지났으니 여기서 뒤따라 잡으려면 호달마찢어지게 되었소. 쇤네 여기까지되돌아오는데 벌써 불두덩에 가래톳이섰다오."이몽룡이가 눈물자국으로 지분거리는눈자위를 치뜨며 방자를 나무랐다."이놈아, 날 생각하여 되돌아와서 연통한건 고맙다만 생색 그만하거라. 아무려면 그사이에 불두덩에 가래톳이 섰겠느냐.불두덩에 가래톳이 선 건 네놈이 아닌 바로나다.""말 잘못했소. 불두덩 아리라 허벅지에가래톳이 섰오. 하긴 쇤네가 질탕한 방사도않았음인데 불구덩이 가래톳이서겠습니까.""이놈 엇따 대고 흰소리냐.""흰소리든 검은 소리개든 빨리 가기나애매한 쇤네더러 배행 소홀히 하였다고잡아 엎치고 등줄기에서 누린네가 나도록매찜질하시면 이틀 먹을 양식도 없는처지에 자리보전하게 되지 않겠니까. 쇤네자리보전하면 도령님께서 우리 식솔 먹여살릴라오?"이도령이 할 수 없이 나귀에 오르며,"올라가면 즉시로 방자편에 기별하리다."나귀에 채찍질하여 나는 듯이 딜아나니나르는 새와 같은 나귀 등에서 보면,청산도 우쭐우쭐 녹수도 얼른얼른 산자락얼른 끼고 돌아, 물길 건너 아득하게멀어지니 푸른 물에 놀던 원앙 짝을 잃은거동이요.해변에 놀던 백구가 빗속으로 떠나간 듯남원부중 가물가물 등뒤로 멀어지고감아도 눈을 떠도 선한 것은 오직 춘향의모습이었다.그린 듯 고운 맵씨 눈앞에 아른거리고낭랑하던 그 음성 귓가에 쟁쟁하니이도령의 마음이 금수가 아닌 이상 속편할리가 만무였다.그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말갈기를 적셔나귀가 비에 젖은 듯 후줄근하였다."얘, 방자야.""예.-.""맑은 하늘에 어인 비가 내린단 말이냐.""비가 내린다니 무슨 해괴한말씀입니까.""그러면 말갈기에 무슨 물이냐 .""그것은 도령님의 눈에서 떨어진 비때문입니다.""하기야 이몽룡이란 분은 이 세상에서딱한 사람뿐이지요.""그게 아니라 주제꼴이 미숙하고미련하다는 뜻이다.""불각시에 하시는 말씀 속속들이알아내긴 쇤네 또한 미숙이오만 말씀이밉상입니다.""사내 명색이 칠정치 못하게 눈물만 질질짜고 있었다니 이건 내가 칠칠치 못한 탓이아닌가.""질질 짜고 있었던 것이 칠칠치 못했다면그것은 도령님이 미련한 탓이 아니라춘향이 깊은 심지가 송죽과 같았던탓이었습니다."첫 정에 첫 이별이라지만 이별이 서러워지난밤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고 오류정까지모습을 곁에서 보자 하니 쇤네 또한오장육부가 녹아나는 듯 하였습니다.춘향의 건데기 눈물 보지 않았다면도령님의 눈물이 말갈기를 적셨겠습니까."이때 춘향이는 버드나무 등걸에 몸을의지하고 도령님 가시는 길 아득하게바라보고만 있다가 다시 바라보니 홀연사람의 형용은 사라지고 고즈넉한 산색만푸르렀다."향단아.""예.""내눈을 좀 닦아주련.""눈을 닦아달라시니 왜 그러십니까.""산코숭이를 돌아가시던 도령님의뒷모습이 문득 보이지 않으니 필히 이상한일이 아니냐."사라진 산자락 코숭이를 바라보다가,"사방을 둘러봐도 노을에 물든 산자락만고즈넉할 뿐 이젠 채찍 소리조차 들리지않습니다.""네 말이 너무나 야속하고 박정하구나.잘 좀 보아라.""야박하시다 한들 저 또한 보이지 않으니딱한 노릇입니다.""좀 더 보아라.""겹질이 싸인 싸인 산주름에 노을만빗기고 있을 뿐 요천 강물을 퍼다가 눈을씻는다 할지라도 이젠 보이지 않습니다.""이제부턴 무얼하고 지날까. 이곳에서부둥켜안고 울던 임은 어디 가고 보이지않는 것일까. 이런 속절없는 이별도있었던가. 나귀 몰던 채찍소리 아직 귀에살꼬.""아씨, 진정하셔요. 아씨께서 이토록애간장 태우며 울고 계시면 어머님간장인들 오죽하시겠소. 어머님 보아서라도눈물을 거두시오."집으로 돌아왔으나 사랑은 병이 되어장탄식 늘어놓으며 두문불출 임그리워하네. 부모같이 중한 몸이 천지간에없었지만 떠나간 낭군을 잊지 못해부모에게 불효되네. 가슴은 에이고 두눈에선 눈물만 흘리는 몇 달포가 흘렀을까.하루는 월매가 편지 한 장을 들고 구르듯달려왔다. 춘향이 반겨 하고 얼른 받아뜯어보니,춘향아. 천리상거(千里相距)하여 주야로상사(相思)로다. 노친슬하에 잘 있느냐. 이당사문안(堂事問安)안녕 하시다. 너와 내가백년을 언약하였을진대 구태여 해집지않아도 내 마음은 네 이미 알고 있고, 네마음 간절함을 내 또한 어이 모르고있으랴. 날아가는 새가 알고 마루 밑을기어가는 미물들도 알고 있음이다.그러나 날개가 없으니 새가 될수 없고일각이 난감하달지라도 이 천리길을어이꼬. 네 마음에 가진 것은 정녀(貞女)의매울 렬 자(烈), 우리들의 깊은 언약 지킬수 자(守)뿐이로다. 장차 만날 일이 있을것이니 날 매원(埋怨)말고 다소곳이기다려라.만단설화(萬端說話)를 어찌 이 좁은지면에 모두 적을 수 있겠느냐. 내 여기에입 맞추느니 너 또한 내키거던 그리하여라.서울도 사람 사는 땅일진데 나는 어이 못가는가. 허공을 우러러 망연자실로 앉아있는데 난데없는 한마디가 월매의 입에서떨어졌겠다."얘야, 어디로 오는 어음(於音)이냐."춘향이 어미 말 채 알아듣지 못하고되물었다."뭐라 하시었소?""어느 객주로 오는 어음이냐 하였다.""어음은 무슨 어음이란 말입니까.""그럼 편지만 달랑 왔다는 것이냐.""편지만 오지 않구요."월매의 눈시울이 상기되었다."이도령이란 놈이해의채(解衣債:화대)조차 보내지 않았다는것이냐. 내가 처음부터 깍쟁이 인줄 알고는심성 어디 가겠느냐."어미 월매가 실성을 하였는가 아니면돈에 상승을 하였는가. 춘향이 말구멍이막혀 대꾸조차 못허고 있는데,"그래 양반의 자식으로서 장안의갑부라고 떠벌이면서 여기서는 남의 딸을대리고 농탕쳐서 버려놓고 해의채는고사하고 삼베 짜투리 하나 보내지 않는철면피한 놈이 어디 있느냐.그놈 먹이고 대접하느라고 농 밑에감춰두었던 일백오십 냥을 먼지 하나 없이바닥 내고 말았다. 그런데도 무명 한짜투리 보내는 법이 없이 딱 잘라먹는후레자식이 어디 있느냐. 그놈의 자식날벼락이나 맞고 뒈지라지."눈앞이 아득한데 비록 부모일 망정가시처럼 거북하고 욕되는 터라,"어머니 그게 어디 말이요 쓰다 버릴농담일지언정 그런 몹쓸 말이 어디 있소부모님 뫼시느라 고초 겪을 도령에게 시게무슨 돈이 있겠으며 돈이 있어 보내주신다한들 무슨 염치로 그걸 받으리오.우리 두 사람 천생연분되어 합궁(合宮)한것이지 제가 들병이로서 살꽃 팔아 가용에보태려고 도령을 침석에 모셨던 것은아니었지 않습니까. 이 춘향이가 어머님의여식이 분명하다면 도령님은 하나뿐인사위가 아닙니까.사위는 반자식인데 자식에게 대접한식대(食代)를 받으려 하신단 말입니까.아니면 딸자식과 참석을 같이 하였다 해서화대를 받으리까. 도대체 어인 시샘이며나라의 왕이 초(楚)나라를 치려할 때아무도 감히 막아서지 못하지 않았습니까.그런데 하루는 어떤 시종이 나무로 만든새총을 가지고 후궁의 꽃밭에서 새를 잡고있다가 왕의 꾸중을 듣게 되었다지요. 왕의꾸중에 시종이 대답하였습니다.뜨락의 나무에는 메미가 앉아 노래하며이슬을 먹는데 버마재비는 당장 자기에게덮치려는 새가 뒤에 있는 것을 모르고매미를 잡아먹으려 하고 새는 또한 제가지금 견주고 있는 새총이 뒤에서 겨누고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이들은 모두자기들의 위급한 처지는 깨닫지 못한 체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있는 것입니다라고여쭙게 되어서 왕을 깨닫게 하였답니다.어머님과 제가 가계를 검소하게 잡도리힘쓰고 이웃의 침선감을 받아 삯바느질을알뜰하게 시행하면 가용을 쓰는 데도 큰불편이 없거늘 어찌 떳떳하지 못한 공것을바란다는 것입니까.""나는 공돈을 바란 적이 없다. 그놈이 내사위임이 분명하고 네가 또한 그놈의지어미임이 분명하다면 그것이 어찌 탐탁치않은 것이며 분수 밖의 것을 바란다는것이냐. 지아비란 고려적부터 지어미를공양해 왔다는 것을 글줄이나 읽었다는네가 전혀 모른다는 것이냐.""그러하지만 도령께서는 아직 글을 읽어급제를 바라보는 처지로 당신의 섭생조차부모에게 의탁하코 있음인데 어찌 지어미와장모까지 공양할 수 있는 재물과 돈을 지닐수 있겠습니까. 개를 쫓아도 달아날 구멍을말고 건너가세요.""너로 말하면 과연 요조(窈窕)와숙녀(淑女)가 따르지 못할 국량과 얌전을지녔고, 태임(太壬)과 태사(太師)가 넘보지못할 현부인(賢婦人)의 온당함과 자질을갖추었구나.그러나 요조숙녀의 국량이든 태임태사의자질이든 나물죽이라도 먹어야 산다는 것은부처님의 뜻이었고 장가 든 남정네가 그계집의 섭생과 살림두량을 도맡아야 한다는것은 단군 조상 이래로 변함없었던삼신할미의 가르침이다.""옛말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하루,장오자의 제자였던 구작자는 스승에게이르기를, 방금 가르친 것이 저에게는 매우인상깊으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도리는 성인들도 남들에게 깨우쳐주기어려운 것인데 내가 아는 것이 없이 어찌잘 가르칠 수 있으리오.너는 그 조급하기가 닭의 알을 보자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어 그 시각을 알려하고 화살을 보자 새고기를 먹으려하는구나. 닭의 알을 보고 수탉이 홰치는소리를 들으려 하니 병아리도 내리지않았고 또한 수탉일지 암탉일지도 모르면서어찌 시각을 짐작할 수 있게 하겠으며 아직활에 살을 메기지도 않았음이니 새를 맞힐수 있겠는지 없겠는지도 모르면서 고기를먹으려 한다고 꾸짖었습니다.설령 어머님이 조급할지언정 가다리는이덕을 갖추시는 것이 미련한 딸을 둔어버이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후예로 공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이한헌제 때 북해상(北海相)으로 있었기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공북해(孔北海)로부르기도 하였다.그런데 조조가 오십만 대군을 풀어남하하여 유비와 손권을 치려할 때 공융은반대하여 조조를 만류하였다. 조조가고집을 부리며 듣지 않았다.그러자 공융이 몇 마디 불평을 하였다.이때 공융과 반목하고 있던 치려라는사람이 그것을 조조에게 고자질하였는데조조는 곧장 군사를 풀어 공융의 식솔을체포하여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그런데 공융이 채포될 때 그의 여덟 산난 아들과 아홉 살 된 아들이 아무일도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마주앉아 장기를빨리 피신하라고 성화를 부렸으나 두아들은 역시 태연자약하면서 이렇게말했다.새의 둥지가 뒤집혀지는 판국인데 그둥지 속의 알이 어찌 깨어지지 않겠습니까.네 낭군이란 그놈이 어미와 너를 여기에팽개치고 장달음을 놓듯 한양으로직행하였고 또한 당도하여 일자상서를적어보냄에 헌 삼배 짜투리 한 가지 보내지않았다는 것은 공융의 새둥지가 부서진것과 다른 것이 무엇이며, 공융의 어린 두아들이 새둥지 뒤집혀진 것을 깨닫고 그아비와 함께 잡혀가서 죽었듯이 너와 나역시 그것을 깨닫고 우리 살 길을 찾는것이 현명한 방책이 아니더냐.차마 공융의 아들들처럼 죽을 수야 없는놈을 잊어버려라.""어머님,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차후부턴 하지 마소. 도령님을잊어버리다니요. 길거리에서 오가다가 만난뜨게부부일 망정 한번 맺은 인연을 무쪽베듯 할 수 없고, 도령과 같은기남자(奇男子)와의 인연을 자반고등어뒤집듯 먹 보기로 한다면, 저는 준수한사내를 만날 때마다 살송곳을 꿰지 못해안달하는 음탕한 논다니계집에 더할 것이있겠습니까.""그 말 한번 알과녁을 맞히는구나. 그럼너와 그놈이 길거리에서 오다가다 만난사이였지 삼신할미가 점지해서 만난사이라더냐.""광한루에서 만났지 않았습니까."내노라하는 바람둥이 한량들이 시조가락읊조린다 핑계하고, 너와 같은 풋조개나줏으러 다니 는 한길바닥이지, 그곳이들어앉은 대가댁 사랑이냐 아니면별당이라더냐. 입은 가로 찢어져도 침은바로 뱉으라 하였다."제갈량(諸葛亮)이 유현덕(劉玹德)을만난 것도 길바닥이랍디다.제가 이 누추하고 옹색한 별당에들어앉아 고리타분한 글이나 읽으면서소일하였다면 도령과 같은 준수하고 비범한낭군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꼴에 밤똥 싸지른다더니 널 두고 하는말이고, 뺑덕어미 밉다니까 엿 사먹어가며서방질이라더니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그래 내가 걸출하시다는 네 서방 혼연대접사천(私賤)일백오십 냥을 먼지 한 톨남기지 않고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축내어거떨내고 만 것은 개구리가 언덕에서떨어진 양 하자.장차 우리 모녀 툭수리 차고거리동냥하게 생긴 것은 염두에 두지않았더냐. 미련하게 뚝심으로 참고 견딜 게따로 있지 뱃구레 속에서 거위가 깨끼춤을추는데도 뚝심으로만 견딜 작정이냐.뚝심만 힘이 아니다. 슬기로운 것도힘이고, 분별이라는 것도 힘이고경륜이라는 것도 힘이다.""어머님, 사천 일백오십 냥 거덜낸 것이그토록 부아통 터지고 쓰리다면 제가오늘부터 방적과 삯바느질로 날밤을지새우더라도 벌충을 하겠습니다."냥이든지 네 벌충하려거든 벌버둥쳐봐라만그 돈 벌충도 쉽지 않으련다.""일백오십 냥이라더니 언제 사천 냥으로불어난 것입니까?""네가 사천이라 하였지 내가 사천이라하였더냐. 물귀신 삼시랑이 들었느냐 왜내게 뒤집어씌우느냐.""사천 일백오십냥에 딸과 사위를팔려드시는 게 아닙니다.""말끝마다 일백오십 냥을 대수롭지 않게여긴다는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기나하는냐.""어떤 돈인데요.""네 아비 성참판 생시 때 내 앙탈과성가심에 배겨내지 못하다가 본가에게으름장 놓고 공갈하여 빼앗다시피해서공양한답시고 혓바닥으로 씻은 듯이날려버리고 말았으니 복장치고 자빠질노릇이 아니냐.본가에서 이런 일을 눈치라도 체게된다면 아니래도 그 심술굿은 여편네가한걸음에 달려와서 무슨 분탕질 을 하게될지 뉘가 알겠느냐. 아니래도 서방잡아먹었다 해서 앙갚음할 빌미만 찾고있는 판국인데, 그 돈을 그 바람둥이 놈을공양하는데 깡그리 탕진하고 말았다는 것을눈치채게 되면 모르긴 해도 내 머리채를뽑아버리려 할 것이다."옛말에 말이 바로 씨가 된다 하였고,방귀가 잦으면 똥싸기 마련이라 하였다.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좋을 말은 애당초입초에 올려 삼이웃이 짜하도록 소문 나지다스리는 국량이 되는 것이다.월매 비록 성미 팔팔하고 세상 견문 있어경위가 밝다 한들 무지렁이 사내 성참판의국량을 따를 수 없었고 춘향 비록 글 잘읽어 슬기로운 심성을 가졌다 하나 아비없는 자식이란 손가락질을 모면하기힘들었다.그 아비 성참판 죽고난 뒤 집안 가계제반사를 월매 혼자 주선하다 보니 집안에두서없고 사람 사귐에 등한한 터라 이웃과소원하게 된 터였다.그러던 중 또한 이도령과의 생이별로모녀간에 걸핏하면 삼이웃이 들릴 만치입씨름이 잦아 아우성소리가 아침 저녁으로담장을 타고 넘는지라, 이웃의 할 일없는여편네들과 악다구니들은 밥만 먹고나면돌각담에 붙어서서 발뒤축을 올리고 집안을엿보기 일삼더라.그것은 모녀간에 주고받는 하찮은입씨름에도 걸핏하면 마당으로 쭈르르달려나와 복장거리를 일삼는 월매의 상없는꼴을 구경삼자 함이었다.월매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것을모르고, 내친 김에 성참판 살아 있을 때,앙탈과 공갈로 성참판 본가의 재물을탈취하다시피 하였다는 사실을 털어놓게되었고 또한 본곁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되면 달려와서 분탕질하리라는 말도 서슴지않았던 것이다.말이 씨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두고 하는 말이다. 담장 너머에서 두모녀의 입씨름을 엿들었던 이읏의 자발없는시작한 것이었다.하루는 어떤 여편네가 윌매집의 대문을발길질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는나무비녀가 꽂혀 있었고 삼베 저고리몽당치마에 뒤축 떨어진 짚신을 발에 꿰고있는 그 여편네의 초췌한 형용이 흡사메추리를 거꾸로 말아맨 듯 남루하기 그지없었다.그러나 그녀의 양미간에 서려 있는적의는 살천스럽기가 서릿발에 방불하였다.면판은 남상져서 월매와 다름 아니었고대문을 걷어차고 있는 발길질도 그냥 두면당장 대문을 부술 것 같이 세력이드세었다. 입가에 번진 허연 침버캐를 보자하면 월매집에까지 당도하는 동안 분김을참지 못하여 허둥지둥 숨가쁘게 달려온 게방에 모잼이하고 팔베개로 잠시 새우잠을자고 있던 월매가 대문 밖의 소연함을눈치채고 일어나 미닫이를 열고 대문쪽으로 바라보며 다짜고짜 호통을 쳤다."누구냐. 어느 놈이 남의 집 대문에다성화를 먹이고 지랄이더냐."그런데 대문 밖에서 돌려오는 대답이무척이나 괴이쩍다."이년 봐라. 벼슬아치며 건달들에게살꽃이나 팔며 연명하던 천하에 없는상계집이 말버릇 한 가지는 방불함이대갓집 안방마님이 아니냐."경황중이라 귀여겨듣지는 않았지만 대문밖에서 이죽거리고 있는 말대답이 도저한터라 성미 팔팔한 월매 또한 듣고만 있을수 없었다.남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무턱대고악증이냐. 소이가 어디에 있는지 내 알 바아니로되 대문간에서 썩 물러나지 않으면,당장 달려나가 모가지를 돌려 앉히리라."이년, 냉큼 문 열지 못하겠느냐. 내가어찌해서 여기 와서 악증을 부리고 있는것인지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년 또한모르지 않을 터. 창피 톡톡히 당하기 전에기어나와서 빗장부터 벗겨라.""내게는 네년 같은 종반간이나일가붙이는 일찍이 둔 적이 없으니다리몽댕이 작신 분질러 놓기 전에 썩물렀거라.""아니래도 본 데 없는 네년이 작신분지를까 해서 제비행전 날렵하게 졸라매고왔으니 내 다리 부러질까 겨워 말고"저년이 색에 주려서 실성을 하였다.상승을 하였나. 대낮부터 남의 집 대문앞에 와서 자꾸만 벗기라고 짓조르고 드는거조가 아무래도 불두덩이 근질근질하여실성을 한 게로구나."집안에 있던 월매의 이죽거림이 거기에이르자, 대문 밖에서 성화를 먹이고 있던여편네는 화가 꼭두까지 나서 입에선게거품이 일었다."이년 입정 사납게 놀리지 말고 어서 문열어라. 네년의 배짱이 드세다 한들또아리로 샅 가리기다. 네년의 간활한이간질로 궁도에 빠져 목숨부지조차어려워진 내가 가만있을 성 불렀더냐. 어서문 열어라 이년.""엇따 대고 호년이 낭자한가. 상승을부리느냐."그러나 입씨름이 길게 갈 것 같았던문밖의 여편네는 젖먹은 힘까지 합쳐어깨로 대문을 들이받었다. 그 사품에질러둔 빗장은 부러져 대문은 열렸고,부인네는 뜨락 안으로 들어와 제 힘에 겨워나둥그러졌다.그러나 흙투성이가 된 부인은 금방 발딱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마루로 나선월매를 향하여 삿대질을 하였다."낮짝에다 물찌똥을 내갈길 년. 엇따대고 대거리가 낭자하냐. 이년, 마당으로썩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혼쭐을 뺄 년."상종은 없었지만 면분은 없지 않았다.눈을 씻고 바라보니 성참판의 본실마누라였다. 그런데 이 여자가 무슨년이나 지난 지금에 달려와서 분탕질이란말인가.인연을 끊고 지낸 지가 십칠 년이지났건만 무슨 까닭으로 난데없이 뛰어들어물찌똥을 갈긴다 위협하고 삿대질로악증이란 말인가. 용이 개천에 떨어지니각다귀가 엉겨붙는다더니 이런 사정을 두고하는 말인가.호랑이 없는 골짜기에 여우가왕노릇이라더니 이를 두고 이르는 것인가.너무나 어이없어 우두망찰 바라보고만있는데 심통이 멱까지 차오른 본실 마누라쭈르르 마루로 뛰어 올라 월매를 딴죽걸어넘어뜨리며 침을 튀겨 매원한다."이년 공방살이 오 년 동안 오늘 있기만바라고 이만 갈고 있었느니라. 내 서방기어다니면서 희학질에 색정을 풀며 열략을즐길 제, 나는 독수공방에 틀어박혀 동전을굴리며 그 긴긴 밤들을 뜬눈으로지새웠느니라.그런데 그 서방을 지리산에서 잡아먹고도성이 차지 않아 그 알량한 재산까지늑탈이었더냐. 네년의 방에 놓인 사방탁자,문갑, 연상(硯床), 장침(長枕),안석(安席), 방침(方枕), 요강하며,가께수리, 경대, 삼층장, 반 닫이, 화로가모두 네년의 간특한 앙탈로 참판의주머니를 발긴 것이 아니냐."딴죽걸려 마루에 넘어지는 조롱거리되고엉덩방아 찧어 창피를 당하긴 하였으나발딱 일어선 월매가 듣자 하니 가관이었다.언청이 아가리에 토란 비어지듯 난데없어말인가.더욱이나 방과 마루에 놓인 기물들을하나하나 손꼽아가며 그 모두가 성참판의주머니를 발긴 재물이라니 어림 반푼어치도없는 소리였다. 성참판과 열락을 즐기고있을 동안 명색 본실인 최씨부인이 공방을지키며 앙갚음할 날을 이를 갈며기다렸다는 것은 같은 계집사람의심정으로써 그럴싸한 것이란 생각은들었다.그런데 십칠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해묵은 재산싸움이란 것은 아무리 골똘하게생각을 해보아도 터무니없는 행패일 수밖에없었다.양미간에 살천스런 적의를 담고 월매를노려보던 최씨는,마당으로 끌어내어라."땅땅 벼르며 게거품을 튀기는 꼴이 한두마디 말로는 사태가 좋게 가라앉을 조짐이아니었다. 월매도 처음엔 최씨에게하오말로 대접하려 하였으나 뒤축을 끓리며땅땅 벼르고 있는 최씨가 밉살 스럽기시작하면서 하오말은 쑥 플어가고 반말로대거리를 하였다."이 아픈 날 콩밥 한다더니 그 짝아닌가. 아니래도 우리 두 모녀가 조석끓여대기조차 곤궁하여 십란한 판국에가재도구까지 밖으로 끌어내라니 무슨끙심으로 상승을 해서 냅뜨고 있는지몰라도 까닭이나 알고보자.""까닭을 알고 봐?""왜 억울한가? 남의 집에 무단히부리고 있는 주제를 몰라서 반문혀?"눈자위가 시뻘겋게 상기되고 목덜미에핏대가 곤두선 최씨는 몸서리치며 어금니를갈고 나서, "이년이 남의 멀쩡한 두 다리를작신 분질러 놓겠다고 다짐들 때 호기는어디 가고 이제 와선 말의 졸가리를 따지고들겠다는 게야.네년의 안방 윗방 마루에 놓여 있는 이번질번질한 가재도구 모두는 성참판인지뒈진 참판인지 모두 그 사내의 등골을 빼고발겨서 늑탈한 재산이라고 네년의 주둥이로실토정을 하지 않았더냐. 그래도 알아듣지못하겠느냐?""아주 모함잡을 작정을 하고 달려온게로구만. 고려적 최충헌의 치하에서도이런 억울한 지경을 당한 인사들이 있을까.있었으며 또한 설사 내 간활함과 앙탈로죽어 없어진 개구멍 서방으로 주머니를발기었다 할지라도 그건 이미 십칠 년 전의일이 아닌가, 십칠 년 전의 일을 알고도가만 엎져 있다가 지금에 이르러 난데없는행티를 부리고 나서는 괘씸한 심뽀는어디에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것네.""네년의 주둥이로 실토정을 하기 전에는재물을 발기었는지 늑탈하였는지 증거할것이 없었으니 가만 있을 수밖에.""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왜 실토정을 하였는지 허물만 잡지 말고소상하게 밝혀 보시지.""구태여 미주알고주알 들먹일 것 없다.저 사람들께 물어봐."최씨부인이 소매를 들어 가리킴에 월매의수밖에 없었는데 최씨의 손가락은 담장위에 조롱박 열리듯 조롱조롱 턱이 울라와있는 이웃 구경꾼들의 면상을 가리키고있었다.그러나 최씨가 담장을 가리키자조롱박처럼 열려 있던 사람들의 머리는흡사 익은 감 떨어지듯 아래로 쓱쓱 빠져숨어버렸다. 눈치 빠른 월매는 그제사가슴이 뜨끔하여 속으로 아뿔싸 하였다.며칠 전 춘향이와 다투던 중 무턱대고입초에 올려 지껄인 언사들이 생각났기때문이다. 당장 꾸어댈 말이 궁하게는되었으나 얼토당토않게 최씨부인 불쑥나타나 분탕질하고 있다는 것에 월매는참기 어려웠다."내가 뭐라고 하였던 그 모두가 지난 일.계집이란들 이녁의 분탕질은 결코 용납치않으리오.""이년이 어따 대고 해라로 막보기냐.""그럼 이녁보고 해라로 막보기지 하오로공대해서 대접할까.""이년아, 넌 첩실이고 난 본실인데어찌하여 첩실 주제에 감히 본실 앞에서버르장머리없이 해라가 낭자하냐.""본실도 본실다워야 공 대접하든지하게로 대접하든지 양단간에 귀정을 짓지.여항간에 들어앉은 여편네가 한길가에나와앉은 상계집보다 본데없고우락부락하고 왈패스러운데 감히 하오대접받기를 바란다니?""이년, 이제 보니 제법 콧등이 세구나.주둥이에다 버선짝을 틀어막아 버릴라.궁상을 하고 있을 망정 내가 본실인 것은남원부중에 모를 사람이 없을만치 엄연한데엇따 대고 대중없는 박대냐.""흙무지 베개하고 거적에 싸여 자는 딱한처지라 하더라도 체통을 지키는 여편네라면층하를 두는 연하일 망정 불량스런 꼴을보이지 않는 것이 대가댁 마님의국량이거늘 이 무슨 남세스런 꼴인가.""이년 봐라. 아직 말버릇 고치지 못했군그랴. 화낭년 수절타령 한다더니 상년주제에 국량 타령하고 있네."결기 솟은 최씨가 열려진 대문으로달려나가더니 이웃집 방앗간으로 달려가서방아공이를 빼들고 다시 집안으로달려들었다. 그 이르딱딱 벼르는 모습이적지않게 불안하였으나 월매는 살천스런하였다. 방아공이를 어깨에 척 올려맨최씨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물었다."이 무엄한 년, 네년이 이도령인가 뭔가하는 그 오입쟁이에게 뜯겼다는 일백오십냥을 내놓을 터? 그런 오입쟁이에겐일백오십냥을 미친년 물 퍼쓰듯 하면서궁도에 빠진 네 본실에겐 한푼 아니내놓는다면 길을 막고 물어봐도 네년이몹쓸 년이란 말을 듣게 될 터 어서 내놔.""못 내놓겠소.""좋다."최씨가 방아공이를 번쩍 들어서 마루 위반닫이 위에 얹어 놓았던 용충항아리 두개를 일 같잖게 박살을 내었다. 그릇조각이박살나서 마루바닥 위로 어지럽게흩어졌다.항아리에 담겨 있던 낱알 곡식도 좌르르대청 위로 쏟아졌겠다. 월매의사천(私賤)마견이 대청으로 쏟아졌으니강단이 있다는 월매도 그만 까무라쳐기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최씨부인은 그순간 눈자위가 뒤집히고 말았다.사실 최씨의 허우대는 남상져서계집사람치고는 우락부락하였지만 배를주려 수척한 기색은 완연하여 보기에 딱할지경이었다.자세히 살펴보면, 부황난 얼굴에마른버짐 투성이었다. 얼굴에 저승꽃이 필나이도 아년, 터에 마른버짐이 낭자히피었다는 것은 끼니 거르기를 흥부네집굶주림과 짝이었다는 것을 증명함이었다.그런 처지임에도 왜자한 폼력을 지니고워낙 억센 골격을 타고난 덕분의 소치였다.그런 처지에 박살난 항아리에서 쏟아지는곡식을 보자,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없었다.지난날, 월매에게 홀딱 빠진 성참판이본실의 궁핍한 가계는 아랑곳없이 문턱이닳도록 월매집을 들락거렸던 오 년이란긴긴 세월을 싸늘한 공방을 지키는 괄시와서러움을 감내하면서도 입정한 번 해프게놀려 월매를 헐뜯은 적이 없었다.그랬던 것은 미련하고 우직해서가아니었다, 성씨 가문에 시집 와서 자궁이기박하여 일점혈육인들 떨궈주지 못했다는가책이 없지 않았고, 또한 씨앗을 두고강새암하는 것도 지체가 한미하지 않은가문의 필부로서 칠거지악을 자초하는체통을 지키는 일로만 생각해 왔던것이었다.17년 전, 성참판이 덜컥 목숨을 거둬북망산도 아닌 지리산에 묻히게 되자,박대만 당해왔던 본설로서 월매에게앙갚음할 빌미는 충분하다 하겠으나 닭쫓던 두 마리 개가 지붕 쳐다보며 서로싸우는 격이라 이웃간에 창피스런 꼴만보이겠다 싶어 그 또한 참기로 하였었다.그러나 성참판의 주머니를 발긴 일백오십냥을 서울에서 왔다는 오입쟁이에게 뭉땅털렸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더 이상 참고견딜 재간이 없었다.하루 한 끼는 나돌죽으로 그리고 두번째끼니는 허기를 잠으로 때우는 궁핍을 겪고있음에 용충항아리에서 쏟아지는 곡식을없었다. 이놈, 두 벌 죽임을 당해도 마땅할성참판이란 놈이 논뙈기 밭뙈기를 모두팔아 월매란 년 가랑이 속에다 모두 처박은것이 틀림없었다.눈에 핏기가 곤두선 최씨는 그 순간방아공이를 어깨짬에다 척둘러메었다.그리고 뒤주 결에 있는 찬장을 겨냥하여힘껏 내려쳤다. 와지끈 소리가 터지면서찬장 귀퉁이가 모양 있게 부서져 나갔다.그 사품에 최씨부인은 대청에 쏟어졌던낱알 곡식 위를 헛디뎌 제 사날로 덜컥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까무라친 월매가 딴죽을 걸어서 넘어뜨린것도 아니었고, 제 힘에 겨워 쭈르르넘어진 것인데도 스스로 창피하고 무안하여최씨부인은 더욱 심통이 솟았다.하반신을 추스른 최씨가 찬장 곁에 있던탁자를 겨낭하고 마악 방아공이를 다시둘러메려는 찰라였다. 어디서 간곡한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어머님, 고정하십시오."어디서 둘려오는 난데없는 흰소리인가해서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때 최씨부인은마당 가운데 엎뎌 있는 춘향을 보았다.콧등이 땅에 스리도록 고개를 조아리고있는 것은 분명 먼 빛으로만 몇 번 본 적이있었던 춘향이었다.그런데 어머님 고정하시라니 어머님은누굴 가리킴이며 고정하시란 말은 대청에있는 두 사람 중에 누굴 가리키는 것인가.한 사람은 까무라쳐 누웠고 한 사람은방아공이를 쳐들고 있음인데 도대체있음인가. 화증이 명치 끝까지 치민최씨부인이었지만 춘향의 말이 어쩌면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직도 하여 물었다."너 시방 어머님이라 했겠다.""예, 어머님.""도대체 누굴보고 일렀더냐? 나보고 한말이냐 아니면 여기 거짓 까무러진 체하고엎뎌 있는 이 여편네를 가리킴이냐.""물론 방아공이를 들고 계시는 어머님을가리킴입니다.""날 보고 어머님이라 했더냐? .""예, 어머님."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최씨부인은대청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계집사람으로 이승에 태어나서 육십평생을살아올 동안 처음 듣게 된 어머님이란추스려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일찍이 피붙이란 낳아본 적이 없는기박한 팔자에 살아 평생 들어볼 가망이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어머님이란 그한마디를 스스럼없이 내뱉고 있는 춘향이가바라보는 앞에서 방아공이를 내던진최씨부인은 퍼질러 앉아 흐느끼기시작하였다.속내같아서는 마당으로 와락뛰어내려가서 춘향을 끌어안고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문득 열적에 그냥 퍼질러 앉은 것이었다."우리 성씨 가문의 입씨름이 삼이웃에조명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것입니다. 그 동안 어머님께서 받으신괄시와 오욕이 오죽 했겠습니까만 잠시춘향의 그 한마디가 또한 아담하고가긍한지라 최씨는 애간장이 아리다 못해쓰렸다. 그 나이 열 여섯이 될 동안 단한번인들 상종이 없었던 자기를 두고거침없이 어머님이라고 불러주었을 뿐더러지난날에 자기가 겪었던 괄시와 오욕을또한 쓰다듬고 있으니 그 국량과 슬기가또한 육십줄에 든 최씨가 감히 따르지 못할것이었다.흐느끼고 있던 최씨는 그때 식지가락을내 뻗었다. 그리고 담장 위에 대추나무에대추 열리듯 고개를 디밀고 있는구경꾼들을 가리켰다."이 집에 무슨 구경거리 났소? 댁내들은생업도 없으시오? 각자 돌아가서 생업에진력들 하시오. 신임 사또 도임을 경하하는파다합디다. 어서들 가보소."환곡 퍼내준다는 말이 새빨간헛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일이었다. 걸핏하면 환곡을 낸다는 소문이짜하게 퍼지곤 하여 시겟자루를 쥔세궁민(細穹民)들이 관고(官庫) 앞에 비내린 뒤 방천둑에 출남생이 늘어서듯줄래줄래 늘어섰던 적이 한두 번이아니었지만 그때마다 허황된 소문이었을 뿐단 한 번도 그 관고의 문이 열렸던 적은없었다.도임하는 사또마다 관곡을 축내어벼슬길에 현달할 뇌물로 삼았고, 또한착복하고 횡령하여 공덕비나 세우고 제가문의 권속들 뱃구레만 채워온 터라창고는 엄연하였지만 그 속에 곡식섬이도임한다거나 관원들의 뇌물 착복으로부중의 민심이 흉흉해질 때면, 밑도 끝도없이 관고를 헐어 환곡을 낸다는 소문이파다하곤 하였다.그래서 최씨가 불쑥 내뱉은 말을 믿을사람이 없었지만 개중에는 긴가민가하여시갯자루를 가지러 집으로 달려가는 축들도없지는 않았다. 속이고 속는 것이 몇백번이나 거듭되었지만 이번에는 허황된소문만은 아니겠거니 해서 허행할 셈 잡고관고로 달려가 보려는 것이었다.그러나 대다수는 아랑곳 않고 그대로담벼락에 붙어 서서 윌매집 난장판 구경을놓치지 않으려 하였다.그때 최씨는 부엌으로 달려가는 짓이었고춘향은 대청으로 올라가 기진하여 쓰러진갈아서 입속으로 흘렸다. 부엌으로 내려간최씨는 물 담긴 옹가지를 들고 나오는가하였더니 담장 위에 늘어선 사람들에게물벼락을 안기는 것이었다."대저 이웃집 아귀다툼과 남의 집 불난것은 구경거리 중에도 으뜸이라 해서끼니를 굶고서라도 볼 만한 것이라 하였다.그러나 망신스러워서 이제 그만 가시라고빌고 드는데도 아니 가고 해죽 해죽성가시게 안을 채우는 못된 염치는물벼락은 고사하고 똥바가지를 뒤집어써도어디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다."물벼락을 뒤집어쓴 구경꾼들이 투래질을하며 하나둘 담벼락에서 떠나자 끝까지살천스런 눈으로 노려보고 있던 최씨부인이대청으로 올라왔다.춘향이와 향단이가 대청에 쏟아진 쪽박과깨어진 이징가미들을 치우느라 부산하였다.대청으로 올라선 최씨는 내친 걸음으로미닫이문을 본때 있게 열어붙이고 방안으로들어가서 좌정하였다."얘, 향아."대청에 쪼그리고 앉아 낱알 곡식을헤아리듯 알뜰하게 함지에 주워담고 있던춘향은 뱀 만난 여치처럼 화들짝 놀라일어서며 <네> 소리 길게 대답하였다."너 이리 오너라."섣달 자리끼같이 차가운 분부에 가위질린 춘향이는 땅이 꺼질세라 뒤축 들고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최씨 앞에 가서조용히 좌정하니, 그 모양새가 마치 가을날여울물에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가없고최씨의 입에서 떨어지는 한마디가 심상치않더라."당장 행장을 꾸려라.""어머님, 불각시에 행리를 챙기라니오.어디로 가라는 것인지요.""가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우리집으로 가자는 것이다. 네가 나를 가리켜어머니라 하였고 나 또한 그 말이 낯설지않아 반색하였으니 너는 내 여식이틀림없고 나 또한 네 어미겠으니 우리 모녀더 이상은 남의 집에 와서 분탕질할 까닭이없지 않느냐, 내가 상관도 없는 월매란여인네의 집에 와서 낭자하게 몽니를부리고 세간살이를 박살낸 것은 남의 집의엄연한 여식을 가로채어 한양 간놈팽이에게 팔아먹은 죄값을 응징한 것이니내가 앙갚음을 하려면 이 집에다 불을질러도 못 다할 설분이겠으나 채통에똥칠할까 해서 이쯤에서 화증을 삭히기로하자. 저 여인네가 이 분탕질을 빌미 잡아섣불리 관아에다 고변을 한다면 또한살풍경한 꼴을 당하게 되리라."고개를 들어 최씨를 쳐다보는 춘향의 두눈망울에 고인 것이 눈물이라, 심통이멱까지 차오른 최씨부인도 측은하기 짝이없었으나 단김에 쇠뿔 뽑더라고. 차제에본때 있게 오금을 박았다."네 성이 뭐냐?""네 성가(成哥)이옵니다.""성가가 분명하렸다?""네, 어머님.""네 가문인. 성씨댁최씨 딸 춘향이로 이름이 올라 있지 월매딸춘향이라고 적바림한 곳은 눈을 씻고 봐도찾아볼 수 없었다.네 아비 성참판이 비록 오줄없고몽매스런 시골 토반의 처지라 하였으나열명길로 사라진 이후에 이런 아귀다툼이벌어질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호적단자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잡도리한 터다. 사리가이러한즉슨 각골 명심하고 행리 챙겨집으로 가자는 내 말에 배알이 뒤틀릴일이라도 있더냐?""아닙니다.""그러면 어째서 본데없이 상계집처럼멀쩡한 몸뚱이를 뒤틀며 까닭없이질금거리고 있느냐. 아니면 집으로 가면굶어죽을까 해서 딴청 피워 날 빼돌릴최씨의 눈초리가 마뜩찮음에 춘향은 다시한번 고개를 조아리고 나서," 제 주제가 비록 미흡하여 싹수가 없다하나 부전조개 이 맞듯이 빈틈없고온당하신 어머님의 말씀 아로새겨 듣고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곁방에서 향단의조섭을 받고 있는 어머니 또한 저를길러주셨으니 그 은혜도 태산에 비견해서미흡함이 없을 것입니다.사람이 짐승과 같지 아니한 것은 그아비와 어미의 형용을 마땅히 분별하고, 그고귀한 뜻을 받들어 귀갑으로 삼을 수 있는염치와 슬기를 지녔기 때문이아니겠습니까.옛말에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지붕을위에 앉아 있는 갈가마귀조차 사랑하게미워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어머님께서저를 혈육으로 여기시어 어여쁘게여기신다면,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 역시아담하게 여기시어 고정하시는 것이 도리라생각하여 주제넘은 말씀드리니 진노를거두십시오.진노하심이란 한 쪽박의 물로 한 수레의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는 어리석음과 같지않겠습니까.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공자의 제자였던 자로(子路)가 있었답니다.자로는 체구가 우람지고 용력이 셀뿐만아니라 의협심이 있어 아주 용감한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용감하기만하고 지모가 없이 거친 자로보다는 총명한안회(雁回)를 더 총애하였지요, 그래서자로는 속으로 은근히 불복하였습니다.요량으로 스승님이 만일 대장군이 되어삼군을 지휘하신다면 누구를 가장 이상적인조수로 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공자는 적수공권으로 호랑이를 잡거나 배도없이 물을 건너려는 것을 경박스런모험이다.내가 요구하는 사람은 슬기와 지모를가지고 조심하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어머님의 앙갚음은 한때 신명풀이나 설분은되실지언정 자칫하면, 자로의 경박스러움과짝이 될 가망이 없지 않으니 모쪼록 분기를삭이시고 좌우를 살피시는 국량을 보여주십시오."아직 나이가 어리고 견문없는 아녀자라하지만 차근차근 개어올리는 말주변이며소견도 그럴싸한지라 최씨부인 시큰둥한말구멍이 막히고 말았다. 달리 꾸어댈 말도마땅치가 않았지만 근본적으로 괘씸한 것은월매였지 춘향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비록 계집아이일지언정 성참판이 이승에떨구고 간 유일한 피붙이가 아닌가. 게다가그 소견과 의표를 찌르는 말주변이글줄이나 읽었다는 산협고을 선비쯤은 뺨칠정도였으니 춘향이가 사내자식 못 된 것을개운찮아할 까닭도 없었다.대청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춘향의말을 듣고 있던 최씨부인은 그 순간 똥본개처럼 엎어질 듯 뛰어가서 섬돌 위에쪼그리고 앉아 있는 춘향의 어깨쌈을게걸스럽게 휘잡아 안았다."그래 내 딸 춘향아. 내가 해망쩍어 너의깊은 가슴속을 헤아리지 못하고 삼이웃에네 국량이 어찌 그토록 소명하고 너름새가있단 말이냐.남원부중 골골샅샅을 서캐 잡듯 뒤진다한들 너만치 개자한 인물을 찾아내기 쉽지않을 터, 하늘이 무심치 않아 천둥벌거숭이같은 내게 너와 같은 혈육을 점지하였구나,돌확 깊은 방앗간에 주둥이 긴 개가든다더니 바로 너를 두고 이른 것이로다.주림과 번뇌로 이십 년이 넘도록 공방을지키며 비 맞은 수탉처럼 후줄근하게살아왔더니 이제 와서 너를 만나게 되니 내팔자에도 쨍하고 해뜰 날 멀지 않았다는징조로다. 어서 가자. 냉큼 가자. 이 집은우리 집이 아니다.""이머님 분부 따라 거행하겠습니다만며칠 말미만 주신다면, 혼절하신 생모의"집으로 가도 구완이야 될 터이니 어서가자. 주제넘은 향단이가 있으니 너의 생모조섭쯤이야 앉아서 떡먹기가 아니겠느냐."최씨 품에 끌어 안겨 어쩔 줄을 모르는춘향을 잡아 일으키는 일변 정주간 문간살뒤에 숨어 줄곧 이 애꿎은 사태를 엿보고있는 향단에게 하는 말이,"얘 향단아, 너도 냉큼 채비하여 나서지않고 뭘 꾸물대고 있느냐. 바늘 가는 데 실아니 가면 구색 맞지 않는다는 것은 견문없고 미련한 네년인들 모를 리 없을 터,대중없는 게으름 피지 말고 냉큼서둘러라."서슬 시퍼런 최씨부인 분부에 가위 질려내키지는 않겠으나 썩 나설 줄 알았던향단의 말대꾸가 가당찮았다.때 아닌 말대꾸에 최씨부인 눈이휘둥그레졌다."시방 뭐라 했더냐.""쇤네는 아니 간다 하였습니다.""방자한 것, 바늘 가는 데 실도 가자는데무슨 말대꾸가 개차반이냐."정주간 밖으로 두어 발싹 앞으로 썩나서고 있는 향단의 거동은 공손하였으나말대꾸는 아금박찼다."제가 받는 품삯이 한 달에 열 냥이나되는데 마님의 궁핍한 가계에 한 달에 열냥이나 물고 쇤네를 데려갈 수있겠습니까?"향단의 말을 귀여겨 듣고 있던최씨부인은 엇뜨거워라 싶었던지 한동안먼산바래기를 하고 서 있다가 나직하게"향단아.""너 임신하였느냐.""가당찮은 말씀, 하늘도 없는데 별을보다니오. 쇤네 임신하지 않았습니다."그때, 최씨부인의 추상같은 호통이떨어졌다."방자한 것. 임신도 하지 않은 주제에어째서 첫 대꾸부터 배부른 소리냐. 한 달열 냥 세경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알았더냐."최씨부인의 호통에 찔끔한 향단이가임시처변으로 정주간 안쪽으로 몸을 숨기려하던 찰나였다. 대문 밖에서 난데없이 통자넣는 소리가 들렸다. 목청을 가다듬은도저한 언사는 사내의 목소리였다."이리 오너라."놈팽이겠거니 하여 코대답도 않고 있는데,최씨부인의 서슬을 피해 정주간 속으로숨으려던 향단이가 난감한 처지를 모면할핑계라도 찾을까 해서 자발없이얄기죽얄기죽 뜨락으로 나서며 아는 체를하였다."뉘십니까?"대문 밖에서 있는 사내의 형용도 분별할수 없는데 향단은 대문을 향해 무작정허리를 조아렸다."뉘시라니? 대문부터 열라."대문 밖의 대답이 매우 퉁명스럽고도도한지라 향단은 문사래 사이로 바깥을엿보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서둘러대문의 빗장을 풀었다. 활짝 열린대문밖에는 범강 장달 같은 세 사내가서 있었다.세 사람은 모두 동달이를 떨쳐입은형방의 나졸들이었는데 그중 한 놈은장교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부리부리한눈발로 마당 안의 어수선한 낌새를살피더니 듭시라는 말도 없었는데 소매에바람을 일으키며 모양을 다하여 썩 대문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손바닥만한 면상에 눈과 입이 오종종하게박히었으나 코 한 가지는 얼굴의 주인이바로 나라는 듯 얼굴 한가운데에 널찍하게자리잡은 나장(羅將)이란 자가 검은 바탕에흰 실로 줄을 놓은 더그레 자락을 등채로획 걷어 붙였다 떨구면서 뇌까렸다."이 집이 필경 춘향의 집이렸다?"얼굴 모색이야 대장부답지 않게관아의 나장이라면 여 염 사람들에겐떠르르한다는 존재였다.냉큼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 마땅할것이나 워낙 경황중에 들이닥쳐 다짜고짜강다짐을 하는 것이라 영문을 몰랐던여자들끼리 아연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미처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집안을 뚜릿뚜릿살펴고 있던 나장이란 위인은 시큰둥한말로 다시 뇌까리었다."이 집구석에는 가랑이 사이에고기방망이 차고 있는 사내 명색이라고는없는 게야."곁에 섰던 나졸이 대답하였다."그런 것 같습니다."등채로 제 손바닥을 탁탁 치고 있던나장은 그 말을 되받았다.나장은 대문 앞에 서 있는 향단이와대청마루 끌에 앉아 있는 춘향을 번갈아간색하던 눈치더니 향단을 턱짓으로가리키며 물었다."네가 춘향이더냐."그러자 향단은 가당찮다는 듯이 채머리를살래살래 가로저으며 얼굴을 되들고대답하였다."쉔네가 그렇게 국색으로 보인다니언감생심 반갑기 그지없습니다만 쇤네는춘향아씨 수발 드는 곁시랍니다."그러나 나장은 이번엔 고리눈으로 춘향을뚫어질 듯 노려보면서 말했다."네가 춘향이냐?"그러나 춘향도 나장을 정면으로노려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대답이"이 집엔 저기 있는 곁시만 빼고는 모두청맹과니인가. 어째 대답을 못하고 있당가.내 말이 말 같지 않아서 돼지 멱따는소리로만 들리는가?""귀머거리도 아니고 청맹과니도 아니오만나리들이 거동이 너무 무례하니 아예상종을 않으려는 것이오."그리고 안방의 미닫이문이 획 열리었다.그렇게 대답한 것은 방안에 몸져누웠던월매였다. 맵짜고 살풍경한 월매의 말에눈이 휘둥그레진 나장이 곁에 섰던나졸에게 물었다."저건 어느 우물에서 튀어나온물귀신인가?""물귀신이 아니라, 바로, 춘향어미월매입니다."보이는데 아직까지 육덕은 그럴싸해보이는군 그랴. 배 젊었던 홍색짜리 한시절에는 남원부 중 오입쟁이들이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이 집구석을번다 하게 드나들었겠군 그랴.""그런 것 같습니다.""허 그참, 자넨 그 말버릇 좀 고치게.""아니, 제 말버릇이 소버릇스럽습니까.""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게지, 말끝마다같습니다가 뭔가."나졸이 조아리며 대답하였다."그런 것 같습니다.""그러나 저러나 시방 저 여편네가 날보고 무례하니 상종을 않겠다고 다짐을두었겠다?""그런 것 같습니다."섣불리 다뤘다간 저 표독스러움에 풍파께나겪겠군.""지난달 한량들이 멋모르고 덧드렸다가창피당하고 체모에 똥칠한 사례가 여러 번있었던 것 같습니다."등채를 잔허리 뒤에 돌려 뒷짐을 지고배꼽노리께를 앞으로 쑥내민 자세로 안방문지방에 걸려 있는 월매의 면상을 저으기바라보고 있던 나장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하였던지 나졸에게 분부를 내렸다."저 계집을 밖으로 끌어내어라.""안 되오."한마디로 딱 잘라 말한 것은 나졸이아니었다. 후줄근한 몰골로 축대에 앉아있던 최씨부인이 벌떡 일어서며 대꾸한말이었다. 나졸 아닌 최씨부인의 말에"저 뜸배질하고 있는 암캐는 어디서내질린 짐승이냐?""저 계집은 시생도 잘 모를 것같습니다."그때, 나장은 등채를 꼿꼿하게 처들어최씨부인을 겨냥하면서 업에 게거품을물었다."별반거조를 차려 주리를 뒤틀려봐야정을 다시겠느냐. 여기가 관정(官庭)이아니라 해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것이냐. 이 더 그레 자락을 보아라.설사 이곳이 동헌 뜨락이 아니라할지라도 이 더그레 자락을 걸친 관원이행차한 처소라면 그곳이 바로 동헌뜨락일진데, 이 늙고 몽매한 계집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가타부타 주둥이가"주둥이가 해픈 것은 바로 나리가아니것소. 저는 안 되오, 하는 한마디만했을 뿐인데 말이 많다 하니 당치않소이다. 명색 목민관을 받들어 국사를수행한다는 분이 여항간의 부녀자를 가리켜암캐로 칭하기에 거침이 없다면, 더그레를걸친 나장은 그럼 어느 가랭이 사이에서내질린 수캐란 말이오?""보자보자 하니까 입살을 짜개 놓을 년.저년을 잡아 업쳐서 개 잡듯이 사두지 말고되우 쳐라."나졸이 나장에게 사정조로 말했다."그렇게 되면 본말이 천도되는 됩쇼.""본말이고 말본이고 이 차판에 내가 시방그 정신 차리게 되었느냐. 저년의 입살을짜개서 펴칠갑을 시키든지 아니면내리든지 양단간에 욕을 보여라. 그래야만저년의 주둥이가 노골노골해질 것 아닌가.""이런 야단을 미처 예견치 못하고 곤장을지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구태여 곤장을 찾을 것 없다. 저 대청에뒹구는 방아공이가 있지 않은가."그 말에 나졸은 대청구석에 뒹구는방아공이를 힐끗하고 나서,"나리 고정하십시오. 저 방아공이는 그살벌한 두께와 크기로 보건데 살옥죄인을치죄(治罪)할 때만 쓰는 중곤(重棍)보다 더클 뿐만 아니라, 설사 중곤을 써야 할저지에 놓인다 할지라도 중곤은 병조판서,그리고 각 군영의 대장과 유수(留守)만이쓸 수 있으니 나리의 품계는 아직 교에미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짐 지운다더니, 같습니다 같습니다 하면서내 비윗장만 거슬리고 있는 게 아니냐.