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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 춘향전


       


       


理致順理事理~思理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 ♥♥♥

외설 춘향전

----- 차 례 -----

1. 외설 춘향전

2. 어휘 해설

* 외설 춘향전 *

숙종대왕 즉위 초였다.
이때 전라도땅 남원(南原)에 월매라는
코머리 기생이 있었다.월매는 자색도
반반하고 신색 또한 밴댕이 뱃바닥처럼
흰데다가 육덕도 남부럽잖게 푸짐한지라
한때는 남원부중에서 이름자가 떠르르했던
상화방(賞化坊)의 기생이었다.

서울에서 남원으로 도임해서 내려온
벼슬아치들이 소문 들어 알게 된 월매를
탐하여 사방에서 수청들이라고 엄포에
채근이었으므로 월매의 집 대문턱은
조방꾼들의 뻔질난 출입으로 닳고 앓아
들기름을 먹인 것과 흡사하였다.

그러나 피아말 엉덩이 둘러대듯 재아무리
하나뿐인 몸뚱이로 그 많은 채근을 모두
감당해 낼 재간이 있을 수 없었다. 비
내리기 전 연못에서 개구리 지절거리듯
사방에서 수청 들라는 분부가 지엄하다
한들 하룻밤에 한 사내만을 육공양한다는
일은 관기들이 지켜온 상화방의 규율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육허기에 게걸 들린 벼슬아치들은
혹은 저희들끼리 시기하고 아귀다툼하며
월매를 수청 들게 하려고 온갖 모략과
간계를 동원하였으나, 월매는 그때마다
손사래 사이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유혹을
뿌리치곤 하여서 그나마 코머리 기생의
채통을 깡그리 더럽히지는 않았다.

원래 자색이 해반주그레하고 육덕이
푸짐한 계집이란 간계에 능수단으로
조방꾼들의 모략에 말려들기 십상이었지만,
월매는 소년시절부터 총기가 남다른데다가
또한 입담도 걸고 성깔도 매몰찬 구석이
없지 않았기에 관기생활을 대과 없이
청산하고 나이 사십에 퇴기로 여염으로
물러앉아 들어앉은 계집이 되었겠다.

그러나 퇴기로 물러난 월매에게 한 가지
소슬한 고민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 나이 사십 세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계집 나이
사십이라면 폐경기를 코앞에 두고 있게
마련이었다.

달거리니 몸것이니 하는 그 경도(經度)가
멎게 되면 월매 아니라 월궁항아라
하더라도 계집으로서의 값어치는 한낱
허섭스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자궁에
서글픈 인생도 없다는 얘기였다.

더욱이나 월매처럼 슬하에 일점혈육도
점지하지 못한 처지라면 그 참담한 심정이
오죽 소슬할까. 그래서 바람 스산하게 불고
있는 가을밤 저녁이나 처마 끝에 흩뿌리는
빗소리 들리는 저녁에 촛불 켜고 앉아
있노라면 가슴에 찬바람 불어 오지랖
허전하기가 그지없었다.

처지가 딱하긴 하였지만 명색 혈육을
점지해 줄 사내가 곁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바로
성참판(成參判)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얻은 기둥서방인 성참판이란 위인으로
말하면 시쳇말로 그 됨됨이가 맹물이었다.
물에 물 탄 사람이요 술에 술 탄
사람이었다.

준수해서 남원부중에서 서울 흥인문까지
서캐 잡듯 뒤진다 하더라도 남원 성참판
두고 막된놈이라고 섣불리 헐뜯거나 매도할
위인은 찾지 못할 사람이었다.

가산이야 보잘것없고 그 역시 퇴물
벼슬아치여서 참판이란 지난날의 직함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저자거리에 나가러
상것들을 상종하여 목청 돋궈 꾸짖기를
일삼거나 양반 입네 하고 옷소매에 바람을
일으키며 뽐내는 버릇은 일찍부터 삼갔던
위인인 터라 동류들께보다는 남원의
상것들에게는 존경받는 처지로서 실속은
없었다.

물에 물 탄 성품의 사내들이 그러하듯
허우대는 멀쑥하지만 잠자리에서의 일은
암팡지지 못해서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하였지만 열에 아홉은 월매의 몸도 달기
전에 슬쩍 헛물만 켜고 마는 것이었다.

명색 양반의 처지이었다지만 가계가
옹색하여 아침 잣죽에 저녁 깨죽으로
몸보신할 입장이 못 되겠으니 잠자리를
질탕하게 잡도리 못할 것은 뻔한 이치였다.

다소 근력이 부친다 할지라도 나이
사십에 다급해진 월매를 생각해서라도
어금니를 사려 물고 발뒤축에 삐득하니
기력을 불어넣어 삼이읏의 구들장들이
들먹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마 위에
샛별이 들쭉날쭉하도록 잠자리를 화끈하게
달궈주었으면 여한이 없겠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한때는 남원부중을 한 손바닥 위에 놓고
으름장이던 성참판도 늘그막에 이르고 보니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소일하는 무골충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월매가 하룻밤에는
쑥스러운 한마디를 뇌까린 것이었다.

"이녁 보시오."
"벌써 보고 있네."
"내 하는 말 횡 듣지 말고 귀여겨들으시오."
"이 방안에 임자와 나뿐이겠으니
귀여겨듣고 자시고가 있겠나."
"제 말에 자꾸 왠새끼만 꼬시오."
"내가 손수 새끼 꼬아본 이력이야 없지만
왼새끼는 상가에서만 쓰는 새끼라 하더군."
"우리 잠자리가 너무 허황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우리가 젊지 않은 터에 허황된 것은
"날 음탕한 계집이라 해서 손찌검이라도
당할까 봐 발설하기 두렵소."
"손찌검 당할 위험성이 있는 말을
아득바득 발설해야 할 까닭이 뭔가."
"애간장이 타서 그렇지 않소."
"애간장 타버리면 된장 먹으면 되었지."
"말문 막으려 들지 마소."
"말만 잘하네."
"내 나이 사십인데 아직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어 소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 이녁도 잘 알고 있지 않소."
"새삼 깨우칠 것 없지."
"내 자궁이 기박한 탓이겠지만 내가
탄식과 수심만으로 남은 여생을 보낼 수야
없지 않소."
"탄심과 수심이란 게 별로 좋지 않은
자주 성내고 이웃과 불화되는 모든 시초가
거기에 있네. 나로 말하면 소시적부터 그런
것들과는 인연 두지 않아서 무골층이란
평판을 듣고 있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살고
있네."
"말씀을 옆길로 가져가지 마오."
"난 옆길로 갈 것이니 임자는 곧은 길로 가게."
"그래서 말인데요."
"말에는 두 가지가 있는네 입으로 하는
말은 설경(舌耕)이라 하고 타는 말은
안장마(鞍奬馬)라 하네."
"제가 드릴 말씀이 바로 타는 말의 얘기오."
"무슨 말이오."
"우리 잠자리가 너무 허황된 탓으로
말롱질이 어떠어겠소."

그때 성참판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식지가락을 내뻗치며 월매를 꾸짖었다.
"말이면 다 말인가? 소나 말이 하는 짓을
명색 인두겁을 쓰고 있다는 우리가
흉내하자는 젓인가? 천하에 그런 상없는
말이 어디에 있는가."

성참판이 노발대발하여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꾸짖었으되 월매는 기왕에 내친
김에 죽을 셈 잡고 한마디 던졌다.
"그럼 멧돌치기는 어떻소."
성참판의 손바닥이 귀쌈에 와 닿을
조짐이라 생각하고 월매는 눈을 딱 감고
있었는데 손찌검은 당하지 않았으나,

"몹쓸 것,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잠자리에서 무슨 법을 찾소."게야."
"법도라니요?"
"고려 적부터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 하였네, 음양의 이치와 도리가
그러한즉슨 어찌 하늘과 땅을 바꿔놓는
일을 홀딱 벗고 낭자하게 벌이자는
것인가."

"그 역시 불가합니까?"
"불가는 부처님 계신 곳일세."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생각 많은 계집 치고 팔자 기박하지 않은 계집이 없네."
"명산대찰을 찾아 신공(神功)하여
사내아이든 계집아이든 점지 받게 되면
평생 소원 풀 것 아니겠소."
무자식이 있을 수 있을까."
"빌기도 전에 타박부터 먼처시오."
"이치가 그렇지 않은가."
"천하의 성인이신 공부자(孔夫子)도
니구산(尼丘山)에 빌었고, 정나라의
정자산(鄭子産)도 우성산에 빌었답디다.
공든 탑이 무너질 리 없고 뿌리 깊은 나무
꺾길 리 만무지요."
"임자 좋도록 하게만 명산대찰 찾아 십
년을 축원한다 해도 끝 조짐은 필경 내
차지가 아닌가."
"그것도 옳은 말씀이오만 치성부터
드립시다. 이도저도 마다시면 제가 갈 곳은
천길 낭떠러지밖에 더 있겠소."
"명산대찰 찾아다니자면 도처에
낭떠러지가 많은 법이겠으니 자칫 실족하여
적공(積功) 물거품 되네."
"동냥은 못 줄 망정 쪽박 깨려 들지 마소."
"내가 무슨 억하심정 있어 임자의 쪽박을
깨뜨릴까."
"신공하고 돌아올 동안 딴 계집 상종하여
군것질이나 하지 마소."
"소피가 발등으로 떨어지고 있는 내
분수에 설마하니 그런 여망이 있을까."

월매는 그날부터 목욕재계 정히 하고
명산승지를 찾아 나섰겠다. 오작교 썩
나서니 동쪽으로 장림(長林)깊은 곳에
선원사(禪院寺)은은히 바라보이고
남쪽오로는 지리산 웅장한데, 그 가운데
요천수(寥川水)는 동남으로 둘러
일대장강이었다.

줄이고 산굽이 돌아서 과객질하여
반아봉(槃若蜂)에 올랐겠다.
반야봉 올라서서 사방을 휘둘러보니 월매
찾던 명산대천이 바로 거기에 펼쳐졌더라.

정상에 허위단심 다달아 가져온 제물 규 모
있게 벌여놓고 엎드려 축원할진대, 월매
사십 년만에 빌기를 그토록 극진했던 적이
없었다. 엎드려 꿇었으니 무릎이
터져나가는 듯 아리고 쓰렸고 손바닥을
부볐으니 손금이 닳고 지문이 손상될
지경이었다.

산정에 비바람 불거나 안개 또한
자욱하고 천둥번개가 지나가도 일점혈육
점지하고 싶은 일편단심 한 가지로 제단
앞을 떠난 적이 없었다. 닷새가 지나고
엿새가 지나도록 곡기 한 번 못 하고 오직
꿈을 얻었더라.

어느덧 주위에 서기(瑞氣)가 차고 하늘
또한 영롱하더니 한 선녀가 푸른 학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머리에 꽃관
쓰고 입은 옷이 또한 꽃무늬 수놓은 얇은
비단이었다. 손에 월계수 가지를 들고 재단
앞에 내려온 선녀는 월매에게 공손히
절하고 난 뒤 사근사근 배 씹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사는 뉘신지요."
"남원땅에 사는 퇴기 월매요."
"퇴기란 무엇이오?"
"기적(妓籍)을 박탈당해서 여염으로
물러나 앉은 퇴물을 일컬음입니다."
그 말 듣고 난 선녀의 입에서
노루꼬리만치 짧은 한숨소리 흘러
"이 경개 좋은 산정에서 한숨소리가 어인
까닭입니까."
"내 처지와 퇴기의 처지가 방불함에
그리한 것입니다."
"방불함의 내막은 무엇이오?"

"저는 원래 옥황상제께서 살고 있는
백옥경(百玉京)에서 시중 들던 선녀랍나다.
옥황상제의 분부를 따라 복숭아를 들고
광한전(廣寒殿)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적송자(赤松子)라는 신선을 만나 회포를
풀다가 백옥경으로 돌아갈 시각을 깜빡
잊어먹고 말았답니다.

그 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
속계로 내침을 받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이
속계에 선녀가 묵을 곳이 어디 있겠으며
속계의 구미(口味)에도 버릇 들지 못했으니
그런데 때마침 두류산(頭流山)신령께서,
지리산 산정에 부인이 있으니 가보라시기에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니 어여쁘게 여기시고
내치지 마시기 바라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선녀는 문득
학으로 변하여 하늘로부터 날아들어 월매를
낚아채듯 덮치는 것이었다. 그 사품에
월매는 뒤로 나둥그러졌고 나둥그러짐에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엉덩방아를 찧고
나둥그러졌으나 꿈의 내막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지리산 정상에서 그런 꿈을 꾸었으니
이는 필경 태몽일시 분명하였다. 서둘러
치행하여 집으로 돌아온 월매는 급히
성참판을 불러 꿈을 얘기하였더니 성참판
크게 놀라 말했다.
"태중이라니오? 이녁이 가진 못난
고기방망이 주제로선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 하지 않았소."

성참판 화를 버럭내고 되받았다.
"내 주제꼴이 어떻다고 말끝마다 면박에
투정인가. 내가 헛물만 켰더라면 그런 꿈을
꿀 리가 만무일 터. 내가 벼슬자리에서
끈이 떨어진 하찮은 선달이라 하지만 아직
사내 구실은 하고도 남는다는 뜻이니
임자는 그리 알고 몸 가축하면서
기다리기나 하게."
"제가 배태하였다면 그만한 천행이
없겠소만 그 꿈이 정녕 배태하였다는
것이었을까요?"

"내 말이 객쩍은 흰소리인지는 달포만
기다려보면 알 것 아닌가?"
기다려보십시다."
성참판의 말을 첫고지 듣도 달포를
기다려보기로 작정한 월매는 그 달포 동안
몸 가축 정히 하며 바깔 출입 삼가고
상서롭지 못한 것 보지 않으며 저자거리
출입을 삼갔다. 성참판이 달포를 근신하며
월매더러 기다리라 한 것은 다음달의
달거리가 있고 없음에 따라 배태를 한
것인가 아닌가를 가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도가 없다면 필경 핏덩이가
월매의 뱃속에 들어앉은 것이리라.
그런데 그 달포가 거의 지난 어느 날
해질녘에 성참판은 그 일은 까맣게 잊은 채
무심코 월매의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섰겠다.

대문을 밀치고 호기 있는 걸음걸이로 막
첫발을 디미는 찰나였다.
장지문이 획 열리면서 걸레쪽 같은 것이
날아오더니 성참판의 풍체 좋은 얼굴을
덮쳤다. 어마지두 놀란 성참판이 땅에
떨어진 거지 발싸개를 얼떨결에 주워
들었겠다.

언뜻 보면 수건에 돼지 피를 적신 것
같기도 하였고, 또다시 보면 수건에 닭의
피를 적신 것과 방불함인데 콧등으로
비린내가 확 풍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명색
여자들이 달거리가 있을 때 사타구니에
끼어 차는 개짐이란 것을 양반 체통인
성참판이 얼른 눈치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앙칼진 목소리가
방으로부터 들려왔다.

"보기도 싫으니 썩 나가시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다 싶었던
것이었다.
"들어가겠다는 사람 반색으로 맞아들여야
할 처지에 비린내 나는 수건을 던지며
내치다니. 임자에게 개구멍 서방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개구멍 같은 수작 집어치고 썩 비켜나서
다신 코빼기도 디밀지 마시오."

서슬 퍼런 월매의 말이건만 체통에 손상
입은 성참판 역시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그는 뜨락 한복판에 딱 버티고 서서,
뒤축을 꿇리고 소매를 떨쳐 바람을
일으키며 창피당한 설분을 톡톡히 하려 들었다.
"명색 여염에 들어앉은 계집 사람의
행패가 어찌 이토록 지저분하고 비루하단
말인가. 내 설령 백수건달일망정 임자의
사타구니에 끼고 있던 피칠 갑이 된 개짐을
면상에 던지다니. 이놈의 집구석에 불을 확
싸질러 버릴라."

무골충으로만 여겼던 성참판의 험담이
평소 같지 않게 매우 험악한지라 가위 질린
월매가 한풀 꺾이긴 하였지만 분김을
죽이진 못한 것이라 내친 김에 다시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걸 개집이란 것을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려. 그렇다면 내가 왜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내던진 것인지 필경 짐작하고
있으리라."
"짐작이라니 무슨 놈의 있지도 않은 개뿔
같은 짐작이란 말인가."
"지리산에 치성 드리고 와서 달포를
기다리라고 지성껏 권유한 것이 종국에
이녁이 가져가서 발싸개나 하시라고
던져주었소."

"내가 멀쩡한 쇠가죽 신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개집짜투리로 발싸개를 해서
동접(同接)과 친우들에게 창피당할 일을
자초한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미련한
위인인 줄 알았는가."

"미련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달포를
기다리면 상서로운 일이 없지 않다고
밑절미도 없는 장담을 하시었소."
"내가 달포를 기다려보자 했지 핏덩이를
배태했다고 장담하던가. 삼강행실도를 어깨
너머로나마 얼추 곁눈질했던 계집이라면,
지난번 치성에서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장차의 도리가
어찌하면 올바른 것인지 근신하며 궁리나
먼저라니."

성참판의 일갈도 그럴법한지라 더 이상
대꾸하면서 포달을 떨만한 빌미가 없어진
월매는 입귀를 삐죽거리고 있던 차에 그만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팔자 기박하게 된 가신의 처지도 한스러
웠지만 성참판의 꾸지람과 면박이
서릿발같이 차가운지라 설분을 못해 터진
울음이었다. 넉장거리를 하며 슬피 울고
있는 월매를 바라보고 있던 성참판은 혼자
빈정거렸다.

"피칠갑이 된 개집 한 개 내지르고
저렇게 넉장거리로 곡지통을 내 쏟는
계집이라면 정말 사람의 형용을 갖춘
핏덩이를 내지르고 나면 까무러치겠네."
그렇게 내 쏟은 월매의 곡지통은 그날 밤
이죽거리고 있던 성참판이 돼지 멱따는
소리 진작 그치지 않으면 작파하고
본댁으로 돌아가 버리겠다고 공갈에
으름장을 여러 번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월매 자신도 이젠 근력에 부친
나머지 더 이상 껄떡껄떡 돌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럽고 원망스런 중에서도 밥상을 차려
저녁 대접을 하니 그 또한 측은하게 여긴
성참판의 성깔이 다소 수그러져 월매를
달래는 것이었다.
"임자도 한 숟갈 떠보게, 그려."
"난 목이 칼칼하여 곡기가 입에 넘어가들
않소."
"그런 임자 두고 난 돼지새끼처럼
혼자서만 꾸역꾸역 뱃구레를 채우란
"계집 나이 사십 되도록 슬하에 살붙이
하나 두지 못한 이 기박한 계집이 입에
곡기는 붙여서 무슨 여망이 있다 하고
수저질을 하겠소."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였네. 사십 넘은 임자에게 아직
경도가 있다 함은 장차 배태할 가망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 우선 곡기를
끊지 말고 신색을 보전하시게."
"품어줄 닭이 없는데 달걀이 있어 무슨
소용이오."
"날 두고 닭에 비견한 것이라면 내 또한
엄연하거늘 그런 섭한 말은 함부로 말게."
"정말 그렇소?"
"그렇다마다."
월매가 마주앉아 수저질을 하는 시늉이자
한마디 퉁겼다.

"옛말에 열 번을 찍어서 안 도는 도끼가
없다 하였네. 임자가 지리산을 한 번 더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길 멀어 난 못 가오."
"가고 싶으면 이녁이나 가시오."
"거 섭섭하게 되었네. 이번에 임자가
다시 한 번 치성을 드리러 가겠다면 어렵긴
하지만 나 또한 동행할 엄두를 가졌거늘
임자가 굳이 싫다면 딴 도리가 있겠는가."
그 말이 월매에겐 적지 아니 솔깃하더라.
정말 지난번 치성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혹은 무슨
동티라도 있어 배태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또한 그 모든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드림에 동행하자는 것인데 그 또한 메몰
차게 내친다면 정녕 산신령의 노여움을
받아 배태는 고사하고 동티를 입을 가망도
없지는 않을 터였다. 곰곰이 생각하니 또한
설패를 볼 성부르더라도 다시 한 번 치성을
드리는 것이 계집의 도리라는 생각이
가슴을 치는 것이더라.
"내가 가면 필경 이녁도 따라 가시겠소?"
월매가 솔깃해 하는 기색이 완연한지라
성참판은 밥을 먹다 말고,
"가다말다. 임자와 동행이라면 저승
문턱인들 내 결코 사양 않겠네."
"저승 문턱이라니오.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은 왜 하시오."
"일테면 임자를 아끼는 내 심정이
그렇다는 얘길세."
"내가 말미를 내자면 내일 해질녘이
좋겠네."
"당장 떠나자 더니 그 무슨 해괴한
말씀이오."
"임자와 내가 동행하여 발행하게 된다면
삼이웃의 주둥이 해픈 계집들이 내가 계집
끼고 산천경개 구경 간다는 소문이
남원부중에 짜하니 퍼질 것 아닌가.
치성이란 발행임시부터 호젓하고
은근하여서 잡귀가 끼여들 빌미를 주지
말아야 되는 법이니 내 말 고깝게 듣지
말고 그대로 시행함이 어떤가?"

내일 해질녘에 남원부중 하직해서
지리산으로 발행하자면 월매 역시 꼬박
하루 말미밖엔 남지 않았다. 제기(祭器)
정갈하게 손질하는 일변 썩고 비뚤어지지
떡을 쪄서 이튿날 서둘러 떠나려 하니
날씨는 어두웠으나 간혹은 치성 드리러
가는 월매의 거동을 알아챈 마을의
여편네들이 까닭없이 입을 비쭉거리기도
하였으나 월매는 곁눈질 한 번 않고 못 본
척을 하였다.

서문 밖에서 성참판 만나니 당나귀 두
필을 대령시킨지라 나귀 두 마리에 서로
나눠 타고 지리산 반야봉으로 오르니 월매
성참판 길벗해서 산천 유람은 평생 살다
처음이었겠다. 때로 비 내리고 안개 스쳐
길을 잃는다 하여도 마음이 다급하지
않더라.