냉큼 시행치 못하겠느냐?""나으리 그러시다 되술래를 잡히게 되면되려 봉욕하십니다.""되술래를 잡혀 내 직함이 떨어지는낭패를 당할지언정 저 뜸배질하는 암캐를그냥 두고만 보자는 것이냐.""저들이 춘향이 집으로 찾아온 것은 신관사또 기생 점고(點考)때 춘향이 여축없이관정으로 나오라는 통기를 하러 달려온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소한 입정을놀리는 저 늙은 여인네들 괘씸하다 하여치죄를 낭자히 벌이다 보면 자연 고을 안이시끌벅적해지고, 시끌벅적하고 보면여항간에 조명나서 신관 사또의 체모에모쪼록 후일을 기약하시더라도 오늘만은참고 돌아가시는 짓이 도리가아니겠습니까."우락부락한 나졸의 소견치고는 경위가바르고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졸렬해보이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최씨부인이나 월매를 본때 있게 다스려서혼찌검을 내줌으로써 새로 부임한 신관사또의 위엄이 얼음장처럼 차디차다는사실을 본때 있게 과시하려 하였던 나장의속셈이었고 보면 그 순간 머쓱해진 것은사실이었다.그러나 수하에 거느리는 나졸에게 올곧은말을 듣고 보니 머쓱해지는 것은 고사하고공연히 배알이 뒤틀리는 것도 속일 수 없는사실이라, 나장은 한풀 꺾인 목소리이긴않았다."어쨌든 저 암캐를 맨땅에 잡아꿇리어라."나졸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서릿발에비유되는 나장의 지엄한 분부를 끝내거역할 만한 배짱은 없었다. 쥐꼬리만한녹봉이지만 그것으로 대여섯 식솔의 입에거미줄 치는 것을 간신히 가로막고 있는데다가 때로는 나졸의 보잘것없는 직함일망정 눈먼 인정전(人情錢)을 챙길 때도,길을 읽고 헤매는 뇌물 걷어채어 삼키는재미도 쏠쏠한지라, 나장의 비위를 끝끝내거스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나졸 두 사람이 갈지자 걸음으로신방돌로 다가가서 낙매하고 앉아 있는최씨부인의 견대팔을 뒤틀어잡고색주가에게 시래기토장국에 공짜술을 얻어마셨는지 입에서 썩은 홍시냄새가 혹풍겼다. 그러나 최씨부인은 두 나졸들의손을 매몰스럽게 뿌리치면서, 나졸들의비윗장을 한껏 뒤틀어 놓았다."나를 맨땅에 꿇어앉힐 근력들 있거든차라리 색주가에 나가서 조방꾼 노릇으로연명하든지 아니면, 야경벌이(도둑질)로가계를 도모할지언정 네놈들 꼴이 이게뭐냐. 자고로 주구(走拘)란 말이 있어왔으니 그것은 바로 사냥할 때 부리는 개를일컬음이다.저 본데없는 수캐의 앞잡이 노릇으로비루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야경벌이가떳떳하지 않겠느냐."처음에는 아녀자들의 딱한 사정과 나장의나머지 얼추 위협만 하고 돌아가자 하였던나졸들의 뒷덜미에 핏대가 곤두섰다."아니,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더니이 요망스런 계집의 가풀막진 언사보게.모질게 파고드는 어조가 가당찮군.우리보고 도둑놈의 장물아비가 되라하였겠다?""내 말에 어폐가 있는가?""그 말 취소 못혀?""한마디 올곧은 말이 빌미되어 풍파를겪는다 해도 뜨물보다 못한 공갈에엇뜨거라 해서 허겁지겹 주워담을 내가아니다. 이놈들."그때 나졸이 들고 있던 방망이가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마당에 잡아꿇리라는 나장의 분부 따위는 안중에도뼈대가 억센 편인 최씨부인을 사정두지않고 내리 조졌다. 그러나 최씨부인은어금니를 사려문 채 사람 살리라는 외마디소리 한번 내지르는 법이 없었으니,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눈물겹게하더라.아니나 다를까 험상스런 나장들을바라보고만 있던 춘향이가 버선발로달려가서 눈자위가 시뻘겋게 상기된나졸들의 견대팔을 잡고 늘어졌다."모쪼록 고정들 하십시오. 우리어머님께서 산매가 들어서 사리 분별이졸렬해진 가운데 이 저지른 말씀인데무작정 매로 다스리면 우리 어머님 죽소.제발 고정하십시오."입에 게거품이 허옇게 묻은 나졸이벼르는 것이었다."춘향인지 추물인지 너 당장 비켜나지않으면 너의 집에 있는 계집 넷을 한다리로 끌어내어 아주 육젓을 담궈주겠다.""법에도 사정이 없지 아니하고 매질에도쉴참은 있는 법인데 연약한 아낙네에범강장달 같은 두 사내의 매질이 어찌이토록 혹독하단 말이오. 신관 사또도임하면, 이런 행패를 낱낱이 발고하여법통을 바로 잡으리다.""이년, 네가 가진 세력이라곤 가랑이속에 붙어있는 조개 하나 뿐이다. 신관사또 음탕하여 조개에 게걸들렸을 망정햇조개라면 모를까 이미 이몽룡이란 놈이주둥이를 박고 실컷 맛본 조개를 어느개아들놈이 군침을 삼키겠냐. 허튼 수작타작마당 콩깍지가 도리깨로 얻어맞듯겨끔내기로 내려치는 방망이에 벌써피칠갑이 된 최씨부인은 그 아수라판에서도춘향이가 달려와서 자기를 두둔하겠답시고매달려서 갖은 욕설과 창피를 감내하고있는 꼴을 보자, 결기가 더축 솟구쳐억지를 부리기 시작하였다."내가 산매가 들어 삼혼칠백이 견공에떴다 한들 한 번 내뱉은 말은 돌이킬가망이 없다. 네놈들이 주구 아니란 뚜렷한증거가 없는 한 나를 여설옥에 내려 가둔다하더라도 두 번 주워담지는 않을 터방망이가 부러져라 사매질을 하거라."치를 떨면서 바라보고 있던 나장이 그때나졸들을 제지하였다.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수하"저년이 제 주둥이로 시방 하옥시키기를자청하였겠다?""그런 것 같습니다.""좋다. 저년을 끌고가서 당장 투옥에다내려 가둬라. 관원들을 빗대어 욕설하고심지어 새로 도임하실 관장까지 능멸하기를주저한 적이 없으니 이는 모반의 심증이뚜렷하지 아니한가.시금털털한 묵은 조개치고 악지가 저토록표독스럽다는 것은 모반의 무리들과결탁했거나 내응이 없지 않았다면 있을 수없는 일이다. 한 길바닥이 소연할 터이니버선짝으로 아갈잡이해서 끌고가자."비윗장 건드린 한마디 말이 시단이 되어평생 끌려가 본 적이 없는 홍살문 안쪽의서슬 시퍼런 관아를 구경하게 된뒤로하고 아갈잡이가 된 채 나졸들에게학치뼈를 차여 가며 관아로 향하게 되었다.그 즈음 남원부사로 제수된 사람은 서울남산골(南山滑洞) 변학도(卞學道)란분이었다. 변학도는 인물과 풍채가그럴싸하기로 남산골에서도 소문깨나있었는데, 이 돈은 원래부터 풍류에달통하여 돈 쓰기에 거침없고 주색에도거침이 없어 장안의 탑골 색주가와배오개의 안침 술집들을 두루 섭렵하고도근력이 남아돌아 남대문 밖 철패시장의들병이하며 배오개 선술집의논다니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오입질하구과부들 꼬드기는 것은 앉아서 떡먹기요,서방님이 엄연한 들어앉은 유부녀까지도넘보고 다니는 아주 홀딱 벗은그러나 방탕함에도 가계만은세전지물(世塼 之物)로 요족을 누리는 터라남산골에서 살고 있는 다른 샌님들과는누리는 호강이 남달라 남원부사까지 뇌물로따낼 수 있었더라. 변학도가 글 읽기에는소 닭 보듯 소홀히 하면서 풍류에만골똘하여요로의 현직(顯職)들에게 뇌물로직첩(職첩帖)을 사고 또한 제아무리삼강오륜에 입각하여 부도(婦道)에철두철미한 반가(班家)의 계집일지언정패물과 금붙이로 끈질기게 인정을 쓰고,언사에 유식한 체하고, 환심을 사면 혹하지않았던 계집이 없었던 터라 돈이면 안되는게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였고 믿음이되었다.꾸려가면서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는 날만기다리고 있는 부류들인지라 근자에남원부사로 제수된 변학도는 오직 그들에부러움을 살뿐이었다. 그가 현직의관원들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얻은벼슬자리라 한들 크게 허물 될 게 없었고,탄핵을 받을 빌미도 되지 않았다.뇌물을 받고 직첩을 따냈다는 뚜렷한증거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오직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부랄 두 쪽만 달그락거리는 샌님들을거느리고 색주가를 섭렵하면서 퍼 먹인술과 안주와 계집질시켜 준 이력도 무시할수 없는 터, 그가 뇌물로 벼슬자리를샀다는 증거가 역력한들 그걸 두고주둥이를 헤프게 놀릴 사람도 주변에는보통 거드름 피우기 좋아하고 제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내들이란 군입을다시고 나면, 제 것 작은 것은 생각지아니하고 그 계집의 옥문은 헐렁하다느니빠듯하다느니 손바닥보다 작다느니호박잎사귀보다 넓적하다느니 요분질이아금받다느니 아니하다느니 소문을 짜나게퍼뜨리고 다니는 오줄없는 버릇이 없지아니한데 변학도는 그렇지 아니하였다.항상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편이여서 그것또한 심증은 있으되 뚜렷한 증거를 남기지않아 그와 참석을 같이하였던 과부나유부녀들에게 변학도는 오직 체모가 듬직한사내였고 도학군자로만 여기고 있었다.그분이 원래는 서울서 이웃한양주목사(陽洲牧使)나구태여 뇌물에 웃돈까지 얹어서 남원부사를소망하였던 까닭은 자고로 남원이색향이라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때문이다. 이분이 남원부사에 제수되니남원의 아전들이 신연(新延)인사차 남산골변학도를 현신(現身)하였다. 변학도는댓바람에 물었다."너의 고을의 색이 그다지도빼어나다지?"아전이 그 말 잘못 알아듣고 얼른대답하여 가로되,"그렇습니다. 광한루의 고색(古色),오류정의 유색(柳色), 적성강의수색(水色), 교룡산의 산색(山色)은 조선팔도 삼백 예순 다섯 고을 어디를 뒤진다하더라도 찾아볼 수 없는 빼어난"듣건대 남원의 여색이 자못 장하다기에묻는 말이로다.""그렇습니다.""무슨 향(香)이라는 기생이 있다하던데?""예, 향 자 돌림 기생으로 말할 것같으면 두름으로 엮는다 하여도 몇 두름은될 것입니다못난 아전이 그 또한 자랑으로 알고우쭐해서 대답하였다."한 두름에 몇 마리나 꿰나?""열 마리를 한 두름이라 하옵니다.""거참, 여러 두름이 된다니 우선은반갑다만 어디 섬겨보아라.""숙향이, 국향이, 소향이, 단향이,난향이, 매향이....""춘향이라면 만고에 일색 입죠.""춘향이가 있다면 왜 진작 아니섬겼더냐.""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춘향은 원래퇴기 월매의 딸이온데 기안(妓案)에 올라않아 여염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다가구관 사또의 자제분께서 벌써 머리를얹었습니다."서울 남산골에 살고 있는 변학도가남원이 색향이란 것을 알고 있는 것은놀라운 일이 아니로되 남원에 춘향이가있다는 것까지 시시콜콜 눈치채고 있다는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그렇게 놀라운사실도 아니었다. 남원을 발행하여 서울에당도한 이몽룡은 당도한 사흘째 되던뻔질나게 도나들면서 남원에서 겪었던춘향이와의 일을 자랑삼아 떠벌리고다녔다. 심지어 춘향의 자색도 가위국색이거니와 요분질에도 따를 만한 계집이없다고 과장되게 지절거리고 다녔기에서울에서 이름자하다는 비주에서 뒹굴고있는 놈팽이들 치고 남원 춘향이를 이름들어 알고 있는 사람은 여럿이었다.이몽룡도 서울 당도해서 춘향을안위시키는 간찰 한 장 띄워주고는 서울색주가 출입에만 동분서주하고 있었다.어쨌든 아전의 귀뜸을 듣고 있던변학도는 말했다."구관 사또의 도령이 머리를 얹어추었다면 오히려 그런 다행이 없지아니하구나. 춘향이가 색을 터득하였다는그래 춘향이는 지금도 잘 있느냐?"예-.""남원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육백 리 행보입죠.""준총(駿悤)을 타면 해동갑으로 닿을 수있겠다?""준마를 주변한다 하여도 해동갑 당도는어렵습니다. 아침에쉬옵시고 행차중에 만나시고 고을의수령들을 만나면 연회하시고 수청기생으로노독도 풀어가면서 명승지를 만나게 되면또한 풍월에 인색하지 않으시며 그럭저럭가시면 얼추잡아 보름은 걸리겠습니다.""고을 수령 연회하고 기생으로 객수달래고 명승지 구경타가 남원 춘향이는늙바탕에 든 춘향을 만나려고 내가행차 차려 밤낮으로 쏜살같이 달려남원으로 득달 하리라.""고정하십시오. 행차충에 고을의 수령을만나 연회를 하시는 것은 고래로부터있어온 신연 행차의 관례인즉슨 그 예법을어길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사또께서 미색을 즐기신다는 소식을 듣고나장을 풀어 춘향의 집 동태를 얼추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워낙 성깔이매몰찬지라 손톱도 아니 들어가니사또께서는 서둘지 마시옵고 차차주선하심이 상책인 줄 안고 있습니다"객쩍은 소리 그만둬라. 내가 듣고있기로는 춘향이가 살꽃 팔던 제 어미에게배운 것이라곤 사내를 침방으로 불러들이는버릇 한 가지밖에 없다 하였다. 윗물이이치가 아니지 않더냐. 게다가 넌 아직 내수완이 출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등 치고 배 문지르는 수완이라면 서울장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산협고을에 박힌 계집 하나 마음먹은 대로잡도리 못할까. 어림없는 얘기다."득달같이 남원 당도하여 춘향을수청들이겠다고 땅땅 벼르고 코방귀를 뀌는변학도의 거조는 가위 기세등등하였다.신연 인사차로 올라온 이방아전이 그것은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애걸하며떠먹여주듯 아뢰었건만 춘향을 얕잡아보는눈치는 역력했다.그러나 신관사또 앞에서 소명한 체하고길게 알분을 떨었다간 귀쌈에서 번갯불이번쩍나게 얻어맞을 조짐이라, 내일 다시망아지처럼 부리나케 변학도의 집을나섰다. 남산골 초입의 객점에다 식주인을정하였으니 혼자서 해적해적 객점 쪽으로걷고 있는 이방아전은 심란하기 짝이없었다.신관사또를 현신하고 보니 남원 부중의앞날이 결코 순탄치않으리라는 징조가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변학도란위인이 남원의 목민관으로 도임하려는사람이 아니라, 기생들 수청 들이려고도임하는 색귀로만 보였다.밤마다 술자리요, 수청기생 번갈아 가며농탕 친다면 남원에 배 젊은 계집 남아있을 리 만무겠고 반빗간 음식인들태부족이 아닌가. 태산 같은 걱정에 짓눌려고개를 떨어뜨린 채 발부리만 내려다보며한마디가 들렸다."여보게, 자네 남원 길청에서 거행하는이속(吏屬)이 아닌가."힐끗 돌아보니 행색은 위의(威儀)를 갖춘사대부집 위인이로되 첫눈에 모색을분별하기는 힘들었다."나 책방도령일세."가던 길을 되돌아서 삐죽삐죽 걸어오는위인을 보자니 정녕 책방도령이몽룡이었다."도령님 어인 일이십니까, 여기서도령님을 뵙다니오. 수행도 없이 혼자서어딜 가십니까."이방이 소스라쳐 반새하며 넙죽하정배(下庭排)를 올리고 난 뒤 두 번 다시쳐다보자 하니,이몽룡의 매골이 남원서초췌하였다. 몰골이 그토록 후줄근해진터라 눈썰미가 있다는 평판을 듣는 이방도첫눈에는 몰라본 것이었다."내가 시방 길나장이까지 둘 처지가못되었네.""수행도 못 두고 출타라니오? 그놈방자는 속량(贖良)이라도 시켰단말입니까.""아닐세. 그놈도 이젠 밸이 없지 않아서근자에 와선 날 쫄쫄 따르지도 않을 뿐더러아버님 시중이 더 다급한 일이라 집에 박혀있네.""장가를 드셨습니까. 상투를 트셨소.""바깥 출입 뻔질나다보니 채모보전한답시고 상투는 외자로 틀었다네.""시방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그 위인이 남원부사로 제수받았다기에남원에서 신연 인사차로 길청의 이속들이올라와 있을 것을 짐작하고 무턱대고 가는길인데, 공교롭게도 임자를 만난 게군.""상투를 외자로 틀었다지만 신수가훤하십니다. 도령님이야 원제 뼈대부터가훤칠하시니까 길목버선을 뒤집어쓰고다니신다 해도 풍골이 준수하실 터이지요."고깝게 들으면 비아냥거림이요, 아름답게들으면 칭송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눈치 빠른 이방아전이 한마디 불쑥 질러서이도령의 염냥을 떠보자는 심산에서 나온말이었다.그러나 쓸개를 국 찔러보는 말에이몽룡은 결기를 돋우지도 않고 인적 드문골목 안의 동정을 쭈뺏쭈뺏 살피던꺼내었다."임자에게 쓰다 남은 노자가 있는가."이방도 덩달아 쭈뺏거리고 있다가 울대속으로 기어드는 말로 대꾸하였다."예, 식대 치러줄 푼전 너댓닢이 남아있긴 합니다만......""그만하면 되었네. 임자와 나 사이에지난 정리가 크게 돈독했던 것은아니었지만 외진 곳에서 이렇게 만났으니술 한자리 사게."이방이 하늘 꼭대기를 두리번거리다가이르기를,"시생도 신관사또 현신하러 갔다가끼니를 굶어가면서 면박만 당하였더니 속이출출합니다만 지금은 새빨간대낮이라......."어떻고 꼭두새벽인들 대순가."한강 나서서 뺨 맞고 종가에 들어와 눈빼 먹힌다더니 천상 그 짝이 되었다.명색이 사대부질 자제로서 서울의 색주가를주름잡고 설친다는 이몽룡이가 고린전을챙겨 신연 인사차 서울 온 시골 아전에게술을 사라니.사리분별을 따져서도 온당하달 수없었고, 가계의 요족함과 궁핍함 정도를따져서도 가당찮은 얘기였다. 그러나지난날의 정리를 들먹이며 오금을 박고드는 데다가 이미 노자를 가졌다고실토정을 해버렸으니 앞장서서 식주인 정한객주집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경아리란 위인들 산협사람 가만히세워두고 눈깔 빼먹는다더니 곱다시 그런들어가서 목로 하나를 차지하고좌정하자마자, 이몽룡은 제 주머니 속에서꺼낸 돈으로 식대를 치를 것처럼 이것저것주제넘게 안주를 시켰다. 돈육 삶아낸 것,닭갈비에다 잉어 지짐이와 술을 시키는데,그 달변이 흡사 얼음 위에서 박밀 듯거침이 없었다.배알이 뒤틀리는 대로라면 당장 이방의호패를 내던지며 발딱 일어서고 섰을정도였다. 그러나 꾹 눌러 참으면서 이방은물었다."변사또께서 남원부사로 제수된 것은어찌 아시었습니까.""어찌 아셨냐구? 그 위인이 서울 장안이짜하도록 자랑삼아 외치고 다닌 터에 양쪽귀가 멀쩡한 내가 모를까."달라졌다. 쏘아붙이는 언사도 지난날책방도령일 때처럼 아담하거나 엄숙하지않았고 쓰고 있는 갓도 왼쪽 이마를 가릴정도로 삐딱하였다.언사에 상없는 제도하며 거친 입성이갈데 없는 백수건달이었다. 그 준수하고도저하던 책방도령의 체모가 도대체 어쩌다이 꼴이 되었을까."시생에게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으셔서시생을 찾으셨습니까?""거참, 임자는 조급도 하군. 순배나 돌린뒤에 자초지종을 얘기해야지. 푼전도 못가진,험상궂은 주제꼴에 이것저것 안주를시켰다고 토라진 것인가."이방이 도리질을 하였다. 밸이 틀린잔속이 들통난 터다. 아니라고 도리질을같았다."농일지언정 그런 말씀 거두십시오.언감생심 시생이 무엄하게 토라질 리있겠습니까. 남산골 고살길에서 도령님을뵈리라곤 꿈에서도 예견 못했던 일이라갈피를 잡지 못해서 우두망찰하였습니다.""순배나 돌리세. 임자의 노자가 불과서푼뿐이라면 내가 엄대 긋고 갈 것이니조급증 낼 것 없네."이럭저럭 서너 순배가 되었고 돌고기접시도 반이나 비웠다. 그때 목덜미까지불쾌하게 취기가 오븐 이몽룡이 물었다."해소기침에 울렁증을 겸한다더니 이게천상 그 꼴이 되었네. 어째서 하필이면변학도란 위인이 남원부사로 제수되었단말인가. 한마디로 요로에 있다는 현직들이" 도령님 누가 듣겠습니다. 목청을 휠씬낮추십시오.""왜, 끌려가서 경을 질까봐서 뒷덜미가메숙메숙한가? 하긴 임자 같은 산협고을이속들이야 경사(京司)에 있는 벼슬아치들꿍꿍이 속을 소상하게 알 수 있겠나."개탄(慨歎)인지 개타령인지 자절거리는거조가 변학도가 남원 부 사된 것이이몽룡에겐 크게 달갑지 않은 것이분명하였다. 이방은 그 컷속을 얼추짐작하고 주저하고 있던 한 마디를실토정하였다."신관사또 부임하시면 남원 고을수청방이 날마다 들썩들썩할 조짐이완연하온테, 초풍을 할 일은 어디서 소문을들었는지 남원 기방에 득실거리는 모든월매의 소생을 들먹이고 계시니 이런낭패가 없습니다.남원에는 월매라는 이름 가진 여인네가한 사람뿐이고 또한 월매의 딸도 춘향이란외동딸뿐이겠으니 이런 불상사를 어찌하면좋겠습니까? 서울에서 남원까지는 천리나떨어진 고을인데 변사또가 어째 남원고을에들어앉은 춘향이가 절새라는 것을 알고있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궁금합니다."화들짝 놀랄 줄로만 알았던 이몽룡의눈빛이 처연한 채로 먼산 바라보기만 하고있었다. 술사발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키던이몽룡의 입에서 그러나 천만이외의한마디가 흘러 나왔다."그건 네 불찰이라 해두세, 그러나 내가임자에게 당부하려던 말은 그게 아닐세."두고볼 것이 아닙니다.땅땅 벼르는 품이 춘향아씨를동헌마당으로 불러 잡아 꿇리는 일인들주저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허어, 그게 아니라니깐 그러네. 그런일이야 신관사또가 내켜서 하는 일인즉슨춘향을 엮어들여서 물볼기를 안기든 주리를틀든 도대체 어느 누가 가로막고 나설배짱이 있겠나.""그런 불상사에 대비할 일이 아니라면도대체 무엇입니까.""요사이, 내가 몹시 궁하게 되었네그렇다고 사대부 체모에 아무 사람이나찾아가서 설궁(說窮)할 처지도 아닌 터,겉으로는 아닌 보살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척고초를 겪고 있다네.깨달았을 터이지만 내가 남원 처가의사천(私賤)에 기대지 않으면 체통보전하기가 거북하게 되었네.""아니 댁에는 짙은 천량을 가지고 있지않습니까. 아버님 남원 부사 도임하여송덕비 세운다 핑계하고 거둬들인 잡세만도기만냥에 이를 것인데, 그런 거액을 모두어찌하고 도련님은 거지 신세 다니신단말입니까.""기만 냥이든 기십만 냥이든 난상관없네. 골방 뒤주 속에 넣고 잉어자물통으로 채워둔 짙은 천량을 내가 무슨재간으로 범접하리오.""그래서 장모의 사천을 넘보는 것입니까.설혹 사천이 있다 한들 고린전에 불과할것인데, 볼가심할 금어치도 아니되는"고린전이든 거만의 재물이든 그건임자가 시시콜콜 따질 것이 아닐세. 다만남원으로 내려가거든 명색 사대부집 자제란내 처지가 체통조차 지키기 못할 지경에이르렀다고만 듣고 본 대로 일러주게,그러면 달포 안짝으로 방자를 내려보낼것이니 그땐 좋은 소식 되돌아오기를바라고 있더라고 말전주를 해 주게.""시생은 못합니다."뉘 앞이라고 단숨에 못한다는 소리가나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벌써 몇 순배가돌아서 허파가 뜨끈뜨끈해진 아전이 후끈한술기운을 빌려 감히 아뢰지 못할 한마디를뇌까린 것이었다.그러나 이몽룡은 쓸개는 빼서 집의횃대에다 걸어두고 나다니는지 아전의같았다. 첫마디로 못한다고 내뱉은 것이외람되었다 싶었던 이방은 목소리를낮추었다."내키지는 않습니다만 간찰이라도써주신다면 전해 드리겠소.그러나 시생의 입으로 도련님의 험악한외양을 미주알고주알 말전주하기는 거북한일이니 그 말씀만은 거둬주십시오.""고이한 사람 하구선. 길청에서거행한다는 이속들은 어째서 걸핏하면<거둬주십시오>란 말버릇에 이골이 난것인데 그런 버릇은 왜 진작 거둬들이지못하나.""벼슬아치들 수하에서 눈칫밥을 먹다보니화증이 솟을 때라도 겨우 지절거릴 수 있는말이 <거둬주십시오>뿐이랍니다. 그런나부랑이가 벼슬아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그 말 삼가시오. 하고 호령할 수는 없는노릇이 아닙니까.""폐일언하고 난 요사이 글발이라면수전증이 생겨서 개도 그려내는 갈지자도그려내지 못한다네. 임자가 나를 어렵게여겨서 거둬주십시오 하든 아니면 하찮게여겨 삼가시오 하든 그건 임자 내키는 대로대접하게만 내 청한 가지만은 시덥찮게여기지 말고 남원 장모와 춘향에게여축없이 전해 주게.""시생이 아옹다옹 안달 나서 주제넘게간섭할 일은 아닙니다만 도령께선 글공부는애저녁에 개물려 보낸 것이 적실하군요.""글공부 개물려 보낸 것은 서울 와서가아니고 남원 있을 때 부터였네. 내막을신세가 딱하게 되었네.""누워서 침뱉기요. 제 도끼로 발동찍기입니다. 시방 월매 집안 꼴이 어떻게되어 있는지 알고나 계십니까."그때 이몽룡은 소매를 들어 아전의 말을가로막는 시늉을 하면서,"그것 또한 내 알 바 아니로세.""딱하십니다. 정녕 딱하십니다.""임잔 노자 대신 딱종이 짐을 지고 서울왔나 웬 딱소리가 낭자한가.""흰소리야 하늘의 별인들 못 따겠소,정녕 딱하십니다."술방구리 바닥난 것을 알아챈 이몽룡은취중이었으나 더 이상 지분거리기도지겨웠던지 온다간다 수인사도 없이 술청을나가 헤적헤적 고살 밖으로 사라치는남원 고을 길청에서 신연 인사차 상경한이방의 주머니를 발겨 술 허기는 채웠으나해거름판에 남산골을 나섰지만 정작 갈곳이 없었던 이몽룡은 지향이 없었다.책방도령으로서의 지체도 저버린지 오래 전일이였으니 집으로 가보았자 반겨줄 사람이없는 것은 물론이요, 지엄하신 아버님의서릿발같은 꾸중과 질책만 기다리고 있을뿐이었다.이미 부자간의 인연조차 없었던 일로하시겠다는 외람된 말씀까지 있었던 터라헐숙청(歇宿廳)을 지키는 청지기조차만날까 두려운지 오래된 일이었다.눈치빠른 방자란 놈은 아버님 의중을진작부터 알아채고 책방어름에는 코빼기도비치지 않았으니 집으로 가보았자있는 종놈조차 없었다.운종가(雲鍾街)한길로 나서서 뉘엿뉘엿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서소문(西小門)쪽으로 헤적헤적 걷고 있던이몽룡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탑골쪽으로 꺾이고 었었다. 오뉴월 한장마에도빨래 말미는 있는 법이고, 고슴도치에게도살친구는 있다 했듯이 이몽룡 같은백수건달에게도 그 스산한 십가를 십분해아려줄 만한 안 침술집 한 군데가 탑골에있었다.고샅길을 비틀거리며 꺾어 돌아 용수꽂은 장대도 없는 초가집 사립문 앞에당도한 이몽룡은 버티고 서서 통자를넣는다."이리 오너라."살이나 되어 보이는 편발머리 계집아이가구르듯 달려나와 사립문을 열어주며 어깨를조아린다. 계집아이의 뒤를 따라 봉노에좌정하니, 계집아이는 금방 안 채로달려가고 빈 방 한가운데 빈주머니의나그네만 외톨로 남았다. 사방을 둘러보니시행도 횃대도 없는 네모진 봉노에 벽에는초병 하나 걸린 게 없어 혀로 핥은 듯이말끔하였다. 안침술집이란 원래 행세하던사대부집 파부들이 궁핍한 가계에 보탬을얻고자 은밀히 낸 술집인대 안채와 술청의구분이 매우 뚜렷하여서 식주인인 안채의과부가 바깥채 술청으로 얼굴을 내미는법이 없었다.안채와 바깥채 술청을 드나들며 식주인과길손 사이를 연락하는 것은 상노아이가기생방처럼 흥취는 없다지만 기명이정갈하고 안주가 맛깔스럽고 외상술로 엄대긋고 일어나도 자질구레한 뒷말이 없고혼자 앉아 독작을 하여도 허물될 게없었다.고독한 주정뱅이 이몽룡에게 안성맞춤인술집인 셈이었다. 그래서 이몽룡에겐어느덧 단골이 된 곳이었다.소슬하게 앉아 있을 제 계집아이는협문으로 술상을 디밀었다. 개다리소반에는 짭짭하게 끓인 붕어 지짐이 한대접, 북어 부침개 한 접시와 술 한방구리가 놓여 있었다.술상을 받는 길로 자작으로 서너 대접을게걸스럽게 들여마신 이몽룡은 천장의삿갓반자를 쳐다보며 방고래가 꺼져라 하고술을 비운 다음 다시 한 방구리를 시켰다.그리고 다시 한 방구리를 청하였다. 그러나술상 가녁에 턱방아를 찧을 정도로 대취한것을 알아챈 계집아이의 태도가고분고분하지 않았다."도령님, 이젠 술을 더 이상 못 내시겠다하십니다."안채 식주인의 결연한 거절이란뜻이었다. 길손이 취했다 싶을 땐 더 이상술을 팔지 않는 것이 안침술집의 오랜풍속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몽룡은고집을 부렸다."내가 이 댁에 단골로 드나들기를일천하지 않다는 것은 철부 지 한 너도알고 있을 터. 내가 모주꾼 행색일 망정그동안 이 댁에서 분탕질하여 창피한 꼴을술을 더 내오지 않으면 이 집을박살내겠다구."대취하여 누깔이 시뻘개진 사람이침버캐를 튀겨가며 땅땅 벼르는언사였던지라, 철모르는 계집아이는 화들짝가위질려 고정하시라는 말을 남기고득달같이 안채로 달려갔다. 그러나 곧장 빈손으로 되돌아와서 뇌까리는 말전주가가당찮았다."이집이 박살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일이나, 장안에서 떠르르하신다는부승지(副承旨)의 사제님께서 탑골의하찮은 안침술집 박살내다가 지체에 체모손상 입으실까 저어한다고 여쭈시라합니다.""말씀 한번 여유작작이군. 내가자제라는 말은 입밖에 흘린 적이 없거늘무슨 연유로 밑절미 없는 말로 나를 농하고있으냐고 여쭈어라."계집아이가 꼬리에 불댕긴 강아처럼안채로 쪼르르 달려갔다 나오더니,"도령님께서 부승지의 자재라는 것은분명하고 또한 장안의 색주가에서 소문난팔난봉에 백수건달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모를리 없는 터에 본색을 숨긴다는 것은손바닥으로 벼락을 피하자는 허황함이오또한 가문에 욕을 돌리는 온당치 못한일이라고 여쭈라십니다.""당돌한 언사로다. 엇따 대고 야로가이토록 야멸찬 것이냐. 내 설령백수건달이랄지언정 너의 집 식대를떼먹거나 찍자부린 적이 없거늘 가서"해진 뒤에 외간의 남정네와 입씨름을벌이는 일은 내외를 엄중하게 여기고 사는들어앉은 계집사람으로선 탐탁치 않은일이니 도련님께선 냉큼 일어서라고여쭈라십니다.""마침 나 외엔 딴 길손도 없으니 호젓한김에 분노에서 자고 갈 것이니 넌들어가거라.""아시다시피 저의 집에선 숙객(宿客)은들이지 않습니다.""숙객이든 숙맥이든 내가 알 게 뭐냐.장안의 백수건달이라면 진 자리 마른 자리가릴 것이 없는 터, 잠들면 그게 바로 내집이 아니겠나.""당장 박살을 내시겠다고 벼르시던집에서 침석을 보려하시니 정녕"고년, 말대꾸 한번 아금받구나.안채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네년 혼자서차 치고 포 치고 다하느냐."계집아이가 한동안 두 눈을 빤히 뜨고술상 위로 턱방아를 찔고 있는 이몽룡을할퀼 듯 노려보더니,"별꼴 다 보겠네."하고는 안채로 달려가는 것이었다.계집아이의 안달에 못 이겨 식주인이술청으로 나와 보니 이몽룡은 벌써 봉노한가운데에 큰 대자로 네활개를 짝 벌리고누워서 코를 골고 있었다.술에 취해 잠든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간하루 종일 먹고 마신 것을 방바닥에 죄다게워내기 십상인지라 발치에 놓인 술상을거두고 차렵이불을 덮어준 다음, 삽짝문이튿날 새벽 잠에서 깨어나긴 하였으나심신이 고단하여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며누워 있었데, 협문 밖에 인기척이 나고문이 열리더니 난데없는 자리끼 한 사발이디밀어졌다. 얼른 받아 마시고 보니꿀물이었다. 쓰린 속을 꿀물로 다스리라는안침술집 식주인의 배려가 틀림없었다.문밖에선 지난밤에 들어서 귀에 익은계집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령님께선 옷매무새를 갖추신 다음안채로 듭시라고 여쭈라십니다.""왜라더냐?""아침동자를 마련하였다고여쭈라십니다."지난밤의 괄시받은 기억이 없지 않았던이몽룡은 한마디 비틀어 물었다.대접이란 과분한 일인 터 지난밤 괄시와험담은 어찌하고 동자대접이라더냐."한동안 잠잠하더니 계집아이의 목소리가다시 들려왔다."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동가식서가죽으로 세월을 농하는 백수건달주제에 왠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고여쭈라십니다.""도대체 너의 집 안주인은 어떻게생겨먹은 계집이라더냐.""엉덩이에 뿔 달린 계집이라고여쭈라십니다.""엉덩이에 뿔 달린 여자라면 난생처음이다. 얼추 구경거리가 될만하겠군.내가 안채로 가면 그 뿔을보여주겠다더냐."다친 사람들도 여럿이라고 여쭈라십니다."이몽룡이 발끈하여 계집아이 뒤 따라안채로 들어섰다. 뒷마루 올라가서건넌방으로 들어가니 싸늘한 방에 밥상하나 댕그랑 놓였는데, 자르르 윤이 나는나주반에 놓여 있는 기명들이 정갈하고깨죽과 해삼탕이 여염의 상것들 제도가아니었다.펄썩 주저앉기는 하였으나 밥상을 차린여인네의 기품이 녹녹치 않은지라 수저들기가 선뜻 내키지 않아 우두망찰하였다.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한 소복의여인네가 숭늉그릇을 들고 방으로들어왔다.어림으로 짐작되는 나이가 서른대여섯은되었을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 있고단아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숭늉그릇을미리 놓여 있던 다각반위에 내려놓으며여인네는 나직하게 말하였다."외간의 남정네를 안채로 듭시라고 청한것이 외람된 줄은 알았습니다만 잠자리를드렸으면 끼니 수발 드린 연후에 보내는것이 도리라 여겨서 무리한 청을드렸습니다. 어서 드십시오."대접이 융숭하였지만 여인네의행동거지가 허물 잡을 데가 없고 또한입안도 텁텁하고 칼칼한지라 깨죽 몇숟갈을 깨죽대다가 수저를 놓았다. 취중에상노아이와 농담 반 객담 반으로 말대꾸주고받다가 이런 창피를 당한 것이겠거니생각하고 일어서려는 판국인데, 시무룩한이몽룡의 거동을 시종 눈여겨 바라보던감추었던 향낭 한 개를 꺼내 놓았다."아시다시피 이도령께선 저의 집의단골이십니다. 한 달이면 열번 정도는 저의집에 들러 주석을 베풀어서 저의 집 가계를꾸려 나가는데 적지않은 보탬을주었습니다. 제가 술청 손님들과 대면은하지 않습니다만 상노아이의 말전주를 받아술청에 단골로 찾아오는 분들의 신상만은소상하게 알고 있습니다.이번에 남원의 관장으로 도임한다는변학도 역시 우리집의 단골손님이긴마찬가지입다. 변학도의 술주정을 전해들건데, 이도령께서 평생 해로할 것을언약한 남원의 춘향이란 규수를 남원도임하는 그날로 수청을 들이겠다고 벼르고있었습니다.수령이 되었다는 것도 이 나라 조정의현직들이 부패하였다는 증거일진데,이도령과 같은 학사가 성균관 아닌색주가에서 술과 계집질로 세월을 농하고있음은 썩은 조정보다 더욱 개탄할 일이아니겠습니까, 더욱이나 춘향이란 규수가본래 음탕하여 도련님과의 언약을 초개갈이여기고 변학도에게 스스럼없이 수청을 한다하여도 명색이 대장부라면, 그런 불상사가일어나기 전에 방비하는 것이 도리가아니겠습니까.대저 선비들이 가진 병통이 있다면시절을 개탄하고 비방하는 언사는서릿발같아서 귀에 듣기는 끌처럼 달지만막상 탄핵하고 앞장서는 일에 부딪히면꽁무니 빼기 일쑤이니 항상 겉과 속이이도령 역시 그와 같이된다면 젊은학사로서의 품격이 이지러질 것은 분명한것이 아닙니까. 술과 계집질로 세월을탕진하고 종국에 이르면 뼈와 살을 허물고깎아 대장부를 한낱 미물로 만든다는 것을깨달아야 합니다."처음 대면하는 안 침술집. 여인네의말일지언정 울곧은 말임에는 틀림이없는지다. 이몽룡도 이렇다할 말을 꾸어댈수 없었더라.반은 귀여겨듣고 반은 흘려듣는데,여인네는 향낭을 들어 이몽룡의 손에쥐어주었다."이것은 몇 푼 안되는 노자입니다.그러나 도련님께서 그 동안 우리 집 술청에와 건네준 식대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삼아 남원으로 내려가시어서 평생 해로할것을 언약한 규수가 욕을 당하지는 않도록조처함이 올바른 일이 아니겠습니까.""도대체 내게 이런 은혜를 베풀려는속셈이 뭣이오.""이 가슴에 도사린 속셈은 없습니다.다만 이도령과 같이 촉망받아야 할 재사가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탕진한다는 것이안타까웠고 또한변학도와 같이 무도한 위인이 한 고을의수령자리에 도임한다는 소식 듣고 보니 제스스로 이 시절이 부끄럽고 개탄스러움에외람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지난 밤에는 날 보구 할 수 없는반실이라고 여러 번 이죽거리지 않았소.""그것은 분김에나마 도련님을 안채로계책이었습니다.""시방 날 보구 이 노자로 남원으로내려가란 것이오.""그렇습니다.""어머님도 못하실 말을 식주인이 하고있구려.""장부의 기개를 중도에서 꺾으시면그것을 이름하여 어찌 장부의 기개라일컬을 수 있겠습니까."탑골 안침술집을 나온 이몽룡은 그러나집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안주인이건네준 향낭을 낡은 도포 콩소매 속에집어넣고 운종가(종로)를 내닫는 파락호이몽룡의 발걸음은 주전부리하러 가는뺑덕어미 발걸음처럼 오줄없이 불량하고암내 맡고 날뛰는 숫나귀처럼 누깔이안면 있는 사람을 만나도 수 인사조차나누는 법이 없이 소맷자락으로 바람을일으키며 숭례문 쪽으로 달려가는 거조가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숭례문을벗어나서 칠패저자거리 안침까지 달려가는이몽룡의 모습에선 탑골 안 침술집에서있었던 안주인의 간곡한 당부는 안중에없다는 것을 당장 눈치챌 수 있었다.비좁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저자거리를 벗어난 어느 집사랍문 앞에당도한 이몽룡은 뒷짐지고 멈춰서서 통자를넣는 것이었다."채련이 있느냐?"우정 목청을 높여 통자를넣었건만,안쪽에선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채련이 있느냐?"계집이 문지도리에 반몸을 기대고 삐쭉얼굴을 내밀었다. 익은 앵두 같은 물이오른 붉은 입술이 되바라졌고, 눈발이매몰차면서도 총기도 있어 보이는 계집의모색을 보자 하니 구태여 다찮고 묻지않아도 색사에 능통한 음탕한 계집임이분명하였다.바라지를 열고 반몸만을 밖으로 내 밀고있던 계집의 표정이 문득 반색을 하는듯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시큰둥해지면서쏘아불이는 것이었다."아니 저 백수건달이 아침나절부터 어인뜸베질인가?""뜸베질이라니? 거 대꾸 한번 고약하다.명색이 기둥서방인 나를 두고 짐승에빗대어 뜸배질이라니? 내가 여물 먹는"어머, 기둥서방이라니? 어느 잡년이이녁보고 기둥서방이란 별호를 채워드렸나?내 가진 기동서방 명부에는 이 아무개이름은 눈 씻고 봐도 없으니 남의 집사립문 가로막고 서 있지 말고 냉큼 비켜나시오.""고년. 말대꾸 한번 매몰차구나. 서푼짜리 앙탈에 내가 찔끔할 성싶더냐."그렇게 이죽거리면서 이몽룡은 무작정히죽히죽 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계집이 화들짝 놀라 눈을 화등잔만하게뜨고 와락소리를 내절렀다."이 불한당아, 내집에서 냉큼 물러나지 못할까."앙칼진 계집이 무엄하게 집어내던진빗자루가 이몽룡의 면상에 맞고 땅에문지도리에 반몸을 숨기고 있던 까닭을알아차렸다. 이몽룡은 계집이 빗자루를힘껏 내던질 때 벌거벗은 상반신에 드러난젖무덤을 보았던 것이었다. 이몽룡이속으로는 아뿔사하였으나 뱃심을 보이며 말하였다."이년,이미 햇발이 이른 대낮에 아직도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필경 그 서푼짜리 살 꽃을 팔고 있던 중이렸다.""남이야 살꽃을 팔고 있든 희학질을질탕하게 벌이고 있든 서푼의 꽃값도 없는파락호가 헐뜯을 일이 아니니 썩물러가란말여." "괄시가 섣달 자리끼같이 차갑구나.그러나 오늘만은 나도 사정이 매우달라졌다. 서푼이 아니라 몇백 냥 금어치에뒷물 깨끗이 하고 상방으로 들어와 수청들이라."이몽룡이 콩소매를 뒤져 향낭을 꺼내계집이 바라보는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그러나 그 향낭의 출처를 알지 못하는논다니 계집은 역시 썩 내켜하는 기색이아니었다. 외상술에 오입질까지 엄대 긋고다니는 이몽룡이가 하룻밤 사이에 몇백냥에 버금가는 횡재를 챙겼다면 도둑질아닌 다음에야 바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장안에 이름자가 떠르르한다는 부승지자제라지맹, 남원에서 저지른 일로부모와는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동가숙 서가식하는 주제에 백 냥 금어치의행하돈을 지녔다는 것부터가술수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 논다니계집은 끝내 지분거리고 있는 이몽룡을내쫓을 생각으로 방 윗목에 두었던 자리끼사발을 들어 섬돌 앞에 선 이몽룡의얼굴에다 끼었으며 뇌까렸다."네놈이 엄대 긋고 간 살 꽃값은 자리끼한 사발로 탕감된 것이니 두 번 다시 내집사립문 앞에선 얼씬도 말거라."물 사발을 뒤집어쓴 이몽룡은 그러나손으로 콧등을 쓸어 물기를 닦고 나서 핏대를 곤두세웠다."이년, 엇다 대고 못된 행패더냐. 이런악증을 부리고도 무사할 성싶더냐?"분기탱천하여 발뒤축을 구르며 꾸짖는중에 바라지문에는 계집의 모습이 사라지고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유자코를 한견대팔의 살피듬을 보자 하니 허우대가금강장사 버금갈 만치 껑충해 보였다.그 사내는 꾸짖고 있는 이몽룡의 체수를눈발로 가늠하면서 이죽거렸다."이거, 어느 곳간에서 빌어먹던 생쥐가백주에 남의 여염집에 뛰어들어 찍자를 놓는 게야."다잡아 묻지 않아도 밤새껏 계집과동품하고 있던 사내임이 분명했다."이놈아, 듣자 하니 계집의 거웃도 엄대긋고 만지는 서푼짜리 주제꼴에 삼이웃이들썩하도록 악중은 왜 부리느냐? 당장뛰어나가 단매에 어육을 만들어줘야 정을 다시겠느냐?"이몽룡이가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험악하게 생긴 사내를 바라보았다. 누깔이서로 겨뤄보았자 자신은 고목에 깔딱낫으로덤비는 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사내의말투가 도저하고 허우대가 험악하게 생겼다한들 장안의 파락호로서도 서춘짜리 겸기는있는 것이었다. 이몽룡은 가위 질린 기색이없이 마주하고 목자를 부라리며 사내를 꾸짖었다."이놈, 상없는 놈이 감히 뉘게다가해라로 내붙이며 가당찮은 욕지거리를대중없이 뇌까리느냐. 나와 한번 겨뤄볼의향이 있다면 사내답게 옷매무새를 고치고뜨락으로 썩 나설 일이지. 개바자 뒤에숨어사는 족제비처럼 계집의 등뒤에 숨어서응석을 떨고 있는 게냐.""어, 이놈 봐라 말투 거센 품이 자칫덧들였다간 피칠갑하겠군 그랴."모가지를 돌려 앉히겠다"야 이놈아. 내가 지난밤에는 색탐하는계집의 채근에 시달림을 받아 하초가녹작지근헤진 터이지만 체수 잔망스런책상물림한 놈쯤은 단매에 저승으로 보내줄여력은 아직 남아 있다. 신명떠름 한번 할까?""이놈. 벼르지만 말고 썩 나서지못하겠느냐. 나도 태견으로 몸을단련하였으니 결단코 호락호락하진 않으리."땅땅 벼르는 이몽령의 뱃심에 사내도울와가 치민 게 분명했다.옷매무새를 고치며 섬돌로 내려서는사내의 행색을 보자 하니, 숭례문 밖 칠패저자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선길장수아무렇게나 틀어올린 불상투에 허벅지아래를 덮는 긴 저고리, 그리고 종아리에행전 둘러친 꼴이 갈데없는 난전꾼이었다.사내가 상없는 난전꾼이란 것을 알아챈이몽룡은 스스로 입맛이 씁쓰레하였다.어쩌다가 자신의 처지가 이런 불상놈과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더란 말인가.자책감이 가슴을 싸늘하게 적시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경황중에 무엇을 어찌하여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 사내의 허우대를목도하게 된 그는 일순 눈앞이 아찔해서난데없는 아지랑이가 오락가락하였다.예견했던 대로 사내가 주먹을 쥐어 그를 한번 내려치기라도 한다면 이몽룡쯤은 당장박이터질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아니었다. 땅땅 벼르며 얼러보자고으시대었던 것이 금방 후회되었다. 얄미운계집은 바라지를 빼끔하게 열고 줄곧바깥의 동정을 훔쳐보고 있었다. 물어보지않아도 이몽룡이가 등줄기에서 누린내가나도록 얻어맞는 꼴을 구경 삼자 함일 것이었다.뜨락에서는 그러나 침묵이 흘렀다. 두손을 불끈 움켜쥐고 사내가 선공(先攻)으로싸움 트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그러나사내는 이 몽룡의 어깨 위로 가만하게 손을 얹었다."그만둡시다. 이미 승패가 결단난 일을두고 서푼 짜리 악증을 부려 겨룬다는 것은옹졸하고 어리석은 일이오. 게다가계집으로 발단이 된 하찮은 일이오. 명색엎치락뒤치락 뒤엉켜 흙투성이가 된다는것도 구경꾼들만 불러들일 뿐 별 무슨 소득이 있겠소."이해타산에 밝은 장사치다운 말이기도하였고 국량을 가진 사내로서의 아량이기도하였다. 그러나 순간 평소부터 미천한부류로만 여겨왔던 장사치가 그런 국량을보였다는 일에 스스로 배알이 뒤틀린이몽룡은 당장 발끈하였다."어림없는 얘기다. 네놈과 같은 상것에게갖은 욕설과 애꿎은 창피를 당한 사대부의처지는 개차반으로 아느냐.""댁은 서술 시퍼런 사대부요. 시생은조선팔도를 정처없이 떠도는 미천한장돌림인 것을 왜 모르겠소. 그러나우리들이 입씨름을 하게 된 시단이던지고 지체없이 알 궁둥이를 둘러대는논다니 계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겠소.시생이 듣건데, 사대부는 그 체통을엄중하게 여겨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팔베개로 잠을 청하는 궁핍을 겪을 지라도몸가짐에 괴팍하여 한길가 저자거리의잡되고 추한 것에 삼엄한 경계를 둔다 하였소.그래서 사대부는 장거리에 볼일이 있다하여도 삼가해서 그 수하의 노복으로하여금 장거리로 내보낸다는 것은 댁에서도모를 리 없겠지요. 그러나 외람되게도 댁은사대부의 지체로 장거리 한가운데애 있는창부의 집에 와서 왜자한 소리로 스스로사대부의 이름사를 더럽히고 있음이사대부의 지체란 그래서 스스로 경계하여거두지 않으면 자칫 더럽혀지기 십상이아니겠습니까. 댁이 기어코 결기를 삭일 수없다면 주먹을 들어 시생의 뺨따귀를치시오. 시생이 감내해 드리리라."그 순간 이몽룡은 사지에서 기력이 죄다빠져나가는 듯한 무력감에 빠졌더라. 그가섬돌에 엉덩방아를 찧고 털썩 주저앉아버리자 바라지문을 빠끔 열고 뜨락의동정을 살피고 있던 논다니 채련은 그 순간문을 쾅 닫고 입귀를 버쭉하면서혼잣소리로 이죽거리는 것이었다."주제에 질질 짜기는......"이몽룡의 눈언저리에 흘러내리는 눈물을보고 뇌까린 말이었다.그러나 장돌림이란 사내는 그때 허리를"댁의 준수한 모색을 꼼꼼히 살피건대귀골이 분명합니다. 댁과 같은 귀골이파락호의 행색오로 장안의 먼지를 쓸며주태배기로 지내고 있는 근저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법합니다.백지장도 마주들면 낫다 하였소. 혼자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보다는 상것인시생에게나마 실토정을 하고 나시면속이라도 시원할 터입니다.시생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판무식에 본데없는 산협 출신이긴하나 그간조선팔도를 발섭하고 다니면서 듣고 본견문 한 가지는 남다르다 할 수 있소.지체에 창피하다 생각 말고 얘기 하시오.댁과 시생은 오다가다 우연히 만난사이라지만 알고 보면 우린 구멍동서가"내가 자네에게 훈육을 받을 만큼 구렁에빠진 처지는 아니겠으니 육허기 채우고해웃값 처렀거든 갈길이나 가시게."이몽룡은 눈시울을 닦고 있던 소맷자락을들어 장돌림이란 사내에게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그러나 사내는 괴춤을 뒤지더니 전 대를풀어내는 것이었다. 전대 속에서 엽전꿰미하나를 꺼내는가 하였더니 문을 열고방안으로 던지면서 논다니 채련에게 분부하였다."이 돈으로 나가서 술과 안주를사오너라. 명색 기둥서방이란 분에게 네대접이 그토록 매몰차고 소홀해서야 쓰겠느냐."게걸스럽게 엽전꿰미를 받아든 채련이는"이만한 금어치라면 돼지와 닭을 잡겠습니다.""해장술에 돌고기는 소용없다. 냉큼일어서지 못할까. 이 선다님을 방으로 뫼시어라."밤새껏 요분질에 허벅다리가 지치기도했으련만 채련은 오리궁둥이를해죽거리면서 술과 안주를 받으러 나간사이 장돌림은 탈기 한 채 먼산바래기를하고 있는 이몽룡을 곁부축하여 방으로 좌정시켰다."자네 성함이 무언가?"그제서야 이몽룡은 장돌림을 하게 말로대접하였다. 장돌림은 허리를 굽혀공대말로 대접하였다."미천한 것이 어찌 외람되게 성함을장돌림으로 불러주십시오.""자네에게 폐단이 되고 있네.""동서지간에 무슨 거북한 말씀입니까.오늘은 파탈하고 아랫동서의 술을 받아주십시오."이때 남원의 춘향이는 구관 사또의자제였던 이몽룡을 섬기고자 정절을지킨다는 소문이 이읏고을에까지자자하더라. 그 소문 듣고 어중이떠중이들이 춘향의 집 담 밖으로모여들었다. 관속(官屬)들은 물론이요.길청의 아전배와 건달들은 말할 것도없거니와 장사치와 공인(工人)바치와한량들이며 늙은 녀석, 젊은 녀석, 키큰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꾸역꾸역모여들었다. 개중에는 물에 씻은 차돌같이곰배팔이와 언청이 할 것 없이 몰려와어담장올 기웃거리는 것이었다.일태면 배꼽 아래에 명색이 고기방망이를 차고 있다는 사내놈들은 모두모여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지벌(地閥)을 자랑 삼자는 놈에,재물(財物)로써 달래보려는 놈.문장(文章)으로 후리려는 놈에, 거문고나단소 피리소리로 꼬드기는 놈. 매파(媒坡)띄워 감언이설로 속차리려는 잡놈들이많았지만 일편단심 춘향이는 하루에 두번씩 토옥에 갇혀 애매한 옥살이를 하고있는 최씨부인 구매밥을 갖다 먹이는 일이외에는 단 한 발짝인들 허튼걸음을 걷는 법이 없었다.그즈음 신관 사또인 변학도는신연(新延)관속들의 현신(現身)받은 후에이방을 불러 물었다."너의 고을에 있는 양이는 아직도 무사하렸다?"이방은 첫마디에 알아듣지 못하고조아리며 엉뚱한 말로 대답하였다."소인의 고을에 양(羊)은 없습니다만,염소는 백여 마리 기르고 있습니다."변학도의 입에서 당장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이놈아, 내가 백 마리 염소를 혜아리라하였더냐? 기생 중에 양이가 있더냐.""남원 기생중에 뜸배질하는 뿔 달린 짐승은 없습니다.""이놈 봐라, 시방 날 조롱함이 아니냐.""미련한 소생이 어찌 사또를 조롱할양(羊)을 들먹이심에 뿔 달린 짐승은기안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여쭈어드렸사옵고 혹은 염소탕을 즐기시나 해서백여 마리의 수효를 해아린다 아뢰었거늘이것이 어찌 조롱이 되겠습니까.""그놈 제법 소명한 체 지절거리고있구나. 그럼 향이는 아직 있더냐?""남원에 춘향이라는 여염집 규수가 있긴합니다만 기안에는 그런 이름이 없나이다.""어찌 그러하냐.""다름이 아니오라 구관 사또 도형님과상약(相約)한 이후 지금은 수절하고 있다고일전에 말씀드렸습니다."변학도가 그때 목덜미에 핏대를곤두세우고 곱지 않은 눈망울 이리저리 돌리면서 말하였다.마른 풋내기 주제에 작첩(作妾)이라니 말이되는 얘기냐. 네 놈 먼저 내려가서 그년춘향을 기안에 적바림하여라.""사또 그것은 불법입니다.""네놈이, 내 앞에서 아는 척 마라. 내가바로 율(律)이요, 법이다.""나으리, 고정하십시오.""네놈이 가진 이방 직첩이구 구실이구지금 당장 떼어버리기 전에 분부 시행 못할까."변학도는 곧장 치행하여 발행할 제,남대문 나서서 칠패 저자거리 벗어나청파(靑坡) 돌모루 동작나루 건너과천(果川)객사에서 하룻밤 유숙하였더라.도임행차 첫날밤에도 수청들일 계집을물색해 줄 별배들이 없는가 하고누마루 아래쪽을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있는한 놈을 손짓으로 불렀다. 불러놓고 보니허우대는 껑충하되 매우 얼굴은 콩멍석에엎어진 놈처럼 박박 얽었고 한 눈은찡긋해서 매우 추악한 위인이었다. 그러나 변학도는,"너의 외모가 매우 순박하고 기특한놈이로구나. 넌 네 고을 남원의 일을 잘 알고 있느냐?"별배란 놈이 누마루 아래에서 콧등에흙이 묻도록 허리를 조아리며,"소인이 그곳에서 삼십 년을생장하였사오니 털끝만한 일이라도 소인이모르는 일이란 죄송하께도 없사옵니다.""어허, 오랜만에 말대답 한번속시원하다. 삼십 년 동안의 남원의 일을맞추어 대답하는 말 한번 홀딱 벗은 계집보듯 시원해서 좋다, 네 구실은 일 년에얼마나 먹고 다니느냐?"신관 사또 묻는 언사가 매우 은근한지라별배란 놈은 한 번 깊숙히 조아리고 나서,"아뢰옵기 황송합니다.""황송할 것 도대체 없다.""구실이라 하옵는 것이 좁쌀 석 섬이고작입지요. 그러하옵기에 이런 때 행차를모시러 서울에 오게 되면 관아의 구실로서내왕행보를 하게 되지만 쇤네 스스로노자를 마련해야 되겠기에 길에서 만나는숫막에다 엄대 긋고 먹고 다녀야 하기에여북하면 굶고 다닐 때가 많겠습니까.그러하옵기에 변리에 또한 곱으로 변리를물어야 하는 경주인(京主人)에게 진 빚이때가 많아 끌려가서 쓸기 맞기를 섣달그뭄날 흰떡 맞듯 하옵니다.""가능한 일이다.""알아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넌 상호가 그처럼 순박하게 생겼으니계집들이 널 얕잡아보고 경계하지는 않으렸다.""그렇습지요.""계집들이 널 하찮게 여겨 오히려경계하지 않는다면 너로 봐선 오히려그것이 빌미되어 계집들에게 접근하기가수월할 터, 너 은밀히 나가서 수청들일계집 하나 유인할 수 있겠느냐.""그런 일이라면 앉아서 떡먹기입지요.""그럼 됐다. 나가 보아라. 밤이 이숙하여좌우가 물러나거든 은근히 기척해서별배란 놈이 해죽해죽 무러나는 터에변학도는 별배를 다시 불러 나직히 당부하였다."들여보내기 전에 뒷물 시키는 것 잊지말아라. 산협고을 처기들의 곰삭은젓국냇매는 딱 싫은 성미다."밤이 이슥하여 좌우가 물러난 뒤 타고있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소슬하게 앉아있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기척이 났다.소스라친 변학도가 미닫이는 열지 않고고개만 밖으로 돌리며 나직하게 물었다."게 누구냐?""쇤네입지요.""냉큼 들여보내지 않고 뭘 꾸물대느냐.꼴같잖은 뜸 들이고 있는 게냐?"그때서야 궁금했던 변학도는 손수수청들이라는 계집은 보이지 않고 별배란놈만 짐승처럼 껑충하게 서 있었다. 머쓱한꼴을 보자 하니 당부한 일을 그르치고돌아온 게 분명하였다. 당장 핏대가곤두서서 불호령을 내릴 참이었으나 눌러 참고 물었다."주제꼴을 보자 하니 일을 그르친 것이냐.""일을 그르친 것은 아닙니다.""아니라면 네놈 혼자 열 적게 서 있는까닭은 어디에 있는고?""밤바람도 쐴 겸해서 미복(微服)으로납시는 것도 해롭지만은 않을 듯해서달려왔습지요. 이곳에서 불과 반 마장도안되는 상거에 살고 있는 어떤 여염집규수를 만나 켯속을 떠본 결과 나으리께잘못되었다는 면박을 들었습니다.""그 무슨 해괴한 망발이더냐?""나비가 꽃을 찾아가는 것은 고래로부터내려오던 삼라만상의 궤적(軌跡)이요순리인 터에 어찌 꽃이 나비를 찾아갈 수있겠느냐. 이는 순리에 대한 거역이니 설령규수가 몸소 찾아와 나으리 와 합방을 한다하여도 침 석의 재미는 썩 달갑지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그건 네놈이 꿍꿍이 속으로 거짓 꾸며낸말이냐 아니면 여염집 규수가 제 입으로 한말이냐 "쇤네의 꿍꿍이 속이라니요. 억탁의말씀입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쇤네가언사를 꾸며대는 죄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여염집의 규수가 어찌 색에 달통한언사를 농할 수 있다는 것이냐. 그런데도상호를 쳐들고 꾸며댈 것이냐.""쇤네가 보기로는 그 규수가 나으리와침석을 같이하고 싶은 심정은 간절하되이목이 번다한 이곳 객사가 다소깨림칙하여 은밀한 가운데 나으리를모시려는 속셈인 듯합니다.""네놈이 둘러대는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언사의 내막은 그럴듯하다. 계집의 모색은 어떠하더냐.""가위 국색으로 대접할 만하더이다.""과천에 국색이 살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국색이 따로 있겠습니까. 객수에시달림을 받는 나그네에겐 언청이도 국색일 수 있겠지요."네놈이 주선한 일이 언청이 계집으로 마련한 것이냐?""그 규수의 옥문이 세로 찢어진 것인지는벗겨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으나 입은 가로찢어져 멀쩡하였습지요.""이놈, 나와 농을 하자는 것이냐, 고이헌 놈.""그럴 리가 있겠습니까.""기다려라. 네놈이 추선한 일이 아담한것인지 내 몸소 가서 아퀴를 짓겠다."변학도가 계집을 낚아채는 일이라면 서울장안에서도 호가난 터에 야행인들 두려워할위인이 아니었고,설령 남원으로 도임하는행차 중일지언정 계집을 후리는 일이라면,도임길이 거꾸로 되어 서울로 되짚어오른다 한들 삼가할 위인은 아니었다.조방질을 면박을 줄만큼 톡 쏘는 성깔을가진 도저한 계집이었다면 웅당 살결도매끄러울 뿐더러 침방에서 요분질하는솜씨쪼 야금받을 게 틀림없었다.선머리에서 히죽히죽 걷고 있는 별배를미복의 변학도는 족둥(足登)도 없이휠적휠적 뒤따라가고 있었다. 객사 뒷문을빠져나와 꼬부라진 고샅길을 몇 번이 나돌았건만 두어 발짝 뒤에 선 변학도는 길이멀다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수양버들 너댓 그루가 듬성듬성 둘러선천변길을 따라 오르다가 다시 고샅길로들어서는데 급기야 불이 환하게 켜진여염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삽짝 밖에서통자를 넣을 것도 없이 성큼성큼 뜨락을가로질러 불켜진 봉노 앞에 이르자,곧장 문이 열리는데 저고리는 벗어 던져박속같이 희디흰 어깨와 젖가슴의 속살이그대로 드러난 계집 하나가 문을 열고내다보며 해죽 웃음을 흘리었다. 그 교태를보자 하니 길가에서 잔술이나 팔고 있는들병이에 방불한데 그 집은 안침술집도아닌 여염집이 분명하였다.오입질에 이골 난 변학도라 할지라도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이상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놈아."별배란 놈 또한 허리를 조아렸다."저게 구미호인가 사람인가.""사람입니다.""계집사람이라면 어찌하여 빈객을맞이함에 버르장머리없게 저고리를 벗고"나으리께서 봉노로 드시면 당장침석으로 드실 태세인지라 번거로운인사치레는 거두고 진작부터 저고리를 벗은 줄로 압니다.""고이헌 것. 그렇다면 치마부터 벗을일이지 저고리부터 벗는 풍속은 어느 나라오랑캐 풍속이더냐.""대저 계집사람들은 순서를 차리고격식을 차리는 일에 삼엄한 경계를 두는법입니다. 치마를 벗자면 저고리부터 벗는것이 순서 아니겠습니까.""저건 여염에 들어앉은 계집이 아닌논다니 계집이기 십상인데?""논다니라니오. 쇤네가 여염집의 규수로주선하겠다고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여염집 규수의 교태가 저토록"과천이라는 곳이 서울로 드나드는번다한 길목인지라 진작부터 풍속이순박하지 못해서 들어앉은 집 규수의모색이 저토록 요란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어서 듭시지요."변학도가 꺼림칙하여 내키지는 않았으나계집의 교태가 워낙 호들갑스러워 시선을사로잡는지라 내키지 않는 거동으로 봉노로들어가 앉았다. 웬걸, 봉노 안에는 벌써주안상이 차려져 있는데, 과천에서는주변하기 힘든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겠다.변학도가 거북한 대로 좌정을 하자계집은 물 묻은 손에 깨 엉키듯 댓바람에턱 밑으로 바싹 조여 앉으며 알랑방귀를 뀌었겠다."선들선들한 것이 행보할 만하더라.""나으리께선 어디로 행차하시는 길입니까.""남원으로 춘향이 보러 간다.""말씀이 매우 퉁명스럽습니다 그려.""초인사도 올리지 않는 계집사람에게외간사내가 퉁명스럽게 구는 것은 무례한일이 아니지 않느냐."그제서야 계집은 서둘러 벗어든 저고리를꿰입었다. 그리고 잔허리를 꼬며나부죽하니 큰 절을 울리고 나어 한마디 여쭙더라."저는 채련이라 하옵니다.""채련이라? 듣고 보니 기명(妓名)임이 분명한데?""그렇습니다."흘기었다."아니, 저 별배란 놈의 농간이 아니냐.내 주선하라고 분부했던 것은 양가의 규수라 했거늘.""별배를 타박 마십시오. 여염의 규수들은두루 알아봤으나 서둘러 뒷물을 시켜보아도사추리에서 곰삭은 젓국내가 지독하게도가시지 않는 터라 매우 당황하여 궁리를하다 못해 저를 주선한 모양이더이다."시큰둥해 있던 변학도는 피아말 엉덩이둘러대듯 배씹는 소리로 사근사근알랑방귀를 뀌고 있는 채련의 교태도 크게싫지는 않은 듯 놋쇠 술잔을 들어올리며술이나 치라고 불퉁가지를 부렸다.채련이는 한 손으로는 변학도의 잔하리를휘감고 허벅지는 변학도의 가랑이 안쪽으로넘치도록 약주를 부었다."나으리?""왜냐?""쇤네로 하여금 수청 들라시면 오늘밤이누추하고 협소한 와실(蝸室)일지언정쇤네와 더불어 밤을 지새울 것이지요?"명태 부침개를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고있던 변학도는 그러나 솔깃한 기색이 아니었다."네 살갗이 얼음결처럼 매끄럽고 또한요분질이 키질하듯 야들야들하다면 닭울녁까지 수청을 들일 수도 있겠으나 썩은통나무처럼 자빠져 있기로 한다면 그 당장박차고 일어서겠다.""객사의 야경꾼들이 순라를 돌다가나으리께서 객사의 처소를 비우고 잠행하신 모를 터인데요.""순라장들이 설혹 내 없는 것을 눈치재고한다리로 몰려나가 나를 추심(推尋)한다한들 어느 여염집을 뒤져 나를 적발할 수있겠나. 끽해야 술청거리나 뒤지다가단념하고 돌아가겠지.""쉽게 좌단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만약 순라꾼이 나으리가 잠자리에 드시지않으신 것을 알게 되면 불량배에게유괴라도 당하신가 해서 객사가 발칵뒤집히게 될 것은 물론이요.과천 군수조차 뛰어나와서 나으리 행방을찾자 하고 북새통을 이루어 난리법석이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그렇게 되면 결국은 나으리의 체통에똥칠하기 십상이고 남원까지 가야할 것입니다."채련의 말에 변학도는 가슴이뜨끔하였다. 계집이 재잘거리는 말이흰소리로만 여길 수 없는 대목이 없지않았기 때문이었다.머쓱해진 변학도는 그러나 퉁명스럽게 채련을 꾸짖었다."약 주고 병 준다는 시챗말이 있듯이네년이 바로 그짝 아니냐.네년을 수청들일뜸도 들이기 전에 나 창피 당할 걱정부터먼저라면 이건 약 주고 병 주는 물이아니라 약 주기 전에 병부터 주는격이니네년의 속셈이 뭔지 적지 않게 수상쩍구나."채련이는 술주전자을 내려놓고 남작 엎드렸다.험담이 어디 있습니까. 새털같이 수많은 날중에 단 하룻밤인들 미행하신 나으리를침석에 뫼심에 있어 때 아닌 동티라도 나면그 또한 쇤네로선 불경을 저지르는 일이라,일찍부터 침석의 주위를 경계하여 뒤탈이없게 조처함이 좋을 듯하여 나으리의의중을 어렵사리 떠본 것인데 어찌 억탁의 말씀만 하십니까.길가에 핀 노류장화 신세라 한들 오는걸출하고 준수하신 나으리를 뵙고 심기애틋함으로 가슴을 옥죄이고 있는데 계집의심사를 헤아림에 그토록 몰인정하시다니....."귀여겨듣고 보니 계집의 말에 또한일리가 없지 않았다. 말재간도 얼추 남의빈축을 사지 않을 만큼 똘똘하고 육덕도일어날 수 없었던 변학도의 목소리가 비로소 은근하다."그럼 객사에 내가 없다는 것이 들통나지아니할 딱 부러질 계책이라도 있겠느냐?""어쨌든 나으리께서 객사로 돌아가실 닭울녘 시각까지만 순라 꾼들이 눈치채지못하게 객사의 잠자리를 조치한다면북새통이 일어날 불상사를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야 물론이다.""나으리를 수행해서 이곳까지 왔던 저배행꾼을 지금 당장 객사로 돌려돌려보내어 외람되나마 나으리의 차지하고잠든 채 하면서 때로는 코를 골기도 하고,때로는 잔기침하며 또한 요강을 끌어당겨소피보는 시늉을 한다면, 나으리께서일이 들통나지 않으실 듯 싶습니다만그것이 외람되어 내키지 않으시다면 그냥 두시지요.""저 배행꾼놈의 허웅대는 나와 비슷하나입성이 매우 남루하여 만에 하나 그의복으로써 본색이 탄로나기 십상 아닌가.""나으리께선 관복은 객사청 횃대에벗어두시고 지금은 미복(微服)차림이아니십니까. 약차하면 배행꾼이 그관복으로 잠시동안 순라꾼들의 눈총을 따돌릴 수 있겠지요.""너의 계책이 탁견(卓見)이다."무릎을 치며 껄껄 웃던 변학도는 마당가섬돌에 쭈그리고 앉아 망보는 시늉을 하고있던 배행꾼을 불렀다.그리고 채련이가 일러준 대로 객사의지키고 있되 이러이러한 일이 생기면저렇게 하고, 저러한 사단이 생겨나면이렇게 따돌리되, 만에 하나 이도저도 아닌일이 생기면 너 또 한 이도저도 말고다짜고짜 튀라고 분부를 내렸다.그러나 거시기 한 일도 생겨나지 않을경우 내일 새벽에 내가 가만히 객사로돌아갈 것이니, 첫닭이 울기 전에 먼저일어나서 객사 뒷문 빗장을 열어두라고 두번 세 번 눈자위를 번들거리며 머시기한말로 떠먹 이듯 일러주었다.변학도의 삼엄한 분부를 받들고 몰래객사의 침방으로 기어든 사람은 물론 서울칠패 저자거리 에서부터, 채련과 통을 짜고신연 행차가 동작나루를 건널 임시부터배행꾼으로 가장하여 행차를 뒤 따랐던주인 없는 객사방에 일같찮게 숨어든장돌림은 당장 횃대에 걸어둔 관복으로고쳐 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밖에서순라꾼의 기척이 들리면 거시기한 일이생겨나지 않도록 머시기한 목소리로잔기침에 코고는 소리를 내어 고단한 잠을청하는 척 가장하였다. 그러나 그 속임수는결코 오래가지 않았다.꼭두새벽도 아닌 한밤중에 객사청은느탓없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 북새통을이루게 되었다. 객사청에서 곤하게 잠들어있던 도임 부사께서 마침 야경하고 있던순라꾼을 불러 행차 채비하라는 왜자한분부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불도 켜지 않은 채 미닫이를 썩 밀어붙인뒤 누마루 아래에서 말뚝잠을 자며밑도끝도없이 뜰 아래의 보교(步驕)부터대령하라고 대성일갈인데, 밤빛으로 얼핏바라보자 하니 도임부사께선 벌써 관복까지갖추어 입은 뒤였다.객사방에 물것들이 들끓어서 밤새 한잠도이룰 수 없을 바엔 차라리 먼길 행차애노정이나 줄이자는 것이 도임부사의 속셈인듯한데, 워낙 괄괄한 성미에 목소리조차퉁퉁 부어 있는 골이 물것들에 시달림을받다 못해 울화가 치밀어 심통을 부리고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었다.그러나 도임행차중인 남원부사의추상같은 분부라면 그것이 심통이 아니라가당찮은 응석이라 한들 함부로 대거리하고나서서 밉상으로 보일 까닭이 없었고,그것이 사리분별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그또한 거북한 일이었다.보교꾼들이 때아닌 밤중에 서둘러 가마를대령하고 부복(腑伏) 하고 있는 사이에도임부사는 부리나케 내달아 덜컥 가마에오른 뒤 손수 휘장을 내렸다. 바쁘게 된,것은 신연행차 수행하던 남원 길청의 아전들이더라.동이 트려면 아직도 먼 한밤중에 그런야단이 벌어지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던 그들은 초저녁에 별배꾼들을등쳐서 술을 받아오게 하여 대취한 가운데잠자리에 들었었다.그들이 잠들었던 객사의 헐숙청에서는아전들을 들깨우는 별배들의 겁 먹은목소리와 어섯눈을 뜨고 갈팡질팡하는 아전들의 주책없는 거동들로 한바탕 소동이벌써 객사의 솟을대문을 벗어나고 있다는데취중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던 고쟁이와두루마기와 갓은 서로 뒤섞여 내 것과 네것을 분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내 것이라고 꿰어 입으려 들면 곁에 있던위인이 제 것이라고 낚아채고, 내 갓이라고쓰려들면 뒤에 있던 위인이 또한 양반이었다.대추나무에 연줄 걸리듯 얽히고 설킨입성들파 행리와 폼짐 속을 아전들이엎어지고 자빠지며 기약없는 수선을 펴고있는 중에 고목 그루터기에서 꽃이 피듯적지않게 반가운 소식이 헐숙청 밖에 당도하였다."나으리께서들 들으시오."가다듬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한메고 가던 보교꾼과 수행별배가 서 있었다."어인 일인가. 우리가 시방 똥끝이타들어 가도록 서둘고 있네. 촌각을 서둘고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게.""그것이 아닙니다.""그것 아니면 홀딱 벗은 몸뚱이로 지엄한도임행자를 수행하란 말인가.""그게 아닙니다. 나으리.""그게 아니라니? 사또께서 개고기를대령하시라던가?""개고기가 아니라 사또의 분부이십니다.""재촉도 다급하시지. 우리가 시방옷매무새를 갖춘답시고 도대체 경황이 없지 않은가.""입성들 차근자근 갖추시고 객사를 본때있게 나서시라는 사또의 분부이십니다.오리정 밖에서 새벽바람을 쬐고 있을 터,수행하시는 나으리들께서는 경황중에입성들을 갖추느라 허둥지둥하다가 혹여행차중의 연도에서 백성들로부터 행색에범절없다는 빈축을 살까 적지 않게우려하고 있답니다.또한 이곳 과천군수를 찾아가 안전께서미처 못 다하신 하직인사 대신하여 정중히여쭙고 뒤따라와도 늦지 않겠으니 모쪼록진중하시라는 분부가 지엄하셨습니다."듣고 보니 한숨 돌릴 일밖에는 남은 것이없었다. 보교꾼이 열린 문으로 방안을살펴봤더니 갓은 고사하고 아직 저고리조차찾아 입지 못한 채로 멀대같이 서 있는아전도 있었다. 성급하고 괄괄한 성미라는도임부사애게 무슨 귀신이 덮어씌워 그런언뜻 아량을 베풀게 된 컷속이의심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갖추고 과천군수께하직인사까지 깍듯이 치르고 뒤따르라는분부라시니 한숨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키 큰 놈, 키 작은 놈, 부대한 놈에 여윈놈들끼리 중구난방으로 주워입은 옷가지와갓을 제자리에 맞게 다시 바꿔입고세수하는 시늉까지 마친 뒤 아참동자는거르기로 하고 과천군수 찾아가 하직인사여쭙게 되니 과천군수 봄날의 뙤약별에놀란 꿩처럼 화들짝 놀라 상반신을 들썩하였다."아니 이 어인 매몰찬 결례시란 말인가.지방관의 전송조차 받으시지 아니하시고불쑥 행차에 나서시다니."일각이나마 길을 줄이자는 안전의성급하심을 감히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낙맥을 하고 앉았던 과천군수의 표정이그 순간 씁쓰레하게 이지러지는가 하였더니,"내가 그분이 여색을 무척 즐겨하시는성미라는 것은 풍문으로 들어서 알고있었네만 불과해서 서울서 반나절 노정인과천에서 성급하게 수청을 들이실까 해서눈치만 살피고 있었더니.지금 생각하니 지각을 차리지 못한 내대접을 흘대로만 여기시고 화증이 솟으신 모양이네 그려.""나으리 그것이 아닙니다. 안전의마음속에는 오직 남원 당도하여 수청 들일성춘향이란 미색으로만 가득하여홀딱 벗고 드러눕는 불상사가 벌어진다하여도 곁눈 한 번 뻐끗하실 가망도없으십니다. 공연한 짐작으로 심란해마시고 심려를 거두십시오.""만약 그분의 심지가 자네들 말대로그렇게 철두철미하시다면 천만다행이겠지만자네들이 그분의 심지를 딱 부러지게 맞힐 수 있을까.""눈치 한 가지로 구실을 먹고 산타는시생들이 안전 한 분의 눈치를 제대로꿰뚫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모쪼록나으리께서 저지르신 실책이 없었다고좌단할 수 있는 일이니 심려를 거두십시오.""그렇다 하더라도 아침동자까지 거르시고행차하심이 천리노정에 여간조급한 성미는 알다가도 모르겠군.""원래 파격을 즐겨하시는 성미 신 것을시생들도 소문 들어 알고 있습지요."걱정이 태산 같은 과천군수를 진땀흘려가며 달래놓고 신연행차를 수행하는아전배들은 줄레줄래 동헌을 나와 앞서간행차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때서야동녘이 희쁨하게 밝아오면서 첫닭이 홰를칠 시각에 이른 것 갈았다.아전들이야 앞에서 시위하는 길라장이가없다 한들 상경 때 한 번 찾아왔던 길을그대로 따라서 회정하는 것이었으니 사방이다소 어둑어둑해도 회정길 잃을 걱정은 없었다.그러나 옷매무새를 본때 있게 갖추고느릿느릿 뒤따라 오라는 행차의 분부가살아가는 가련한 아전들 처지로선 마음부터조급해지기 마련이었다.처음엔 잔걸음으로 걸어서 오리정 밖에서행자를 뒤따라잡자던 마음들이 한 발짝 두발짝 떼어놓게 되면서 너나없이 발걸음이빨라져 나중에는 숨이 턱에 와 닿을 지경이었다.변학도가 침방에 벗어두었던 관복으로변복한 장돌림은 객사를 나서는 길로수행별배와 보교꾼 한 놈씩을 객사로되돌려 보내어 수행아전들의 발걸음을묶어둔 다음 가마길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이놈들 어째 행보가 이다지도 느려 터졌단 말이냐."가마 속에서 떨어지는 호령의뒤따라오라는 분부를 내리신 분이새벽요기조차 못해 허기진 보교꾼들만느닷없이 들볶아대는 것이 탐탁치 않았던것은 사실이었다.그러나 행보를 빨리하라는 분부가 사리에어긋난다 할지라도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까. 물거미뒷다리같이 여윈 두 다리에 가래톳이서도록 달려가니 연도의 숲속에서 잠자던꿩들이 놀라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이놈들 빨리 걷지 못하겠느냐?""예, 나으리. 나는 듯이 걷고 있습지요.""나는 듯이 걷는 게 홰 탄 오리같이뒤뚱거리기만 하느냐.""근력이 쇠하여 죄만스럽습니다.""근력 핑계하지 마라 이놈들. 게으름을네놈들 구실을 떼버릴 테다."그 알량한 구실인들 떼버리고 나면 턱떨어진 광대꼴이겠으니 가랑이 사이에매달린 불알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발길을 재촉하였다.뒤축 떨어진 짚신이 벗겨지려 하여도들메를 고쳐맬 겨룰조차 없었더라, 앞채꾼뒤채꾼들 숨이 턱에 와 닿았고 진땀이 흘러사추리에 묻었던 땟국이 하얗게 가시었다.객사를 떠나 삼십 리 행보를 눈자위를하얗게 치뜨고 결음아 날 살려라한 셈이었다.그러다가 사위가 나무숲인 부인지경에이르렀는데 가마 속에서 느닷없이 멈추라는분부가 떨어졌더라."소피볼 일이 생겼느니라.""매화타령 하지마라 이놈들 저 숲속으로들어가서 속시원하게 뒤를 보고싶다.네놈들 행보가 이렇게 느려 터져선 환갑을먹고나서야 남원 당도하겠다, 가근방에세바(貰馬) 낼 곳이 없더냐.""소사(素沙)지나 성환(成歡)역참에이르시게 되면 그곳에서 안장마로갈아타시고 나는 듯이 남윈부중당도하시도록 주선하였사옵니다.""성환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오십 리가 빠듯하옵니다.""에이, 천불난다. 차라리 걷는 것이 빠르지 않겠느냐.""죄만스럽습니다.""재만이고 찰만이고 부질없는 넋두리집어치워라. 너희들은 멀찌감치 물렀거라.보교꾼들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부복하고있는 사이에 가마에서 나온 장돌림은소매를 떨치며 아직 새벽기운이 가시지않아 어둑어둑한 숲속으로 성큼성큼 결어 들어가더라.보교꾼들은 한숨을 돌리고 비 내린 뒤의방천둑에 눌러앉은 줄남생이들처럼 한길가풀성에 줄래줄래 늘어앉았겠다. 곰방대 한죽을 돌려가며 피우는 일변 괴춤에 찔러둔장떡을 꺼내 얼요기를 때우는 축들도 없지는 않았다.이마의 땀이 떨어져 짚신을 적실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숨 돌리는말미가 너무 길다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였다.한밤중에 객사를 발행할 재 측간 다녀올추스를 얼이 번거로울 것이었다. 그렇다면자연 지체될 일이었다. 다시 신들매를고치고 담배 한 죽을 더 담아 피웠다.그런데도 변학도는 가마 곁으로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행보가 느리다고 울화를 터뜨리시던사또께서 환갑 때까지 보 실 뒤를 오늘 몽땅 싸시려나.""거 참 별일일세. 뒤를 싸던중에개호주에게 주장군(朱將軍)을 물리셨나 원.""설마하니 호랑이 어금니같이 아끼시는고기방망이를 개호주에게 물려 보내셨을까.그 한 가지만 의지해서 남원으로도임하시는 분인데........""거 입정 대중없이 놀려대지 말게. 만약하셨다면 임자의 가랑이 사이에 달린고기방망이를 댕그랑 때버리려 하실 게야.""설마하니.....""설마라니? 안전께서 분기탱천하신다면우리같이 미천한 것들 하초 결딴내어 버릴일에 근력에 부대껴 못하시겠나. 세력이 없어 못하시겠나."핀잔을 당한 보교꾼들이 번들거리는눈으로 동배간을 흡떠보면서,"임자가 안전의 집에서 곁방살이를 한것인가 아니면 안전의 뱃속에서 내질린처지인가. 안전의 멧속을 손금 들여다보듯꿰고 있는 놈처럼 모르는 것도 알거냥하며잘난 체하는 까닭이 뭔가.""어, 임자 발끈하는 꼴이 자칫 손찌검할가망 없지 않군 그랴."주린 창자를 달래는 미천한 주제에 반죽만늘어서 무불퉁지로 아는 척하니까 배알이틀려서 하는 얘기여."언죽번죽 입씨름을 하면서 무료한 시각을죽이고 있었으나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할무렵까지, 뒤를 싸겠다고 숲속으로 들어간변학 도는 끝내 가마가 기다리고 있는곳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뒷덜미가 써늘해진 보교꾼들이 숲속으로흩어져 숲속을 서케 잡듯 뒤지기시작하였겠다. 그러나 장돌림의 농간에빠진 미련한 보교꾼들이 숲속으로 들어가는길로 진작 자취를 감춰버린 그를찾아낸다는 것은 차라리 모래뻘에서 바늘찾기가 수월할 터였다.눈이 시뻘개진 보교꾼들이 찾아낸 것은수행해서 모시고 갈 변학도는 온데간데없었더라.설상가상으로 먼저 떠난 행차를 허겁지겁뒤따라 잡던 수행아전들이 당도하게되었다. 가마를 지키고 있던 보교꾼이 와락울음을 터뜨리며 야단난 것을 아뢰었다.그러나 아전들은 그 실토정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울지 말고 시초부터 차근차근 알아듣게말하라고 재근에 위협을 하였지만 일백번을 되씹어 차근차근 사단의 실마리를아뢴다 한들 경국 남은 것은 이젠 싸늘하게식은 똥 한 무더기뿐이었다.보교꾼이 안석이 하얗게 질린 아전들을알선하여 똥 눈자리로 데려갔다. 가만히내려다보고 있는 형방아전이 말하였다. 않은가.""왜, 구린내 나지 않아서 밸이 들린다는 얘긴가."원래 지체가 있다는 벼슬아치들 뒤본자리에는 구린내가 지독하거든. 소문난산해진미를 게걸스럽게 거둬 자시겠으니그럴 만하지 않은가.""그럼 이건 험한 밥만 먹던 상것이 뒤본 자리란 건가.""그럴 수도 있지.""이 사람아 음식도 마찬가지거니와냄새란 것이 따끈따끈할 때 맡아야지 식은똥에 무슨 구린내가 그렇게 야단스러울까.거 형방이라 해서 넘겨짚는 버릇 일삼지맏게, 자칫하다 팔 부러뜨리네."면박을 당하고 머쓱해진 형방아전이"이런 낭패가 있나 그럼 무엇을 증거하여사또의 행지를 수탐하겠다는 것인가. 이건바람에 날려는 부들솜 잡기가 아닌가.""사또의 방귀를 잡아서 포박할 수 있다면행지를 알아낼 수 있겠지. 남원부중에서떠르르한다는 형방이 사또의 방귀인들 동이지 못할까."도임행차를 수행했다 해서 나중에 형방과싸잡혀 침책(侵責)당할 일이라도 생겨날까해서 처음부터 형방과 거리를 두는 것이상책일 듯 해서 한 발짝씩 물러서려는조짐이 역력하였다. 그때 앞 채꾼이었던보교꾼이 얼굴을 되들고 나서며 형방에게 아뢰었다,"가마를 내리실 때 쇤네들 행보가 느린것을 험담하시면서 세마(貰馬)를 내주는형방이 목자를 부릅뜨고 보교꾼을노려보며 식지가락을 내뻗었다."이런, 미련하고 해망쩍은 놈을 보았나.그 말을 왜 이제서야 지절거리고 있는 게야.""하교가 없으니 외람되게 입정을 놀릴 수가 없었습지요.""하교는 어느 고을에 있는 다리냐.""가근방 백 리 일경에 있는 고을에는이렇다 할 다리가 없습지요.""이놈이 내 지체를 하찮게 여기고 나와농을 하자는 게야. 이놈아, 있지도 않다는다리는 이 경황중에 무삼 연유로 들먹이는 게냐.""다리가 아니라, 하교(下敎)라고 여쭈었습지요."놀리고 있구나. 돌다리든 흙다리든 다리명색이긴 매한가지교 아랫다리든 뒷다리든이름 짓기 나름이지 개울 위에 가로놓인것은 매일반이 아니냐."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꼬여버린 것이까.미천한 주제에 책상물림들이 쓰는하교(下敎)라는, 언사를 흉내 내었다가이런 창피를 당한 것일까. 입도 뻥긋 않고가만 있으면 본전은 간다더니 그 말이 생판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았다.총기 있다는 칭찬 한마디나마 들으려고참견을 하고 들었던 보교꾼이 시뻘겋게딱기기만 하고 난감한 얼굴로 머쓱하게쭈그리고 서 있는데,지난날 글줄이나읽었다는 이방이 제 못난 것을 그때까지깨닫지 못하고 있는 형방을 지켜보다 못해"페일언하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사또의 행지를 수탐해서 노정을 바로잡는 것 아니겠소."핏대가 곧두신 형방이 불퉁가지를 내었다."그러니까 저 놈이 실토정을 한 다리가어느 고을에 있는 다린지 찾자는 것아닙니까. 춘향이 보고자는 일에만조급해진 사또께서 다리 건너 역참을겨냥하시고 보교꾼들을 버리고 서둘러달려가신 게 분명하오."끝내 하교(下敎)를 다리로만 알고 있는이 창피스런 경난을 양호한다면, 사태의실마리를 꿰뚫어보는 안목은 형방답게 그럴듯하였다."그렇소. 망극하게도 사또의 성미가불찰이었소. 여기까지 당도하실 동안보교꾼들 행보를 수 차례나 재촉하셨다면여기서 뒤를 보신 연후에 작정을 바꿔역참으로 달려가신 게 분명하오.""제 말이 그 말 아닙니까."형방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간 또 다시 말(言), 말(馬)알고 북새통이 벌어지지나않을까 두려웠던 이방은 저만치 비켜서서궁싯거리고 있는 아전들을 손짓하여 불렀다."우리가 여기서 너무 오래 지체하였소.잽싸게 사또의 뒤를 따라잡지 못하면사또를 수행하자고 서울까지 달려왔던우리의 수고가 풀거품되기 십상 아니겠소.서둘러 떠납시다.""따라잡자니, 누굴 따라잡자고 분별없이"나도 마찬가지지만 형방의 안목을믿어야지. 사또의 성급하심이 보교꾼들느린 행보에만 맡기고, 가마 속에 앉아있기가 거북했던 게야.""형방의 안목을 믿자니 이런 낭패가 없군그랴. 아직 흙다리인지 돌다리인지 분별도못하고 있는 형방의 말을 믿고 대중없이노정을 잡기보다는 뒤본 자리나마 흔적이뚜렷한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상책아닌가. 우리 떠난 뒤에 때아니게 불쑥나타나서 수행 별배들을 찾으신다면 그뒤통수 얻어맞는 야단을 누가 감당하겠나."뒤보았던 자리 하나가 그렇게 삼엄하게사람을 얽매고 들 줄은 몰랐다. 형방의짐작이나 예방아전의 짐작이나 모두가일리가 없지 않았으니 그들은 오도가도사이들끼리 살벌한 삿대질과 고함소리가오가면서 머지않아 서로 의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그러니 물에 빠진 사람이라 해서 모두하백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듯 그들의아귀다툼을 한마디로 잠재운 한 사람이나타난 것이었다.빈 쪽지게를 등에 진 육로행상인장돌림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때마침 남쪽길 모퉁이를 돌아서 심기가 뒤숭숭한 그들앞에 나타난 것이었다.수건으로 얼굴을 감싸서 눈자위만삐끔하게 보이는 그 장돌림이 나타나는순간 이방은 똥 본 개처럼 쭈르르 달려가서 물었다."여보게, 말 좀 물어보세.""자네, 혹여 이 길을 오다가 혼자서걸음을 재촉하는 관복차림 한 분을 보지 못했나?""관복차림 한 분 말씀이오?""그렇다네."그 순간 장돌림의 눈동자가 둥그렇게 떠졌다."시방 그분의 행지를 수탐하고 계십니까.""그렇다네. 우리가 그분의 축지를따라잡지 못해 시방 우왕좌왕하고 있다네.""하 그렇군요. 시생도 이런 시골길에어인 일로 관복 떨쳐입은 관원이 혼자서저렇게 열 불나게 걷고 있나해서 적지아니 놀랐습지요.""그분을 어디서 만났던가.""저런 낭패가 있나. 그런데 자네오뉴월에 땀들일 일이라도 있는 겐가. 볼을왜 그렇게 싸매고 다니나.""예. 시생이 때 아닌 볼거리를 앓고 있는터라 조심을 한답시고 볼을 싸매었습니다.시생 가까이 오시면 옮길까 두렵습니다."코밑으로 바싹 다가서려던, 이방이엇뜨거라 해서 뒤로 물러났고 멀찌감치 서있던 수행별 배들은 벌써 장돌림의 말을알아듣고 남쪽길로 달려가고 있었다.채련이가 과천 여염집의 봉노를 잠시빌려서 도임행차중인 변학도를 유인하여잔허리가 부러지게 수청을 들고 있던 바로그 집에 이몽룡이가 나타난 것은 그날해뜰, 무렵이었다. 그 집 울바자 밖에나타난 이몽룡은 삼이웃이 떠들썩하도록"이리 오너라."그러나 밤 깊도록 가죽방아를 찧어대며희학질하던 연놈이 사지가 촛농처럼노골노골하게 풀어져서 새벽잠이 곤한 터에목청 돋운 통자라 한들 금방 깨어날 리만무였다. 이몽룡도 짐작이 뻔한지라.이번엔 삼이웃의 구들장이 들썩하도록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이리 오너라. 게 누구 없느냐."목청을 드높이며 삽싹문을 거덜낼 듯걷어차는 거조가 가근방에 횡행하고 있는건달이나 악소패거리쯤으로 보였다. 삽짝밖의 왜자한 북새통에 먼저 깬 사람은변학도였다. 그는 자신의 아랫배에올라와서 천연덕스럽게 가로놓인 채련의허연 허벅지를 걷어내며 말하였다.걷어차며 악지를 부리고 있더냐."채련은 잠결에 끙하고 앓는 소리만 할 뿐빈 입을 다시며 바람 벽을 안고 돌아누웠다."네 기둥서방이란 놈이, 해장술에 회가동해서 찾아온 모양이다 그런데도 채련은사지가 녹작지근해서 어섯눈조차 뜨려 하지않았다. 간 먹은 놈이 물케더라고 지난밤의요분질이 그토록 호들갑스러웠으니채련이가 쇳덩이가 아닌 이상 피곤이뱃속까지 사무쳤으리란 짐작은 어렵지 아니하였다.문득 수청 들던 계집의 처지가 측은하여잠든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삽짝 밖의 사내는 냉큼 삽싹을 열지 않으면발길질해서 부셔버리겠다고 숭어뜀을"어허, 저놈 마른땅에 새우 튀듯 뛰는꼴이 자칫하다간 남의 침방으로 뛰어들겠는걸."그때였다. 곤하게 잠든 줄로만 알았던채련의 입에서 또렷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나으리, 심부름 같습니다만 나으리가나가셔서 저 원수 같은 놈의 다리몽댕이를작신 분질러 주십시오.""다리를 분질러? 다리 분질러뜨리는일이야 열 놈이 뛰어든다 해도 어렵잖다만저 험상궂은 놈은 도대체 누구냐?""나으리께서 진작에 기둥서방이란 별호를채워주시곤 누구냐고 물으십니까.""그럼 기둥서방이 옳다는 것이냐."" 짐작하신 대로입죠."변학도는 그러나 꿈쩍도 않고 처연한목소리로 말하였다."하긴, 내가 감당하기엔 속이 니글니글할정도로 네 요분질이 야단스러웠다면 네게빌붙어 있는 기둥서방이 어디한둘이겠느냐. 두름으로 엮는다 해도 세두름은 될 만하다.""나으리, 빈정거리시지만 말고 나가시어저놈을 작신 밟아 주십시오.""네가 나가서 좋게 달래 내쫓는 게순서다. 길가에 핀 오얏꽃의 처지로기둥서방 한둘 두었다는 게 크게 살풍경한일은 못되는 터, 내가 손수 나가서손찌검한다는 겸연쩍은 일이라, 자칫체모에 손상 입을 가망이 없지 않다.""쇤네가 비록 미천한 계집이긴 하나동품하였습니다. 옛말에 하룻밤을 자도만리장성을 쌓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계집의 하찮은 소청을 딱 잘라거절하시다니 야속하고 매정하십니다.""네가 만약 춘향이었다면 청이 없더라도내가 벼락을 앞세우고 뛰어나가서 저발칙한 놈을 두번 다시 오금을 펴지못하도록 박살할 것이로되, 지금은 그럴처지가 아닌 것 같으니 네가 나가서 찍소리없게 주물러줘라."채련이가 입을 비쭉하면서 부시시상반신을 일으켰다. 알몸으로 드러난오리궁둥이를 뒤뚱거리며 횃대까지기어가서 고쟁이를 벗겨 우선 벌건하초부터 수습하는데, 아랫목에서 풀대님을매고 있던 변학도가 소스라쳐 물었다.고쟁이를 가랑이에 꿰고 있던 윗목의채련이가 대수롭지 않게 되받았다."그놈 아직도 삽짝 밖에서 발을 구르고있지 않습니까.""아니, 저놈말고 그놈말이다.""아깐 이놈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그놈 아니냐.""나으리, 고정하십시오. 도대체 어느 놈을 일컬음입니까.""내가 알아듣도록 지위를 주어서 나 대신객사의 처소를 지키던 놈 말이다.""그놈이 삽짝 밖에 있는 저놈입니까."변학도로 보아선 말귀가 어두워서 도대체짐작을 모르는 계집으로만 여겨져 율기를하고 체련을 흡떠 보았다.말이냐. 그놈이 저 놈일 리가 만무하지 않느냐."그제서야 채련이가 이마지두 놀라는기색을 보이며 면상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었다."아뿔싸. 그 배행꾼이 닭 울 녘에 객사를몰래 나와 이곳으로 달려오라는 분부를내리셨던 것 아닙니까.""그러게 말이다.""그런데 왜 쇤네를 보고 잡아 잡수실듯이 목자를 부라리시는 것입니까. 쇤네가그 배행꾼의 길목이라도 가로막았습니까.""이 망칙한 년. 나를 일찌감치들깨웠어야 할 것 아닌가.""말씀인즉슨 그럴싸하십니다. 그러나입은 비뚤게 찢어져도 주라(朱喇)는 똑바로차이고 저 발길에 차이는 노류장화가평생을 두고 쳐다보아도 한두 번침석에뫼셔볼까 말까 한 나으리 같은 대인과천행으로 동품한 터에 새벽이 아니라, 해가중천에 뜬다한들 굴러온 요행을 발로걷어차는 미련한 짓을 왜 저지르겠습니까."반 근도 채 안되는 주들이로 백 근이넘는 변학도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지라.계집을 손찌검할 수도 없었던 변학도는대님을 매다 말고 벌떡 일어서는데, 윗복횃대 앞에서 저고리를 꿰업고 있던채련이는 그 순간 몸을 날려 느닷없이변학도의 종아리를 뒤틀어 잡고 납작 엎드렸다."나으리, 어디를 가십니까."화증이 상투 끌까지 치밀어 오른 꿇리면서 부아를 터뜨렸다."이년. 불각시에 이런 악지를 왜부리느냐. 게 누구 없느냐.""나으리, 미천한 쇤네라 해서 이런몰인정한 푸대접이 어디 있습니까.""푸대접이라니, 엇따대고 대중없는응석이냐. 그럼 내가 널 업어줄까.""쇤네 주제에 업어달란 외람된 응석을여쭙는 것은 아닙니다. 허벅지에 가래톳이서도록 하초를 키질하여 나으리를 감당하는일에 골몰하며 밤을 지새운 것을나으리께서도 익히 알고 계실 터, 이제쇤네를 두고 떠나심에 허우대도 그만하시고또한 체모를 엄중하게 여기시어 경계를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분께서 두둑하게떨궈주셔야 할 해웃값을 떼먹으려 하신다면"꽃값 말이냐?""꽃값이 아니라 살 꽃값이 아닙니까.""내 행색을 네가 보았더냐.""보고 있습지요.""누깔을 빤히 뜨고 있다는 년의 말본새가그렇게도 대중없음이냐? 네년이 보다시피미복차림에 무슨 해웃값을 가졌겠느냐.콩소매에 들어 있는 것이라곤 먼지뿐이다.""나으리 말씀 다했습니까.""그럼. 이 경황중에 너를 길게 상종하여지절거리면서 지체하고 있으란 게냐?""이런 개차반이 어디 있습니까. 인품이고매하시고 또한 장안의 청루에서도씀씀이가 인색하지 않으시다는 소문도 자자하십니다.그러시단 분께서 콩소매의 먼지를위협하여 밤새도록 품고 나서 해웃값을때먹으셨다면 그것은 체모에 똥칠하는 일이 아닙니까.""이 망측스런 계집년. 나중 갚아주면 될것 아니냐. 부대끼지 말고 이 다리 냉큼 놓아라.""죽 떠먹은 자리와 같아서 증거도 없는터에 나중에 받을 염치가 있을 수없습니다. 나중에 나으리께서 시치미잡아떼고, 내게 살꽃을 판 증거를 대라시면쇤내는 날샌 부엉이 꼴이 아닙니까.""내 평생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청루 출입이 번다하였지만 이런 낭패겪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옥에 티로다.춘향 보러가는 길에 이토록 상서롭지 못한불상사가 끼어들다니 이런 창피는 내"부덕이든 화덕이든 군불솥에 부지깽이든쇤네와는 상관없소 .나으리께서 쇤네와 동품한 현장에 있을때, 쇤네는 서푼의 해읏값 일 망정 받아챙겨야 하겠소. 명색없는 하향 천기는맹물만 퍼먹고 산답디까.""냉큼 놓치 않으면 요강을 들어 내년의니글니글한 대갈통을 박살낼 테다.""고종명을 못하고 지레 죽게 되면,염라국으로 가는 옳은 귀신이 못 되고십중팔구 삼도천 어름을 호매는 악귀가 될터이지요. 쇤 네 허공에 떠도는 악귀가된다면 그런 천행이 어디 있겠습니까.나으리 뒤쫓아 남원까지 내려갈 제,중로에서 사처 잡고 요기할 노자 한 푼소용없고, 먼길 노정에 행역 치러 다리싸 넣고 다니며 심술굿은 하늘의 변덕 따라옷 갈아입을 처지 아니되고, 순검하는나졸들 검색 따돌리려고 구차한 변명늘어놓으며 빌지 않아도 되고, 나으리 남원당도하시어 춘향 불러들여 홀딱 벗기고침방에서 딩굴게 되면 쇤네는 요리조리자리 옮겨가며 할끔할끔 구경할 제, 그재미깨가 섬으로 쏟아질 것이니,고조윈이나 분감청이다. 쇤네 귀신이나되게 제발 나으리 의향대로 쇤네의대갈통을 박살내어 주십시오.""아니, 이년. 피칠갑이 되어봐야 이손목쟁이를 놓겠느냐.""피칠갑까지 않아도 될 터이오."그 대답은 채련이가 한 말은 이이었다.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난데없이 문불쑥 둘려온 사내의 대답에 방안에선 일순 숨을 죽였다."해웃값은 내가 대신 갚아주고 입체를 설것이니, 미천한 계집년에게 피철갑하는야단까지 벌일 건 없소."의아하긴 체련이도 예외는 아니었던 터라양손으로는 변학도의 한 쪽 다리를진상가는 꿈병 동이듯 아주 바싹 끌어안은채, 뒷다리를 쭉 뻗어서 발 뒤축으로 문을밖으로 밀었다. 문이 열리고 섬돌에 서있는 사내의 상호가 바라보이는 순간, 변학도는 놀랐다.변학도가 제아무리 몰염치하고 반쭉이좋다는 위인이라 한들 그 순간만은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폼밖의 사내와는 서로초인사는 튼 적이 없다한들 면분은 낯설지파락호의 별호를 차고 다닌 터수에초인사를 나눈 적은 없다지만 동접들간의귀뜸으로 저것이 바로 이몽룡이란 것만은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몽룡 역시 변학도의 상호를 익히 알고있는 듯 채련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변학도를 발견하는 순간 입가에 얄궂은웃음을 홀리는 것이었다. 문밖에 서서방안에서 받아채던 악다구니를 죄다 듣고있었다는 듯 이몽룡은 빈정거리는 투로,"아니, 부사께선 어쩌다 이런 상없는낭패를 보고 계십니까."척하면 담 너머에서 호박 떨어지는소리라, 그곳이 옹색한 천기의 집이란 것을모를 턱이 없을 텐데 이몽룡은 짐짓 딴청을피며 한마디 국 찔러보는 것이었다.대꾸는 없었으되 속으로는 두번 다시 놀랐다.그것은 이몽룡이가 장안의 건달이라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들나루 건너서과천에까지 휩쓸어 술주렴을 다니는 내로라하는 건달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숱한 앙숙들 중에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가 하필이면 이몽룡이란 말인가.원수를 외나무 다리 위에서 만났다면물살 속으로 빠뜨려 버리기엔 그보다 좋은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원수일 망정 꽃값을입체하겠다 하였으니 경황중에 이런 은혜가어디 있을가. 아니나 다를까. 이몽룡은번들거리는 눈으로 채련을 꾸짖었다."이런 계집의 소행머리로 보면 사람이발목 놓치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대중없는 소가지를 부리느냐.""안전 아니라 어전이라도 쇤네는 놓치못하겠소. 차라리 죽여주십시오.""죽이라고 지다위하나? 내가 색주가섭렵하는 파락호 신세일 망정 널 죽이고남의 조롱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그럼, 입체(入替)를 서시겠다고 땅땅벼르셨으니 해웃값부터 떨궈주시는 게내로라는 지혜를 가진 분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해웃값이라면 얼마를 떨궈줘야 성이 차겠느냐.""황우소 한 마리 값을 받아야 하겠소."당돌한 계집을 바라보던 이몽룡은힘담없는 말로 물었다.셈이었다. 놀란 것 은 변학도뿐만 아니라이몽룡도 마찬가지였다. 눈자위를 하얗게뜨고 당돌한 계집을 바라보던 이몽룡은힘담없는 말로 물었다."네 사추리에선 누런 금덩이가 들쑥날쑥 하더냐?""