산정에 올라 재수 정갈하게 차리고 또한
목욕재계하고 치성을 드리니 그 동안
성참판은 손수 도끼질하고 낫질하여 두
성참판 평생에 도끼질과 낫질은 난생
처음이어서 더러 생채기 나고 팔뚝이
찢겨져도 별반 개의치 않았다.
사흘 치성들이고 난 뒤 발막으로 들어온
월매의 손을 잡고 성참판이 일렀다.
"임자 경도 끝난 지 며칠째 인가."
"이제 보름이 되었소."
"그렇다면 자네 자궁이 피붙이를 앉힐 때가 되었네."
"이 누추한 발막 속에서 희학질을
벌이자는 것입니까."
"이곳은 발막이기 이전에 지리산 산정이 아닌가."
"그렇긴 하오만 어째 쑥스럽소."
"임자와 나 사이에 쑥스러울 게 무언가.
설혹 거처가 비좁고 누추할지언정 우리가
살붙이를 두려는 우리 부부의 애끓는
소원을 결코 외면하지 않아 살붙이 하나를
점지할 것 아닌가."
"산신령이 감히 지리산 산정에서 일을
벌이는 우리보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
할지언정 그런 대덕(大德)을
내리겠습니까."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거동이
다소 비루하고 데데하다 할지라도 그 뜻이
상서럽다면 산신령이 결코 진노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요행히 이로써 배태한다면 그
아이는 필경 지리산의 정기를 한 몸에
타고날 것일세.
아이는 건강하고 영리하여 학문은
청나라의 육룡기(陸龍其)에 버금갈 것이고,
문장은 왕사징(王士徵)에 방불할 것이며,
있을 것이네."
"필경 그러하리까?"
"의심 두지 말게."
드디어 두 사람이 옷을 활활 벗어 던지고
홀딱 벗은 알몸으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질탕한 구들막 농사를 벌이는 것이었다.
성참판은 어금니를 사려물었다. 오십
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월매의 옥문에
정기를 쏟아 넣으려 함이었다.
두 사람의 몸이 뜨거워지고 코에서
단내가 훅훅 풍길 제 성참판의 등때기에
월매의 손톱자국이 낭자하였다. 그 순간
성참판의 눈앞에 아찔한 서광이 비치었다.
실제로 그 서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눈앞에 번개같기도 하고 무지개
같기도 한 서광이 번쩍하여 성참판은
그리고 온 삭신의 기를 한데 모아 월매의
옥문에 기력을 쏟아 부으니 온 삭신이
순간적으로 통나무처럼 뻣뻣해지면서
하체로부터는 큰 강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성참판은 허공을 향하여 포효하였으니
그것은 마치 여산대호(如山大虎)가
아가리를 벌리고 부르짖는 것과 방불하여
지리산 칠백리 산자락이 한번 들썩하며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앉는 역발산의 기백을
능가하였어라. 월매 또한 눈앞에 서광이
비치었으니 그로써 배태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대육신이 뻣뻣해졌던 성참판은
놀랍게도 눈자위를 허옇게 치뜨고 옆으로
나둥그러졌으니 그는 다시 살아나지
대고 기를 불어넣었으나 성참판은 두 번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다. 놀란 월매 발막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질렀지만 그 산정에
두 사람밖에는 인적이 없었으니 어느 한
사람 죽은 시신을 되살리는 데 거들어 줄리
또한 없었다.
포달을 떨고 울부짖는다 한들 소용없는
짓이었다. 월매 다시 발막으로 돌아와
서둘러 시신을 거두고 발막이 그대로
초분(草墳) 되게 두었으니 지리산 우렁찬
바람에 살점이 삭고 그 뼈는 흙이 되어
또한 지리산 정기로 살아남게 하였다. 일변
서럽고 일변 기쁜 마음으로, 올라갈 때 두
사람이었던 것이 한 사람 되어 하산하니 그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더라.
그러나 그 달포가 지난 뒤 경도는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근신하고 몇
달을 기다렸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온 방안에 이상한 향기 그득 차고 안개
자욱하더니 엉덩짝이 스물스물 아파왔다.
사십 평생에 첫 출산이었으니 순산일까
난산일까 쌓인 걱정이 태산에 방불함이
였었는데, 일순 엉덩짝이 찡한가 하였더니
일 같잖은 순간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한 옥녀(玉女)를 순산하였다.
옥문에서 삐죽삐죽 기어 나오는 태아의
사추리를 슬쩍 만져보았더니 방아고와 같은
고기방망이가 손바닥에 걸렸다. 어마지두
든든하여 좋아라 하고 가랑이 아래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더니 태아의 양도(陽道)를
잡았던 게 아니라 경황중인 얼떨결에
여아의 한 쪽 다리 잡은 것을 남아의
사내아이 낳지 못해 섭섭하기 형언키
어려웠으나 기박한 자궁에 계집아인들
배태하여 생산하였으니 그 기쁨 어디다
비견할꼬. 성참판 살아 생전 지어놓았던
춘향(春香)이란 이름 붙여주고 손바닥에
올려놓은 수정처럼 길러내니 그 미모와
총기가 남달리 빛나더라.
어머니 월매에 대한 효행은 남원부중이
발칵 뒤집히도록 소문이 짜하였다.
그 인자함은 산 풀을 밟지 아니하고
생물을 먹지 아니한다는 어린 짐승 기린에
비견할 만하였다. 어미 월매가 서책을
구걸하여 갖다주면, 도장방에 들어앉아
곡기를 잊은 채 읽고 쓰기를 한푼 어치도
게을리 한적이 없거늘 오히려 월매가
걱정되더라.
예절을 지키게 되었으니 퇴물 기생의
딸이라 하지만 그 인물의 출중함은
대갓집에서 내질린 내노라는 규수가 감히
뒤따르지 못하더라. 삼강행실 하면
남원부중 성춘향이요, 성춘향 하면 바로
그게 삼강행실도였으니 그 어미 월매는
오히려 계집아이 낳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게 자란 춘향이가 어느덧 나이를
먹어 이팔이 되었을 때였다.
이때 서울 삼청동(三淸洞)에
이한림(李翰林)으로 일컫는 한 양반이
있었더라. 누대에 걸친 명가요, 충신의
후예라 하루는 전하께서 충효록(忠孝碌)을
뒤적이다가 이한림이 백두(白頭)로
소일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당장
제수하였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금산군수(錦山郡守)로 이배(移拜)하여 곧장
남원부사(南原府使)에 제수하였다.
이한림이 사은 숙배 하직하고 곧장
치행하여 남원부에 도임하였다. 도임부사
선치민정(善治民政)에 방곡의 백성들은
이한림이 더디게 왔음을 한탄하였다.
그런데 그 이한림에게는 한 가지
두통거리가 없지 않았더라. 그것은 바로
외아들 이몽룡(李夢龍)이 때문이었다.
이도령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이 총각녀석의
허우대틀 볼짝시면 키꼴이 껑충하고 면상도
시원시원하여 외양이 썩 의젓하고
걸출하였다.
눈, 코, 입이 오종종하게 박혀서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준수한
용모였다.
키꼴이 그런 만치 옷걸이도 출중하여
도포를 대충대충 바느질하여 입혀놓아도
하늘의 학이 땅에 내려와 걷는 것 같은
황홀경을 연출하기에 결코 손색이
없었더라. 그 허우대 준수한 만치 언변
또한 출중하여서 아는 것은 없어도
언변에는 감히 따를 만한 작자가 없었다.
아버지 이한림을 따라 경기지경 과천과
충청도땅 금산, 그리고 전라도땅 남원까지
발섭하게 되었으니 경상도를 제외한다면
모르는 사투리가 없고 곳곳의 산천경개의
아름다움을 꿰는 출중한 솜씨가 모두 그
혓바닥에 있더라.
초립동이 시절을 제외하고는 곳곳의
떨군 지 오래되어 총기 있던 두뇌가 근자에
이르러 돌대가리가 되니 옷치레, 입치레에
놀기 좋다 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밥을 먹다가도 지체없이 수저를
딱 던지고 일어섰다.
그래서 곳곳에서 모시었던 서당의 훈장들
얼굴만 대충 기억하고 있다 뿐 그들
훈장들이 가르쳐준 논어,맹자는 잊어버리고
까먹은 지 오래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 어떤 못난일 망정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씩의 재간과 술수만은 갖고 태어나는
법이고 그것으로 겨우 살아 있음에 대한
체면을 유지하게 되는 법이다.
이도령에게도 그러한 재간 한 가지는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여자를
잡아먹는 기량이었다. 잡아먹는다는 표현이
그것이 꽤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하더라. 먼저 규수들이 그의 꼬임수에 일
같잖게 걸려들 수 있는 좋은 조건 세
가지를 그는 갖고 있었겠다.
첫째는 그의 가문이 전하의 총애를 한
몸으로 받고 있는 명가의 후손이란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의 허우대가
걸출하고 준수하여 꽃다운 규수들이 한눈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소년의
나이부터 바람피고 다니기를 일삼았으니
행방술(行房術)까지 능수능란하여 걸려든
규수라 하면 하나에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색정에 기걸들게 만들어 이도령을 잊어버릴
방도가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눈동자까지 서글서글하여 그가
마음속으로 일단 점지하고 곧은 시선으로
자지러져 고쟁이에다 질질 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런 한량이 없었고 그런 팔난봉이
있을 수 없었더라.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런 팔난봉이었는데도 그 소문이
경향 각지로 퍼져나간 일이 없었다는
일이었다.
물론 그것은 아버지 이한림의 닦달
때문이었다. 자식이 천하에 짝이 없는
바람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그 순간부터
이한림은 수하에서 부리고 있는 아랫것들과
혹은 문중 사람들로 하여금 주둥이를
해프게 놀리지 않도록 잡도리하기를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자식의 모양새가 그러하다는 소문이 혹여
궁궐에 입문이 라도 된다면 음직(蔭職)으로
얻은 벼슬은 당장 날아가 버릴 것은 뻔한
가문의 표적에도 똥칠되기 십상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이 소생이 또한 어떤 일을 저질러 문중을
발칵 뒤집어놓을지 안심할 수 없었던 이
한림은 다른 가속들은 삼청동 집에다 두고
부임지를 떠돌 망정 아들 이몽룡만은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녀야 안심할 수 있었겠다.
일테면 이한림으로선 소생의 방만한
버르장머리를 바로잡아 주겠다는
철두철미한 생각으로 부임지마다 데리고
다니는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소생인
이도령으로 봐선 오히려 그것이 빌미 되어
닿는 고을마다 박힌 처녀들의 고쟁이
벗기기를 삼간 적이 없었으니 그 폐단은
옴처럼 번져 창궐할 조짐이었다.
이도령이 남원 와서 책방 도령으로
발장고만 치고 있다가 나들이 나갈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처녀들의 심기가
싱숭생숭하여 바람둥이 총각이 놀기 좋은
춘삼월 경이었다. 하루는 일기 화창하여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거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누마루 아래 대령해 있던 방자를
불렀다.
"얘, 방자야."
"예."
"이 고을 광한루의 경개가 빼어나단
얘기를 수차 들었다."
"쇤네는 수차 가보기도 하였습죠."
"그렇다면 나도 가볼 것인즉 너 곱게
나가 나귀에 몰래 안장 지워라."
방자 그 말 듣고 눈깔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손사래를 쳤다.
"말잔등에 안장 지우랬지 저고리에 안
대라 하였더냐."
"그것이 아니오라, 지엄하신 사또의 분부
없이 출입을 시킬 수 없사옵니다.."
"그러니까 몰래 안장 지우랬지 알게
지우라 했느냐. 이놈이 시방 뉘게 대고
핑계하는 소리가 낭자하냐."
"나중 견책을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합니까."
"지난 겨울 동안 칩거하여 찍소리 없이
견책(見冊)하였더니 더이상 견책할 책이
없다. 잔소리 말고 앞장서거라."
"쇤네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 견책이
아니라 나으리께 꾸중을 들으신다는
말씀입니다요."
"이놈이 시방 뉘 앞에서 문자 씀이
불용문자(不用文字)하는 줄 아느냐. 섣불리
냅뜨지 말고 분부 시행하렷다."
방자놈이 똥 본 개처럼 쭈르르 달려나가
나귀에 안장 지우고 나서 돌아와 아뢰었다.
"나귀 등대하였습니다."
이도령이 누마루 위로, 썩 나서는데 그
준수한 풍골 한번 보소.
옥안 선풍 고운 얼굴 인두관 갈은
채머리를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우고
비단 댕기 석황(石黃)물려 맵씨 있게 잡아
땋았다. 성천(成川)이 물항라 접동배
세백저(細白苧) 상침바지, 극세모(極木)
겹버선에 남갑사(藍甲紗)대님 치고,
겹배자에 밀화 단추 달아 입었겠다.
통행전 무릎 아래로 언짓매고 긴 동정
중치막에 도포 받쳐 검은 띠 흉중에
"나귀 불 들어라."
등자(橙子)딛고 선뜻 올라 삼문 밖을
나설 적에, 호당선(胡唐扇)으로 햇살
가리고 산호 채찍 휘두르매 관아 앞 넓은
길을 생기있게 나가는 것이었다.
"이랴."
나귀 바삐 몰아 광한루에 당도하여
하마석(下馬石)에 선뜻 내려 누각에
올랐것다. 광한루 주변에 늦은 아침 안개
끼었고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고즈넉이
불어오는 바람이 입술에 간지러웠다.
"얘, 방자야."
"예."
"부담(負擔) 풀어서 주안상 올려라."
"벌써 등대하였습니다."
"우리 오늘 서로 눈치보지 말고
차리면 빡빡해서 못쓴다. 담배도 마음대로
먹거니와 나이 차례대로 술을 먹자. 이
좌중에 누가 좌상이냐."
"이 자리에 도령님과 쇤네뿐이니 어찌 또
다른 좌상이 있을 수 있겠소."
"그렇다면 네가 존장뻘이로구나. 넌
상좌에 앉고 내가 연소자이니 말석에
앉으리라."
"황송하오이다."
이도령과 방자는 나란히 앉아 겨끔내기로
파탈하고 잡수시더라.
그러다가 이도령은 취흥을 이기지 못
하고 일어나더니 두루 거닐며 주변을
구경하였다. 이도령이 경개에 탄복하여
가로되,
"악양루(岳陽樓) 봉황대의 풍광과
이에서 더할까."
방자놈이 입맛을 맞추느라 거짓
둘러대기를,
"경개가 이러할 제 일기 청명한 날이면
운무가 잦아지고 종종 선녀가 내려와 놀곤
한답니다."
이때 마침 본읍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
그네를 타기 위해 광한루 어름에 와
있었다. 삼단 같은 검은 머리 반달 같은
와룡소(臥龍梳)로 솰솰 흘려 빗어
인두자루같이 길게 땋아 자줏빛 항라 댕기
맵시 있게 드렸다.
흰 모시 깨끼적삼 아래로 솜털
보송보송한 겨드랑이 살짝살짝 보이게
떨쳐입고, 물명주 고쟁이에
광월사(光月紗)로 곁바지에 난봉 항라
날 출 자로 제법 멋지게 신고 손에는
옥반지, 귀에는 은귀걸이요 앞에는
노리개를 드리웠다.
몸단장 곱게 하고 그네를 타는데,
기엄둥실 올라가더 꽃도 주루룩 훑어다가
맑고 맑은 구곡수(九曲水)에 풍덩 띄워도
보고 두 손으로 조약돌도 덥석 쥐어다가
나뭇가지에 던져 꾀꼬리도 날려보내었다.
섬섬옥수로 그네줄을 갈라 쥐고 한 번
구르면 앞줄이 높고 두 번 구르면 뒷줄이
높아 멀리서 보면 마치 낙화와 같았고
방자의 거짓말처럼 선녀가 내려온 듯
황홀한 것이었다.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던
이도령이 놀라서 물었다.
"저 건너 저것이 무엇인고?"
"어데 무엇이 보입니까?"
선녀가 내려온 것 아니냐."
"무산십이봉(巫山十二蜂)이 아니거늘
어찌 선녀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숙향(淑香)이냐?"
"이화정(梨花亭)이 아닌데 어찌 숙낭자가
있으리까."
"그렇다면 서시(西施)가 분명타."
"오(吳)나라의 궁중이 여기서 몇만
리관데 서시가 있을 수 있겠소."
"그렇다면 옥진(玉眞)이다."
"장생전(長生殿)이 여기서 먼데 어찌,
양귀비를 들먹이십니까."
"그럼 해당화냐?"
"무릉도원이 아니거늘 그 또한
아닙니다."
"그럼 네 할미냐?"
"그럼 네 누이냐?"
"쇤네 누이 채독 걸려 죽은 지 오 년 전
일이오."
"그럼 저게 귀신이냐 혼백이냐."
"이곳이 북망산천 아니거늘 어찌 뜬
귀들이 설쳐대고 있으리오."
"그렇다면 광한루라는 곳이 필시 도깨비
소굴이로구나."
방자놈이 실컷 딴청을 피다가 짐짓
정색하고 나서,
"아니, 저기 그네 뛰는 처녀 말씀입니까.
마침 녹음방초 우거진 계절이라 어느
여염집 규수가 싱숭생숭하여 그네 타려고
나왔나봅니다."
"여염집 규수라 했겠다? 저 처녀를 먼
빛으로만 보아도 높은 하늘에 떠 있는
제비와 방불하다. 여염의 처녀라면 저토록
찢어지게 절색일 수 없는 법인데 필경
네놈이 나를 농하여 조롱함이라."
이도령이 정색하고 눈자위를 부릅뜨고
바라보매, 방자놈은 그제사 찔끔하여 바른
대로 아뢴다.
"진정 아시려 하신다면 바른 대로
직토하리다. 저 계집아이는 본읍 기생
윌매의 소생으로 춘향(春香)이라 하는데
이제 나이 이팔입니다."
이도령 그 말 듣고 허둥지둥 허튼 말로,
"방자야, 너 나와 의형제 하자."
"의형제 사양할 마음 조금도 없으나 누가
아우 되고 어느 놈이 형님 된다는
것입니까?"
"나이로 따지자면 내가 손아래이고 네가
내 지체로 말하면 한양 장안도
떠르르한다는 한골 양반의 자제이고, 너로
말하면 미천하여 작사청 아전놈들의
대궁상이나 받아먹는 불상놈이겠으니 네가
내 아우 됨도 분수에 넘쳐 과분하겠으니
애당초 불퉁가지 낼 요량은 말아라. 얘,
아우야."
"그런 아우 난 싫소."
"싫다니, 이놈이 엇따 대고 언감생심
싫다는 언사가 대중없음이냐."
"한골 나간다는 사대부집 자제분께서
천하에 짝이 없는 상것과 의형제를
하였다는 소문이 남원부중에 퍼지고 보면
그 창피와 수모를 어찌 감당하시려고
대중없는 언사가 낭자하십니까."
"못 하겠다는 것이냐."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얘기십니다. 내
비록 상것의 씨종으로 구차하게 내질려서
구실아치 놈들의 떡찌끼로 허기진 뱃구레를
채우고, 길 가다가 지체 있는 내행이라도
만나게 되면, 땅에 콧등을 쓰리고 엎드려
콧둥에 흙 묻지 않는 날이 없고 아침에
홍살문 안으로 들면, 마방(馬房) 으로
쭈르르 달려가서 설사한 말똥이며 수채나
치우면서 하루해를 보내는 하찮은 천예로되
산전수전 다 겪어서 인생의 짠맛 쓴맛 겪지
않았음이 없었고, 달팽이집이라지만 집에
가면 지엄한 지아비로 대접받기 미흡한
적이 식산(殖産)에만 누깔이 시뻘건
벼슬아치놈들과 결탁한 적이 없어 시렁에
놓인 그릇이라야 바가지 너더댓 개밖에
없지만 분수 이외 것을 바라 탐욕한 적이
남원부중에서 마방을 지키며 이십여 년을
견마잡이로 거행하였지만, 아직 한번도
모시던 상전 낙마시켜 발목쟁이 부러뜨리게
거행에 소홀한 적도 없으니 지끔까지 삼접
연합의 나이를 먹었으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으니 어찌 제 나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이토록 욕보이신단
많입니까."
"아니, 네 놈의 말인즉슨 의형제를
하자면 필경 내 손위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냐. 치도곤을 당하고 싶으냐?"
"형님을 무작스레 다스리는 아우도
있답디까?"
"그럼 좋다. 무리 두 사람 소슬하게 있을
때만 네 형님하고 나 아우 하자."
"좋을 대로 하시오."
봐야겠으니 지체없이 데려오소."
"아우님의 간절한 심사를 짐작 못 하는
것은 아니로되 분부 거행하기가 극난한
사정이 없지 아니하오. 저기 있는 춘향의
어미되는 월매라 하는 계집은 가근방에
이름자가 짜했던 명기였소.
그 이름이 경향간에 유명 짜해서 본읍에
부임하신 사또님들께 수청도 많이 들고
뽑내는 아전에게 육공양하고 돈 있는
부자서방 풍류 잡는 한량들께 살꽃 바치고
명산대첩 큰스님들께 살보시도 하였지만
일점혈육 없었기로 사십이 넘은 후
늙바탕에 얻은 기둥서방, 작배(作配)터니
지리산에서 치성 드려 딸아해를 낳았다오.
애지중지 기를 적에 아해 생긴 것이
절색이요, 총기 또한 남달라 남원부중이
잔소리요, 침선(針線)과 음식에도 막히는
것이
없다오. 어디 그뿐입니까, 열녀전
내칙편(內則篇)을 밤낮으로 공부하여
일거수일투족 하는 행실이 사대부집 규수
뺨치고 나가기로 대비(代碑)넣어
속신(贖身)하고 외인상통(外人相通)한 적
없이 도도하기 짝없으니 도령이 부르신다
해서 똥 본 개처럼 쭈르르 달려와 대령할
규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형님은 춘향의 뱃속에서
빠졌나?"
"내 어미 허벅다리에서 빠졌소이다."
"춘향이 뱃속에서 빠지지 않고서야 그 집
내력을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꿸 수
있겠느냐."
사람 남원부중에 많소."
"어쨌든 자색이 그러하고 행실이
그러하다니 희한할 일이다. 그럴수록
심란하니 형님은 살같이 달려가서 규수를
불러오라."
"아우님의 소원이라면 내 어찌 형님치레
마다할 수 있겠소."
방자 끝내 마다할 수 없어 춘향 부르러
건너갈 제, 버들가지 질끈 꺾어 헛채질도
하여 보고 조약돌 냉큼 쥐어 새도 쫓곤
하며 느릿느릿 걸어가니 멀리서 다급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조바심하고 있는
이도령의 속을 태우는 것이었다.
방자가 화림(花林) 중에 당도하니 때마침
춘향이는 오래 그네 뛴 뒤 풀밭에 내려앉아
두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구슬 같은 땀을
향단(香丹)이가 유리병에 귤병차(橘餠茶)
부어들고,
"목마른데 잡수시오."
하는데 난데없는 방자놈이 썩 들어서면서
뇌까리는 언사가 고이하다.
"얘, 춘향아. 너 본 지 오래로구나.
노모시하(老母恃下)잘 있었더냐."
넌짓 놀라 돌아보니 안면 있는
방자였지만 조금도 반가운 기색없이
시큰둥하게,
"너, 어찌 왔느냐 ?"
그런데 방자놈이 뜸도 들이지 않고
다짜고짜 들이댄다는 말이,
"사또 자제 도련님이 구경 왔다가
추천하는 네 요염한 거동을 바라보고
싱숭생숭햐여 널 냉큼 불러오라는 분부시니
향단이가 입귀를 비쭉하는데, 춘향은
심기 불편한 것을 크게 내색 않고 방자를
꾸짖어 가로되,
"서울에 계시던 도령님이 여염집 규수의
이름을 어찌 알며 설령 알고 부른들 네가
나를 무얼로 알고 당돌하게 쭈르르
달려와서 대중없는 조방질이냐. 도령을
수행하는 배행꾼 노릇이나 여축없이 거행할
노릇이지 이 무슨 상없는 짓이더냐."
듣자 하니 옳은 말인지라 자칫하면 크게
창피볼 일이었다. 방자 어이없어
우두망찰로 서 있다가 얼른 꾸며댄다는
말이,
"도령님은 사대부요 너는 일개
천기(賤妓)의 소생인 터에 네 아무리
매몰차게 내친다 한들 아니 가고 버틸 것
춘향이가 그제사 발끈하여 가파른
시선으로 방자를 쏘아보며,
"명분도 중요하지만 예법 또한 위중한
일이다. 네가 나를 두고 천기의 소생인
것을 험담하고 있다만 난 이미 대비 넣어
속량(贖良)받은 지 오래일 뿐더러, 그 동안
기안탁명(妓案託名)한 일도 없으니 너의
언사 괘씸하여 손발이 떨릴 지경이다.
내 명색 여염의 처녀로 백주 대로에서
여러 눈총이 바라보는 앞인데 무슨 면목을
쳐들고 너와 함께 가자느냐."
춘향의 꾸짖는 말에 주눅들어 언사에
대중없던 방자가 그 말 채 땅에 떨어지기
전에 되받아 치는 것이었다.
"네가 여염의 규수로 자처한다면 나도 할
말 없지 않다. 자고로 계집 아해 행실로
줄을 매고 이웃이 알까 모를까 암암리에
매고 뛰는 것이 당연 예의요 범절이
아니냐.
광한루가 코앞에 있는 이런 되바라진
곳에서 늘어 진 버들가지는 광풍에 겨워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외씨 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白雲間)을 노닐 적에 붉은
옷자락 바람에 요염하게 나부끼고,
백방사(白紡絲) 속것 가랑이가 학의
나래처럼 동남풍에 벌렁 자빠지니 박속같이
흰 네 허벅지살이 허공중에
희끗희끗하였다.
이는, 네가 그네를 핑계삼아 광한루
구경처에 나와 있는 사내들의 시선을
어지럽히려는 속셈이 없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네가 문득 명분을 들추고
자고로 기생이었던 내 어미의 교태를 익혀
오늘 한번 시험삼자는 잔속이 아니더냐."
"네가 내 말의 꼬투리를 잡아 나를
회롱함이다. 그러나 얼른 듣기에는 네 말은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라 비단
나뿐이겠느냐. 다른 집 처자들도 모두 울
밖으로 쏟아져 나와 그네를 즐기고 있는
것을 너 또한 빤히 보고 있지 않느냐.
그럴 뿐만 아니라 설혹 네 말이
그럴싸할지라도 규중 처녀인 내가 낯
모르는 사내가 부른다 해서 체통없이
쪼르르 달려가서 똥칠을 자초할 성부르냐."
방자가 별다른 궁리가 없는지라 광한루로
돌아와 이도령께 여차 여차하여 데려오지
못하였다고 여쭈었다. 이도령이 그 말 듣고
크게 섭섭한 안색 짓지 아니하고,
하고 방자에게 귓속말 몇 마디를
나누었다. 방자 다시 건너가니, 그 사이에
춘향은 향단이 재촉하여 재 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보니, 때마침
모녀간 마주앉아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방자놈 얼른
알아보고 춘향이 하는 말이,
"참으로 끈질기기도 하구나."
방자 그 말 되받아,
"상것이 끈질기지 않으면 양반놈들만
대접하는 세상에서 살아날 가망이
있겠더냐."
"이번에는 왜 왔느냐."
"황송하게 되었다고 도령님이 다시
전갈하라시더라, 도령님이 널 기생으로
알았음이 아니라 듣자 하니 네가 글을 잘
처자를 함부로 불러 괴이하나 양해 하고
잠깐 다녀가라 하시더라."
솔깃해 하는 눈치였던 춘향이가 한마디로
거절치 못하고 주저하는 중에 방자는,
"내가 모시는 도령님은 연안 이씨(延安
李氏)로 풍채와 문장과 음률에 가위 따를
사람이 없더라. 연안 이씨라면
삼한(三韓)의 갑족이 아니더냐.
장안(長安)에 명공거경(名公巨卿)
내외족척(內外族戚)이 벌열하니 가세가
또한 서울 장안에서도 떠르르하지 않더냐.
또 한 미구에 도령님 장원급제하여
성천부사, 의주부윤, 전라감사, 평안감사
차례대로 밟아간다면, 그 팔자가 모두
춘향이 네 팔자이지, 지금 여기 와서
팔촌에 벌초(伐草) 빌듯 구차히 빌고 있는
오늘날 이 기회란 두 번 다시 오기
어렵겠는데, 네 아니 간다 버티면서 쪼만
빼고 있으니 그 데데한 잔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연소하신 도령님이 한 번 부르고
두 번 불러도 시종 거역한다면, 필경
화증이 돋아 너의 노모를 홍살문 안으로
잡아들여 없는 죄 덮어씌워 무수히 물볼기
쳐서 어육으로 만든다면, 무남독녀의 네
애끓는 심사는 오죽 쓰리고 아프겠나.
쓰리고 아픈들 어디 가서 하소연하며
넋두리할 것인가.
네가 여염의 처자로 거조가 도도한 것은
좋겠으나 그로 하여 네 어미가 보지 않아도
될 봉욕을 당한다면, 효성 지극한 너로썬
차마 못 할 노릇이 아닌가."
춘향이 처음에는 께름칙한 증에서도
일을 그의 노모에 연좌시켜 은근히
공갈하여 협박하고 드는 것에 심지가
돌변하고 말았겠다. 여염의 처자가 생면
부지한 사대부의 자제를 내친다 해서 그
어미를 연루시켜 홍살문 안에 잡아들여
물볼기로 다스리기로 한다면, 도대체
사대부의 대의와 체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말이 설령 방자놈 혼자 꾸며 댄
얘기라 할지라도 가슴속 부글부글 끓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더라. 이런 못된
언사를 일개 배행꾼 따위가 공공연하게
농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춘향에게는
배알이 뒤틀리는 것이겠다.
"대중없이 지절거려 남의 심사 건드리지
말고 냉큼 돌아가거라.
꼼짝않을 것이니 그리 알고 오던 길 다시
가거라."
그러나 방자놈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내 너를 위하여 하는 말을 암만해도
듣지 아니하니 가기는 간다마는 정녕 다시
올 것이니 염려는 놓지 마라. 알고 보면
좋은 흥정 놓쳤네."
방자놈의 그 말 듣고 나니 홀연히
일어나서 방자 안동하는 대로 다시금
광한루로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모친의
뜻을 몰라 또한 주저하고 있는데, 먹다 만
밥상머리에 앉아 춘향과 방자놈이 겨끔
내기로 주고받는 언사를 듣고 있던
춘향어미 월매가 말하였다.
"이제 보니 꿈이라는 것이 전혀 허사는
아닌가 보다."
"백주에 꾼 꿈이 아니라 지난밤 야삼경에
있었던 꿈이었다. 밤에 꿈을 꾸니 난데없는
청룡 한 마리가 벽도지(碧桃池)에 잠겨
있어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구나.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령님 성명이
몽룡(夢龍)이라 하니 꿈몽자 용용 자를
신통하게 맞춘 게 아니냐. 그러나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간다고 내칠
수만은 없지 않느냐. 내 홍살문 안으로
질질 끌려가서 물불기 많는 일이야
곤장사령과 알음이 있어 크게 두려울 것이
없다만, 나 아닌 너를 잡아들여 악형을
내럴까 그게 두렵다."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하고 겨우
일어나 방자 안동 받아서 광한루로 향할
마당에 씨암탉 걸음이요, 백사장 위로
기어가는 금자라 걸음이어서 느린 듯
보이지만 재빠르기 그지없다.
그때 기다리기 진력난 이도령이 광한루
누마루 난간에 기대서서 바라보노라니
먼데서 걸어오는 춘향의 자용이 그대로
월태화용(月態花容)이었다. 모색은
단정하고 우아하여 마치 푸른 강가에서
노니는 한 마리 학을 방불하앴고 가뿐 숨
몰아쉬느라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반짝이는 치열이 별과 같기도 하고 옥과
같기도 하였다.
붉은 안개처럼 고운 치마는 그 모두가
연지(燕脂)를 품은 듯하였다.
조선 팔도 삼백육십 고을을 메주 밟듯
발섭하여 서캐 잡듯 뒤진다 하여도 춘향
않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몽룡 지금까지
노닐어 농락하였던 몇몇 고을의 계집아해들
면상이 뇌리에 떠올랐으나 남원부중 코머리
기생 월매 딸 춘향만한 자태가 있을 수
없었다.
그랬으니 알천은 남원에 두고 경기도로
충청도로 아비 뒤따라다니며 못된
계집아해들과 소꼽이나 놀게 된 꼴이 되어
스스로 개탄스럽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드디어 연보(漣步)를 정하게 옮겨 누마루
위로 올라 춘향이 부끄러이 서 있거늘
이도령이 가다듬었으나 떨리는 목소리로
땀을 찔찔 홀리고 있는 방자에게 일러
가로되,
"앉으라 일러라."
춘향의 앉는 자세를 보가 하니 비 온
보고 놀란 듯 눈자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자용이 비길 데 없는 국색(國色)이었다.
과연 월궁(月宮)에 살던 선녀들이 벗
하나를 잃었구나 할 만하였다.
이때 춘향 역시 추파를 살짝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았다. 과연 방자놈
지절거린 대로 준수한 호걸이요 늠름한
기상이 남원부중에선 찾기 어렵던 준수한
총각이었다. 춘향이 얼른 이마를 숙이고
단정히 앉아 있음에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이라 하여도
불취동성(不娶同姓)이라 하였다.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이뇨?"
"성은 성가(成哥)이옵고 나이는 십육
세입니다."
그 말 떨어지기 바쁘게,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 아니더냐. 너의
부모는 구존하시냐?"
"편모슬하이옵니다."
"몇 형제나 되느냐?"
"무남독녀입니다."
"네 집은 어디냐?"
"초면에 여염집 규수의 집을 묻는 것은
범절에 어긋남이 아닙니까."
"너와 내가 이토록 어렵게 만났거늘 또한
구차한 범절을 찾음인가."
"범절 찾는 것이 구미에 당치 않으시면
물러나겠습니다."
"너도 남의 속태우는 데는 이골 난
규수로다. 어찌 내 마음을 이토록 몰라주고
해살만 놓는 게냐."
"아득바득 해집고 드는 도령님의 언사를
아닌 것 같아 꺼림칙해서입니다."
이도령이 속으로 질끔하였으나, 겉으로
내색 않고 선웃음 친 뒤에 짐짓 둘러대는
것이었다.
"그것은 네가 나를 은연중 경계하고
있음에 비롯된 것이지 내가 팔난봉으로
동네 아해들이나 해코지하고 다닌 이력
때문이 아니란 걸 왜 모르나."
"둘러대는 폼이 피아말 엉덩이 둘어대듯
잘도 둘러대십니다."
"말뽄새를 보자 하니 너도 한 사람 부아
돋우는 데는 한 수 톡톡히 하겠구나,
그러지 말고 주지(住址)를 대어라."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짚신 벗어 깔고 앉아
땀을 들이고 있는 방자에게 일렀다.
"예."
"네 춘향이 집을 일러라.."
방자 넌짓 손들어 먼데 가리키며 하는
말이,
"저기 저 건너 동산숲 자욱하고 밝은
연당(蓮塘)자리한 곳 버드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가득한대, 행자목(杏子木)은
음양을 좇아 마주서고 오동나무 대추나무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덩굴 담장 밖으로
휘휘 넘쳐 감긴 죽림 가운데 서 있는 집이
춘향의 집입니다."
"춘향의 집엔 어찌해서 나무치래더냐."
"나무 많이 심고 가꾼 까닭이 없지
않습니다."
"무슨 연유인고."
"남원부중 무뢰배며 쓰잘데없는 한량들이
월매가 일찍이 나루 심어 닥달한
까닭입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모친이로다."
"월매가 고치는 치지 않았습니다."
"선견(選繭)이 아닌
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 하였다."
그때 춘향이 소슬히 얼어나며 부끄러이
여쭙기를,
"시속이 인심이 고약하니 여러 눈총 보기
전에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
이도령이 그 말 듣고 홈칫 놀라서
"기특하다. 그럴 듯한 말이로다. 오늘밤
틈을 봐서 너의 집에 갈까 하나 그때
문전박대하지 마라."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춘향이가 광한루를 떠나 집에 당도하니
기다리고 있던 월매가 호들갑 떨며
뛰쳐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느냐. 도령님이
무엇이라 하더냐?"
춘향이 샐쭉하여 응석으로 대답키를,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열없어서 가겠다 하였더니 저녁에
우리집으로 오겠다고 하십디다."
"그래 무어라 대답하였더냐."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총명한 아이다. 본디 초면의 사내에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두리뭉실한 대답을
하는 법이다. 가르쳐준 적도 없거늘 넌
어찌 그렇게도 자질이 소명하더냐."
"모르겠습니다."
방자 재촉하여 책방으로 돌아온 이도령은
책상 밀쳐두고 팔베개로 가로누워 글 읽는
흉내로 낭랑하게 소리높여 가로되,
"보고지고, 보고지고, 잠깐 만나
보고지고, 지금 만나 보고지고, 어둑어둑한
빈 방안에서 불현듯이 보고지고,
천리타향에서 만난 친구같이 얼른 만나
보고지고, 칠 년 대한 가뭄에 소낙비같이
보고지고, 삼 년 동안 내린 빗속 햇살같이
보고지고, 서산에 낙조처럼 뚝 떨어져
보고지고, 오매불망 보고지고, 답답히도
보고지고, 야속히도 보고지고, 알뜰히도
보고지고, 맹랑케도 보고지고, 살뜰히도
보고지고, 뜨끔하게 보고지고."
보고지고 소리를 한껏 크게 질러놓았더니
멀지 않은 동헌에까지 들렸겠다. 괴이쩍게
"책방에서 지금 난데없이 한창 볶고
지지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오라."
통인이 엎어질 듯 달려가넉 도령께
묻자오니,
"사또께서 무슨 음식을 볶고 지지고
계시는지 수탐하여 오라 하시었습니다.
볶는 것은 무엇이며 지지는 것은 무슨
전병입니까."
도령이 덜컥 놀라 별안간 딴전 피워
둘러대었겠다.
"삼문 밖 주막거리 술청에서 하는 짓을
내게 다 물으시니 내가 매우 만만하신가
보구나."
"사또께서 도령님 목소리를 똑똑히
들으시고 알아오라 하셨습니다."
"딱한 일이로다. 남의 집 늙은이는
늙은이는 귀가 너무 밝아 탈이로다."
부복하고 있던 통인놈이 냉큼
되받아치기를,
"그렇게 전해 올립깝쇼."
이도령 벌떡 일어나 체수 잔망스런
통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이놈아, 그러지 말고 너 죽고 나 죽자.
내 속에 천불 나서 내 뱉은 대중없는
넋두리를 사또께 그대로 아뢴다면, 너는
살고 나만 죽이자는 고얀 심보가 아니냐."
소리 질러 목자를 부라리니 통인놈의
반죽이 방자놈을 따르지는 못하는지라 당장
가위가 질려 금방 오줌을 쌀 듯 쩔쩔
매더라.
"그럼 사또께 돌아가서 쇤네만 죽여
달라고 여쭙겠습니다."
연민을 금할 수 없어 이도령은 오히려 낮은
목소리로
"너 꼭 먼저 죽고 싶더냐."
"죽으면 저승 가겠으나 살아봐야 이꼴인
이승보다야 낫겠지요."
"개똥 위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했다. 네
가서 사또께 일러바쳐라. 네가 말하기를,
내가 미구에 과거 되면, 장원급제 출신하여
쌍개(雙蓋) 띠어 보고지고, 내 소원이
이렇기로 자연 보고지고를 연이어 옮조리게
되었더니라."
통인놈 동헌으로 달려간 뒤에 숨어 있던
방자가 은근하게 하는 말이,
"소리를 낮추시오. 공연히 모르시는 일이
발각될까 두렵습니다."
"방자야."
"사방 해가 얼마나 짓질렸느냐."
"아직 아귀도 아니텃소."
"이놈의 해가 어제는 누구 부음편지를
가지고 달음박질하듯 빨리도 지더니,
오늘은 어이 이다지도 완행이란 말이냐.
발바닥에 종기가 났나. 넓적다리에
가래톳이 났는가. 발목에 삼줄 잡아매고
말뚝을 박아버렸나 이다지도
꾸물거리는가."
그때 동헌 나갔던 퉁인놈이 난데없이
다시 나타나 등촉 두 개를 대령하며
가로되,
"사또님 분부에 이 등촉 두 개가 모두
닳도록 밤새 글을 읽으시되 동헌까지
낭랑하게 들리도록 하라십니다."
도령이 받긴 하였지만 발끈하여 애꿎은
"이놈 누가 너더러 이런 것
가져오랬느냐."
"사또의 지엄한 분부시니 소인인들
어찌합니까."
"냉큼 물러나라."
통인놈 면박주어 물리친 뒤에 등대하고
있는 방자에게 물었다.
"너 냉큼 달려가서 상방에 불 꺼졌는지
보고 오너라."
"아직 일색도 저물지 않았는데
퇴등(退燈)이라니 실성을 하시었소."
"네가 날 살리는 셈치고 어떻게 퇴등케
할 계책이 없느냐."
"파루(罷漏) 치기 전에는 퇴등치
않습니다."
"파루 치는 놈에게 술잔이나 먹여서 지금
"발각이 되는 날에는 도령님이 쇤네
대신하여 다리몽댕이를 부러뜨리겠습니까?"
이도령이 원망하는 눈길을 동헌 쪽으로
보내고 있는데 방자놈이 거들었다.
"늙으면 잠이 없는 법이오."
"너 남의 속 지르지 말고 해가 얼마나
갔나 보아라."
"서산에 걸쳐서 꿈쩍도 아니 하오."
"책이나 가져오너라."
"무슨 책을 가져오리까."
"닥치는 대로 가져오너라."
방자가 한아름 안고 온 책을 되는 대로
집어서 읽는데,
"강선동(降仙洞) 성춘향은 이몽룡의
호구로다. 성춘향의 코는 내 코이고
이몽룡의 코는 성춘향의 코로다. 코와 코가
한데 대고 이러코저러코 새코 나코.
아뿔싸, 정말 새코가 들어왔군."
"도령님, 무얼 하십니까."
"새코가 왔다지 않았느냐."
방자놈 그 말 듣고 혼잣소리로 한마디
중얼거렸는데,
"중화 무렴까지도 멀쩡했던 사람
실성하기 잠시 잠깐이군 그랴."
하고 목청 돋워 청하기를
"도령님 인심 쓰시는 터에 보잘것없오만
쇤네의 코도 한몫 넣어 주시오."
"네 놈의 코는 상것의 코라 양반 코
나가시는 데 범접할 수 없느니라."
"콧대 드센 체 대강하십시오. 퇴기
월매딸 성춘향에겐 드센 체 못하시면서
못난 쇤네에겐 코자랑이 낭자하십니까."
퇴등하였느냐."
"아직 멀었오."
"면박당한 것 설분한답시고 거짓
둘러댐이 아니냐."
"다급하시거든 손수 나가보십시오."
"나중 치도곤당하고 후회 말고 분부
거행하거라."
"수하에 거느리는 하님들 호형하시는
데는 이골 나셨다 하나 아직 퇴등하지 않은
것은 적실하오."
한동안 글 읽는 척하던 이도령은 또한
다시 물었다.
"동헌에 퇴등하였느냐."
"이직 멀었오."
"이 글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구나, 하늘
천 자(天)가 살 시 자(矢)가 되고,
시전(詩傳)이 되고, 심전(十錢)이 되고,
서전(書錢)이 딴전이되고, 통감(通鑑)이
곶감되니 이런 빌어먹을 조화는 평생에
처음이다.
논어(論語)가 놀가리가 되고
맹자(孟子)가 탱자되어 눈에 뵈는 것이라곤
모두가 춘향이 치레뿐이니 너 말대로 내
당장 춘향이 집으로 가지 아니하면 필경
실성하여 거짓귀신되기 십상이겠다."
이도령 넋두리 듣고 있던 방자놈은 그때
비로소,
"서산에 지는 해가 이제 보금자리를
찾느라고 눈을 그물그물하고 있으니 일색이
다한 게 적실하오."
그 말 듣던 이도령은 불에 엉덩이 덴
놈처럼 벌떡 몸을 솟구치며 눈자위 허공에
"방자야, 가자."
"가자 소리 작작하오. 여기서 소란피시면
사또 분부 또한 어떨까 두렵소. 폐문이나
한 연후에 사또 취침 기다려 새앙쥐처럼
빠져나가오."
"새앙쥐라."
"딴 궁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 아무리 다급하기로 어찌 새앙쥐에
비유함인가."
"그럼 여산대호(如山大虎)처럼 동헌
솟을대문 박살내고 뛰쳐나가리까."
그때 이도령 시무룩하여,
"그럴 수야 없지."
"딴 궁리 없거든 입이나 닫고 계시오."
방자놈이 동헌 가서 퇴등한 것 보고 와서
누마루 끝에 나와선 이도령을 손짓하였다.
빠져나갈 제, 방자는 앞에 서서
양각등(羊角燈)에 불을 켜고 염설문
네거리, 홍전문 세거리 이모퉁이 저모퉁이
일부러 먼곳을 감돌아 엄벙덤벙 돌아들어
춘향집 찾아갈 제 방자놈 별안간에
뇌까리는 말이, 공대 아닌 너나들이었겠다.
"우리 심심한데 농담이나 하며 가세."
뒤따르던 이도령이 처음엔 귀를
의심하다가 어이없어 가로되,
"방자야, 상하 체통이 있지 않느냐. 네가
끼니를 놓치고 난 뒤 실성을 하였구나."
방자놈 짐짓 정색하고,
"우리 두 사람이 야밤중에 소술한데
기롱함이 망발인가. 자네 뒤통수에
양반이라 적바림해 붙인들 누가 알며, 내
등뒤에 상것이라 써 붙인들 어느 뉘
화증이 치미는 대로 할라치면 당장
방자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뽑아
아랫구멍에다 박아 주어도 설분을 못 다할
지경이나 때가 때인지라 주리 참듯 눌러
참고,
"길이나 잃지 말거라."
"그리 채근 말게. 속담에 시집가는 데
강아지 따르는 게 제격이라 하였지만 자네
계집 보러 가는데, 내 무슨 망신살 있어
남의 잔치에 깨끼춤인가."
"제발 속태우지 마라."
때마침 밤하늘에는 월색이 걸려 있고,
송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은은한데,
남원부하(南原府下) 강선동에 밤자취가
고요하다. 춘향모 월매는 안석에 의지하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소스라쳐 깨어나
"꿈도 이상하다. 아가씨는 주무시느냐?"
침선하고 있던 향단이 아뢰되,
"아직 글을 읽고 계십니다."
"어디 건너가 볼까."
월매가 장죽 왼손에 들고
삼둥초(三燈草)담으면서 사창을 드르륵
열고 마루로 썩 나서니, 천하는 고요한데
월색만 소슬하였다.
아장아장 뜰에 내려 후원초당으로
들어가니, 이때 춘향은 독서중이었다.
"어머님, 야밤에 어인 일이십니까."
"꿈이 이상해서 그런다."
"무슨 꿈인데요."
"내 방에서 안석에 기대어 잠시 잠이
들었지 않았겠나. 비몽사몽간에 너 자는
침상 위에 채운(彩雲)이 일어나며 청룡이
껴안고 이리 튕굴 저리 튕굴 하다가
소스라쳐 잠이 깨니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구나."
그때 마침 이도령과 방자는 월매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장가인 이도령도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아 머뭇거렸다.
"얘, 방자야."
"예- 이."
"좀 작은 소리로 대답하거라."
"버릇이 그렇게 되었오."
"대문에 빗장이 걸렸구나."
"밤중에 걸지 않고 열어둘까요."
"어떻게 들어가느냐."
"대문 안으로 들어가시오."
"동네가 요란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월장을 하시구려."
"동헌 나설 제는 도적이어서 개구멍으로
빠져나왔오."
"내 언제 내놈 두고 설분할 때
있으리라."
딱딱 벼르는 말에 방자는 심술이 나서 온
동네가 떠나가라 하고 큰소리로 외쳤겠다.
"에, 춘향아 문 열어라."
와지끈 탕탕 두드리니 이도령 민망하여,
"나직이 불러라."
"잠귀 질긴 계집들만 사는 집인데 진작
깨나요."
별안간 호통치는 서슬에 월매가 깜짝
놀라긴 하였으나 속으로는 대문 밖에
당도해서 분탕질하는 위인이 누구란 걸
익히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대문 열고
마주 호통치기를,
놈이라면 대강 인사치레는 할 만한테,
남정네 없는 남의 집에 대중없이 들이닥쳐
상없는 발길질이냐, 이 집이 네 집처럼
보이느냐, 이 천하에 본데없는 놈 같으니."
언사인즉슨 방자더러 꾸짖는 것이었으나
시선은 방자 뒤에 선 이도령을 보며 하는
말이었으니 방자를 꾸짖는지 이도령을
욕보이는 것인지 얼른 갈피잡기 어려웠다.
윌매의 걸찍한 욕지거리에 놀란 방자놈이
한 발 뒤로 물러서긴 하였으나 남의 잔치에
배행하였다가 애꿎은 욕대접을 받고 나니
적지 아니 배알이 뒤틀리는 터라,
"여보시오 마누라님, 야밤의 길손 냉큼
맞아들이지는 못할 망정 다짜고짜 대중없는
욕지거리로 행악이니 이것은 어인
푸대접이란 말이오. 뉘 아들놈이
우리 책방 도령님께서 낮에 광한루 구경
나셨다가 마침 그네 뛰는 춘향보고 저
절세가인이 뉘집 소생이냐고 물었다오.
도령님 분부 거역지 못하여 서로 만나게
주선하였더니 오늘밤에 찾아온다고
흰떡집에 산병(散餠)맞추듯, 사기전에
종자굽 맞추듯 약조되어 찾아온 것인데,
누가 무엇을 잘못하였다고 상스런 말로
문전박대시오."
"그런 약조가 있었다는 얘기 듣지
못하였으니 썩 물러가거라.
내가 소시적부터 관변에서 물잔께나
마시던 놈들은 노소를 막 론하고 딱 싫은
처지이다. 벼슬아치입네 선비입네 하는
것들이란 겉은 잘 닦은 장판처럼
번지르르하되 오장육부는 돼지우리
알고 있기에 애당초 우리집에는 불러들인
적이 없었느니라."
"마누라님, 그럼 내가 관변 것이란
말이요?"
"아전놈들의 대궁밥으로 연명하는
처지라면, 관아에서 구실 사는 놈이
아니더냐."
"정녕 그렇소?"
"그렇다마다."
방자놈이 손바닥으로 잔털이 보송보송한
턱을 만지더니,
"마누라님은 소시적에 장판(杖板)에 엎뎌
물볼기 맞아본 적 있으시오."
월매가 뒤통수 치고 나오는 방차의
은근한 공갈을 분명 들었을 것인데 그
말에는 얼른 대답을 않고 방자 뒤쪽에서
"도령님, 이 늙은 것이 혼자 나와서
함부로 입정 놀린 것을 탓 하지 마시오.
쇤네 도령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에 두지 않으니 염려 마오."
"도령님깨서 내 집에 오시기는 천만
뜻밖입니다. 내 방이 누추하지만 잠깐
들어오시지요."
"글쎄, 젊은 주인이 있으면 들어갈까.
우리 집안 내력이 늙은이는
싫어하는데......"
"춘향은 아직 미거하여 손님 접대하기는
부끄러워 제 방으로 가서 숨어버렸나
봅니다."
"우리 집안 내력이 늙은이와 오래 앉아
담소하기를 딱 질색으로 안다네."
잔소리 많은 젊은이는 사매질해서 내쫓은
내력이 있답니다."
이도령이 월매를 뒤따라 방으로 들어가긴
하였으나 방 한구석에 보자기로 싸들은
것이 기대서 있는지라 혹여 춘향이 숨어
있는가 해서 앉기도 전에 얼른 물었다.
"저기 서 있는 것은 사람 아닌가."
"사람이 아니라 거문고요."
"검은 것이라니, 옻칠한 것인가, 먹칠한
것이가."
"검은 것이 아니라 줄을 타는
거문고입니다."
"줄을 타면 하루 노정에 몇 리를 갈 수
있는 것인가."
"가는 것이 아니라 뜯는 것이오."
"종일 뜯으면 하루에 몇 조각이나
"뜯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줄을 희롱하면
풍류소리가 난다오."
"자네 딸 춘향이도 그 소리를 낼 줄
아는가."
"너무 채근 마시고 우선 좌정하시어
술이나 돌리십시오."
이도령 앉혀두고 월매가 나가더니
향단이가 먼저 마련하여 두었던 주안상올
들고 들어왔다. 나주철(羅州漆)팔모반에
행주질 정결하고, 왜물(倭物)젓가락 상하
알아 씻어놓고, 계란 다섯 수란하여
청채기(靑彩器)에 받쳐놀고, 갖은 양념
많이 넣어 초지렁을 곁들이고 봉산(鳳山)
문배, 임실(任實) 곶감, 호도(胡挑),
백자(柏子), 곁들이고, 문어, 전복,
약포(藥脯), 조각(租角), 백채(白寀)
돈어치 약주 받아 춘향어미 상들이며,
"밤중에 마련한 주안이라 두서가
없습니다."
이도령 엉거주춤 당겨앉는 시늉만
하면서,
"천만의 말이로세."
술 한 잔 가득 부어 도령께 드리면서,
"약주 드시오."
"주주객반이라 자네가 먼저 먹소."
춘향어미 먹은 후에 다시 부어드리니
이도령 마지 못해 한 잔마시고 속으로만
굴리고 있던 한마디를 꺼내놓았다.
"자네 딸이 몇 살인가."
"임자년(壬子年) 사월 초파일에 이
자식을 낳았오."
"노모 있는 여염처자를 한부로 대할 수
자네 의향 어떤까."
춘향어미 윌매가 처연히 가로되,
"무남독녀 저 자식을 제 아비 일찍 죽고
어미 혼자 유복자로 길러내어 저와 같은
배필 얻어 이 몸이 늙바탕에 의탁하자
하옵는데, 도령님은 서울 장안에서도
내노라 하는 귀공자라 일시 풍정 (風情) 못
이기어 한 번 보고 버리시면, 청춘 백발 두
목숨이 그 아니 불쌍하오."
이도령 그 말 듣고,
"자네 그게 웬 소린가. 경솔한 말일세.
명색 대장부의 행사가 그토록 매물차고
범절 없을까. 우리 집 내력에 한 번 사권
여자 까닭없이 버린 적 없고 한 번
혼인하면 귀밑머리가 파뿌리처럼 희게
되어도 동혈해로하기가 가문의 내력일세.
똥칠하지 말게나."
"가문의 내력이 정녕 그러하옵니까."
"그렇다마다."
"맹세하시겠소?"
"자네 만일 내 말을 의심하여 첫고지
듣지 아니하면, 혼서지(婚書紙)는 못할
터나 불망기(不忘記)를 건네줌세."
용의 비늘 새긴 벼루 뚜껑 선뜻 열고
먹을 갈아 호지산(胡地産) 중국의 동북부
지방) 담비털로 만든 붓에 먹물 가차없이
듬뿍 찍어 두루마리 종이에 진서(眞書)와
언문을 한데 섞어 일필휘지 써갈제,

남원 절색 춘향과 백년 두고
해로(偕老)키로 작정하고 저의 모녀 데리고
굳은 언약 성표(成標)하니 만일에
춘향을 버리기로 한다면 귀신이 버티고
하늘이 앙화를 내릴 것이니 이로써
증거하여 증표로 삼다.