도임행차의 안색을 보십시오. 하룻밤사이에 누렇게 뜬 안색을 보시면, 쇤네가황우소 한 마리 값어치는 하였다는 증거가아니겠습니까."똥개가 백 근이나 되는 기골 든든한사내를 하룻밤 동품으로 녹초를 만들어놓았다고 생색을 하는 채련의 말에이몽룡도 긴가민가해서 뒷짐진 채 변학도를보고 물었겠다."사또, 이 간활한 계집이 사또를아닙니까? 사또의 안색이 수척되긴하였으나 수척한 것이 지난밤 왜자한감탕질에 부대낌을 받은 탓이오?"변학도로선 지금 일각이 조급한사람이었다. 이미 해가 떠서아침선반머리께가 되었다면, 객사는 두말할것도 없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고, 수행아전들과 과천 나졸들이 그의 행지를수탐하여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인데,느닷없이 나타나 해웃값을 입체 서겠다는이몽룡이란 미친놈은 해웃값 입채는 선뜻않고 뒷짐지고 선채 물어보지 않아도 될남의 안색을 들춰 창피 줄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였다.난처한 처지에 있다하나 궁지에 몰린변학도에게도 한가닥 배알은 있는 법이다."아니, 서겠다는 입체는 서겠소, 아니 서겠소?"변학도의 눈발이 가파른데도 뒷짐진이몽룡은 찔끔하는 기색도없이 여전히 태연하였다,"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하였소, 내가 아니설 입채를 서겠다고 흰소리를 하였겠소.그러나 이 계집의 행방술과 미술(媚術)이제아무리 출중했다 할지라도 햇조개도 아닌터에 하룻밤 살송곳 웬 값이 과다하지 않소."왈가왈부에 횡설수설로 입씨름을벌이고만 있다간 무슨 난리에 창피를당하게 될지 생각하면 모골조차송연하지라, 변학도는 채련에게 잡혀 있는발목을 흩뿌리는 시늉을 하면서,것인지는 아직 면경을 못봐서 모르겠으나,코끝에서 단내가 혹혹 풍겼던 것은사실이니, 이년의 말이 생판 밀천미 없는흰소리는 아닐 터요."변학도의 입에서 실토정 비슷한 말이흘러나오자 채련은 더욱 기세등등하여덧붙이는 것이렸다."그것 보시오. 구름 끼어 안 보인다고보름달이 어딜 가겠소. 또아리로 샅 가리기지."그때밖에 선 이몽룡이 발뒤축으로 섬돌을꿇리며 입정 사나운 채련을 꾸짖는다."이년. 입에다 버선짝을 틀어막을라. 입닥치지 못할까."채련이가 말문을 닥치자, 이몽룡은변학도에게 강다짐을 두었다.있었기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삼엄한경계를 가졌어야 할 도임행차중 하룻밤농탕질에 평생 돌이키지 못할 창피와오욕을 깜길 뻔하였소.기공행하 한 가지만 바라고 살아가는본데없는 아랫녘 장수인 저 계집이 사또가당한 창피를 염두에 두겠소.""고맙소.""이 계집을 증거하여 남원 당도하면 닷푼변으로 셈하여 원리금을 갚아주시겠소?""여부가 있겠소."그때, 이몽룡은 콩소매 속으로 손을집어넣더니 향낭 한 개를 끄집어내어채련에게 던졌다. 채련이가 게걸스럽게향낭을 집어 해집어 보았더니 향낭 속에는산호와 호박에 옥지환과 같은 패물들이 능가하였더라.그 향낭은 바로 얼마 전 이몽룡에게 탑골안침술집의 아낙네가 건네주었던 바로 그향낭이었다. 채련이는 비로소 화들짝반색하며 향낭을 게걸스럽게 두 손에움켜쥐었다. 그리고 사추리의 얄미운옥문이 보일락말락 까치다리로 묘하게하초를 꼬고 앉으며 야금야금 뇌까리더라."나으리, 도임행차 먼길 행보에 부디 보중(保重)하십시오.""시끄럽다 이년. 뜻밖의 악연이로다."그 한마디 남긴 변학도는 구르듯 삽짝밖으로 내달아 뒤 한 번 돌아보는 법도없이 옷소매에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나는 듯이 객사에 당도하였더라.그러나 객사를 수직하고 있던 나졸의어찌되었느냐고 도저한 어투로 묻고 있는미복 차림의 변학도에게 꾀죄죄한 더그레떨쳐입은 수직나졸은 당장 불퉁가지를 내었다."도임행차는 왜 묻소?""이놈 봐라?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성깔을 부리느냐? 왜 묻소라니, 내가 바로남원 도임하는 변부사가 아니더냐."그런데 이 하찮은 나졸이란 놈의행동거지가 변학도가 보기에는 가히실성끼가 없지 않았다. 나졸은 본색을밝히는 변학도의 매골을 고개를 갸우뚱하게되들고 간색하더니 히죽 실소를 하면서 이죽거렸다."그러고보니 임자의 상판이 추물인변사또의 매골을 얼추 닮긴했군 그랴.도임부사가 너와 막역한 반련이라 한들대중없는 희롱 말고 별반거조 내리기 전에 썩 물렀거라."미복이라지만 옥색 도포 떨쳐입은변학도를 미친놈 취급하여 처음에는공대로, 나오던 말도 해라로 바뀌었다.관복 떨쳐입은 변학도 면전이었다면, 감히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고패를 떨어뜨려국궁(國躬)한 채 설설 기고 있어야 할나졸이란 놈의 버르장머리없는 언사와,얼굴을 되들고 얄기죽거리는 거조에 화가꼭두까지 치민 변학도가 분을 삭이고만있을 수 없었다. 그는 이죽거리고 있는나졸의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하게 귀쌈을 후려쳤다."이놈, 시방 뉘 앞에서 해라를 내부치며키꼴은 껑충하였으나, 하루 두 끼 섭생도변변치 않아 항상 허기가 져 있는 나졸은후려친 뺨 한 배에 휘청하고 쓰러질 듯하다가 가까스로 휘어진 몸을 수습하였다.그러나 배를 주리는 나졸의 신세라 해서아침나절부터 개평으로 얻어맞은 뺨 한대가 아프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관자놀이에 시뻘건 손자국이 난 나졸의눈자위에 그 순간 불이 번쩍하는 것같았다. 그는 들고 있던 방망이를겨드랑이가 찢어지나 싶게 높게치켜들더니, 변학도의 견대팔을 겨냥하고 힘껏 내리쳤다."이 미친놈이 감히 뉘게다 행패냐."뼈가 부러져 나갈 정도로 매몰찬 매질을당한 변학도가 견대팔을 싸잡고가까스로 몸을 가누려는데, 나졸은 그사이에 쭈르르 달려와서 변학도의 등짝에다또다시 대중없는 매찜길을 내렸다."이놈, 감히 도임사또를 사칭하길래아침나절부터 웬 미친놈인가 해서 달래내쫓으려 하였더니 천하에서 내노라는관원을 손찌검하려 든다면, 이건 실성한놈의 행패가 아닌 터, 너 이놈, 어디서 굴러온 행악꾼이냐."개평으로 얻어맞은 분풀이가호락호락할리 없더라. 문경새재 깊은 산속에서 베어낸 박딸나무 방망이로 등줄기를참없이 내리찍는데, 금방 코에서 누린내가날 지경이었다. 옥색도포에 찢긴 살가죽이묻어날 지경이었는데, 악증이 상투 끝까지치민 수직나졸(守直羅卒)의 설분은 좀처린객사 앞 한길을 지나던 길손들까지때아닌 난장질에 흥미없지 아니하여 발길을멈추고 고경소가 되었는데, 소시적집장사령(執仗使令)으로 거행하였던 완력을가져 사람 두들기는 일에는 이골 난 나졸의사매질은 매우 옹골차고 혹독하더라.하물며 평생 매맞아본 경험이 없는변학도의 처지로서는 찍고 후려치고둘러치고 매치는 날렵한 매질을 재간 있게피할 수 있는 방도조차 막연하더라. 곱다시어육이 되어 미상불 주저앉고 말아야 할 딱한 지경이 되었다.악연이로다. 하향천기의 꼬임에 회가동하여 하룻밤 동품했던 것이 기필코악연이었도다. 무 푼짜리 굿거리에 두부값이 닷 푼 이더라고, 서 푼짜리 오입질에것도 근자에 없었던 날벼락이었거니와잰걸음으로 게트림하며 행차했어야 할어엿한 객사 분전에서 눈앞에 은하수가왔다갔다하는 사매질을 당하고 있으니가슴에 맺힌 이 포원을 어디다 하소연할꼬.어허 흉한지고. 그러나 구곡간장끌어올리며 장탄식 할지라도 지금 당장변학도를 구명시킬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바로 그때였다. 객사문간이 쩌링쩌렁울리는 한마디가 나졸의 등뒤에서 들려왔다."너 이놈, 이 어인 행패냐."매질이 진력 날 즈음에 들려왔던대성일갈이었던 터라, 나졸이 힐끗 등뒤로시선을 돌렸다, 도포자락 떨쳐입은 골이그토록 말쑥하지는 않았으나, 쏘아보는자제쯤으로 보였다. 나졸이 대답하였다."행패라니오. 이놈이 감히 남원도임부사를 사칭하며 관원을손찌검하는지라 버릇이 팔자소간되기 전에냉큼 고쳐주고 있는 판국이오.""남원 도임부사를 사칭하더라?""그렇소."뒷짐지고 섰던 이몽룡은 그때 발뒤축을구르며 나졸을 꾸짖었다."설사 도임부사를 사칭하였기로서니관아로 모시고가서 사칭하였던 자초지종을조용조용 사문(査問)하는 것이 순서이거늘여럿 청중이 구경하는 면전에서 감히 도포입은 사대부를 사매질로 봉욕시키는 게여?""횡설수설하는 미친놈을 관아로 데려가서사문을 하라는 것입니까?"앞에서 함부로 지절거리는가.""도임행차는 지난 오밤중에 서둘러남원길로 올랐는데, 해가 중천에 뜬 지금객사 앞에 나타나서 제가 바로도임부사라고 삿대질에 손찌검한다면 이게실성한 놈 아니고 그럼 올곧은 정신 가진 놈이란 말이오.""남원행차가 때 아닌 오밤중에발행하였다는 말은 실성한 놈의 말이 아닌가?""제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객사로 들어가보시지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을 것이오."이몽룡이가 고개를 문안으로 기웃하니디밀고 횡하니 비어 있는 객사를휘둘러보았다. 물론 개미새끼가 아니라빈대 한 마리 조차 눈에 띨 리 만무였다."이분이 도임부사를 사칭하였고 또한언사에 실성끼가 있었을지 언정 도포 업은사대부를 한질에서 사매질로 욕을 보이는것은 경계가 근엄해야 할 관원으로서 큰질책이 아니냐. 실책이 아니라 불법을 자행했음이렷다?"찔끔해서 말문이 막힌 나졸을 옷소매로쳐서 먼발치로 내친 이몽룡은 축담 아래늘어진 변학도를 곁부축으로 일으켜 세워가까스로 들쳐업었다.변학도를 들쳐업은 이몽룡이 모여선구경꾼들을 향하여 잡아먹을 듯이 목자를부라리니, 그 시퍼런 서슬에 주눅이 든길손들은 찔금해서 비켜섰다.이몽룡도 허우대가 잔망스런 축은아니었지만 변학도 역시 그에 못지않게뒤뚱거리는 오리걸음이었다. 가까스로객사어름을 벗어나 남의 눈총이 없는호젓한 고샅길로 들어섰을 무렵 사뭇 끙끙앓기만 하던 등 뒤의 변학도가 넋두리를 하였다."나 죽소.""죽고 싶은 심정은 나도 마찬가지요.사또의 똥개가 어찌나 무거운지 허리가끊어질 지경이 오. 몸에 쇠붙이라도 지녔소?""아시다시피 미복차림에 살구씨 하나도 지닌 게 없소.""그런데도 이렇게 똥개가 무겁다니이상한 일이오. 이 경황중에 빨리 뛰는것이 상책일 터 사또의 몸에서걸기적거리기만 하고 지금 당장 무거운"내 몸에서 지금 당장 무겁고걸기적거리는 것이 무엇이오?""하초에 달린 고깃방망이란 것이 이다급한 경황 중에는 걸기적 거리기만하였지 아무짝에도 소용될 데가 없는 것 아니겠소.""주장군(朱將軍)을 때버리잔 말이오.?""이 모든 환난과 질곡이 그로부터 비롯된것일 뿐더러 또한 장차까지도 그것을 달고있음으로 하여 사또가 봉욕할 가망이 없지않겠으니 걸기적거리는 차제에 때어버리는것이 사리에 온당한 처분이 아니겠소.""안 되오. 차라리 팔다리를 자르는봉변을 감내할지언정 그것만은 안 되오."그 순간. 이몽룡은 걸음을 딱 멈추었다.그리고 어느 여염집 축담 아래에 변학도를젖은 솜뭉치처렴 기력을 못하고 담벼락에기대 주질러 앉았다."왜 이러시오? 나를 한길가에다내박지르고 떠나려는 게요?"이몽룡이 낭폐한 얼굴을 하고 푸념을늘어놓았다."도대체 도임부사란 지체를 가진 분이어쩌다 이 꼴이 되었더란 말이오?도임행차중에도 오입질하는 버릇을 고치지못해 그런 창피를 당하는 중에 우연히마주친 내가 해웃값까지 입체하여 창피를모면시켜 주었더니 곧장 뒤돌아서서 객사의수직나졸에게 매찜질을 당해 가위 초주검이되었지 않았소, 그 자리에 또한 내가없었더라면 사또는 필경 그 몸서리치고무엄한 사매질에 십중팔구 명줄을 떨구고그렇다면 이승에서 명줄을 떨군 사람이가는 곳이란 뻔하지 않소. 지금쯤 염라국의저승야차가 거동이 굼뜨다는 것을 빌미잡아 사또는 또한 몽둥이질 발길질에처참한 신세가 되었을 것이오. 그런데 시방그 봉변의 화근이 된 고깃덩이 한 가지를떼어버리자는 데도 그토록 인색하게 군단 말이오?"변학도는 눈앞이 아득하여적막강산이었다. 이몽룡의 요구가 무엄하기짝이 없으되 사리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당장 말문이 막히었다. 딱 잘라 거절하면피칠갑이 되어 기동이 임의롭지 못한자기를 버리고 달아날 조짐이 역력하고,다시 업혀가자면 호랑이 어금니같이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하초의 고깃방망이를게다가 옥죄이고 도는 이몽룡의 위협이또한 만만치가 않았다."내가 사또를 업고뛸 제 힐끗뒤돌아보자니 그 수직나졸이란 놈이 동패졸개들을 조발하려고 어디론가 뛰고있습디다. 머지않아 우리 두 사람추심(推尋)하여 뒤쫓을 것이오.그놈들이 떼지어 나타나면 애꿎은 나까지그놈들 신명떠름에 삽시간에 어육되고 말것이니, 나 역시 여기서 그리 지체할처지가 아니지 않소.그놈들이 벌써 사또를 실성한 놈으로규정짓고 말았으니 내가 나서서 사또가남원부사를 사칭한 것이 아니라고증거한다면 이젠 나까지 미친놈 취급하여모진 닦달 끝에 은사죽음 당할 건 불을그 한마디 떨군 이몽룡은 소매에 바람을일으키며 해적해적 고샅 밖으로 걸어가는것 , 사방을 휘둘러보았으나 혓바닥으로핥아낸 듯 인적이라곤 없었다. 듣기에도처절한 한마디가 변학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여보시오. 걸음을 멈추시오."저만치 먼발치에서 이몽룡이 뒤돌아보며 물었다."왜 그러시오.""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않았소. 우선 이리와서 내 말 들으시오.""듣기 거북한 말이오?""그럴 리가 있겠소.""때지어 몰려오기 전에 어서 말하시오.""내가 남원도임하는 즉시로 황우소 열그리고 남원 낭도한다 하더라도기안(妓案)에 올라 있지 않은 계집은천하에 짝이 없는 국색이라 할지라도 절대수청을 들이라는 분부를 않겠소. 이 두가지를 약조한다면 가위 내 하초에 달린주장군을 잘라내 버리는 것과 다름아니지 않소."뒷짐지고 서 있던 이몽룡은 잠시 뜸을들이는 눈치더니,"지금한 약조를 명토 박아 쏘고수결(手抉)할 수 있겠소?""당장 지필묵이 있다면 명토 박아적바림하리다만 한길가에서 지필묵을주번할 수는 없으니 내 말을 믿으시오.""내가 파락호의 별호를 차고 다니는신세라지만 근본은 선비 의 지체가 적바림하시오."이몽룡이가 콩소매 속을 뒤져필낭(筆瑯)을 꺼내더니 변학도의 턱 밑으로디밀었더라. 필낭까지 콩소매 속에마련하고 다닐 줄이야 꿈에서조차 예견치못했던 변학도는 그제서야 움치고 뛸여지조차 없게 된 것을 깨달았다.그러나 굼뜬 변학도는 아직도 이 모든것이 농간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더라.떨리는 손으로 필낭을 받아쥔 변학도는 제입으로 말한 두 가지 약조를 적바림하고수결까지 둔 두루마리 종이를 이몽룡에게건네주었다. 이몽룡은 다시 변학도를 추스러 들쳐업었다."우선 여염집으로 들어가서 피칠갑이 된행색이나 수습하여야 되지 않겠소."떠났다는 행차를 따라 잡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오.""사또의 행색이 가위 뜯다만 꿩이오.그런 꼴불견으로 설사 행차를 뒤따라잡는다한들 또 다시 실성한 놈 취급받기 십상이니호젓한 사삿집에 들러 수습하십시오.""사람 만난다는 일이 범보다 더 무서우니마을과 썩 떨어진 곳 집이나 서낭당이있으면 들어가서 쉬는것이 좋겠소."마을을 썩 벗어나니 숲속 당나무 아래로찌그러진 서낭당 한 채 가 바라보이는 터라두 사람은 그곳으로 들어가서 피멍도닦아내고 옷매무새도 대강 수습하였다.일각이 다급한 처지에 이몽룡은천연덕스럽게 이죽거리는 것이었다."그놈의 무엄한 사메질에 뼈라도사처를 잡고 구완부터 받으셔야 하지 않겠소.""삭신이 욱신거리고 뼈가 어긋난 것도같으나 시방 노래기가 우글거리는 서낭당에누워서 약주부를 불러 약을 닳이고 있을처지가 아니지 않소.비단 금첨에 모잽이로 누워서 남색짜리계집이 턱 밑으로 조아려 바치는 약사발을응석으로 내쳐가면서 구완을 받는다 해도성에 차지 않을 판국인데 노린내 등천하는서낭당에 코를 박고 엎드려 병 구완 받다니죽어도 나는 싫소. 하룻밤 사이에 내 팔자운세 이 모양된 것은 필경 그 배행꾼놈의농간에 빠진 게 분명하오.""배행꾼의 농간이라니 금시초문이 아니오?"주었던 그놈을 일컬음이오.""배행꾼이라면 그 지체가 상것이분명한데 감히 목도를 쳐들고 쳐다보기조차거북한 도임부사를 농간하려 들겠소.미친놈이 아니라면 언감생심 엄두조차 못할일이오. 사또께서 봉변당한 설분을 못하여억측만 구구한 것입니다.""그놈의 농간이 아니라면 어째서한밤중에 도임행차를 휘몰아 발행할 수 있겠소.""그 배행꾼이 간덩이에 털난 놈이라하더라도 사또의 안면을 익히 알고 있을수행 아전들의 총기 있는 눈썰미를 속일 수 있겠소.""내가 보기엔 농간이 있었다면 그배행꾼이 아니라 수행 아전놈들의 농간이"아전놈둘이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고원한이 있어 감히 도임부사인 나를 함정에삐뜨리는 일을 저지르겠소.""그럼 사또의 말씀대로 이 모든 경난이그 배행꾼이 저지른 악행이라 합시다. 설령그렇다 할지라도 수행아전들의 비호를 받지않고 성사될 일이란 말이오?"이몽룡의 말에 모순이 없는 터라번학도는 입을 닥치고 가만있었다. 두사람은 다시 채비를 수습하고 노린내가둥천하는 서낭당을 나섰다.사뭇 변학도를 업고 틜 수는 없는처지라, 이몽룡이가 곁부죽읕 하고쉬엄쉬엄 걷는 수밖에 없었는데, 마음은벌써 남원에 당도한 지 오래건만 몸뚱이는아직 5백 리 상거에 놓여 있으니 답답하고옮겨놓을 적마다 수행 아전들을 도마 위에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것이겠다."남원 고을 들어서는 길로 이방과 형방을잡아들일 것이오. 아갈잡이에 뒷결박을지워서 저간의 세세한 곡절을 물어볼 것도없이 장도감을 칠 것이오.한 놈은 장판(將板)에 엎치고, 한 놈은주리(周俚)를 틀 것이요. 장판에 엎친 놈은곤장에 살점이 묻어날 것이 틀림없을것이고, 주릿내에 하초가 틀리는 놈은가랑이가 뒤틀리고 뼈가 부서져 나가지 않겠소.그렇게 되면 누깔에서 피가 튀게되면서살려달라는 아우성소리가 동헌 담장을 넘게되겠지. 온 남원부중 백성들이 설한풍에사시나무 떨듯하며 납죽 엎드려 숨조차 보이는 것이오.""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오.선처수령(善治守令)으로선 할 짓이 못 됩니다.""그런 말 뒀다 하시오. 내 그놈들을싹쓸이로 갈아먹고 말겠소."변학도가 남원 도임하면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어 길청의 아전배들과 그떨거지들이 설한풍에 낙엽 흩날리듯 죄책을피하려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길 것이 눈에선한 터라, 이몽룡의 입에서 한 숨소리가저절로 터져나왔다.직임을 방지하여 남원부중 백성들을개잡듯 올가미 씌워 잡아들일 변학도와길벗하여 남원에 당도하였다가 그 곳백성들로부터 한통속으로 싸잡혀 원성 들게헤집고 보던 이몽룡은 그제야 아뿔사 하였다.입체를 서준 해옷값을 받아내겠답시고남원까지 뒤따라갈 작심을 가졌던 것은사실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철부지들이나다름없는 경거망동이 아닌가. 이런 경솔한행각이 어디 있는가. 춘향이 훼절당할까두려웠던 나머지 장돌림과 채련까지끌어들여 변학도를 골탕먹일 일을 꾸미긴하였지만 변학도와 작반하여 남원부중으로가겠다는 작정이 얼마나 경솔하고 미련한 짓인가.뇌물로 직임을 사들인 처지겠으니선치수령되기는 싹수부터 노란 처지에세페(稅弊)와 가렴주구는 얼마나 극심할꼬.남원 당도하는 길로 당장, 도임하였다저울 단다 간색미(看色米), 세입거덜났다 복호미(復戶米)아전들 구실 준다인정미(人情米), 창고지기 먹인다타석미(打石米), 벌충한다 낙정미(落庭米),양병(養兵)한다 군보미(軍保米), 쥐 먹는다작서모(作犀耗), 순시 나간다노부세(路浮稅), 세곡 받을 때창작세(倉作稅, 봇물 펴가니보수세(堡水稅), 도적 잡아준다초장료(草將料), 굿거리 벌이려면신포세(神佈稅),옛날부터 받아오던호별세(戶別稅), 이 핑계 저 핑계 온갖잡세 거둬들여 남원 백성 구차한살림살이를 씨앗조차 남기지 않고 거덜낸게 분명한 터. 이런 놈과 동행하였다가날벼락 맞기 십상 아니가.없음이라 햇발이 나절 기웃으로 기울때까지 남원길로 동행하지 않을 수가없었라. 중로의 주막거리에서 얼요기로끼니 대신하고 성환(成歡)못 미처 호젓한숲속길로 접어드는데, 볼거 리를 앓고 있는한 사내가 길가 풀섶에 낙맥을 하고처연하게 앉아 있었다.이몽룡은 먼빛으로 보아도 대뜸 위인의본색을 알만하였다. 변학도에겐 수행별베로가장하였던 바로 그 장돌림이었다. 그러나변학도 먼저 눈치를 첼 동안 이몽룡은시치미를 잡아떼고 내색하지 않았다.가까이 다가간 변학도 역시 사람알아보는 눈썰미는 없지 않아서 처연한몰골인 장돌림을 발견하고 당장 울화가치밀어 서슬 시퍼렇게 뇌까렸다.화들짝 놀란. 장돌림이 벌떡 일어나려다말고 턱을 땅에다 질질끌며 너부죽하니 엎드렸다."나으리, 이제사 행차하시었습니까."변학도는 손바닥을 허공으로 쳐들며장돌림의 따귀를 내리치려 하였다. 그러나아침에 당한 매질로 겨드랑이가 결리는지허공으로 올라갔던 손바닥이 무기력하게아래로 떨어졌다. 분을 삭일 수 없었던변학도는 온 삭신을 떨며 땅에서 먼지가풀썩하도록 뒤축을 구르고 나서 오지투가리깨지는 소리로 울부짖었다."이 육시를 해서 처참을 시킬 놈. 네놈의 죄를 알렸다?"냉큼 대답하지 않았다간 변학도의발길질에 콧등이 피칠갑이 되리란 것은장돌림은 여전히 턱을 땅에 질질 끌면서 대답하였다."미욱한 쇤네인들 사또께 작죄(作罪)한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여기서 나으리의 행차를 뵙자니 쇤네의처지가 해수(咳嗽)에 헐떡증을 겸하고울화허파에 물조갈을 겸한 것이나 다를 바없게 되었습니다. 쇤네가구종텔배(驅從別陪)에 불과한 미천한지체라지만 이런 낭패는 난생 처음이랍니다.""이노옴, 이 오살할 놈. 엇따 대고.핵변이 낭자하냐. 네놈을 당장밟아죽이리라."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분김을 삭이지 못한 변학도는 마른땅에새우 튀듯, 도토리 삼킨 고양이 숭어띔하듯먼발치에서 뒷짐지고 서 있던 이몽룡이가변학도의 괴춤을 잡아당기며 무안을 주었다."사또깨서 무인지경인 이런 산험길에서악증을 부린다 한들 누가 대견하다 하겠소.저놈이 엇뜨거라 해서 장달음을 놓아버린다면 사또께선 날 샌 부엉이 골이라 당장어디가서 분풀이 못한 하소연을 할 것이며누굴 잡고 농간버 소종래(所從來)를 따질 수 있겠소.남세스런 꼴 당하기 전에 고정하시고저놈을 달래어 저간의 경위부터 듣는 게체통 가진 사대부의 처신이 아니겠소."이몽룡의 핀잔에 머쓱해진 변학도는 그순간 사위를 둘러보았다. 이 별배란 놈을당장 잡아 엎치려 한들 그의 분부를 좇아입이 걸고 말이 달아 그의 비윗장을 척척맞춰줄 아전배 한 놈인들 보이지 않았다.그렇다면 이 별배란 놈도 역시 낙동강오리알 신세란 말인가. 한 풀 죽은변학도는 소리질렀다."이놈, 네놈이 감히 나를 사칭하여도임행차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렸다?""나으리, 쇤네가 감히 남원부사를사칭하겠습니까. 또한 도임행차로 말하면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저 역시 모르고 있습지요.""모르다니 가마를 배행하지 않았더란 말이냐?""배행이라니요. 여기까지 당도할 땐외람되나마 보교를 배행한 것이 아니라나으리 대신하여 타고 왔습지요."날 조롱함이렸다? 이놈아 보교를 타고왔다면 나를 사칭했다는 증거가 뚜렷함인데그래도 억탁의 말이라고 거짓 밤명함이냐?구름 끼어 안 보인다고 보름달이 어딜 가나?""그렇게 된 경위를 세세하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이노음. 사실대로 이실직고 않으면네놈의 농간하는 입살을 찢어서 쌍언청이로 만들리라.""쌍언청이 아니라, 눈파 귀까지 멀게하여 청맹과니를 만드셔도 달게 받겠으나,사단의 실마리를 소상하게 아뢸 수 있는말미를 주셔야 하겠습니다.""고정하시고 저놈의 실토정을 들읍시다."이몽룡이가 거들자 변학도는 그제사 한"그 창기(娼妓)의 집에서 나으리의지위를 받는 길로 한눈 한번 팔지 않고곧장 객사로 달려갔습지요. 마침 어둑발이내려 서너간 앞에 있는 사람의 형용도분벌할 수 없는데다가 수직꾼들의 경계도삼엄하지 않아서 나으리 침방까지 숨어드는동안 검색은 물론이요 수하(誰何) 한 번받은 적이 없었습니다.문고리를 걸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쇤네의미천한 팔자소관으로선 너무나 과분한침방이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지요. 혹여수직꾼들에게 본색이 탄로 날까 가슴은널뛰듯 울렁거리고 뒤통수는 누가 덥석잡아당기는 듯 쭈뻣거렸으니 모골이송연하여 자연 조급증이 나고 목이 타기 마련입지요.있는 처지에 마음마저 조급하니 목을화롯불 위에다 드리운 듯 매말랐습지요.물을 마셔야 하겠는데 웃목을 아무리더듬어 보아도 떠다놓은 자리끼가 보이지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서둘러 횃대에걸어둔 나으리의 관복을 모양 있게떨쳐업고 문을 열었습지요.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무작정 자리끼를대령하라고 호령하였습니다. 그때 누마루아래 이 졸고 있던 보교꾼들이 놀라깨더니,난데없는 보교를 대령하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는 허리를 조아리며 어서 보교로오르시라고 부복하는 것이었습니다.쇤네는 보교꾼들이 보교를 들이대는까닭을 알 수 없었으나 그 순간 사대부의풍속으로는 물 먹으러 갈 때도 보교 타고보교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런데 달라는 물사발은 아니 주고 해가떠서 아침 선반머리가 될 때까지 줄곧쇤네를 싣고 달리기만 하는 것이어서 물마실 길이 이렇게 먼 것인가 해서 쇤네는보교 안에서 자꾸만 길을 재촉하였습지요.그런데도 줄곧 어디론가 뛰어가기만하는지라 그제서야 쇤내는 이런 때아닌변고가 일어난 까닭을 꼽꼽하게 따져보기 시작하였습니다.쇤네가 오밤중에 문을 열고 느닷없이자리끼를 대령하라고 소리쳤을 때,보교꾼들은 그것을 귀여겨 듣지찮고경황중에 앉을 자리를 대령하라는 줄로잘못 듣고 보교를 대령한 것입니다.자리끼 대령하라는 분부가 앉을 자리된쇤네가 본색을 밝히게 되면 그와 연좌되어도임행차 하루만에 사삿집 창기의 집에서살 송곳을 들이대고 있는 나으리의 처소도실토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그러나 그 실토정을 하게 된다면근엄해야 하실 도임 행차의 채통에 곱다시똥칠하는 일이 되는지라 마침 이곳에이르렀을 때, 소피본다 핑계하고 보윗에서내려 저 숲속으로 줄행랑을 놓았습지요.한동안 숨어 있다가 나와보았더니 행차는어디로 갔는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 지않았습니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이렇게 탈기하고 앉아 나으리 당도하시기만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도무지 딴 방책이 있었겠습니까?""그렇다면 네놈의 농간은 아니란변학도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그렇게 묻는 사람은 이몽룡 이었다."쇤네에게 농간이 있었다면, 오밤중에기갈이 들어 자리끼 대령하라는 한마디분부 내렸던 죄밖에 없습지요.""수다한 말 중에 거짓은 없느냐?""거짓이라니요. 지금 이 시각부터 또한나으리를 배행하여 남원까지 가야 할처지가 아닙니까. 쇤네가 거짓 둘러댔다면남원 당도하는 날로 들통나고 말 것인데,임시 모면하자고 철부지들처럼 둘러댔겠습니까.""승교바탕 대령했을 때, 물 가져오라고다시 한번 깨우쳐줬어야 할 일 아닌가.""쇤네가 말씀드렸듯이 사대부의처신으로선 물 마시러 갈 때도 발바닥에 알았습지요."주저앉았던 변학도가 그때 장돌림을해집고 드는 이몽룡을 만류하였다."그만두시오. 모두가 내 박복했던불찰이었소. 저놈을 다뤄보았자 행방불명된도임행차가 다시 여기로 나타나겠소."낯 부엉이 울음소리만 처연한 숲속을휘둘러보던 이몽룡은 초췌한 몰골로다리쉽을 하고 있는 변학도에게 푸념 겸해서 물었다.그렇다면 장차의 노정이 낭패 아니겠소.벽제(劈除)소리 요란 해야 할 남원부사의존귀환 행차길이 어쩌다 시궁에 빠진족제비 보다 못한 이 꼴이 되었소.""모두가 내 박복한 불찰이오.""박복한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다니는 주제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없습니다만, 사또께서 이런 경난을 겪게 된근저에는 색탐에 환장하여 여색에 근엄한경계를 두지 못했던 불찰이 아니었겠소.오늘의 경난은 사또와 시생이 장차살아감에 본보기로 겸아야 할 것입니다.남원 도임 하시더라도 오늘 겪었던 수모와봉변을 거울삼기 바라오.""공자님댁에서 곁방살이를 하였소?수다스런 공자말씀 듣기가 거북하오.""그런 봉변을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차린 것이오.""시방 날 꾸짖는 게요?""꾸짖자는 것이 아니라 장차는 근신하여백성들로 하여금 원성듣지 않는 선치수령이되시라는 것이오."받아야 할 딱한 처지인 변학도는 기가 한풀꺾이어서 대답하였다."알아듣겠으니 어서 발행합시다.""시생은 여기서 한양으로 회정하여야겠소."변학도의 두 눈이 빙판에 자빠진소누깔처럼 휘둥그레졌다. 그는 눈을흰자투성이로 뜨고 이몽룡을 쳐다보았다."회정하다니 어인 연유로 불퉁가지를 내시오?""사또를 곁부축해서 보필할 저 배행꾼을만났으니 난 회정하는 게 순서 아니겠소.설마 남원부중 앙도까지 시생으로 하여금곁꾼 노릇 시킬 염치까지는 두지 않았겠지요?""말인즉슨 사리에 온당하시오만 남원에서"나중 받더래도 여수(輿受)질기다는험담은 않을 것이니 염려마오.""햇곡머리에 남원행보 한번 하시려오?""여부가 있겠소."변학도가 겉으로는 못내 섭섭한 눈치를보이는 것이었으나 속으로는 이런 천행이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든든한수행 별배를 만나게 되었으니 참없이깐죽거리며 허물 잡아 거북하기만 하던이몽룡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차에 때리기도전에 울기부터 먼저하더라며 저 먼저자진해서 가겠다 하니 두 손들어 반길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반가운 내색하면 잔 속이 들통날일인 터라 소매를 떨구며 처연한 기색으로이몽룡의 회정길을 걱정하더라.여기까지나마 명줄을 달고 당도했음이니결초보은인들 이 은혜 못다 갚을 것이오.그러나 사람이 모두 제 갈 길이 따로있음이니 어찌 족하의 회정길을 밀 막으며만류하리오. 부디 햇곡머리에는남원행보하여서 나로 하여금 오늘 입은은혜의 만에 하나라도 앉게 해주시오.그땐 내가 남원부중에서 내로라는 화냥년하나를 불러 족하에게 수청 들게엄중조처하리다. 기안에 오른 계집들중에는 햇조개도 없지는 않을 터이요.""햇조개도 싫고 묵은 조개도 난 싫소. 그동안 떠먹이듯 일러줬건만 신색(愼色)할염의를 차리지 못한단 말이오?""그럼 족하는 고자(鼓子)란 말이오?""고자는 아니오만 사연 없는 구들막"꽤나 까탈을 부리는구려. 죽도 싫고밥도 싫고 수청조차 싫다면 나로선 보답할 길이 없지 않소.""사또와 시생 같은 사이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기 십상 아니겠소. 차차 보기로 합시다."잘 가라 배웅할 사이도 없이 돌아선이몽룡은 뒤통수를 보이며 저만치 사라지는터라, 변학도는 서너 발짝 물러서국궁(國躬)하고 있는 장돌림을 닦아세웠다."이놈아 날 냉큼 업지 않고 뭘하고 있느냐."네 소리 길게 뿐은 장돌림이 늙은 암말엉덩이 둘러대듯 냉큼 등을 돌려대자,엄장이 큰 변학도는 철부지처럼 납짝등뒤에 업혔다."있더냐?""백여 리 밖 성환 당도하여야 세마 내는보행객주(步行客主)를 만날 수 있습지요.""네놈이 날 업고 성환까지 띌 제,발가벗은 계집을 등에 업은 호랑이처럼뛰어야 하느니, 내 분부 각굴명심하렸다?""쇤네 두 다리가 작신 분질러지기전까지는 날 비 자(飛)범 호자(虎)비호처럼 장달음을 놓겠습니다.""네 놈의 두 다리가 작신 분질러진다해도 날 내려놓는다면, 네 놈의 모가지를분질러 놓을 것이니 아로새겨라."장돌림은 똥개가 가볍지 않은 변학도를들쳐 업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뛰었더니금방은 삭신에 땀이 비오듯 하는데 옛 말에비루먹은 똥개 똥 싸질러가며 짖더라고 하였다.한밤 중에 성환 당도하여 보행객주에서세마를 내려 하니 민갑드리지 않고 시뻘건호령소리 한 가지로는 흥정조차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물론 변학도가 남원부사 도임차에 당도한어엿한 벼슬아치라면 세마뿐만 아니라 말을몰고 가서 잡아먹는다 할지라 도 두 마디하기 전에 선뜻 내줄 것이지만 변학도가미복차림인데다가 남원부사라는 증거조차없으니 외삼새마를 달라고 때를 쓰다가당장은 봉변 아니 당하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야 하였다.야박한 인심을 한탄하고 신분을 증거할물증 없음을 통탄한들 갈 길만 지체될뿐이더라. 앞길이 막막하여 망연자실로별이나 해이고 있는데. 나갔던 장돌림이껑충한 안장의(鞍奬馬) 한 마래를 몰고돌아왔다. 죽은 사람이 환생한 들 그토록 반가울까.어인 농간으로 멀쩡한 안장마를 주변한것이냐고 물어볼 겨를 조차 주지 않고변학도는 덜컥 가랑이를 올려 안장마에 올랐다."가자."고삐잡고 있던 장돌림은 놀라서 물었다."다급하다지만 요기라도 하고 가얍죠.""이놈아. 아침요기를 달게 먹자면저녁요기는 굶어야 하느니.""저녁끼니 거르면 휘진 몸으로 아침 역참당도가 무난하지 못할 터입니다.""너 이놈. 납죽납죽 지껄이며 지체할역참 벗어나서 한 오리정까지 가서야 변학도는 물었다."너 안장마는 어떻게 구처하였더냐.""마침 세마장이와 안면이 있는 사이라엄대 긋고 빌렸습지요.""세마장이와 안면은 언제 텃느냐.""서울길 자주 내왕하다보니 자연 안면 트게 되었습지요.""난 또 네놈이 다급한 김에 훔쳐 온말이줄 알고 저녁요기 거르고 냉큼 떠나자 하였다.""나으리 뱃속이 출출하신 모양이군요.나으리 도임행차에 쇤네가 말을 훔칠일이야 저지르겠습니까만 세마낸 값으로 오푼변으로 갚는다 했으니 그것이 큰일입니다."세마값만 나오겠느냐. 그건 그렇구 널데려가서 당장 이방을 시켜줄까?""싫습니다.""그럼 수직사령(守直使令) 시켜줄까.""싫습니다.""그럼 형방사령(刑房使令) 시켜줄까.""사람 엎어치고 매질하는 직임 쇤네는 싫소.""그럼 옥사장(獄獅長)을 시켜 줄까.""감옥에 갇힌 죄수 보기 싫어 싫소.""그럼 이놈아, 남원부사를 겨냥함이더냐?""갈지자가 어디 붙어 있는나무토막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런 말씀마십시오. 누가 듣겠습니다.""그럼 뭐가 되고 싶으냐.""그놈, 보기보단 허욕이 없구나.""허욕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이 어디한둘이랍디까."변학도 안장마에서 졸고 견마장이장돌림은 등줄기에 땀이 마를 사이도 없이서둘러 말을 몰았다. 천안삼거리,김제역(金蹄驛)에서 다시 세마 내어덕평(德平), 인주역(仁州驛),모로역(毛老阮) 거쳐 공주감영(公州監營)비껴갈 제, 아직도 수행아전들과 별배하여보교꾼들은 털끝조차 보이지 않았다.은진(恩津)지나, 여산(礖山)지나,삼례(參禮)지나, 전주성(全州城) 당도때까지도 신연행차 보이지 않자, 변학도는적지 않게 의아하게 사추리에 가래톳이서고 콧구멍에는 흙먼지가 가득 낀"이놈아, 길을 잘못 든 것 아니더냐?""길을 잘못 들다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만약 앞서 떠난 그 고얀 놈들이 먼저남원 당도하였다면 내 없다는 것을 당장알아채고 서둘러 회정하여 또한 내 행지를수소문 할 터. 한길이 혓바닥으로 핥은듯이 적적한 것이 도무지 있을 수 있는 일이더냐?""빈 교자를 메고 가는 행차가 남으로갔는지 북으로 갔는지 방위를 알 수었으나, 이 길이 남원 가는 한길인 것만은틀림없습니다. 쇤네가 이 한길에다 개처럼콧등을 스리며 서울과 남원 간 내왕행보한것이 수십 번이었는데 쇤네가 해망쩍은위인인들 남원 내왕길을 잊었겠습니까?하는 것은 틀림없으렸다?""십중팔구 그렇게 되겠지요.""기왕에 이런 경난 겪는 김에 그놈들과한길에서 마주치지 않고 잠행(潛行)으로들어가서 수행아전 들을 본때 있게잡아엎치면 반설분을 할 것 같은데 네 의향은 어떠냐?""탁견이십니다만, 잠행어란 암행어사하는 짓이 아닙니까?""내 지체가 암행어사에 꿇릴 게 있느냐? 잠행으로 가자."숱한 봉변과 갖은 행역(行役)치른 끝에남원땅에 잠행으로 당도 하니 안장마에타고 온 변학도나 안장마 견마 잡은장돌림이나 지친 것은 매일반이다. 남원서쪽 기린산(麒麟山) 성황당(城隍塘)질맥진하여 초주검이 되었겠다.마상에서 지친 변학도의 콧등 말갈기에파묻히고 고삐잡은 장돌림의 휘진 허리도꼬꾸라져 콧등이 땅에 닿을 지경이었더라.그러나 앞에 가로놓인 요천(寥川)을 전너오리정은 더 가야 서문(西門:望美接)을넘을 수 있겠다. 우선 요천 건널 생각하니장돌림 먼저 눈앞이 아득하였다.관아의 동헌방까지 잠행으로만 들어가겠다고 아득바득 고집을 부리는 변학도를면박줄 기력도 이젠 없었고 전대에 챙겼던노자도 이젠 깡그리 거덜이 나고 말았다.설상 가상은 그뿐 아니었다. 미복으로잠행하는 처지에 사공을 불러 본색을밝히고 배를 대령하라고 으름장을 놓을수도 없는 터, 급기야는 변학도를 또 다시 되었다.일색이 저물어 사방에 땅거미가 내리고달이 떠오르니 요천내 물여울 위로부서지는 달빛이 교교하더라, 저녁끼니조차굶고 기다리던 장돌림은 풀대님울 풀고옹구바지를 훌렁 벗었다.시꺼먼 하초의 거옷이 온전하게 드러나서고기방망이가 흔들거렸으나 조금도 개의치않고 벗은 옹구바지 똘똘말아 입에 물고변학도에게 등허리를 디밀었다, 납죽 업힌변학도에게 들쳐업고 여울을 건너자니이끼먹은 돌자갈은 메기 잔등처럼 미끈거려발짝 떼놓기 적지 않게 두렵고, 잔허리를갈게치며 스치는 물살은 그 차갑기가뼛속까지 아렸다. 물살의 부대낌에 자칫한발이라고 헛디디면 곱다시 여울 속으로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여울물을 건너니서문 오른손 편으로 관왕묘(關王廟)가나타나고 관왕묘 비껴지나가니남문(南門)에서 꺾인 성곽이 눈앞에서꺼멓게 가로 누웠겠다. 그 또한순라꾼들의 눈을 피해 몰래 넘어야 하였다.그러나 성벽은 높이가 열두자나 넘어 보였다.관왕묘 맞은편 성벽만 무사히 넘는다면,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에 동헌(東軒)과내아(內衙)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변학도는 벌 써 육방관속 잡아들여 곤장안길 흥으로 온 삭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나으리 설한풍 몰아치는 동삼도 아닌터에 왜 그렇게 떠십니까,"이틀거리가 아니다.""그러면 불각시에 소매에서 바람이 날지경으로 떠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내가 이놈들을 엮어들여서 주리틀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고소하고 치가 떨려이빨이 딱딱 맞힌다.""고정하시고 순라장이들 검색에 걸려들기전에 성벽을 넘으셔야 합니다, 이린 고초겪으셔도 끝내 잠행으로만 동헌까지당도하여야겠습니까.""내가 잠행으로 동헌 당도하려는 것은귀신도 몰래 동헌방에 들어앉은 나를 보고남원부중 육방관속들이 놀라서기절초풍으로 자지러지는 골을 내 두눈으로몸소 목도하려는 것이다. 내 의향이그러하거늘 이놈아, 넌 어째 쉴 참마다 드느냐.""마지막으로 한번 여쭤본 것이니 역증은 거두십시오.""냉큼 성벽 넘을 궁리를 트지못하겠느냐. 밧줄부터 구해 오너라.""밧줄 구하려고 이리뛰고 저리뛰다 보면필경 순라장이들께 색출되어 혼찌검이 날터이니 쇤네의 옹구바지를 찢어서 밧줄 대신 하옵지요.""궁하면 통한다더니 네놈의 궁리가 그럴싸하다."장돌림이 벗어들었던 옹구바지를변학도에게 건네준 뒤, 허리를 구부려목덜미를 변학도의 가랑이 사이에다집어넣고 벌떡 몸을 일으키니 목말을 타게된 변학도의 치켜든 손끝이 성첨(城堞)가장변학도의 사추리를 떠받치고 있는 장돌림은밭은 숨을 몰아쉬며 묻는다."나으리 잡으셨습니까.""잡은 게 없다.""아직 잡지 못하셨습니까.""이놈아, 참새집을 털자는 것도 아닌터에 엉뚱하게 뭘 잡으라고 성화냐.""나으리께서 손을 뻗어 성첩 끝을낚아채셔야 성위로 올라서실 것 아닙니까.""난 네놈이 둔갑장신하여 날 목말을 태운채로 성벽을 넘는 줄 알았다.""쇤네가 선불 맞은 호랑이도 아닌 터에어찌 나으리를 목말 태우고 열두 척 성벽을 넘겠습니까.""네놈의 속셈을 이제야 알겠다만 손끝이 닿지 않는도다."어깨를 발로 밟고 일어서시면 손끝이성첩에 수월하게 닿을 것입니다.""이놈아, 내가 무동 춤추는 사당패도아닌 터에 네놈의 어깨 위에서 자라춤을 추라는 것이냐.""이렇게 지체하시다간 여축 없이순라꾼에 발견되어 사매질에 녹아나리다."그 말에 놀란 변학도는 장돌림의 상투끝을 두 손으로 뒤틀어 잡은 채, 늙은 암탉횃대 타듯 떨어질 듯 꼬꾸라질 듯 자빠질듯 넘어질 듯 휘뚱휘뚱 뒤채이다가 겨우상반신 일으키고 손을 뻗었더니 그제야성첩 가녘이 손끝에 닿았다.성첩 가녘에 닿은 손끝에 힘을 넣고 딛고있던 발을 힘껏 차 던졌더니, 변학도는후딱 성곽위로 올라섰으되 아래에서 목말을차여 벌건 알 궁둥이를 땅에 찧고 벌렁나자빠지고 말았더라.변학도가 위에서 보자 하니 칠칠치 못한장돌림의 알사추리만 을씨년스러웠다.한겹도 밉지 못한 알 궁둥이로 돌니가 박힌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으니찢겨나간 살피듬을 타고 옥죄이고 드는아픔에 장돌림은 오장육부조차 비수로도려내는 듯하였다. 눈앞에서 별이왔다갔다하는 것을 참고 있던 장돌림은그러나 물었다."나으리 무사하십니까.""저놈 넉살보거라. 이놈아 내가 무사한지탈을 입었는지 누깔로 쳐다보면서 모르겠느냐?"면박당한 장돌림이 소스라쳐 쳐다보니변학도의 형용이 절간 사천왕문에 버티고선 금강역사(金剛力士)라 일컬어도 손색이없더라. 그 형용이 지금까지 장돌림의 등에업혀 꼬박꼬박 졸기만 하던 신세 딱한변학도로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말구멍조차 막힌 장돌림은 흩어진 기신을수습할 겨를도 없이 우두망찰하고 있는데,성벽 위의 변학도는 여벌 옷도 가진 게없는 장돌림의 이를 북북 찢고 있었겠다.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을 밧줄 삼아 성벽아래에 있는 장돌림을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그러나 변학도의 거동은 장돌림이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변학도는 밧줄 한 끝을 말아 성첨 가년에고리로 걸더니 다른 한 끝을 성밖에 있는있었다. 변학도의 고약한 컷속을 짐작할 수없었던 장돌림은 성 아래쪽에 서서 발악을 터뜨렸다."나으리 밧줄 끝을 쇤네에게로 내려줘야쇤네가 잡고 올라갈 것아닙니까.""그놈 꿈자리 뒤숭숭한 소리 하구 있네."변학도가 지절거린 혼잣소리를 채알아들을 수 없었던 장돌림은 이번엔손나팔을 만들어대고 물었다."나으리 밧줄을 쇤네 쪽으로 드리워 주셔야지요.""그놈 상것답게 염치 한번 좋다."이번에는 장돌림이 손바닥으로 귀를 감싸며 묻것다."무슨 말씀이신지요."성 위의 변학도가 부릅뜬 눈을 아래로"이 우라질 놈아. 시방 네놈의 형용이어떤지나 알고 대중없는 엄살떨고 있는 게냐.""쇤네의 형용이 어떻다고 나무라십니까.""어허. 저놈이 이젠 실성까지 보이는게여. 네놈이 나를 수행하지 못해 상승을했기로서니 네놈의 몰골조차 돌볼 겨를이없다는 것이냐? 내 아직 한평생을 못다살았으되 하초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은 천둥벌거숭이가 감히 남원부사를수행하여 관부(官俯)의 담벼락을넘나들었단 고약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체통과 위엄을 삼엄하게 경계해야 할남원부사의 행차에 가웃에 칠칠치 못한고기방망이를 드러낸 미친놈을 수행시켜도임한다면 그 꼴불견은 고사하고 내 아니냐."언죽번죽 주워대는 말이긴 하였으나 듣고보니 그럴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잠돌림이 창피를 무릅쓰고 벌건하초를 드러내게 된 까닭이 어디에 있으며변학도 자신이 성곽 위까지 무사히 올라선까닭이 또한 어디에 있는가.과천에서 남원 당도하기까지의 까마득한행보 동안 보행객주에 엄대 그어 하루 세끼 거둬 먹이고, 세마 내어서 안장마에태워 모셔왔고,또한 말고삐 잡고견마하느라고 넓적다리에 가래톳이 섰건만아무리 상놈의 대접 이기로서니 이런 홀대가 어디 있으며, 이린 야박함이 어디 있을꼬.하찮은 상것의 지체일지언징 당장때려주고 싶었지만 성벽 아래에 있으니 그또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낭중무일푼이라 전대는 거덜나서 먼지만풀썩거리고 미투리도 뒤축이 떨어져맨발이나 다름없었지만 지금 당장 신세고단하게 된 것은 벌거벗은 하초였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돌림이었다. 그런난감한 지경에 이르렀건만 꿇어 엎드려살려달라는 적선을 빌지 않고 있었다.장돌림은 덤덤한 얼굴로 말하였다."나으리 의향이 그러시다면 쇤네와는여기서 하직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않겠지요. 사실 이런 천둥벌거숭이를 보면남원부중 순라장이들이 남원부사가도깨비를 수행시켜 도임했다 해서 온갖좋지 못한 소문을 백성들께 뿌리고 다닐명석하신 나으리께서 쇤네보다 한발 앞서그것을 생각하셨으니 망정이지 자칫해망쩍었더라면 윈 챙피당할 뻔하지않았습니까.""그놈 경황중인데도 헤아리는 셈속은멀쩡하구나.""그러면 한양 이도령께서 입체 서신해웃값과 쇤네가 노정중에 입체 선 식대와세마비는 어떻게 조처하시렵니까.""이놈 뻔뻔스런 놈 헤읏값 입체 선 것은이도령이란 위인과의 일이었으니 네놈이건방지게 나서서 가타부타 아퀴를 지을일도 아니고 노정중에 쓴 식대와 세마비는네놈이 엄대 긋고 외상으로 한 것이니네놈이 알아서 수습할 일이다."변학도가 밧줄을 타고 성벽 안쪽으로조아리며 하직인사 여쭙는다."나으리, 부디 보중(保重)하시어 무사하십시오."남원 관아는 쥐새끼 한 마리얼쩡거리지도 않아 그야말로 달빛만고즈넉할 뿐 휑뎅그렁하기 짝이 없었다.내아 뒤편에 있는 마방에는 말 한 필 매어있지 않았고, 도헌 오른손 편에 있는길청에도 숙직하는 아전 한 놈 없었을뿐더러 내아에서 수발하는 급창은물론이요, 군불 지피는 종놈 하나 보이지않아 문자 그대로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있었다.변사또 도임행차 수행한답시고 한양으로올라갔던 길청의 아전들과 배행꾼이며교자꾼들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남원알았던 변사또는 보이지 않았다. 사태는심상치 않았다. 불상사도 이만저만한불상사가 아니었고 세상에 낭패스런 일이많다지만 그런 낭패가 없었다.남원관아의 길청은 벌집을 쑤셔놓은듯하였다. 우왕좌왕으로 잣대질이 오가고서로 제 불찰이 아니란 발뺌으로 하룻밤을꼬박 뜬눈으로 지새우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그들이 허둥지둥 지나왔던 전주나 삼례그리고 은진이나 공주에는 보행객주가 여럿있었지만 그들 보행객주들을 수색하여변사또의 행지를 수탐한 적은 없었다.앞서간 변사또의 빠존 행보를 따라잡겠다는 일에만 골똘하다 보니 연도의사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정하고 노독을 풀고 있는 변사또를지나쳐왔음이 분명하였다.나중에는 침책(侵責)을 당해 곱 다시구설이 떨어지고 길청에서 쫓겨나는 신세가될지라도 지금 당장은 남원에서 지체할 수없었다. 관아의 마방에 있던관마(官馬)들은 물론이요, 마계(馬契)에있던 안장마들까지 빗자루로 쓸듯이 몽땅조발하고 순라청(巡邏廳)의 수직꾼들까지조발하여 왔던 길을 되짚어 올랐다.