정묘(丁卯) 4월
표주(標主)자필 이몽룡

성명 삼 자 적바림하고 수결(手決) 두어
월매에게 건넜다. 월매 글발 읽을 동안
조바심한 이통룡은 또한 다짐함이 사내의
절개였다.
"두 번 다시 날 의심 두지 말게. 내 마음
스스로 헤아리니 간절하고 굳은 마음
흉중에 가득하다네. 서로의 지체는 다를
망정 저와 내가 평생기약 맺을 제
전안(廛雁) 납폐(納幣)아니 한들 바다
외면하겠는가."
"도령님의 언사는 조청과 같이
달짝지근합니다만 예로부터 사내의
마음이란 음흉하여 늑대와 같다 하였고,
계집 희롱하기를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로
여기는 대갓집 도령들이 허다하다 하였오."
"자네 보자 하니 시방 날 부아채우고
있군 그려. 내가 춘향을 아내와 갈이
여김에 일호의 어그러짐도 없이 할 것일세.
내 설령 지엄한 어버이가 있어 그 분부가
서릿발 같더라도 대장부의 한 번 먹은
마음인데 춘향 박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남의 안 채우지 말고 춘향 만나도록
주선하시게."
"앞에 앉혀두고 허물잡기가
거북살스럽소만 쇤네도 도화진 육덕을
내노라 했던 관기였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걸 누가 잊었다 하였나."
"관기였다는 것을 생색 내자는 것이
아니라 관기시절 명색이 먹물께나 먹었다는
선비하며 벼슬아치며 대가댁 도령이란
것들의 야박하고 음흉한 켯속을 보름달
쳐다보듯 환하게 꿰고 있었다는 것이오."
"그중에서 누굴 꿰어찼었나?"
"꿰어찼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음흉하고
괴씸한 심보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울 터득하였더란 얘깁니다."
"그들의 못된 심보가 도대체 어떠했길래
그로부터 십수 년 뒤에 태어난 내게다
험담을 하는 겐가 ."
"험담이라니오. 언감생심 그런 상서롭지
"험담할 요량이 아니라면 냉큼 춘향
만나게 주선하오."
그때 월매는 문 밖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봉(鳳)이 나매 황(凰)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龍馬) 나고 남원에 춘향이 나매
이화춘풍(李花春風)꽃다웁다. 얘 향단아,
도령님 춘향방으로 안동하여 드려라."
"장모 거동 한번 시원시원하다."
그 말 하고 벌떡 일어서는 이몽룡을 월매
또한 무엇이 미심쩍고 무엇에 미련이
남는지, 이몽룡 손목 낚아잡고 한 마디
오금박기를 잊지 않았다.
"근력 있다고 기운껏 다루지 말고 농익은
홍시 만지듯 반숙된 계란 만지듯
떨어뜨리면 깨어질세라 애지중지 살살
다루시오. 앙탈부린다고 삼이웃 떠나가도록
말며, 근력께나 장하답시고 남의 귀중한
딸자식 잔허리 부러 뜨리지 마오."
"장모 말씀 뼈에 아로새겨 일호의 실수도
없게 할 터이니 제발 고비마다 사람
잡아두고 지체시키며 횡설수설로 안 채우지
말게."
이때 춘향이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칠현금(七絃琴) 비껴안고
영산회상(靈山會上) 한 곡조를 시름없이
자아내니 음률은 청아한데 밤은 이미
삼경이라 낮에 광한루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잠을 이룰 수
없더라. 그때 문 밖에서 신발 끄는 소리
나니 그것은 향단이오, 그 뒤에 또한
발자국 소리는 필경 남정네인 것이
틀림없었다.
나서는 춘향의 고운 자용은 이슬 머금은
해당화요, 햇살 받은 부용(芙容)에 비겨 한
줌의 모자람도 없었다. 이도령 안동하여 제
방에 좌정시킨 후 고개 숙여 절을 한 뒤에,
"도령님 누추한 집을 찾아주시니 몸들 바
모르겠습니다."
"천만에 말이로다."
그때 또한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 역력한
터라 그 또한 헤살 놓으려는 월매로 짐작한
이몽룡은 심기 적지않게 불편하였다. 그는
장지문올 열고 무턱대고 쏘아불였다.
"이번엔 무슨 훼방을 놓으려는 것인가?"
그렇게 묻는데 소반에 합환주(合歡酒)
얹고 서 있는 것은 월매 아닌 향단이겠다.
이몽룡은 무턱대고 꾸짖은 게 무안하여
우두망찰하고 있는데, 향단이 소반 들고
춘향이 술 한 잔 가득 부어 이몽룡께
권하면서,
"약주 드십시오."
자리 펴고 자자는 말은 아니하고 술만
권하는 것이었다. 그렇다해서 체면손상
두려우니 권하는 술잔 냉큼 내칠 수도 없어
술잔 받아 반 잔만 벌컥 들이켜고 남은 잔
그대로 권하니 춘향이 고개를 왼쪽으로
숙이고 앉아 은연중 사양하는지라 이몽룡
짐짓 정색하고 타일렀다.
"백년해로하자 하고
일배반분(一盃半分)하였으니 사양 말고
마시거라."
부끄러운 춘향은 권유에 못 이겨
섬섬옥수 내밀어서 술잔을 받았다.
이몽룡이 눈을 들어 방안을 살펴보니
붙어 있었다.
동쪽 벽을 바라볼 제
삼국풍진(三國風塵)요란할 때
한종실(漢宗室)이
와룡선생(臥龍先生:제갈량)찾으려고 걸음
조은 청려마(靑驢馬)를 채찍으로 빨리 몰아
제갈량이 사러던 남양융중(南陽隆中)으로
달리는 모양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남쪽 벽을 바라보니, 세상의 표진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어살던 네 늙은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네 노인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한 점 두점 놓아갈 제
학창의(鶴敞衣)에 망건 쓴 노인은
백기(白基) 쥔 채 홀연히 앉아 있고
갈건도복(葛巾道服)떨쳐입은 노인의 손에는
흑기(黑碁)가 들려 있다.
짚고 바둑 훈수하느라고 어깨 너머
바라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북쪽 벽을
바라보니
육관대사(六觀大篩)손성진(性眞)이 봄바람
돌다리 위에서 여 덟 선녀 희롱타가 잡았던
육환장(六環仗)을 구름 위에 던져두고
합장하는 비는 모양 그려져 있었다.
그림 아래 앉은 춘향은 도대체 달인가
꽃인가. 서시(西施)같기도 하고
숙낭자(淑娘子)같기도 하였더라.
방안치레 둘러보니 자개 박은 책상 위에
온갖 한서(漢書)쌓여 있고 문채(紋彩)좋은
대모면경(玳瑁面鏡)에 단목문갑(檀木文匣),
비취연상(翡翠硏床), 산호필통(珊蝴筆筒),
만호연적(滿糊硯適), 용지연(龍池硯)에
봉황필(鳳凰筆)을 갖추었고 쌍요강에
금자병풍(金字屛風) 구석에 세워두고,
거문고 가야금이 또한 세워져 있었으니
월매가 딸 춘향이 수발에 얼마나 알뜰하고
지성인지 미루어 알아차릴 만하였다.
간단한 잔채(盞采)나마
일배일배(一盃一盃) 부일배(復一盃)로
취흥이 가득 돌아가는지라 어느덧 술상을
밀치며 이몽룡 계면쩍었으나 용기 내어
한마디 불쑥 던졌다.
"이제 밤도 이슥하였으니 잠자리에 드는
것이 순서 아니냐."
이몽룡이 띠를 끌러 건네주었더니
춘향이가 다소곳이 받아 의장에 집어넣고
부끄러운 듯 돌아앉는다.
"이제 너도 옷을 벗어라."
"도령님이 먼저 벗으셔요."
"도령님 먼저 벗으셔오."
"매사는 간주인(看主人)이라는데 주인
먼저 벗는 게 도리 아니냐."
"매사는 간주인이라는데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셔야지요."
"아무래도 오늘밤이 심상치가 않구나."
"무엇이 심상찮으십니까."
"너를 이리저리 뜯어보아도 세상 인물이
아닌 듯하였다. 백옥루(白玉樓)의 선녀로서
황정경(黃庭經: 老子의 경전으로 道亮家의
서책)을 잘못 읽고 옥황상제께 득죄하여
인간세상으로 떨어진 선녀로만 알았더니 너
고달 빼고 있는 모양새가 선녀는 백번
아니로다."
"그 말씀 한번 잘하시었오. 소녀는
여염에 들어앉은 견문없는 처자일 뿐 감히
천부당만부당입니다."
"너의 머리와 눈썹과 눈은 화공이 그린
듯하고 손길은 부드럽기 고사리와 같고
깁으로 묶은 것처럼 가느다란 허리는 감히
누구와 쌍이 될까. 그 붉은 입술과 하얀
이로 말하면 해어화(解語花): 양귀비를
일컬음)가 너 아니더냐. 그런데 오늘밤
주저하는 너의 모양 보자 하니 실망스럽기
그지없구나."
"소녀가 도령님께 어여쁘게 보이다 말고
실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도령님의 심지가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아름답지 못하다니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이씨 문중 혈손 중에서
내 또한 심지가 곱고 무던하기가 소문이
짜한 중에 그 무슨 엉뚱한 말로 나를
"소녀 아직 오늘밤 이 자리처럼 남정네를
가까이한 적이 없거늘 소녀더러 옷부터
벗으란 분부는 아름답기 이전에 음탕함이
먼저란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보아하니 네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하긴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부중 벗어난 적
없겠으니 네 견문 있다 한들 또한 얼마나
졸렬할까.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날 봉
자(蓬) 비점(批點)이요, 우리 둘이
마주앉았으니 좋을 호 자(好) 비점 아닌가.
불망기 적어주어 백년가약 맺었으니 즐긴
락 자(樂) 비점이요.
야반무인(夜半無人)적막하니 벗을 탈
자(奪)비점 아닌가. 한 베개를 너와 나 두
사람이 베게 되었으니 안을 포 자(抱)
비점이요.
비점이요, 네가 내 하초를 굽어보고 내가
네 넓적다리를 굽어보겠으니 웃음 소
자(笑) 비점이요, 남대문이 개구멍이요,
인경에 매방울이요, 선혜청(宣惠廳)이오
푼이요. 호조가 서푼이요. 하늘이 돈짝
같고 땅이 매암을 돌 것인데 어찌 시골
처녀를 차지하고 있는 너는 고비마다
허물만 잡고 깐죽거리며 토라지는 꼴이
흡사 음흉한 네 어미의 버르장머리와
방불하구나."
"아니 어찌하여 이 자리에 계시지도 않은
제 어미를 헐뜯으려 드십니까."
모잡이로 꺾어 앉아 있던 춘향이
발끈하여 가파른 시선으로 이몽룡 쏘아볼
제, 매서운 눈초리가 오히려 꽃답다. 벌써
양기가 차 오른 사추리는 뻐근하여 정신을
벗기려 한다면 또 무슨 까탈이 생겨 공든
탑 무너질까 두려운데 춘향은 정색하고
다시 묻겠다.
"선혜청은 어디 있기에 오 푼 어치밖에
되지 않으며 호조는 어찌하여 서 푼밖에
되지 않소."
"너와 내가 부둥켜안고 이불 속에서 뒹굴
제 서슬 시퍼런 호조인들 서 푼 값어치밖에
되지 않으며 곡식 섬이 산처럼 쌓인
선혜청이라 한들 불과 오 푼 어치로 보인단
말인즉슨 다른 오해는 두지 말게."
"그러고 보니 소녀 짐작가는 게 없지
아니하오."
"무슨 짐작 또 있어 남의 속을 태우려
드는가."
"도령님 소시적에 계집과 어울려
선혜청이 오 푼 짜리인지 호조가
서푼짜리인지 알 턱이 있겠습니까."
듣자하니 그럴싸한 말이라 당장 둘러댈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으나,
"그런 말로 날 면박할 요량 말게.
그렇다는 것은, 내가 동헌에 출입하는 늙은
벼슬아치들이 화롯가에 할 일없이 둘러앉아
서로 농하는 것을 귀동냥하였던 풍월일 뿐
내 어찌 소년의 나이로 대중없는 방사를
저질러 터득할 것이 있겠는가."
"귀동냥한 풍월을 도령님께서 몸소
경험하신 견문처럼 자랑하시니 도령님
허세도 알 만한 것이 아닙겠습니까."
"너 정녕 속만 채우고 기어코 벗지 않을
작정이냐."
견디다 못한 이몽룡이 정색하고 묻는데,
일어설 기세가 역력하였다. 그러나
이몽롱의 볼멘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너는 처녀, 나는 총각.
결발부부(結髮夫婦)가 그 아니며 불망기와
합환주가 납채(納采) 행례(行禮)와 조금도
손색이 없거늘 이성지합(二姓之合)이
우리의 연분인데, 내가 이 방에 들어와
너와 수작하기를 벌써 이슥하여 닭이 울
녘까지 이르렀음인데, 네가 나를
시험삼자하고 요리 비켜나고 저리 빼치면서
이토록 괴롭히고만 있으니 네가
해어화(解語花)에 서시(西施)를 뒤집어 쓴
절세가인이라 한들 내 단념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한숨소리가 구들장이 꺼지도록 들리고 난
뒤 사위 적막하고 촛불 소슬한지 한참이나
들렸다.
"가지 마셔요."
가지 말라는 춘향의 한마디가 귀에
둘려옴에 그 달기가 조청이요 꿀이었다.
귀가 번쩍 뜨이고 하초가 저절로
들썩하였다. 그러나 계집 다루기에 이골 난
이몽룡은 짐짓 못 들은 척하고 태연하게
되물었다.
"이제 뭐라고 하였더냐?"
"가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분명 그런 말을 하였더냐?"
"그 말 아니면 무슨 말을 하였겠습니까."
"너로 말하면 야속하고 뻔뻔스럽구나.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
"소녀가 가지 말라고 잡는 것이 야속하단
것입니까."
주다가 이제 동이 터서 닭이 울 때가
되어서 가지 말라고 잡는다면 병 주고 약
주고 약 주고 병 주는 조롱이 아니고
무었이냐."
"그래서 역정이십니까."
"이 지경당해서 역정 아니 할 사내가
있다면 필경 배냇병신이거나 반편이일시
분명할 게야."
"닭 울녘이 되었다 하나 도령님과 사랑할
말미는 아직 많겠으니 염려 놓으시고 얼른
주무세요."
이몽룡이 허리띠를 끌러 내려놓으려
하자, 춘향이 냉큼 받아 의농에 집어넣고
부끄러운 듯 돌아앉아 고개 숙이고 있으니
그 자태가 한 입 배어먹고 싶도록
아름답다.
"도령님 먼저 벗으셔요."
"네가 먼저 벗어라."
"도령님 먼저."
"매사는 간주인이라 했다면 네 먼저 벗는
것이 순서다."
"매사는 간주인이라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셔요."
다투다 못한 이몽룡이 달려들어 춘향의
옷을 벗기려 들었다. 춘향이 계면쩍고
부끄러워 두 손으로 옷고름을 잡았다.
이몽룡 짐짓 낭패한 표정으로 춘향을
나무란다.
"이게 웬일이냐. 신랑신부 첫날밤에
옷고름이 떨어지면 상서롭지 못하다
하였다. 벗자, 어서 벗자, 불두덩에서
야단났다."
하시다니, 양반행세 이것 아니지
않습니까."
"이 판국에 양반 어디 있고 염치는 무슨
개뼉다귀냐."
고개 숙인 춘향이가 반몸을 비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하는 폼이 미치 붉은
연꽃이 미풍에 시달림을 받는 듯
하늘거린다. 치마 벗겨 내던지고 속옷조차
벗길 제 춘향의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맺히었고, 되바라진 입술은 한껏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몽롱이가 춘향의 옷끈을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기지개를 쓰니 속옷자락 활랑
벗겨져 발길 아래로 떨어졌다. 옷이 활짝
벗겨지니 춘향이 소스라쳐 놀라
미꾸라지처럼 미끄러져 금침(衾枕)속으로
왈칵 뒤쫓아 들어가 저고리를 벗겨내니 그
희디흰 살신이 형산(荊山)의 백옥인들
비견될 바 아니었다.
벗긴 옷 둘둘 말아 한면 구석에 던져두고
골즙(骨汁)을 내기 시작하는데, 삼승(三升)
이불은 방 네 귀퉁이의 먼지를 쓸어가며
춤을 추고, 윗목에 놓여 있던 자리끼
사발과 발치에 놓여 있던 자기 요강은 이불
속의 장단과 높낮이에 맞추어 정그렁 생쟁
숭어뜀을 하더라.
문고리도 질세라 달랑달랑 섣달 추위에
사시나무 떨 듯 몸부림을 쳤고, 등잔불도
이불 귀퉁이가 들썩거릴 적마다 까물까물
까무라쳤다간 다시 일어나더라. 날이 새는
것도 아랑곳 않고 이합, 삼합(三合)으로
이어지는데, 이불 속에서 입맞추는 소리가
마개를 따는 소리와 방불하여 자주 귀를
의심하게 하더라. 그러더니 또한 사랑가로
이어진다.
"맹호연(孟浩然: 당나귀의 시인)은 나귀
타고, 이태백은 고래 타고, 적송자(赤松子:
옛 선인을 일컬음)은 학을 타고,
장강(長江:揚子江)의 어부는 일엽편주
올라타고 찌걱찌걱 저어갈 제, 이몽룡은 탈
것이 없어 춘향이 너나 타고 놀까. 등등 내
사랑아. 너 죽어도 나 못 살고 나 죽어도
네 못 살리라.
우리 둘이 사랑타기 아차 한 번 죽게
되면, 후생기악(後生期約) 먼저 두자. 너는
죽어 무엇 되며 나는 죽어 무엇 되리. 너는
죽어 물이 되어 칠 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은 음양수(陰陽水)라는 물이 되거라."
"나는 새가 되되 원앙이라는 새가 되어
그 물 위에서 주야로 놀게 되면 나인 줄
네가 알리."
"제가 죽어서 물이 안 되고 꽃이 되면
어찌 하시겠소."
"복숭아꽃, 살구꽃, 버들꽃, 영산홍,
황국 백국 다버리고 목단화 되어 피어 있을
제, 나는 죽어 나비 되어 꽃 위에 앉아
노닐 제, 그 나비 나인 줄 알려무나.
둥둥둥 내 사랑아. 월(越)나라의
서서(西施)인가. 너 무엇을 먹고 싶으냐.
수박통 옷꼭지를 떼버리고 강릉(江陵) 백청
주르르 부어 은수저로 뚝 찍어
먹으려느냐."
"싫소."
"그러면 은을 주랴 금을 주랴. 시금털털
"그것도 싫소."
"그럼 무엇을 먹으려느냐."
"먹는 것 입는 것 다 싫으니 한 번 더
안아주오."
"나만 음탕한 줄 알았더니 너 또한
색골이니 이를 두고 상것들 말로는 묵은
된장에 풋고추 궁합이라 한다더라."
춘향이 그 말에는 대답 않고 문득
정색하더니 단내 나는 입으로 뇌까린다.
"도령님."
"웨야."
"도령님과의 인연이 용두사미되지 않도록
우리들의 백년가약 도중변경 마옵소서."
이몽룡은 그 순간 벌떡 일어나 앉으며
가부좌 틀고 앉아 나무라듯 대답하였다.
"양반의 한마디는 바윗돌보다 굳다
있겠는가. 염려 붙들어 메어라."
미명(未明)에 일어나 책방으로 돌아갈 제
밤새 꼬박 문 밖에서 망을 보던 방자에겐
수고하였다는 말 한마디 없었으니 미천하긴
하나 배알이 없지 않았던 방자가 한마디
건넸다.
"도령님."
"웨야."
"지난밤의 음탕했던 구들농사에 하초를
다치셨소?"
"내가 하초를 다치다니? 멀쩡한 하초를
두고 어째 시까스르느냐?"
"골즙(骨汁)을 과도하게 내지 않았다면,
어째 발걸음이 가재걸음처럼 모잽이로 가고
있소?"
"네가 날 조롱함이니 예사로 두고 볼
"역정 내지 마시고 고정하십시오. 지난밤
도령님께서 춘향이와 홀딱 벗고 네
방퀴퉁이가 좁다하고 들썩거리며 깔딱깔딱
넘어가는 감창소리가 밤새 낭자할 제,
가랭이에 달린 고기방망이만 뒤틀어 잡고
찬이슬 맞아가며 문 밖에서 수직하던
쇤네의 그 고초를 짐작이나 하고 계시었소?
쇤네 비록 불상놈이긴 하나 배알조차
없지는 아니하고, 쇤네 비록 체수
잔망스럽고. 염소 수염을 달고 다니는
처지이긴 하지만, 사내 구실조차 못 하는
고자는 아니랍니다."
"너 하는 말이 적지 않게 수상 쿠나."
"수상하다니요."
"고자가 아니라면 본데없는 상놈 주제에
남의 신방에 뛰어들 작정이었더냐."
아닙니다."
"그럼 네 말의 골자가 무엇이냐."
"도령님께서 방사를 즐기실 제 문밖에서
고초받는 쇤네와 같은 부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놈 말뽄새 보아하니 설경료(舌耕料)를
달라는 게냐. 아니면 밤새 망을 본
행하돈에 군침이냐."
"행하를 바라고 도령님을 배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방자놈 하는 말이 은연중 언중유골이라
이몽룡이 잠자코 있었다.
그날부터 낮이면 글을 읽고 밤이면
춘향이를 찾아다녀 온갖 희롱에 온갖
교태를 자랑하니 두 사람의 정은 깊어만
갔다. 어쩌다가 사또가 출타하여 동헌이
손바닥만한 남원부중에 소문 아니 날 수
없었다.
사또 이한림은 아들 몽룡의 소문을 듣고
있었으나 어찌할 묘방이 없어서 다만 색을
과도하게 탐하게 되면 병이 나지 않을까
염려만 하던 중에 서울의 내직으로
발탁되어 경방자(京房子)가 남원으로
내려왔겠다.
그러나 그것 알 리 없는 이몽룡은 그날
밤에도 책방에서 몰래 빠져나가 춘향의
방에서 질탕하게 색탐하고 있었다. 방자가
밖에서 듣자하니 방안의 잡담이
가관이었다.
"얘 춘향아. 우리 업음질이나 해보자."
"애고 잡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한단
말이여요."
것이었다. 방자 문밖에서 바지가랭이
뒤틀어잡고 귀를 기우릴 제, 이몽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업음질이란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와 내가 활활 벗고 업고 놀고
안고 놀면, 그게 바로 업음질이 아니냐."
"부끄러워 못 벗겠소."
"네 말이 무척 수하구나. 이때까지 사뭇
벗고 논 터에 때 아니게 아니 벗겠다니 그
무슨 해괴한 언사냐."
"그래도 못 벗겠소."
"네 아니 벗겠다면,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활딱 벗어
한편 구석에 밀쳐놓고 고기방망이 움켜잡고
방 한가운데 우뚝서자, 춘향이
소스라쳤으나 금방 웃고 돌아앉으며 하는
"영낙 없는 낮도깨비요."
낮도깨비든 밤도깨비든 천하의 만물 중에
짝없는 생물이 없거늘 오늘밤은 두
도깨비끼리 놀아보자."
"그러면 불이나 끈 뒤 놀아보지요."
"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밝은 데서 어서 벗거라."
"애그 난 싫소."
이몽룡이 싫다는 춘향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려 들었다. 그 어르는 품이 만첩첩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 물어다 놓고 이는
없어 먹지는 못하고 으릉으릉 아웅 어르듯,
북해의 검은 용이 여의주 입에 물고 안개
속을 넘노는 듯, 단산(丹山)의 봉황이
죽실(竹實)을 물고 오동나무 가지 사이를
노니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답숙
빨며 입술도 쭉쪽 빨며 주홍 같은 혀를
물고 모이 찾는 비둘기같이 꾹꿍꾹꿍
을흥거려 뒤로 돌려 답숙 안아 젖무덤을
감아쥐고 저고리 치마 바지 속옷까지 활딱
벗겨놓으니 춘향이가 부끄러워 홍당무가 된
얼굴로 고개 들고 앉았다.
이몽룡이 답답해서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콧등에 구슬땀이 맺혀 있다.
"춘향아 이리 와서 업혀라."
춘향이가 더욱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워 말고 업혀라. 이 방에는 우리
둘뿐이지 않은가."
춘향을 와락 당겨 업고 추스르며,
"아따, 엉덩이가 무척이나 무겁구나. 내
등에 업혀보니 어떠냐."
"한껏 좋습니다."
있었더냐. 정말 좋으냐."
"좋아요."
"백사만사가 모두 품앗이가 있느니라.
내가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줘야지."
"난 기운 없어 못 업어드리겠소."
"업는 방도가 없지 않느니라. 나를 등에
올려 업으려 말고 업는 시늉만 하면
되느니라."
이몽룡이 업히는 시늉이자 춘향이 하는
말이,
"애고, 잡스러워라."
"자고로 방사란 잡스러울수록 정이
도탑게 쌓이는 법이다. 우리 말놀음을 하여
볼까."
"말놀음이 무엇이오."
너와 내가 벗은 김에 너는 온 방안을 기어
다녀라. 나는 네 궁둥이에 딱 붙어서 네
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짝을 내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이랴 하거던 너는 뒤로 물러서며
알심 있게 뛰면 되느니라."
"애고, 잡스러워서, 난 싫소."
"넌 싫다는 것도 많다."
"그런 잡스런 일이 어디 있소. 양반 행세
깎이오."
"양반 행세 버린 지 오래 전 일이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듣자하니 방자놈의 목소리였다.
"도령님, 사또께서 부릅시오."
방안에선 이 무슨 밤도깨비 같은 말인가
했던지 코대답도 없었다. 방자가 목청을
높였다.
이몽룡이 허둥지둥 동헌으로 들어가니
사또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너부죽하니
절을 올리는데 사또는 과색하여 파리하게
된 아들의 처량한 신색을 뚫어질 듯
바라보다가,
"서울서 교지가 내려왔느니라."
이몽룡이 금시초문이라 무슨
난데없음인가 하고,
"아버님 무슨 교지입니까."
"경사(京司)로 승직이 되었다."
화들짝 놀라는 시늉하며 반겨 말하기를,
"아버님 가문의 영광이옵니다."
"나는 문부(文簿) 사정(査定)하고
뒤따라갈 것이니, 너는 내행(內行)을
배행(陪行)하여 내일로 곧장 떠나거라."
이도령 그 말 듣고 보니 갑자기 절벽
가문의 영광이요,즐거운 경사가 난 것은
틀림이 없었으나 눈앞이 캄캄하여 잠깐
사이에 희고 검은 것조차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사세가 위급하게 되었으니 되든지
안 되든지 잔기침 여러 번에 주저하다가
어린 양울 부리매,
"아버님 먼저 행차하시면 소사가
중기(重記) 닦고 가겠습니다."
"이제 뭐라 하였더냐."
"소자가 중기 닦고 나중 간다
하였습니다."
"남원고을 수령이 나였더냐 너였더냐."
"아버님이십니다."
"이놈이 실성끼를 보이는가 하였더니
멀쩡한 놈이 아니냐. 네놈이 남원고을
관장이 아니관대 어찌해서 내가 닦을
"소자는 다만 아버님의 고초를 덜어드릴
욕심으로....."
"이런 오줄없는 놈을 보았나. 내가
네놈의 속셈을 모르고 있는 줄 아느냐.
관장질로 외읍(外邑) 오면 자식 버리기
십상이란 말이 있더니 이는 필경 네 같은
놈을 일컬음이다.
아비 고을 따라와서 하라는 글공부는
소홀하고 밤낮으로 몹쓸 장난에 발목이
빠져 있더니 이제 와선 아비의 분부까지
허섭스레기로 알고 내침이 아니냐. 서울
가면 급제는 고사하고 혼로(婚路)조차 막힐
테니 이런 낭패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통인을 돌아보며,
"이놈을 내아(內衙)의 골방에다 가두라."
내아에 있는 모친께는 허물이 적은지라
들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방자가 밤중에
내아로 들어가서 사또가 다시 동헌으로
불러낸다 거짓 들이대고 이도령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방자의 속셈을 몰랐던
이도령이 내아에서 뛰쳐나오매,
"아버님이 어찌하여 또 다시 나를
부르신단 말인가."
"아버님 아니라 쇤네가 비계(秘計)를 쓴
것입니다
"비계라니, 그건 삼겹살에 낀 비곗덩이가
아니냐."
"비겟덩이가 아니라 남 모르게 꾸민 꾀란
뜻입니다."
"이놈아, 시방 내가 곡경을 치루고
있다는 것을 네놈이 몰라서 계략이나
꾸미고 있는 게냐. 비곗덩이 좋아하거든
방자놈이 대문 벗어나다 말고 우뚝 서서
이도령을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안됐소. 그만 실성을 하고 말았구려."
"이 박살할 놈, 내가 실성을 하다니
엇따대고 양반 욕보이려 드느냐."
"춘향이 집에 말미 내어 다녀오시라고
쇤네가 비계를 짜낸 것인 데 쇤네를
박살하려 드시다니....."
그제서야 이도령 알아차리고 방자에게
사죄하였다. 그길로 집을 나와 춘향의
집으로 향하는데 설움은 북받쳐 올랐으나
차마 노상에선 오줄없이 울 수가 없어 참고
있다가 춘향이집 문 앞에 당도해서야 아예
건더기째 왈칵 곡지통이 터지는 것이었다.
영문 모르는 춘향이 깜짝 놀라 뛰어
"애고, 이게 왠일이요."
"글쎄, 나도 모르게 울음이 건더기째
왈칵 쏟아진다네."
"불러가시더니 꾸중을 들으셨소. 아니면
노상에서 조롱을 당하셨소. 서울서 무슨
기별이 왔다더니 상서롭지 못한
소식이었소?"
춘향이는 이도령의 목덜미를 담북 안아서
허벅진 젖무덤으로 이리 문지르고 저리
문지르는 일변 치맛자락 걷어올려 눈물
자국을 씻어주면서,
"도령님 울지 마오."
그러나 눈물이란 것이 고이한 것이여서
만류하고 드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더라. 울음이 그치기는커녕
울대가 껄떡껄떡 넘어갈 듯 서러운지라
치맛자락으로 이도령의 콧날를 잡아 비틀듯
닦아내며,
"그만 울고 이러시는 내막을 소상하게
말이나 해주오."
그제서야 이도령 얼추 반정신을 차리고,
"사또께서 경사의 부승지(副承旨)로
승직하셨단다."
"그게 참말이오."
"참말이 아니었으면 내가 왜 울겠느냐."
"가문의 경사인데 도대체 왜 우신단
말입니까."
"너를 두고 가게 되었으니 내 어찌
서럽지 않을꼬."
그런데 춘향의 대꾸가 놀랍고 아금받다.
"언제는 남원땅에서 평생 두고 사실 줄
아셨소. 또한 어찌 저와 함께 가기를
저는 여기서 가산을 정리한 연후에 뒤따라
올라가겠소. 그러나 큰댁으로 가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니 큰댁 가까이 있는 막살이
오두막에 툇마루 딸린 협소한 방 두 개면
족하니 수소문해서 사두십시오.
우리 식구가 가더라도 공밥은 먹지
아니할 터이니 그럭저럭 지내다가 도령님
나만 믿고 장가 아니 갈 수 있겠소.
부귀영총(富貴榮寵)재상가에
요조숙녀(窈窕淑女) 가리시어
혼인하실지라도 저를 아주 잊지는
마십시오. 도령님 과거하여 벼슬 높아
외방의 관장(官長)으로 도임하시면 저와
같은 계집을 대방마님으로 내세운다면 무슨
체면이 되겠습니까."
이제 와선 만류하던 춘향이가 눈물을
본심을 미쳐 짐작치 못했던 이도령은 얼른
둘러 대기를,
"그게 이를 말이냐. 사정이 그러하기로
지금 네가 한 말 그대로를 사또께는 차마
여쭈지 못하여 대부인 앞에 여쭈었더니
꾸중이 대단하시었네. 양반의 자식이
어버이 따라 하향하였다가
화방작첩(花房作妾)하여 데려간다는 말이
고려 적부터 있을 수 없었던 일이고, 또한
조정에 들어간다 한들 벼슬길 막히기도
십상이라더라.
불가불 임시나마 이별이 될 수밖에 없어
내 이렇게 껄떡껄떡 울고있다."
춘향이 그 말 듣고 있더니 돌연 안색을
차갑게 고치고 눈자위를 둘 곳 몰라
붉으락푸르락 눈을 간지럽게 치뜨고 온몸을
"이게 웬일이오."
왈칵 달려들어 치맛자락을 와드득
쥐어뜯어 이도령 앞으로 내던지며,
"이것 모두 필요 없소."
그리고 와르륵 방안으로 내달아
엎어지면서 체경(體鏡)조차 엎질렀다.
"서방 없는 춘향이가 살림살이 무엇하며
화장은 하여서 뉘에게 보여줄까. 몹쓸 년의
팔자. 이팔청춘 젊은 것이 이별될 줄 누가
알았으랴. 부질없는 일에 신세만
버렸구나."
그러더니 천연스레 돌아앉아 정색하고
되물었다.
"여보 이도령. 이제 막 하신 말씀
참말이었소 농말이었소. 우리 두 사람 처음
만나 백년가약 맺을 적에 대부인 마님께서
일이었소. 아니면 사또의 엄중한 분부 따라
하신 일이었소. 두 분 빙자하여 발뺌하니
도대채 당신이 사람이오.
짐승이오? 광한루에서 잠깐 보고 내 집에
찾아오셨을 때 도령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아 결발부부(結夫婦) 맹세키를
하늘을 천 번이나 가리켰고 몇 번이나
맹세할 제 내 정녕 믿었더니 이런 날벼락에
거짓됨이 어디 있소.
모질도다 모질도다 이도령이 모질도다.
야속하고 야속하다 양반지체 야속하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반상놈 원수로다.
천하에 다정한 것이 부부의 정이라
하였건만 속셈을 떠본다 하고 한마디 해본
말에 늙은 암말 엉덩이 둘러대듯 댓바람에
둘러대는 말이 괘씸하기 짝 없어라. 여보
버리셔도 그만인줄 알지 마오.
상사로 병이 들어 죽게 되면 내 필경
악귀가 될 것이니 천하 없이 걸출한
도령인들 재앙입지 않을까. 사람 대접 그리
마오."
넋두리하며 엎드려 슬피우는데 춘향어미
월매는 물색 모른 체, 혼자 앉아
중얼거렸다.
"애고, 저것들이 이젠 사랑싸움까지
벌이는구나. 아니꼽다 하였더니 눈꼬리에
쌍 가래톳이 설 일도 많이 보네."
그러나 당장 내달아 가로막고 선다는
것도 일단 점잖치 못한 일이라 두고만 보고
있는데, 울음이 진작 그치지 않고 길게
빗나가고 있는지라 하던 일 밀쳐놓고 춘향
방 영창 아래로 가서 엿듣자 하니
월매가 제 복장을 손바닥으로 탕탕치며,
"어허, 동네사람 들어보소. 오늘
우리집에 사람 둘 죽네에-."
두 간 마루로 쭈르르 달려가 문 밖에서
마루장을 탕탕치며 목청 돋궈 딸을
원망하였다.
"이년, 차라리 자진하여라. 너 죽은
시신이라도 지체 있다는 저 양반이 지고
가게 차라리 죽어라. 저 양반 올라가고 네
여기 있으면 누구 간장 녹이려느냐. 내가
일면 귀가 젖도록 일러주지 않았더냐.
후회되지 않게 도도한 마음먹지 말고
여염사람 중에 수소문하여 지체 또한 너와
같은 사람을 배필하여 봉황이 짝을 얻어
노는 양을 보고 싶다 않았더냐.
내 말 듣지 않고 꼴에 양반 골라
익히 짐작하고 살얼음 밟듯 지켜본 지 몇
달포가 되지 않아 이꼴 났으니 이제 나는
모르겠다 ."
방문을 획 열고 방으로 뛰어들어
이도령의 멱을 뒤틀어 잡았다.
그러나 차마 패대기치지는 못하고
넉장거리면서,
"내 딸 춘향을 버리고 간다니 무슨 죄로
그러시오. 행실이 글렀든가 예절이 남에
뒤지든가. 언어가 불순했든가. 노류장화와
같이 길거리에 나가 웃음을 팔든가. 이
봉변이 왠일인가. 군자가 숙녀를 버리는
법이 칠거지악이라면 못 비리는 법은
없는가.
내 딸 어린 춘향 데리고 밤낮으로 홀딱
벗겨 사랑할 제 맷돌치기로 희학질하다가
그것조차 싫증 나면 소타기, 말타기,
죽마(竹馬) 타기 흉내하며 삼이웃에서
밤잠을 설치도록 기운껏 감창소리 내질러
늙은 나까지 싱숭생숭하고 삼이웃 젊은
여편네들이 모두 아이를 가지게 질탕하게
노닐 제 내 딸 춘향이 배꼽노리가 아프고
이웃에 창피한 들 한마디 원망이나
주책이라고 면박이라도 하던가.
쇠가죽으로 지은 노리개였다 하더라도
벌써 맞창나고 말았을텐데 사랑이 뭐길래
원망 한마디 없었지 않았던가 백 년
삼만육천 날에도 떠나살지 말자 하고
맹세하기 인색하지 않더니 말경에 와서는
칼로 무 자르듯 뚝 떼어버리다니.
우리 춘향 버린 몸으로 낙엽 되면, 어느
나비 다시 올까, 백옥 같은 우리 춘향
다시 젊지는 못하리니 무슨 죄가
엄중하여 남의 딸을 허송 백년 시키려
드오. 그 긴 세월 한숨마다 솟는 눈물로
치맛자락조차 다 적시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의복조차 아니벗고 외로운 베개
위에 벽을 안고 돌아누워
주야장탄(晝夜長嘆)울게 되면 그것이 병
아니고 무엇이오.
뼈에 사무친 상사(相思)를 어미된 내
또한 다스리지 못할진데 그로하여 죽게
되면 이 늙은 것이 딸 잃고 사위 잃고
태백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 던지듯이
혈혈단신 늙은 몸은 누굴 믿고 산단
말이오.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고 춘향
아니 데려간단 말이오. 양반자세한다는
도령의 모가지는 둘 가지고 다니시오?"
필경 이도령에게 원수 갚겠다는 말인즉슨
이도령이 불퉁가지를 내면서,
"여보소 장모 날 두고 험담 마소. 춘향만
데려가면 그만 아닌가."
"그 말 한번 듣기 좋소, 아니 데려가고
견뎌낼까."
"너무 거칠게 야단 말고 여기 앉아 내 말
들어보오. 춘향을 데려간다 해도 가마 태워
간다면 필경 소문 나서 낭패볼 것인즉 달리
변통할 궁리가 없네. 지금 기가 막히는
중에 꾀 한 가지를 생각하고 있네만 이
말을 입밖에 내게 되면 양반 망신만 하는
게 아니라 선조양반까지 모두 망신할
말이로세."
"무슨 말이길래 그렇게 거북하단
말인가."
들어보소. 내가 창피를 무릅쓰더라도 필경
춘향을 데려가겠네. 조금 전 한 말은
춘향의 심사를 떠보려고 흰소리 한번
하였네. 내일 올라가는 내행 앞에는 신주를
모신 가마가 앞장을 설 것이야.
그때 신주는 모셔내어 내 콩소매 속에
감추고 춘향이를 가마 속에 태운다면
남이야 신주가 마로만 알았지 그 속에
춘향이가 탄 줄 뉘 알겠나."
그 말 듣고 월매가 땅이 꺼지게 한숨
토해내며
"시방 그걸 대장부가 궁리해 낸 계략이라
해서 지절거리고 있오."
"그만한 꾀가 어디 또 있을 수 있겠나."
"양반입네하고 설치는 작자들의 꾀가
모두 그 모양이던가."
물끄러미 바라보던 춘향이는 애간장이 더욱
타는 듯하여,
"어머니 건너가오. 만사는 제가 알아서
처분할 것이니 아무 염려말고 건너가오.
양반 체통에 오죽 답답하였으면 그런
말씀까지 하였겠소."
춘향이 말에 월매는 성질이 발끈 나서 두
사람을 싸잡아 삿대질하며,
"처분 처분하지 마라. 이때까지 처분은
어쨌길래 이 꼴이 되었더냐. 엉덩이
둘러대라면 지체없이 들러대고, 벽치기
등치기 시키는 대로 농락당하고 난 뒤
이별이면 가차없는 이 꼴이 잘된
처분이나."
"어머니, 사세 다급한들 어찌 그런
음탕한 말까지 다하오. 입이 있다고 해도
사람, 음탕한 것 삼이웃에 소문 나겠소."
"이판사판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소문날 게 두렵더냐. 상것들 주둥이는
하나뿐이고 양반 주둥이는 둘씩
가졌다더냐. 하나 둔 주둥이는 피차
매일반일 터에 주눅 들어 못할 말이
무어냐."
넉장거리하고 있는 월매를 달래어
내려보낸 뒤에 춘향이 사죄하기를,
"도령님, 어머님 망령을 노여워 마오."
머쓱해 있던 이몽룡은 그나마 드잡이를
당해서 창피한 꼴 보이지 않았던 것만
다행으로 생각해서,
"노여운 게 무엇이냐. 되려 내가
부끄럽다. 해로백년 굳은 맹세 잊지는
않았지만 사정이 약차하여 널 두고 가려
몹쓸 놈으로 지목되어 가문에서 쫓겨난다
하더라도 너와 내가 손을 잡고 농사인들 못
짓겠나.
문전걸식인들 사양할 수 있겠나.
문전걸식하게 되면 신세는 고단하고
입성남루 하여 똥개들에게 발뒤축 물어
뜯겨 일생동안 하초에 피칠갑으로
지내겠지만 마음 고생이야 있겠느냐."
어찌보면 언중유골(言中有骨)이요,
어찌보면 언중무골(言中無骨)인 그 말 듣고
춘향이 나직하게 아뢰었다.
"아닙니다. 도령님 혼자서 먼저 가오.
도령님이 어버이의 분부를 거역하게 되면
가문에 똥칠이요. 자식으로서 불효됨도
막급이 아닙니까. 도령님은 불효가 되는데
춘향이는 열녀 되겠습니까.
따르라 하였는데 어찌 내가 불효의
지아비를 두고 열녀가 될 수 있겠소. 춘향
생각 떨쳐버리고 멀고 먼 길 편안히
가시오. 가서는 길에 비 만나면 고뿔 날까
두려우니 몸조심하시옵고, 올라가신
후에라도 행락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글을
읽어 대과급제 영달하면 그때 가련한 춘향
잊지 말고 찾아 주옵소서. 도령님 입신양명
신명께 축수하며 고이 기다리겠습니다."
춘향이 그 말하고 눈물 내 쏟을 제,
"춘향아 울지 마라. 내가 올라간
뒤에라도 사창에 달 밝은들
천리상사(千里相思) 부디 마라. 타향천리
먼길에 너를 두고 내가 떠난 후 백만 장안
넓은 곳에 미녀가인 많다 하나 너 하나
잊지 못해 내 가슴이 어이 편할 건가. 제발
첫 정분에 첫 이별이라 울지 마라
만류하고 있는 도령부터가 눈물이
비오듯하니 춘향인들 또 다시 아니 울고
견딜 수 없었다. 도령이 수건 꺼내어
눈물을 씻어준다.
"울지 마라. 오늘은 만부득하여 이별한다
하여도 만날 기약 없는 것이 아니다. 마음
한 가지 변치 않는다면 그 어디 대순가. 한
시 바삐 치행(治行)하란 독촉이 삼엄하니
나는 다시 아문(衙門)으로 들어간다마는
내일 떠나기 전에 다시 또 올 것이니 울음
그치고 나가서 어머님 위로하여라.장모의
애간장인들 오죽 타겠느냐."
이몽룡이 춘향 작별하고 관가로
들어갔더라. 이튿날 밝기 전에 치행하여
서울로 올라갈 제, 사또께 하직하고 내아에
내어 안장 곱게 지어타고 오리정(五里程)을
다달아서 육방하인 하직하는데, 하인들이란
본래 귀에 듣기 좋은 소리하는 데는 이골
난 위인들인지라,
"한양 천리 먼 길 조심하여 가옵시고,
장차 전라감사로 배수(拜受)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오냐 고맙다. 오랫동안 너희들께 폐만
끼치고 간다. 신관사또 오시더래도 전과
같이 아금받게 시중들지어다."
얼른얼른 대충 작별하고,
"방자야, 춘향이 집으로 나귀 돌려라."
이때 춘향이는 오직 가슴 답답하고
눈앞은 아득하기만 하여 정신없이 그날
밤을 보냈더니 닭이 홰를 쳐 날도 벌써
밝아왔다. 하기 싫은 이별이고 보내기 싫은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밤새도록
앉아 깨닫게 된 일이었다.
떠나시는 도령님께 하직인사나 하려고
어머님 모시고 향단에게 다담 들려 오류정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급기야 말머리 돌린
이도령을 만났다. 와락 반긴 춘향은,
"도령님 가시는 길 잠시 나귀에서 내려
쉬어 작별하사이다."
이도령 얼른 나귀에서 내리며,
"오냐 춘향아. 불경에 이르기를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필리(會者必離)라 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주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이 겪어야 할
천리요, 공도(公道)일진데 지금 이별
서럽지만 장차를 생각하여 서로
보증(保重)하자꾸나."
꺼내어 춘향에게 건넨다.
"대장부의 맑은 마음 이 명경과 같을
진데 천만년이 지나간들 변할 리가
있겠는가. 장부의 마음을 비치는 바이니
고히 간수하여 두면서 나를 본 듯
반기어라."
명경 받은 춘향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지환을 벗어 이도령께 건네었다.
"이 지환은 천길 깊은 땅에 천년을 묻혀
있다 한들 변함없는 옥지환입니다.
드리오니 낭군께 비는 말씀 옥과 같이
불변하고 둥근 환과 같이 헤어짐이 없도록
하옵소서."
춘향어미 월매는 차마 넉장거리하며 소란
피우지는 못하고 혼자서 훌쩍훌쩍 울다가
이윽고 도령님 앞으로 나와 어제와는 달리
"도령님 내 말 듣소. 내 나이 육십이라
늦게야 저걸 낳아 금옥같이 길러낼 제,
하나님께 축수하고 칠성님께 기도하고
나한불공(羅漢佛供), 삼신불공(三神佛供),
용왕제(龍王祭), 산신제(山神祭)를
오늘까지 성심성의 다했던 것은, 인물도
부족없고 지벌도 부족없는 봉황의 싹을
얻어 금끝 좋게 노는 양을 눈앞에 두고
보자 하였던 것이오.
그런데 뜻밖에 도령님이 내 집에
찾아와서 춘향을 간청하니 상것의 신분에
눈이 뒤집히도록 환장되어 선선히 허락하여
금옥 같은 내 자식의 가슴에 못 박히게 한
것은 오직 이 늙고 미욱한 어미의
불찰이었소.
나 같은 년이 바로 천하 잡년, 지하
혀를 끊어 돼지 줄 년이오. 내 소시적
관기로 살면서 생이별 몇십 번에도 심에
차지 않아 이제 와선 딸년까지 이별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더러운 년의 팔자요, 젊은
시절 저지른 죄값을 하는 게요. 그러나
대하장강(大河長江)흐르는 물살을 뉘라서
막아내며 서산에 지는 해를 뉘라서 잡아 맬
수 있겠소.
어찌할 수 없는 지난 일을 말한들 무얼
하겠소. 오직 한양 천리 먼 길에 병이 날까
두려우니 우리 모녀 생각 말고 부디 안녕히
가시오.
한 가지 당부 말씀 드릴 것은 내 나이
반백이라 오늘이나 내일이나 죽을 날이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지만 내 비록 죽고
없더라도 내 딸 춘향 잊지 말고 백년기약
하리다."
"장모 너무 서러 마소. 홍진興盡)하면
비래(悲來)하고, 고진(苦盡)하면,
감래(甘來)라네. 오늘날 슬픈 이별이
나중의 기쁜 만남을 기약함이 아닌가. 내년
봄에 내려와서 자네 모친 데려갈 것이니
그리 알고 너무 달달 들볶지 말게.
자네 딸 춘향이가 금지옥엽이란 것은
골백번 들어서 내 이미 알고 있고 나 도한
춘향이를 깨어진 요강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는 것을 자네도 번연히 알고 있음이
아닌가. 내 설령 춘향을 사랑 않는다
할지라도 자네 모녀 뿌린 눈물 가슴 간직
아니하고 나 좋을 대로 놀아날 성부른가.
내 허우대를 보게나. 내가 그만한
덕목조차 갖추지 못할 볼상놈으로만
때 아닌 입씨름이 다시 부리를 헐게
되는가 싶은데 난데없는 방자란 놈 이마에
땀이 노드린 듯해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보서 사랑님네들. 사랑도 좋지만 이게
무슨 장난들이오. 사랑하면 이별조차
이토록 오래시오? 잘 있거라 잘 가거라
다시 오마 기다리겠소. 서로간에 두
마디씩만 지절거리고 나면 짧아서 좋은 게
이별이오.
머지 않아 다시 만날 좋은 이별에 한 번
서로 마주보고 웃고 나면 그만일 텐데
오장육부 녹아나게 무슨 놈의 이별이
심봉사와 딸년의 이별처럼 서럽고 길기도
하오.
대부인 행차가 벌써 오수역(鰲水驛)을
지났으니 여기서 뒤따라 잡으려면 호달마
찢어지게 되었소. 쇤네 여기까지
되돌아오는데 벌써 불두덩에 가래톳이
섰다오."
이몽룡이가 눈물자국으로 지분거리는
눈자위를 치뜨며 방자를 나무랐다.
"이놈아, 날 생각하여 되돌아와서 연통한
건 고맙다만 생색 그만하거라. 아무려면 그
사이에 불두덩에 가래톳이 섰겠느냐.
불두덩에 가래톳이 선 건 네놈이 아닌 바로
나다."
"말 잘못했소. 불두덩 아리라 허벅지에
가래톳이 섰오. 하긴 쇤네가 질탕한 방사도
않았음인데 불구덩이 가래톳이
서겠습니까."
"이놈 엇따 대고 흰소리냐."
"흰소리든 검은 소리개든 빨리 가기나
애매한 쇤네더러 배행 소홀히 하였다고
잡아 엎치고 등줄기에서 누린네가 나도록
매찜질하시면 이틀 먹을 양식도 없는
처지에 자리보전하게 되지 않겠니까. 쇤네
자리보전하면 도령님께서 우리 식솔 먹여
살릴라오?"
이도령이 할 수 없이 나귀에 오르며,
"올라가면 즉시로 방자편에 기별하리다."
나귀에 채찍질하여 나는 듯이 딜아나니
나르는 새와 같은 나귀 등에서 보면,
청산도 우쭐우쭐 녹수도 얼른얼른 산자락
얼른 끼고 돌아, 물길 건너 아득하게
멀어지니 푸른 물에 놀던 원앙 짝을 잃은
거동이요.
해변에 놀던 백구가 빗속으로 떠나간 듯
남원부중 가물가물 등뒤로 멀어지고
감아도 눈을 떠도 선한 것은 오직 춘향의
모습이었다.
그린 듯 고운 맵씨 눈앞에 아른거리고
낭랑하던 그 음성 귓가에 쟁쟁하니
이도령의 마음이 금수가 아닌 이상 속편할
리가 만무였다.
그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말갈기를 적셔
나귀가 비에 젖은 듯 후줄근하였다.
"얘, 방자야."
"예.-."
"맑은 하늘에 어인 비가 내린단 말이냐."
"비가 내린다니 무슨 해괴한
말씀입니까."
"그러면 말갈기에 무슨 물이냐 ."
"그것은 도령님의 눈에서 떨어진 비
때문입니다."
"하기야 이몽룡이란 분은 이 세상에서
딱한 사람뿐이지요."
"그게 아니라 주제꼴이 미숙하고
미련하다는 뜻이다."
"불각시에 하시는 말씀 속속들이
알아내긴 쇤네 또한 미숙이오만 말씀이
밉상입니다."
"사내 명색이 칠정치 못하게 눈물만 질질
짜고 있었다니 이건 내가 칠칠치 못한 탓이
아닌가."
"질질 짜고 있었던 것이 칠칠치 못했다면
그것은 도령님이 미련한 탓이 아니라
춘향이 깊은 심지가 송죽과 같았던
탓이었습니다."
첫 정에 첫 이별이라지만 이별이 서러워
지난밤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고 오류정까지
모습을 곁에서 보자 하니 쇤네 또한
오장육부가 녹아나는 듯 하였습니다.
춘향의 건데기 눈물 보지 않았다면
도령님의 눈물이 말갈기를 적셨겠습니까."
이때 춘향이는 버드나무 등걸에 몸을
의지하고 도령님 가시는 길 아득하게
바라보고만 있다가 다시 바라보니 홀연
사람의 형용은 사라지고 고즈넉한 산색만
푸르렀다.
"향단아."
"예."
"내눈을 좀 닦아주련."
"눈을 닦아달라시니 왜 그러십니까."
"산코숭이를 돌아가시던 도령님의
뒷모습이 문득 보이지 않으니 필히 이상한
일이 아니냐."
사라진 산자락 코숭이를 바라보다가,
"사방을 둘러봐도 노을에 물든 산자락만
고즈넉할 뿐 이젠 채찍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네 말이 너무나 야속하고 박정하구나.
잘 좀 보아라."
"야박하시다 한들 저 또한 보이지 않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좀 더 보아라."
"겹질이 싸인 싸인 산주름에 노을만
빗기고 있을 뿐 요천 강물을 퍼다가 눈을
씻는다 할지라도 이젠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부턴 무얼하고 지날까. 이곳에서
부둥켜안고 울던 임은 어디 가고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런 속절없는 이별도
있었던가. 나귀 몰던 채찍소리 아직 귀에
살꼬."
"아씨, 진정하셔요. 아씨께서 이토록
애간장 태우며 울고 계시면 어머님
간장인들 오죽하시겠소. 어머님 보아서라도
눈물을 거두시오."
집으로 돌아왔으나 사랑은 병이 되어
장탄식 늘어놓으며 두문불출 임
그리워하네. 부모같이 중한 몸이 천지간에
없었지만 떠나간 낭군을 잊지 못해
부모에게 불효되네. 가슴은 에이고 두
눈에선 눈물만 흘리는 몇 달포가 흘렀을까.
하루는 월매가 편지 한 장을 들고 구르듯
달려왔다. 춘향이 반겨 하고 얼른 받아
뜯어보니,
춘향아. 천리상거(千里相距)하여 주야로
상사(相思)로다. 노친슬하에 잘 있느냐. 이
당사문안(堂事問安)안녕 하시다. 너와 내가
백년을 언약하였을진대 구태여 해집지
않아도 내 마음은 네 이미 알고 있고, 네
마음 간절함을 내 또한 어이 모르고
있으랴. 날아가는 새가 알고 마루 밑을
기어가는 미물들도 알고 있음이다.
그러나 날개가 없으니 새가 될수 없고
일각이 난감하달지라도 이 천리길을
어이꼬. 네 마음에 가진 것은 정녀(貞女)의
매울 렬 자(烈), 우리들의 깊은 언약 지킬
수 자(守)뿐이로다. 장차 만날 일이 있을
것이니 날 매원(埋怨)말고 다소곳이
기다려라.
만단설화(萬端說話)를 어찌 이 좁은
지면에 모두 적을 수 있겠느냐. 내 여기에
입 맞추느니 너 또한 내키거던 그리하여라.
서울도 사람 사는 땅일진데 나는 어이 못
가는가. 허공을 우러러 망연자실로 앉아
있는데 난데없는 한마디가 월매의 입에서
떨어졌겠다.
"얘야, 어디로 오는 어음(於音)이냐."
춘향이 어미 말 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뭐라 하시었소?"
"어느 객주로 오는 어음이냐 하였다."
"어음은 무슨 어음이란 말입니까."
"그럼 편지만 달랑 왔다는 것이냐."
"편지만 오지 않구요."
월매의 눈시울이 상기되었다.
"이도령이란 놈이
해의채(解衣債:화대)조차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냐. 내가 처음부터 깍쟁이 인줄 알고는
심성 어디 가겠느냐."
어미 월매가 실성을 하였는가 아니면
돈에 상승을 하였는가. 춘향이 말구멍이
막혀 대꾸조차 못허고 있는데,
"그래 양반의 자식으로서 장안의
갑부라고 떠벌이면서 여기서는 남의 딸을
대리고 농탕쳐서 버려놓고 해의채는
고사하고 삼베 짜투리 하나 보내지 않는
철면피한 놈이 어디 있느냐.
그놈 먹이고 대접하느라고 농 밑에
감춰두었던 일백오십 냥을 먼지 하나 없이
바닥 내고 말았다. 그런데도 무명 한
짜투리 보내는 법이 없이 딱 잘라먹는
후레자식이 어디 있느냐. 그놈의 자식
날벼락이나 맞고 뒈지라지."
눈앞이 아득한데 비록 부모일 망정
가시처럼 거북하고 욕되는 터라,
"어머니 그게 어디 말이요 쓰다 버릴
농담일지언정 그런 몹쓸 말이 어디 있소
부모님 뫼시느라 고초 겪을 도령에게 시게
무슨 돈이 있겠으며 돈이 있어 보내주신다
한들 무슨 염치로 그걸 받으리오.
우리 두 사람 천생연분되어 합궁(合宮)한
것이지 제가 들병이로서 살꽃 팔아 가용에
보태려고 도령을 침석에 모셨던 것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이 춘향이가 어머님의
여식이 분명하다면 도령님은 하나뿐인
사위가 아닙니까.
사위는 반자식인데 자식에게 대접한
식대(食代)를 받으려 하신단 말입니까.
아니면 딸자식과 참석을 같이 하였다 해서
화대를 받으리까. 도대체 어인 시샘이며
나라의 왕이 초(楚)나라를 치려할 때
아무도 감히 막아서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루는 어떤 시종이 나무로 만든
새총을 가지고 후궁의 꽃밭에서 새를 잡고
있다가 왕의 꾸중을 듣게 되었다지요. 왕의
꾸중에 시종이 대답하였습니다.
뜨락의 나무에는 메미가 앉아 노래하며
이슬을 먹는데 버마재비는 당장 자기에게
덮치려는 새가 뒤에 있는 것을 모르고
매미를 잡아먹으려 하고 새는 또한 제가
지금 견주고 있는 새총이 뒤에서 겨누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이들은 모두
자기들의 위급한 처지는 깨닫지 못한 체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있는 것입니다라고
여쭙게 되어서 왕을 깨닫게 하였답니다.
어머님과 제가 가계를 검소하게 잡도리
힘쓰고 이웃의 침선감을 받아 삯바느질을
알뜰하게 시행하면 가용을 쓰는 데도 큰
불편이 없거늘 어찌 떳떳하지 못한 공것을
바란다는 것입니까."
"나는 공돈을 바란 적이 없다. 그놈이 내
사위임이 분명하고 네가 또한 그놈의
지어미임이 분명하다면 그것이 어찌 탐탁치
않은 것이며 분수 밖의 것을 바란다는
것이냐. 지아비란 고려적부터 지어미를
공양해 왔다는 것을 글줄이나 읽었다는
네가 전혀 모른다는 것이냐."
"그러하지만 도령께서는 아직 글을 읽어
급제를 바라보는 처지로 당신의 섭생조차
부모에게 의탁하코 있음인데 어찌 지어미와
장모까지 공양할 수 있는 재물과 돈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개를 쫓아도 달아날 구멍을
말고 건너가세요."
"너로 말하면 과연 요조(窈窕)와
숙녀(淑女)가 따르지 못할 국량과 얌전을
지녔고, 태임(太壬)과 태사(太師)가 넘보지
못할 현부인(賢婦人)의 온당함과 자질을
갖추었구나.
그러나 요조숙녀의 국량이든 태임태사의
자질이든 나물죽이라도 먹어야 산다는 것은
부처님의 뜻이었고 장가 든 남정네가 그
계집의 섭생과 살림두량을 도맡아야 한다는
것은 단군 조상 이래로 변함없었던
삼신할미의 가르침이다."
"옛말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하루,
장오자의 제자였던 구작자는 스승에게
이르기를, 방금 가르친 것이 저에게는 매우
인상깊으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도리는 성인들도 남들에게 깨우쳐주기
어려운 것인데 내가 아는 것이 없이 어찌
잘 가르칠 수 있으리오.
너는 그 조급하기가 닭의 알을 보자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어 그 시각을 알려
하고 화살을 보자 새고기를 먹으려
하는구나. 닭의 알을 보고 수탉이 홰치는
소리를 들으려 하니 병아리도 내리지
않았고 또한 수탉일지 암탉일지도 모르면서
어찌 시각을 짐작할 수 있게 하겠으며 아직
활에 살을 메기지도 않았음이니 새를 맞힐
수 있겠는지 없겠는지도 모르면서 고기를
먹으려 한다고 꾸짖었습니다.
설령 어머님이 조급할지언정 가다리는
이덕을 갖추시는 것이 미련한 딸을 둔
어버이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후예로 공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이
한헌제 때 북해상(北海相)으로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공북해(孔北海)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조조가 오십만 대군을 풀어
남하하여 유비와 손권을 치려할 때 공융은
반대하여 조조를 만류하였다. 조조가
고집을 부리며 듣지 않았다.
그러자 공융이 몇 마디 불평을 하였다.
이때 공융과 반목하고 있던 치려라는
사람이 그것을 조조에게 고자질하였는데
조조는 곧장 군사를 풀어 공융의 식솔을
체포하여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공융이 채포될 때 그의 여덟 산
난 아들과 아홉 살 된 아들이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마주앉아 장기를
빨리 피신하라고 성화를 부렸으나 두
아들은 역시 태연자약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새의 둥지가 뒤집혀지는 판국인데 그
둥지 속의 알이 어찌 깨어지지 않겠습니까.
네 낭군이란 그놈이 어미와 너를 여기에
팽개치고 장달음을 놓듯 한양으로
직행하였고 또한 당도하여 일자상서를
적어보냄에 헌 삼배 짜투리 한 가지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공융의 새둥지가 부서진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이며, 공융의 어린 두
아들이 새둥지 뒤집혀진 것을 깨닫고 그
아비와 함께 잡혀가서 죽었듯이 너와 나
역시 그것을 깨닫고 우리 살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 아니더냐.
차마 공융의 아들들처럼 죽을 수야 없는
놈을 잊어버려라."
"어머님,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
차후부턴 하지 마소. 도령님을
잊어버리다니요. 길거리에서 오가다가 만난
뜨게부부일 망정 한번 맺은 인연을 무쪽
베듯 할 수 없고, 도령과 같은
기남자(奇男子)와의 인연을 자반고등어
뒤집듯 먹 보기로 한다면, 저는 준수한
사내를 만날 때마다 살송곳을 꿰지 못해
안달하는 음탕한 논다니계집에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 말 한번 알과녁을 맞히는구나. 그럼
너와 그놈이 길거리에서 오다가다 만난
사이였지 삼신할미가 점지해서 만난
사이라더냐."
"광한루에서 만났지 않았습니까."
내노라하는 바람둥이 한량들이 시조가락
읊조린다 핑계하고, 너와 같은 풋조개나
줏으러 다니 는 한길바닥이지, 그곳이
들어앉은 대가댁 사랑이냐 아니면
별당이라더냐. 입은 가로 찢어져도 침은
바로 뱉으라 하였다.
"제갈량(諸葛亮)이 유현덕(劉玹德)을
만난 것도 길바닥이랍디다.
제가 이 누추하고 옹색한 별당에
들어앉아 고리타분한 글이나 읽으면서
소일하였다면 도령과 같은 준수하고 비범한
낭군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꼴에 밤똥 싸지른다더니 널 두고 하는
말이고, 뺑덕어미 밉다니까 엿 사먹어가며
서방질이라더니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 내가 걸출하시다는 네 서방 혼연대접
사천(私賤)일백오십 냥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축내어
거떨내고 만 것은 개구리가 언덕에서
떨어진 양 하자.
장차 우리 모녀 툭수리 차고
거리동냥하게 생긴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더냐. 미련하게 뚝심으로 참고 견딜 게
따로 있지 뱃구레 속에서 거위가 깨끼춤을
추는데도 뚝심으로만 견딜 작정이냐.
뚝심만 힘이 아니다. 슬기로운 것도
힘이고, 분별이라는 것도 힘이고
경륜이라는 것도 힘이다."
"어머님, 사천 일백오십 냥 거덜낸 것이
그토록 부아통 터지고 쓰리다면 제가
오늘부터 방적과 삯바느질로 날밤을
지새우더라도 벌충을 하겠습니다."
냥이든지 네 벌충하려거든 벌버둥쳐봐라만
그 돈 벌충도 쉽지 않으련다."
"일백오십 냥이라더니 언제 사천 냥으로
불어난 것입니까?"
"네가 사천이라 하였지 내가 사천이라
하였더냐. 물귀신 삼시랑이 들었느냐 왜
내게 뒤집어씌우느냐."
"사천 일백오십냥에 딸과 사위를
팔려드시는 게 아닙니다."
"말끝마다 일백오십 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기나
하는냐."
"어떤 돈인데요."
"네 아비 성참판 생시 때 내 앙탈과
성가심에 배겨내지 못하다가 본가에게
으름장 놓고 공갈하여 빼앗다시피해서
공양한답시고 혓바닥으로 씻은 듯이
날려버리고 말았으니 복장치고 자빠질
노릇이 아니냐.
본가에서 이런 일을 눈치라도 체게
된다면 아니래도 그 심술굿은 여편네가
한걸음에 달려와서 무슨 분탕질 을 하게
될지 뉘가 알겠느냐. 아니래도 서방
잡아먹었다 해서 앙갚음할 빌미만 찾고
있는 판국인데, 그 돈을 그 바람둥이 놈을
공양하는데 깡그리 탕진하고 말았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면 모르긴 해도 내 머리채를
뽑아버리려 할 것이다."
옛말에 말이 바로 씨가 된다 하였고,
방귀가 잦으면 똥싸기 마련이라 하였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좋을 말은 애당초
입초에 올려 삼이웃이 짜하도록 소문 나지
다스리는 국량이 되는 것이다.
월매 비록 성미 팔팔하고 세상 견문 있어
경위가 밝다 한들 무지렁이 사내 성참판의
국량을 따를 수 없었고 춘향 비록 글 잘
읽어 슬기로운 심성을 가졌다 하나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손가락질을 모면하기
힘들었다.
그 아비 성참판 죽고난 뒤 집안 가계
제반사를 월매 혼자 주선하다 보니 집안에
두서없고 사람 사귐에 등한한 터라 이웃과
소원하게 된 터였다.
그러던 중 또한 이도령과의 생이별로
모녀간에 걸핏하면 삼이웃이 들릴 만치
입씨름이 잦아 아우성소리가 아침 저녁으로
담장을 타고 넘는지라, 이웃의 할 일없는
여편네들과 악다구니들은 밥만 먹고나면
돌각담에 붙어서서 발뒤축을 올리고 집안을
엿보기 일삼더라.
그것은 모녀간에 주고받는 하찮은
입씨름에도 걸핏하면 마당으로 쭈르르
달려나와 복장거리를 일삼는 월매의 상없는
꼴을 구경삼자 함이었다.
월매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것을
모르고, 내친 김에 성참판 살아 있을 때,
앙탈과 공갈로 성참판 본가의 재물을
탈취하다시피 하였다는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고 또한 본곁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달려와서 분탕질하리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담장 너머에서 두
모녀의 입씨름을 엿들었던 이읏의 자발없는
시작한 것이었다.
하루는 어떤 여편네가 윌매집의 대문을
발길질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는
나무비녀가 꽂혀 있었고 삼베 저고리
몽당치마에 뒤축 떨어진 짚신을 발에 꿰고
있는 그 여편네의 초췌한 형용이 흡사
메추리를 거꾸로 말아맨 듯 남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양미간에 서려 있는
적의는 살천스럽기가 서릿발에 방불하였다.
면판은 남상져서 월매와 다름 아니었고
대문을 걷어차고 있는 발길질도 그냥 두면
당장 대문을 부술 것 같이 세력이
드세었다. 입가에 번진 허연 침버캐를 보자
하면 월매집에까지 당도하는 동안 분김을
참지 못하여 허둥지둥 숨가쁘게 달려온 게
방에 모잼이하고 팔베개로 잠시 새우잠을
자고 있던 월매가 대문 밖의 소연함을
눈치채고 일어나 미닫이를 열고 대문
쪽으로 바라보며 다짜고짜 호통을 쳤다.
"누구냐. 어느 놈이 남의 집 대문에다
성화를 먹이고 지랄이더냐."
그런데 대문 밖에서 돌려오는 대답이
무척이나 괴이쩍다.
"이년 봐라. 벼슬아치며 건달들에게
살꽃이나 팔며 연명하던 천하에 없는
상계집이 말버릇 한 가지는 방불함이
대갓집 안방마님이 아니냐."
경황중이라 귀여겨듣지는 않았지만 대문
밖에서 이죽거리고 있는 말대답이 도저한
터라 성미 팔팔한 월매 또한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남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무턱대고
악증이냐. 소이가 어디에 있는지 내 알 바
아니로되 대문간에서 썩 물러나지 않으면,
당장 달려나가 모가지를 돌려 앉히리라."
이년, 냉큼 문 열지 못하겠느냐. 내가
어찌해서 여기 와서 악증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년 또한
모르지 않을 터. 창피 톡톡히 당하기 전에
기어나와서 빗장부터 벗겨라."
"내게는 네년 같은 종반간이나
일가붙이는 일찍이 둔 적이 없으니
다리몽댕이 작신 분질러 놓기 전에 썩
물렀거라."
"아니래도 본 데 없는 네년이 작신
분지를까 해서 제비행전 날렵하게 졸라매고
왔으니 내 다리 부러질까 겨워 말고
"저년이 색에 주려서 실성을 하였다.
상승을 하였나. 대낮부터 남의 집 대문
앞에 와서 자꾸만 벗기라고 짓조르고 드는
거조가 아무래도 불두덩이 근질근질하여
실성을 한 게로구나."
집안에 있던 월매의 이죽거림이 거기에
이르자, 대문 밖에서 성화를 먹이고 있던
여편네는 화가 꼭두까지 나서 입에선
게거품이 일었다.
"이년 입정 사납게 놀리지 말고 어서 문
열어라. 네년의 배짱이 드세다 한들
또아리로 샅 가리기다. 네년의 간활한
이간질로 궁도에 빠져 목숨부지조차
어려워진 내가 가만있을 성 불렀더냐. 어서
문 열어라 이년."
"엇따 대고 호년이 낭자한가. 상승을
부리느냐."
그러나 입씨름이 길게 갈 것 같았던
문밖의 여편네는 젖먹은 힘까지 합쳐
어깨로 대문을 들이받었다. 그 사품에
질러둔 빗장은 부러져 대문은 열렸고,
부인네는 뜨락 안으로 들어와 제 힘에 겨워
나둥그러졌다.
그러나 흙투성이가 된 부인은 금방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마루로 나선
월매를 향하여 삿대질을 하였다.
"낮짝에다 물찌똥을 내갈길 년. 엇따
대고 대거리가 낭자하냐. 이년, 마당으로
썩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혼쭐을 뺄 년."
상종은 없었지만 면분은 없지 않았다.
눈을 씻고 바라보니 성참판의 본실
마누라였다. 그런데 이 여자가 무슨
년이나 지난 지금에 달려와서 분탕질이란
말인가.
인연을 끊고 지낸 지가 십칠 년이
지났건만 무슨 까닭으로 난데없이 뛰어들어
물찌똥을 갈긴다 위협하고 삿대질로
악증이란 말인가. 용이 개천에 떨어지니
각다귀가 엉겨붙는다더니 이런 사정을 두고
하는 말인가.
호랑이 없는 골짜기에 여우가
왕노릇이라더니 이를 두고 이르는 것인가.
너무나 어이없어 우두망찰 바라보고만
있는데 심통이 멱까지 차오른 본실 마누라
쭈르르 마루로 뛰어 올라 월매를 딴죽걸어
넘어뜨리며 침을 튀겨 매원한다.
"이년 공방살이 오 년 동안 오늘 있기만
바라고 이만 갈고 있었느니라. 내 서방
기어다니면서 희학질에 색정을 풀며 열략을
즐길 제, 나는 독수공방에 틀어박혀 동전을
굴리며 그 긴긴 밤들을 뜬눈으로
지새웠느니라.
그런데 그 서방을 지리산에서 잡아먹고도
성이 차지 않아 그 알량한 재산까지
늑탈이었더냐. 네년의 방에 놓인 사방탁자,
문갑, 연상(硯床), 장침(長枕),
안석(安席), 방침(方枕), 요강하며,
가께수리, 경대, 삼층장, 반 닫이, 화로가
모두 네년의 간특한 앙탈로 참판의
주머니를 발긴 것이 아니냐."
딴죽걸려 마루에 넘어지는 조롱거리되고
엉덩방아 찧어 창피를 당하긴 하였으나
발딱 일어선 월매가 듣자 하니 가관이었다.
언청이 아가리에 토란 비어지듯 난데없어
말인가.
더욱이나 방과 마루에 놓인 기물들을
하나하나 손꼽아가며 그 모두가 성참판의
주머니를 발긴 재물이라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성참판과 열락을 즐기고
있을 동안 명색 본실인 최씨부인이 공방을
지키며 앙갚음할 날을 이를 갈며
기다렸다는 것은 같은 계집사람의
심정으로써 그럴싸한 것이란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십칠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해묵은 재산싸움이란 것은 아무리 골똘하게
생각을 해보아도 터무니없는 행패일 수밖에
없었다.
양미간에 살천스런 적의를 담고 월매를
노려보던 최씨는,
마당으로 끌어내어라."
땅땅 벼르며 게거품을 튀기는 꼴이 한두
마디 말로는 사태가 좋게 가라앉을 조짐이
아니었다. 월매도 처음엔 최씨에게
하오말로 대접하려 하였으나 뒤축을 끓리며
땅땅 벼르고 있는 최씨가 밉살 스럽기
시작하면서 하오말은 쑥 플어가고 반말로
대거리를 하였다.
"이 아픈 날 콩밥 한다더니 그 짝
아닌가. 아니래도 우리 두 모녀가 조석
끓여대기조차 곤궁하여 십란한 판국에
가재도구까지 밖으로 끌어내라니 무슨
끙심으로 상승을 해서 냅뜨고 있는지
몰라도 까닭이나 알고보자."
"까닭을 알고 봐?"
"왜 억울한가? 남의 집에 무단히
부리고 있는 주제를 몰라서 반문혀?"
눈자위가 시뻘겋게 상기되고 목덜미에
핏대가 곤두선 최씨는 몸서리치며 어금니를
갈고 나서, "이년이 남의 멀쩡한 두 다리를
작신 분질러 놓겠다고 다짐들 때 호기는
어디 가고 이제 와선 말의 졸가리를 따지고
들겠다는 게야.
네년의 안방 윗방 마루에 놓여 있는 이
번질번질한 가재도구 모두는 성참판인지
뒈진 참판인지 모두 그 사내의 등골을 빼고
발겨서 늑탈한 재산이라고 네년의 주둥이로
실토정을 하지 않았더냐.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아주 모함잡을 작정을 하고 달려온
게로구만. 고려적 최충헌의 치하에서도
이런 억울한 지경을 당한 인사들이 있을까.
있었으며 또한 설사 내 간활함과 앙탈로
죽어 없어진 개구멍 서방으로 주머니를
발기었다 할지라도 그건 이미 십칠 년 전의
일이 아닌가, 십칠 년 전의 일을 알고도
가만 엎져 있다가 지금에 이르러 난데없는
행티를 부리고 나서는 괘씸한 심뽀는
어디에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것네."
"네년의 주둥이로 실토정을 하기 전에는
재물을 발기었는지 늑탈하였는지 증거할
것이 없었으니 가만 있을 수밖에."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실토정을 하였는지 허물만 잡지 말고
소상하게 밝혀 보시지."
"구태여 미주알고주알 들먹일 것 없다.
저 사람들께 물어봐."
최씨부인이 소매를 들어 가리킴에 월매의
수밖에 없었는데 최씨의 손가락은 담장
위에 조롱박 열리듯 조롱조롱 턱이 울라와
있는 이웃 구경꾼들의 면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최씨가 담장을 가리키자
조롱박처럼 열려 있던 사람들의 머리는
흡사 익은 감 떨어지듯 아래로 쓱쓱 빠져
숨어버렸다. 눈치 빠른 월매는 그제사
가슴이 뜨끔하여 속으로 아뿔싸 하였다.
며칠 전 춘향이와 다투던 중 무턱대고
입초에 올려 지껄인 언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장 꾸어댈 말이 궁하게는
되었으나 얼토당토않게 최씨부인 불쑥
나타나 분탕질하고 있다는 것에 월매는