마방에는 병각마(病脚馬)한 두 마리가남아졸고 있었고, 북문 앞에 있는뇌옥(牢獄)을 지키는 옥사쟁이들과 대문지키는 수직 나졸 몇이 흉내로만 겨우 남아있을 뿐이었다.동헌 마당에서 타고 있던 횃불도 꺼지고지루한 밤시각을 죽이던 수직꾼 둘도 이젠새벽졸음에 취해 대문지도리에 등을 기대고턱방아를 찧고 있었다.그런 수직꾼의 귀에 난데없는 호통소리가들려온 것이었다."게 누구 없느냐."몇 번인가 땅땅 벼르는 소리가들려오는가 하였더니 아무런 대꾸가 없자,이젠 도저한 호통에 욕지거리까지 실었다."이 박살할 놈들 게 누구 없느냐."방망이로 문지방을 박살내며주라통(朱螺筒)이 터져라 하고 소리를질러대는 것은 황소 영곽켜는 조려가 아닌필경 사람의 호통치는 소리였다. 당장눈앞에 형용은 보이지 않았으나 호통소리는가위 서릿발 같은 터라. 졸 고 있던수직꾼들이 박차고 일어나 기왓골이쩌렁쩌렁 울어대는 호통소리를 따라 동헌뜨락으로 허둥지둥 내닫는다. 물론 동헌뜨락은 달려온 두 수직꾼 외에는 개미새끼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러나휑덩그렁하게 넓은 동헌방에는 입성이남루한 미복의 사내가 미닫이와 여닫이문을활짝 열어제치고 앉았다가, 섬돌 아래에서국궁하는 두 수직꾼에게 천장 삿간반지에서흙이 우수수 떨어지게 호통쳤다."게 누구 없느냐.""예. 여기 대령하였습니다.""모가지를 뽑아서 밑구멍에 박아 죽일놈들 너희 두 놈 대령으로 성이 찰 것같으냐 내가 이제 도임한즉슨 세(稅)는어떻게 되었느냐.""날아가? 아니 벌써 어느 놈이 농간해서처먹었더란 말이냐.""처먹다니오. 잡은 적도 없는데 어느놈이 처먹는단 말입니까.""두 말 거푸 지절거럴 것 없다. 그놈당장 잡아들여라.""수천 가지 새 중에 어느 새를 잡아오란 것입니까.""이 미련한 놈들 보았나. 내가 새를잡아오랬나. 세 먹은 놈을 잡아오라 하였다.""새를 잡아먹었다는 일 한 가지로잡아들여 혼찌검을 낼 만한 죄적(罪籍)도아닐 뿐더러 설혹 잡아들인다 할지라도그럴싸한 혐의가 있어야 잡아들일 것입니다."중도에서 낚아채 처먹은 놈이 있었다고실토정을 했었지 않았나."그런데 섬돌이 콧등에 닿을 정도로국궁하고 있던 수직꾼들의 허리가 어느사이에 점점 퍼지는가 하였더니 그중 한사람이 뜨아 해서 물어봤겠다."도대체 꼭두새벽부터 새타령이 낭자한 댁은 뉘시오?""이놈들아. 명색 부사가 도임을 하게되면, 남원부중 백성들에게 거둬들일명하세(名下稅)가 수월찮을 터, 그 세를내가 도임도 하기 전에 어느 놈이 거 꿀꺽삼켰더란 말이냐, 길청에서 구실 산다는아전놈들 한 놈 남김없이 잡아들여라."그러나 조짐머리는 심상치가 않았더라.성돌 아래에 서 있던 수직꾼 하나가 썩올리고 문지방을 잡고 호통치는 변부사에게다시 물었다."댁은 뉘신가 묻지 않았소."묻는 말은 다리미로 학 다린 듯이 매끈한공대였지만 거동에는 장난끼가 역력하였다."내가 뉘신가 물었더냐 이놈아?""그래 이놈아.""너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호놈이 낭자하냐.""너 이놈. 엇따 대고 호놈이 거침없느냐.""이 박살할 놈.""똥물에 튀겨 수채구멍에 쑤셔박을 놈."변부사의 입술 가녘에 허연 침버캐가부글거렸다. 그러나 그때 변부사에겐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더라. 그것은 바로봉변이었다.아직까지도 허리와 어깨가 결려서욱신거리고 있는 그날의 봉변이 뇌리에떠오르는 순간, 변부사는 뒷덜미가섬짓하였다. 과천에서 남원부사의 직함을사칭하였다 해서 매찜질을 당했던것이라면, 지금 당장 남원관아동헌에서벌어지고 있는 사태도 그와 흡사함이아닌가, 도대체 길청에는 숙직하는 당번야전도 없더란 말인가, 있었다면 진작이소동을 알아채고 달려왔을 것 아닌가.아니 그렇다면 자신은 수행 아전들보다한발 앞서 당도했더란 말인가. 그때변부사는 모골이 송연하고 등골에 진땀이흐르기 시작하였다. 이 낭패를 어떻게무사히 따돌릴꼬. 당장 신분을 증거할수령으로서 기거할 등헌에서 섭산적이되도록 곱다시 매찜질을 당할 판국이었다.범강 장달 같은 수직꾼은 가파른 눈길로변부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벌써 미친놈대접을 당한 것이다.실성한 놈이 마침 경계가 허술한 관부로숨어들어 명하세(名下稅)를 대령하라고호통치고 있다면, 덮쳐서 포박하지 않을수직꾼이 어디 있겠는고. 그제사 성밖에버리고 온 장돌림이 생각났더라. 그가있었다면 자신이 남원부사라는 것을명명백백하게 증거해 줄 터이지만 그러나소용가치 없다하고 매몰차게 차버린 것이 아닌가.그 순간 변사또는 눈앞이 더욱 아득하고땀은 흘러 잔허리께가 축축하게 젖어왔다.하백(河伯)의 친구가 되지는 않는 법이다.어째서 진작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가.변부사는 그때 역발산의 기백으로동헌방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대청으로 나가겠다. 그는콩소매에 넣어 두었던 교지를 꺼내 들었다.변학도란 이름을 명토 박아 남원부사에서임(敍任)한다는 지엄하신 나랏님의사령장이었다.들기름 먹인 붉은 색 종이에는 옥쇄를찍고 나랏님의 수결(手決)까지 적바림을하였다. 교지를 손에 들고 벌벌떠는 시늉을하며 변부사는 으르렁거렸다."이노오옴. 이것이 바로 주상께서 이변학도를 남원부사에 서임한다는 교지다."변부사의 갑작스런 서슬에 수직꾼은 흠칫 사이였다.냉큼 교지를 낚아채서 할짝 펴들고물끄러미 바라보던 수직꾼은 교지를순식간에 북북 찢는가 하였더니 무엄하게도발바닥으로 지신지신 밟으면서 이죽거렸다."이놈이 미쳐도 계획적으로 미친놈이구만. 이놈아 이게 교지인지 복날에잡은 개껍질인지 내가 알게 뭐야."그럴 법한 말이었다. 진서(眞書)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언필칭반글이라는 언문도아래에 토달린 글자는 읽지 못하는 처지인수직꾼이 붉은 종이에 촘촘하게 박아쓴진서를 한 획인들 해독할리 만무였고 또한수직꾼 반평생에 도대체 교지란 것을한번도 구경한 적도 없었으니 멀쩡한 흰종이 두고 붉은 종이에 괴발개발 그려넣은십상이었다.그러나 나라에 한 분분인 지엄하신주상께서 내리신 교지를 한낱 개껍데기로비견하여 이죽거리며, 밟고 있으니변부사도 울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오를수밖에 없었다. 자제력을 잃어버린변부사는 손을 쳐들어 수직꾼의 볼따구니를눈물이 쏙 빠져라 하고 후려쳤다."이노옴, 가랑이를 찢어놓을 놈."사태는 점입가경이었다. 따귀 맞은수직꾼은 변부사의 매질에 질끔해서설설기는 시늉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게아니었다. 제 볼따구니를 손바닥으로 쓱쓱문지르면서 반죽 좋게 히죽 웃는가 하였더니,"내 오늘 일진이 왜 이 모양이여. 이런당장 포박해야겠는걸."그때까지 섬돌 아래에 서 있던 둥배간이쏜살같이 날아서 동헌 대청으로뛰어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변부사를 딴죽걸어 넘어뜨리고 등뒤에서 두팔로 목덜미를 옥죄이고 들자 변부사는밭은 기침을 토해내었다."이놈들 감히 고을수령을 포박하다니,이런 미친 놈들 있나. 게 누구 없느냐.""이놈아, 모두들 한양길 회정하고 관부가텅텅 빈 터에 네놈이 고을수령 아니라옥황상재인들 혼수해 줄 위인이 남아 있을까."오랏줄로 모양 있게 뒷결박을 지운 뒤대청에서 섬돌 아래로 질질 끌고 내려가니,변학도에게 다소 근력이 남아 있다감당할 수는 없었다.마침 뜨락 가녁 축담 밑에 치워두었던장판(仗板)을 끌고 오더니 변학도 뒷결박지운 채로 장판에 옆치고 서슴없이볼기짝을 벗겨내렸다."이놈 곤장 내릴 때마다 네놈 주둥이로수효를 복창하렸다. 자고로 미친놈과곱사등이는 상판에 잡아 엎치고 매로다스려야 병을 고친다 하였다.그러고 난 뒤 다짜고짜 벌건 볼기짝에서딱 소리가 터졌다. 다시 한번 딱 소리가터졌다. 두 대를 내렸건만 변학도의 입에선하나 소리는 물론이요 둘 하는 복창소리도들리지 않았다.어금니가 부서져라 하면서 사려물고뼈골까지 파고드는 맵짠 통증을 삭일지고분고분할 수는 없었다. 이래뵈도남원부사가 아닌가."너 이놈. 복창하지 않은 곤장질은 모두공다지로 맞는 게다.감히 남원부사를 사칭한 죄는 곤장 얼백대에 결곤(決棍)한다는 것을 네놈은 모르고있쟈?"다시 곤장이 볼기짝에 떨어졌다.오장육부가 단근질을 당하는 것처럼 눈앞이새까맣게 아팠다. 그때 변학도의 입에서이런 소리가 들렸다."하나- ."단내가 훅훅 풍기는 변부사의 업에서열다섯을 세는 소리가 가녀리게 들려왔을무렵이었다. 동헌으로 들어오는 솟을대문어름에서 느닷없이 자지러질 듯한"게 멈췄거라.""열여섯.""이놈들 멈추지 못햐겠느냐.""열일곱.""난장질 멈추지 못할까.""열여덟.""곤장질 거두지 못할까.""열아홉.""이 아수라 같은 놈들 물러서지 못할까.""스무우울."난데없는 이방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동헌뜨락 우르르 내달아 매타작이 낭자한장판을 가로막고 꼬꾸라지며 수직나졸의견대팔을 잡고 늘어졌다.치도곤을 먹이느라 온몸에 땀투성이된수직나졸이 시뻘건 눈으로 내려다 보노라니아전이었다.얼떨결에 허공에서 바람을 가르며내려오던 곤장질이 멈추었다. 난장개가 된변부사의 볼기짝에선 누릿내가설핏하였더라."나으리 이 어인 고초이십니까."신색이 하얗게 질린 이방이 장판 앞에 착무릎을 꿇고 난 뒤 콧등으로 땅의 먼지를쓸며 하정배 드리고 나서 다시 엎드려서럽게 곡지통을 내쏟았다. 울다 말고아직도 생버드나무로 만든 청태장을 꼬나쥔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수직나졸에게대성일갈이었다."이놈들, 양념도 없는 주제에 나으리를산적으로 만들 작정이었더냐. 아니면육장(肉醬)을 담을 작정이었더냐."가녘을 잡고 또한 서럽게 울어쌓는 것을목도하제 된 수직나졸은 그제서야 아뿔싸싶었다. 장판에 엎드린 이 미친놈은 이방아전과 종반간이 아니면, 서당의 동접배가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이것은 하늘이 두쪽 날 불상사였다."이놈들, 냉큼 샅바를 풀지 못할까."울다 말고 벌떡 몸을 솟구치는 이방의분부에 따라 장판에 엎치고 사지를 묶었던샅바를 풀고 있는데, 가련한 변부사는 이미기신을 잃고 혼절한 뒤였다.예로부터 호환(虎患)보다 더 무서운 것이관욕(官辱)이라 하였거늘, 청태장에 살점이묻어나는 혹장(酷醬)에 기골이 든든했던변부사도 산 놈이 염라국에 가서 고초를겪는지 죽은 혼백이 포도청 끌려가 악형을모르게 까무라치고만 것이었다.그가 혼절한 것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역시 이방이었다. 샅바를 풀고 벗겨내린바지를 끌어올려 벌겋게 드러난 볼기짝을덮다보니 장판에는 생똥까지 묻어 있었다.혹여 식은 방귀를 뀐 것은 아닐까 해서얼른 진맥을 헤보았더니 맥은 아련하게살아 있었다."나으리를 냉큼 내 등에다 업혀라."혼절한 사람을 등에 업으려 한다면 이또한 보통일이 아니었다.경위를 물어볼 겨를도 없이 섭산적되다만변부사의 삭신을 거둬 이방에게업혀주었다. 이반이 동헌방으로 뛰면서기연가미연가해서 우두망찰인수직나졸들에게 분부하였다,영렴하다는 의원과 약주부들에게사발통문을 놓아 지체없이 들라 하여라.""어느 의원을 들라 할깝쇼?""이놈들아. 의원으로 자처하는 놈들은죄다 들라 하여라. 냉큼 나서지 못할까."서릿발 같은 이방의 분부에 겨 먹던 개쫓기듯 동헌을 나선 수직나졸들은 서로무안당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이방이 왜 저러나?""글쎄. 곤장 맞은 놈이 필경 친동기간인게야.""변동기간이라면 불문곡직 우릴 다스릴텐데 가만두지 않았나.""우리에게 분풀이를 하지 않는 것은시새당장 분부 거행할 수하것들이 눈에띄지 않으니까 아쉬운 대로 거행케 하자는"구수실살이 이십 년에 이런 대실책은처음이구만, 어떻게 할까? 의원이구약주부구 작파하고 줄행랑을 놓을까? 필경우리 두 사람 난장질한 것을 허물 잡아또한 태벌로 다스릴 게야. 그렇게 되면우린 두 번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네.""줄행랑이라니? 오리정 밖의 물정에도어두운 우리 주제에 튀면 어디로 튈까.천하를 섬렵하였다는 손오공도 부처님손바닥에 있더란 말도 못 들었나?""이방의 추심(推尋)쯤이야 따돌리지못할라구.""이방의 추심이 두려운 게 아니구,장판에 생똥 싼 그놈의 본색이 누구냐는것이야. 내가 보기엔 이방의 동기간이나피붙이도 아닌 듯하이, 이방이 그놈더러 몇그놈이 얕잡아 보아도 좋을 한미한 가문의출신이 아닌 듯 하이.""그럼 누구란 말여?""그걸 알았더라면 난들 사다듬이로분풀이를 했겠나. 어쨌든 오늘의 일진이좋았던 것은 아니었네."두 수직나졸이 남원부중 일경 을 벌집쑤시듯 하면서 연통한 결과 의원명색한다는 사람들과 약첩이나 짓는다는약주부들이며 심지어는 약주릅들까지 동헌대장에는 장마 뒤에 줄남생이 늘어앉듯당도한 순서대로 놓여 않았더라.의원들이 듣자하니, 장독(仗毒)을다스려야 할 잡본인은 도임한 남원부터변학도라는 것이었다. 도임행차가당도하였다는 소문조차 없었고, 또 한수직나졸들에게 태별을 당해 까무라쳤다는것도 그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영문이었다.그러나 이방이란 사람이 변부사임에틀림없으니 모쪼록 뒤탈없게 장독을다스리라니 시큰둥한 가운데약방문(藥方文)이랍시고 붓으로 끄적거리고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채근과 분부에못이기는 척 게으름을 피고 있는 의원이든만나기만 하면 저고리섶을 뒤틀어잡아당기며 앙탈을 부렸다."시방 나으리께서 인사불성이 되었는데이걸 약방문이라고 끄적거리고들 있는가?""아니 피를 토하였다면복령보심탕(宓笭補心湯)으로 다스려야 하지않습니까.복령피(宓笭皮)로 말하면"대소변이라니? 대소변이라면 벌써장판(仗板) 위에다 죄 싸버린 것인데,또다시 복령피를 먹인다면 창자를 녹여서대소변을 만들겠단 얘기여?""그렇다면 사향소합원(麝香蘇合元)을달입시다. 백출(白朮), 목향(木香),침향(沈香), 사향(麝香), 안식향(安息香,배단향(白檀香), 주사(朱砂), 서각(犀角),맥아(麥芽), 감초(甘草)가 들었으니 원기가되살아날 것이오.""장독을 두드러기쯤으로 아는가? 아니면하찮은 개좆부리로 아는가? 우선장창(仗蒼)날 것을 방비해야 할 것아닌가.""그것보다 우선 윈기부터 차리게 한 뒤에장독을 다스려야 할 것이오."쾌복되시어 떨치고 일어나셔하네.""그렇게 성급하게 구시면 편작(扁鵲)을들이댄다 하더라도 가망없는 일입니다.""명색 영험하다는 의원이 오줄없는 말만골라 하는가. 자리보전하고 누우신나으리가 뉘신가? 바로 남원부사의 지체가아니신가?"남원부사가 아니라 남원할애비라할지라도 방문(方文)없는 첩약을 달여 올릴수 있겠습니까? 난상개가 되도록 얻어맞고까무라 쳐서 자리보전한 분을 당장 떨치고일어나도록 만들 영험 가진 사람은약사여래(藥師如來)뿐일 것입니다."약사여래는 어디 있나?""동문(東文:向日鞍)밖선원사(禪阮寺)에도 있고, 기린산 언덕그 순간 이방의 두 소매자락이 삭풍에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었다. 그는 섬돌아래 부복한 채인 두 수직나졸을 식지를내뻗어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이놈들. 이 미련한 놈들. 약사여래와같은 영험한 의원을 두고 이허섬스레기보다 못한 놈들을 의원명색들이라고 불러모았더란 말이냐. 당장뛰어가서 약사여래 거처를 수탐해서잡아끌고 오너라."떨고 있기는 섬돌 아래 국궁하고 있는수직나졸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들은이제나저제나 하고 날벼락이 떨어질 때를기다리고 있었으나, 당장 하옥시키겠다는말 대신 느닷없는 약사여래를 끌고 오라니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없었더라. 그러나뱉으라 하였다.분부를 따라 무작정 문 밖으로 뛸 듯하던 수작꾼이 엉거주춤 되돌아서서 입가에침벌캐나 허옇고 눈가장자리가 벌겋게상기된 이방에게 말했다."약사여래를 끌고오자면 쇤네 두 사람의완력으로는 힘에 부칩니다.""왜? 그놈이 영험하다는 것을 잘난채해서 감히 남원부사의 영을 거역하겠다는것이냐.""그것이 아니오라......""아니긴 개뿔이 아니더냐. 그놈이 어떤놈이관데 감히 남원부사 진맥하기를거역한다더냐. 그놈은 남원땅 일경에서거둔 곡식과 나물로 뱃구레를 채우지않는다더냐."약사여래는 얼핏 사람의 형용을 하고 있긴합니다만 돌로 빛은 부처님이시니 뫼셔온다할지라도 몸져 누우신 나으리를 진맥할 수없을 터입니다.""그렇다면 선원사에 있다는 약사여래도그 모양이냐?""역시 돌로만 빚은 부처님입죠."이방은 그때서야 혼자서 갈팡질팡 수선을피다보니 정신을 차리지 못해 의원의 말을횡듣고 횡설수설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자칫하다간 미친놈 소리 듣겠다 싶었던이방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부아통을 삭인다음 도저한 어투로 수직나졸에게 일렀다."약사여래는 형용이 그러하니 그렇다자고그럼 편작을 뫼셔오너라."그런데도 섬돌 아래 부복하고 서 있는꿈쩍도 않고 버티는 더라. 이방은 미련한꼴을 더 이상은 바라보며 참을 수 없어눈에 불똥이 튀려 하는데, 등뒤에서 있던한 의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편작(扁鵲)이라면 인도의 기파(耆婆)와쌍벽을 이루는 천하의 명의로 곽나라태자의 급환을 고치신 분입니다. 그러나편작은 중국 전국시대 사람으로 지금은 그뼈까지 진토되어 바람속에 흩날리고 있을터이니 편작을 뫼셔오라 말고 차라리바람을 동여오라 하십시오."그 순간, 아니래도 질려 있던 이방의안색은 하얕게 질려버렸겠다. 그는 낙맥을하고 동헌 대청에 털쩍 주저앉고 말았다.탕약을 끓여 턱밑에 대령하기는커녕약방문을 가지고 이방과 의원들이있던 중에 혼절하여 누웠던 변사또는재출몰로 기력을 되찾는 차도를 보여부시시 반눈을 뜨고 기척을 하기시작하였다.얼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헌 대청에선까닭모를 입씨름들만 낭자한 터라, 마침고래등같이 부어오른 불기짝을 물수건으로찜질하고 있던 낯선 다모(茶母)에게힘담없는 목소리로 물었겠다."문 밖에서 낭자히 떠들고 있는 저놈들은어느 구멍에서 내질린 것들이냐.""관향(官鄕)이나 태자리는 쇤네가모르겠습니다만 가근방 고을에서 방귀께나뀐다는 영험한 의원들이 차출되어 나으리의장독을 구완한답시고 장떡에 개똥보다 못한약방문을 가지고 삿대질과 입씨름으로"약전(藥箋)에 약탕기는 걸었더냐?""약전(藥箋)조차 주변하지 못한 터에이찌 빈 약탕기를 걸고 맹물을 끊일 수있겠습니까.나으리의 장독이 골수에 박혀인사불성이 되어 바로 눕지도 못하고 엎뎌있는 판국에 입씨름난 낭자한 터라 소견없는 쇤네가 보기에도 딱하기그지없습니다.""가까이에 시궁창이 있느냐?""내아(內衙)의 중문 뒤에 큰 시궁이있습지요.""네가 지금 당장 뛰어나가서 그 시궁의수채를 한동이만 퍼다가 저놈들에게 끼얹어주겠느냐.""쇤네도 그러고 싶은 마음 진작부터굴뚝같습니다만 백주대낮에 발칙한 짓을"내 한마디 분부라면 털끝 하나 다칠 것없으니 간곡한 내 청을 내쳐서 쓰겠느냐."누구의 분부라고 감히 가역하겠는가.아니래도 눈에 가시 같던 위인들에게신명떠름까지 하게 생겼으니 다모는어젯바람을 일으키며 단숨에 시궁창으로달려가서 불동이 가녘으로 넘쳐흐르도록수채를 퍼담아 동헌 대청으로 성큼올라섰겠다.시큼하고 니굴니글한 수채냄새가난데없이 동헌 대청에서 코를 찌르게 되자,십수명에 이르는 의원들과 약주부들은갑자기 실성기를 보이고 있는 다모를 놀란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일제히다모에게로 시선을 모으는 그 찰나,수채동이는 반완을 그으며 동헌대청을낯짝에 시궁 칠갑이 된 의원들은엉덩방아를 찧고 나동그라짐에 반질거리던동헌대청은 산시간에 오물투성이로질척거렸더라. 누구의 입에선가 대성일같이터져 나오기도 전에 동헌방 미닫이가부서질 듯 열리면서 변사또의 서릿발같은분부가 떨어졌다.장독 때문에 일어나 앉을 수가 없었던변학도는 들기름 먹인 장판에 베를 깔고엎뎌 있기는 하였지만 두 눈에서는 불똥이튀고 있었다."이 박살할 놈들. 지절거리기만 하는 그혓바닥으로 대청을 얼음알같이 핥아내지못하면 지금 당장 주리를 틀어 하조를결단내고 맡리라."변학도는 미닫이문을 닫지 않았다.노려보고 있는 면전에서 한미한 신분의의원들이 해야 할 일은 뻔했다.탈선한 채 인사불성으로 누워 있을줄로만 알았던 변사또가 제출물로 쾌차되어목자를 부라리며 시궁까지 끼얹고 나설줄이야 예견인들 했을까. 옥색 도포자락을가림하며 대정 널판자를 핥는 척 시늉하는일변 널판자 사이의 틈새에 손가락을집어넣어 후비며 힐끔거리자니 의원된 것이모쪼록 수치되고 한스러웠다.동헌방으로 들어간 이방은 가랑이를벌리고 엎더 있는 변부사의 시뻘건볼기짝을 등 뒤쪽에서 바라보며 애끓는목소리로. 설왕설래로만 한나절을 보내며아직 약탕기도 걸지 못한 죄를 제가뒤집어쓰겠다고 부복사죄(俯伏謝罪)하는볼기짝에다 이겨바르고 있었다.꿀 아닌 조청에 버무렸다 할지라도 그상약(常藥)은 짐밖의 창자에서 나온 개똥이분명하고 또한 그것이당약처방(唐藥處方)에 버금갈 만한 효험이있다 할지라도 남원부사의 존귀한 몸에다칠갑을 시키기에는 무엄하고 외람된처방이라, 부복사죄하던 이방은 목에서떨꺽소리가 나도록 놀라서 짐작없는 다모를꾸짖었다."그것이 무엇이냐?""꿀에 버무린 장떡과 개의 똥입죠."이방은 방구들에서 천동소리가 나도록뒤축을 근력껏 들었다 놓았다"이런 고얀 년이 있나. 사람의 똥도 아닌개똥이라니 그 상약으로 말하면, 여항간의하찮은 처방이 아니냐."기절초풍을 해서 오금조차 펼 경황이없을 줄 알았던 다모는 그러나 얼굴을되들고 이방을 똑바로 쳐다보았다."꿩잡는 게 매입죠. 반나절을 가타부타푸념으로만 허송한 것도 심에 덜 차서개똥처방을 두고 호통이십니까."이방이 되받아치기도 전에 변학도의입에서 이방을 쥐어박는 목소리가들려왔다."다모의 말이 속시원하다. 이방은쓸데없는 일에 근력 탕진하지 말고 냉큼달려가서 파장기(把掌記:결세액과 납세액을가려적은 장부)와 도행장(導行將:결세에대한 장부) 그리고 마상초(馬上草:납세자의이동을 적은 장부)와대령하렸다."한 대 쥐어박힌 이방이 또 다시 변학도의볼기짝을 바라보며 조아렸다."아직 미령(靡寧)하신 터에 쾌차되시와도임행차 배웅 나간 육방관속들이 회정한연후에 공사(公事)를 수습하시어도 무방할것이니다.""내가 시방 방 구들에 배를 깔고꼴불견으로 엎뎌 있는 관장이라 해서업수이여기는 게냐?""언감생심 그런 불측한 심지를 품을 수있겠습니까. 당장 분부 거행해 올립지요.""그런데 이제 보니 수상쩍군. 이방아전은어째서 도임수행에서 빠져나와 이제까지부중에 남아 있었더란 말인가?""시생은 소시적에 앓았던 산증(疝症)으로적지 않은 시달림을 받아왔습지요.게다가 천리노정인 한양 내왕행보에토산불알 쪽에 있는 가랑이에 가래톳이생겨 여산대호(如山大虎)가 알가리를벌리고 뒤쫓아온다 해도 따돌리기 거북하게되었습지요.그래서 한 발짝 뒤쳐져서 토산불알을동이고 가래톳이 들보나 하고 되짚어 떠난행차를 뒤따라가려던 참에 알 궁둥이가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사삿집 계집의고쟁이를 옹구바지 대신으로 꿰어 입은낯선 놈이 난데없이 달려와더 나으리께서시방 동헌마당에 잡아 엎치어 난장질을당하고 있으니 냉큼 달려가너 구명치않으면 조금에 식은 방귀를 뀔 것이라고숭어띔을 하였습지요."소동 가라앉은 뒤에 그 기특한 불알 한번보여다오."그때까지 비지땀을 찔찔 흘려가며 대청마룻바닥을 훔치고 있는 의원들과약주부들의 거동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던중에 많은 장책을 싸안은 이방이 다시동헌방으로 들어섰다. 그제사 문을 닫고엎딘 채로 책갈피로 뒤적이던 변학도는물었다."노부세(路孚稅)는 무엇인가?""가령 나으리 같으신 현직(顯職)들이도임할 때 드리는 노자입죠.""도임 노자가 수월찮았으니 푼전의백징(白徵)도 없도록 수쇄(收刷)하라.""거행하겠습니다.""회량미(回糧米)란 무엇이냐."지금와서 수쇄하면 엉뚱하고 야박하다 해서원성이 자자할 것입니다.""아무리 원성이 자자한들 너의 고을에당도하는 길로 미천한 수직나졸들에게난장질당해 장독으로 굴신을 못하게 된설분을 반타작이나 할 수 있을까.""거행해 올리겠습니다.""곡상미(斛上米)는 무엇이냐.""세곡(稅穀)이 축날 것을 일찌감치예견하고 벌충하기 위하여 한섬에 석 되씩증수(增收)하던 세미(稅米)입죠.""수쇄하라.""거행해 올립지요.""복호미(複戶米)는 무엇이냐.""고을에 충신, 효자 절부(節婦)가생겨나면, 그 가문에는 요역과감수(減收)를 벌충하기 위해 거두던세미입죠.""그 또한 결안(結案)해서 수쇄하라.""이 삼수미(三手米)란 무엇이냐?""삼수(三手)란 곧 포수(咆手)와사수(射手)그리고 살수(殺手)를 일컬음인데이것은 한양의 훈련도감에서 거두는 세미일뿐 남원고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일입니다.""오늘부터 남원부 형방 수하에 포수와사수 그리고 살수 한 놈씩을 두고단련시키도록 조처할 것인즉 수쇄하라.""군정(軍丁)은 어디서 조발합니까.""수직나졸들 중에서 세 놈을 뽑으면 될터 떨떠름한 면판 짓지말게.""거행에 올립지요.""징세할 매 문서를 만드는 데 쓰이는종이값으로 받던 세미입죠.""수쇄하라.""해올립지요.""칭후전(稱後錢)은 무엇인가.""새미를 부과한 뒤에 수수료와 같은비용을 감안하여 거두던 것 입니다.""수쇄하라.""예.""장세(匠稅)는 무엇인가.""갓바치나 갖바치들에게 거두는징세입지요.""수쇄하라.""그런데 이 무단미(無端米)란 무엇인고?""문자 그대로 아무런 까닭없이 시도 때도없이 거둬들이는 세미 입지요."눈여겨보았지만 그 중 아름답고 갸륵한것이 바로 이 무단미였다. 그런데 이 숱한세목 중의 백미(白尾)인 무단미는 바로총기 있고 영특하신 전치수령(前治守令)이한림(李韓林)의 탁견이었더냐.""그것이 아닙니다. 이 세목은 나라의살림이 도탄에 빠져 궁핍을 겪었던 시절농투산이들로부터 임시로 거둬들였던세미로써 전조(前朝)인 고려시대공민왕께서 다신들의 뜻에 따라 궁리를트신 것입니다."그때 변학도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며탄식하는 것이었다."애석하고 비통하다. 그렇게 명특한탁견을 가졌던 주상께서 어찌 전조에태어나시어 일찌감치 나와 유명을책 한 권을 던지고 난 뒤 변학도는 다시양안(量案)을 끌어당겨 뒤적거리기시작하였다."여기 적바림된 구분전(口分田)이란무엇인고?""예, 그것은 싸움터에 나가서 죽은군정의 식솔들이나 연로한 군정, 그리고관원의 유자녀들에게 나눠주는 토지를이르는 것입니다.""거둬들여서 모두 관둔전(官屯田)에귀속시킬 일이다. 이 급주전은 무엇인고?""그것은 역졸들에게 녹봉 대신 나눠주어갈아먹게 하는 토지입지요.""내가 도임할 제, 말은 고사하고 낭나귀한 필 내어준 역졸을 보지 못했다.몰수하라. 그렇다면 이 도전(渡田)이란 건"나루터에서 거행하고 있는 사공들이토지에서 나오는 소출로 연명하고 또한소용되는 경비에도 충당하고 있습지요.""내가 남원땅 당도하여 요천(寥川)을건널 제 사공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손수 다리 걷고 세찬 여울을 건너느라고고초가 뼈에 사무쳤다. 몰수하라. 그렇다면여기 있는 지위전(紙位田)이란 무엇인고?""예, 그것은 능묘의 제사 때 쓸 제물과경비를 꾸려나가기 위해 있는 토지입니다.""방자하고 간사한 것들 남원 인근에 무슨능묘가 있다고 난데 없는 지위전을두었더란 말이냐. 이것은 필경 길청에서구실 살고 있는 아전놈들의 농간질이아니더냐, 이름만 그럴싸하게 지위전이라해두고 그 소출은 너희 아전놈들이거둬들이라. 면종복배(面從服背)하는 너의이전놈들의 간사한 버르장머리를 내가고쳐줄 것이니 그렇게 알라."신색이 하얗게 질린 어방마전은 이제떨면서 아뢰더라."사또께서 이제 겨우 소생(蘇甥)이되셨습니다. 그 수구(瘦軀)에 평복(平服)이되시려면 여러 날을 두고 조섭을 받으셔야합니다.모쪼록 심기를 편하게 가지시고 마음을비우셔야 하루라도 빨리 병줄을 놓게 될것입니다."반죽떨지 마라. 내가 사내 구실을 못할만큼 녹장이 난 줄 알 고 있느냐.양생(養生)을 받으면 사나흘 안짝에 벌떡일어날 것이니 이방은 염려를 놓게나."되신다 할지라도 약차하면 후더침이 될가망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이방의 말을 새겨듣자니, 내가 후더침이되어서 평생 자리보전 으로 누워 있기를바라는 게 아닌가.""억탁의 말씀입니다."그러다가 변학도는 느닷없이 물었다,"약채목(藥債木)이 무엇이냐?""예. 백성들이 약값으로 바치는 포목을이르는 것입니다.""그 말 한번 잘했다. 명색 내로라 하는남원부사가 임지에 도임하는 그날로두억시니 같은 놈들의 난장질로 돌이키지못할 장독(仗毒)을 입고 굴신을 못하고있다는 소문이 온 남원부중에 짜하게퍼졌을 텐데, 염치없는 백성들은 약채목 한못하였다.이것은 필경 관장(官長)을 업신여기고능멸하려 함이니 가만 두고볼 수 었다.이방은 복호(復戶: 효자나 효부가 난집으로 세금을 물지 않음)이든반호(半戶:세금이나 추렴을 반씩만 내는집)이든가 가릴 것 없이 백징(白徵)을 두지않고 결안(結案)해서 약채목을 추렴토록조처하라."이방이 두 번 다시 둘러댈 말을 하지못하도록 변학도는 방바닥을 치며 핏대를곤두새웠다."냉큼 시행치 못하겠느냐."변학도는 시퍼런 서슬에 풀 죽은 이방이설설 기는 시늉으로 동헌 섬돌로 내려설제, 다모는 약방에 서둘러 달인 탕약그릇을 받쳐들고 동헌방으로 들어섰다."나으리 탕제(湯劑) 달여왔습니다. 어서잡수시고 쾌차하십시오.""시방 뒤숭숭한 판에 탕제 들이킬 경황아니다.""응석하시지 말고 어서 드셔야 합니다.그래야 쇠락햐신 기운을 되찾으실것입니다.""이방이란 놈이 몸져누운 나를잘코사니로 여기고 후더침이 되라고 헐뜯고있는 판국에 내가 설사 쓸개에 뜨물이 든반실이라 한들 탕제 마실 비위가있겠느냐.""그런 경솔한 언행으로 푸대접을받으실수록 탕제를 연복(漣服)하시어야병줄을 놓으시고 길청 아전들을 잡도리하실것입니다.그때 변학도는 고개를 되돌려 다모를힐끗 쳐다보았다. 소금에 절인 자반같이푸르죽죽한 살신을 가진 오십줄 늙은이가약사발을 들고 처량하게 서 있었다."그 약사발 이리 다오."그러나 다모는 잽싸게 반몸을 비틀어비켜나면서 말했다."아닙니다. 외람되나마 쇤네가곁부죽해서 마시도록 주선하겠습니다.""남의 비윗장 건드리지 말고 약사발 이리다오.""아닙니다. 굴신을 못하시는 터에 불가불쇤네의 약수발을 받으셔야 합니다."그때 변학도는 배밀이해서 솟구친상반신을 두 팔로 버텨 지탱하면서 다모를허옇게 닦아세웠다.한답시고 볼기짝에다 개똥 이겨바르고 나서생좀 내고 있는 것이냐? 별반거조내리기전에 약사발 건네주지 못할까."부릅뜬 눈자위에 기가 질린 다모의손에서 약사발을 빼앗아든 변학도는대청으로 나가는 비닫이를 얼었다.그 동안 대청은 얼추 행굼질이 되어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그러나 가라 오라는 지엄한 분부가 없었던터라 의원과 약주부들은 탈기한 채늘어앉아먼산바래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그때 동헌방에서 패대기친 약사발이대청으로 날아와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그리고 대성일갈이 변학도의 목구멍에서더져나왔다."이 육시럴 놈들. 네놈들이 그 간특한것을 내가 눈치채지 못할 성부르냐?네놈들의 약방문(藥方文)이 편작에버금가는 처방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자고로 약이란 그 처방보다 약수받하는개집의 기운을 채난(採煖)하는 일도 약의효험못지 않게 따져서 다스려온 것인즉,이제 명줄을 저승문턱에 걸고 염라태수가와서 업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호호야늙은이로 하여금 약수발을 시킨다는 것은후더침도기를 바라는 이방놈과 통을 짰다는증거가 아니냐."한 사람에게 하나뿐인 입이긴 허였지만합치면 열 개가 넘는 수효의 입이었다,그러나 무시때는 달변들이 촬촬 쏟이이는입들에선 대꾸 한마디 없었다. 그러나 닭열 마리 중에는 필시 봉 한 마리가 섞여재치 있는 의원이 없지 않아서 동헌 대정에서 더끄러지듯 빠져나와 약방으로달려갔다, 약방에서는약방기생(藥方妓生)들 대여섯이 모여앉아탕제를 달이느라고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신연행차하신 부사가 약방기생점고(點考)하신다, 으름장 놓았더니약방기생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어안이벙벙하이 영문을 모르겠더라, 그러나의원의 말이 도저하고 근엄한지라 분부에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경황없이 옷매무새를 고치고 난 뒤빼죽거리는 오리걸음으로 동헌대청 섬돌위로 가서 나란히 서게 되었더, 고패를떨어뜨린 약방기생등이 힐끗 곁눈질하자니,동헌방에논 매폼이 걸쭉하게 생긴 한문지방에 턱을 얹고 엎더 있는데, 아예덕목을 가진 사대부로는 보이지 않았고색탐이나 하게 생긴 왈페로만 보여서초대면부터 피차간 입맛이 달지 못하였다.대청 가년에 늘어선 약방기생의 모색들을바라보고 있던 변학도는 맨 오른손 편에쭈그리고 서 있는 기생을 턱짓하며물었겠다."너는 누구냐?""예, 쇤네 운향(雲香)이라 하옵니다."이번엔 묻지도 않고 시선만 건너갔다."쇤네 금향(錦香)아라 하옵니다.""너는 누구냐?""쇤네 추향(秋香)이라 하옵니다.""너는.""계향(桂香)이라 하옵니다.""쇤네 도향(桃香)이라 불러주십시오.""맨 끝에 선 너는 누구냐.""쇤네 향춘(香春)이라 하옵니다."시무룩한 상호를 하고 있던 변학도의 두눈이 그때 화등잔만하게 떠졌다."뭣이? 춘향이라고?""아니옵니다. 향춘이라 합지요.""그렇다면 춘향이와는 사촌간이냐?""쇤네는 단출하여 동기간에 사촌은 두지않았습니다.""그럼 육촌간이냐?""아니옵니다.""요 발칙한 계집, 그럼 어째서 뒤축으로밟아놓은 쑥떡 같은 매골을 가진 네년이당돌하게 춘향이 명함을 사칭하는 것이냐.""쇤네 나이가 올해로 스물넷이임시에는 남원고을 백 리 지경 안짝에는향춘이든 춘향이든 그 이름 가진계집아이는 없었습니다. 만약 춘향이란이름을 가진 규수가 있다면. 필경 쇤내의이름을 교묘하게 모방하여 사칭했다는 것이타당하지 않겠습니까.""이년, 엇따 대고 암팡진 말대꾸냐.""쇤네의 이름을 두고 수상쩍게 여기시니억탁이 되어서 해혹(解惑)이 되시라 하여여쭙는 것입니다.""해혹이구 혹부리구 토산불알이구 간에듣기 싫다. 차후로 네 이름은 향자와는팔자가 닿지 않는 담선(淡仙)이라 고쳐라.와룡담(臥龍潭) 맑은 물아 청청(淸淸)할손담선이. 그것이면 네 꼴같잖은 신색에는과분해도 아주 썩 과분하다."기생이 해죽해죽 웃는 말로 청하였다."나으리, 제 이름에도 향자가 없지아니합니다.""넌 채련이로 고쳐라.부용당(芙容堂)안개 속에 연지(漣枝)캐는채련(採憐).""나으리 쇤네는?""너는 소주로 고쳐라.청파만리(靑波萬里)에 외로운 배가 뜨니소주(小舟)가 격이다.""나으리, 저도 향자가 있사온데......""넌 비취진주(斐翠盡株)자랑마라.천하보배 산호주(珊瑚株)로하라."바로 그때였다. 변학도는 느닷없이미닫이문을 꽝 닫아버리는가 하였더니 두번 다시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여섯굽기야 문자식견이 바닥나 버렸기때문이었다.이방이 월매의 집을 찾아간 것은 바로그날 밤이었다. 물론 월매는 최씨가 하옥된이후로 인사불성이 되어 시난고난하면서자리 보전으로 누워지내는 판국이었다.삽짝 밖 출입조차 못하는 처지였지만 대문밖 출입을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하고있는 향단이 덕분에 여한간에 떠도는 소문한 가지는 손금 보듯 소상하게 꿰고있었다.남원부증에 찌하재 퍼진 소문으로는,신관사또가 도임하였건만 도임행차 수행갔던 작사청의 아전배들과 육방관속들은서로 길이 어긋나서 행방이 묘연하다는것과 도임사또 변학도가 하찮은 수객나졸들새끼 밴 돼지처럼 노상 엎뎌서 공사를 보고있다는 것이었다.그런 소문 듣고, 있던 차에 주걱턱에염소꼬리 같은 수염을 달고 있는 이방이엎어질 듯 허겁지겁 대문 안으로달려들었으니 그 또한 예사소동이아니었다. 향단이가 먼저 와서 연통하기도전에 미닫이를 밀어붙이고 방으로미끄러지는 이방의 안색은 질려 있었고이마에는 벌써 진땀이 맺혀었다.월매는 퇴기(退妓)요, 이방은 작사청의구실바치라 하지만 남녀간에 내외가 엄연한터에 드시라는 허통도 없이 제 집 안방처럼당돌하게 호들갑을 떠는 이방의 서술에이마를 수건으로 동인 채 누워 있던 월매가소스라쳐 상반신을 일으켰다.작사청 아전배들이라면 꼴도 보기 싫어진월매는 술도 마시지 않은 놈이 뛰어들어생주정인가 해서 눈꼬리를 치뜨며 푼수없는소란을 나무랐다."내 시방 자네 문병 왔네."냉큼 둘러대는 말이지만 비위에 거슬리긴마찬가지라 대꾸하는 말도 아담할 리만무였다."날 문병 왔다면 당장 나가시오. 작사청사람들 얼굴만 쳐다봐도 차도가 있던우환이 오히려 후더침이 되어 울화통이터지게 되었으니 올곧은 문병 하실려면당장 나가주심이 날 살려주는 일입니다.""너무 박절하게 굴 것이 있나. 다소비위는 상할지언정 속담에 우는 사람얼굴에 침 뱉기로 문병 왔다는 사람 두고"이런 시절 보소. 내가 언제 무엄하게명색 남원부중 이속의 낯짝에다 침을뱉았다고 되술레를 씌우나그래. 멀쩡한사람 토옥에 내려가두고도 그 또한 개운치않아 이젠 나까지 무단한 익명 씌워하옥시킬 계략이 아니오.""내가 자네 되술레 씌우려 달려온 사람은아닐세.""그렇다면 뱉지도 않은 침은 누가뱉았다고 억탁의 말을 하였소.""자네가 날 대접하는 꼴이 가위 질 뱉는격에 진배없다는 얘기였지 침을 튀겼다고했는가. 자리보전으로 누워지내고 있으니고적하기도 하고 공연히 밸이 뒤틀리기도하겠지만 고정하시고 내말 귀여겨 듣게.""은근한 말로 날 회유하는 척 말고 썩세미(稅米) 속여바친 혐의도 가지지않았으니 모함잡아 날조해서 잡아가두려말고 나가시오.""자네가 시방 최씨부인 내려가둔 일로관가에 매원을 두고 결이 솟은 듯하나 사실오늘 내가 불시에 찾아온 것은 최씨를방면시킬 수 있는 방도가 없지 않기때문일세.""그게 무슨 말이오?""내가 허황된 흰소리를 지걸거리겠나."이방의 말이 설혹 한 번 쓰고버릴흰소리였다 할지라도 월매에겐 솔깃하지않을 수 없었다. 최씨부인의 애꿎은 옥살이때문에 월매 자신 화병으로 앓아누워약탕기를 턱에 걸다시피하며 몸져누웠고춘향은 또한 심덕이 진국이라 하루 두 끼옥바라지에 한결 같이 진력하니 형용이초췌하여 지난날의 푸짐하던 육덕을기억조차 하기 어렵더다.춘향 대신 옥바라지하려 하였더니그때마다 가슴 한복판에서 불덩이 같은울화가 치밀어올라 숨이 턱에 와닿아헐떡증이 생겨나고 눈앞이 캄캄해서말구멍조차 막혀버렸다. 자연 기동이임의롭지 못하니 춘향과 향단이가 짝이되어 걸핏하면 찍자를 부리는 윽사장의비위를 맞춰가며 옥바라지라는 곡경을치러가고 있었다.소식 단절된 이몽룡은 이제 안중에도없었지만, 춘향 모녀 딱한 처지 거든답시고설레발치다가 관원을 야료했다는 엉성한죄목으로 팔자에 없던 옥살이를 하고 있는약사발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날 것 같았다.표독스럽던 월매의 말투가 한풀 죽을수밖에 없었다."방석 깔고 앉으시오.""자네도 모 꺾어 앉지 말고 바로앉게나.""정말 이 구차스런 신세를 모면할 방도가있소.""내가 안목은 다소 졸렬하다는 평판은듣고 있지만 심성은 순박하고 올곧은사람이란 것을 자네도 익히 알고 있음이아닌가.""뜸만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하시오.""내가 워낙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관령이나 받고 채는 작사청 이속으로구실을 먹고 산다지만 내가 여항간에"울화통만 건드리지 말고 어서 말씀해보시지요.""자네도 소문 들어 알 터이지만신관사또가 도임을 하였으나 용모단자도 본일이 없었던 동헌 수식나졸이란 놈들이남원부사를 사칭하는 미친놈으로 알고장판에 엎치고 신관이 멀끔하던 분을 아주어육으로 만들고 말았네.""그건 나도 알고 있소.""그렇게 혹독한 난장질을 감당했다면장독(杖毒)이 오죽했겠나.시방 굴신을 못하고 엎뎌 있는 말 못할처지에 놓여 계신다네. 그런데 후더침이될까 해서 정성껏 달여서 바치는 약탕기를부릅뜨고 내치고만 있으니 이런 낭패가어디 있으며 또한 남원부중 백성들의"약사발을 내친다면 죽이라고지다위한다는 얘깁니까. 지엄하신 사또께서약사발을 마다 하시면 여항간의 상것인내가 약사발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이외람되기 그지없음이 아닙니까.""그래서 남원 일경의 백성들이 사또쾌차되시기를 축수하고 있는 터에 저렇게고집을 부리시니 가까이서 뫼시고 있는우리들로선 전전긍긍일세.""약사발을 내치는 까닭이 있을터이지요.""춘향이가 드리는 약사발이 아니면 용의여의주를 고아온 탕제라 할지라도 들지않겠다는 게야.""이제 뭣이라 하였소.""춘향이라 하였네.""내가 한 입으로 두 가지 소리를하겠나.""정녕 춘향이를 찾았소?""그렇다니까. 한 번 한 말 곱씹지말게나.""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요.""어째, 솔깃하지 않은가? 춘향이가선걸음에 달려가서 사또께 공손하게 초인사올린 뒤 섬섬옥수 정하게 씻고 달여놓은탕제를 사또의 입언저리까지만디밀어준다면, 억울한 일로 옥에 갇힌최씨부인 방면이야 따놓은 냥상이아니겠나, 춘향으로 봐서도 마른 날 굿은날 옥바라지에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될터이고 자네 역시 화병이 쾌차된 것이니,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 바로 도랑 치고차리고 일어나시면 남원부중 백성들이안도할 것이니, 이것은 또한 도랑 치고가재 잡고 돈 줍고 논에 물 대는 경사가아니고 무엇인가."그런데 화색이 돌던 월매의 안색이 그순간 어두워졌다. 이방이 물었다."왜? 내 말이 허황되어서 그러나?""변사또의 성정이 매우 포악하고음흉하여 비윗장 틀리면 부중백성들 한둘작살 내는 일이야 일같찮게 저지른다는소문이 자자하던데요.""그건 헛소문일세.""소문 틀리던 일 본 일이 없소.""장담할 수 있다니깐 그러네. 사또께서포악한 성정을 가지지 않았다는. 뚜렷한증거가 있다네. 보통사람 같았으면 명줄을수작나졸 두 놈을 당장 모가지를날리기는커녕 잡아가두란 분부조차었었다네, 당신의 허물로 벌어 진불상사로만 여기시어 그 발칙한 놈들은털끌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니 이런무골충이 어디 있으며 그런선치수령(善治首領)이 역사에 있을 수없음이 아닌가.불학무식하고 표학한 성정을 가진사또였다면, 그 두 놈을 잡아다가 당장능지처참을 시켰을 것 아닌가. 이것은 내가구태여 핵변하지 않더라도 관가의 물정에밝은 자네 먼저 알고 있을 터.""하긴 남원고을 스쳐간 숱한 수령들이있었지만 관장을 능멸하고 관장을 실성한놈 취급하여 행비를 부리는 수하들을옥사(獄事)를 벌이지 않았던 수령은없었소.""그러기에 내가 뭐라던가. 무단히 옥고를치르는 최씨부인이야 당장 방면될 것아닌가.""수직나졸들 내려가두지 않았다는 건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말이오."이방이 주먹을 내둘러 증거하면서장담하기를,"내가 헛되이 거짓 둘러댔다면 이손가락에다 장을 지지게.""그래도 안 될 일입니다. 춘향이 딴에는이 서방인가 빈대 서방인가 하는 그놈에게일편단심이다. 사또의 약수발이라 한들외간 사내를 병간하는 외람된 일이라생각해서 내가 부릅뜨고 윽박지르면 제우리들끼리 공론한들 소용없는 일입니다.게다가 최씨인가 하는 그 여편네가 옥에갇힌 이후로 춘향이가 날 받들고 보필하는거조가 지난날과 같지 아니하니 그런춘향이가 날 측은하게 여기고 첫고 지나듣겠습니까.""그러나 춘향을 다독거릴 사람이라면하늘 아래에선 자네뿐이지 않은가.""가망없는 일입니다."그때였다. 문밖에서 예기치 않았던말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어머님, 신관사또 약수발이라면 제가가겠습니다."놀란 월매가 허공에 대고 물었다."춘향이냐?""예. 본의 아니게 방안의 좌담을 엿듣게그때 또한. 이방이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열었다. 다소 수척은 하였으나 언제 보아도월궁항아(月宮姮娥)와 같이 도화진 용모에햇미나리같이 물이 오른 춘향이가 섰다가이방에게 다소곳이 목례를 올리는데,이방은 춘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목구멍에서 떨꺽 소리가 나도록좋았다."문밖에 가마 대령하였네."방안의 월매도 벌어진 입이 닫히지않았다."고맙소 나으리. 내 딸 춘향께 가마호강까지 시켜주시다니."별당으로 달려간 춘향은 녹두비누로세수하고, 얼굴에 꿀을 발라 싹싹 문질러때를 밀어낸 뒤 장분을 물칠하여 바르고이곳에 밀초를 섞어 기름에 끓여 업술에쪽진머리 정갈하게 빗질하여 가다듬은 뒤매죽비녀에 호박 뒤꽂이를 곁들여간드러지게 꽂았다. 입었던 옷은고쟁이까지 활활 벗어 던지고 연두 반회장숙고사 저고리와 남색 갑사치마 떨쳐입고,칠보가 곁들인 삼작(三作) 노리개를늘어뜨렸으니 남색짜리 새 각시로선 따를만한 미색이 없더라.지벌 있는 대갓집 여인네가 나들이할 제분홍저고리를 입거나 장옷을 쓰지 않는것이 법도인지라 치마를 쓴 춘향이가월매에게 하직 여쭙고 뜨락에 대령한보교(步轎)의 휘장을 제 손으로 살짝들치고 들어앉을 제, 대청에 서서 지켜보던이방의 벌어진 입이 닫힐 줄 몰랐다.거침없는 춘향의 거동에 적지 않게 놀란하고 일변 회광을 누리게 될 짓 같기도해서 심기가 뒤숭숭하던 월매도 뜨끔하긴마찬가지였다.춘향의 결심이 억울하게 나직(羅織)되어토옥에 내려갇힌 최씨부인을구명시키겠다는 일념 한 가지 때문이라는것은 짐작 못할 리 없었지만 다소곳하고정숙한 줄로만 알았던 춘향에게 그런, 당찬강단이 있었다는 것에 월매는 놀란 터였다.이방이 선머리로 나서서 벽제하고 향단이배행하는 보교는 삽시간에 평대문을벗어나서 관아로 가는 지름길로접어드는데, 앞채꾼 뒤채꾼이 쓴 산수털벙거지가 걸음마다 펄렁이여 숲속에 든호랑이처럼 충충거리며 나가더라.동헌에 당도한 춘향이는 먼저 신관사또길로 약방으로 달려가니, 탕약 끓이느라여념이 없던 약방기생들이 냉큼 자리를비켜준다.서둘러 약사발 받쳐들고 동헌으로나아가자니, 잔허리와 볼기짝이 드러난변학도는 문지방에 턱을 걸고 너부죽하니엎드렸다가 월용화태 방불한 춘향이가약사발 받쳐들고 세류 갈은 잔허리를얄기죽거리면서 섬돌로 올라서자, 뱀 만난여치처럼 제풀에 놀라 벌떡 상반신일으키려다 말고 허리가 끓어질 듯 결리는터라 힘에 겨워 다시 문지방에 턱을 걸고엎드렸다.춘향이 대청으로 올라서더니 난데없는수채 냄새 설핏하였지만, 반들거리기는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지방섬섬옥수로 약사발을 이마 위에까지 받쳐올리고 얼음 위로 옥구슬 굴러가는 듯이동글납작한 목소리로 아뢰었다."나으리, 탕제 드십시오."뛰는 가슴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던변학도의 입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염치없게 꿀꺽하더니,"네가 누구더라?""춘향이라 하옵니다.""약사발에는 무엇이 들었느냐?""당귀수산(唐歸鬚酸)입니다. 타박상이나어혈을 푸는 데는 직효이니 조선팔도에영험하다는 탕제 치고 이만한 약이 있을 수없다 합니다. 어서 드시고 쾌차되시어기신을 차리시고 일어나셔야 남원부중백성들이 안도할 것입니다."일어나기를 축수하느냐.""축수만 하고 있기에는 외람되어지엄하신 동헌에 황망히 달려와서 탕제를끓여 조섬해 드리려는 것입니다.""네 말이 갸륵하고 기특도 하구나. 대저외양이 반반하게 생긴 계집들 치고 고쟁이벗기를 헤프게 저지르지 않는 계집 없고심성 또한 표독스럽지 않는 법이 없거늘.너는 어찌 그 오묘한 색태(色態) 심덕조차무던하여 나로 하여금 애간장을 태우게하느냐, 소문만 듣고 춘향 곱다 하였더니너를 몸소 보자하니 과연 듣던 말 틀리지않구나.""칭송이 외람되어 몸들 바를모르겠습니다. 어서 탕제를 드십시오.""탕제 이리 다오."부릅뜨고 내치기만 일삼던 변학도는 춘향이손에 들린 약사발을 빼앗듯 낚아채서단숨에 들이키니 금방 새알이 들어서캑캑거리며 눈자위조차 허옅게 치뜨고 밭은기침을 토해내었다.