참기 어려웠다.
"내가 뭐라고 하였던 그 모두가 지난 일.
계집이란들 이녁의 분탕질은 결코 용납치
않으리오."
"이년이 어따 대고 해라로 막보기냐."
"그럼 이녁보고 해라로 막보기지 하오로
공대해서 대접할까."
"이년아, 넌 첩실이고 난 본실인데
어찌하여 첩실 주제에 감히 본실 앞에서
버르장머리없이 해라가 낭자하냐."
"본실도 본실다워야 공 대접하든지
하게로 대접하든지 양단간에 귀정을 짓지.
여항간에 들어앉은 여편네가 한길가에
나와앉은 상계집보다 본데없고
우락부락하고 왈패스러운데 감히 하오
대접받기를 바란다니?"
"이년, 이제 보니 제법 콧등이 세구나.
주둥이에다 버선짝을 틀어막아 버릴라.
궁상을 하고 있을 망정 내가 본실인 것은
남원부중에 모를 사람이 없을만치 엄연한데
엇따 대고 대중없는 박대냐."
"흙무지 베개하고 거적에 싸여 자는 딱한
처지라 하더라도 체통을 지키는 여편네라면
층하를 두는 연하일 망정 불량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 것이 대가댁 마님의
국량이거늘 이 무슨 남세스런 꼴인가."
"이년 봐라. 아직 말버릇 고치지 못했군
그랴. 화낭년 수절타령 한다더니 상년
주제에 국량 타령하고 있네."
결기 솟은 최씨가 열려진 대문으로
달려나가더니 이웃집 방앗간으로 달려가서
방아공이를 빼들고 다시 집안으로
달려들었다. 그 이르딱딱 벼르는 모습이
적지않게 불안하였으나 월매는 살천스런
하였다. 방아공이를 어깨에 척 올려맨
최씨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물었다.
"이 무엄한 년, 네년이 이도령인가 뭔가
하는 그 오입쟁이에게 뜯겼다는 일백오십
냥을 내놓을 터? 그런 오입쟁이에겐
일백오십냥을 미친년 물 퍼쓰듯 하면서
궁도에 빠진 네 본실에겐 한푼 아니
내놓는다면 길을 막고 물어봐도 네년이
몹쓸 년이란 말을 듣게 될 터 어서 내놔."
"못 내놓겠소."
"좋다."
최씨가 방아공이를 번쩍 들어서 마루 위
반닫이 위에 얹어 놓았던 용충항아리 두
개를 일 같잖게 박살을 내었다. 그릇조각이
박살나서 마루바닥 위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항아리에 담겨 있던 낱알 곡식도 좌르르
대청 위로 쏟아졌겠다. 월매의
사천(私賤)마견이 대청으로 쏟아졌으니
강단이 있다는 월매도 그만 까무라쳐
기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최씨부인은 그
순간 눈자위가 뒤집히고 말았다.
사실 최씨의 허우대는 남상져서
계집사람치고는 우락부락하였지만 배를
주려 수척한 기색은 완연하여 보기에 딱할
지경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황난 얼굴에
마른버짐 투성이었다. 얼굴에 저승꽃이 필
나이도 아년, 터에 마른버짐이 낭자히
피었다는 것은 끼니 거르기를 흥부네집
굶주림과 짝이었다는 것을 증명함이었다.
그런 처지임에도 왜자한 폼력을 지니고
워낙 억센 골격을 타고난 덕분의 소치였다.
그런 처지에 박살난 항아리에서 쏟아지는
곡식을 보자,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날, 월매에게 홀딱 빠진 성참판이
본실의 궁핍한 가계는 아랑곳없이 문턱이
닳도록 월매집을 들락거렸던 오 년이란
긴긴 세월을 싸늘한 공방을 지키는 괄시와
서러움을 감내하면서도 입정한 번 해프게
놀려 월매를 헐뜯은 적이 없었다.
그랬던 것은 미련하고 우직해서가
아니었다, 성씨 가문에 시집 와서 자궁이
기박하여 일점혈육인들 떨궈주지 못했다는
가책이 없지 않았고, 또한 씨앗을 두고
강새암하는 것도 지체가 한미하지 않은
가문의 필부로서 칠거지악을 자초하는
체통을 지키는 일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17년 전, 성참판이 덜컥 목숨을 거둬
북망산도 아닌 지리산에 묻히게 되자,
박대만 당해왔던 본설로서 월매에게
앙갚음할 빌미는 충분하다 하겠으나 닭
쫓던 두 마리 개가 지붕 쳐다보며 서로
싸우는 격이라 이웃간에 창피스런 꼴만
보이겠다 싶어 그 또한 참기로 하였었다.
그러나 성참판의 주머니를 발긴 일백오십
냥을 서울에서 왔다는 오입쟁이에게 뭉땅
털렸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더 이상 참고
견딜 재간이 없었다.
하루 한 끼는 나돌죽으로 그리고 두번째
끼니는 허기를 잠으로 때우는 궁핍을 겪고
있음에 용충항아리에서 쏟아지는 곡식을
없었다. 이놈, 두 벌 죽임을 당해도 마땅할
성참판이란 놈이 논뙈기 밭뙈기를 모두
팔아 월매란 년 가랑이 속에다 모두 처박은
것이 틀림없었다.
눈에 핏기가 곤두선 최씨는 그 순간
방아공이를 어깨짬에다 척둘러메었다.
그리고 뒤주 결에 있는 찬장을 겨냥하여
힘껏 내려쳤다. 와지끈 소리가 터지면서
찬장 귀퉁이가 모양 있게 부서져 나갔다.
그 사품에 최씨부인은 대청에 쏟어졌던
낱알 곡식 위를 헛디뎌 제 사날로 덜컥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
까무라친 월매가 딴죽을 걸어서 넘어뜨린
것도 아니었고, 제 힘에 겨워 쭈르르
넘어진 것인데도 스스로 창피하고 무안하여
최씨부인은 더욱 심통이 솟았다.
하반신을 추스른 최씨가 찬장 곁에 있던
탁자를 겨낭하고 마악 방아공이를 다시
둘러메려는 찰라였다. 어디서 간곡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어머님, 고정하십시오."
어디서 둘려오는 난데없는 흰소리인가
해서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때 최씨부인은
마당 가운데 엎뎌 있는 춘향을 보았다.
콧등이 땅에 스리도록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것은 분명 먼 빛으로만 몇 번 본 적이
있었던 춘향이었다.
그런데 어머님 고정하시라니 어머님은
누굴 가리킴이며 고정하시란 말은 대청에
있는 두 사람 중에 누굴 가리키는 것인가.
한 사람은 까무라쳐 누웠고 한 사람은
방아공이를 쳐들고 있음인데 도대체
있음인가. 화증이 명치 끝까지 치민
최씨부인이었지만 춘향의 말이 어쩌면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직도 하여 물었다.
"너 시방 어머님이라 했겠다."
"예, 어머님."
"도대체 누굴보고 일렀더냐? 나보고 한
말이냐 아니면 여기 거짓 까무러진 체하고
엎뎌 있는 이 여편네를 가리킴이냐."
"물론 방아공이를 들고 계시는 어머님을
가리킴입니다."
"날 보고 어머님이라 했더냐? ."
"예, 어머님."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최씨부인은
대청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계집사람으로 이승에 태어나서 육십평생을
살아올 동안 처음 듣게 된 어머님이란
추스려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일찍이 피붙이란 낳아본 적이 없는
기박한 팔자에 살아 평생 들어볼 가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어머님이란 그
한마디를 스스럼없이 내뱉고 있는 춘향이가
바라보는 앞에서 방아공이를 내던진
최씨부인은 퍼질러 앉아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속내같아서는 마당으로 와락
뛰어내려가서 춘향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문득 열
적에 그냥 퍼질러 앉은 것이었다.
"우리 성씨 가문의 입씨름이 삼이웃에
조명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어머님께서 받으신
괄시와 오욕이 오죽 했겠습니까만 잠시
춘향의 그 한마디가 또한 아담하고
가긍한지라 최씨는 애간장이 아리다 못해
쓰렸다. 그 나이 열 여섯이 될 동안 단
한번인들 상종이 없었던 자기를 두고
거침없이 어머님이라고 불러주었을 뿐더러
지난날에 자기가 겪었던 괄시와 오욕을
또한 쓰다듬고 있으니 그 국량과 슬기가
또한 육십줄에 든 최씨가 감히 따르지 못할
것이었다.
흐느끼고 있던 최씨는 그때 식지가락을
내 뻗었다. 그리고 담장 위에 대추나무에
대추 열리듯 고개를 디밀고 있는
구경꾼들을 가리켰다.
"이 집에 무슨 구경거리 났소? 댁내들은
생업도 없으시오? 각자 돌아가서 생업에
진력들 하시오. 신임 사또 도임을 경하하는
파다합디다. 어서들 가보소."
환곡 퍼내준다는 말이 새빨간
헛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걸핏하면 환곡을 낸다는 소문이
짜하게 퍼지곤 하여 시겟자루를 쥔
세궁민(細穹民)들이 관고(官庫) 앞에 비
내린 뒤 방천둑에 출남생이 늘어서듯
줄래줄래 늘어섰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허황된 소문이었을 뿐
단 한 번도 그 관고의 문이 열렸던 적은
없었다.
도임하는 사또마다 관곡을 축내어
벼슬길에 현달할 뇌물로 삼았고, 또한
착복하고 횡령하여 공덕비나 세우고 제
가문의 권속들 뱃구레만 채워온 터라
창고는 엄연하였지만 그 속에 곡식섬이
도임한다거나 관원들의 뇌물 착복으로
부중의 민심이 흉흉해질 때면, 밑도 끝도
없이 관고를 헐어 환곡을 낸다는 소문이
파다하곤 하였다.
그래서 최씨가 불쑥 내뱉은 말을 믿을
사람이 없었지만 개중에는 긴가민가하여
시갯자루를 가지러 집으로 달려가는 축들도
없지는 않았다. 속이고 속는 것이 몇백
번이나 거듭되었지만 이번에는 허황된
소문만은 아니겠거니 해서 허행할 셈 잡고
관고로 달려가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랑곳 않고 그대로
담벼락에 붙어 서서 윌매집 난장판 구경을
놓치지 않으려 하였다.
그때 최씨는 부엌으로 달려가는 짓이었고
춘향은 대청으로 올라가 기진하여 쓰러진
갈아서 입속으로 흘렸다. 부엌으로 내려간
최씨는 물 담긴 옹가지를 들고 나오는가
하였더니 담장 위에 늘어선 사람들에게
물벼락을 안기는 것이었다.
"대저 이웃집 아귀다툼과 남의 집 불난
것은 구경거리 중에도 으뜸이라 해서
끼니를 굶고서라도 볼 만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망신스러워서 이제 그만 가시라고
빌고 드는데도 아니 가고 해죽 해죽
성가시게 안을 채우는 못된 염치는
물벼락은 고사하고 똥바가지를 뒤집어써도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다."
물벼락을 뒤집어쓴 구경꾼들이 투래질을
하며 하나둘 담벼락에서 떠나자 끝까지
살천스런 눈으로 노려보고 있던 최씨부인이
대청으로 올라왔다.
춘향이와 향단이가 대청에 쏟아진 쪽박과
깨어진 이징가미들을 치우느라 부산하였다.
대청으로 올라선 최씨는 내친 걸음으로
미닫이문을 본때 있게 열어붙이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좌정하였다.
"얘, 향아."
대청에 쪼그리고 앉아 낱알 곡식을
헤아리듯 알뜰하게 함지에 주워담고 있던
춘향은 뱀 만난 여치처럼 화들짝 놀라
일어서며 <네> 소리 길게 대답하였다.
"너 이리 오너라."
섣달 자리끼같이 차가운 분부에 가위
질린 춘향이는 땅이 꺼질세라 뒤축 들고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최씨 앞에 가서
조용히 좌정하니, 그 모양새가 마치 가을날
여울물에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가없고
최씨의 입에서 떨어지는 한마디가 심상치
않더라.
"당장 행장을 꾸려라."
"어머님, 불각시에 행리를 챙기라니오.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요."
"가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우리
집으로 가자는 것이다. 네가 나를 가리켜
어머니라 하였고 나 또한 그 말이 낯설지
않아 반색하였으니 너는 내 여식이
틀림없고 나 또한 네 어미겠으니 우리 모녀
더 이상은 남의 집에 와서 분탕질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내가 상관도 없는 월매란
여인네의 집에 와서 낭자하게 몽니를
부리고 세간살이를 박살낸 것은 남의 집의
엄연한 여식을 가로채어 한양 간
놈팽이에게 팔아먹은 죄값을 응징한 것이니
내가 앙갚음을 하려면 이 집에다 불을
질러도 못 다할 설분이겠으나 채통에
똥칠할까 해서 이쯤에서 화증을 삭히기로
하자. 저 여인네가 이 분탕질을 빌미 잡아
섣불리 관아에다 고변을 한다면 또한
살풍경한 꼴을 당하게 되리라."
고개를 들어 최씨를 쳐다보는 춘향의 두
눈망울에 고인 것이 눈물이라, 심통이
멱까지 차오른 최씨부인도 측은하기 짝이
없었으나 단김에 쇠뿔 뽑더라고. 차제에
본때 있게 오금을 박았다.
"네 성이 뭐냐?"
"네 성가(成哥)이옵니다."
"성가가 분명하렸다?"
"네, 어머님."
"네 가문인. 성씨댁
최씨 딸 춘향이로 이름이 올라 있지 월매딸
춘향이라고 적바림한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 아비 성참판이 비록 오줄없고
몽매스런 시골 토반의 처지라 하였으나
열명길로 사라진 이후에 이런 아귀다툼이
벌어질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호적단자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잡도리한 터다. 사리가
이러한즉슨 각골 명심하고 행리 챙겨
집으로 가자는 내 말에 배알이 뒤틀릴
일이라도 있더냐?"
"아닙니다."
"그러면 어째서 본데없이 상계집처럼
멀쩡한 몸뚱이를 뒤틀며 까닭없이
질금거리고 있느냐. 아니면 집으로 가면
굶어죽을까 해서 딴청 피워 날 빼돌릴
최씨의 눈초리가 마뜩찮음에 춘향은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고 나서,
" 제 주제가 비록 미흡하여 싹수가 없다
하나 부전조개 이 맞듯이 빈틈없고
온당하신 어머님의 말씀 아로새겨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곁방에서 향단의
조섭을 받고 있는 어머니 또한 저를
길러주셨으니 그 은혜도 태산에 비견해서
미흡함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같지 아니한 것은 그
아비와 어미의 형용을 마땅히 분별하고, 그
고귀한 뜻을 받들어 귀갑으로 삼을 수 있는
염치와 슬기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옛말에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지붕을
위에 앉아 있는 갈가마귀조차 사랑하게
미워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어머님께서
저를 혈육으로 여기시어 어여쁘게
여기신다면,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 역시
아담하게 여기시어 고정하시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주제넘은 말씀드리니 진노를
거두십시오.
진노하심이란 한 쪽박의 물로 한 수레의
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는 어리석음과 같지
않겠습니까.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子路)가 있었답니다.
자로는 체구가 우람지고 용력이 셀
뿐만아니라 의협심이 있어 아주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용감하기만
하고 지모가 없이 거친 자로보다는 총명한
안회(雁回)를 더 총애하였지요, 그래서
자로는 속으로 은근히 불복하였습니다.
요량으로 스승님이 만일 대장군이 되어
삼군을 지휘하신다면 누구를 가장 이상적인
조수로 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적수공권으로 호랑이를 잡거나 배도
없이 물을 건너려는 것을 경박스런
모험이다.
내가 요구하는 사람은 슬기와 지모를
가지고 조심하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어머님의 앙갚음은 한때 신명풀이나 설분은
되실지언정 자칫하면, 자로의 경박스러움과
짝이 될 가망이 없지 않으니 모쪼록 분기를
삭이시고 좌우를 살피시는 국량을 보여
주십시오."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견문없는 아녀자라
하지만 차근차근 개어올리는 말주변이며
소견도 그럴싸한지라 최씨부인 시큰둥한
말구멍이 막히고 말았다. 달리 꾸어댈 말도
마땅치가 않았지만 근본적으로 괘씸한 것은
월매였지 춘향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계집아이일지언정 성참판이 이승에
떨구고 간 유일한 피붙이가 아닌가. 게다가
그 소견과 의표를 찌르는 말주변이
글줄이나 읽었다는 산협고을 선비쯤은 뺨칠
정도였으니 춘향이가 사내자식 못 된 것을
개운찮아할 까닭도 없었다.
대청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춘향의
말을 듣고 있던 최씨부인은 그 순간 똥본
개처럼 엎어질 듯 뛰어가서 섬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춘향의 어깨쌈을
게걸스럽게 휘잡아 안았다.
"그래 내 딸 춘향아. 내가 해망쩍어 너의
깊은 가슴속을 헤아리지 못하고 삼이웃에
네 국량이 어찌 그토록 소명하고 너름새가
있단 말이냐.
남원부중 골골샅샅을 서캐 잡듯 뒤진다
한들 너만치 개자한 인물을 찾아내기 쉽지
않을 터, 하늘이 무심치 않아 천둥벌거숭이
같은 내게 너와 같은 혈육을 점지하였구나,
돌확 깊은 방앗간에 주둥이 긴 개가
든다더니 바로 너를 두고 이른 것이로다.
주림과 번뇌로 이십 년이 넘도록 공방을
지키며 비 맞은 수탉처럼 후줄근하게
살아왔더니 이제 와서 너를 만나게 되니 내
팔자에도 쨍하고 해뜰 날 멀지 않았다는
징조로다. 어서 가자. 냉큼 가자.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다."
"이머님 분부 따라 거행하겠습니다만
며칠 말미만 주신다면, 혼절하신 생모의
"집으로 가도 구완이야 될 터이니 어서
가자. 주제넘은 향단이가 있으니 너의 생모
조섭쯤이야 앉아서 떡먹기가 아니겠느냐."
최씨 품에 끌어 안겨 어쩔 줄을 모르는
춘향을 잡아 일으키는 일변 정주간 문간살
뒤에 숨어 줄곧 이 애꿎은 사태를 엿보고
있는 향단에게 하는 말이,
"얘 향단아, 너도 냉큼 채비하여 나서지
않고 뭘 꾸물대고 있느냐. 바늘 가는 데 실
아니 가면 구색 맞지 않는다는 것은 견문
없고 미련한 네년인들 모를 리 없을 터,
대중없는 게으름 피지 말고 냉큼
서둘러라."
서슬 시퍼런 최씨부인 분부에 가위 질려
내키지는 않겠으나 썩 나설 줄 알았던
향단의 말대꾸가 가당찮았다.
때 아닌 말대꾸에 최씨부인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방 뭐라 했더냐."
"쇤네는 아니 간다 하였습니다."
"방자한 것, 바늘 가는 데 실도 가자는데
무슨 말대꾸가 개차반이냐."
정주간 밖으로 두어 발싹 앞으로 썩
나서고 있는 향단의 거동은 공손하였으나
말대꾸는 아금박찼다.
"제가 받는 품삯이 한 달에 열 냥이나
되는데 마님의 궁핍한 가계에 한 달에 열
냥이나 물고 쇤네를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향단의 말을 귀여겨 듣고 있던
최씨부인은 엇뜨거워라 싶었던지 한동안
먼산바래기를 하고 서 있다가 나직하게
"향단아."
"너 임신하였느냐."
"가당찮은 말씀, 하늘도 없는데 별을
보다니오. 쇤네 임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최씨부인의 추상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방자한 것. 임신도 하지 않은 주제에
어째서 첫 대꾸부터 배부른 소리냐. 한 달
열 냥 세경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알았더냐."
최씨부인의 호통에 찔끔한 향단이가
임시처변으로 정주간 안쪽으로 몸을 숨기려
하던 찰나였다. 대문 밖에서 난데없이 통자
넣는 소리가 들렸다. 목청을 가다듬은
도저한 언사는 사내의 목소리였다.
"이리 오너라."
놈팽이겠거니 하여 코대답도 않고 있는데,
최씨부인의 서슬을 피해 정주간 속으로
숨으려던 향단이가 난감한 처지를 모면할
핑계라도 찾을까 해서 자발없이
얄기죽얄기죽 뜨락으로 나서며 아는 체를
하였다.
"뉘십니까?"
대문 밖에서 있는 사내의 형용도 분별할
수 없는데 향단은 대문을 향해 무작정
허리를 조아렸다.
"뉘시라니? 대문부터 열라."
대문 밖의 대답이 매우 퉁명스럽고
도도한지라 향단은 문사래 사이로 바깥을
엿보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서둘러
대문의 빗장을 풀었다. 활짝 열린
대문밖에는 범강 장달 같은 세 사내가
서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동달이를 떨쳐입은
형방의 나졸들이었는데 그중 한 놈은
장교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부리부리한
눈발로 마당 안의 어수선한 낌새를
살피더니 듭시라는 말도 없었는데 소매에
바람을 일으키며 모양을 다하여 썩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손바닥만한 면상에 눈과 입이 오종종하게
박히었으나 코 한 가지는 얼굴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듯 얼굴 한가운데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나장(羅將)이란 자가 검은 바탕에
흰 실로 줄을 놓은 더그레 자락을 등채로
획 걷어 붙였다 떨구면서 뇌까렸다.
"이 집이 필경 춘향의 집이렸다?"
얼굴 모색이야 대장부답지 않게
관아의 나장이라면 여 염 사람들에겐
떠르르한다는 존재였다.
냉큼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나 워낙 경황중에 들이닥쳐 다짜고짜
강다짐을 하는 것이라 영문을 몰랐던
여자들끼리 아연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미처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집안을 뚜릿뚜릿
살펴고 있던 나장이란 위인은 시큰둥한
말로 다시 뇌까리었다.
"이 집구석에는 가랑이 사이에
고기방망이 차고 있는 사내 명색이라고는
없는 게야."
곁에 섰던 나졸이 대답하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등채로 제 손바닥을 탁탁 치고 있던
나장은 그 말을 되받았다.
나장은 대문 앞에 서 있는 향단이와
대청마루 끌에 앉아 있는 춘향을 번갈아
간색하던 눈치더니 향단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춘향이더냐."
그러자 향단은 가당찮다는 듯이 채머리를
살래살래 가로저으며 얼굴을 되들고
대답하였다.
"쉔네가 그렇게 국색으로 보인다니
언감생심 반갑기 그지없습니다만 쇤네는
춘향아씨 수발 드는 곁시랍니다."
그러나 나장은 이번엔 고리눈으로 춘향을
뚫어질 듯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가 춘향이냐?"
그러나 춘향도 나장을 정면으로
노려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대답이
"이 집엔 저기 있는 곁시만 빼고는 모두
청맹과니인가. 어째 대답을 못하고 있당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서 돼지 멱따는
소리로만 들리는가?"
"귀머거리도 아니고 청맹과니도 아니오만
나리들이 거동이 너무 무례하니 아예
상종을 않으려는 것이오."
그리고 안방의 미닫이문이 획 열리었다.
그렇게 대답한 것은 방안에 몸져누웠던
월매였다. 맵짜고 살풍경한 월매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나장이 곁에 섰던
나졸에게 물었다.
"저건 어느 우물에서 튀어나온
물귀신인가?"
"물귀신이 아니라, 바로, 춘향어미
월매입니다."
보이는데 아직까지 육덕은 그럴싸해
보이는군 그랴. 배 젊었던 홍색짜리 한
시절에는 남원부 중 오입쟁이들이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이 집구석을
번다 하게 드나들었겠군 그랴."
"그런 것 같습니다."
"허 그참, 자넨 그 말버릇 좀 고치게."
"아니, 제 말버릇이 소버릇스럽습니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게지, 말끝마다
같습니다가 뭔가."
나졸이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시방 저 여편네가 날
보고 무례하니 상종을 않겠다고 다짐을
두었겠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섣불리 다뤘다간 저 표독스러움에 풍파께나
겪겠군."
"지난달 한량들이 멋모르고 덧드렸다가
창피당하고 체모에 똥칠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등채를 잔허리 뒤에 돌려 뒷짐을 지고
배꼽노리께를 앞으로 쑥내민 자세로 안방
문지방에 걸려 있는 월매의 면상을 저으기
바라보고 있던 나장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였던지 나졸에게 분부를 내렸다.
"저 계집을 밖으로 끌어내어라."
"안 되오."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한 것은 나졸이
아니었다. 후줄근한 몰골로 축대에 앉아
있던 최씨부인이 벌떡 일어서며 대꾸한
말이었다. 나졸 아닌 최씨부인의 말에
"저 뜸배질하고 있는 암캐는 어디서
내질린 짐승이냐?"
"저 계집은 시생도 잘 모를 것
같습니다."
그때, 나장은 등채를 꼿꼿하게 처들어
최씨부인을 겨냥하면서 업에 게거품을
물었다.
"별반거조를 차려 주리를 뒤틀려봐야
정을 다시겠느냐. 여기가 관정(官庭)이
아니라 해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것이냐. 이 더 그레 자락을 보아라.
설사 이곳이 동헌 뜨락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더그레 자락을 걸친 관원이
행차한 처소라면 그곳이 바로 동헌
뜨락일진데, 이 늙고 몽매한 계집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타부타 주둥이가
"주둥이가 해픈 것은 바로 나리가
아니것소. 저는 안 되오, 하는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말이 많다 하니 당치
않소이다. 명색 목민관을 받들어 국사를
수행한다는 분이 여항간의 부녀자를 가리켜
암캐로 칭하기에 거침이 없다면, 더그레를
걸친 나장은 그럼 어느 가랭이 사이에서
내질린 수캐란 말이오?"
"보자보자 하니까 입살을 짜개 놓을 년.
저년을 잡아 업쳐서 개 잡듯이 사두지 말고
되우 쳐라."
나졸이 나장에게 사정조로 말했다.
"그렇게 되면 본말이 천도되는 됩쇼."
"본말이고 말본이고 이 차판에 내가 시방
그 정신 차리게 되었느냐. 저년의 입살을
짜개서 펴칠갑을 시키든지 아니면
내리든지 양단간에 욕을 보여라. 그래야만
저년의 주둥이가 노골노골해질 것 아닌가."
"이런 야단을 미처 예견치 못하고 곤장을
지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태여 곤장을 찾을 것 없다. 저 대청에
뒹구는 방아공이가 있지 않은가."
그 말에 나졸은 대청구석에 뒹구는
방아공이를 힐끗하고 나서,
"나리 고정하십시오. 저 방아공이는 그
살벌한 두께와 크기로 보건데 살옥죄인을
치죄(治罪)할 때만 쓰는 중곤(重棍)보다 더
클 뿐만 아니라, 설사 중곤을 써야 할
저지에 놓인다 할지라도 중곤은 병조판서,
그리고 각 군영의 대장과 유수(留守)만이
쓸 수 있으니 나리의 품계는 아직 교에
미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짐 지운다더니, 같습니다 같습니다 하면서
내 비윗장만 거슬리고 있는 게 아니냐.
냉큼 시행치 못하겠느냐?"
"나으리 그러시다 되술래를 잡히게 되면
되려 봉욕하십니다."
"되술래를 잡혀 내 직함이 떨어지는
낭패를 당할지언정 저 뜸배질하는 암캐를
그냥 두고만 보자는 것이냐."
"저들이 춘향이 집으로 찾아온 것은 신관
사또 기생 점고(點考)때 춘향이 여축없이
관정으로 나오라는 통기를 하러 달려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소한 입정을
놀리는 저 늙은 여인네들 괘씸하다 하여
치죄를 낭자히 벌이다 보면 자연 고을 안이
시끌벅적해지고, 시끌벅적하고 보면
여항간에 조명나서 신관 사또의 체모에
모쪼록 후일을 기약하시더라도 오늘만은
참고 돌아가시는 짓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락부락한 나졸의 소견치고는 경위가
바르고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졸렬해
보이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최씨부인이나 월매를 본때 있게 다스려서
혼찌검을 내줌으로써 새로 부임한 신관
사또의 위엄이 얼음장처럼 차디차다는
사실을 본때 있게 과시하려 하였던 나장의
속셈이었고 보면 그 순간 머쓱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수하에 거느리는 나졸에게 올곧은
말을 듣고 보니 머쓱해지는 것은 고사하고
공연히 배알이 뒤틀리는 것도 속일 수 없는
사실이라, 나장은 한풀 꺾인 목소리이긴
않았다.
"어쨌든 저 암캐를 맨땅에 잡아
꿇리어라."
나졸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서릿발에
비유되는 나장의 지엄한 분부를 끝내
거역할 만한 배짱은 없었다. 쥐꼬리만한
녹봉이지만 그것으로 대여섯 식솔의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을 간신히 가로막고 있는
데다가 때로는 나졸의 보잘것없는 직함일
망정 눈먼 인정전(人情錢)을 챙길 때도,
길을 읽고 헤매는 뇌물 걷어채어 삼키는
재미도 쏠쏠한지라, 나장의 비위를 끝끝내
거스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나졸 두 사람이 갈지자 걸음으로
신방돌로 다가가서 낙매하고 앉아 있는
최씨부인의 견대팔을 뒤틀어잡고
색주가에게 시래기토장국에 공짜술을 얻어
마셨는지 입에서 썩은 홍시냄새가 혹
풍겼다. 그러나 최씨부인은 두 나졸들의
손을 매몰스럽게 뿌리치면서, 나졸들의
비윗장을 한껏 뒤틀어 놓았다.
"나를 맨땅에 꿇어앉힐 근력들 있거든
차라리 색주가에 나가서 조방꾼 노릇으로
연명하든지 아니면, 야경벌이(도둑질)로
가계를 도모할지언정 네놈들 꼴이 이게
뭐냐. 자고로 주구(走拘)란 말이 있어
왔으니 그것은 바로 사냥할 때 부리는 개를
일컬음이다.
저 본데없는 수캐의 앞잡이 노릇으로
비루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야경벌이가
떳떳하지 않겠느냐."
처음에는 아녀자들의 딱한 사정과 나장의
나머지 얼추 위협만 하고 돌아가자 하였던
나졸들의 뒷덜미에 핏대가 곤두섰다.
"아니,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더니
이 요망스런 계집의 가풀막진 언사보게.
모질게 파고드는 어조가 가당찮군.
우리보고 도둑놈의 장물아비가 되라
하였겠다?"
"내 말에 어폐가 있는가?"
"그 말 취소 못혀?"
"한마디 올곧은 말이 빌미되어 풍파를
겪는다 해도 뜨물보다 못한 공갈에
엇뜨거라 해서 허겁지겹 주워담을 내가
아니다. 이놈들."
그때 나졸이 들고 있던 방망이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마당에 잡아
꿇리라는 나장의 분부 따위는 안중에도
뼈대가 억센 편인 최씨부인을 사정두지
않고 내리 조졌다. 그러나 최씨부인은
어금니를 사려문 채 사람 살리라는 외마디
소리 한번 내지르는 법이 없었으니,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눈물겹게
하더라.
아니나 다를까 험상스런 나장들을
바라보고만 있던 춘향이가 버선발로
달려가서 눈자위가 시뻘겋게 상기된
나졸들의 견대팔을 잡고 늘어졌다.
"모쪼록 고정들 하십시오. 우리
어머님께서 산매가 들어서 사리 분별이
졸렬해진 가운데 이 저지른 말씀인데
무작정 매로 다스리면 우리 어머님 죽소.
제발 고정하십시오."
입에 게거품이 허옇게 묻은 나졸이
벼르는 것이었다.
"춘향인지 추물인지 너 당장 비켜나지
않으면 너의 집에 있는 계집 넷을 한
다리로 끌어내어 아주 육젓을 담궈주겠다."
"법에도 사정이 없지 아니하고 매질에도
쉴참은 있는 법인데 연약한 아낙네에
범강장달 같은 두 사내의 매질이 어찌
이토록 혹독하단 말이오. 신관 사또
도임하면, 이런 행패를 낱낱이 발고하여
법통을 바로 잡으리다."
"이년, 네가 가진 세력이라곤 가랑이
속에 붙어있는 조개 하나 뿐이다. 신관
사또 음탕하여 조개에 게걸들렸을 망정
햇조개라면 모를까 이미 이몽룡이란 놈이
주둥이를 박고 실컷 맛본 조개를 어느
개아들놈이 군침을 삼키겠냐. 허튼 수작
타작마당 콩깍지가 도리깨로 얻어맞듯
겨끔내기로 내려치는 방망이에 벌써
피칠갑이 된 최씨부인은 그 아수라판에서도
춘향이가 달려와서 자기를 두둔하겠답시고
매달려서 갖은 욕설과 창피를 감내하고
있는 꼴을 보자, 결기가 더축 솟구쳐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산매가 들어 삼혼칠백이 견공에
떴다 한들 한 번 내뱉은 말은 돌이킬
가망이 없다. 네놈들이 주구 아니란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나를 여설옥에 내려 가둔다
하더라도 두 번 주워담지는 않을 터
방망이가 부러져라 사매질을 하거라."
치를 떨면서 바라보고 있던 나장이 그때
나졸들을 제지하였다.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수하
"저년이 제 주둥이로 시방 하옥시키기를
자청하였겠다?"
"그런 것 같습니다."
"좋다. 저년을 끌고가서 당장 투옥에다
내려 가둬라. 관원들을 빗대어 욕설하고
심지어 새로 도임하실 관장까지 능멸하기를
주저한 적이 없으니 이는 모반의 심증이
뚜렷하지 아니한가.
시금털털한 묵은 조개치고 악지가 저토록
표독스럽다는 것은 모반의 무리들과
결탁했거나 내응이 없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길바닥이 소연할 터이니
버선짝으로 아갈잡이해서 끌고가자."
비윗장 건드린 한마디 말이 시단이 되어
평생 끌려가 본 적이 없는 홍살문 안쪽의
서슬 시퍼런 관아를 구경하게 된