화들짝 놀란 춘향이는 황망히 일어나서변학도의 등뒤로 돌아가서 뒷덜미를 손으로두드렸다. 그러자 변학도는 밭은 기침을토하면서도 분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곁에 엉거주춤 모꺾어 앉지 말고가랑이를 벌리고 내 잔허리에 걸터앉아서등을 쳐라 앉음새가 올바라야 목에 걸린약이 썩 내려갈 것 아니냐.""하신 말씀 틀리지 않으나 쇤네는 한낱여항의 본데없는 계집으로 언감생실존귀하신 나으리의 잔허리를 가랑이로거둬주십시오.""여항의 계집사람인 것을 자처하나 이시각부터 그것에 구애될 것이 없으니 염려붙들어매어라.""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나으리께서안목이 뚜렷하신 터에 쇤 네의 귀밑머리가쪽진머리된 것을 목도하셨을 터인데,여항의 본데없는 계집사람일지언정외간사내의 잔허리를 가랑이 벌리고걸터앉았다면 그런 망칙한 일이 어디있겠으며 그런 올곧잖은 분부가 있을 수없습니다.""네 말이 제법 수수하긴 하다. 하지만 넌이제 여항의 사삿집 계집이 아니다. 내가도업하는 길로 이방에게 분부 내려 널기안(妓案)에 착명(着名)토록 하였으니,되었고 또한 너로 말미암아 나직되어애꿎은 옥살이 치르고 있던 최씨부인은네가 동헌 당도하기 직전 삼엄한 분부 내려방면하였으니, 명석하고 사리에 밝다는네가 내 앞에서 몽니를 부리고 심술을 부릴까닭이 없지 않느냐.""제 어미가 기안에 올라행수기생(行首妓生)으로 거행한 적은있사오나, 그것을 빌미로 어였한남진어미를 기적에 적바림한 것 은 횡포가아닙니까.""얼굴보고 말 들으니 안팎으로 일색이다.반반한 계집 치고 열행(烈行)여 적다더니꽃 같은 그 얼굴에 옥 같은 그 마음이어여쁘고 아름답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네 안목의 졸렬함이로다.이몽룡은 시방 한양에서 황음(荒淫)에빠져들어 성균관 출입은 진작에그만두었다. 남북촌 색주가를 밤낮 없이드나들며 은군자며 이패 기생 삼패 기생들병이할 것 없이 벗기고 농탕질하고심지어 아비 이한림의 세력을 핑계하고궁궐까지 드나들며 혜민서(惠民署),상의원(尙衣院), 내의녀(內醫女)며침선비(針繕婢)들까지 꼬드겨 살송곳을꿰다가 창병(瘡病)까지 얻어 신세 망치게된 것은 나뿐만 아니고 신연행차 수행하려한양 왔던 이방까지 목도한 일이다,이몽룡이 신세가 오죽 고단하게 되었으면노자조차 빠듯한 이방아전이 주머니를 털어밥과 술을 사며 신세 가다듬으라고 침이마르도록 달래주었겠느냐.심란하기 그지없다만 네 미욱한 수절타령이보기 딱해서 귀띔하는 것이니 날 야박한사람으로 보지는 말아라.""서방님 행사가 설사 개차반이 되었다할지라도 그리고 손수 쓰신불망기(不忘記)가 썩어 바람되어흩날릴지라도 쇤네 이미 이씨댁(李氏宅)에허신(許身)한 엄연한 남진어미겠으니서러운 팔자란들 허튼 계집의 몸가짐을가질 수는 없습니다.""이몽룡의 신세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네게 시름을 안기기 위해 내가 백지애매하게 날조한 말로만 여기느냐.""그러실 가망이 없지 아니합지요.""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냐?""그러합니다."제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들고 제 구미에 맞는 것만 믿으려 한단말이냐. 최씨부인 방면한 것은 믿느냐?""그러하옵니다.""그렇다면 네가 끝내 빼죽거리며 몽니부리기를 일삼는다면 방면한 최씨의 죄상을날조하여 다시 잡아들여 내려가둘 수도있다는 것은 믿느냐?"춘향의 입에서 두 번 다시 말대꾸가없었다. 냉큼 다리 걷고 변학도의 잔허리로올라탈수도 없었고 엉거주춤 앉아 꿀 먹은벙어리로 입 닥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사이 빈정거리는 변학도의 욕지거리가터져나왔다."네 가랑이 속 씹구멍에 꿩대가리가박혔느냐, 왜 갑자기 안절부절이냐?"기어드는 듯한 나직한 한 마디가흘러나왔다."쇤네 외람됨을 용서하십시오."최씨부인을 또다시 잡아들이겠다는으름장에 기가 질린 춘향은 가만히 일어나변학도외 잔허리를 살짝 깔고앉았다.그러나 잔허리를 깔고앉은 그 찰나 춘향은자지러질 듯 놀랐다. 얼굴은 숯불을 끼얹은것같이 달아올랐고 심장의 고동은 일시멎는 듯 소스라쳤다.장독(杖毒)을 다스리자 하였으니변학도의 볼기짝을 벗겨놓게 되었고볼기짝을 까놓자 하니 잔허리 역시 벌건살피듬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변학도의처지는 이상할 것도 없었고 수상할 것도없었다. 가당찮은 처지가 된 것은 바로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이방이춘향집으로 달려와서 재촉이 낭자했던터라, 경황중에 치마 속에 입을 고쟁이를잊고 달려온 것이었다, 보교를 올라탈때부터 어딘가 미심쩍고 허전했던 것을 떨칠 수가 없었으나 치마 속에 입을 고쟁이를잊고 보교에 올랐던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그래서 춘향의 거웃과 변학도의 잔허리기살과 살로 서로 맞닿고 말았으니치마폭으로 가려지지만 않았어도 변학도와춘향이가 말롱질로 희학질을 벌인다 해서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그렇다고 한번 올라탄 잔허리를 또다시벌떡 일어나게 되면 변학도의 입에서 어떤불호령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터 엉거주춤앉아만 있는데, 변학도의 입에선 가당찮은"어, 시원하다. 오뉴월 더운 날에폭포수를 맞는다 한들 이토록 시원할까,내가 경황중에 널 기안에 착명토록분부하였다만 썩 잘한 일이 아니냐. 날약수발하겠다고 달려온 네가 고쟁이까지홀딱 벗고 올 줄 뉘 알았겠느냐, 어여쁘코착한 줄로만 알았더니 국량과 짐작이 또한팔도 계집 중에 너 따를 만한 계집이 있을수 없구나. 새알 들어 중치 막고 있던약찌기가 썩 내려가고 말았구나.""고쟁이를 입지 않고 달려온 것은.경황중에 저지른 쇤네의 실수였을 뿐, 이런일이 있을 줄 미리 집작하고 서푼짜리속셈이 있어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어쨌든 네 하초를 내 잔허리에서 떼지말고 팔만 뻗어 내 어깨를 주물러잘된 일이 아니냐."설혹 변학도의 잔허리를 깔고 앉았다하지만 치마 속을 들치고 본다면 춘향의흐벅진 알사추리가 그대로 드러날 판국이라등줄기에 진땀 나고 이마에 식은땀이흐르는데, 속셈이 따로 있는 변학도의입에서 이제 그만 거두라는 분부는 떨어질리 없었다.혹여 이방이나 약방 기생들이 문틈으로방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고약하고온당치 못한 광경을 엿보기라도 한다면,상서롭지 못한 소문이 삼시간에 남원부중여염에 퍼질 것이고 춘향이 또한 음탕한계집이라 해서 동네에서 조리돌림을 당할것이었다. 경황중에 저지른 잠깐 실수로변학도가 춘향을 겉 다르고 속 다른 음탕한하지만 이 곤경에서 쉽사리 빠져나갈궁리가 없었다. 빼도 박도 못할 수렁에빠진 춘향의 입에서 그 순간 울음소리가터져나왔더라. 그런 수모를 참고 견디기가수월치 않았기 때문이다."아니, 이게 어디서 들려오는 계집의곡성이냐. 감히 동헌방에서 상서롭지 못한곡성이라니? 여기가 염라국으로 가는삼도천(三途川)이더냐?"꾸짖는 변학도의 말이 서릿발같은지라 그순간 춘향의 입에서 터져나오던 울음소리뚝 그쳤지만 두 팔로 베개를 끌어안고너부죽하니 엎뎌 있다가 등뒤로 고개를돌리는 변학도의 두 눈에선 불똥이 튀고있었다. 그러나 변학도는 곧장 울화통을가라앉히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동헌방이다. 그런 처소에서 홍색짜리계집의 울음소리가 낭자한다면 불길하기짝이 없는 일이 아니냐. 서슬 시퍼런남원관아를 흉가로 만들 작정이냐?""존귀하신 나으리의 잔허리를 깔고앉은외람됨을 더 이상 저지를 수 없음에터져나온 울음소리였으니 모쪼록용서하십시오.""네가 겉으로는 아담하게 둘러댄다만곡지통을 내쏟은 속내만은 나도 짐작하지못하는 바 아니다. 네가 저지른 오욕이수치되어 터뜨린 곡성이 아니겠느냐.하지만 내가 진작부터 그런 수치에 구애될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더냐.성춘향이란 이름 석 자는 이미 기안에적바림하였으니 이제 넌 한 지아비의아니지 않더냐. 그런 네가 괴팍스럽게 수치된 것을 찾는다면 가소로운 일이 아니냐.""억탁의 말씀입니다. 쇤네에게 지아비가엄연하다는 것은 나으리께서도 이미 알고계시는 일이온데 지아비를 둔 남진어미가벌거벗은 하초로 외간남정네의 잔허리를깔고앉은 실책을 저지른 터에 어찌 오욕이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한 쇤네는일찍이 기방과는 인연을 둔 적이 없사온데무슨 연유로 어머니와 연좌시켜 쇤네를기안에 적바림한다는 것입니까.이 나라에도 율과 법도가 엄연한 터에무명색한 백성이라 한들 이런 날조는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네가 고쟁이를 벗은 채 동헌방으로뛰어든 실책을 스스로 설분 할 곳이 없어야무지다만 네가 저지른 실책은 그것뿐만아니다."변학도가 두 팔을 뻗어 상반신을일으키는가 하였더니 엉금엉금 기어가서문지방에 몸을 기대었다. 문을 열고 누마루아래 국궁하고 서 있는 통인을 불러지체없이 이방아전을 불러오라는 분부를내렸고 이방이 숭어띔으로 누마루 아래로달려왔겠다. 변학도가 물었더라."이방은 듣거라. 여기 있는 성춘향이란계집에게 지아비가 있다는데 그것이정말이냐?"이방이 턱을 조아리며 대답하였다."그 동안 나으리께 수차 아뢰었듯이춘향에게 지아비가 엄연하다는 것은세삼스런 일이 아니옵니다."아니면 실망의 빛이 완연했어야옳았다.그런데 그때 변학도는 난데없이방긋 미소를 짓것다. 게다가 목소리조차나지막하고 은근하더라."인사를 담당한다는 이방아전의 말도춘향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겠으니춘향을 덜컥 기안에 적바림한 것은 내가남원도임해서 첫번째로 저지른 실책임이분명하구나.그런데 총각과 처자가 서로 만나 초례를치르고 질발부부가 되었다면 관아에는 필경 그들의 호적단자(戶籍單子)가 비치되어있을 터 당장 가져와서 내게 보이고 잘못적바림한 기안은 꺾자 쳐서 바로잡으라."누마루 아래 조아리고 서있던 이방이나동헌방에서 하초를 까치 다리로 꼬고 앉은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변학도의 분부는하찮은 식은땀 흘리는 꼴을 보여달라는것은 아니었으니 궁색한 대로 둘러댈 말을찾을 수밖에 없었다."관아에 비치된 호적단자는 없으나춘향어미 월매에게 이몽룡이 써준불망기(不忘記)가 있다는 것은적실합니다."그 순간, 변학도의 목멀미에 핏대가곤두서고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는 이방을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동헌방 대들보가부러지는가 싶게 고함소리를 내 쏟았다."너 이놈 이방거행 십오 년에 아직호적단자와 불망기를 올바르게 분별하지못한다는 얘기냐? 불망기란 것은 수천장을써 갈긴들 허섭스레기에 다름 아닌직함으로 증거된 공문서가 아니냐.흙 토자(土)와 선비 사자(士)를 바로읽지 못하고, 날 일 자(日)자와 가로 왈자(曰)를 분별해서 쓸 줄 모르는 한심한놈이 십오 년 동안 이방아전으로거행하면서 야금야금 구실을 처먹었다니이는 필경 나라에 망쪼가 들었다는조짐이다.그렇다면 남원부중 백성들은 사문서 한장이면 하늘의 별도 땠다 붙였다 하겠구나.이놈, 냉큼 대답하지 못할까.""춘향 내외만 불망기로 혼인한 것을증명하고 있을 뿐 남원부중 모든가시버시들은 호적단지에 적바림되어있습니다.""요런 알량한 놈을 보았나, 이몽룡과걸쳐 내게 증거했음인데, 이들이 혼인한증거를 호적단자에 남기지 않았다면,이것은 필경 춘향이가 지벌도 없는 한미한집안인 것을 얕잡아보고 이방아전의 직무를소홀히 거행한 직무유기가 아니냐."어떻게 보면 언사에 조리가 정연하였고어떻게 보면 생다지로 겁박(劫縛)하려 드는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이방으로선곱다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중언부언둘러댈 말도 없었다. 그때 변학도의손바닥이 담벼락 멀찌감치 비켜서서 떨고있는 통인에게 건너갔다."여봐라. 관정(官庭) 한가운데다별반거조를 차려라."장판(杖板)을 대령하라는 말이었다."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기를 일삼는있는 게 없다. 냉큼 장판 대령하고 저놈을엎쳐 되우 쳐라."하늘의 별도 땠다 붙였다 할 수 있는서슬 시퍼런 불호령에 어찌 거역할 수있을까. 그러나 구실아치들 중에서도심성이 무던하다는 평판이 있는 이방을장판에 엎찌고 치라는 분부임에 통인의거동이 굼뜨지 않을 수 없었겠다. 힐끔힐끔등뒤의 동정을 살피며 내키지 않는 발짝을옮겨놓는데 또한 서릿발이 뒤통수를 치는것이었다."이놈들. 나를 장판에 엎치고 치도곤을내릴 때는 똥 본 개처럼 숭어뜀으로날뛰더니 내 분부거행에는 게으름을 피고굼뜬 까닭이 어디에 있느냐."화증이 상투끝까지 치밀어 올라으름장을 놓고 있는 게 아니었다. 통인의연통을 받은 나졸 두 사람이 금방 형틀을끌고와서 관정 한가운데다 벌려 차렸다."너 이놈, 냉큼 달려가서 장판에 엎디지못하겠느냐."장판으로 가서 엎디는 그 순간. 당장식은 방귀를 뀌고 칠성판에 묶여북망산으로 업혀가는 서러운 신세가될지언정 어느 안전이 라고 거역할 수있겠는가. 이방이 사색이 되어 장판에졸들은 달려들어 손목과 발목을 장판에모양 있게 동여묶고 중치막자락 썩걷어붙인 뒤에 바지를 벗겨 내려 볼기짝이백일하에 썩 드러나도록 조처하였다."곤장에 살점이 묻어난다 하더라도구애될 것이 없다. 그놈의 볼기짝에서쳐라."추상같은 분부를 내린 뒤 변학도는 문을닫았다. 그리고 새파랗게 질린 채로몸사리고 앉아 있는 춘향에게 물었다."너 오늘밤 내게 수청을 들이겠느냐?"문밖에서는 장판에 곤장 떨어지는 소리가떡 치는 소리에 방불한데, 방안에서 나누는말은 어찌 이토록 은근하단 말인가. 이렇게음흉하고 야비한 위협이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훔치며 춘향이 대답하더라."설혹 쇤네가 오늘밤 나으리의 침석에들어 곱다시 시침(侍寢)들어야 할 애꿎은처지에 빠졌을 망정 지아비와 해연(解緣)한적이 없고 또한 유곽(遊廓)에 기대어 몸을파는 계집도 아닌터에 어찌 간통을 자행할"네가 혼인하였다는 증거는 없으되기적(妓籍)에 올라 있다는 증거는 적실한것 아니냐.""게다가 나으리께선 장독(杖毒)으로 하초쓰기가 임위롭지 못하신 터에 요분질로기력을 축 내시면. 필경 후더침이 되어장차 쾌차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쪼록지각을 차리십시요.""내가 곤장을 맞아 볼기짝에는 장독이들었으나 천행으로 거읏에 달린 다리미자루와 부랄만은 온전한 터 장독 핑계 말고수청 들라.""수구(瘦軀)에는 양생(養生)으로몸가축을 하심이 도리온데, 어찌나으리께선 도임한 임시부터 육허기만채우려 드십니까."차올라 있다. 하초의 응어리를 서둘러 풀지않는다면. 내가 쾌차되기 힘들 것이요,또한 너와 같은 햇조개와 동침하여채난(採暖)치 못한다면, 천하에 없는탕제를 입에 달고 있다 한들 약발 받기는글렀다는 것은 너도 익히 알고 있으렸다?""외설(猥褻)이 낭자하십니다. 양기가차오른게 아니라 호경골을 잡수시어양도(陽道)가 하늘을 뚫을 지경이라 한들나으리께 수청을 들지는 못할 처지이니모쪼록 분부를 거둬주십시오."바로 그때였다. 문밖의 관정에서는 사람살리라는 외마디 소리가 사무쳤다.변학도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곤장을꼬나들고 있는 나졸들을 율기하고 바라보며이죽거리는 투로 물었다.소리가 낭자한 것이냐. 너희놈들이 그놈의토산부랄을 해코지한 것이냐?""아닙니다요. 볼기만 쳤습지요.""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살려달라는엄살이냐?"나졸들이 곧장 대답을 못하고 머쓱하니꾸부린 채 서 있었다.춘향을 위협하여 수청들이기 위해 애꿎은이방아전에게 무단한 악명 씌워 장판에엎치고 겨 먹은 개폐듯 두들기니 변학도의음흉한 셈속을 손금 보듯 일목요연하게넘겨짚고 있는 나졸들이 이 딱딱거리는사또를 훔쳐보는 눈초리가 아담할리없었다.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리기는 하였지만,속으로는 이방 아닌 사또를 끌어내려하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는 짚검불같이여위디 여읜 어린 것들이 고창병(鼓脹病)에걸려 누워 있고, 나무 비녀 몽당치마에물거미 뒷다리같이 육탈이 된 여편네는씀바귀나 뜯자 하고 마을 뒷산중턱을헤집고 있을 것이며, 늙어서 입에 구접이돌고 있는 칠십 노모는 목맺힌 영계소리로된신음하면서 부들자리 위로 띔굴며칭얼거리고 있는 철부지 혈손들을만수받이하느라 여념이 없을 터, 무슨협기를 부려 사또를 장판으로 끌어내릴 수있을까.천둥지기 다랑논에 한 포기의 나락이나마심을 만한 땅꽤기가 있었던들 뒷박곡식구실살이에 목이 매인 누추한 더그레는진작에 벗어 던졌을 것이었다.뒷덜미는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듯뜨끔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동헌의솟을대문 밖에서 여러 사람의 낭자한 발짝소리가 들려왔다.연달아 중동 밖으로 낯설지 않은육방관속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신연행차수행하고자 한양 갔던 아전배들이 마중길어엇갈려 길바닥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또 다시남원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이방아전은 볼기를 까내린 채 장판에엎뎌 있었고 나머지 호방, 예방, 병방,형방, 공방의 아전들이 턱방아를찧어가면서 동헌중문으로 줄래줄래들어서는데, 그 매골과 입성들이가관이었다.먼지가 켜켜로 앉은 갓모에 짓눌린 듯한모양 있게 차려입었던 중치막자락들은먼지치레와 개똥치레였다. 노독에 시달림을받으며 지향없이 한길 바닥만 휩쓸고다녔으니 중치막자락에 묻은 것이개똥뿐이었을까.동헌 누마루 아래로 삐죽거리며 앞다투어달려가며 너부죽하니 하정배(下庭拜)를올리며 힐끗 곁눈질하자니, 장판 위에실신한 채 상투바람으로 옆뎌 있는 사람은천만 뜻밖에도 낯익은 이방아전이었다.길청에서 책상다리하고 게트림하며 앉아있어야 할 이방이 어인 연유로 장판에 엎뎌불찌똥을 싸고 있는 것일까. 동골이써늘하도록 놀랐으나 사또께 당돌히 여쭤볼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뿐만아니었다.들쑥날쑥하도록 허리를 깊숙히 조아리며하정배를 드리는 육방아전들을 바라보고있는 변학도의 얼굴은 고즈넉하였다.입술에 문은 침네캐를 혀 끝으로 서둘러핥아 거두면서 변학도는 물었다."나와 길이 엇갈려 수행관속들이 치르지않아도 되었을 노고에 고초와 시름인들오죽했겠나.""나으리, 시생들이 마땅히 죽을 죄를저질렀음인데 관대하신 하교는 시생들이마에 구리를 깔았다 한들 무슨 염치와반죽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죽다니. 그런 불길한 말은 섣불리발설할 일이 아니다. 내 설혹 막된위인이기로서니 나를 수행하려다 저지른관속들의 실수를 탓하여 서둘러육방서리들이 모두 출타하여 길청이 텅비어공무에 구애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이제 서리와 형리들이며 보교꾼들돌아오게 되어 천만다행 아닌가.""시생들의 안목이 졸렬하여 저지른실수로 도임행차에 풍파를 겪게 한시생들의 죄값을 무엇으로 탕감하리까.""내 눈에서 저승 문턱이 왔다갔다 하는고초를 여러 번 겪긴 하였지만, 아전들이한다리로 달려 와서 부부이(俯伏謝罪)하는형용들 보자 하니 끓어오르던 울화퉁이봄눈 녹듯 하는구나. 이방아전도 풀어주고서리들은 길청으로 돌아가서 공사에임하라."그 사이에 춘향은 빈 약사발을 들고동헌방을 빠져 나와 약방으로 돌아와돌아온 일이 춘향에겐 선반에서 떨어진 떡받은 격이 되었다.다모(茶母)에게 사또 구완 당부하고관아를 삐져나와 잡으로 달려가니 아니나다를까 최씨부인 방면되어 돌아와 대방아랫목에 몸져 누워 계시더라. 게걸스럽걔달려들어 목덜미 뒤틀어 안고 한바탕낭자히 울음 터뜨리니, 심성 한 가지는최씨부인이 오히려 춘향의 도화 진 두 볼을쓰다듬으면서 불철주야 무릎썼던 그간의옥바라지에 여위디 여윈 춘향 모색한탄터라.무단한 악명 쓰고 옥살이하던 최씨부인월매집으로 찾아와 조섭받을 채비를 차림에이마 동여매고 된신음 토하며 방에서튕굴던 월매는 발딱 떨치고 일어나그제서야 소스라친 춘향이는 말하였다."어머님은 어서 이방의 집으로 찾아가서병문안 드려주시겠소.""병문안이라니? 멀쩡하던 이방이날벼락을 맞았다냐 생주정을 하다가실족하여. 다리가 부러쳤다냐?"이방이 저를 역성들고 두둔하다가 직임을소홀히 했다는 악명을 쓰고 장판에 엎쳐져모진 형장을 당했소.""이방이 너 대신 난장질을 당했더란것이냐.""저 대신 난장질당한 것이나 조금도다름없지요.""애그머니나. 이 낭패를 어찌할꼬."놀란 것은 탈기하고 누웠던 최씨부인도마찬가지였다, 새파랗게 질린 두 여자에게일을 소상하게 일러주었다.그제서야 뜨끔해진 월매는 최씨부인조섭을 춘향에게 맡기고 처행하며 몸소이방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방의 집은 동문밖 임준루(臨春樓) 어름이었으니 길은그다지 멀지 않았으나 방망이질하는 가슴을진정하기 어려웠으니 숨은 줄곧 턱에 와닿았다. 과연 춘향이 말대로 이방은 집으로돌아와 장독(杖毒)을 다스리고 있었다.장독 구완이란 것이 몰골 사나운볼기짝을 다스리는 일이라 이방의 여편네는썩 내키지 않아 집에 없다고 얼버무리며따돌리는 것을 이방이 방에 누워 듣고있다가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월매가 엎어지듯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들어가면서 흐느끼었다.누워있던 이방이 부시시 일어나며 넉살이낭자한 월매를 손짓으로 만류하였다"소동 피지 말고 진중하시게. 내가난장질을 당한 소상한 내막을 부엌에 있는여편네가 혹시 엿듣기라도 한다면 장독구완은 고사하고 저녁밥도 얻어먹기그렀네."하긴 옳은 말이었다. 하찮은 춘향 모자를역성들다가 얻어맞은 곤장이었다면걸핏하면, 강새암을 일삼는 여편네가곱상스럽게 대접을 해줄까. 우정 목소리를낮춘 이방이 말했다."그나마 살점이 흩어지는 혹장(酷杖)을맞은 건 아니여서 앉은뱅이 신세될 것은모면하였네.""아니, 그 막된 놈들이 사정두지 않고"평소에 실인심하지 않고 올 곧은 말만해왔던 덕을 톡톡히 보았네. 겉으로보기에는 나졸들이 사정을 두지 않고곤장을 휘둘렀던 것이지만 살점에 와닿는것은 맵짠 회초리 정도였네."만약 그랬다면 그런 천행이 없다고나졸들을 칭송하고 나서 월매가 물었다."춘향의 말을 듣자 하니, 사또께서이서방이란 위인이 파락호신세되어 장안을휩쓸고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창병까지얻어서 머지 않아 거리귀신될 것이란악담을 늘어놓았다는데 그 말은 흰 소리가아니오?"차렵이불을 끌어안고 앉아 있던 이방이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그 말은 사실 밑절미 없는 흰소리가백수건달로 배회하면서 안면이 미숙해서서먹서먹한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서슴치않고 술을 사달라고 짓조르고든다네."아득한 시선으로 이방아전을 바라보는월매의 질린 안색이 가긍하더라. 이방의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가.흰소리로만 알아야 할까."이도령이 뉘댁 자제분이오. 서울 장안이떠르르한다는 동부승지 이한림의 자제가아닙니까. 사람을 헐뜯어도 분수나름이지요.""하긴 나도 믿기 어려운 일이였으니발설하기 주저되었네. 그래서 지난번 내가자네 집으로 찾아갔을 때도 허튼소리될까봐서 일언반구도 않았던 게야. 내가 한양의사또댁에 신연인사 차리고 나오다가이도령을 만나 빠듯한 노자를 쪼개어술요기까지 시켰던 게야.내가 쳐다보기조차 민망해서 글공부는개물려 보내고 말았느냐고 이죽거렸더니,대꾸하는 말이 가관이더군. 그 새파란나이에 수전증이 생겨서 갈지자도 온전하게그려내지 못하는 처지라고 실토정을하였다네. 기왕 말구멍이 터진 김에 한마더 더하겠네만. 달포 안짝에 방자놈을남원으로 내려보낸다더군.""방자는 왜요?""자네가 장롱 속에 숨겨둔 사천(私賤)을넘보는 게야. 내가 남원으로 내려가면자기의 딱하게 된 사정을 자네에게소상하게 얘기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주선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더라네.""정말 아니면? 시방 내가 자네와노닥거리고 앉아 흰소리를 농할 처지인가?""억탁의 말씀이 아니오?""억하든지 탁하든지 자네 내키는대로하게.""분하고 억울한 일입니다.""내가 공연한 말을 하였나?""아니올시다. 말씀 잘 하시었소.""자네 복장만 뒤집어 놓은 것 같아서 안되었네만 길거리 한복 판에서 날 만났을때도 자네 모녀 안부 먼저 묻는 게 아니라내 쌈지에 든 노자가 얼마냐고 먼저묻다군.""창병 얻었다는 사또의 말이 허황된험담이 아니었군요.""내가 가랑이 속을 벌리고 직접 목도한색주가라면 창병이 동부승지 자제 따위가무서워서 범접하지 못할까.""섭섭한 일입니다. 그 말을 왜 이제 와서실토정을 하시는 것입니까.""평생 딸자식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고있는 자네의 애뜻한 복장에 차마 송곳박아줄 말을 쉽사리 할 수가 없었네.자네가 다시 몸져눕지 않겠나.""그런 일이 없을 것이오."조섭 잘하시라는 당부에 덕담을 남기고이방의 집을 나섰다. 그러나 집밖을 나서는그 순간부터 눈물이 흘러 앞을 가렸으니발걸음이 온전할리 없었다. 술 취한계집처럼 한길로 나서니 해는 져서 서산뒤로 숨고 있었다.흘리지 말자는 눈물은 자꾸만 흘러허공에 뜬 것인지 알 수 없었더라.구곡간장은 소금을 뿌린 듯 애끓고 여염집아녀자들은 엉성한 울바자 틈으로 발짝이온전치 못한 월매의 거동을 훔쳐보고있었다. 세상에 그런 날벼락이 없었더라.이방아전이 춘향의 딱한 처지를두둔하다가 날벼락을 당하고 관아에서쫓겨나 집으로 업혀와 굴신을 못하고꽁꽁거리고 있을 제, 문병차 다녀간 사람은월매뿐만 아니었다. 월매가 다녀간지한식경이나 되었을까.이방의 집 대문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나더통자를 넣는다. 이방의 아내가 화들짝 놀라나가보니 안면이 낯설지 않은 장돌림이란사내였다. 지난번에 달려와서 변부사가수직하던 나졸들에게 뒷덜미자 잡혀고자질해 주었던 그 사내였다. 안면이낯설지 않았으니 들라할 수밖에 없었다.세상 인심은 야박해서 이방이 사또에게노여움을 사서 난장질을 당했다는 소문이남원부중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간 이후부터조석으로 문안인사 뻔질나던 위인들까지안면을 싹 바꾸고 코빼기도 디밀지않았기에 스산하고 울적한 병석에 낯선문병객 한 사람이 오히려 고맙고대견스럽지 않으랴."나으리, 이것이 어인 변고란 말입니까."섬돌로 올라선 사내가 허리를 깊숙하게조아리며 하정배를 올리는데, 눈가장자리에는 눈물자국조차 선명하더라.방구석에 쭈그리고 누웠던 이방이 부스스반몸을 일으키고 앉으며 대꾸는 아니하고"내가 사또께 침책(侵責)을 당해 이몰골이 되고 말았네."억울하게 난장질을 당한 일이 속으로는울화통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속내를그대로 드러내어 사또를 헐뜯을 수는 없는노릇이니 침책을 당했다는 말만 할 수밖에없었다."미친놈으로 취급당해 무릿매를 당하고있는 불상사를 이방 나으리가 달려가서활인을 한 것인데, 그 은혜를 모르고이방께 형장(形杖)을 내리다니 천하에 그런본데없는 불상놈이 어디 있소."명색 남원부사를 일컬어 불상놈이라니.이방도 깜짝 놀라 장돌림을 바라보았으나당장 나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기가할말을 장돌림이 대신 해주었으니 오히려그러나 살얼음판을 건너고 있는 것과다름 아닌 차제에 그런 외람된 언사를함부로 쓰다간 또 어떤 불벼락이 떨어질까."사또를 일컬어 불상놈어라니? 자넨모가지를 몇 개나 가지고 다니나?""하나뿐입니다.""그런데 어째서 칼날을 입에 물고뜀뛰기를 하는가.""내노라 하는 양반이든 서슬 시퍼런벼슬아치든 은혜를 모르는 놈이 어찌인두겁을 쓰고 내질렀다 할 수 있겠으며하물며 어육이 될지도 몰랐을 난장질에서목숨까지 구해준 나으리께 이런 혹독한형장을 내렸다면 불상놈은 고사하고.창귀(脹鬼)나 다름없는 놈이 아닙니까."핏대를 곤두세우고 사또를 험담하고 있는이방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주둥이를 험악하게 놀려대다간 하나뿐인모가지 날리네. 시방 자네꼴은 입에 칼물고 맨발로 작두 위를 걷는 꼴일세.""시생의 지체가 일개 장사치에 불과한상놈의 처지라, 감히 나으리 대신하여사또께 앙갚음은 할 수도 없으니속시원하라고 입을 험악하게 놀리는것입니다.""자네와 나 사이에 상종도 많지 않았던터에 나를 위하려는 자네의 심성은갸륵하이. 그러나 지체로 말하면 사또와 나사이 또 한 땅과 하늘 차이가 아닌가. 나또한 뜨물인편에 내질린 반편이 아닌다음에야 사또의 배은방덕을 모를까만 이지경되어 내쫓기고 보니 이방의 지체나마꿇어앉았던 장돌림이 책상다리로 고쳐앉으며 방구들의 먼지가 풀썩 날아오를만치 방귀를 뀌고 나서,"아니, 나으리의 구살까지 떼버려겠다고벼르더란 말입니까.""한 계집아이의 처연한 신세를두둔하다가 사또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으니그 시퍼런. 서슬에 이방아전 구실떼버리기야 자반 뒤집기가 아니겠나.볼기짝 얻어맞은 것이야 조섭을 받게 되면쾌차가 되겠지만 이방아전 구실 떨어지면나는 오갈 데 없는 백수건달로 툭수리 차고나다니며 빌어먹기 심상일세.""앙갚음은 엄두조차할 수 없는 일이고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실까지 떨어진다면이것이야말로 줄 초상 난 것이나 다름없는이방아전 십오 년에 구설을 받아 우리식솔들이 그럭저럭 연명은 하였지만 사또의말 한마디에 우리 일곱 식솔은 그날부터영락없이 툭수리 차고 거리로 흩어져야하네."이방이 토해낸 한숨소리가 다시 한 번방구들의 먼지를 일으켰다. 장돌림이처연한 시선으로 이방을 바라보다가 바싹조여 앉으면서 한마디 풀쑥 던졌다."나으리께선 시방 이방아전 구실 때일까걱정이 태산이십니다 그려.""한미한 가문에 태어나 그나마 이방아전자리하나 붙잡은 것을 천행으로 알고 그손바닥만한 권세에 기대어 초라하게 살던나로선 걱정이 태산에 방불함이 잇겠나.""공연한 걱정이십니다.""시생으로 말하면 매골은 뜯다만 뀌같이후줄그레합니다만 서울 삼개(三蒲)난전거리에 있는 객주와 여각 그리고경주인(京主人)치고 이 장돌림을 모르는사람은 없습니다. 몇십만 냥의 급전이라하더라도 시생의 어음 한 장이면 하루사이에 긁어모을 수 있습니다.게다가 지방 고을의 난전을 돌고 있는선길장수들 가운데서도 서울 삼개나 남대문밖 철패 저자거리에 출입했다는 놈치고시생의 면상을 모르는 놈이 없지요.""자네의 말은 밑절미 없는 거짓이 아니란것은 얼추 짐작하겠으나 자네가 마포나칠패 장시에서 떠르르한다는 장사치라는 게시방 겪고 있는 내 고초와 무슨 상관이란말인가."편입니다그려.""날더러 귀가 어두운 인사라니? 그런말을 두 번 다시 지절거리지 말게. 내가학문에는 어두우나 귀 밝은 탓에 이방아전자리 십오 년을 근근이 지켜온 것일세.""고을 항간에 떠도는 숙덕공론들읕귀담아 듣고 사또께 고자질하는 일쯤이야시생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안목을 크게 가지시라는 애깁니다.""그건 무슨 말인가?""시생의 말을, 시방 남원관야에서여차여차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인데,이것은 남원에 있는 육방관속들의 안목이나능력으로선 매우 처분하기 힘든 일이아니겠습니까. 또한 자칫 조정에서눈치라도 채게 되면 남원부사 변학도서울로 압송되어 옥살이까지 감당하는 패가망신이 아니겠습니까.그래서 여차여차한 일을 여차하게 해결을하신다면 시생은 나으리의 주선을 좇아 이여차한 일을 소문없이 처분해 드릴 수있습니다. 이것은 나으리로선 꿩 먹고 알먹고 깃털로 부채 만드는 일이 아니고무엇입니까."이방이 듣고 보니 그럴싸하고솔깃하였다. 곰곰이 해집고 보니 그 사또역시 이런 일까지는 미처 염두에 두지않았었고 사리가 분명하고 총기가 있다는칭찬을 듣는 이방 자신도 아직 그런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일이었다."자네 지금 한 말은 객적은 흰소리가"장사치란 것은 이문을 좇는 일이라면저승 삼도천이라 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할위인들이 아닙니다. 하물며 저승도 아닌이승에서 몇만 냥의 이문이 생기는 일에하찮은 흰소리를 낭자히지절거리겠습니까."어금니를 지그시 깨문 이방이 남원관아동헌으로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사흘째가되는 해거름년이었다. 작사청 앞을 지날 제동배간 아전들 몇 사람이 이방과마주치기도 했으나 눈길이 마주칠까 두려워저들 먼저 쨉싸게 시선들을 돌렸다.구실 떨어질 날이 머지않은 이방을 아는체해 보아야 소득이 있을 수 없었고, 또한이방과 친숙하다는 눈치라도 보였다가사또의 노여움을 사게 될까겁에 질렸기탄식하며 동헌으로 걸어가 통인을 불러사또 뵌 것을 청하였다.통인이 난색이었으나 이방과는 지난날의돈독했던 안면을 보아 동헌방에 아뢰었으니뜻밖에도 들라는 분부가 떨어졌다이방이 어깨를 스리며 동헌방으로 들어설제, 변사또는 장독에 차도 있어 안색은수척하였으나 비단보료 위에 너부죽하니앉아 있었다. 계면쩍은 상호를 가진 이방이구멍에서 금방 빠져나온 망아지새끼처림 두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문안인사 올리고사또가 진작 쾌차된 것은 나랏님의 은총때문이라고 모양 있게 주워섬겼다.그러나 변사또는 아는 척도 않고댓바람에 오금부터 박았겠다."내가 통기해서 들라한 적도 없거늘 무슨"긴히 아릴 말씀 없지 않아 뵙고짜하였습니다. 쾌차되시어 정녕 기쁘기한량없습니다.""알랑방귀는 그만 뀌고 어서 찾아온곡절부터 실토정하라.""지난번 분부하신 세곡(稅穀)들과명하전(名下鐫)때문입니다. 그 세곡을 모두거둬들인다면 남윈관아에 있는 창고의사정으로는 태반을 한길가에노적(露籍)으로 쌓아두지 않으면 안 될것입니다.그러나 노적으로 쌓아두면 십중팔구애옥살이로 도탄에 빠진 남원백성들이발호가 심하다 해서 인심이 흉흉해지고민란의 빌미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터라. 이러한 일로 사또께서 탄핵이라도일이기에 사전에 방책을 도모하여사또께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주선해야 하지않겠습니까.""이방이 메 맞고 쫓겨나서 생각했던 일이그것이었더냐?""예.""기특한 사람이다. 이방이 돌아가서이빨이나 갈고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경황중에 시종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였다니남원부중 백성들이 모두 이방과 같이아담한 심성들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겠나.""시생에게 한 방책이 있습니다.""방책이 뭔가?""지난날부터 친숙하게 알고 지내는 서울삼개의 여각의 주인이 있사온데 그로하여금 관무첩(官貿帖)을 주어세곡들을 흥정하여 넘긴다면 노적가리로쌓아둘 일이 없을 것이니 남원부중백성들로 하여금 민란의 빌미를 주기 않게될 것입니다.이 삼개 여각의 주인은 성품이괴팍스럽지 않아 흥정이 수월하고 여수도질기지 않아 셈이 분명하여 허황되지않습니다. 또한 경솔한 위인이 아니겠으니이번의 일을 은밀히 조처할 것입니다."경사(京司)에서는 서리라 부르고 지방의관아에서는 아전이라 부르는 이구실바치들의 폐단은 이미 널리 알려진일이더라. 백성은 논과 밭을 토지로 삼지만아전들은 백성으로써 논과 밭을 삼았더라.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것이 바로 아전들이 농사 짓는 방법이다.과만(瓜滿)이 되어 돌아가거나 혹은교체되어 들쑥날쑥하지만 그 고을 출신인아전이란 것들은 한 번 발탁이 되어작사청에 들어오는 그날부터 망녕나기전까지는 좀처럼 내쫓김을 당하는 법이없다.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걸핏하면교채되는 수렴들은 도임하는 고장의 물정과풍속에 어두워 제도를 살피고 다스림에서툰 터라 자연 모든 공사(公事)를집행함에 아전들의 계교를 빌릴 수밖에없었더라. 그러한 연유로 수령은 자주바뀌어도 아전은 바뀌는 법이 드물다.그둘 아전들은 때로는 자벌레처럼움츠리고 바퀴벌레처럼 숨어서기어다니지만 수령을 뫼심에 물 흐르듯깔보고 얕은 꾀나 호령소리로 그들을내키는 대로 조롱하고 잡았다 놓았다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아전이란 솟막집의 식주인처럼 나그네 비위맞추는 일에는 탄고닮아 이골 난위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수령들은많지 않더라.수령 앞에 이르러 콧등을 땅에다 박고지당하다는 말을 쉴새없이 늘어놓지만속으로는 수령의 미련함과 어줍쟎은 계교따위를 환하게 꿰고 있어서 저희들끼리는몰래 소매로 옆사람을 꾹꾹 찌르고킥킥거리고 웃다가 관정(官庭)을벗어나기만 하면 비웃고 헐뜯기를일삼는다는 것을 수령들은 모르더라.혹세(酷稅)로 거둬들인 곡식과장사치와 거랭할 적에는 필경 호방이맡아서 주선할 일임에도 변학도는 이방의조청과 같이 달짝찌근한 감언이설에솔깃하여 이방으로 하여금 주선케 하였다.그리고 당장 그 자리에서 얼굴조차 본일이 없는 장돌림에게 관무첩(官貿帖)을발급하였으니 관무첩을 가진 상인은 그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으로 세곡이나관아에서 취급하는 공물 따위를 마음대로거래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는 것이다.관무첩에 수결과 도장을 찍어 건내면서변학도는 은근히 물었다."보노라면, 조선팔도 삼백육십 고을에는토산물 없는 곳이 드물다. 일테면강계(江界)는 인삼과 담비가죽이 자랑이오.경성(鏡城)은 다리와 삼베를 자랑한다.담양(潭陽)의 채색 상자, 동래(東萊)의담배 기구, 경주(慶州)의 수정, 그리고해주(海州)의 먹과 보령(保寧)의 벼루는저마다 그태깔과 쓰임새가 돋보여서팔도에서 소문난 토산물을 손꼽히지않더냐. 남원에는 그런 이름자한 토산물이없쟈?"남원땅 백사지가 변변치 못하여 이렇다할 토산물 한 가지인들 천거할 것이 없었던이방은 오금이 쥐어 박힌 채로 머쓱하게앉아 있을 법하였다. 그러나 이방은 까닭모를 웃음을 입가에 해죽해죽 흘리면서대꾸하였다."조선팔도 삼백육십 고을에 저마다자랑삼을 물산이 있다는 것이야 시생인들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고을에서자랑삼는다 할지라도 조금도 부러울 것이없고 또한 허물 될 짓도 없습니다."눈에 될 만한 토산물 없는 것을 빌비잡아이방을 한 대 쥐어박는 답시고 던진 말에주눅들지 않는 것이 괴이쩍다 생각한변학도가 뜨아해서 물었겠다."허물될 것이 없다는 방자한 언사는 뜻이어디에 있는고?""강계에 담비가죽이 있고 경성에 삼베가있고 경주에 수정이 있은 들, 강계의담비가죽이 농익은 홍시같이 야들야들한속살을 지닐 수 없으며, 경주의 수정이제아무리 기묘한 빚을 가졌단 들 코끝에새큼하게 감기는 오얏 같은 향기를 자랑할수는 없습니다.경성의 삼베를 수천 동이 쌓아둔들채난(採煖)할 수 없을 것이며, 나주의부채가 제아무리 살랑거린들 얄기죽얄기죽결음을 옮겨 놓을 적마다 야릇한 바람을일으키는 남원땅 춘향의 색태를 흉내낼 수없을 것입니다.해주의 먹이 제아무리 검다지만 춘향의불두덩에 핀 터럭만큼 검기를 자랑할 수없을 것이고, 보렴의 벼루와 마르지 않는것을 겨룬다 할지라도 춘향의 옥문에 고여있는 물이 마르기를 바라지는 못할......"그때였다. 눈이 시뻘개진 변학도가서둘러 손바닥을 내뻗어 이방의 입언저리를싸잡고 가로막으며 단내 나는 입으로 쏘아부쳤다."그만, 그만하게. 남의 부아를 질러도분수나름이지, 내 오장육부를 발칵난장질 당했다고 이제 와서 분풀이인가?""언감생심 그런 불측한 싯지를 품고 있을리 없습니다.""그렇다면 내 복장을 발칵 뒤접어 놓는언사는 어디서 꿔온 것인가?""남원에 자랑할 만한 토산이 없다는사또의 푸념을 듣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깨우쳐 드린 것입니다.""자네의 명석한 총기는 진작부터 알고있었던 터, 형방시켜 당장 춘향을불러오라.""허겁지겁 분부만 내리실 게 아닙니다.사실은 춘향과 갈이 잘난 체하는 계집을고분 교분하도록 다루는 솜씨에 있어선,외람된 말씀이오나 풋나기인 이몽룡을따르지 못하시니 시생이 보기에도 적지않게"내가 이몽룡을 따르지 못한다?""돼지를 돼지우리에서 수월하게끌어내려면 앞에서 우직하게 귀를 잡고당길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서 꼬리를잡고 당기면 제발로 결어서 우리에서나온다 하였지요. 앞에서 귀를 잡고 당기면돼지는 한사코 뒷걸음질만 할뿐입니다.""자네의 언사가 의미심장하군. 그게 뭔소리쟈?""벽을 치면 대들보는 올기 마련입니다.이몽룡은 그 풋나기 주제에도 그 순리를깨닫고, 춘향의 어미를 먼저 찾아가서비위를 맞추고 담판해서 춘향이 거처하는별당까지 별 소동 없이 들어가 동품까지 할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이몽룡이의 술수를 사또께서 그대로입으실 가망도 없지는 아니합니다. 그러나속담에 꿩 잡는 게 매라 하였으니 이조급한 판국에 체모에 다소 손상이되시기로서 구애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춘향어미가 코머리기생으로 거행한 적이있어서 화류계의 야비한 물정이라면 모르는것이 없을 것이고 또한 여식을 덜컥기안에다 착명한 일에 원한을 두고 있을법한데 내가 찾아가서 여차여차하게꼬드긴다 해서 고분고분할까.""그것은 염려를 놓으셔도 별반 장애가없을 것입니다. 춘향어미 월매는 물욕이남다른데다가 또한 한양 간 이몽룡이가장안의 색주가를 휩쓰는 파락호로서,창병까지 언은 폐인이라는 것을 알고난뒤부터는 여식이 기안에 학평된 일을 두고여식으로 하여금 사또를 밉상으로 보지않도록 은근히 부추기는 기미도 없지않았으니 사또께서 월매의 집에 한번납시기만 하면 일은 수월하게 풀릴것입니다."그때였다. 변학도는 벌떡 일어났다.그리고 이방에게 분부를 내렸다."자네가 편의를 좀 봐주게. 선머리에서향도해서 나를 춘향의 어미집으로안동하게."그러나 이방이 황망히 손사래를 쳤다."아니됩니다.""아니되다니, 자네가 시방 된다고장담하지 않았나.""이런 대낮에 여염집으로 미행(黴行)을하시려면 변복(變服)으로 납시어야 말썽"날 보구 미복잠행(黴服潛行)을 하라는수작인가?""그렇습니다.""자네가 내 복장 속을 요리조리 뒤져가며뒤집어놓고 있군, 내가 한양에서 남원까지미복으로 도임하다가 육백 리 도임길에숱한 경난에 돌이킬 수 없는 사매질에수직나졸들에게 난장질까지 당했다는수치를 몰라서 시방 날 보구 또한미복잠행을 하자는 것인가? 이제부터 나는이 관복만큼은 잠자리에서도 벗지 않을것이니 뒤숭숭한 소리로 오장 뒤집지 말고앞장서되 관아를 삐져나갈 때만 뒤쪽평대문으로 나가세."해는 한낮이 기운 뒤라지만 그야말로대낮이었다. 땅거미라도 내릴 때쯤해서변학도란 위인은 한 번 작심하였다 하면체통을 가리지 않는 불길갈이 급한성미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이방이앞장서서 춘향의 집까지 당도하였는데변학도는 그나마 다소 깨름칙하였던지사위를 돌아보며 이방에게 분부하였다."자넨 대문 밖에서 가다려줘야 하겠네.자네의 체통에 다소 내키지는 않으리라는것은 짐작하였으나 내가 안에 있을 동안잡인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파수를 서주게."이방이 허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슬쩍대문을 밀어 보았더니 대낮이라 빗장은걸려 있지 않고 문을 그냥 짓질러만 놓아일 같잖게 열리었다. 당장 뜨락으로들어서서 통자를 넣자, 정주간에서향단이가 달려 나왔다.껑충한 허우대에 관복까지 입은 사내가눈발도 곱지가 않은 터라 향단은 놀란가슴에 어디서 온 뉘시냐고 되물어 볼경황도 없이 손바닥 납죽 들어 안방을가리켰다. 대청에 올라서서 기침으로인기척을 하고 서둘러 미닫이 문을 열고한약 냄새가 설핏한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빈 약그릇이 놓여 있는 아랫목에 한 여인이곤하게 누워 있었다."자네가 춘향어미인가.""그렇소."돌아누운 여인네의 뒤통수를 보고 물었던말이었고 누워 있던 여인네는 난데없는사내가 묻는 말에 반몸을 비틀고 바라보며대답한 말이었다. 대답은 시큰둥하게하였으나 힐끗 돌아다보니 관복을 걸친부시시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앉으라는 권유도 었었지만 변학도는아랫목으로 내려와 털썩 가부좌를 틀고앉는데 최씨가 보기에는 무례하고비루하였다. 관원의 신분이라 하여 이런패덕(悖德)을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것인가.최씨로선 두고만 볼 수 없는 살풍경이었다."이런 상스럽고 추잡스런 거동 을보았나. 명색 동방예의지국이란 평판이자자한 이 나라에는 내외의 경계가 또한삼엄하거늘 아녀자가 소슬하게 누워 조섭을받고 있는 그윽한 내실에 일면식조차 없는사내가 관복을 빙자하여 족제비처럼뛰어드는 못된 소행머리가 어디 있소?"변학도가 최씨를 본 적이 없고 최씨 또한변학도를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믿고 있었고 춘향어미로 거리낌이 없는최씨는 변학도를 엉덩이에 뿔 난벼슬아치로 알았다.불끈 화증을 돋구며 쏘아부치는 최씨의언사가 맵짜고 암팡진 터라 머쓱해진변학도는 한풀 죽어서 최씨의 비위를맞추었다."자네의 불편한 심기를 모를 턱이있겠나. 하지만 사화를 하자고 바쁜공사(公事)조차 황망히 덮어두고 찾아온내게 이런 고약한 푸대접이라면 속담에우는 얼굴에 침뱉기가 아닌가."푸대접을 받든 흔연대접을 받든 그것은찾아 온 과객의 행세하기 나름, 아녀자가탈진하여 누운 방에 난데없이 뛰어들어푸대접을 허물하고 드는 것은 그 알량한"어허, 계집사람 주제에 어인 성깔이이토록 매몰찬 것인가.""엇따 대고 반말이요?""내가 반말해서 심기가 뒤틀린 것인가?내게 반말 듣기 싫거든 날 별당의춘향에게로 냉큼 안동하시게. 그렇게 되면귀에 거슬리는 말 듣지 않을 것 아닌가?""춘향이라니?""자네가 나를 보자 불쑥 배알이 뒤틀리고울화가 치밀어서 소매를 부르걷고 험담을하고 있다는 것은 십분 짐작하겠네. 그러나이런 문전박대에도 내가 국 눌러 참고견디는 것은 오직 춘향을 수청들이고자하는 내 일편단심의 소치인 것을알아주었으면 좋겠네.""감히, 나랏님이 내린 관복차림으로엽색행각을 벌이고 다니다니, 이는나랏님에 대한 능멸이오 만고에 있을 수없는 불충이 아니냐."그런 말이 최씨의 입에서 쏟아지기바쁘게 최씨의 왼손이 바람을 가르며변학도의 따귀에 가서 맞았다. 홧김에후려친 따귀였으니 변학도의 눈에서 눈물이쭉 삐지는 듯 하였다.아니래도 억울하게 옥살이로관욕(官辱)을 당한 분풀이까지 겹친 맵짠손찌 검이 였으니 변학도의 볼따구니에는금새 벌건 손자국이 드러났다. 그러나경난은 거기에서 그 않았다. 처음에는서툴게나마 춘향어미의 비위를 맞춰담판하고 춘향의 살맛을 보려 했던변학도는 난데없는 따뀌 한 대를 공다지로말았다.감히 관복입은 벼슬아치의 귀뺨을 일개퇴기(退妓)주제가 섣불리 손찌검하다니,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이토록 이지러져서야무슨 망신인가. 그 순간, 변학도의 눈에는불이 튀는 것 같았다. 그는 지체없이주먹을 들어 최씨의 목덜미를 모양 있게내리쳤다."이년, 미천한 주제에 이 무슨행패인가."눈에서 저승삼도천 샛볕이 갔다왔다할만큼 화끈하게 손찌검을 당한 최씨는앉았던 자리에서 그대로 콧등을 박고꼬꾸라졌다. 그러나 최씨는 순식간에 범떡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는 것과 때를같이하여 고미다락의 분을 열고 방아고방아고를 변학도의 어깨짬에 대고내려찍은 것도 역시 눈깜짝할 사이였다.최씨 눈에 있던 샛별이 어느새 변학도의눈시울에 좌르르 쏟아져 내리는데 왼쪽어깨짬을 한번 내려찍던 방아고는 다시오른쪽 견대팔을 겨냥해서 허공을 가르고있었다. 미복잠행을 하자는 이방의 권유를하찮게 여기고 관복으로 행세하자고 고집을부린 것이 또한 화근이었던가.아니면 남원부사에 제수되고 난 뒤푸닥거리 아니하여 몸에 무슨 악귀가덮씌웠는가. 미복으로 가로막아도 아니되고관복으로 가로막아도 악귀의 행패를 막을수 없으니 어인 팔자가 남원부사에제수되고부터 이토록 험악하단 말인가.하지만 삼십육계 중에서도 으뜸인 것은순식간에 벌떡 몸을 솟구친 변학도는문지도리가 부서져라 하고 미닫이문을밀어부치고 눈자위를 어떻게 뜬 채대청으로 튕굴듯 뛰어나가며 이방아전을몸달게 불렀다.문밖에서 잡인의 범접을 가로막는다 하고지키고 셨던 이방도 황소 영각켜는 소리가난 뜨락으로 뛰어드니 관복자락을 뒤틀어쥔 천둥벌거숭이 하나가 대청 가역으로부터섬돌로 튕굴듯 떨어졌고, 방아고를 어깨에울러멘 늙은 계집 하나는 막 뒤쫓아 나오는찰라에 있었다.사또를 수행하는 아전배는 사또의 세력에의탁하면 사또보다 더욱 기세등등해지기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청에 서 있는낯모를 늙은 계집을 발견한 이방은발뒤축을 들었다 놓았다."이녀언, 이 어인 무엄한 행패냐."뜨락을 설설기고 있던 변사또를 서둘러곁부죽할 요량은 않고 방아고 집어든계집부터 꾸짖는다. 그러나 이미이판사판으로 오장육부가 뒤집힌 최씨의언사가 사끈사근할리 없었다."이놈, 너는 어느 울타리에서 뛰어든족제비냐?"어엿한 길청의 구실바치를 보고 족제비라하였으니 이방의 대답도 아름다울 수없었다."이년, 누깔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이놈아, 누깔에 보이는 것이 있으니족제비라 하지 않았더냐.""월매를 사칭한 네 년의 죄를 알렸다."전치수령(前治守令)이 한림이 부사로제임시에 네 놈 아전배들이 서로 결탁하여관고(官庫)의 곡식을 족제비처럼 횡령한사실을 수령께 고발하겠다."이방이 과연 족제비의 별호를 들어서마땅한 것이 최씨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뜨락에서 횡하니 사라져 버리고없었기 때문이었다.저만치 먼발치 앞에 뒤뚱거리며 걸어가고있는 변사또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잡은이방이 다급하게 말하였다."사또 아니 됩니다. 이러시면아니됩니다.""어서 가자, 냉큼 동헌으로 돌아가자.아무래도 내게 악귀가 덮씌운 것 같으니어서 가서 푸닥거리라도 해서 이 원귀들을"원귀 내쫓는 일보다 시세 당장 수습하실일이 있습니다.""뭐냐?""사또의 왼쪽 뺨에 얻어맞은 손자국이너무나 역력한 터에 어찌관복을 차려입고한길을 행보하신단 말씀입니까. 오늘 당장남원부중에 사또가 늙은 계집에게 따귀맛고 구루병 앓는 당나귀처럼 허둥지둥달려가더란 조명이 퍼질 것 아닙니까."그 순간, 변학도는 딱 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허공을 쳐다보며 뇌까리는것이었다."갸륵하다. 이방의 총기가 갸륵하다. 이경황중에도 오직 나의 체통을 염두에두었던고. 이 방의 국량이 저토록현명하다니....."뒷길로 안동하겠습니다."그때 변학도는 욱신거리는 한쪽 어깨를들썩해 보이며 가련한 목소리로호소하더라."왼쪽 어깨 욱신거리는 품에 견지뼈가부러진 듯하이.""견지뼈가 부러졌다 하더라도 시생의체수가 워낙 잔망스러워 사또를 업고뛴다면 시생의 등에 업힌 사또의 무릎종지가 땅에 질질 끌릴 것이니 차라리 업지아니하는 것이 모양에 변변치 않겠습니까.""내왕 없는 뒷길로 안동한다고 장담하지않았었나.""여항의 상것들 내왕은 없더라도순라꾼들과 개는 다니지 않겠습니까.""남원부사의 직임이 가지고 있는날아가는 새도 호형 한마디로 떨어뜨릴만한데 내가 참없이 사매질을 당해도 어째분풀이할 곳이 없는고?""동헌 돌아가시는 길로 형방시켜 그기막힌 늙은 년을 등시에 잡아들이도록분부하십시오.""귀 막힌 년을 잡아들여 봤자, 무슨화끈한 분풀이가 되겠나.""대꾸가 낭자한 것으로 보아 귀 막힌년은 아닙디다.""이방이 방금 귀 막힌 년이라 하지않았나.""기막히다 하였지 귀 막았다는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자네의 자발없는 주동이나 막고 있게.월매란 년을 분풀이하자면 빌미를 만들어야"그 늙은 년은 월매가 아닙니다.""월매가 아니라.""예.""네놈이 조청같이 달짝찌근한 말로꼬드겨 날 월매의 집으로 데려간다 하구선엉뚱하게,기막힌 칭맹과니년의 집에다 등을떠밀어 패대기를 쳐서 관장(官長)의 체통에똥칠시키고 따귀 두 대에 견지뼈까지부러뜨렸으니 네놈으로썬 속시원한분풀이가 되었겠다? 삼촌삼촌하면서 짐지운다더니 이건 네놈의 사악한 간계에미련한 내가 속아넘어간 것이 아니냐?"그 순간이었다. 이방이 두 무릎을 맨땅에착 꿇리고 업드렸다."나으리. 나으리의 말씀이 십분 사비에온당하십니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꼬인월매의 방에 그런 늙은이가 월매를사칭하고 누워 있으리라곤 시생이 미처탐문하지 못한 불찰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집에 담살이 하고 있는 향단이란 년도한통속으로 시생을 속인 것이니, 이런기막힌 내막은 그 늙은이를 잡아들여분초를 한다면 시세당장 백일하에 드러날것입니다.""내가 잡아들여 곁에 두고자하는 것은춘향인 것을 도임초부터 네놈이 빤히 알고있으면서 어찌하여 네 놈은 주둥이만열었다 하면 말끝마다 주둥이에서 흙냄새만나는 늙은 할망구들만 잡아들이라고 성화를부리느냐. 이것이야말로 나를 훼방놓으려는 네놈의 속 깊은 간계를 드러낸짓이 아니냐?""잡아들이고 아니고는 형방이 주선할 일,데데한 네놈이 오줄없이 남의 제사상에뛰어들어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촐싹거릴일이 아니쟎느냐. 네놈의 오지랖이 그렇게넓고 세상만사를 무불통지로 알고 있다면내친김에 날 동헌에서 내쫓고 남원부사직임까지 도맡지 그러느냐?"속으로 욱하는 기분대로라면. 남원부사나라고 못할 것 없지요 하는 말이 목구멍이간질간질하도록 기어올랐으나 겉으로는대경실색 몸둘 바 몰라하며 조아리더라."나으리, 시생이 온당치 못하여절도(節度)가 없고 주변도 미숙하여나으리의 진노를 샀을지언정 말씀이 지나쳐길 가던 상것들이 들을까봐 간이떨꺽합니다, 시생이 주책바가지라 한들"네놈과 입씨름 낭차히 벌이고 있을말미도 없고 처지도 못되는 터 어서동헌까지 윈들 당듯만 시켜라. 네놈의말대로 그 기막힌 늙은이를 잡아다하옥시킨다면 월매를 사칭한 세세한 내막이백일하에 드러나긴 할 터이다.그러나 한 청맹과니 늙은이가 월매를사칭한 소상한 내막을 문조하여 밝혀낸다한들 춘향을 수청들이려는 내 본래의의도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그 늙은이로 하여금 수청들이게 할것이냐? 그 늙은이를 잡아들일 게 아니라늙은이의 죄상을 빌미잡아서 춘향을잡아들여 혼찌검을 내린다면 그것이야말로도랑 치고 가재 잡는 소득을 얻을 게아니냐?"않았음인데 무엇을 빙자하여 잡아들일 수있겠습니까?""이런 해망쩍은 놈을 보았나. 그러기에연좌죄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연좌죄가 있다는 것은 시생도 모르는 바아닙니다만 그 늙은이가 월매를 사칭하였을뿐 사실은 춘향이 그에 동조하여 저지른죄상이 없는 터에 어찌 연좌죄를씌우리까?""그럼 내가 따귀 맞고 견지뼈 부러진것은 도깨비나 물귀신에게 당한 봉변일뿐이란 것이냐. 그 집이 월매의 집이분명하고 또한 담살이 하는 계집조차춘향어미가 분명타 하였으니 이로써 증거가없지 아니하다, 그로써 그들 일가가 교묘히결탁하여 감히 관복입은 내게 폭행을있느냐?""그 고약한 늙은이는 털끝조차 건드리지않으시겠단 것입니까?""늙은이라면 손끝도 건드리기 싫은성미에 털끝인들 건드려서 뭣하나.""춘향을 불러서 한 번 더 순리대로다독거려 보심이 현명하옵니다.""벽을 치면 대들보는 울기 마련이라는 네놈의 감언이설을 첫고지 듣고 벽을치겠답시고 넙죽거리다가 조상께서물려주신 견지 뼈만 부러뜨리고 말았다."그러나 견지뼈 부러졌다는 것은엄살이었을 뿐 선머리에서 길을 안동하는이방의 뒤를 변학도는 종종걸음으로뒤따라오고 있었다.견지뼈가 부러진 것이라면 그 부러진고래등같이 부어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천행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동헌까지당도한 변학도는 동헌에 좌정하는 길로불거진 눈망울로 형방에게 잡아오라는분부를 내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당장그러하지 못할 광경이 당도한 동헌에서벌어지고 있었다.동헌에는 춘향이가 소슬히 앉아 있었다.문득 뇌리를 치는 생각으로는 형방이란놈의 동작이 전광석화처럼 민첩하다는생각이었다. 아직 잡아오라는 분부조차내리기도 전에 두 번 다시 잔소리들을 것도없이 냉큼 춘향을 잡아다 동헌방에대령시킨 이런 기막힌 기민성이 남원길청의 형방에게 있다는 것에 놀랐다.변학도가 미닫이를 성깔 있게 밀어부치고일어나 내외를 차리다가 놀란 변사또가뜨악 한 채로 좌정하자,"나으리 탕제 드실 시각입니다.""탕이라니? 설렁탕이냐 미꾸라지탕이냐.""당귀수산입니다.""형방은 어디 갔느냐?""형방은 상면치 못하였습니다.""아니 그놈이 널 여기다 패대기쳤다면응당 포박하여 둘 일이지 오라조차 짓지않고 곱게 앉혀둔 까닭이 뭐라더냐.""쇤네 형방께 오라받고 끌려온 것이아니옵니다.""아니라면? 도임행차 수행 갔던육방관속들이 돌아온 북새통을 틈타서 몰래장달음을 놓은 것이 적실한데 그럼 제발로다시 걸어 들어 왔더냐? 네가 형방에게"나으리께서 쇤네를 포박하여잡아들이라는 분부를 내리셨다면, 쇤네는어찌 형방의 형용조차 상면하지 못했더란말입니까.""그래?"하긴 사리에 온당한 말이었다. 형방을불러 추포령(追浦令)을 내린 적도 없을뿐더러 동행하였던 이방에게 형방을대령시키라는 분부를 내린 적도 없었다.느닷없이 춘향이가 동헌방에 앉아 있음에지레짐작으로 형방이 한 일로만 넘겨집은것이었을 뿐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춘향의 말은 가위 흰소리가 아니었다.정상이 그러한 만큼 저년 내려 가두라는말이 당장 입에서 쏟아져 나올 수가없었다. 다시 한번 순리대로 다독거려마침 춘향은 약사발을 뚜껑을 열고새끼손가락을 집어넣어 두어 번 저었다.그리고 약사발을 들고 상큼 웃으며아뢰더라."나으리 이제 탕제가 알맞게 식었습니다.어서 드십시오.""그럼 네가 그 북새통중에 장달음을놓았던 게 아니더냐?""장달음울 놓았다면 쇤네가 나으리 탕제드실 시각에 맞추어 약방으로되돌아왔겠습니까. 쇤네 미거하나 나으리약수발을 드리겠다고 약조 드린 이상 어찌행설을 경솔히 가질 수 있겠습니까.옛날에 어떤 효부가 있어 평소에육고기를 즐겨하는 시아비의 병환을수발하다 못해 넓적다리를 떼어내어 구워보필하고 구완함에 그 효부의 갸륵한희생은 미처 따르지 못할 망정 탕제는 끓여올리는 일에야 부질없이 게을리할 수있겠습니까?""그래서 그 시아버지는 며느리의넓적다리를 먹었다더냐?""미주알이 찢어지는 애옥살이에 육고간에가서 고기를 살 수 없었으니 각고 끝에넓적다리를 베어 육고기 대신하였지않았겠습니까.""옳은 말이다. 그 기특한 효부의희생으로 그 생송장은 병석을 떨치고일어났음직하다. 그러나 일개 티끌 같은촌부(忖婦) 명색은 넓적다리를 베어시아비를 구완함에 조금도 주저함이없었거늘 너는 어찌 행실이 완악한넓적다리를 한 번 만져만 보자는 데도엇뜨거라 해서 앙탈에 빼죽거리고만 있으니이건 어인 가당찮은 불측인고? 내가채난(採暖)해서 하루 빨리 쾌복이 되자면약소하나마 네 넓적다리쯤은 만질 수있어야 하지 않느냐?""외람된 말대꾸겠으나 나으리께서 쇤네의넓적다리를 보자는 분부는 내리신 적이없습니다."춘향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기만 하던변사또의 핏기어린 두눈이 그 순간 허옇게떠졌다. 아니 이건 넓적다리쯤이야떡주무르듯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춘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무턱대고 수청들라고만 완악한 언사로억지를 부리고 쥐어박기만 했을 뿐, 정작만져보자든지 발을 보여달라는 말로 춘향을달래본 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꿀꺽침을 삼킨 변사또가 혓바닥을 내둘러입술을 적시고 나서,"그럼 지금 당장 넓적다리를 내놓을 수있겠느냐?""내놓으면 어찌하시려오?""물론 떡판의 백설기떡 주무르듯 용이여의주를 물고 돌리듯 내가 한번 주물러보려는 것이다.""아니됩니다.""왜? 네가 달거리가 있어 사추리에개짐을 차고 있느냐?""아닙니다.""그럼 무슨 구애가 또 있어서버르장머리없는 말만 골라서 남의 복장을내놓겠다는 의향이 아니었더냐.""하초를 보여드리는 것은 해롭지않겠으나 하초를 백설기 주무르듯 하신다면쇤네로선 곁을 주는 것과 다름없겠으니허락할 수 없습니다.""기골이 멀찡한 내가 햇미나리처럼 물이오른 네 넓적다리를 황달든 놈 붕어들여다보듯 군침이나 삼키면서 구경만하라는 것이냐?""그렇습니다.""앓느니 죽겠다. 그러나 네 말에는모순이 없지 않다. 들어앉은 사삿집의계집이라면 모를까. 속담에 화냥년수절타령이더라고 기안에 착명된 논다니계집의 처지에 걸핏하면 훼절 운운하고있으니 도대체 오장이 니글니글해서 듣고"기안 착명 웬일입니까, 쇤네가 동헌에와서 약수발을 드리고 있는 것은 다른허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쇤네의 어미를방면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일 뿐따라지목숨일 망정 기안에 얽매이어나으리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은아닙니다.오히려 고비마다 기안 착명된 것을 들춰쇤네를 충하하고 생다지로 위협만 하신다면비위가 뒤틀려 흔단만 생겨날 뿐 도대체무슨 소득이 있겠습니까. 산협 고을의궁상스런 계집이라 해서 행로(行露)도 없는한미한 사삿집의 계집이라 해서 법에도없는 기안에 착명시켜 오직 쇤네로 하여금나으리를 시침(侍寢)들게 하는 일에만골돌하시니 이렇다 할 계책이 없는뿐입니다.""흰소리 집어치고 넓적다리를 내놓아라.""차라리 넓적다리를 배어내고 구워드릴수 있을 망정 나으리께서 떡 주무르듯 하는것을 감내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이런 해괴한 계집의 앙탈을 보았나,기생이 정절타령하는 것은 배꼽 밑에 털난이후로 처음 본다. 이방의 말을 듣자 하니네가 겉으로는 수절을 빙자하면서뒷문으로는 관속 건달들이 무상출입한다더니 그 말 흰소리가 아니구나.내 분부만을 기필코 거역하고 드는 것은간부(姦夫)에게 둔 정분이 간절해서앙탈하는 모양인데 간부의 사정 봐준답시고관령을 거역하면 형틀에 매달리는 불상사를겪는다는 것은 모른단 말이더냐? 형틀그때 춘향은 눈살을 살천스럽게 치뜨고변학도를 노려보았더라.추잡스럽고 비루하다. 한낱 계집을수청들이기 위해 걸출한 사내로 자처한다는변학도가 있지도 않은 간부를 만들어위협하고 든단 말인가."사또께선 내노라 하는 사대부가아닙니까. 사대부의 예절로써 어찌 한미한여염집 계집을 상종하여 밑절미도 없는간부가 웬 말입니까. 자고로절행(節行)에는 양반 상놈의 차등이 없다하였소.충신도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데.열녀가 어찌 두 남편을 둘 수 있겠습니까.""수절타령에 열녀타령으로 넘어가느냐.""그런 말씀 마십시오. 해서(海西)기생청주(淸州)기생 화월(化月)이,평양(平壤)기생 월선(月仙)이,안동(安東)기생 일지홍(一枝紅)은 모두내노라 하던 열녀(烈女)가 아니었습니까.""그렇다면 네년이 시방 열녀 흉내내느라고 그렇게 삐죽거리고 만 있느냐?모반하는 자는 능지처참이요, 관장을조롱하는 자는 대매에 처죽이고 관장의분부를 거역하는 자는 정배(定配)시킨다."그걸 아느냐?""그중에서 유부녀를 겁탈하려는 자는하초에 달린 생고기를 잘라버린다는 것은왜 빠트리십니까."그 말을 듣게 된 변학도는 드디어 눈앞이아득하여 곁에 있던 연상(硯床)을 탁 치자,망건편자가 툭 끊어지고 상투코가 덜덜달래보려고 좋은 말로 내심을 떠보려하였으나 지나치게 건드리다가 이제 와서욕까지 얻어먹고 수치되니 더 이상 참을수가 없더라. 살기등등한 변학도가미닫이를 열어젖히고, 소리 질렀다."이리 오너라."동현 뒤곁 감나무 아래에서 홍시 따서주전부리하고 있던 통인놈이 입안에 있던것을 꿀떡 삼키고 동헌방 누마루 아래로구르듯 달려오며 (네) 소리 길게 하였다."이년 잡아내려라."뉘라서 주저할 수 있을까. 급창과형리들이 달려와서 준향을 끌어내려 훨씬넓은 동헌 트락에다 사정 두지 않고패대기를 쳤다."요년, 감히 어떤 분의 안전이라고것이냐."제비행전 날렵하게 졸라맨 형리들이벌때같이 울울총총 달려들어 춘향의머리채의 뒤끝이를 뽑아 던지고 한강사공이 닻줄 감듯 손바닥에 칭칭 감아동댕이처서 장판(長板)에 엎지른다.형 리들의 완력에 춘향은 육자배기로엎어졌구나. 버선 벗겨 두 발 괴고 고쟁이벗겨 박 속같이 희디 흰 볼기짝이 훨씬드러나게 노둔(露臀)시킨 다음 두 팔 뒤로돌려 결박하고 무명 수건으로 눈 가리고치마로 허연 볼기짝 다시 가린 연후 물 한동이 덮어씌워 물볼기 칠 만반의 준비를갖추더라.대체로 죄인이 사내일 경우에는 바지를벗겨 내리고 노둔시킨 채생다지로 곤장을볼기짝을 치맛자락으로 덮은 다음 물을부어 달라붙게 한 다음 다스리는 것이법도였다. 그러자 형방이 달려와서 춘향의볼기짝에다 붓으로 신획(身劃)을 그었다.그러자 짐장사령(執杖使令)이 나섰다.팔척장신에 전통(箭筒) 같은 팔을 빼어형장을 듬뿍 안아다가 춘향 앞에 좌르르쏟아놓으니 그 소리만으로도 구곡간장이애이더라.그중에서 호리낭창한 삼모장(三矛杖)하나를 골라쥐고 넙죽 형틀 옆에 부복하니,동헌방에 턱을 얹고 기다리던 변사또의지엄한 분부가 떨어졌다."그년의 넓적다리에 피가 튀도록사정없이 치되 만약 집장사령 네놈이사정을 두기로 한다면 네놈부터 물고를분부 내린 연후에 집장사렴은 삼모창둘러메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큰 눈을부릅뜨고 달려들며 매 한 대를 아주 딱붙여서 내려치니 오뉴월.소낙비에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형장가지 하나가 허공 중에 튀어 올라팽글팽글 돌다가 떨어진다. 딱하는 소리가기왓골을 울리자, 섬돌 위에 서 있던 통인놈은 붓으로 종이에다 바를 정 자(正)의 첫획을 그으면서 목덜미 길게 빼고 어스름달밤 벼랑 위에서 울부짖는 여우같은소리로 아뢰더라."하나요."그러나 형틀에 엎든 춘향의 입에선놀랍게도 아프다는 한마디가 흘러나오는법이 없었으나 굳게 사려 문 입안에서는변사또가 물었다."이제 또 분부 거역할 것이냐?""만번 죽어도 봉행치 못하겠습니다.""되우 쳐라."두번째의 곤장이 떨어지자,"이런 행패 꾸민다 해서 제가 어찌변하겠소.""매우 쳐라."세번째의 매가 떨어진다."이부(二夫) 아니 섬긴다고 이런 거조가당찮소."다시 한번 딱 소리가 터졌다."사지를 찢더라도 사또의 처분이요.""되우 쳐라.""저승 삼도천으로 떨어뜨린다 한들 몸은아니 줄 터이오.""바를 정 자가 모두 여섯이오.""나비가 변하여 송골매가 된다 하여도 내가랭이는 못 벌리오."매를 내릴 때마다 딱장을 받는다 한들목도를 쳐든 춘향은 앙칼지고 걸찍한악담만 뇌까리는 터라 가슴이 써늘한사람은 오히려 동헌방에 앉아 있는변사또였다. 그러나 집장사령의 거동보아라.벼락틀에 친 호랑이처럼 숭어뜀에 자반뒤집기로 요동을 치면서 입가에서 침버캐가삐죽거리도록 열불나게 물볼기를 내리더라.그 때 진저리치던 변사또가 역중난목소리로 분부하더라."그년 저승구경 시켜주기 전에 처분할일이 있는 터, 태벌은 멈추고 큰 칼 씌워기왓골을 울리던 곤장질이 멈추었고형리들이 우루루 달려가서 형틀에 매인춘향을 풀어 일으켜 세웠다. 춘향 형용보자 하니 굴뚝에서 빼놓은족제비꼴이었다.새 종아리 같은 두 다리에 유혈이낭자하니 산 체로 염(殮)을 한 것이나다름없었다. 그런데 집장사령은 춘향의귀에 슬쩍 입을 대고 한다는 말이고잉하다."얘 춘향아, 정신차려라. 외상은 보기딱하게 되었으나 헐장(歇杖)을 하였으니내상(內傷)은 없을 터이다. 정신가다듬어라."그때였다."너 이리 좀 올라오너라."다름 아닌 집장사령이었다."나으리, 쇤네 말씀입니까.""그래 너 말이다."집장사령이 입귀를 실룩거리면서 한편어깨를 첫드리고 설설 기어와서 댓돌 아래엎드렸다."내 너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으니누마루까지만 올라오너라."집장사령이 옛 상전 만난 종의 자식같이정신없이 떨면서 누마루 위로기어올랐더라.변사또의 목소리가 그 순간 나직하였다."너 춘향을 대매에 어육지변 내려하였더냐?"묻는 말에 곡절을 몰라서 집장사령이어물어물하고 있는데 오금을 박고들었다.주걱턱이 표독스럽게 생기긴 하였다만영계처럼 야들야들 살결에 그토록 요량분수없는 매질은 어인 행패냐. 춘향이가 외양은빼어난 해어화(解語化)라지만 허우대는대살져서 섬섬약질이 아니더냐.그런데 성미 팔팔한 네놈이 뛰어들어삽시간에 쥐 뜯어먹던 송곳자루 모양새를만들어 놨으니 장차 이 눈물겨운 사연을어찌할 것이냐."길게 늘어놓는 언사를 새겨듣자 하니말하고 웃자는 흰소리가 아니었다. 목도를쳐들고 노려보는 눈밭에 살기가 동둥하매처음엔 겸연좀기만 하던 집장사령은 식혜먹은 고양이상이 되어 떨기 시작하였다."매에 쳐죽일 놈, 대저 미련은 먼저 나고슬기는 나중 난다 하였다만 춘향으로아니더냐. 설혹 내 분부가 지연하다 한들네놈이 눈치껏 삼가해서 태벌을 내릴 줄알았던 게 내 불찰이었다.안질에 고춧가루라더니 설 삶은 말대가리같은 네놈이 저지른 낭패를 어이할꼬. 내마음이 겨울철 원두막같이 허전하다."그때였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집장사령은 갖은 풍상이 스쳐간 하안턱수염을 누마루 위로 스라며 울먹일 제변사또는 난데없는 회초리 하나를 집어들며옹구바지를 걷으란 분부를 내렸다. 허연눈꼽이 비어지도록 울고 있던 집장사령이바짓가랑이를 걷어 부치며 일어서자댓바람에 종아리 위로 회초리가 떨어졌다."이놈, 도끼 가진 놈이 바늘 가진 놈을못 당한다 하였다. 따끔한 맛을 보아라."회초리 맛은 맵쌌다. 집장사령이 도토리먹은 강아지처럼 제자리에서 팽글팽글 돌며회초리를 감내하자 변사또는 이죽거렸다."이놈이 개구리 삼시랑이 들었나, 폴싹뛰기는? 아프다고 내숭 떨지 마라 이놈.""나으리 종아리가 터져나가는 듯 쓰리고아픕니다."변사또가 매질을 멈추고 물었다."그래 오장육부가 니글니글하도록아프냐?""그러하옵니다. 나으리.""네놈같이 엄장 크고 허우대 단단하게생긴 놈도 이 칠칠찮은 회초리 몇 대에오장육부가 니글니글하도록 아파메뚜기처럼 폴싹폴싹 뛰는 판국에 춘향같은 섬섬약질에 삼모장(三矛杖) 삼십 대를수시(水枾)처럼 야들야들한 볼깃살은 필경젓국이 되어 흩어졌을 게 분명할 터. 창귀같은 네놈이 끼어들어 다 끓인 죽사발에 코빠드린 격이다. 너같이 흉포한 놈을 내가두고만 볼 수는 없다. 당장 멱을 따서본때를 보이리라."그때였다. 바지괴춤을 양손에 사려잡고사시나무 떨듯 하던 집장사령이 누마루에어깨를 스리며 납죽 업드려 실토정을하였다."나으리 사실대로 이실직고하겠습니다.""사실대로라니.""내막을 알게 되시면 나으리께서 분기를삭힐 수 있을 것입니다. 실토정인즉슨나으리의 지엄하신, 분부를 받들어별반거조 차리고 곤장을 내렸으나 쇤네구천에 사무친 적도 없을 뿐더러 또한춘향이 심성도 갸륵한 터라 겉으로보기에는 숭어뜀으로 걸쩍한 곤장을내렸으나 내상이 나지 않게 시늉으로만살짝 곤장을 안긴 것입니다."이놈이 간풀어진 의뭉 떨고 있는 꼴어필경 나를 청맹과니로 알고 있구만.그렇다면 춘향이가 형틀에서 놓여날 제가랑이에 낭자하던 선혈은 어디서 꿔온것이냐?""그것은 쇤네가 치자 열매 한 줌을콩소매에 감췄다가 곤장 내리기 전에춘향이 넓적다리에다 슬꺽 집어넣은결과였습니다.""치자 열매를 춘향의 사타구니에집어넣었으니 그것은 선혈이 아니라 치자"그러하옵니다. 나으리."변사또는 잠시 쥐 죽은 듯이 입을 다물고집장사령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집사령의갸륵한 소견머리 때문에 매질한 것이무안하여 수작이 어울리지 않아 덤덤하게앉아 있는 줄로만 알았던 변사또의 입에서그러나 뜻밖의 걸찍한 악담이 터져나왔다."이 흉물스런 놈이 똥줄이 당기니까 말탄년의 거시기처럼 넉살 좋게 너부적너부적잘도 뇌까리고 있네 그려. 네놈은 이제 두가지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 한 가지는되우 치라 했던 내 지엄한 분부를 거역하고사사로운 정리에 따라 속임수로 관장을 능욕하고 조롱한 죄요.다른 한 가지 죄는 아직 나도 만져보지도못한 춘향의 넓적다리를 네놈 먼저 치자것이다. 이는 암고양이에게 생선 가게 맡긴꼴이 되었으니 미련하고 아둔한 건 바로나였구나."구루병(句樓病)앓는 당나귀처럼 왜소하게찌그러진 집장사령은 면상이 쪽쟁이(아편쟁이)같이 누렇게 떠서 핵변을늘어놓았다."나으리의 분부를 하찮게 여기고곤장질에 도섭을 부린 죄는 따돌릴 수 없게되었으나 치자 열매를 핑계하여 춘향의사타구니 속에 요량분수를 모르고 손을집어넣지는 않았으니 그 말씀 한가지 만은억탁이옵니다. 모쪼록 진노를 거두어주십시오.""염치가 초상술에 권주가 부를 놈.저절로 터진 입이라고 말은 너부적너부적네놈도 지체가 상것이긴 하지만 배꼽 밑에털난 놈은 분명한 터, 기왕에 집어넣었던사타구니에서 분수를 지켜 손을 빼었더란말이냐?""쇤네가 만약 그런 고약한 짓을저질렀다면 앙칼지고 다구진 춘향이가쇤네의 외람된 버릇을 두고만보았겠습니까.""네놈이 가당찮은 색념이 동하여추잡스런 짓을 했을까봐 한시름 되더니분수를 지켜 외람된 짓은 않았다니 그 말은속시원하게 실토정을 하였다. 그러나 이젠눈꼴시려 못보겠으니 공연한 턱방아 찔지말고 내 눈앞에서 냉큼 없어져라."집장사령 설설 기어 동헌 마당 가로질러삼문 밖 한길로 내달아 여차여차한 일을비루하지 않아 무사히 방면되었다고 입에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며 설치는 터라 그소문이 삽시간에 남원부중 여염집으로퍼져나갔더라.춘향 어미 월매가 향단을 데리고집안으로 날아든 새처럼 허둥지둥 토옥으로달려온 것은 그날 땅거미가 내릴무렵이었다. 그러나 설마했던 춘향이는토옥의 간살을 잡고 눈자위는 허공에 걸고있었다.월매는 녁장거리에 공중거리로 날뛰다가제풀에 혼절하고 말았더라. 그러나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춘향이가 간살사이로 내다보니 식해 먹은 고양이 상을 한향단이와 새벽 참에 논둑으로 빨래 나온여편네처럼 입성이 뒤숭숭한 월매가 넋은허옇게 뜨고만 있는 터라."어머님.""에고. 네가 아직 죽지 않았더냐.""어머님, 서러워 마십시오. 죄없는춘향이를 설마하니 옥사를 시키겠습니까.그렇게 낙맥하지 말고, 집으로돌아가십시오. 불효의 말씀이오나 돌아가지않으시면 자결이라도 할 것이니 그렇게알으소서. 어머님 울음소리 저의구곡간장을 녹여서 경작에 죽겠오.""용 못된 이무기 심술만 남더라고 그후레자식이 널 수청들이지 못한 심술로 널사지(死地)로 떨굴 작정이고 이 지경으로만들었구나."월매가 방성대곡(放聲大哭)으로넉장거리로 뒹구는 중에 향단이가 가져온"용미봉탕(龍尾鳳湯)이라 한들 목에넘어가겠느냐. 만일 내가 통체로 죽거든육진장포(六鎭長布)로 염습(殮襲)하여한양성 내로 올려다가 도령님 다니는 길에묻어 주면 도령님 내왕 때 음성이나마 듣게하고 사또가 만약 내 육신을 둘로 내어죽이든지 오장을 도려내든지 하거든 목만을거두어서 한양성 내에 묻도록 해다오."그러나 침버캐를 입에 문 월매는 그 말듣는 둥 마는 둥 울음사설로 등뒤에 늘어선옥사장이의 비위만 건드린다."여보소 장청(帳廳)의 집사(執事)님네.길청의 이방님네 네 딸이 무슨 죄요. 무슨원수가 맺혀 이 지경을 만들었소. 애고애고내 딸 볼기짝에 장처(帳處)난 것 보시오.빙설 같은 두 다리에 연지(嚥脂)같은 피딸도 원하더라, 그런데 가서 못생기고기생의 딸이 되어 이 곡경을 치루는구나.애고애고 내 신세야.""이머님 어서 집에 가오. 가지 않으면정녕 자결할래요."향단이 손에 이끌려 토옥을 나서던월매가 마침 동헌에서 나오던 형방과마주쳤다. 사태가 이러아러하게 되어여차여차해서 변사또를 현신하고 적선을빌어야겠으니 만나도록 주선해 달라는 청을넣었다.변사또가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라때아니게 불쑥 청을 넣었다지만 두말 없이동헌으로 들라는 허락을 내렸다.동헌방으로 들어간 월매는 서둘러 입성을수습하고 나부죽하니 절을 올린 뒤에"쇤네의 여식이 맹랑한 지경을앙하였으니 나으리 뵙고 좌우단간에 담판을짓자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쇤네의 딸춘향이는 기생의 소생임에는 틀림없으나기적에 올라 있던 창기(娼妓)는아니었습니다.기생이라면 아직도 천기(賤妓)의 허울을벗지 못하고 있는 쇤네이겠으니 나으리께서기어코 기생 수청을 들이셔야겠다면 쇤네를가리켜 지휘하시는 것이 가합한 일이아니겠습니까."천만뜻밖의 말이 월매의 입에서흘러나오는 터라 담이 큰 변사또도 적이놀랐으나 떨떠름한 심기만은 감추고 있을수 없었다."코에서 흙냄새 나는 늙은이가 제법"쇤네가 늙었다 하나 세류(細柳)같은허리만은 아직도 남부러울게 없으니,침석으로 들어가면. 요분질에는 미숙하지않아 늙은 암코양이가 달걀 굴리듯간드러지리다. 쇤네가 절등한 남색짜리가아니여서 시큰둥하실지는 모르겠으나 달을보시면 그만이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야때묻은 송곳자루 같으면 어떻소.""도깨비 방귀 잡는 소리 접어치게.청자접시에 보리개떡 담으란 얘기지 그게가당키나 한 얘기여?""사또의 허우대가 그처럼 깍짓동같이장대하시다면 침석에서도 항우(項羽),번쾌(繁會)못지 않은 예우각행(曳牛脚行)의용력을 지니셨겠지만 그러나 무쇠가 굳다하나 풀무에는 녹는다 하였습니다담아드릴 것이니 성찰하시어 쇤네의 소청을내치지 말아주십시오."이 늙은이가 아무래도 노망 아니면.환장한 소리지. 엇따 덤터기를 씌우려고염치가 밑바닥까지 빠진 얘기를 예사롭게뇌까리고 있나. 역증 내기 전에 오도방정떨지 말고 냉큼 비켜나게.""누워서 떡먹기보다 앉아서 똥누기가수월한 법입니다. 가군(家君)이 엄연하고성미 팔팔한 춘향에게 수청들이라지분거리지 말고 공방살이로 지내는 쇤네를지휘하여 주십시오.""부러진 칼자루에 옻칠하는 소리집어치지 못할까."변사또가 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섬돌아래 부복하고 서 있는 형방에게"촌닭이 관청닭 누깔 빼먹는다더니. 길게두었다간 누깔 아니 라 오장까지 빼먹을흉물스런 계집이다. 모질지 못한 내가 낭패당하기 전에 냉큼 끌어내지 못할까."통인과 형리들이 우루루 월매에게달려들어 뒤꼭지를 잡고 삼문밖으로끌어내어 패대기를 치자 한길에서궁싯거리고 있던 길손들은 쇠똥 덩어리에쇠파리 끓듯 먼지투성이가 된 월매에게모여들어 방앗고처럼 고개를 끄덕이고있었다.삼문 밖에서 기다리던 향단이가구경꾼들을 해집고 달려들어 부축하지않았다면, 업신여김 당한 설분 못하고발길질당한 앙갚음 못한 월매는 또 한차례의 혼절을 겪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이사무치고 육신은 아프지 않는 곳이 없어최씨와 월매가 더불어 아랫목을 다투며몸져누워 있는데 덜컥 한양에서 내려왔다는위인이 방자놈이었더라.춘향 모녀가 한데 싸잡혀 어육지변에형옥(刑獄)까지 치루고 있다는 사실은 알턱이 없는 방자놈은 남원 초입 삼거리숫막에서 요기를 한답시고 낮술까지 몇 잔들이켜 낯짝이 원숭이 똥끝처럼 발갛게농익은 채로 월매집 대문을 박차고들이닥치며 누구 었느냐 호기 있게 통자를넣었다.그러나 집 안은 역병이 할퀴고 지나간자국처럼 냉기차고 휑뎅그레할 뿐 누구없느냐는 걸찍한 채근에도 대꾸하는 사람이없었다.구경들 갔나? 오리궁둥이 빼죽거리는향단이는 어디 갔나."섬돌에 걸치고 앉아 손가락으로 이똥을긁어내며 똥 밟은 중놈처럼 혼자서두리번거리며 고시랑거리고 있는데, 어디서나타났는지 향단이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너부적너부적 뇌까렸다."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시름 되더니 잘만났구만.""아니 이게 향단이 아닌가.""청개구려 밑에 실뱀 따라다니듯 이도령꽁무니만 따라다니던 방자가 외톨이로웬일이여.""어허 뉘게다 목도를 쳐들고 하게를던지나?""흉허물 없는 사이에 던지면 어떤데?""엿을 물고 개잘량에 엎어졌나. 저나나나 미천한 주제꼴에 수염까지 길렀네.""왜 내 때 벗은 품이 어때서? 이목이깎은 서방 아닌가."방자놈이 눈자위를 굴리다 말고 문득생각하였다. 달갑지 않는 수작에비아냥거리는 투가 역력한 향단의 무엄한언사에는 뭔가 곡절이 있을 법 하였기때문이었다.오랜만에 남원 와서 한양 갔다 때벗고 온본때도 보이고 행색까지 내려 하였더니어딘가 아귀가 잘 맞아들지 않는 것이이상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이도령 궁색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어느새남원까지 당도한 것일까.만약 그렇다면 장차의 일이 순탄치는까닭도 그런 연유가 아닐까.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안방의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이마를 수건으로 동여맨월매의 누렇게 뜬 얼굴이 나타났다."이게 누구더라?"육백 리 길을 오직 이도령 간찰 하나를가지고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달려온방자에게 간드러진 환접은 아니라 할지라도빤히 알고 있을 방자의 면상을 바라보면서누구더라고 미심쩍은 말로 퉁기는 뚱단지같은 언사는 또 뭔가?"춘향어미 아니요. 나요 방자요. 어째고뿜에 울화증이 겹치셨소. 이마 질끈동이고 자리보전 텐일이요?""자넨 넓적다리에 종기가 났는가, 다리에행전(行纏)은 왜 둘렀나?"빽빽하오. 나로 말하면 한양의 이도령이춘향이 보고 싶고 장모의 안부가궁금하여서 일필휘지로 쓴 간찰(簡札)을품속에 넣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남원행보육배리에 오금이 가뿐하라고 둘러친제비행전 아니겠소."한양 이도령의 간찰을 가지고 육백 리길을 달려왔다고 호기 있게 떠벌이는데도월매는 별반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그러나 한편 떨떠름하면서도 궁금한 것은사실인 터라 내키지 않는 말로 물었더라."간찰이라면 진서(眞書)로 쓴 것이냐언문(諺文)으로 쓴 것이냐.""춘향모 읽기 수월하라고 반글로썼답디다.""이리 다오."건네겠소만 어인 푸대접이 이렇게도 맵짠게요.""푸대접이라니. 그건 무슨 대중없는생트집인가.""손자밥 떠먹고 찬장 쳐다보구 있네그려.내왕 천이백 리 길을 달려온 사람에게치하금은 내리지 못할망정 입맷상 내놓아요기조차 시키지 않고 간찰부터 내놓으란게요?""꼴에 몽니께나 부리며 지분거리고있네그려. 입맷상 내놓지 않으면 그 간찰네가 삶아먹울래, 꼴같잖은 간찰 한 장가져온 놈이 유서통(諭書筒) 짊어지고 온놈처럼 감히 칙사(勅使)대접을 보고 호들갑떨고 있네. 이 흉물스런 놈.생색 내려거든 그 간찰 네놈이 삶아먹고내어 대청 바닥을 치며 욕사발을 퍼붓는터라, 남의 사타구니 긁는 일에 이골 나고비윗장 좋은 방자로서도 달리 방책이없었다. 서둘러 풍속에 간직하였던 간찰 한장을 대청 위로 내던지듯 하고 섬돌 아래로물러섰다.그러나 봉함된 간찰을 뜯고 몇 줄 읽는시늉하던 월매는 별안간 간찰을 북북 찢어뜨락으로 내던지며 소가지를 부렸다"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있나. 우리불쌍한 춘향을 토옥에서 끌어내라 하고속전(贖錢)으로 바칠 어음 한 장 곱게접어넣고 애간장 타는 장모님에게도 정표로다시 어음 한 장 접어넣은 글발은 아니보개고 가당찮은 입체(立替)를 서달라니,이서방인가 개서방인가 그 놈 내앞에내어서 산채로 염(殮)을 시키리라! 너 이놈방자야.""나 여기 있소.""너 이놈, 섬밥으로 호궤(縞饋)을시켜줄까. 몽둥이 찜질로 박살을 내줄까.냉큼 한양으로 회정하여 창병(瘡病) 얻어다리미자루도 못 쓰게 된 그 후레자식을끌고오지 못하겠느냐.""우리 도령님 두고 후레자식은 웬말이며창병 얻었다고 어느 개아들놈이 그럽디까.""이놈이 가재는 게 편이라는 것은 알아서팔을 안으로 굽히나?이놈아, 창병 걸린 놈이 아니라면 의원찾아갈 돈은 왜 입체 서 달라는 말을하였나."그제서야 턱살을 고이고 앉았던 방자도것이었다.이도령이 남의 사정 잘 봐주는호협사(豪俠士)라는 것은 춘향모도 잘 알지않소. 한양의 색주가에 있는 홍색짜리논다니들이 이도령의 준수하고 걸출한외양에 환장하여 길모퉁이마다 지키고 서서추파가 간드러지는 터라 그 애틋한사정들을 괄시하고 두고 만 볼 수 없어바지를 대중없이 자주 벗다 보보니화류병이 들었는가보오.""이놈. 허황된 말로 개도령.두둔하여복장거리시키지 말고 썩꺼지거라.""내쫓으면 가겠지만 옥에 갇힌 춘향이는장차 어떤 고초를 당하겠소.""누가 두 푼짜리 금어치도 없는 그불망기(不忘記) 한 장에 눈이 멀었던 이개도령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 푼짜리금어치도 안되는 수절타령으로 저런 고초겪지 않고 지금쯤 동헌 내당에서호의호식에 갖은 영화를 누리며 내노라하고 살았을텐데. 모두 미련한 이 어미탓이여."그때였다. 안방으로부터 버럭 화증을돋구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그 무슨 개 같은 언사인가. 춘향이수절타령이 한 푼짜리 금어치라니.나잇살이나 먹었단 주제에 크걸 말이라고지절거리고 있나? 불망기를 건냈든 아니든여염접의 규수가 한 사내에게 곁을 줬으면그것으로 정절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일터.비루잡년들 흉내내어 이놈 저놈에게남원부중에서 내노라 하는 코머리기생이라서 행세하자는 겐가."놀란 것은 한 대 쥐어박힌 월매가 아니라섬돌에 우두커니 앉았던 방자였다. 방자가곡절을 몰라서 부시시 몸을 일으키고일어서는데 미닫이가 열리면서 기골이엉성하게 생긴 여염집 늙은이가 대청으로나섰다.말대꾸라면 얼음 위로 박을 밀듯 거침이없는 월매조차 구린 입도 때지 못하고주점주섬 마루로 나서는 그 낯선늙은이에게 공손한 말로 물었다."어딜 가려고 불각시에 나서는 것이오."춘향이를 옥에서 끌어내자면 속전을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집구석에 죽치고 앉아서 개도령을늘어놓는다 해서 그 완악한 사또란 놈이거들떠나 보겠나.""요량분수나 알고 설치시오. 사또란 놈이춘향을 내려가둔 것은 수청들이지 못한설분이었지 속전 따위를 넘보고 저지른짓이 아니지 않소.""동에 닿지 않는 소리 그만하게. 세상에돈으로 틀어막아도 아니 되는 것은 딱 한가지 재채 기뿐일세.""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수월찮을 속전을우리 주제에 어디 가서 주선하겠소.""그럼 집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하늘에서 돈푸대나 떨어지라 하고 축수나할까. 관변의 앞잡이를 찾아가서 통사정을하든지 아니면 저자거리에 나가서 매복하고있다가 지나는 도부꾼 뒤통수쳐서월매도 쥐어박힌 설치를 한답시고이죽거렸다."도부꾼 뒤통수치러 간다는 분이걸핏하면 휘두르는 방앗공이는 왜 가져가지않소.""몽둥이 찜질도 이젠 신물나고 진력나서아니래도 나 시방 대장간으로 가려는길일세.""때 아닌 대장간에는 왜 가오?""식칼 벼르러 가네."몰골이 후줄근한 늙은이들끼리 주고받는말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깜냥을 짐작할수 없었으나 어쨌든 최씨부인은 섬돌에쭈그리고 앉은 방자는 한 번 거들떠보는법도 없이 뒤축 떨어진 짚신을 꿰고해적해적 대문 밖오로 나서는 것이었다.베개하고 누웠다가 비몽사몽간에 한 잠을꾸었더라. 날개 돋힌 새가 되어주유천하(周遊天下)하다가 문득 집으로들어가니, 문설주 위에 난데없는허수아비를 달았고 뜨락에는앵도화(櫻挑化)가 떨어졌고 별당에 있을 때항상 들고 보던 거울 한복판이 깨어져있거늘 문득 놀라 깨어나니 잠시 노루잠을자던 사이에 꾸었던 꿈이더라.꿈이 너무나 의미심장하고 불길한 터라,무심한 옥졸을 넌지시 불러 이웃마을에살고 있는 앞 못 보는 판수를 불러달라고당부하였다. 옥졸에게 기별받은 판수가그날 밤 늦게 옥으로 달려왔다.판수는 뒤숭숭한 꿈자리 얘기를 꺼내기도전에 불문곡직 장창(杖瘡)난 다리나끌러보았더니, 음흉한 판수놈이외상(外傷)이 난 종아리는 만지지 아니하고때묻은 손바닥을 넓적다리 안쪽으로 쓱디밀었다."아뿔싸 몹시도 쳤구나. 김사령이 치더냐최사령이 치더냐. 그놈들 내게 굿날 받으러오면 절명한 날 앞당겨 가리어 줄 것이니이 설치는 내가 따끔하게 해주마."지절거리며 시그적시그적 고쟁이 속을헤집고 손바닥을 점점 디밀다가 아니들어와야 할 불두덩 언저리까지 기탄 없이디미는 터라. 춘향이가 화들짝 놀라 분통이터졌으나 비윗장 건드렸다 점괘를 이상하게낼까 걱정되어 좋은 말로 달래었다."저의 부친께서 불행히도 먼저하세(下世)하셨습니다만 판수님은 일찍이하셨습니다. 상없이 그리말고 어서 점괘나풀어주시오."판수놈이 그 눈치 알아채고 서둘러손바닥 수습하고 나서,"네 말 옳다. 성참판 살아 생전 나와는풋고추에 된장 궁합으로 막역한사이였느니라. 부친과의 친교를생각해서라도 단작스럽게 너와 복채를 두고다투겠느냐. 꿈이나 소상하게 일러다오."춘향이가 비몽사몽간에 꾸었던 꿈을소상하게 듣고 난 판수는,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宬實)이오.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문상(門上)에 현괴뢰(懸傀儡)하니만인(萬人)이 개앙시(皆仰視)라.이를 해제(解題)하건데, 꽃이 떨어지면어찌 소리가 크지 않을까. 문설주 위에허수아비를 달았으니 이는 이도령이 반드시급제하여 쉬 만나볼 점괘로다"어찌 그걸 바라겠소.""내가 옷고름을 맺고 맹세한 것이니조만간 그렇게 아니되나 두고 보게."영험하다는 평판을 듣는 판수라면모르겠으나 돌팔이로만 호기난 판수라차마믿을 수 가 없었다. 곤장 삼십 대에 큰칼차고 감옥에 내려갇힌 딱한 춘향의넓적다리부터 해집고 드는 고얀 놈의점괘가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맞을까.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이 겨릅이라도 잡는법.한 가닥 여망이 없지 아니하여 가슴속만뒤숭숭 한데 이튿날 아침에는 구메밥을방자가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지난 밤의점괘가 사람 농락시키자는 흰소리만은 아닌못하여 춘향이는 가슴이 덜컥하였다.방자가 옥중을 둘러보니, 앞문에는간살이 얼기설기 걸쳐 있고 뒷벽에는외얼기만 남아 동지섣달 찬바람이 살쏘듯이 들여불고 섬거적자리와 흙먼지는발등을 덮었다. 들이치는 찬바람에뼈마디가 져려옴직한데 큰칼 찬 춘향이의매골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만치수척하여 피골이 상접하였고 머리는봉두난발이었더라.방자가 눈물을 왈칵 쏟으며 간살 앞으로엎어졌다."춘향아 이게 웬일이냐, 어찌하다 수채에빠진 생쥐꼴이 되었나."세 번 봐도 방자였다.그리던 님이 아닐지언정 반갑기는 님본듯하였다."방자가 어인 일이냐. 꿈인가 생시인가.""꿈은 아니오만 아씨가 호들갑스럽게반길 일은 아니랍니다."춘향이 말 냉큼 가로채어 볼멘 소리한것은 구메밥을 간살 사이로 디밀던향단이었다."반길 일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무엄한언사냐, 방자로 말하면 남원에서부터도령님을 지성껏 배행하던 처지가 아니냐.도령님 뵈온 것과 다름아닌 터에 어디서자발없는 입정을 놀리느냐."쥐어박힌 향단이가 샐쭉해서 야멸차게쏘아 부쳤다.칙사 대접하랍디까.""불난 집에 키질이라니 그런 불길한 말이어디 있느냐."향단이가 이도령이 화류병을 얻어 의원찾아 갈 돈이 궁해 월매 더러 입체서달라는 간찰을 가져왔더란 말은 차마못하고,"아씨 속전을 주선할 일조차 막연한판국에 어머님 사천을 꿔달라는 간찰을갖고 온 방자를 흔연 대접하여 보낼까요.""어머님 사천을 꿔달라니?""아마도 유흥비가 궁한 모양이지요.""한양 같은 대처에서 준수한 사내가우세당하지 않고 체통을 지켜 행세를하려면 어째 유홍비가 들지 않겠느냐.게다가 도령님은 나와의 인연으로 하여못하는 어려운 형편일 게 분명하다.오죽 절박하였으면 염치를 무릅쓰고어머님께 입체를 서달라는 간찰을보냈을까."향단이가 기죽은 척하고 듣고 있자니부아통이 터지는 터라 하지 않으려고다짐두었던 말을 기어코 발설하고 말았다."유홍비가 아니라 화류......."그러나 향단의 한마디가 채 땅에떨어지기도 전에 춘향은 분연히 결을 내어향단의 말을 가로채었다,"화류, 화류 하지 마라. 누워서침뱉기다."그리고 가위가 질려 봇도랑에 박힌말뚝처럼 꿈쩍 않고 서 있는 방자에게묻는다."필낭 여기 있소."방자가 괴춤에 차고 있던 필낭을 열고지필묵을 꺼내주었다. 방자가 건네주는지필을 잡고 간찰 사연 쓰려 하니 눈물부터먼저 떨어져 그대로 수묵이 되었다.춘향이가 눈물을 가다듬고 적되,
오늘 도령님 간찰을 가지고 남원에당도한 방자를 옥중에서 만나게 되었으니애당초 도령님께서는 소첩이 당하는 고초를모르시도록 감추려 하였던 좁은 소견이들통나고 말았습니다.그동안 소첩이 겪었던 고초의 대강을말씀드리면, 신관 사또가 도임하여 문득소첩을 기안 (妓案)에 적바림하고 소첩으로하여금 지위하여 난데없는 수청 들라 하니아닌 여염의 아낙네로 일부종사로 정절을지켜야 할 몸이라고 말하였으나 흉악한사또가 중곤(重棍)을 내리고 덜컥하옥시켰습니다.나라의 곡식을 도둑질해 먹은 사실이없거늘 엄증한 태벌이 웬일이며, 살인한적이 없거늘 족쇄까지 채우는 흉악한 일은어디있고 역률(逆律)한 적이 없는데 사지를결박하는 것은 어인 까닭입니까. 그러나가을 들판에 홀로 된 국화가 아침 찬서리와저녁 삭풍에 부대끼지만 그 고결한 절개를자랑하듯 소첩 역시 이만한 곡경에 훼절을당하여 도령님께 떳떳하지 못한 계집되어구차한 목숨에 기대지는 않겠습니다.그러나 옥중을 바라보니 철옹같이 두른담에 사람소리 끊어지고 외얼기만 남은어렵습니다. 섬거적에 득실거리는 물것에시달림을 당하고 깊은 밤에 들려오는밤부엉이 소리는 애간장을 도려냅니다.옥문으로 바라보이는 뜬 구름은 높기도하고 귓결을 스치는 바람은 빠르기도하건만 저는 어찌 사람되어 도령님 곁으로가지 못한다는 것입니까.그러나 방자 인편에 듣자 하니도련님께서는 한양 가신 이후로 거의 문밖출입조차 삼가시어 부도 공양에 진력하시고또한 글공부에만 극력 몰두하시어 밤부엉이소리조차 들으실 겨를조차 없다 하시니심란한 중에도 그런 천행 없으시고밤부엉이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소첩이오히려 부끄러울 뿐입니다.그러나 배행하는 방자에게 내리실채통보전이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방자로부터 듣고 소첩이 가군(家君)을공양함에 이렇듯 소홀했음에 적지 않게부끄러웠습니다.그리하여 이젠 낭군 없는 소첩에겐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다리(머리채) 끊어방차 편에 보내드리니 방자가 이것을저잣거리에 내다 팔아 몇 푼의행하돈이나마 마련하라고 신신당부하였으니 그렇게 아시옵고 밤을 도와 글을읽으시는 도령님에게 잡념이 털끝만치도있지 않게 하소서. 뵙게 될 날학수고대하며 이만 총총 옥중에서줄입니다.