뒤로하고 아갈잡이가 된 채 나졸들에게
학치뼈를 차여 가며 관아로 향하게 되었다.
그 즈음 남원부사로 제수된 사람은 서울
남산골(南山滑洞) 변학도(卞學道)란
분이었다. 변학도는 인물과 풍채가
그럴싸하기로 남산골에서도 소문깨나
있었는데, 이 돈은 원래부터 풍류에
달통하여 돈 쓰기에 거침없고 주색에도
거침이 없어 장안의 탑골 색주가와
배오개의 안침 술집들을 두루 섭렵하고도
근력이 남아돌아 남대문 밖 철패시장의
들병이하며 배오개 선술집의
논다니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오입질하구
과부들 꼬드기는 것은 앉아서 떡먹기요,
서방님이 엄연한 들어앉은 유부녀까지도
넘보고 다니는 아주 홀딱 벗은
그러나 방탕함에도 가계만은
세전지물(世塼 之物)로 요족을 누리는 터라
남산골에서 살고 있는 다른 샌님들과는
누리는 호강이 남달라 남원부사까지 뇌물로
따낼 수 있었더라. 변학도가 글 읽기에는
소 닭 보듯 소홀히 하면서 풍류에만
골똘하여
요로의 현직(顯職)들에게 뇌물로
직첩(職첩帖)을 사고 또한 제아무리
삼강오륜에 입각하여 부도(婦道)에
철두철미한 반가(班家)의 계집일지언정
패물과 금붙이로 끈질기게 인정을 쓰고,
언사에 유식한 체하고, 환심을 사면 혹하지
않았던 계집이 없었던 터라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였고 믿음이
되었다.
꾸려가면서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부류들인지라 근자에
남원부사로 제수된 변학도는 오직 그들에
부러움을 살뿐이었다. 그가 현직의
관원들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얻은
벼슬자리라 한들 크게 허물 될 게 없었고,
탄핵을 받을 빌미도 되지 않았다.
뇌물을 받고 직첩을 따냈다는 뚜렷한
증거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오직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부랄 두 쪽만 달그락거리는 샌님들을
거느리고 색주가를 섭렵하면서 퍼 먹인
술과 안주와 계집질시켜 준 이력도 무시할
수 없는 터, 그가 뇌물로 벼슬자리를
샀다는 증거가 역력한들 그걸 두고
주둥이를 헤프게 놀릴 사람도 주변에는
보통 거드름 피우기 좋아하고 제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내들이란 군입을
다시고 나면, 제 것 작은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그 계집의 옥문은 헐렁하다느니
빠듯하다느니 손바닥보다 작다느니
호박잎사귀보다 넓적하다느니 요분질이
아금받다느니 아니하다느니 소문을 짜나게
퍼뜨리고 다니는 오줄없는 버릇이 없지
아니한데 변학도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항상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편이여서 그것
또한 심증은 있으되 뚜렷한 증거를 남기지
않아 그와 참석을 같이하였던 과부나
유부녀들에게 변학도는 오직 체모가 듬직한
사내였고 도학군자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분이 원래는 서울서 이웃한
양주목사(陽洲牧使)나
구태여 뇌물에 웃돈까지 얹어서 남원부사를
소망하였던 까닭은 자고로 남원이
색향이라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분이 남원부사에 제수되니
남원의 아전들이 신연(新延)인사차 남산골
변학도를 현신(現身)하였다. 변학도는
댓바람에 물었다.
"너의 고을의 색이 그다지도
빼어나다지?"
아전이 그 말 잘못 알아듣고 얼른
대답하여 가로되,
"그렇습니다. 광한루의 고색(古色),
오류정의 유색(柳色), 적성강의
수색(水色), 교룡산의 산색(山色)은 조선
팔도 삼백 예순 다섯 고을 어디를 뒤진다
하더라도 찾아볼 수 없는 빼어난
"듣건대 남원의 여색이 자못 장하다기에
묻는 말이로다."
"그렇습니다."
"무슨 향(香)이라는 기생이 있다
하던데?"
"예, 향 자 돌림 기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두름으로 엮는다 하여도 몇 두름은
될 것입니다
못난 아전이 그 또한 자랑으로 알고
우쭐해서 대답하였다.
"한 두름에 몇 마리나 꿰나?"
"열 마리를 한 두름이라 하옵니다."
"거참, 여러 두름이 된다니 우선은
반갑다만 어디 섬겨보아라."
"숙향이, 국향이, 소향이, 단향이,
난향이, 매향이...."
"춘향이라면 만고에 일색 입죠."
"춘향이가 있다면 왜 진작 아니
섬겼더냐."
"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춘향은 원래
퇴기 월매의 딸이온데 기안(妓案)에 올라
않아 여염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다가
구관 사또의 자제분께서 벌써 머리를
얹었습니다."
서울 남산골에 살고 있는 변학도가
남원이 색향이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로되 남원에 춘향이가
있다는 것까지 시시콜콜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그렇게 놀라운
사실도 아니었다. 남원을 발행하여 서울에
당도한 이몽룡은 당도한 사흘째 되던
뻔질나게 도나들면서 남원에서 겪었던
춘향이와의 일을 자랑삼아 떠벌리고
다녔다. 심지어 춘향의 자색도 가위
국색이거니와 요분질에도 따를 만한 계집이
없다고 과장되게 지절거리고 다녔기에
서울에서 이름자하다는 비주에서 뒹굴고
있는 놈팽이들 치고 남원 춘향이를 이름
들어 알고 있는 사람은 여럿이었다.
이몽룡도 서울 당도해서 춘향을
안위시키는 간찰 한 장 띄워주고는 서울
색주가 출입에만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어쨌든 아전의 귀뜸을 듣고 있던
변학도는 말했다.
"구관 사또의 도령이 머리를 얹어
추었다면 오히려 그런 다행이 없지
아니하구나. 춘향이가 색을 터득하였다는
그래 춘향이는 지금도 잘 있느냐?
"예-."
"남원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
"육백 리 행보입죠."
"준총(駿悤)을 타면 해동갑으로 닿을 수
있겠다?"
"준마를 주변한다 하여도 해동갑 당도는
어렵습니다. 아침에
쉬옵시고 행차중에 만나시고 고을의
수령들을 만나면 연회하시고 수청기생으로
노독도 풀어가면서 명승지를 만나게 되면
또한 풍월에 인색하지 않으시며 그럭저럭
가시면 얼추잡아 보름은 걸리겠습니다."
"고을 수령 연회하고 기생으로 객수
달래고 명승지 구경타가 남원 춘향이는
늙바탕에 든 춘향을 만나려고 내가
행차 차려 밤낮으로 쏜살같이 달려
남원으로 득달 하리라."
"고정하십시오. 행차충에 고을의 수령을
만나 연회를 하시는 것은 고래로부터
있어온 신연 행차의 관례인즉슨 그 예법을
어길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또께서 미색을 즐기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장을 풀어 춘향의 집 동태를 얼추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워낙 성깔이
매몰찬지라 손톱도 아니 들어가니
사또께서는 서둘지 마시옵고 차차
주선하심이 상책인 줄 안고 있습니다
"객쩍은 소리 그만둬라. 내가 듣고
있기로는 춘향이가 살꽃 팔던 제 어미에게
배운 것이라곤 사내를 침방으로 불러들이는
버릇 한 가지밖에 없다 하였다. 윗물이
이치가 아니지 않더냐. 게다가 넌 아직 내
수완이 출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
등 치고 배 문지르는 수완이라면 서울
장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
산협고을에 박힌 계집 하나 마음먹은 대로
잡도리 못할까. 어림없는 얘기다."
득달같이 남원 당도하여 춘향을
수청들이겠다고 땅땅 벼르고 코방귀를 뀌는
변학도의 거조는 가위 기세등등하였다.
신연 인사차로 올라온 이방아전이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애걸하며
떠먹여주듯 아뢰었건만 춘향을 얕잡아보는
눈치는 역력했다.
그러나 신관사또 앞에서 소명한 체하고
길게 알분을 떨었다간 귀쌈에서 번갯불이
번쩍나게 얻어맞을 조짐이라, 내일 다시
망아지처럼 부리나케 변학도의 집을
나섰다. 남산골 초입의 객점에다 식주인을
정하였으니 혼자서 해적해적 객점 쪽으로
걷고 있는 이방아전은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신관사또를 현신하고 보니 남원 부중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않으리라는 징조가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변학도란
위인이 남원의 목민관으로 도임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기생들 수청 들이려고
도임하는 색귀로만 보였다.
밤마다 술자리요, 수청기생 번갈아 가며
농탕 친다면 남원에 배 젊은 계집 남아
있을 리 만무겠고 반빗간 음식인들
태부족이 아닌가. 태산 같은 걱정에 짓눌려
고개를 떨어뜨린 채 발부리만 내려다보며
한마디가 들렸다.
"여보게, 자네 남원 길청에서 거행하는
이속(吏屬)이 아닌가."
힐끗 돌아보니 행색은 위의(威儀)를 갖춘
사대부집 위인이로되 첫눈에 모색을
분별하기는 힘들었다.
"나 책방도령일세."
가던 길을 되돌아서 삐죽삐죽 걸어오는
위인을 보자니 정녕 책방도령
이몽룡이었다.
"도령님 어인 일이십니까, 여기서
도령님을 뵙다니오. 수행도 없이 혼자서
어딜 가십니까."
이방이 소스라쳐 반새하며 넙죽
하정배(下庭排)를 올리고 난 뒤 두 번 다시
쳐다보자 하니,이몽룡의 매골이 남원서
초췌하였다. 몰골이 그토록 후줄근해진
터라 눈썰미가 있다는 평판을 듣는 이방도
첫눈에는 몰라본 것이었다.
"내가 시방 길나장이까지 둘 처지가
못되었네."
"수행도 못 두고 출타라니오? 그놈
방자는 속량(贖良)이라도 시켰단
말입니까."
"아닐세. 그놈도 이젠 밸이 없지 않아서
근자에 와선 날 쫄쫄 따르지도 않을 뿐더러
아버님 시중이 더 다급한 일이라 집에 박혀
있네."
"장가를 드셨습니까. 상투를 트셨소."
"바깥 출입 뻔질나다보니 채모
보전한답시고 상투는 외자로 틀었다네."
"시방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그 위인이 남원부사로 제수받았다기에
남원에서 신연 인사차로 길청의 이속들이
올라와 있을 것을 짐작하고 무턱대고 가는
길인데, 공교롭게도 임자를 만난 게군."
"상투를 외자로 틀었다지만 신수가
훤하십니다. 도령님이야 원제 뼈대부터가
훤칠하시니까 길목버선을 뒤집어쓰고
다니신다 해도 풍골이 준수하실 터이지요."
고깝게 들으면 비아냥거림이요, 아름답게
들으면 칭송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눈치 빠른 이방아전이 한마디 불쑥 질러서
이도령의 염냥을 떠보자는 심산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쓸개를 국 찔러보는 말에
이몽룡은 결기를 돋우지도 않고 인적 드문
골목 안의 동정을 쭈뺏쭈뺏 살피던
꺼내었다.
"임자에게 쓰다 남은 노자가 있는가."
이방도 덩달아 쭈뺏거리고 있다가 울대
속으로 기어드는 말로 대꾸하였다.
"예, 식대 치러줄 푼전 너댓닢이 남아
있긴 합니다만......"
"그만하면 되었네. 임자와 나 사이에
지난 정리가 크게 돈독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외진 곳에서 이렇게 만났으니
술 한자리 사게."
이방이 하늘 꼭대기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르기를,
"시생도 신관사또 현신하러 갔다가
끼니를 굶어가면서 면박만 당하였더니 속이
출출합니다만 지금은 새빨간
대낮이라......."
어떻고 꼭두새벽인들 대순가."
한강 나서서 뺨 맞고 종가에 들어와 눈
빼 먹힌다더니 천상 그 짝이 되었다.
명색이 사대부질 자제로서 서울의 색주가를
주름잡고 설친다는 이몽룡이가 고린전을
챙겨 신연 인사차 서울 온 시골 아전에게
술을 사라니.
사리분별을 따져서도 온당하달 수
없었고, 가계의 요족함과 궁핍함 정도를
따져서도 가당찮은 얘기였다. 그러나
지난날의 정리를 들먹이며 오금을 박고
드는 데다가 이미 노자를 가졌다고
실토정을 해버렸으니 앞장서서 식주인 정한
객주집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경아리란 위인들 산협사람 가만히
세워두고 눈깔 빼먹는다더니 곱다시 그런
들어가서 목로 하나를 차지하고
좌정하자마자, 이몽룡은 제 주머니 속에서
꺼낸 돈으로 식대를 치를 것처럼 이것저것
주제넘게 안주를 시켰다. 돈육 삶아낸 것,
닭갈비에다 잉어 지짐이와 술을 시키는데,
그 달변이 흡사 얼음 위에서 박밀 듯
거침이 없었다.
배알이 뒤틀리는 대로라면 당장 이방의
호패를 내던지며 발딱 일어서고 섰을
정도였다. 그러나 꾹 눌러 참으면서 이방은
물었다.
"변사또께서 남원부사로 제수된 것은
어찌 아시었습니까."
"어찌 아셨냐구? 그 위인이 서울 장안이
짜하도록 자랑삼아 외치고 다닌 터에 양쪽
귀가 멀쩡한 내가 모를까."
달라졌다. 쏘아붙이는 언사도 지난날
책방도령일 때처럼 아담하거나 엄숙하지
않았고 쓰고 있는 갓도 왼쪽 이마를 가릴
정도로 삐딱하였다.
언사에 상없는 제도하며 거친 입성이
갈데 없는 백수건달이었다. 그 준수하고
도저하던 책방도령의 체모가 도대체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
"시생에게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으셔서
시생을 찾으셨습니까?"
"거참, 임자는 조급도 하군. 순배나 돌린
뒤에 자초지종을 얘기해야지. 푼전도 못
가진,험상궂은 주제꼴에 이것저것 안주를
시켰다고 토라진 것인가."
이방이 도리질을 하였다. 밸이 틀린
잔속이 들통난 터다. 아니라고 도리질을
같았다.
"농일지언정 그런 말씀 거두십시오.
언감생심 시생이 무엄하게 토라질 리
있겠습니까. 남산골 고살길에서 도령님을
뵈리라곤 꿈에서도 예견 못했던 일이라
갈피를 잡지 못해서 우두망찰하였습니다."
"순배나 돌리세. 임자의 노자가 불과
서푼뿐이라면 내가 엄대 긋고 갈 것이니
조급증 낼 것 없네."
이럭저럭 서너 순배가 되었고 돌고기
접시도 반이나 비웠다. 그때 목덜미까지
불쾌하게 취기가 오븐 이몽룡이 물었다.
"해소기침에 울렁증을 겸한다더니 이게
천상 그 꼴이 되었네. 어째서 하필이면
변학도란 위인이 남원부사로 제수되었단
말인가. 한마디로 요로에 있다는 현직들이
" 도령님 누가 듣겠습니다. 목청을 휠씬
낮추십시오."
"왜, 끌려가서 경을 질까봐서 뒷덜미가
메숙메숙한가? 하긴 임자 같은 산협고을
이속들이야 경사(京司)에 있는 벼슬아치들
꿍꿍이 속을 소상하게 알 수 있겠나."
개탄(慨歎)인지 개타령인지 자절거리는
거조가 변학도가 남원 부 사된 것이
이몽룡에겐 크게 달갑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이방은 그 컷속을 얼추
짐작하고 주저하고 있던 한 마디를
실토정하였다.
"신관사또 부임하시면 남원 고을
수청방이 날마다 들썩들썩할 조짐이
완연하온테, 초풍을 할 일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남원 기방에 득실거리는 모든
월매의 소생을 들먹이고 계시니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남원에는 월매라는 이름 가진 여인네가
한 사람뿐이고 또한 월매의 딸도 춘향이란
외동딸뿐이겠으니 이런 불상사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서울에서 남원까지는 천리나
떨어진 고을인데 변사또가 어째 남원고을에
들어앉은 춘향이가 절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궁금합니다."
화들짝 놀랄 줄로만 알았던 이몽룡의
눈빛이 처연한 채로 먼산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술사발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키던
이몽룡의 입에서 그러나 천만이외의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그건 네 불찰이라 해두세, 그러나 내가
임자에게 당부하려던 말은 그게 아닐세."
두고볼 것이 아닙니다.
땅땅 벼르는 품이 춘향아씨를
동헌마당으로 불러 잡아 꿇리는 일인들
주저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허어, 그게 아니라니깐 그러네. 그런
일이야 신관사또가 내켜서 하는 일인즉슨
춘향을 엮어들여서 물볼기를 안기든 주리를
틀든 도대체 어느 누가 가로막고 나설
배짱이 있겠나."
"그런 불상사에 대비할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요사이, 내가 몹시 궁하게 되었네
그렇다고 사대부 체모에 아무 사람이나
찾아가서 설궁(說窮)할 처지도 아닌 터,
겉으로는 아닌 보살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척
고초를 겪고 있다네.
깨달았을 터이지만 내가 남원 처가의
사천(私賤)에 기대지 않으면 체통
보전하기가 거북하게 되었네."
"아니 댁에는 짙은 천량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버님 남원 부사 도임하여
송덕비 세운다 핑계하고 거둬들인 잡세만도
기만냥에 이를 것인데, 그런 거액을 모두
어찌하고 도련님은 거지 신세 다니신단
말입니까."
"기만 냥이든 기십만 냥이든 난
상관없네. 골방 뒤주 속에 넣고 잉어
자물통으로 채워둔 짙은 천량을 내가 무슨
재간으로 범접하리오."
"그래서 장모의 사천을 넘보는 것입니까.
설혹 사천이 있다 한들 고린전에 불과할
것인데, 볼가심할 금어치도 아니되는
"고린전이든 거만의 재물이든 그건
임자가 시시콜콜 따질 것이 아닐세. 다만
남원으로 내려가거든 명색 사대부집 자제란
내 처지가 체통조차 지키기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고만 듣고 본 대로 일러주게,
그러면 달포 안짝으로 방자를 내려보낼
것이니 그땐 좋은 소식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더라고 말전주를 해 주게."
"시생은 못합니다."
뉘 앞이라고 단숨에 못한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벌써 몇 순배가
돌아서 허파가 뜨끈뜨끈해진 아전이 후끈한
술기운을 빌려 감히 아뢰지 못할 한마디를
뇌까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몽룡은 쓸개는 빼서 집의
횃대에다 걸어두고 나다니는지 아전의
같았다. 첫마디로 못한다고 내뱉은 것이
외람되었다 싶었던 이방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키지는 않습니다만 간찰이라도
써주신다면 전해 드리겠소.
그러나 시생의 입으로 도련님의 험악한
외양을 미주알고주알 말전주하기는 거북한
일이니 그 말씀만은 거둬주십시오."
"고이한 사람 하구선. 길청에서
거행한다는 이속들은 어째서 걸핏하면
<거둬주십시오>란 말버릇에 이골이 난
것인데 그런 버릇은 왜 진작 거둬들이지
못하나."
"벼슬아치들 수하에서 눈칫밥을 먹다보니
화증이 솟을 때라도 겨우 지절거릴 수 있는
말이 <거둬주십시오>뿐이랍니다. 그런
나부랑이가 벼슬아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말 삼가시오. 하고 호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폐일언하고 난 요사이 글발이라면
수전증이 생겨서 개도 그려내는 갈지자도
그려내지 못한다네. 임자가 나를 어렵게
여겨서 거둬주십시오 하든 아니면 하찮게
여겨 삼가시오 하든 그건 임자 내키는 대로
대접하게만 내 청한 가지만은 시덥찮게
여기지 말고 남원 장모와 춘향에게
여축없이 전해 주게."
"시생이 아옹다옹 안달 나서 주제넘게
간섭할 일은 아닙니다만 도령께선 글공부는
애저녁에 개물려 보낸 것이 적실하군요."
"글공부 개물려 보낸 것은 서울 와서가
아니고 남원 있을 때 부터였네. 내막을
신세가 딱하게 되었네."
"누워서 침뱉기요. 제 도끼로 발동
찍기입니다. 시방 월매 집안 꼴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고나 계십니까."
그때 이몽룡은 소매를 들어 아전의 말을
가로막는 시늉을 하면서,
"그것 또한 내 알 바 아니로세."
"딱하십니다. 정녕 딱하십니다."
"임잔 노자 대신 딱종이 짐을 지고 서울
왔나 웬 딱소리가 낭자한가."
"흰소리야 하늘의 별인들 못 따겠소,
정녕 딱하십니다."
술방구리 바닥난 것을 알아챈 이몽룡은
취중이었으나 더 이상 지분거리기도
지겨웠던지 온다간다 수인사도 없이 술청을
나가 헤적헤적 고살 밖으로 사라치는
남원 고을 길청에서 신연 인사차 상경한
이방의 주머니를 발겨 술 허기는 채웠으나
해거름판에 남산골을 나섰지만 정작 갈
곳이 없었던 이몽룡은 지향이 없었다.
책방도령으로서의 지체도 저버린지 오래 전
일이였으니 집으로 가보았자 반겨줄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지엄하신 아버님의
서릿발같은 꾸중과 질책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부자간의 인연조차 없었던 일로
하시겠다는 외람된 말씀까지 있었던 터라
헐숙청(歇宿廳)을 지키는 청지기조차
만날까 두려운지 오래된 일이었다.
눈치빠른 방자란 놈은 아버님 의중을
진작부터 알아채고 책방어름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니 집으로 가보았자
있는 종놈조차 없었다.
운종가(雲鍾街)한길로 나서서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서소문(西小門)쪽으로 헤적헤적 걷고 있던
이몽룡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탑골
쪽으로 꺾이고 었었다. 오뉴월 한장마에도
빨래 말미는 있는 법이고, 고슴도치에게도
살친구는 있다 했듯이 이몽룡 같은
백수건달에게도 그 스산한 십가를 십분
해아려줄 만한 안 침술집 한 군데가 탑골에
있었다.
고샅길을 비틀거리며 꺾어 돌아 용수
꽂은 장대도 없는 초가집 사립문 앞에
당도한 이몽룡은 버티고 서서 통자를
넣는다.
"이리 오너라."
살이나 되어 보이는 편발머리 계집아이가
구르듯 달려나와 사립문을 열어주며 어깨를
조아린다. 계집아이의 뒤를 따라 봉노에
좌정하니, 계집아이는 금방 안 채로
달려가고 빈 방 한가운데 빈주머니의
나그네만 외톨로 남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시행도 횃대도 없는 네모진 봉노에 벽에는
초병 하나 걸린 게 없어 혀로 핥은 듯이
말끔하였다. 안침술집이란 원래 행세하던
사대부집 파부들이 궁핍한 가계에 보탬을
얻고자 은밀히 낸 술집인대 안채와 술청의
구분이 매우 뚜렷하여서 식주인인 안채의
과부가 바깥채 술청으로 얼굴을 내미는
법이 없었다.
안채와 바깥채 술청을 드나들며 식주인과
길손 사이를 연락하는 것은 상노아이가
기생방처럼 흥취는 없다지만 기명이
정갈하고 안주가 맛깔스럽고 외상술로 엄대
긋고 일어나도 자질구레한 뒷말이 없고
혼자 앉아 독작을 하여도 허물될 게
없었다.
고독한 주정뱅이 이몽룡에게 안성맞춤인
술집인 셈이었다. 그래서 이몽룡에겐
어느덧 단골이 된 곳이었다.
소슬하게 앉아 있을 제 계집아이는
협문으로 술상을 디밀었다. 개다리
소반에는 짭짭하게 끓인 붕어 지짐이 한
대접, 북어 부침개 한 접시와 술 한
방구리가 놓여 있었다.
술상을 받는 길로 자작으로 서너 대접을
게걸스럽게 들여마신 이몽룡은 천장의
삿갓반자를 쳐다보며 방고래가 꺼져라 하고
술을 비운 다음 다시 한 방구리를 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 방구리를 청하였다. 그러나
술상 가녁에 턱방아를 찧을 정도로 대취한
것을 알아챈 계집아이의 태도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도령님, 이젠 술을 더 이상 못 내시겠다
하십니다."
안채 식주인의 결연한 거절이란
뜻이었다. 길손이 취했다 싶을 땐 더 이상
술을 팔지 않는 것이 안침술집의 오랜
풍속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몽룡은
고집을 부렸다.
"내가 이 댁에 단골로 드나들기를
일천하지 않다는 것은 철부 지 한 너도
알고 있을 터. 내가 모주꾼 행색일 망정
그동안 이 댁에서 분탕질하여 창피한 꼴을
술을 더 내오지 않으면 이 집을
박살내겠다구."
대취하여 누깔이 시뻘개진 사람이
침버캐를 튀겨가며 땅땅 벼르는
언사였던지라, 철모르는 계집아이는 화들짝
가위질려 고정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득달같이 안채로 달려갔다. 그러나 곧장 빈
손으로 되돌아와서 뇌까리는 말전주가
가당찮았다.
"이집이 박살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나, 장안에서 떠르르하신다는
부승지(副承旨)의 사제님께서 탑골의
하찮은 안침술집 박살내다가 지체에 체모
손상 입으실까 저어한다고 여쭈시라
합니다."
"말씀 한번 여유작작이군. 내가
자제라는 말은 입밖에 흘린 적이 없거늘
무슨 연유로 밑절미 없는 말로 나를 농하고
있으냐고 여쭈어라."
계집아이가 꼬리에 불댕긴 강아처럼
안채로 쪼르르 달려갔다 나오더니,
"도령님께서 부승지의 자재라는 것은
분명하고 또한 장안의 색주가에서 소문난
팔난봉에 백수건달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모를리 없는 터에 본색을 숨긴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벼락을 피하자는 허황함이오
또한 가문에 욕을 돌리는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여쭈라십니다."
"당돌한 언사로다. 엇따 대고 야로가
이토록 야멸찬 것이냐. 내 설령
백수건달이랄지언정 너의 집 식대를
떼먹거나 찍자부린 적이 없거늘 가서
"해진 뒤에 외간의 남정네와 입씨름을
벌이는 일은 내외를 엄중하게 여기고 사는
들어앉은 계집사람으로선 탐탁치 않은
일이니 도련님께선 냉큼 일어서라고
여쭈라십니다."
"마침 나 외엔 딴 길손도 없으니 호젓한
김에 분노에서 자고 갈 것이니 넌
들어가거라."
"아시다시피 저의 집에선 숙객(宿客)은
들이지 않습니다."
"숙객이든 숙맥이든 내가 알 게 뭐냐.
장안의 백수건달이라면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릴 것이 없는 터, 잠들면 그게 바로 내
집이 아니겠나."
"당장 박살을 내시겠다고 벼르시던
집에서 침석을 보려하시니 정녕
"고년, 말대꾸 한번 아금받구나.
안채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네년 혼자서
차 치고 포 치고 다하느냐."
계집아이가 한동안 두 눈을 빤히 뜨고
술상 위로 턱방아를 찔고 있는 이몽룡을
할퀼 듯 노려보더니,
"별꼴 다 보겠네."
하고는 안채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계집아이의 안달에 못 이겨 식주인이
술청으로 나와 보니 이몽룡은 벌써 봉노
한가운데에 큰 대자로 네활개를 짝 벌리고
누워서 코를 골고 있었다.
술에 취해 잠든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간
하루 종일 먹고 마신 것을 방바닥에 죄다
게워내기 십상인지라 발치에 놓인 술상을
거두고 차렵이불을 덮어준 다음, 삽짝문
이튿날 새벽 잠에서 깨어나긴 하였으나
심신이 고단하여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었데, 협문 밖에 인기척이 나고
문이 열리더니 난데없는 자리끼 한 사발이
디밀어졌다. 얼른 받아 마시고 보니
꿀물이었다. 쓰린 속을 꿀물로 다스리라는
안침술집 식주인의 배려가 틀림없었다.
문밖에선 지난밤에 들어서 귀에 익은
계집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령님께선 옷매무새를 갖추신 다음
안채로 듭시라고 여쭈라십니다."
"왜라더냐?"
"아침동자를 마련하였다고
여쭈라십니다."
지난밤의 괄시받은 기억이 없지 않았던
이몽룡은 한마디 비틀어 물었다.
대접이란 과분한 일인 터 지난밤 괄시와
험담은 어찌하고 동자대접이라더냐."
한동안 잠잠하더니 계집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동가식서가죽으로 세월을 농하는 백수건달
주제에 왠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고
여쭈라십니다."
"도대체 너의 집 안주인은 어떻게
생겨먹은 계집이라더냐."
"엉덩이에 뿔 달린 계집이라고
여쭈라십니다."
"엉덩이에 뿔 달린 여자라면 난생
처음이다. 얼추 구경거리가 될만하겠군.
내가 안채로 가면 그 뿔을
보여주겠다더냐."
다친 사람들도 여럿이라고 여쭈라십니다."
이몽룡이 발끈하여 계집아이 뒤 따라
안채로 들어섰다. 뒷마루 올라가서
건넌방으로 들어가니 싸늘한 방에 밥상
하나 댕그랑 놓였는데, 자르르 윤이 나는
나주반에 놓여 있는 기명들이 정갈하고
깨죽과 해삼탕이 여염의 상것들 제도가
아니었다.
펄썩 주저앉기는 하였으나 밥상을 차린
여인네의 기품이 녹녹치 않은지라 수저
들기가 선뜻 내키지 않아 우두망찰하였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한 소복의
여인네가 숭늉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림으로 짐작되는 나이가 서른대여섯은
되었을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 있고
단아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숭늉그릇을
미리 놓여 있던 다각반위에 내려놓으며
여인네는 나직하게 말하였다.
"외간의 남정네를 안채로 듭시라고 청한
것이 외람된 줄은 알았습니다만 잠자리를
드렸으면 끼니 수발 드린 연후에 보내는
것이 도리라 여겨서 무리한 청을
드렸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대접이 융숭하였지만 여인네의
행동거지가 허물 잡을 데가 없고 또한
입안도 텁텁하고 칼칼한지라 깨죽 몇
숟갈을 깨죽대다가 수저를 놓았다. 취중에
상노아이와 농담 반 객담 반으로 말대꾸
주고받다가 이런 창피를 당한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일어서려는 판국인데, 시무룩한
이몽룡의 거동을 시종 눈여겨 바라보던
감추었던 향낭 한 개를 꺼내 놓았다.
"아시다시피 이도령께선 저의 집의
단골이십니다. 한 달이면 열번 정도는 저의
집에 들러 주석을 베풀어서 저의 집 가계를
꾸려 나가는데 적지않은 보탬을
주었습니다. 제가 술청 손님들과 대면은
하지 않습니다만 상노아이의 말전주를 받아
술청에 단골로 찾아오는 분들의 신상만은
소상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남원의 관장으로 도임한다는
변학도 역시 우리집의 단골손님이긴
마찬가지입다. 변학도의 술주정을 전해
들건데, 이도령께서 평생 해로할 것을
언약한 남원의 춘향이란 규수를 남원
도임하는 그날로 수청을 들이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수령이 되었다는 것도 이 나라 조정의
현직들이 부패하였다는 증거일진데,
이도령과 같은 학사가 성균관 아닌
색주가에서 술과 계집질로 세월을 농하고
있음은 썩은 조정보다 더욱 개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나 춘향이란 규수가
본래 음탕하여 도련님과의 언약을 초개갈이
여기고 변학도에게 스스럼없이 수청을 한다
하여도 명색이 대장부라면,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방비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대저 선비들이 가진 병통이 있다면
시절을 개탄하고 비방하는 언사는
서릿발같아서 귀에 듣기는 끌처럼 달지만
막상 탄핵하고 앞장서는 일에 부딪히면
꽁무니 빼기 일쑤이니 항상 겉과 속이
이도령 역시 그와 같이된다면 젊은
학사로서의 품격이 이지러질 것은 분명한
것이 아닙니까. 술과 계집질로 세월을
탕진하고 종국에 이르면 뼈와 살을 허물고
깎아 대장부를 한낱 미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 대면하는 안 침술집. 여인네의
말일지언정 울곧은 말임에는 틀림이
없는지다. 이몽룡도 이렇다할 말을 꾸어댈
수 없었더라.
반은 귀여겨듣고 반은 흘려듣는데,
여인네는 향낭을 들어 이몽룡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것은 몇 푼 안되는 노자입니다.
그러나 도련님께서 그 동안 우리 집 술청에
와 건네준 식대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삼아 남원으로 내려가시어서 평생 해로할
것을 언약한 규수가 욕을 당하지는 않도록
조처함이 올바른 일이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내게 이런 은혜를 베풀려는
속셈이 뭣이오."
"이 가슴에 도사린 속셈은 없습니다.
다만 이도령과 같이 촉망받아야 할 재사가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탕진한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또한
변학도와 같이 무도한 위인이 한 고을의
수령자리에 도임한다는 소식 듣고 보니 제
스스로 이 시절이 부끄럽고 개탄스러움에
외람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지난 밤에는 날 보구 할 수 없는
반실이라고 여러 번 이죽거리지 않았소."
"그것은 분김에나마 도련님을 안채로
계책이었습니다."
"시방 날 보구 이 노자로 남원으로
내려가란 것이오."
"그렇습니다."
"어머님도 못하실 말을 식주인이 하고
있구려."
"장부의 기개를 중도에서 꺾으시면
그것을 이름하여 어찌 장부의 기개라
일컬을 수 있겠습니까."
탑골 안침술집을 나온 이몽룡은 그러나
집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안주인이
건네준 향낭을 낡은 도포 콩소매 속에
집어넣고 운종가(종로)를 내닫는 파락호
이몽룡의 발걸음은 주전부리하러 가는
뺑덕어미 발걸음처럼 오줄없이 불량하고
암내 맡고 날뛰는 숫나귀처럼 누깔이
안면 있는 사람을 만나도 수 인사조차
나누는 법이 없이 소맷자락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숭례문 쪽으로 달려가는 거조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숭례문을
벗어나서 칠패저자거리 안침까지 달려가는
이몽룡의 모습에선 탑골 안 침술집에서
있었던 안주인의 간곡한 당부는 안중에
없다는 것을 당장 눈치챌 수 있었다.
비좁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저자거리를 벗어난 어느 집사랍문 앞에
당도한 이몽룡은 뒷짐지고 멈춰서서 통자를
넣는 것이었다.
"채련이 있느냐?"
우정 목청을 높여 통자를
넣었건만,안쪽에선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채련이 있느냐?"
계집이 문지도리에 반몸을 기대고 삐쭉
얼굴을 내밀었다. 익은 앵두 같은 물이
오른 붉은 입술이 되바라졌고, 눈발이
매몰차면서도 총기도 있어 보이는 계집의
모색을 보자 하니 구태여 다찮고 묻지
않아도 색사에 능통한 음탕한 계집임이
분명하였다.
바라지를 열고 반몸만을 밖으로 내 밀고
있던 계집의 표정이 문득 반색을 하는
듯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시큰둥해지면서
쏘아불이는 것이었다.
"아니 저 백수건달이 아침나절부터 어인
뜸베질인가?"
"뜸베질이라니? 거 대꾸 한번 고약하다.
명색이 기둥서방인 나를 두고 짐승에
빗대어 뜸배질이라니? 내가 여물 먹는
"어머, 기둥서방이라니? 어느 잡년이
이녁보고 기둥서방이란 별호를 채워드렸나?
내 가진 기동서방 명부에는 이 아무개
이름은 눈 씻고 봐도 없으니 남의 집
사립문 가로막고 서 있지 말고 냉큼 비켜나시오."
"고년. 말대꾸 한번 매몰차구나. 서푼
짜리 앙탈에 내가 찔끔할 성싶더냐."
그렇게 이죽거리면서 이몽룡은 무작정
히죽히죽 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계집이 화들짝 놀라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와락소리를 내절렀다.
"이 불한당아, 내집에서 냉큼 물러나지 못할까."
앙칼진 계집이 무엄하게 집어내던진
빗자루가 이몽룡의 면상에 맞고 땅에
문지도리에 반몸을 숨기고 있던 까닭을
알아차렸다. 이몽룡은 계집이 빗자루를
힘껏 내던질 때 벌거벗은 상반신에 드러난
젖무덤을 보았던 것이었다. 이몽룡이
속으로는 아뿔사하였으나 뱃심을 보이며 말하였다.
"이년,이미 햇발이 이른 대낮에 아직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필경 그 서푼
짜리 살 꽃을 팔고 있던 중이렸다."
"남이야 살꽃을 팔고 있든 희학질을
질탕하게 벌이고 있든 서푼의 꽃값도 없는
파락호가 헐뜯을 일이 아니니 썩
물러가란말여." "괄시가 섣달 자리끼같이 차갑구나.
그러나 오늘만은 나도 사정이 매우
달라졌다. 서푼이 아니라 몇백 냥 금어치에
뒷물 깨끗이 하고 상방으로 들어와 수청들이라."
이몽룡이 콩소매를 뒤져 향낭을 꺼내
계집이 바라보는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 향낭의 출처를 알지 못하는
논다니 계집은 역시 썩 내켜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외상술에 오입질까지 엄대 긋고
다니는 이몽룡이가 하룻밤 사이에 몇백
냥에 버금가는 횡재를 챙겼다면 도둑질
아닌 다음에야 바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안에 이름자가 떠르르한다는 부승지
자제라지맹, 남원에서 저지른 일로
부모와는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동가숙 서가식하는 주제에 백 냥 금어치의
행하돈을 지녔다는 것부터가
술수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 논다니
계집은 끝내 지분거리고 있는 이몽룡을
내쫓을 생각으로 방 윗목에 두었던 자리끼
사발을 들어 섬돌 앞에 선 이몽룡의
얼굴에다 끼었으며 뇌까렸다.
"네놈이 엄대 긋고 간 살 꽃값은 자리끼
한 사발로 탕감된 것이니 두 번 다시 내집
사립문 앞에선 얼씬도 말거라."
물 사발을 뒤집어쓴 이몽룡은 그러나
손으로 콧등을 쓸어 물기를 닦고 나서 핏대를 곤두세웠다.
"이년, 엇다 대고 못된 행패더냐. 이런
악증을 부리고도 무사할 성싶더냐?"
분기탱천하여 발뒤축을 구르며 꾸짖는
중에 바라지문에는 계집의 모습이 사라지고
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유자코를 한
견대팔의 살피듬을 보자 하니 허우대가
금강장사 버금갈 만치 껑충해 보였다.
그 사내는 꾸짖고 있는 이몽룡의 체수를
눈발로 가늠하면서 이죽거렸다.
"이거, 어느 곳간에서 빌어먹던 생쥐가
백주에 남의 여염집에 뛰어들어 찍자를 놓는 게야."
다잡아 묻지 않아도 밤새껏 계집과
동품하고 있던 사내임이 분명했다.
"이놈아, 듣자 하니 계집의 거웃도 엄대
긋고 만지는 서푼짜리 주제꼴에 삼이웃이
들썩하도록 악중은 왜 부리느냐? 당장
뛰어나가 단매에 어육을 만들어줘야 정을 다시겠느냐?"
이몽룡이가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험악하게 생긴 사내를 바라보았다. 누깔이
서로 겨뤄보았자 자신은 고목에 깔딱낫으로
덤비는 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사내의
말투가 도저하고 허우대가 험악하게 생겼다
한들 장안의 파락호로서도 서춘짜리 겸기는
있는 것이었다. 이몽룡은 가위 질린 기색이
없이 마주하고 목자를 부라리며 사내를 꾸짖었다.
"이놈, 상없는 놈이 감히 뉘게다가
해라로 내붙이며 가당찮은 욕지거리를
대중없이 뇌까리느냐. 나와 한번 겨뤄볼
의향이 있다면 사내답게 옷매무새를 고치고
뜨락으로 썩 나설 일이지. 개바자 뒤에
숨어사는 족제비처럼 계집의 등뒤에 숨어서
응석을 떨고 있는 게냐."
"어, 이놈 봐라 말투 거센 품이 자칫
덧들였다간 피칠갑하겠군 그랴."
모가지를 돌려 앉히겠다
"야 이놈아. 내가 지난밤에는 색탐하는
계집의 채근에 시달림을 받아 하초가
녹작지근헤진 터이지만 체수 잔망스런
책상물림한 놈쯤은 단매에 저승으로 보내줄
여력은 아직 남아 있다. 신명떠름 한번 할까?"
"이놈. 벼르지만 말고 썩 나서지
못하겠느냐. 나도 태견으로 몸을
단련하였으니 결단코 호락호락하진 않으리."
땅땅 벼르는 이몽령의 뱃심에 사내도
울와가 치민 게 분명했다.
옷매무새를 고치며 섬돌로 내려서는
사내의 행색을 보자 하니, 숭례문 밖 칠패
저자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선길장수
아무렇게나 틀어올린 불상투에 허벅지
아래를 덮는 긴 저고리, 그리고 종아리에
행전 둘러친 꼴이 갈데없는 난전꾼이었다.
사내가 상없는 난전꾼이란 것을 알아챈
이몽룡은 스스로 입맛이 씁쓰레하였다.
어쩌다가 자신의 처지가 이런 불상놈과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더란 말인가.
자책감이 가슴을 싸늘하게 적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황중에 무엇을 어찌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 사내의 허우대를
목도하게 된 그는 일순 눈앞이 아찔해서
난데없는 아지랑이가 오락가락하였다.
예견했던 대로 사내가 주먹을 쥐어 그를 한
번 내려치기라도 한다면 이몽룡쯤은 당장
박이터질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었다. 땅땅 벼르며 얼러보자고
으시대었던 것이 금방 후회되었다. 얄미운
계집은 바라지를 빼끔하게 열고 줄곧
바깥의 동정을 훔쳐보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이몽룡이가 등줄기에서 누린내가
나도록 얻어맞는 꼴을 구경 삼자 함일 것이었다.
뜨락에서는 그러나 침묵이 흘렀다. 두
손을 불끈 움켜쥐고 사내가 선공(先攻)으로
싸움 트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그러나
사내는 이 몽룡의 어깨 위로 가만하게 손을 얹었다.
"그만둡시다. 이미 승패가 결단난 일을
두고 서푼 짜리 악증을 부려 겨룬다는 것은
옹졸하고 어리석은 일이오. 게다가
계집으로 발단이 된 하찮은 일이오. 명색
엎치락뒤치락 뒤엉켜 흙투성이가 된다는
것도 구경꾼들만 불러들일 뿐 별 무슨 소득이 있겠소."
이해타산에 밝은 장사치다운 말이기도
하였고 국량을 가진 사내로서의 아량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간 평소부터 미천한
부류로만 여겨왔던 장사치가 그런 국량을
보였다는 일에 스스로 배알이 뒤틀린
이몽룡은 당장 발끈하였다.
"어림없는 얘기다. 네놈과 같은 상것에게
갖은 욕설과 애꿎은 창피를 당한 사대부의
처지는 개차반으로 아느냐."
"댁은 서술 시퍼런 사대부요. 시생은
조선팔도를 정처없이 떠도는 미천한
장돌림인 것을 왜 모르겠소. 그러나
우리들이 입씨름을 하게 된 시단이
던지고 지체없이 알 궁둥이를 둘러대는
논다니 계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겠소.
시생이 듣건데, 사대부는 그 체통을
엄중하게 여겨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로 잠을 청하는 궁핍을 겪을 지라도
몸가짐에 괴팍하여 한길가 저자거리의
잡되고 추한 것에 삼엄한 경계를 둔다 하였소.
그래서 사대부는 장거리에 볼일이 있다
하여도 삼가해서 그 수하의 노복으로
하여금 장거리로 내보낸다는 것은 댁에서도
모를 리 없겠지요. 그러나 외람되게도 댁은
사대부의 지체로 장거리 한가운데애 있는
창부의 집에 와서 왜자한 소리로 스스로
사대부의 이름사를 더럽히고 있음이
사대부의 지체란 그래서 스스로 경계하여
거두지 않으면 자칫 더럽혀지기 십상이
아니겠습니까. 댁이 기어코 결기를 삭일 수
없다면 주먹을 들어 시생의 뺨따귀를
치시오. 시생이 감내해 드리리라."
그 순간 이몽룡은 사지에서 기력이 죄다
빠져나가는 듯한 무력감에 빠졌더라. 그가
섬돌에 엉덩방아를 찧고 털썩 주저앉아
버리자 바라지문을 빠끔 열고 뜨락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논다니 채련은 그 순간
문을 쾅 닫고 입귀를 버쭉하면서
혼잣소리로 이죽거리는 것이었다.
"주제에 질질 짜기는......"
이몽룡의 눈언저리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뇌까린 말이었다.
그러나 장돌림이란 사내는 그때 허리를
"댁의 준수한 모색을 꼼꼼히 살피건대
귀골이 분명합니다. 댁과 같은 귀골이
파락호의 행색오로 장안의 먼지를 쓸며
주태배기로 지내고 있는 근저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법합니다.
백지장도 마주들면 낫다 하였소.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보다는 상것인
시생에게나마 실토정을 하고 나시면
속이라도 시원할 터입니다.
시생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판무식에 본데없는 산협 출신이긴하나 그간
조선팔도를 발섭하고 다니면서 듣고 본
견문 한 가지는 남다르다 할 수 있소.
지체에 창피하다 생각 말고 얘기 하시오.
댁과 시생은 오다가다 우연히 만난
사이라지만 알고 보면 우린 구멍동서가
"내가 자네에게 훈육을 받을 만큼 구렁에
빠진 처지는 아니겠으니 육허기 채우고
해웃값 처렀거든 갈길이나 가시게."
이몽룡은 눈시울을 닦고 있던 소맷자락을
들어 장돌림이란 사내에게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괴춤을 뒤지더니 전 대를
풀어내는 것이었다. 전대 속에서 엽전꿰미
하나를 꺼내는가 하였더니 문을 열고
방안으로 던지면서 논다니 채련에게 분부하였다.
"이 돈으로 나가서 술과 안주를
사오너라. 명색 기둥서방이란 분에게 네
대접이 그토록 매몰차고 소홀해서야 쓰겠느냐."
게걸스럽게 엽전꿰미를 받아든 채련이는
"이만한 금어치라면 돼지와 닭을 잡겠습니다."
"해장술에 돌고기는 소용없다. 냉큼
일어서지 못할까. 이 선다님을 방으로 뫼시어라."
밤새껏 요분질에 허벅다리가 지치기도
했으련만 채련은 오리궁둥이를
해죽거리면서 술과 안주를 받으러 나간
사이 장돌림은 탈기 한 채 먼산바래기를
하고 있는 이몽룡을 곁부축하여 방으로 좌정시켰다.
"자네 성함이 무언가?"
그제서야 이몽룡은 장돌림을 하게 말로
대접하였다. 장돌림은 허리를 굽혀
공대말로 대접하였다.
"미천한 것이 어찌 외람되게 성함을
장돌림으로 불러주십시오."
"자네에게 폐단이 되고 있네."
"동서지간에 무슨 거북한 말씀입니까.
오늘은 파탈하고 아랫동서의 술을 받아주십시오."
이때 남원의 춘향이는 구관 사또의
자제였던 이몽룡을 섬기고자 정절을
지킨다는 소문이 이읏고을에까지
자자하더라. 그 소문 듣고 어중이
떠중이들이 춘향의 집 담 밖으로
모여들었다. 관속(官屬)들은 물론이요.
길청의 아전배와 건달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장사치와 공인(工人)바치와
한량들이며 늙은 녀석, 젊은 녀석, 키큰
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물에 씻은 차돌같이
곰배팔이와 언청이 할 것 없이 몰려와어
담장올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일태면 배꼽 아래에 명색이 고기
방망이를 차고 있다는 사내놈들은 모두
모여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벌(地閥)을 자랑 삼자는 놈에,
재물(財物)로써 달래보려는 놈.
문장(文章)으로 후리려는 놈에, 거문고나
단소 피리소리로 꼬드기는 놈. 매파(媒坡)
띄워 감언이설로 속차리려는 잡놈들이
많았지만 일편단심 춘향이는 하루에 두
번씩 토옥에 갇혀 애매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최씨부인 구매밥을 갖다 먹이는 일
이외에는 단 한 발짝인들 허튼걸음을 걷는 법이 없었다.
그즈음 신관 사또인 변학도는
신연(新延)관속들의 현신(現身)받은 후에
이방을 불러 물었다.
"너의 고을에 있는 양이는 아직도 무사하렸다?"
이방은 첫마디에 알아듣지 못하고
조아리며 엉뚱한 말로 대답하였다.
"소인의 고을에 양(羊)은 없습니다만,
염소는 백여 마리 기르고 있습니다."
변학도의 입에서 당장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놈아, 내가 백 마리 염소를 혜아리라
하였더냐? 기생 중에 양이가 있더냐."
"남원 기생중에 뜸배질하는 뿔 달린 짐승은 없습니다."
"이놈 봐라, 시방 날 조롱함이 아니냐."
"미련한 소생이 어찌 사또를 조롱할
양(羊)을 들먹이심에 뿔 달린 짐승은
기안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여쭈어
드렸사옵고 혹은 염소탕을 즐기시나 해서
백여 마리의 수효를 해아린다 아뢰었거늘
이것이 어찌 조롱이 되겠습니까."
"그놈 제법 소명한 체 지절거리고
있구나. 그럼 향이는 아직 있더냐?"
"남원에 춘향이라는 여염집 규수가 있긴
합니다만 기안에는 그런 이름이 없나이다."
"어찌 그러하냐."
"다름이 아니오라 구관 사또 도형님과
상약(相約)한 이후 지금은 수절하고 있다고
일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변학도가 그때 목덜미에 핏대를
곤두세우고 곱지 않은 눈망울 이리저리 돌리면서 말하였다.
마른 풋내기 주제에 작첩(作妾)이라니 말이
되는 얘기냐. 네 놈 먼저 내려가서 그년
춘향을 기안에 적바림하여라."
"사또 그것은 불법입니다."
"네놈이, 내 앞에서 아는 척 마라. 내가
바로 율(律)이요, 법이다."
"나으리, 고정하십시오."
"네놈이 가진 이방 직첩이구 구실이구
지금 당장 떼어버리기 전에 분부 시행 못할까."
변학도는 곧장 치행하여 발행할 제,
남대문 나서서 칠패 저자거리 벗어나
청파(靑坡) 돌모루 동작나루 건너
과천(果川)객사에서 하룻밤 유숙하였더라.
도임행차 첫날밤에도 수청들일 계집을
물색해 줄 별배들이 없는가 하고
누마루 아래쪽을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한 놈을 손짓으로 불렀다. 불러놓고 보니
허우대는 껑충하되 매우 얼굴은 콩멍석에
엎어진 놈처럼 박박 얽었고 한 눈은
찡긋해서 매우 추악한 위인이었다. 그러나 변학도는,
"너의 외모가 매우 순박하고 기특한
놈이로구나. 넌 네 고을 남원의 일을 잘 알고 있느냐?"
별배란 놈이 누마루 아래에서 콧등에
흙이 묻도록 허리를 조아리며,
"소인이 그곳에서 삼십 년을
생장하였사오니 털끝만한 일이라도 소인이
모르는 일이란 죄송하께도 없사옵니다."
"어허, 오랜만에 말대답 한번
속시원하다. 삼십 년 동안의 남원의 일을
맞추어 대답하는 말 한번 홀딱 벗은 계집
보듯 시원해서 좋다, 네 구실은 일 년에
얼마나 먹고 다니느냐?"
신관 사또 묻는 언사가 매우 은근한지라
별배란 놈은 한 번 깊숙히 조아리고 나서,
"아뢰옵기 황송합니다."
"황송할 것 도대체 없다."
"구실이라 하옵는 것이 좁쌀 석 섬이
고작입지요. 그러하옵기에 이런 때 행차를
모시러 서울에 오게 되면 관아의 구실로서
내왕행보를 하게 되지만 쇤네 스스로
노자를 마련해야 되겠기에 길에서 만나는
숫막에다 엄대 긋고 먹고 다녀야 하기에
여북하면 굶고 다닐 때가 많겠습니까.
그러하옵기에 변리에 또한 곱으로 변리를
물어야 하는 경주인(京主人)에게 진 빚이
때가 많아 끌려가서 쓸기 맞기를 섣달
그뭄날 흰떡 맞듯 하옵니다."
"가능한 일이다."
"알아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넌 상호가 그처럼 순박하게 생겼으니
계집들이 널 얕잡아보고 경계하지는 않으렸다."
"그렇습지요."
"계집들이 널 하찮게 여겨 오히려
경계하지 않는다면 너로 봐선 오히려
그것이 빌미되어 계집들에게 접근하기가
수월할 터, 너 은밀히 나가서 수청들일
계집 하나 유인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이라면 앉아서 떡먹기입지요."
"그럼 됐다. 나가 보아라. 밤이 이숙하여
좌우가 물러나거든 은근히 기척해서
별배란 놈이 해죽해죽 무러나는 터에
변학도는 별배를 다시 불러 나직히 당부하였다.
"들여보내기 전에 뒷물 시키는 것 잊지
말아라. 산협고을 처기들의 곰삭은
젓국냇매는 딱 싫은 성미다."
밤이 이슥하여 좌우가 물러난 뒤 타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면서 소슬하게 앉아
있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기척이 났다.
소스라친 변학도가 미닫이는 열지 않고
고개만 밖으로 돌리며 나직하게 물었다.
"게 누구냐?"
"쇤네입지요."
"냉큼 들여보내지 않고 뭘 꾸물대느냐.
꼴같잖은 뜸 들이고 있는 게냐?"
그때서야 궁금했던 변학도는 손수
수청들이라는 계집은 보이지 않고 별배란
놈만 짐승처럼 껑충하게 서 있었다. 머쓱한
꼴을 보자 하니 당부한 일을 그르치고
돌아온 게 분명하였다. 당장 핏대가
곤두서서 불호령을 내릴 참이었으나 눌러 참고 물었다.
"주제꼴을 보자 하니 일을 그르친 것이냐."
"일을 그르친 것은 아닙니다."
"아니라면 네놈 혼자 열 적게 서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고?"
"밤바람도 쐴 겸해서 미복(微服)으로
납시는 것도 해롭지만은 않을 듯해서
달려왔습지요. 이곳에서 불과 반 마장도
안되는 상거에 살고 있는 어떤 여염집
규수를 만나 켯속을 떠본 결과 나으리께
잘못되었다는 면박을 들었습니다."
"그 무슨 해괴한 망발이더냐?"
"나비가 꽃을 찾아가는 것은 고래로부터
내려오던 삼라만상의 궤적(軌跡)이요
순리인 터에 어찌 꽃이 나비를 찾아갈 수
있겠느냐. 이는 순리에 대한 거역이니 설령
규수가 몸소 찾아와 나으리 와 합방을 한다
하여도 침 석의 재미는 썩 달갑지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그건 네놈이 꿍꿍이 속으로 거짓 꾸며낸
말이냐 아니면 여염집 규수가 제 입으로 한
말이냐 "쇤네의 꿍꿍이 속이라니요. 억탁의
말씀입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쇤네가
언사를 꾸며대는 죄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여염집의 규수가 어찌 색에 달통한
언사를 농할 수 있다는 것이냐. 그런데도
상호를 쳐들고 꾸며댈 것이냐."
"쇤네가 보기로는 그 규수가 나으리와
침석을 같이하고 싶은 심정은 간절하되
이목이 번다한 이곳 객사가 다소
깨림칙하여 은밀한 가운데 나으리를
모시려는 속셈인 듯합니다."
"네놈이 둘러대는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사의 내막은 그럴듯하다. 계집의 모색은 어떠하더냐."
"가위 국색으로 대접할 만하더이다."
"과천에 국색이 살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국색이 따로 있겠습니까. 객수에
시달림을 받는 나그네에겐 언청이도 국색일 수 있겠지요."
네놈이 주선한 일이 언청이 계집으로 마련한 것이냐?"
"그 규수의 옥문이 세로 찢어진 것인지는
벗겨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으나 입은 가로
찢어져 멀쩡하였습지요."
"이놈, 나와 농을 하자는 것이냐, 고이헌 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기다려라. 네놈이 추선한 일이 아담한
것인지 내 몸소 가서 아퀴를 짓겠다."
변학도가 계집을 낚아채는 일이라면 서울
장안에서도 호가난 터에 야행인들 두려워할
위인이 아니었고,설령 남원으로 도임하는
행차 중일지언정 계집을 후리는 일이라면,
도임길이 거꾸로 되어 서울로 되짚어
오른다 한들 삼가할 위인은 아니었다.
조방질을 면박을 줄만큼 톡 쏘는 성깔을
가진 도저한 계집이었다면 웅당 살결도
매끄러울 뿐더러 침방에서 요분질하는
솜씨쪼 야금받을 게 틀림없었다.
선머리에서 히죽히죽 걷고 있는 별배를
미복의 변학도는 족둥(足登)도 없이
휠적휠적 뒤따라가고 있었다. 객사 뒷문을
빠져나와 꼬부라진 고샅길을 몇 번이 나
돌았건만 두어 발짝 뒤에 선 변학도는 길이
멀다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수양버들 너댓 그루가 듬성듬성 둘러선
천변길을 따라 오르다가 다시 고샅길로
들어서는데 급기야 불이 환하게 켜진
여염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삽짝 밖에서
통자를 넣을 것도 없이 성큼성큼 뜨락을
가로질러 불켜진 봉노 앞에 이르자,
곧장 문이 열리는데 저고리는 벗어 던져
박속같이 희디흰 어깨와 젖가슴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계집 하나가 문을 열고
내다보며 해죽 웃음을 흘리었다. 그 교태를
보자 하니 길가에서 잔술이나 팔고 있는
들병이에 방불한데 그 집은 안침술집도
아닌 여염집이 분명하였다.
오입질에 이골 난 변학도라 할지라도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이상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아."
별배란 놈 또한 허리를 조아렸다.
"저게 구미호인가 사람인가."
"사람입니다."
"계집사람이라면 어찌하여 빈객을
맞이함에 버르장머리없게 저고리를 벗고
"나으리께서 봉노로 드시면 당장
침석으로 드실 태세인지라 번거로운
인사치레는 거두고 진작부터 저고리를 벗은 줄로 압니다."
"고이헌 것. 그렇다면 치마부터 벗을
일이지 저고리부터 벗는 풍속은 어느 나라
오랑캐 풍속이더냐."
"대저 계집사람들은 순서를 차리고
격식을 차리는 일에 삼엄한 경계를 두는
법입니다. 치마를 벗자면 저고리부터 벗는
것이 순서 아니겠습니까."
"저건 여염에 들어앉은 계집이 아닌
논다니 계집이기 십상인데?"
"논다니라니오. 쇤네가 여염집의 규수로
주선하겠다고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여염집 규수의 교태가 저토록
"과천이라는 곳이 서울로 드나드는
번다한 길목인지라 진작부터 풍속이
순박하지 못해서 들어앉은 집 규수의
모색이 저토록 요란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어서 듭시지요."
변학도가 꺼림칙하여 내키지는 않았으나
계집의 교태가 워낙 호들갑스러워 시선을
사로잡는지라 내키지 않는 거동으로 봉노로
들어가 앉았다. 웬걸, 봉노 안에는 벌써
주안상이 차려져 있는데, 과천에서는
주변하기 힘든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겠다.
변학도가 거북한 대로 좌정을 하자
계집은 물 묻은 손에 깨 엉키듯 댓바람에
턱 밑으로 바싹 조여 앉으며 알랑방귀를 뀌었겠다.
"선들선들한 것이 행보할 만하더라."
"나으리께선 어디로 행차하시는 길입니까."
"남원으로 춘향이 보러 간다."
"말씀이 매우 퉁명스럽습니다 그려."
"초인사도 올리지 않는 계집사람에게
외간사내가 퉁명스럽게 구는 것은 무례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
그제서야 계집은 서둘러 벗어든 저고리를
꿰입었다. 그리고 잔허리를 꼬며
나부죽하니 큰 절을 울리고 나어 한마디 여쭙더라.
"저는 채련이라 하옵니다."
"채련이라? 듣고 보니 기명(妓名)임이 분명한데?"
"그렇습니다."
흘기었다.
"아니, 저 별배란 놈의 농간이 아니냐.
내 주선하라고 분부했던 것은 양가의 규수라 했거늘."
"별배를 타박 마십시오. 여염의 규수들은
두루 알아봤으나 서둘러 뒷물을 시켜보아도
사추리에서 곰삭은 젓국내가 지독하게도
가시지 않는 터라 매우 당황하여 궁리를
하다 못해 저를 주선한 모양이더이다."
시큰둥해 있던 변학도는 피아말 엉덩이
둘러대듯 배씹는 소리로 사근사근
알랑방귀를 뀌고 있는 채련의 교태도 크게
싫지는 않은 듯 놋쇠 술잔을 들어올리며
술이나 치라고 불퉁가지를 부렸다.
채련이는 한 손으로는 변학도의 잔하리를
휘감고 허벅지는 변학도의 가랑이 안쪽으로
넘치도록 약주를 부었다.
"나으리?"
"왜냐?"
"쇤네로 하여금 수청 들라시면 오늘밤이
누추하고 협소한 와실(蝸室)일지언정
쇤네와 더불어 밤을 지새울 것이지요?"
명태 부침개를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던 변학도는 그러나 솔깃한 기색이 아니었다.
"네 살갗이 얼음결처럼 매끄럽고 또한
요분질이 키질하듯 야들야들하다면 닭
울녁까지 수청을 들일 수도 있겠으나 썩은
통나무처럼 자빠져 있기로 한다면 그 당장
박차고 일어서겠다."
"객사의 야경꾼들이 순라를 돌다가
나으리께서 객사의 처소를 비우고 잠행하신 모를 터인데요."
"순라장들이 설혹 내 없는 것을 눈치재고
한다리로 몰려나가 나를 추심(推尋)한다
한들 어느 여염집을 뒤져 나를 적발할 수
있겠나. 끽해야 술청거리나 뒤지다가
단념하고 돌아가겠지."
"쉽게 좌단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순라꾼이 나으리가 잠자리에 드시지
않으신 것을 알게 되면 불량배에게
유괴라도 당하신가 해서 객사가 발칵
뒤집히게 될 것은 물론이요.
과천 군수조차 뛰어나와서 나으리 행방을
찾자 하고 북새통을 이루어 난리법석이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결국은 나으리의 체통에
똥칠하기 십상이고 남원까지 가야할 것입니다."
채련의 말에 변학도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계집이 재잘거리는 말이
흰소리로만 여길 수 없는 대목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머쓱해진 변학도는 그러나 퉁명스럽게 채련을 꾸짖었다.
"약 주고 병 준다는 시챗말이 있듯이
네년이 바로 그짝 아니냐.네년을 수청들일
뜸도 들이기 전에 나 창피 당할 걱정부터
먼저라면 이건 약 주고 병 주는 물이
아니라 약 주기 전에 병부터 주는격이니
네년의 속셈이 뭔지 적지 않게 수상쩍구나."
채련이는 술주전자을 내려놓고 남작 엎드렸다.
험담이 어디 있습니까. 새털같이 수많은 날
중에 단 하룻밤인들 미행하신 나으리를
침석에 뫼심에 있어 때 아닌 동티라도 나면
그 또한 쇤네로선 불경을 저지르는 일이라,
일찍부터 침석의 주위를 경계하여 뒤탈이
없게 조처함이 좋을 듯하여 나으리의
의중을 어렵사리 떠본 것인데 어찌 억탁의 말씀만 하십니까.
길가에 핀 노류장화 신세라 한들 오는
걸출하고 준수하신 나으리를 뵙고 심기
애틋함으로 가슴을 옥죄이고 있는데 계집의
심사를 헤아림에 그토록 몰인정하시다니....."
귀여겨듣고 보니 계집의 말에 또한
일리가 없지 않았다. 말재간도 얼추 남의
빈축을 사지 않을 만큼 똘똘하고 육덕도
일어날 수 없었던 변학도의 목소리가 비로소 은근하다.
"그럼 객사에 내가 없다는 것이 들통나지
아니할 딱 부러질 계책이라도 있겠느냐?"
"어쨌든 나으리께서 객사로 돌아가실 닭
울녘 시각까지만 순라 꾼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객사의 잠자리를 조치한다면
북새통이 일어날 불상사를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야 물론이다."
"나으리를 수행해서 이곳까지 왔던 저
배행꾼을 지금 당장 객사로 돌려
돌려보내어 외람되나마 나으리의 차지하고
잠든 채 하면서 때로는 코를 골기도 하고,
때로는 잔기침하며 또한 요강을 끌어당겨
소피보는 시늉을 한다면, 나으리께서
일이 들통나지 않으실 듯 싶습니다만
그것이 외람되어 내키지 않으시다면 그냥 두시지요."
"저 배행꾼놈의 허웅대는 나와 비슷하나
입성이 매우 남루하여 만에 하나 그
의복으로써 본색이 탄로나기 십상 아닌가."
"나으리께선 관복은 객사청 횃대에
벗어두시고 지금은 미복(微服)차림이
아니십니까. 약차하면 배행꾼이 그
관복으로 잠시동안 순라꾼들의 눈총을 따돌릴 수 있겠지요."
"너의 계책이 탁견(卓見)이다."
무릎을 치며 껄껄 웃던 변학도는 마당가
섬돌에 쭈그리고 앉아 망보는 시늉을 하고
있던 배행꾼을 불렀다.
그리고 채련이가 일러준 대로 객사의
지키고 있되 이러이러한 일이 생기면
저렇게 하고, 저러한 사단이 생겨나면
이렇게 따돌리되, 만에 하나 이도저도 아닌
일이 생기면 너 또 한 이도저도 말고
다짜고짜 튀라고 분부를 내렸다.
그러나 거시기 한 일도 생겨나지 않을
경우 내일 새벽에 내가 가만히 객사로
돌아갈 것이니, 첫닭이 울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객사 뒷문 빗장을 열어두라고 두
번 세 번 눈자위를 번들거리며 머시기한
말로 떠먹 이듯 일러주었다.
변학도의 삼엄한 분부를 받들고 몰래
객사의 침방으로 기어든 사람은 물론 서울
칠패 저자거리 에서부터, 채련과 통을 짜고
신연 행차가 동작나루를 건널 임시부터
배행꾼으로 가장하여 행차를 뒤 따랐던
주인 없는 객사방에 일같찮게 숨어든
장돌림은 당장 횃대에 걸어둔 관복으로
고쳐 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밖에서
순라꾼의 기척이 들리면 거시기한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머시기한 목소리로
잔기침에 코고는 소리를 내어 고단한 잠을
청하는 척 가장하였다. 그러나 그 속임수는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꼭두새벽도 아닌 한밤중에 객사청은
느탓없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 북새통을
이루게 되었다. 객사청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던 도임 부사께서 마침 야경하고 있던
순라꾼을 불러 행차 채비하라는 왜자한
분부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미닫이를 썩 밀어붙인
뒤 누마루 아래에서 말뚝잠을 자며
밑도끝도없이 뜰 아래의 보교(步驕)부터
대령하라고 대성일갈인데, 밤빛으로 얼핏
바라보자 하니 도임부사께선 벌써 관복까지
갖추어 입은 뒤였다.
객사방에 물것들이 들끓어서 밤새 한잠도
이룰 수 없을 바엔 차라리 먼길 행차애
노정이나 줄이자는 것이 도임부사의 속셈인
듯한데, 워낙 괄괄한 성미에 목소리조차
퉁퉁 부어 있는 골이 물것들에 시달림을
받다 못해 울화가 치밀어 심통을 부리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도임행차중인 남원부사의
추상같은 분부라면 그것이 심통이 아니라
가당찮은 응석이라 한들 함부로 대거리하고
나서서 밉상으로 보일 까닭이 없었고,
그것이 사리분별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그
또한 거북한 일이었다.
보교꾼들이 때아닌 밤중에 서둘러 가마를
대령하고 부복(腑伏) 하고 있는 사이에
도임부사는 부리나케 내달아 덜컥 가마에
오른 뒤 손수 휘장을 내렸다. 바쁘게 된,
것은 신연행차 수행하던 남원 길청의 아전들이더라.
동이 트려면 아직도 먼 한밤중에 그런
야단이 벌어지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그들은 초저녁에 별배꾼들을
등쳐서 술을 받아오게 하여 대취한 가운데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들이 잠들었던 객사의 헐숙청에서는
아전들을 들깨우는 별배들의 겁 먹은
목소리와 어섯눈을 뜨고 갈팡질팡하는 아전
들의 주책없는 거동들로 한바탕 소동이
벌써 객사의 솟을대문을 벗어나고 있다는데
취중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던 고쟁이와
두루마기와 갓은 서로 뒤섞여 내 것과 네
것을 분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내 것이라고 꿰어 입으려 들면 곁에 있던
위인이 제 것이라고 낚아채고, 내 갓이라고
쓰려들면 뒤에 있던 위인이 또한 양반이었다.
대추나무에 연줄 걸리듯 얽히고 설킨
입성들파 행리와 폼짐 속을 아전들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기약없는 수선을 펴고
있는 중에 고목 그루터기에서 꽃이 피듯
적지않게 반가운 소식이 헐숙청 밖에 당도하였다.
"나으리께서들 들으시오."
가다듬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한
메고 가던 보교꾼과 수행별배가 서 있었다.
"어인 일인가. 우리가 시방 똥끝이
타들어 가도록 서둘고 있네. 촌각을 서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게."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 아니면 홀딱 벗은 몸뚱이로 지엄한