붓을 놓고 춘향이가 뒤에 서 있던덜컥 끊어내어 간찰과 함께 간살 사이로내밀어 주었다. 춘향의 과단성에 기가 질린방차가 선뜻 받아채지 못하고 뒷걸음치다가춘향의 채근에 벌벌 떨리는 손으로 간찰과다리를 받아쥐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방자보다 향단이었다.잠시 딴전을 팔다 보니 삼단 같던머리체가 싹둑 잘려나간 터라 향단은꿈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스럽지 못한야단이 있을 수 없었으나 비윗장 좋게다리를 받아쥐는 방자를 보고서야 꿈 아닌생시라는 것을 깨달았다.두 사람의 정근(情根)이 그토륙 깊다한들 색주가에 갖다 줄 유홍비로 쓰라 하고머리채를 잘라준다는 것은 아무래도심상찮은 징조가 아닌가. 감옥살이 고초에올곧은 정신 못 가진 것은 아닐까.노망 가질 나이도 아니고 환장할 일도없는 터수에 이런 요방분수 없는 불상사는왜 저지는 것일까. 파랗게 질린 기색으로입귀를 삐죽거리고 있던 향단의 입에서곡지통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시끄럽다면박하는 옥졸은 본체만체 간살 사이로소을 디밀어 족쇄에 걸려 있는 춘향의 두다리를 뒤틀어 잡았다."아씨. 이게 웬일이오. 당나귀 귀 떼고나면 남는 게 뭐 있소.아씨 설령 너울가지 있고 소견 넓다할지언정 계집사람에겐 신주단지 진배없는머리채를 끊어주다니오. 어머님 역증은어찌 감당할 것이며 다리 팔아 한양밑닦기로만 쓰신다면 어떻게 하실래요."떨지는 못하고 긴 사설 늘어놓으며 앵두만똑똑 따고 있는데, 향단으로선 미처 알 수없는 한마디가 춘향의 입에서 나직하게흘러나왔다."내 딴엔 도령님의 의표를 찌른다 하고다리를 끊어준 것이다. 어머님껜 고자질말아라."춘향이가 옥졸들이 보란 듯이 볼기짝을드러내놓기 시작한 것은 방자 인편에다리를 끊어 보낸 그날부터였다.형방 아전들이나 옥사장이 죄수점고(罪囚點考)를 나올 때는 물론이요,옥졸들이 옥문 밖에서 파수(把守)를 설적에도 영락없이 단속곳을 배꼽노리까지휠씬 걷어올려 박속같이 희디 흰넓적다리를 드러내놓고 훔쳐보는 일에하는 것이었다.옥졸들이 처음에는 춘향의 과단성 있는거조에 놀랐다. 여염집에 들어앉은규수이든 기방으로 나와앉은 계집이든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감옥에 갇힌죄수가 걸핏하면, 볼기짝을 드러내놓고파수서는 욕졸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것은버릇이 옳다고 볼 수는 없었다.그러나 울화가 치밀다보면 넓적다리를노둔(露臀)하여 울화증을 다스릴 수도 있는법이고 또한 진력나는 파수에 힐끗힐끗훔쳐 보는 눈요기도 짭짤한 터라 외자하게소문은 아니 내고 저회 동패들끼리만숙덕거리고 옆구리를 툭툭 치며킥킥거렸다.그러나 발없는 소문이 빠르기는 살 같은형방아전들에게까지 외자하게 퍼지고말았더라. 아전들이 귀띔을 받았으니형방이 알게 되었고 긴가 민가 소문의진위를 손수 목도하고 싶었던 형방이 몰래간옥으로 내려가본즉슨 허튼 소리가 아니란것이 판명되었다.한 번 가보고 두 번 가보고 또한 세 번을가보았으나 허연 볼기짝을 기탄 없이드러낸 춘향이가 큰칼에 상반신 의지하고죽은 듯이 앉았더라 형방이 변사또를뵈옵고 간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서롭지못한 변괴를 낱낱이 고변히여 아뢰었다.귀를 기울여 듣고 있던 변사또는 울컥치미는 울화와 쓰린 속내는 감추고태연스러우나 오지투가리 깨지는 목소리로이죽거렸다구들방에서 넓적다리 내놓는 것을 딱 잘라거절했으면서 섬거적에 물것들이득실거리는 토옥에선 미천힌 것들에게선심을 쓰는 게군. 그러나 그년의 알량한깜냥을 나는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혜고있느니라.""춘향에게 딴 꿍심이 있다는말씀입니까?""그렇치 않구. 그년이 지체가 하찮은옥졸이나 판수가 바라보는 면전에서볼기짝올 까발리고 있는 것은 그 소문이 내귀에까지 들어야서 나로 하여금 울화통이터져 물볼기 맞은 설분을 하자는 알량한심뽀가 아니더냐.""명특하옵신 사또의 말씀 듣고 보니 정녕못된 심뽀가 아닙니까."갈보가 아니라고 핏대를 곤두세운 터이지만토옥에 갇혀서까지 뭇사내의 시선을어지럽혔으니 그로써 이젠 요조숙녀되기는글렀다.""여부가 있겠습니까.""그년의 눈꼬리가 갸름하되 아래로처지지 않았고 면상이 거위나 거북이처럼오똑하고 손바닥의 핏기가 붉을 뿜더러어깨가 둥글고 옆몸통이 퉁통한데다가눈썸이 꺾였으되 눈동자가 까맣고 눈거죽이 덮이지 않았다는 것은 자식 내기를잘한다는 징조가 아니더냐.거기에다 젖꼭지만 까맣다면 그건 낳는다하면 아들일세. 내가 젖꼭지도 볼 겸사해서정녕 볼기짝을 드러내놓고 있는지 몸소목도해야겠으니 오늘 밤에 형방이 와서땅거미가 내린 그날 밤 또 다시 볼기짝을드러낸 채 쥐죽은 듯이 누워 있다는옥사장의 통기를 받은 형방이 선걸음에달려가서 변사또를 토옥으로 안동하였다.그러나 사또가 가보았을 때는 볼기짝은커녕발목조차 치마 말기를 덮고 앉았던 터다.눈요기나마 하려던 변사또는 또다시창퍼당하고 머쓱해서 돌아설 수밖에없었다."볼기짝은커녕 발등조차 보이지 않는것이 아니냐."형방이 쥐구멍이나 찾아들려는 듯조아리며 둘러대었다.아마도 밤기운이 매서운 터라 한속을달랜다 하고 치마 말기를 발등까지 내린모양입니다이튿날 옥졸들은 수짜리 샅러 간 낭군기다리듯 안달하면서 춘향이가 치마걷기만을 학수고대하다가 또다시야들야들한 볼깃살을 드러내는 것과 때를같이하여 구르듯 작사청으로 달려가서형방에게 통기하니 형방이 또한 엎어지고자빠지며 동헌으로 달려갔다. 변사또가형방의 발뒤축을 밟을 듯이 뒤따라토옥으로 달려갔으나 볼기짝은커녕바람벽을 마주하고 돌아앉은 춘향의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명색 남원부사의 지체로 두 번씩이나춘향의 희롱에 놀아났고 주변머리 없고미련하기로 소문난 형방에게 농락당했으니체통에 똥칠하고 비루한 사내로 남의웃음거리 되었으니 변사또의 국량이없었다.토옥을 나서는 길로 서슬 시퍼렇게이방을 불렀다.그러나 퉁인이란 놈이 납죽 업드리려다말코 묵도를 쳐들고 아뢰는 말이괴이쩍었다."이방께서 작사청에 얼굴을 디밀지 않은지는 며칠 됩니다."그 말에 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오른변사또가 앞뒤 생각 없이 미닫이가부서져라 밀어부치며 소리질렀다."이방이 안 보인다? 그 육시랄 놈이 어디갔다더냐.""나으리께서 관무첩을 건네주신경주인(京主人)과 함께 서울 가는대동선(大同船)을 탄 것은 오래전일입니다."일이라면 응당 호방(戶房)에서 주변할일일터 어째서 이방아전이란 놈이 산신재물에 청개구리 뛰어들듯 아는 체하고주책없이 뛰어들었더란 것이냐.""쇤네가 알기로는 나으리께서 엄히 영을내리시어 이방에서 주선하게 된 것입니다."통인이 내막울 분명하게 따져서 아뢰는말에 울화를 터뜨리던 중에 식언을 하게 된것을 깨닫게 된 변사또가 이번에는 호방을불러들이라는 분부였겠다. 호방이달려갔더니 천만뜻밖에도 형방을 잡아들여형틀에 잡아업치고 곤장 일백 대에처하라는 분부였다.엉뚱한 대꾸를 하였다간 당장 들고 있던장죽으로 목덜미를 후려칠 기세가역력하였으나 사또의 분부에는 위낙 허물이"죄인을 잡아들여 치죄하고사실(査實)하는 일이라면 응당 형방에서주선할 일일터 시생에게 분부내리시면 자던입에 콩가루 털어넣기가 아니겠습니까.""아둔한 주제에 제법 변설께나 늘어놓고있네그랴. 이놈아, 형방을 잡아들여징치하자는 일에 형방더러 분부를 내리란말이더냐? 식칼이 제 자루 찍는 걸 본 일이있느냐."말구멍이 막힌 호방이 내려가 서 형방을끌어내라는 분부를 내렸고 춘향의 볼깃살눈요기 못한 설분으로 미욱한 형방이 태벌백대의 매타작에 애꿎은 볼깃살이 섭산적이되어 흩어지도록 얻어맞고 곱다시 토옥에내려갇히는 처연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의든 아니든 형방이 두 번씩이나매타작이라 하였더라도 명분이야 없지않았다.그러나 호방도 직분에 없던 일에뛰어들어 형방에게 욕을 안긴 결과를낳았으니 작사청 아전배들에게무릎맞춤이라도 당하고 따돌림이라도당할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형방을구명한답시고. 며칠 뒤 가만히 변사또를찾아가 아뢰었다."나으리 지금 남원부중에 이상한 소문이떠돌고 있습니다.""무슨 이상한 소문이 떠들고 있길래호방의 안색까지 이상한 것이냐.""여염의 백성들이 과중한 혹세(酷稅)에시달림을 당해 저자의 장꾼들의 수효가요사이 둘어 부쩍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정도로 고을의 물산들이 삽시간에메말랐습니다.""저자에 물산이 메말랐다는 것은 겨듭된한재(旱災)로 흉년이 들었으니 당연한이치요, 흥정이 되지 않는 것은 물산을팔려는 남원 인근의 장꾼들이 이문을과도하게 탐하여 억매 흥정 하려드는 데서비롯된 당연한 결과였으니 뻔한 이치를두고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는 망발은 어인까닭인고.""대저 벼슬아치란 것이 뇌물과 인정전이많고 적음에 따라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것에거늘 청맹과니도 아닌 호방도 익히알고 있는 관변 퐁속이 아닌가. 그걸가지고 이상하다면 또한 나와 농을 하자는것인가."않아 어사 출두가 있으리란 소문이 백성들사이에 왜자하게 퍼져 있다는 말씀입니다."화들짝 놀란 변사또가 파랗게 질려자리를 고쳐 앉을 줄 알았으나천만뜻밖에도 미동도 않고 코방귀만뀌었다."어사 출두?""예 그렇습니다.""그거, 당하게 되면 낭패 아닌가?"코방귀를 뀌었다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뜨끔했던지 겸연쩍은 얼굴로 호방을바라보았다."소문의 출처는 차치하고서라도 방귀가잦으면 똥 싸는 법. 소문이 왜자하게퍼졌다면 멀지 않아 어사 출두가 있어본때를 보이지 않겠나."애 은 호방을 꾸짖고들 것 같았는데시무룩해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그래 호방은 방책이 있나?""젖었거나 말랐거나 신발이란 발에 붙어있는 법. 시생으로선 나으리의 분부만을따를 뿐입지요.""자칫 경솔하게 굴었다간 패가망신아닌가.""대책없이 앉아 있다간 풍진을 겪을수밖에 없겠지요.""그러나 어사 아니라 어사의 할애비라하더라도 뇌물로 막지 못하는 것은억수장마에 불어나는 계곡물뿐이다. 호방은당장 나가서 결세(結稅)하되 사결(四結)은한 집에 열 말, 그리고 육결(六結)에는 석섬씩이다.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에는채워놓으라."어사 출두의 침책(侵責)을 따돌릴 묘책이있는가 해서 귀기울여 듣고 있던 호방의안색이 그 순간 새파랗게 질렸다. 가만히되세겨 보아도 똥눈 자리에 주저앉은꼴이었다. 그러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없었다."아니 혹세로 말미암은 불상사일진대엎어진 놈 뒷덜미 짓누르는 격으로 과증한결세로 방책을 꾸미시면 하늘을 찌르는원성을 어찌 감당하시렵니까.""어사께 뇌물을 건네려면 창고에 쌓인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창고에 있던것은 이방과 경주인이 대동선에 실어한양으로 가져갔을 터, 빈 창고를 두고어사를 맞이할 수는 없다."변사또를 우두망찰하는데,"네 입으로 젖었거나 말랐거나 신발이란발에 붙어다니는 것이라고 다짐두며장담했겠다? 다짐뒀으면 당장 시행하라.""어사 출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있다 하였지 당장 출두가 있지는 않을것입니다.""꽃게나 방게나 옆으로 기기는마찬가지라더니 이놈, 또 형방처럼 나를두고 농간하자는 것이냐? 네놈의 입으로대책 없이 있다간 풍진을 겪을 수밖에없다고 맞장구친 것도 금방 잊었더란말이냐? 이놈아 유비무환이라 하였다.어사가 오늘 당장 들이닥치면 앞뒤 분간없는 네놈이 나서서 뒤치다꺼라 다 할래?""시생이 어찌 그런 주변머리를수 있는 탁견을 가졌다 하더라도 지체가엄연한 터에 어사가 지방고을 작사청에서구실사는 아전인 시생을 상종이나 하리까.""그런데 엇따 대고 불손한 말대꾸더냐.그러나 네놈이 미숙하고 주변없어 이를시행하기가 수월치 않다면 다른 방도가없는 것은 아니다.""다른 방도가 있다면 시생이 발 벗고나서서 주선해 올립지요.""호방이 나서서 춘향이를 노골노골하게삶아서 내게 데리고 올수 있겠는가.""춘향이는 시방 남간옥(南間獄)에 갇혀있는 몸이 아닙니까.""춘향이 토옥에 갇힌 것이야 너도 알고나도 안다.""호방이 잠시 가다듬고 생각해 보자니수청들이지 못한 설분일시 분명하였다.형방을 메타작으로 젓국을 만든 뒤동간옥(東間獄)에 내려 가둔 것도 모두춘향의 살꽃맛을 못 본 심술이요, 미주알이터져나가는 애옥살이에 아침죽끼니조차끊일 곡식도 없는 백성들에게 또다시 어사출두를 빌미잡아 결세를 하자는 것도춘향을 수청들이지 못한 설분이었다.호방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분연히 일어나 시행해 올리갰다고 장담한뒤 선김에 토옥으로 달려갔다. 옥문 간살앞에 호방이 자지러질 듯 엎어지면서 반은우는 목소리로 춘향에게 푸념을늘어놓았다."여봐라 춘향아. 남원부중 백성들 목숨살리고 죽이고는 모두 네 한번 마음먹음에앙갚음으로 형방을 매찜질하여 어육으로만들어 동간옥에 내려 가두고 그로써도심에 차지 않아 남윈부중 백성들께혹세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으니, 너 한번마음 바꿔먹으면 남원부중 백성들은 염병난 동네에 도깨비 팔자로 거칠 것이 없게되고 형방 역시 방면될 것 아니냐."춘향이가 듣고 보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없게 된 터라 겨우 고개를 들고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호방께서 어인 일이십니까.""너는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너로말미암아 형방이 태벌 백 대를 얻어맞고동간에 갇히었다. 그러한즉슨 호방인 내가간옥까지 찾아와서 너의 선처를 바라는것이다. 편의를 봐다오."보러왔소.""코에서 흙냄새가 나는 내가 네넓적다리를 훔쳐본들 회가 동하 겠느냐. 네넓적다리에 환장한 사람은 다름아닌 사또일터. 네가 남원부중 백성들의 목숨을건지려거든 나와 같이 동헌방으로 가자.""가서 뭘 하게요?""사또의 소원이 너를 동헌으로 데려만와달라는구나. 동헌방에 너와 사또가 둘이있을 제, 그 방에서 무슨 북새통이벌어지든지 내 알 바 아니지 않느냐.""쇤네가 꼭 가야 하겠소?""꼭 가줘야 하겠기에 늙은 내가 몸소간옥까지 찾아오지 않았더냐.""남원부중 백성들이 나로 인하여 모진고초당하고 있소?"네 앞에서 거짓 둘러대겠느냐."잠자코 있던 춘향이가 고개만끄덕이었다. 호방이 옥졸 시켜 서둘러 칼을벗기고 족쇄를 벗기었다. 춘향이가호방에게 아뢰었다."계집사람의 처지로 이토록 남루하고또한 매골이 꾀죄죄하여 동헌으로 나가기가내키지 않습니나."옥졸들이 동이로 물을 떠와서 머리 빨고세수시키고 호방은 옥사장 시켜 솔기가빳빳한진솔 일습을 주선해 와서 업히고담장화복(淡粧華服)하였으니 그동안 시각은흘러 땅거미가 내리고 둥근 달이 휘영청밝았더라.호방이 몸치장 곱게 시킨 춘향이를이끌고 성큼성큼 동헌으로 들어가 누마루"사또 나으리 춘향 데려왔습니다."잠시 노루잠에 떨어져 졸고 있었던가부시럭거리는 소리로 늑장을 부리더니변사또의 얼굴이 미닫이 밖으로 나타났다."어인 소동인고?"춘향이 데려왔다는 말을 들었음직한데묻는 말은 손자밥 떠먹고 천장쳐다보기였다. 그러나 호방은 생색낸답시고다시 한번 우렁찬 목소리로 아뢰었다."나으리, 춘향 대령하였습니다.""데려왔으면 냉큼 들어올 일이지 어인수선인고."호방이 춘향을 이끌고 등촉 불빗이 눈에시린 동헌방으로 들어 갔으나 춘향은수인사도 없었을 뿐더러 변사또를 쏘아보는눈길이 곱상스럽지가 않았다. 변사또가"너는 심기를 고쳐먹었더냐?""쳐먹을 것이 없사온대 무엇을고쳐먹으란 것입니까.""호방이 네게 한 말이 없었더냐.""동헌방까지 동행하자고 우는 소리로권유하는 터라 뒤따라온 것뿐입니다.""그럼 심지를 고쳐잡지 않았더란것이냐.""벼룩이가 둔갑하여 호랑이가 되는세상이 온다 하여도 쇤네가 나으리 앞에서가랑이 벌리는 일은 없을 것이오."빙판에 자빠진 황소 누깔이 된 호방이고깃덩이만 남아서 춘향을 등뒤에서바라보는데, 변사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말은 어쩐셈인지 나지막하였다."네가 쓰고 있던 칼과 족쇄는 어느 놈이"파옥이 아니라 옥사장이 풀어준것입니다."변사또의 눈길이 가위질려 있는호방에게로 건너갔다."내가 춘향을 방면시키라는 신칙(申飭)을내린 적이 없고 또한 신칙을 내렸다하더라도 이것은 형방의 직분으로서 주변할일일터. 호방인 네가 무슨 배짱으로 형방의직분을 넘보고 죄수 방면을 시켰더냐."언사를 보자 하건대 이치에 틀림이 없고또한 장차 뒤집어쓸 죄책이 눈앞에 선한터라 느닷없이 벌떡 몸을 일으킨 호방이변사또에게 너부죽하니 큰절 올리며아뢰었더라."사또 나으리 성찰하십시오.""똥싼 주제에 매화타령이라더니 이놈이지절거리나. 네 놈이 저지른 죄를 알렸다?""사도 사또의 심중을 해아림에 시생의안목이 졸렬하여 이런 실책을 저지르게되었습니다.""이놈아. 내가 이르기를 이 계집올데려올 수 있겠느냐는 의향만 넌지시물었을 뿐인데 칼 벗기고 족쇄 벗기고유두분면(油頭扮面)으로 단장 곱게 하여 달밝은 밤에 데려온 것은 날 복장거리시키려고 데려온 게 분명한 것 아니냐.이것은 작사청의 간특한 아전배들이저들끼리 통모하여 나로 하여금 실성케만들어 관장으로 서의 직무를 중도파기시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증거가뚜렷한 터, 네놈을 그냥 둘 수 없다.""나으리, 시생을 측은하게 여기시어변사또는 호방의 쥐어짜는 소리는 듣는둥 마는 둥 하며 문을 열고 호령하였다."게 누구 없느냐?""예, 대령하였습니다.""이 춘향이년을 끌어내어 두 번 다시파옥하지 못하도록 잡도리해서 하옥시키고,이 호방이란. 놈도 여축 없이 뒷결박해서동간에 내려 가두어라."<네> 소리 길게 늘어뜨리던 통인사형들이 또 다시 우루루 달려와서 춘향과호방을 밖으로 끌어내었다. 춘향 갇히고,형방 갇히고, 호방까지 갇히었고 주변머리있다는 이방은 한양 가고 작사청에 남아이제나 저제나 하고 떨고 기다리는 것은예방과 공방뿐이었다.그러나 변사또 남원부사로 도임한 이래로타먹기 겸연쩍고 사람들은 빈축이라,작사청에 등청을 해선 해질녘까지 밖으로는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저녁 굶은 시어미판으로 앉았더라.장돌림에개 관무첩을 건네주고경주인으로 발탁한 다음 그를 떠라 한양갔던 이방이 남윈으로 회정한 것은 발행한지 두달포가 되어서였다. 당장 작사청으로달려가지 않고 예방의 사처를 찾아갔다.예방은 지난날 소시적에 한 서당에서 글을읽었던 동접배인 그를 보자, 울음부터터뜨렸다.영문을 몰랐으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이방이 새파랗게 질려 곡지통을 쏟아붓는예방을 손사래 쳐서 만류하였다."족하(足下)는 왜 이러시는가. 체통올터뜨리다니. 권속(眷屬)들이 보면 웃겠네.고정하시고 체통을 가다듬으시게.""아직 노독도 덜 풀린 터수에 내가소매를 잡고 누추한 꼴을 보여죄만스럽네.""필유곡절(必宥曲折)일태지. 오십연갑에이른 사람이 까닭없이 질질 짜겠나. 그동안차를청에서 겪은 곡경이 수월찮았던 게재.""곡경뿐이겠나. 여북했으면 구실살이집어치고 산간벽지로 들어가서 화전이나일구며 살겠다는 각오를 수십 번이나했겠나.그러나 진작 작정을 고쳐가지지 못하고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동접배인 이방의얼굴이나 보고 떠나자고 차일피일하고있었던 것이네."멈추게 하고 그 동안 남원부중에서일어났던 불상사의 자초지종올 세세하게들었다."구실살이 이십오 년에 이토록 비루하고지저분한 시달림을 받아보긴 처음일세.길거리에 나가면 혹세에 부대끼는 부민들이삼삼오오 짝패를 이루고 축담 뒤에숨었다가 돌을 던지고 수채바가지를덮어씌우는가 하면 집에 오면 성참판의내자(內子)였던 최씨 부인이란 엄장 큰계집이 하루도 빠찜없이 삽짝을 지키고섰다가 내 딸 춘향이 내놓으라고 포달을떨며 넉장거리로 딩굴고 있으니 심란하기그지없었네.작사청으로 나간들 언제 끌어내어서 덜컥하옥을 시킬지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내게있는가. 재수 없는, 강아지는 낮잠을 자도호랑이가 꿈에 뵌다더니 무슨 놈의 팔자가늙바탕에 와서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가."이방이 맞장구를 쳤다."뒤에서 쫓아오는 호랑이는 속여도앞에서 오는 팔자는 못 속인다 하지않았던가. 헌데 사또께선 춘향을 방면시킬의향은 조금도 없어뵈던가?""방면 같은 얘긴 입에조차 담지 말게.형방이 갇히고 호방이 갇힌 것도 모두춘향이로 말미암은 것인데, 간옥에서 목숨떨구어서 송장되기 전까지는 방면되지 못할것이야.""춘향이도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않던가?""굽히는 게 뭔가. 날이 갈수록 입에둔갑장신을 하여 호랑이가 되는 세상이온다 해도 춘향이 가랑이는 벌리지않겠다고 땅땅 별러서 하루도 거르는 법이없이 사또의 복장만 뒤집고 있다네. 그런골을 뻔히 바라보고 있는 사또가 춘향을내놓겠나.""월매가 나서서 사또를 구워삶지는않던가.""구워삶기는커녕 되려 이간질이나 하고다니는 푼수를 보자하니 기가 막히더군.사또에게 말미만 났다하면 동헌으로달려가서, 춘향을 수청들이게꼬드겨보겠다고 알랑방귀를 뀌고.춘향을 찾아가선 인종지말이이도령이라고 갖은 욕설과 공갈에협박이지만, 사또는 들은 척도 않고 춘향은이튿날 해질 무렵 이방은 한양 대녀온회정 인사 여쭙는다 하고 동헌방으로찾아갔다. 좌우를 물리친 연후 호젓한가운데 이방이 현신하고 아뢰었다."사또 시생 한양 다녀왔습니다.""그런데 두 달포 간이면 두 번 내왕도수월했을 노정인데 이렇게 지체된 까닭은뭔가?""그것은 길미를 노리는 안목이 출중한경주인을 뒤따라 다니면서 물리를 익히느라지체된 것입니다.""임자가 장사 물리를 익혔다는 것인가.""그렇습니다. 지방 고을마다 시겟금이들쑥날쑥이라, 어는 고을에서는 나락 한섬이 소금 열 말 금어치가 되는가 하면어느 고을에선 나락 한 섬이 소금 두 섬그래서 맨 처음 시생이 가져간 것은나락이었습니다만 소금값이 눅은 고을에선나락을 팔아 소금으로 바꾸어서 소금값이천세가 나는 고을로 가서 팔고 다시나락으로 바꾸었으니 한양 마포나루에당도하고 보니 남원에서 가져갔던 나락이백 섬이 어느덧 삼백 섬이 되더이다."그때였다. 변사또가 엉덩방아를 찧으며무릎을 치는 것이었다."내 그럴 줄 알았다. 이방이 길미를놀리는 솜씨가 탁견이란 것을 내 진작부터알아채고 그 주변머리 없는 호방을 제치고이방을 한양으로 보낸 것이 아니더냐.""그래서 한양 조창(曺倉)에 넣은세곡(稅穀) 이백 섬을 떼고 나니 이문으로남은 것이 또한 일백 섬이라 경주인이객주에 넘기자 십오만 냥의 눈먼 돈이고스란히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십오만 냥이라면 서울 북촌 내노라 하는대가집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는사고도 남을 돈이 아닌가.""그렇습니다. 육십 간 집 한 채는 사고도남을 전량이 아니겠습니까.""그럼, 그 십오만 냥을 나귀등에 싣고왔나? 아니면 어음으로 갖고 왔나.""어음이었습니다.""내가 임자의 노고를 외면할 수 있나.이십 냥을 뚝 때어서 상금으로 내리겠네.""그런데 어음은 시생이 지니고 있는 것이아닙니다.""임자가 지니고 있든 경주인이 지니고있든 내 수중에 둘어오면 되었지 무슨"경주인의 수중에 있긴 합니다만 그음흉한 놈이 사또와 홍정을 벌이겠다 하고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한양에서남원회정 때까지 시생이 그 어음을 넘겨받으려고 수십 번이나 경주인놈을 공갈하고다독거리고 위협하고 또한 좋은 말로꼬드겨도 보았습니다만 그놈이 고집을부리며 오히려 비수를 들이대고 시생의뱃구레에다 맞창이라도 낼 것처럼 위협하는터라, 가까스로 목숨만 붙여가지고 남원당도한 것입니다.""이제 뭐라 하였나?""겨우 모가지만 붙여가지고 남원당도하였다고 여쭈었습니다.""버릇 배우라니까 과부집 문꼬리 빼들고엿장사 부른다더니, 이 육시를 할 놈이단불에 기름 끼얹은 셈이었다. 아니래도울화가 치밀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판국에세곡(稅穀) 싣고 대동선 타고갔다 돌아온이방이 경주인에게 십오만 냥의 어음을잘취당하고 죽 쑤어서 개 퍼주고 말았다는말을 대수롭지 않게 지절거리고 있는것이었다. 복장 치고 자빠질 일이었지만소상한 내막을 알아보고 난 연후에 방책을마련할 일이었다.일면식도 없는 경주인이란 놈이 무슨억하심정이 있어 남의 어음을 가로채고무슨 흥정을 하자는 것인가, 오장육부가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변사또는 가까스로억눌러 참고 물었다."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없다더니 흡사 그 짝이 되었구만."시생이 궐놈의 거처를 알고는 있으나지금 당장 말씀드리기 거북합니다.""지금 나와 각축을 벌이자는 수작인 것같은데 올바른 정신으로 말하고 있나?""시생이 잘난 체하고 궐놈의 거처를이실직고 하게 되면 사또께서 분기탱천하여당장 포졸들을 풀어 궐놈을 덮쳐추포(追捕)하려 들겠지요. 궐놈이 위급하게된 것을 눈치채고 손바닥만한 어음을불살라버리거나 씹어 삼켜버린다면 그땐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아닙니까.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를 살 금어치의어음이 없어진 뒤에 궐놈을 엮어들여분풀이한들 도대체 무슨 소득이있겠습니까. 완력만이 힘이 아닙니다.때로는 슬기와 꾀도 힘이 될 때도 있는욱하는 화증대로라면 이 알량한 이방놈을대매에 쳐서 박살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분김이 솟구치는 대로 숭어뜀을 하기엔너무나 애 은 일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깨달았다."놈이 감히 나와 홍정하자는 게 뭐냐.""사또께서 미복잠행(微服潛行)으로궐놈의 거처로 찾아오시되 춘향을배행(陪行)시키라는 엉뚱한 청입니다.""춘향을?""그렇습니다.""아니, 그놈의 춘향을 넘보고 이런도섭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냐?""시생도 궐놈의 꿍심을 미처 해아리기어렵습니다. 궐놈이 춘향과는 일면식도없을 뿐더러 한양 내왕 길목에선 들병이를술한 색주가에서 논다니들의 추파를받았건만 색을 탐하여 계집의 옷을 벗기는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궐놈이 남원땅춘향이가 국색이란 것은 소문 들어 알고있는 듯 하였습니다.""춘향이를 볼모로 잡고 난 연후에 어음을건네주겠다는 수작임이 분명하군.""그러나 사또께서 춘향 한몸 수청들이기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정성이 어떠하며춘향으로 말미암은 수치와 억울함을감내하시느라 침식조차 잊다시피 하셨는데,십오만 냥의 돈이 아니라 백오십만 냥의거금이라 할지언정 어찌 춘향을 볼모로잡히고 어음을 건네받겠습니까.이것은 참으로 닭 쫓던 개가 지붕쳐다보는 격이니 시생으로선 주둥이가 열없습니다. 변고가 여기에 이르렀음에사또의 보필에 소홀했던 것은 돌이 킬 수없는 죄책이 되었고, 또한 십오만 냥의거금을 그 두억시니 같은 놈의 손에서거두지 못한 죄도 돌이킬 수 없게되었습니다.이제 시생이 가야 할 길은 뻔합니다.시생은 비수로 자문하겠으니 사또께선 만에하나 만류하실 일이 아닙니다."이방이 힐끗 보자 하니 변사또가 깔고앉은 비단 보료가 흠뻑 젖어 있었다.식은땀을 얼마나 홀렀으면 보료가 흠뻑젖었을까.저렇게 많은 땀을 흘렸으면 속은 얼마나뒤집혔을까. 그런데도 과단성을 보이지않고 국국 눌러참고 앉아 버티는 변사또의짐작하기 어려운데 변사또의 입에서한마디가 흘러나왔다."죽는다는 소리 함부로 지껄이지말아라.""시생이 흰소리로만 지절거린 것은아닙니다.""임자가 죽고 나면 그 경주인이란 놈이매복하고 있는 잠처(潛處)를 어디 가서찾아낼 수 있겠나. 임자 역시 그런 정상을익히 눈치체고 내게다 그놈이 매복하고있는 사처를 실토정 않고 있는 것이아닌가.그러나 그놈의 간특한 속셈 못지 않은꿍심은 내게도 없지 아니하다. 그 미천한것이 감히 춘향의 살꽃을 넘보고 십오만냥과 바꾸자는 수작임이 분명한데, 그놈이알아했다지만 춘향의 절개가 돌처럼 굳다는것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불찰이 없지아니하다. 날아가는 새도 분부 한마디로떨어뜨릴 만한 남원부사의 권세와 눈 한번부릅뜨면 남원부중이 떠는 으름장으로 안될 것이 없다지만 알량한 볼기짝에손바닥만하게 불어 있는 춘향의 절개만은꺾지 못하였다.그놈이 항우와 번쾌의 용력을 가지고변강쇠 뺨칠 만한 절륜한 생고기를 하초에달고다닌다 할지라도 춘향이 가랑이는벌리지 못할 것이다.하물며 삼강행실도를 터득하여 내외가분명한 춘향이가 실성하지 않았다면 그런불상놈에게 곁을 주기는커녕 말대꾸나제대로 하겠더냐. 가자. 춘향을 옥에서곱게 다뤄 데리고 가서 십오만 냥찾아내자.""아니됩니다. 춘향이가 옥에서 풀려나는것만 천행으로 여겨 그 창귀 같은 놈에게추파라도 던지게 된다면 사또께선 꿩은거두었으되 알은 놓치는 격이 아닙니까.차라리 꾀를 써서 춘향이 몸종인 향단이를춘향처럼 꾸며서 데려가는 것도 경황중이라하나 생각해 봄직합니다.""그놈이 춘향이와 일면식도 없는처지라면 이방의 꾀가 그럴싸하다. 또한향단이를 잡아업쳐 두들기면 따라올 수도있겠지. 그러나 이방 네놈이 그 자발없는주둥이로 춘향의 모색을 세세하게 그놈에게고자질하였겠으니 그놈이 천하에 짝이 없는숙맥이 아닌 이상 춘향 아닌 딴. 계집어찌 듣고 보면 이방의 계략이나 경주인장돌림의 속셈까지도 손금 둘여다보듯환하게 꿰고 있는 듯한데 변사또는 또한 그나름 대로의 그럴싸한 기책(奇策)이 없지않았던지 전혀 주저하는 기색이 아니었다.변사또는 도임한 이래로 단 한번도벗었던 적이 없었던 관복을 거침없이벗어먼지고 비복(微服)차림으로 동헌대청으로 나서면서 춘향의 거동이 왜이토록 굼뜬 것이냐고 호통이었다.통인이 설설 기면서 남간의 토옥과 동헌뜨락을 몇 번인가 내왕하던 끝에 가까스로얼추 입성치례를 시킨 춘향을 데리고 나온것이었다."그놈이 수행(隨行)을 두지 말라고경계하였다니 딴 도리 없이 이방이이방이 배행꾼이 되어 동언 뜨락가로질러 중문으로 나설 제, 변사또는절룩거리는 춘향을 곁부축해서 뒤따라나섰더라. 춘향은 될대로 되라는심정이었는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않았고 변사또 역시 그 동안에 벌어졌던사단의 시말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남문(南門)인 완월루(翫月樓)를 벗어나성벽을 오른손 편으로 끼고 서쪽으로발행하니 멀지 않아 관왕묘(關王廟)가나서고 축천정(丑川亭)앞을 흘러용투산(龍鬪山) 산자락에서 함류하는요청(川)이 가로막고 있었다. 잠자는사공을 깨워 요천을 건너는데 뒤쪽으로바라보이는 서문(西門)인 망미루(望美樓)를바라보면서 변사또는 이방의 귀에 대고"내 수하에는 백여 명이 넘는 포졸들이있다. 그놈이 춘향을 낚아채서 달아날 제,날개 달린 천리마만 타지 않았다면 삼십 리안짝에 두 연놈을 냉큼 추포(追捕)할 수있다. 내가 분수 없이 미행(美行)을 나설어설픈 위안으로 보았다면 그놈 날 대단히잘못 보았다."그리고 뱃전 가녘에 장옷 쓰고 기대앉은춘향 보고 묻더라."몇 달포를 찬서리 치고 바람소리 스산한토옥에 갇혔다가 오늘 이토록 소술한 달을보며 선유가(船遊歌)가 없고 술 없고 안주없어 섭섭하다 할지라도 남원절색 춘향있고 충직한 이방 있고 또한 노 젓는사공이 있으니 가위 무릉도원이 아니냐.오늘 너 춘향과 잠시잠깐 나와 이별할뒤쫓아가서 네 손목을 낚아챌 터, 어느놈이 널 끌고가더 라도 푼수를 모르고 희희낙락하지 마라."입 무거운 사공이 배를 나루에 갖다 대고허리 굽혀 조아린 뒤에 서둘러 배를 몰아돌야설 제, 족등을 손에 든 이방은종종걸음으로 선머리에 섰다. 그곳이곧바로 기린산(麒麟山)산자락 아래인터라아뿔사, 사공더러 강 건너지 말고 나루에서기다리고 있으란 말 잊엇구나 하였지만선머리에 선 이방의 발걸음이 선불 맞은노루처럼 경황없이 빠른 터라 변사또 역시바지가랑이 걷어부치고 종종걸음이었다.당도한 곳이 기린산 산자락 아래에깊숙이 들어앉은 여염집 사처인 터라 늙운노파가 나와서 삽싹을 마추는데, 그 노파의알아챈 사람은 눈치 빠른 춘향이 더라.변사또는 노파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한번 거들떠 보는 법도 없이 잰걸음으로손바닥만한 뜨락으로 들어서면서 불 켜진봉노를 가리키며 이방에게 물었다."그놈이 저 봉노에 있느냐?""그렇습니다.""춘향은 여기 서 있을 것인즉 이방이들어가서 어음을 가져오라."이방이 들어가서 한동안 숙덕거라는가하였더니 황망히 섬돌을 밟고 내려서면서사또에게 나직히 아뢰었다."사또께선 잠자코 시생을 따라오십시오.""또 무슨 간계더냐?""간계가 아닙니다. 춘향을 잠시 뜨락에세워두고 시생을 따라 오십시오. 어음이"그놈은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더냐.""사또와 마주쳐서 좋올 것이 없다하였습니다. 달을 보면 되었지 가리키는손가락이야 구태여 가려서 뭘 합니까."변사또가 엉겁결에 춘항을 세워두고십오만 냥짜리 어음이나 마찬가지인 이방의뒤를 따라 저만치 삽짝 밖으로 나섰다."어음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사또도임할 임시에 요천 건성첩(城牒)가장자리를 뛰어넘어오셨다지요. 그때 그 성첩자리에 십오만냥짜리 어음을 돌 하나로 짓눌러 놓았다니시생이 살같이 달려가서 어음을 찾아올것입니다.사또께선 여기 머물면서 춘향을 엄중히파수하고 계셔야 하겠습니다. 자칫 한 발당할 것입니다. 만약 사또께서 시생을의심하여 시생더러 춘향을 파수하라시고몸소 요천을 건너신다면 시생이섬섬약질이라 십중팔구 저 흉포한 경주인놈에게 춘향을 탈취당할 것입니다."말인즉슨 그럴싸하였다. 그러나 의심은또다른 의심을 낳는 법, 이방의 말이 이방자신이 거기 남고 변사또에게 성첩가장자리에 있는 어음을 가져오라 하고부추겼다면 변사또는 필경 이방더러다녀오라는 분부를 내렸을 것이었다.왜냐하면 변사또는 이방 또한 경주인과한통속이 아닐까 해서 당초부터 의심을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변사또가 손사래를 치고 나섰다."아니다. 내가 다녀오겠다. 기골로 보나잔망스런 이방보다는 내 걸음이 한결 빠를터. 이방은 여기서 꼼짝말고 춘향을파수하라. 저놈이 설혹 흉포한 놈인들 감히남원부사를 끝까지 농락하려들 뺏심은 없을터. 그렇게 되면 오늘밤 밝기 전에 제신세가 어찌된다는 것을 모르겠느냐."그 한마디 남긴 변사또가 숭어뜀을 하며뛰어갈 제 삽짝 밖에서 벌어지고 있던광경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던 최씨부인이그때 울타리 곁에 서 있는 춘향의 손을덥석 잡아 끌었다."가자 포졸들이 기찰(譏察)을 펴기 전에어서 가자.""어머님 한 치 앞을 못 가리는 이 밤중에어디로 가자는 것입니까. 그리고 제가장달음을 놓는다면 이는 필경 파옥(破獄)이"파옥이라니? 옥사장이 손수 옥문을열어주었고 사또란 놈이 너를 여기까지동행해온 것도 파옥이란 말이냐. 입씨름하고 있을 겨를 없다. 선걸음에 지채 말고어서 여기서 떠나자."그로부터 달포 뒤에 월매의 집 삽싹문밖에 한 사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춘향이가 옥중에서 모매불망 기다리던이몽룡이더라. 이몽룡이 남원 당도하여해질녘을 기다리려 월매집을 찾아가니 바깔남새밭의 개바자는 말할 나위도 없고울타리조차 자빠져서 마당은 개똥밭이되었더라.지붕은 서까래만 남아서 들쑥날쑥인데개조차 짖지 않더라 마침 마당 귀퉁이에입성이 남루한 월매가 쪼그리고 앉아싶었으나 우선 통자를 넣었다. 그러나월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뒤돌아보는법도 없이 대답하되."뉘신데 이 심란증에 부르는고."이몽룡이 대답 없자, 무심결에 힐끗 뒤를돌아다보더라. 갓모자 없는 헌파립(破笠)을 초사(草紗) 갓끈 달아동여쓰고, 구멍 숭숭난 헌 도복(道服)에무명실 띠를 흉중에 둘러매고, 살만 남은헌 부채에 송방울 선추(扇錘) 달아 햇살을가리었고, 괴춤에는 툭수리 하나늘 꿰찬천둥벌거숭이 하난가 쭈그리고 서 있는터라."툭수리는 차고 있다 하나 누깔은온전하게 갖고 있을 터. 타개 죽 끓이고있는 궁핍한 애옥살이를 몰라서쏘아부치는 월매의 입정이 맵짜다."장모. 내 모색을 알아보지 못하겠나.""이놈이 환자(還子)독촉하러 온 놈인가.냉큼 돌아서지 않고 왜 자꾸 지분거리나.날 보구 장모라니, 용이 개천에 떨어지니각다귀가 대들더라고 내 매꼴이 사납게되었다 해서 툭수리 찬 상거지가 하게 말로대접 아닌가.""장모 나 이몽룡일세.""이놈이 감히 누굴 사칭하나."아궁이에 삭정이를 걷어넣던 불당그래를들어 목덜미를 내려치는데, 마침 뒤곁에서돌아나오던 향단이가 월매에게 얻어맞고있는 사내가 이도령인 것을 알아채고월매를 잡고 포달이다."사위는 백년지객이라 하였는데, 어찌그제서야 월매가 소매로 눈시울을 닦고상거지를 눈여겨보았다.이몽룡이란 것을 알았으나 월매는 병반놀라는 법도 없이,"이 꼴이 왠 일이요.""양반이 그롯되매 형언할 수가 없게되었네. 그러나 방자가 허행해서 내 다시찾아왔네.""이런 무정한 위인이 있나. 일차 이별후에 입체 서달라는 간찰한 장 방자 편에띄워보낸 이후 종무소식이더니 상거지가되어왔구나. 그러나 쏘아놓은 화살이요엎질러진 물일지언정 내 딸 춘향어쩔텐가."화가 머리 꼭두까지 치밀어 오른 월매가달려들어 이몽룡의 코를 입으로 물어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한다는 말이고이하다."장모 내 탓이지 코 탓은 아니지않은가.""양반 그릇되매 간롱(奸弄)조차들었구나.""애꿎은 코 물어뗄 요량은 말고허기졌으니 밥이나 한술 내놓게."그때 향단이 우루루 달려와서 이몽룡의바지를 뒤틀어 잡고 늘어지며 긴 사설늘어놓았다."향단이 문안이요. 대감님 문안어떠하옵시며 대부인 기후 안녕 하옵시며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히행차하셨습니까.""오냐 고생 어떠하냐."먹다 남은 조밥덩이에 시퍼런 섞박지와된장 한 술 찍어 떠서 개다리소반에 얹어마루끝으로 내놓았다."더운 진지할 동안 시장하실텐데 우선요기부터 하옵소서."게걸들린 이몽룡이 선뜻 섬돌 딛고 마루끝으로 엉덩이를 걸치려하는 찰나였다.불당그래 손아귀에 잔뜩 힘주어 쥔 월매가달려와서 개다리소반을 대매에 박살내고말았다.이놈아. 그 꼴에 양반 자세하는 이미련한 불상놈아. 무슨 염치로 처가라고찾아와서 끼니를 구걸하느냐. 당장도륙내기 전에 썩 비켜나지 못할까."담벼락 위로 구경꾼들의 머리통이들쑥날쑥하는 가운데 월매에 쫓긴 이몽룡이월매가 한마디 쏘아붙였다."네놈의 주린 배를 채우려면 변사또생일이 바로 오늘이어서 관아에서성연(盛宴)을 베푼다 하니 거기 가서네놈의 양반놈들 구미에 맞는 음식이나구걸하거라."그러나 이몽룡이 뒤돌아보며 한 마디던진다."춘향만은 보고 가야 할 것 아닌가.""변사또인가 두억시니인가 그놈에게물어볼 일. 우리 춘향이 집에는 없다."월매에게 쫓겨난 이몽룡이 하릴없이홍살문 안으로 들어가서 탐지하였더니,과연 본관(本官)의 생일날이라. 가근방수령(守令)들이 모여들고 있더라.운봉(蕓峰)영장(營漿), 구례(求禮),진안(鎭安), 장수(長水)의 원님들이 차례로모였더라. 왼쪽에 행수군관(行首軍官),오른쪽에 청령(聽令), 사령(使令),한가운데 본관은 주인이 되어 통 인 불러분부하되,"관청색(官聽色) 불러 다담상 올려라,육고자(肉庫子) 불러 큰 소잡고 예방(禮房)불러 장고 대령하고, 승발(承發) 불러차일(遮日)치고, 사령은 범접하는 잡인을금하라."이몽룡이 문밖에서 기웃거리다가수직사령 잠시 소피보러 간 사이에동헌으로 숨어들어 청상에 올라 한마디거들었다."여보게 사령들 먼 곳에서 온 걸객이오늘 성연을 맞이하여 고기 한 점여쭈어보게."사령이 그 말 듣고 화중 돋궈 꾸짖었다."저놈이 환장을 하였나. 여기가 어디라고기어들어와서 감히 너나들이로 대청을청하는게 사령들이 바삐 끌어내려고북새통하는 중에 마침 대청 가년에 앉았던운봉영장이 보자하니,폐포파립(廢怖破笠)의 형상이 꼴불견이긴하나 본래 가진 풍골은 귀골이요 허우대는준수하더라.사십안짝에 틀림없이 정승 될관상이었다. 운봉영장이 사령들을 나직한말로 꾸짖고 대청 끝 마루에다 한상 차려줄것을 분부하였다. 시큰둥해 있던 사령들이이윽고 개다리소반 하나를 이몽령의 발치에덜컥 갖다 놓았다.한개, 대추 두개, 밤 하나, 소금 한 줌에이빠진 사발에 탁주가 놓였으니 괄시가대단하였다, 그러나 멀찌감치 이몽룡의거동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던 윤봉영장이민망했던지 자기가 받았던 상을 들어다주라고 분부하였다.때마침 운봉영장이 곁으로 다가오는 터라이몽룡이 시치미를 잡아떼고 염치없는 청을넣었다."죄만스러우나 걸객이 언제 기생을농하겠오. 어느 년이든지 기생 한 마리만보내어 권주가나 시켜주오. 소시적부터버릇이 되어 그냥 술은 못 마시겠소."운봉이 어느 기생에게 눈짓하니 기생이아니꼬워서,"기생 노릇 하려니까 별꼴 다 보겠네.고시랑거리고 있는 것을 운봉영장이 듣고있다가 화를 벌컥 내었다."이년이 뭐라고 고시랑거리느냐, 내일당장 운봉으로 잡아다가 다리를 작신분질러놓기 전에 길손의 청대로 권주가한자리 불러올려라."기생이 운봉영장의 으름장에 가위가 질려이몽룡 곁으로 와서 외면한 채 술을따라주자, 이몽룡이 대희하여 옥수(玉手)를덥석 잡고 뇌까리더라."헛, 고년 살결이 말량말랑한 것이하룻밤 데리고 희롱희롱하였으면 객고중에쌓였던 하초의 응어리가 쑥 빠지겠구만,그러나 그것은 나중 일이고, 우선 권주가나한자리 목청 빼고 불러다오."기생이 마지못해 권주가 한마디"먹지 그려 먹지 그려. 이 술 한 잔처먹지 그려. 천만년을 거지꼴로 살 것이니이 술 한 잔 처먹지 그려.""허어, 고년의 권주가 한번 묘하구나.하긴 시골 기생 말버릇을 누가 올곧게가르쳐 주었겠느냐. 그래 너의 향기로운이름은 무엇이냐.""초선이요.""초선이라. 그것은 범같이 무서운여포(呂布)를 한손아귀에 넣고 떡 주무르듯농락하던 그 초선(貂蟬)이가 아닌가.""얼씨구, 툭수리 차고 다니는 주제에삼국지 읽은 소리는 귀동냥한 모양이군. 내이름은 풀 초 자 신선 선 자요.""그래 기특한 년이로다. 오늘부터 내수청을 들겠느냐."공짜술을 얻어 마시고 나니까 이알이곤두서서 검사 아니면 어사라도 된 듯기광부리고 있네."이몽룡이가 기생과 노닥거리고 있는 것을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운봉영장이가만히 대청을 내려와서 다가와 이몽룡을손짓하였다.이몽룡이가 마지못해 일어나서운봉영장의 뒤를 따라 동헌뒤곁 반빗간쪽으로 갔다. 이몽룡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있던 운봉영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자네 춘향이를 찾아온 사람 아닌가?"정곡을 찔렸음에 쑥스럽고 무안하였으나실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자네 알성급제(謁聖及第)하여 마패 차고왔는가?"것이었습니다만 신세 딱하게 되어 그렇치가못합니다.""그럼 일은 대단히 잘못되었네. 춘향은여기 없네.""춘향이가 없다니오. 저 흉물스런 사또가토옥에 내려가둔 것이 아닙니까.""한양 삼개(마포)에 있다는 경주인이데리고 간 지 달포나 되었네.""춘향이가 파옥(破獄)을 한 것입니까.""춘향이가 파옥한 일은 없지만최씨부인과 함께 경주인을 따라간 것은분명하니, 남원에서 춘향을 찾을 게 아니라한양 삼개에가서 찾아보게."
이몽룡이가 알성과(謁聖科)에 급제를 한것은 그로부터 삼 년 뒤인변사또의 성연(盛宴)에 왔던 운봉영장의손에 이몽룡은 한 편의 시구를 건네준 일이있는데 내용은 이러하였다.
금동이에 담긴 아름다운 술은 일천백성의 피요. 윽반상(玉盤床)의 맛깔스런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눈물이 떨어질 적에 백성의 눈물도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스리도높으리.
- 끝 - .
* 어휘 해설 *
감창소리 : 남녀가 서로 교합할 때 들리는 소리.개바자 : 갯버들의 가지로 엮어 만든 바자.개잘량 : 방석처럼 깔고 앉기 위하여털이 붙어 있는 채로 제조한 개가죽.개차반 : 행등를 더럽게 하는 사람을 욕하는 말.개호주 : 범의 새끼.게트림 : 거만스럽게 거드름을 피우며 하는 트림.겨끔내기 : 자주 번갈아 하기.견대팔 : 어깨뼈.전달하는 하인.경주인京主人: 서울에 머물면서 지방관청의 사무 일체를 대행하던 사람.고소원 : 본디 바라던 바임.고염무顧炎武: 청나라 초기의 대학자.중국 고증학의 기초를 닦았음.곡지통 : 목을 놓아 슬프게 울다.관무첩 : 관청의 물건을 사고 팔 수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위임장.구경소 : 구경거리가 됨.구메밥 : 옥문의 구멍으로 죄수에게 주는 밥.국궁鞫躬 :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굶힘.권속 : 한집안의 식구.극세목極細木: 발이 아주 가는 무명길나장이 : 길을 인도하는 배행꾼나직 : 없는 죄를 얽어서 꾸며 만듬.남갑사藍甲紗: 쪽빚 갑사.남새밭 : 채소밭.남색짜리 : 머리를 쪽지고 남색 치마를입은 스물 안팎의 새색시.내아內衙지방: 관청의 안채.너울가지 : 남과 잘 사궐 수 있는 솜씨. 붙임성.넉장거리 : 네 활개를 펴고 뒤로 나자빠짐.논다니 : 웃음과 몫을 파는 계집농투산이 : 농사꾼다리밋자루: 남자의 성기를 빗댄 말.당혜唐鞋 : 울이 깊고 작은 가죽신.대궁 : 먹다 남은 밥대살지다 : 몸이 강파르다.댓바람 : 일에 당하여 맨 첫번으로.더그레 : 각 영문에 군사들이 업는 세 자락의 웃옷도섭 : 변화, 요술도저하다 :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고 뺏뺏하다.동달이 : 군복의 한 가지.동배간 : 나이, 신분이 서로 같거나 비숫한 사람들 사이.동자 : 밥 짓는 일.동티 : 지신地神의 성냄을 입어 재앙을 받는 일,두억시니 : 사나운 귀신의 하나둔갑장신 : 귀신을 불러 변신하여 남에게보이지 않게 하는 술법.드잡이 : 먹살잡이들병이 : 병술을 들고 다니며 파는 장수.딱장받다 : 때려가면서 그 죄를 불게 하다.때벗다 : 촌티가 없어지다.뜸배질 : 버릇없이 굴다.매골 : 사람의 꼴. 꼴이 못 되었을 때 쓰는 말.매화틀 :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된 요강.면분 : 얼굴이나 알 정도로 사권 정분.명토박다 : 이름을 대다.몽니 : 음흉하고 심술굿게 욕심무산십이봉巫山十二琫: 평안남도 성천에있는 열두 봉우리의 기이한 산.미술媚術 : 남자를 호리는 여자의 미색.민갑주다 : 선금주다.밀화단추 : 호박琥珀으로 만든 단추.밑절미 : 사물의 기초. 본디부터 있던 바탕.바라지 : 바람벽의 위쪽에 낸 작은 창.반빗간 : 음식을 만드는 주방.발막 : 조그만 오막살이 집발섭 :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님.배꼽노리 : 배꼽이 있는 언저리배자 :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배행꾼 : 읏사람을 모시고 따르는 사람.엉켜서 뭉쳐진 찌끼.범강장달 : 키가 크고 흉악하게 생긴사람을 가리키는 말.별반거조 : 특별히 다르게 차리는 노릇.여기서는 형틀을 차리는 것.병각마病脚馬: 다리를 저는 말복장 : 가슴 한복판.부담負擔 : 옷이나 책 같은 것들을 담아말등에 싣는 농짝.부슬자리 : 부들의 입이나 줄기로 엮어 만든 자리불각시 : 갑자기, 혹은 느닷없이.사다듬이 : 사매질사매질 : 권세 있는 자가 사사로이사람을 때리는 짓.사삿집 : 여염집.사추리 : 샅, 허벅지.사품 :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계재나 바람.산매들다 : 요사스런 산귀신이 몸에 붙다.살천스럽다: 쌀쌀하고 매섭다.삼도천 :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길 중에 있다고 하는 내(川).삿갓반자 : 천장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바른 반자상승하다 : 환장하다.상없다 : 본데없다.상침上針 : 좋은 바늘 혹은 가장자리에실밥이 드러나지 않게 꿰매다.상화방賞花坊: 창기娼妓를 두고 손님을서시西施 :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미녀.섞박지 : 양념 없이 젓국에 아무렇게나 버두린 김치.석황石黃 : 누른 빛의 물감.선치수령 : 선정善政을 베푸는 지방의 수령.설분 : 분풀이섭산적 : 살이 갈갈이 찢기고 떨어져나가도록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는 뜻.성첩城堞 : 성벽의 가장자리.세백저細白苧: 발이 가는 모시소종래所從來: 지내온 내력.수탐 : 수하하고 탐지함.수하誰何 : 누구냐고 불러서 물어보는 일.된 정열부인.승교바탕 : 가마바탕, 혹은 가마.시갯금 : 곡식의 가격.시갯자루 : 곡식 자루.시생 : 선비가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신들메 : 신을 들메는 끈,신색愼色 : 여색을 삼가는 것,실토졍 : 사실대로 진정을 말함.아갈잡이 : 소리 지르지 못하게 입을 솜따위로 틀어막는 것.아금받다 : 알뜰하게 발밭다.아퀴짓다 : 일을 결정짓다.악소패거리: 성질이 고약하고 못된 젊은이들악악루岳陽樓: 오吳나라에선 동쪽으로,누각인데 조망이 넓다함 .안동眼同 사람을 따르게하거나 물건을 지 니고 감.안장마鞍漿馬: 가죽으로 만든 안장폼 얹은 말,안침솔집 : 골목 안에 숨어 있는 술집.알사추리 : 벌거벗은 채로 드러낸 알몸애옥살이 : 가난에 쪼들려 고생스럽게 살아감.약주릅 : 한약재의 매매를 거간하는 사람.어마지두 : 몹씨 놀람.어섯눈 : 사물의 대강만 알아첼 정도의 시선.억탁 : 억측.얼요기 : 충분하지 못한 요기.물건 값을 표하는 짧은 막대기.엄대 : 긋다 엄대를 가지고 하는 외상 거래열멍길 : 저승길,염의 : 염치.영각켜다 : 암소를 찾는 황소의 울움소리.오지투가리: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말리거나 약간 구운 뒤에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질그릇옥진玉眞 : 양귀비의 별명.옹구바지 : 대님을 매지 않은 바지.와룡소臥龍梳: 엎드린 용의 모 양을 본뜬빗. 문장가왜자하다 : 소문이 팽장하게 퍼지다.외대머리 : 정식 혼례를 하지 않고머리를 쪽진 여자. 기생,갈보 등을 가리킴.요분질 : 성교시에 여자가 남자에게쾌감을 주기 위해 아랫도리를요리조리 움직이는 짓 .우두망찰 : 갑자기 닥친 일로 얼떨떨하여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유서통 : 왕의 유서를 넣어가지고 다니던 통.육롱기 : 청나라 때 성리학의 대가.육장肉醬 : 쇠고기를 잘게 썰어서 간장에넣어 만든 장조림. 여기선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일.나는 척수가 지나치게 긴 배율기 : 안색을 바로잡아 엄정히 함.은사죽음 : 보람 없이 억울하게 죽는 일이징가미 : 질그롯의 깨어진 조각.입매상 : 잔치 때 큰상을 들이기 전에먼저 간단하게 차려 드리는 음식상.입체 : 뒤에 상환받을 목적으로굼전, 재물 등을 대신 지급하는 일.자발없다 : 참을성이 없고 행동이 경박스럽다.작사청 : 지방 관아의 아전들이 근부하는 집.잘코사니 : 남의 불행이 고소하여 하는 말전통 : 화살 넣는 통조발調發 : 징발.조빙阻幇 : 오입판에서 계집과 사내사이에 있어 온갖 일을주선하여 심부름하여 주는 일중치막 : 소매는 넓고 길이가 길며앞은 두 자락, 뒤는 한 자락으로 된 웃옷.지다위 : 남에게 등을 대고 의지하거나 때를 쓰는 짓.지휘하다 : 특정 기생을 지적하여 불러들이는 일.창귀 : 남을 못된 짓을 하도록인도하는 사람에 비유. 못된 귀신.청맹과니 :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눈 또는 그런 사람.체수 : 허우대.치도곤 : 곤장의 한 가지. 혹은 섬한 벌을 주다.침책侵責 : 간접으로 관계되는 사람에게책임을 추궁함.코머리 : 기생 행수行首기생. 기생의 우두머리.통행전 : 아래에 귀가 달리지 않은 예사행전.투레질 : 젖먹이 아이가 입술을 떨며 소리를 내는 짓.툭수리차다: 망하여 빌어먹다.포달 : 암상이 나서 악을 쓰고함부로 주워대는 말.하님 : 하인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학치뼈 : 정강이 뼈.해망쩍다 : 총명하지 못하고 아둔하다.해어화 : 여기서는 미인을 말함.해자垓字 : 성 밖으로 둘러 판 못.핵변 : 실상을 조사하여 변명함.햇곡머리 : 가을 햇곡식이 날 무렵.행역 : 여행의 괴로움.행전 : 바지, 고의를 입을 때정강이에 꿰어 무릎 아래에매는 헝깊(제비 행전 날렵하게 묶은 행전).행티 : 행짜를 부리는 버릇.행하 : 1)경사가 있을 때 주인이 하인에게 내려주는 금품.2)품삯 이외에 더 주는 돋.3)놀이나 놀음이 끌난 뒤에 보수.항낭 : 여기선 돈 주머니.헐숙청 : 높은 벼슬아치의 집 대문안에 있는 방. 그 벼슬아치를만나러 온 사람이 잠깐 쉬게 되어 있음.호경골 : 범의 앞정강이 뼈.호박고누 : 사발고누. 아래위 두 줄사이의 동그라미를 열십자로연결한 말밭에서 각각 세개의 말을 놓고 노는 호궤음식물을 베풀어 군사들을 위로함.혹장酷杖 : 가혹한 형벌. 혼돌림 : 혼쫄내다.홍색짜리 : 갓 시집온 새색시.황학루黃鶴樓: 중국, 호북성 무창현서남에 있는 누각.희정 : 되돌아가는 길.힘담없다 : 대담성이 적다. 혹은우물쭈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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