도임행자를 수행하란 말인가."
"그게 아닙니다. 나으리."
"그게 아니라니? 사또께서 개고기를
대령하시라던가?"
"개고기가 아니라 사또의 분부이십니다."
"재촉도 다급하시지. 우리가 시방
옷매무새를 갖춘답시고 도대체 경황이 없지 않은가."
"입성들 차근자근 갖추시고 객사를 본때
있게 나서시라는 사또의 분부이십니다.
오리정 밖에서 새벽바람을 쬐고 있을 터,
수행하시는 나으리들께서는 경황중에
입성들을 갖추느라 허둥지둥하다가 혹여
행차중의 연도에서 백성들로부터 행색에
범절없다는 빈축을 살까 적지 않게
우려하고 있답니다.
또한 이곳 과천군수를 찾아가 안전께서
미처 못 다하신 하직인사 대신하여 정중히
여쭙고 뒤따라와도 늦지 않겠으니 모쪼록
진중하시라는 분부가 지엄하셨습니다."
듣고 보니 한숨 돌릴 일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보교꾼이 열린 문으로 방안을
살펴봤더니 갓은 고사하고 아직 저고리조차
찾아 입지 못한 채로 멀대같이 서 있는
아전도 있었다. 성급하고 괄괄한 성미라는
도임부사애게 무슨 귀신이 덮어씌워 그런
언뜻 아량을 베풀게 된 컷속이
의심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갖추고 과천군수께
하직인사까지 깍듯이 치르고 뒤따르라는
분부라시니 한숨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키 큰 놈, 키 작은 놈, 부대한 놈에 여윈
놈들끼리 중구난방으로 주워입은 옷가지와
갓을 제자리에 맞게 다시 바꿔입고
세수하는 시늉까지 마친 뒤 아참동자는
거르기로 하고 과천군수 찾아가 하직인사
여쭙게 되니 과천군수 봄날의 뙤약별에
놀란 꿩처럼 화들짝 놀라 상반신을 들썩하였다.
"아니 이 어인 매몰찬 결례시란 말인가.
지방관의 전송조차 받으시지 아니하시고
불쑥 행차에 나서시다니."
일각이나마 길을 줄이자는 안전의
성급하심을 감히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낙맥을 하고 앉았던 과천군수의 표정이
그 순간 씁쓰레하게 이지러지는가 하였더니,
"내가 그분이 여색을 무척 즐겨하시는
성미라는 것은 풍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네만 불과해서 서울서 반나절 노정인
과천에서 성급하게 수청을 들이실까 해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더니.
지금 생각하니 지각을 차리지 못한 내
대접을 흘대로만 여기시고 화증이 솟으신 모양이네 그려."
"나으리 그것이 아닙니다. 안전의
마음속에는 오직 남원 당도하여 수청 들일
성춘향이란 미색으로만 가득하여
홀딱 벗고 드러눕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하여도 곁눈 한 번 뻐끗하실 가망도
없으십니다. 공연한 짐작으로 심란해
마시고 심려를 거두십시오."
"만약 그분의 심지가 자네들 말대로
그렇게 철두철미하시다면 천만다행이겠지만
자네들이 그분의 심지를 딱 부러지게 맞힐 수 있을까."
"눈치 한 가지로 구실을 먹고 산타는
시생들이 안전 한 분의 눈치를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모쪼록
나으리께서 저지르신 실책이 없었다고
좌단할 수 있는 일이니 심려를 거두십시오."
"그렇다 하더라도 아침동자까지 거르시고
행차하심이 천리노정에 여간
조급한 성미는 알다가도 모르겠군."
"원래 파격을 즐겨하시는 성미 신 것을
시생들도 소문 들어 알고 있습지요."
걱정이 태산 같은 과천군수를 진땀
흘려가며 달래놓고 신연행차를 수행하는
아전배들은 줄레줄래 동헌을 나와 앞서간
행차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때서야
동녘이 희쁨하게 밝아오면서 첫닭이 홰를
칠 시각에 이른 것 갈았다.
아전들이야 앞에서 시위하는 길라장이가
없다 한들 상경 때 한 번 찾아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서 회정하는 것이었으니 사방이
다소 어둑어둑해도 회정길 잃을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옷매무새를 본때 있게 갖추고
느릿느릿 뒤따라 오라는 행차의 분부가
살아가는 가련한 아전들 처지로선 마음부터
조급해지기 마련이었다.
처음엔 잔걸음으로 걸어서 오리정 밖에서
행자를 뒤따라잡자던 마음들이 한 발짝 두
발짝 떼어놓게 되면서 너나없이 발걸음이
빨라져 나중에는 숨이 턱에 와 닿을 지경이었다.
변학도가 침방에 벗어두었던 관복으로
변복한 장돌림은 객사를 나서는 길로
수행별배와 보교꾼 한 놈씩을 객사로
되돌려 보내어 수행아전들의 발걸음을
묶어둔 다음 가마길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이놈들 어째 행보가 이다지도 느려 터졌단 말이냐."
가마 속에서 떨어지는 호령의
뒤따라오라는 분부를 내리신 분이
새벽요기조차 못해 허기진 보교꾼들만
느닷없이 들볶아대는 것이 탐탁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행보를 빨리하라는 분부가 사리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까. 물거미
뒷다리같이 여윈 두 다리에 가래톳이
서도록 달려가니 연도의 숲속에서 잠자던
꿩들이 놀라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이놈들 빨리 걷지 못하겠느냐?"
"예, 나으리. 나는 듯이 걷고 있습지요."
"나는 듯이 걷는 게 홰 탄 오리같이
뒤뚱거리기만 하느냐."
"근력이 쇠하여 죄만스럽습니다."
"근력 핑계하지 마라 이놈들. 게으름을
네놈들 구실을 떼버릴 테다."
그 알량한 구실인들 떼버리고 나면 턱
떨어진 광대꼴이겠으니 가랑이 사이에
매달린 불알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뒤축 떨어진 짚신이 벗겨지려 하여도
들메를 고쳐맬 겨룰조차 없었더라, 앞채꾼
뒤채꾼들 숨이 턱에 와 닿았고 진땀이 흘러
사추리에 묻었던 땟국이 하얗게 가시었다.
객사를 떠나 삼십 리 행보를 눈자위를
하얗게 치뜨고 결음아 날 살려라한 셈이었다.
그러다가 사위가 나무숲인 부인지경에
이르렀는데 가마 속에서 느닷없이 멈추라는
분부가 떨어졌더라.
"소피볼 일이 생겼느니라."
"매화타령 하지마라 이놈들 저 숲속으로
들어가서 속시원하게 뒤를 보고싶다.
네놈들 행보가 이렇게 느려 터져선 환갑을
먹고나서야 남원 당도하겠다, 가근방에
세바(貰馬) 낼 곳이 없더냐."
"소사(素沙)지나 성환(成歡)역참에
이르시게 되면 그곳에서 안장마로
갈아타시고 나는 듯이 남윈부중
당도하시도록 주선하였사옵니다."
"성환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
"오십 리가 빠듯하옵니다."
"에이, 천불난다. 차라리 걷는 것이 빠르지 않겠느냐."
"죄만스럽습니다."
"재만이고 찰만이고 부질없는 넋두리
집어치워라. 너희들은 멀찌감치 물렀거라.
보교꾼들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부복하고
있는 사이에 가마에서 나온 장돌림은
소매를 떨치며 아직 새벽기운이 가시지
않아 어둑어둑한 숲속으로 성큼성큼 결어 들어가더라.
보교꾼들은 한숨을 돌리고 비 내린 뒤의
방천둑에 눌러앉은 줄남생이들처럼 한길가
풀성에 줄래줄래 늘어앉았겠다. 곰방대 한
죽을 돌려가며 피우는 일변 괴춤에 찔러둔
장떡을 꺼내 얼요기를 때우는 축들도 없지는 않았다.
이마의 땀이 떨어져 짚신을 적실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숨 돌리는
말미가 너무 길다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였다.
한밤중에 객사를 발행할 재 측간 다녀올
추스를 얼이 번거로울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연 지체될 일이었다. 다시 신들매를
고치고 담배 한 죽을 더 담아 피웠다.
그런데도 변학도는 가마 곁으로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행보가 느리다고 울화를 터뜨리시던
사또께서 환갑 때까지 보 실 뒤를 오늘 몽땅 싸시려나."
"거 참 별일일세. 뒤를 싸던중에
개호주에게 주장군(朱將軍)을 물리셨나 원."
"설마하니 호랑이 어금니같이 아끼시는
고기방망이를 개호주에게 물려 보내셨을까.
그 한 가지만 의지해서 남원으로
도임하시는 분인데........"
"거 입정 대중없이 놀려대지 말게. 만약
하셨다면 임자의 가랑이 사이에 달린
고기방망이를 댕그랑 때버리려 하실 게야."
"설마하니....."
"설마라니? 안전께서 분기탱천하신다면
우리같이 미천한 것들 하초 결딴내어 버릴
일에 근력에 부대껴 못하시겠나. 세력이 없어 못하시겠나."
핀잔을 당한 보교꾼들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동배간을 흡떠보면서,
"임자가 안전의 집에서 곁방살이를 한
것인가 아니면 안전의 뱃속에서 내질린
처지인가. 안전의 멧속을 손금 들여다보듯
꿰고 있는 놈처럼 모르는 것도 알거냥하며
잘난 체하는 까닭이 뭔가."
"어, 임자 발끈하는 꼴이 자칫 손찌검할
가망 없지 않군 그랴."
주린 창자를 달래는 미천한 주제에 반죽만
늘어서 무불퉁지로 아는 척하니까 배알이
틀려서 하는 얘기여."
언죽번죽 입씨름을 하면서 무료한 시각을
죽이고 있었으나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까지, 뒤를 싸겠다고 숲속으로 들어간
변학 도는 끝내 가마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타나지 않더라.
뒷덜미가 써늘해진 보교꾼들이 숲속으로
흩어져 숲속을 서케 잡듯 뒤지기
시작하였겠다. 그러나 장돌림의 농간에
빠진 미련한 보교꾼들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로 진작 자취를 감춰버린 그를
찾아낸다는 것은 차라리 모래뻘에서 바늘
찾기가 수월할 터였다.
눈이 시뻘개진 보교꾼들이 찾아낸 것은
수행해서 모시고 갈 변학도는 온데간데없었더라.
설상가상으로 먼저 떠난 행차를 허겁지겁
뒤따라 잡던 수행아전들이 당도하게
되었다. 가마를 지키고 있던 보교꾼이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야단난 것을 아뢰었다.
그러나 아전들은 그 실토정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울지 말고 시초부터 차근차근 알아듣게
말하라고 재근에 위협을 하였지만 일백
번을 되씹어 차근차근 사단의 실마리를
아뢴다 한들 경국 남은 것은 이젠 싸늘하게
식은 똥 한 무더기뿐이었다.
보교꾼이 안석이 하얗게 질린 아전들을
알선하여 똥 눈자리로 데려갔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형방아전이 말하였다. 않은가."
"왜, 구린내 나지 않아서 밸이 들린다는 얘긴가."
원래 지체가 있다는 벼슬아치들 뒤본
자리에는 구린내가 지독하거든. 소문난
산해진미를 게걸스럽게 거둬 자시겠으니
그럴 만하지 않은가."
"그럼 이건 험한 밥만 먹던 상것이 뒤본 자리란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이 사람아 음식도 마찬가지거니와
냄새란 것이 따끈따끈할 때 맡아야지 식은
똥에 무슨 구린내가 그렇게 야단스러울까.
거 형방이라 해서 넘겨짚는 버릇 일삼지
맏게, 자칫하다 팔 부러뜨리네."
면박을 당하고 머쓱해진 형방아전이
"이런 낭패가 있나 그럼 무엇을 증거하여
사또의 행지를 수탐하겠다는 것인가. 이건
바람에 날려는 부들솜 잡기가 아닌가."
"사또의 방귀를 잡아서 포박할 수 있다면
행지를 알아낼 수 있겠지. 남원부중에서
떠르르한다는 형방이 사또의 방귀인들 동이지 못할까."
도임행차를 수행했다 해서 나중에 형방과
싸잡혀 침책(侵責)당할 일이라도 생겨날까
해서 처음부터 형방과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일 듯 해서 한 발짝씩 물러서려는
조짐이 역력하였다. 그때 앞 채꾼이었던
보교꾼이 얼굴을 되들고 나서며 형방에게 아뢰었다,
"가마를 내리실 때 쇤네들 행보가 느린
것을 험담하시면서 세마(貰馬)를 내주는
형방이 목자를 부릅뜨고 보교꾼을
노려보며 식지가락을 내뻗었다.
"이런, 미련하고 해망쩍은 놈을 보았나.
그 말을 왜 이제서야 지절거리고 있는 게야."
"하교가 없으니 외람되게 입정을 놀릴 수가 없었습지요."
"하교는 어느 고을에 있는 다리냐."
"가근방 백 리 일경에 있는 고을에는
이렇다 할 다리가 없습지요."
"이놈이 내 지체를 하찮게 여기고 나와
농을 하자는 게야. 이놈아, 있지도 않다는
다리는 이 경황중에 무삼 연유로 들먹이는 게냐."
"다리가 아니라, 하교(下敎)라고 여쭈었습지요."
놀리고 있구나. 돌다리든 흙다리든 다리
명색이긴 매한가지교 아랫다리든 뒷다리든
이름 짓기 나름이지 개울 위에 가로놓인
것은 매일반이 아니냐."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꼬여버린 것이까.
미천한 주제에 책상물림들이 쓰는
하교(下敎)라는, 언사를 흉내 내었다가
이런 창피를 당한 것일까. 입도 뻥긋 않고
가만 있으면 본전은 간다더니 그 말이 생판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았다.
총기 있다는 칭찬 한마디나마 들으려고
참견을 하고 들었던 보교꾼이 시뻘겋게
딱기기만 하고 난감한 얼굴로 머쓱하게
쭈그리고 서 있는데,지난날 글줄이나
읽었다는 이방이 제 못난 것을 그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형방을 지켜보다 못해
"페일언하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
사또의 행지를 수탐해서 노정을 바로잡는 것 아니겠소."
핏대가 곧두신 형방이 불퉁가지를 내었다.
"그러니까 저 놈이 실토정을 한 다리가
어느 고을에 있는 다린지 찾자는 것
아닙니까. 춘향이 보고자는 일에만
조급해진 사또께서 다리 건너 역참을
겨냥하시고 보교꾼들을 버리고 서둘러
달려가신 게 분명하오."
끝내 하교(下敎)를 다리로만 알고 있는
이 창피스런 경난을 양호한다면, 사태의
실마리를 꿰뚫어보는 안목은 형방답게 그럴듯하였다.
"그렇소. 망극하게도 사또의 성미가
불찰이었소. 여기까지 당도하실 동안
보교꾼들 행보를 수 차례나 재촉하셨다면
여기서 뒤를 보신 연후에 작정을 바꿔
역참으로 달려가신 게 분명하오."
"제 말이 그 말 아닙니까."
형방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간 또 다시 말
(言), 말(馬)알고 북새통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이방은 저만치 비켜서서
궁싯거리고 있는 아전들을 손짓하여 불렀다.
"우리가 여기서 너무 오래 지체하였소.
잽싸게 사또의 뒤를 따라잡지 못하면
사또를 수행하자고 서울까지 달려왔던
우리의 수고가 풀거품되기 십상 아니겠소.
서둘러 떠납시다."
"따라잡자니, 누굴 따라잡자고 분별없이
"나도 마찬가지지만 형방의 안목을
믿어야지. 사또의 성급하심이 보교꾼들
느린 행보에만 맡기고, 가마 속에 앉아
있기가 거북했던 게야."
"형방의 안목을 믿자니 이런 낭패가 없군
그랴. 아직 흙다리인지 돌다리인지 분별도
못하고 있는 형방의 말을 믿고 대중없이
노정을 잡기보다는 뒤본 자리나마 흔적이
뚜렷한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상책
아닌가. 우리 떠난 뒤에 때아니게 불쑥
나타나서 수행 별배들을 찾으신다면 그
뒤통수 얻어맞는 야단을 누가 감당하겠나."
뒤보았던 자리 하나가 그렇게 삼엄하게
사람을 얽매고 들 줄은 몰랐다. 형방의
짐작이나 예방아전의 짐작이나 모두가
일리가 없지 않았으니 그들은 오도가도
사이들끼리 살벌한 삿대질과 고함소리가
오가면서 머지않아 서로 의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물에 빠진 사람이라 해서 모두
하백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듯 그들의
아귀다툼을 한마디로 잠재운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빈 쪽지게를 등에 진 육로행상인
장돌림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때마침 남쪽
길 모퉁이를 돌아서 심기가 뒤숭숭한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서 눈자위만
삐끔하게 보이는 그 장돌림이 나타나는
순간 이방은 똥 본 개처럼 쭈르르 달려가서 물었다.
"여보게, 말 좀 물어보세."
"자네, 혹여 이 길을 오다가 혼자서
걸음을 재촉하는 관복차림 한 분을 보지 못했나?"
"관복차림 한 분 말씀이오?"
"그렇다네."
그 순간 장돌림의 눈동자가 둥그렇게 떠졌다.
"시방 그분의 행지를 수탐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네. 우리가 그분의 축지를
따라잡지 못해 시방 우왕좌왕하고 있다네."
"하 그렇군요. 시생도 이런 시골길에
어인 일로 관복 떨쳐입은 관원이 혼자서
저렇게 열 불나게 걷고 있나해서 적지아니 놀랐습지요."
"그분을 어디서 만났던가."
"저런 낭패가 있나. 그런데 자네
오뉴월에 땀들일 일이라도 있는 겐가. 볼을
왜 그렇게 싸매고 다니나."
"예. 시생이 때 아닌 볼거리를 앓고 있는
터라 조심을 한답시고 볼을 싸매었습니다.
시생 가까이 오시면 옮길까 두렵습니다."
코밑으로 바싹 다가서려던, 이방이
엇뜨거라 해서 뒤로 물러났고 멀찌감치 서
있던 수행별 배들은 벌써 장돌림의 말을
알아듣고 남쪽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채련이가 과천 여염집의 봉노를 잠시
빌려서 도임행차중인 변학도를 유인하여
잔허리가 부러지게 수청을 들고 있던 바로
그 집에 이몽룡이가 나타난 것은 그날
해뜰, 무렵이었다. 그 집 울바자 밖에
나타난 이몽룡은 삼이웃이 떠들썩하도록
"이리 오너라."
그러나 밤 깊도록 가죽방아를 찧어대며
희학질하던 연놈이 사지가 촛농처럼
노골노골하게 풀어져서 새벽잠이 곤한 터에
목청 돋운 통자라 한들 금방 깨어날 리
만무였다. 이몽룡도 짐작이 뻔한지라.
이번엔 삼이웃의 구들장이 들썩하도록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이리 오너라. 게 누구 없느냐."
목청을 드높이며 삽싹문을 거덜낼 듯
걷어차는 거조가 가근방에 횡행하고 있는
건달이나 악소패거리쯤으로 보였다. 삽짝
밖의 왜자한 북새통에 먼저 깬 사람은
변학도였다. 그는 자신의 아랫배에
올라와서 천연덕스럽게 가로놓인 채련의
허연 허벅지를 걷어내며 말하였다.
걷어차며 악지를 부리고 있더냐."
채련은 잠결에 끙하고 앓는 소리만 할 뿐
빈 입을 다시며 바람 벽을 안고 돌아누웠다.
"네 기둥서방이란 놈이, 해장술에 회가
동해서 찾아온 모양이다 그런데도 채련은
사지가 녹작지근해서 어섯눈조차 뜨려 하지
않았다. 간 먹은 놈이 물케더라고 지난밤의
요분질이 그토록 호들갑스러웠으니
채련이가 쇳덩이가 아닌 이상 피곤이
뱃속까지 사무쳤으리란 짐작은 어렵지 아니하였다.
문득 수청 들던 계집의 처지가 측은하여
잠든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삽짝 밖의 사내는 냉큼 삽싹을 열지 않으면
발길질해서 부셔버리겠다고 숭어뜀을
"어허, 저놈 마른땅에 새우 튀듯 뛰는
꼴이 자칫하다간 남의 침방으로 뛰어들겠는걸."
그때였다. 곤하게 잠든 줄로만 알았던
채련의 입에서 또렷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나으리, 심부름 같습니다만 나으리가
나가셔서 저 원수 같은 놈의 다리몽댕이를
작신 분질러 주십시오."
"다리를 분질러? 다리 분질러뜨리는
일이야 열 놈이 뛰어든다 해도 어렵잖다만
저 험상궂은 놈은 도대체 누구냐?"
"나으리께서 진작에 기둥서방이란 별호를
채워주시곤 누구냐고 물으십니까."
"그럼 기둥서방이 옳다는 것이냐."
" 짐작하신 대로입죠."
변학도는 그러나 꿈쩍도 않고 처연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하긴, 내가 감당하기엔 속이 니글니글할
정도로 네 요분질이 야단스러웠다면 네게
빌붙어 있는 기둥서방이 어디
한둘이겠느냐. 두름으로 엮는다 해도 세
두름은 될 만하다."
"나으리, 빈정거리시지만 말고 나가시어
저놈을 작신 밟아 주십시오."
"네가 나가서 좋게 달래 내쫓는 게
순서다. 길가에 핀 오얏꽃의 처지로
기둥서방 한둘 두었다는 게 크게 살풍경한
일은 못되는 터, 내가 손수 나가서
손찌검한다는 겸연쩍은 일이라, 자칫
체모에 손상 입을 가망이 없지 않다."
"쇤네가 비록 미천한 계집이긴 하나
동품하였습니다. 옛말에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계집의 하찮은 소청을 딱 잘라
거절하시다니 야속하고 매정하십니다."
"네가 만약 춘향이었다면 청이 없더라도
내가 벼락을 앞세우고 뛰어나가서 저
발칙한 놈을 두번 다시 오금을 펴지
못하도록 박살할 것이로되,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닌 것 같으니 네가 나가서 찍소리
없게 주물러줘라."
채련이가 입을 비쭉하면서 부시시
상반신을 일으켰다. 알몸으로 드러난
오리궁둥이를 뒤뚱거리며 횃대까지
기어가서 고쟁이를 벗겨 우선 벌건
하초부터 수습하는데, 아랫목에서 풀대님을
매고 있던 변학도가 소스라쳐 물었다.
고쟁이를 가랑이에 꿰고 있던 윗목의
채련이가 대수롭지 않게 되받았다.
"그놈 아직도 삽짝 밖에서 발을 구르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저놈말고 그놈말이다."
"아깐 이놈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그놈 아니냐."
"나으리, 고정하십시오. 도대체 어느 놈을 일컬음입니까."
"내가 알아듣도록 지위를 주어서 나 대신
객사의 처소를 지키던 놈 말이다."
"그놈이 삽짝 밖에 있는 저놈입니까."
변학도로 보아선 말귀가 어두워서 도대체
짐작을 모르는 계집으로만 여겨져 율기를
하고 체련을 흡떠 보았다.
말이냐. 그놈이 저 놈일 리가 만무하지 않느냐."
그제서야 채련이가 이마지두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면상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 배행꾼이 닭 울 녘에 객사를
몰래 나와 이곳으로 달려오라는 분부를
내리셨던 것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왜 쇤네를 보고 잡아 잡수실
듯이 목자를 부라리시는 것입니까. 쇤네가
그 배행꾼의 길목이라도 가로막았습니까."
"이 망칙한 년. 나를 일찌감치
들깨웠어야 할 것 아닌가."
"말씀인즉슨 그럴싸하십니다. 그러나
입은 비뚤게 찢어져도 주라(朱喇)는 똑바로
차이고 저 발길에 차이는 노류장화가
평생을 두고 쳐다보아도 한두 번침석에
뫼셔볼까 말까 한 나으리 같은 대인과
천행으로 동품한 터에 새벽이 아니라, 해가
중천에 뜬다한들 굴러온 요행을 발로
걷어차는 미련한 짓을 왜 저지르겠습니까."
반 근도 채 안되는 주들이로 백 근이
넘는 변학도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지라.
계집을 손찌검할 수도 없었던 변학도는
대님을 매다 말고 벌떡 일어서는데, 윗복
횃대 앞에서 저고리를 꿰업고 있던
채련이는 그 순간 몸을 날려 느닷없이
변학도의 종아리를 뒤틀어 잡고 납작 엎드렸다.
"나으리, 어디를 가십니까."
화증이 상투 끌까지 치밀어 오른 꿇리면서 부아를 터뜨렸다.
"이년. 불각시에 이런 악지를 왜
부리느냐. 게 누구 없느냐."
"나으리, 미천한 쇤네라 해서 이런
몰인정한 푸대접이 어디 있습니까."
"푸대접이라니, 엇따대고 대중없는
응석이냐. 그럼 내가 널 업어줄까."
"쇤네 주제에 업어달란 외람된 응석을
여쭙는 것은 아닙니다. 허벅지에 가래톳이
서도록 하초를 키질하여 나으리를 감당하는
일에 골몰하며 밤을 지새운 것을
나으리께서도 익히 알고 계실 터, 이제
쇤네를 두고 떠나심에 허우대도 그만하시고
또한 체모를 엄중하게 여기시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분께서 두둑하게
떨궈주셔야 할 해웃값을 떼먹으려 하신다면
"꽃값 말이냐?"
"꽃값이 아니라 살 꽃값이 아닙니까."
"내 행색을 네가 보았더냐."
"보고 있습지요."
"누깔을 빤히 뜨고 있다는 년의 말본새가
그렇게도 대중없음이냐? 네년이 보다시피
미복차림에 무슨 해웃값을 가졌겠느냐.
콩소매에 들어 있는 것이라곤 먼지뿐이다."
"나으리 말씀 다했습니까."
"그럼. 이 경황중에 너를 길게 상종하여
지절거리면서 지체하고 있으란 게냐?"
"이런 개차반이 어디 있습니까. 인품이
고매하시고 또한 장안의 청루에서도
씀씀이가 인색하지 않으시다는 소문도 자자하십니다.
그러시단 분께서 콩소매의 먼지를
위협하여 밤새도록 품고 나서 해웃값을
때먹으셨다면 그것은 체모에 똥칠하는 일이 아닙니까."
"이 망측스런 계집년. 나중 갚아주면 될
것 아니냐. 부대끼지 말고 이 다리 냉큼 놓아라."
"죽 떠먹은 자리와 같아서 증거도 없는
터에 나중에 받을 염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나으리께서 시치미
잡아떼고, 내게 살꽃을 판 증거를 대라시면
쇤내는 날샌 부엉이 꼴이 아닙니까."
"내 평생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
청루 출입이 번다하였지만 이런 낭패
겪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옥에 티로다.
춘향 보러가는 길에 이토록 상서롭지 못한
불상사가 끼어들다니 이런 창피는 내
"부덕이든 화덕이든 군불솥에 부지깽이든
쇤네와는 상관없소 .
나으리께서 쇤네와 동품한 현장에 있을
때, 쇤네는 서푼의 해읏값 일 망정 받아
챙겨야 하겠소. 명색없는 하향 천기는
맹물만 퍼먹고 산답디까."
"냉큼 놓치 않으면 요강을 들어 내년의
니글니글한 대갈통을 박살낼 테다."
"고종명을 못하고 지레 죽게 되면,
염라국으로 가는 옳은 귀신이 못 되고
십중팔구 삼도천 어름을 호매는 악귀가 될
터이지요. 쇤 네 허공에 떠도는 악귀가
된다면 그런 천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으리 뒤쫓아 남원까지 내려갈 제,
중로에서 사처 잡고 요기할 노자 한 푼
소용없고, 먼길 노정에 행역 치러 다리
싸 넣고 다니며 심술굿은 하늘의 변덕 따라
옷 갈아입을 처지 아니되고, 순검하는
나졸들 검색 따돌리려고 구차한 변명
늘어놓으며 빌지 않아도 되고, 나으리 남원
당도하시어 춘향 불러들여 홀딱 벗기고
침방에서 딩굴게 되면 쇤네는 요리조리
자리 옮겨가며 할끔할끔 구경할 제, 그
재미깨가 섬으로 쏟아질 것이니,
고조윈이나 분감청이다. 쇤네 귀신이나
되게 제발 나으리 의향대로 쇤네의
대갈통을 박살내어 주십시오."
"아니, 이년. 피칠갑이 되어봐야 이
손목쟁이를 놓겠느냐."
"피칠갑까지 않아도 될 터이오."
그 대답은 채련이가 한 말은 이이었다.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난데없이 문
불쑥 둘려온 사내의 대답에 방안에선 일순 숨을 죽였다.
"해웃값은 내가 대신 갚아주고 입체를 설
것이니, 미천한 계집년에게 피철갑하는
야단까지 벌일 건 없소."
의아하긴 체련이도 예외는 아니었던 터라
양손으로는 변학도의 한 쪽 다리를
진상가는 꿈병 동이듯 아주 바싹 끌어안은
채, 뒷다리를 쭉 뻗어서 발 뒤축으로 문을
밖으로 밀었다. 문이 열리고 섬돌에 서
있는 사내의 상호가 바라보이는 순간, 변학도는 놀랐다.
변학도가 제아무리 몰염치하고 반쭉이
좋다는 위인이라 한들 그 순간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폼밖의 사내와는 서로
초인사는 튼 적이 없다한들 면분은 낯설지
파락호의 별호를 차고 다닌 터수에
초인사를 나눈 적은 없다지만 동접들간의
귀뜸으로 저것이 바로 이몽룡이란 것만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몽룡 역시 변학도의 상호를 익히 알고
있는 듯 채련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변학도를 발견하는 순간 입가에 얄궂은
웃음을 홀리는 것이었다. 문밖에 서서
방안에서 받아채던 악다구니를 죄다 듣고
있었다는 듯 이몽룡은 빈정거리는 투로,
"아니, 부사께선 어쩌다 이런 상없는
낭패를 보고 계십니까."
척하면 담 너머에서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 그곳이 옹색한 천기의 집이란 것을
모를 턱이 없을 텐데 이몽룡은 짐짓 딴청을
피며 한마디 국 찔러보는 것이었다.
대꾸는 없었으되 속으로는 두번 다시 놀랐다.
그것은 이몽룡이가 장안의 건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들나루 건너서
과천에까지 휩쓸어 술주렴을 다니는 내로라
하는 건달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숱한 앙숙들 중에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원수가 하필이면 이몽룡이란 말인가.
원수를 외나무 다리 위에서 만났다면
물살 속으로 빠뜨려 버리기엔 그보다 좋은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원수일 망정 꽃값을
입체하겠다 하였으니 경황중에 이런 은혜가
어디 있을가. 아니나 다를까. 이몽룡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채련을 꾸짖었다.
"이런 계집의 소행머리로 보면 사람이
발목 놓치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
대중없는 소가지를 부리느냐."
"안전 아니라 어전이라도 쇤네는 놓치
못하겠소.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죽이라고 지다위하나? 내가 색주가
섭렵하는 파락호 신세일 망정 널 죽이고
남의 조롱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럼, 입체(入替)를 서시겠다고 땅땅
벼르셨으니 해웃값부터 떨궈주시는 게
내로라는 지혜를 가진 분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해웃값이라면 얼마를 떨궈줘야 성이 차겠느냐."
"황우소 한 마리 값을 받아야 하겠소."
당돌한 계집을 바라보던 이몽룡은
힘담없는 말로 물었다.
셈이었다. 놀란 것 은 변학도뿐만 아니라
이몽룡도 마찬가지였다. 눈자위를 하얗게
뜨고 당돌한 계집을 바라보던 이몽룡은
힘담없는 말로 물었다.
"네 사추리에선 누런 금덩이가 들쑥날쑥 하더냐?"
"도임행차의 안색을 보십시오. 하룻밤
사이에 누렇게 뜬 안색을 보시면, 쇤네가
황우소 한 마리 값어치는 하였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똥개가 백 근이나 되는 기골 든든한
사내를 하룻밤 동품으로 녹초를 만들어
놓았다고 생색을 하는 채련의 말에
이몽룡도 긴가민가해서 뒷짐진 채 변학도를
보고 물었겠다.
"사또, 이 간활한 계집이 사또를
아닙니까? 사또의 안색이 수척되긴
하였으나 수척한 것이 지난밤 왜자한
감탕질에 부대낌을 받은 탓이오?"
변학도로선 지금 일각이 조급한
사람이었다. 이미 해가 떠서
아침선반머리께가 되었다면, 객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고, 수행
아전들과 과천 나졸들이 그의 행지를
수탐하여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인데,
느닷없이 나타나 해웃값을 입체 서겠다는
이몽룡이란 미친놈은 해웃값 입채는 선뜻
않고 뒷짐지고 선채 물어보지 않아도 될
남의 안색을 들춰 창피 줄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였다.
난처한 처지에 있다하나 궁지에 몰린
변학도에게도 한가닥 배알은 있는 법이다.
"아니, 서겠다는 입체는 서겠소, 아니 서겠소?"
변학도의 눈발이 가파른데도 뒷짐진
이몽룡은 찔끔하는 기색도없이 여전히 태연하였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하였소, 내가 아니
설 입채를 서겠다고 흰소리를 하였겠소.
그러나 이 계집의 행방술과 미술(媚術)이
제아무리 출중했다 할지라도 햇조개도 아닌
터에 하룻밤 살송곳 웬 값이 과다하지 않소."
왈가왈부에 횡설수설로 입씨름을
벌이고만 있다간 무슨 난리에 창피를
당하게 될지 생각하면 모골조차
송연하지라, 변학도는 채련에게 잡혀 있는
발목을 흩뿌리는 시늉을 하면서,
것인지는 아직 면경을 못봐서 모르겠으나,
코끝에서 단내가 혹혹 풍겼던 것은
사실이니, 이년의 말이 생판 밀천미 없는
흰소리는 아닐 터요."
변학도의 입에서 실토정 비슷한 말이
흘러나오자 채련은 더욱 기세등등하여
덧붙이는 것이렸다.
"그것 보시오. 구름 끼어 안 보인다고
보름달이 어딜 가겠소. 또아리로 샅 가리기지."
그때밖에 선 이몽룡이 발뒤축으로 섬돌을
꿇리며 입정 사나운 채련을 꾸짖는다.
"이년. 입에다 버선짝을 틀어막을라. 입닥치지 못할까."
채련이가 말문을 닥치자, 이몽룡은
변학도에게 강다짐을 두었다.
있었기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삼엄한
경계를 가졌어야 할 도임행차중 하룻밤
농탕질에 평생 돌이키지 못할 창피와
오욕을 깜길 뻔하였소.
기공행하 한 가지만 바라고 살아가는
본데없는 아랫녘 장수인 저 계집이 사또가
당한 창피를 염두에 두겠소."
"고맙소."
"이 계집을 증거하여 남원 당도하면 닷
푼변으로 셈하여 원리금을 갚아주시겠소?"
"여부가 있겠소."
그때, 이몽룡은 콩소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향낭 한 개를 끄집어내어
채련에게 던졌다. 채련이가 게걸스럽게
향낭을 집어 해집어 보았더니 향낭 속에는
산호와 호박에 옥지환과 같은 패물들이 능가하였더라.
그 향낭은 바로 얼마 전 이몽룡에게 탑골
안침술집의 아낙네가 건네주었던 바로 그
향낭이었다. 채련이는 비로소 화들짝
반색하며 향낭을 게걸스럽게 두 손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추리의 얄미운
옥문이 보일락말락 까치다리로 묘하게
하초를 꼬고 앉으며 야금야금 뇌까리더라.
"나으리, 도임행차 먼길 행보에 부디 보중(保重)하십시오."
"시끄럽다 이년. 뜻밖의 악연이로다."
그 한마디 남긴 변학도는 구르듯 삽짝
밖으로 내달아 뒤 한 번 돌아보는 법도
없이 옷소매에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나는 듯이 객사에 당도하였더라.
그러나 객사를 수직하고 있던 나졸의
어찌되었느냐고 도저한 어투로 묻고 있는
미복 차림의 변학도에게 꾀죄죄한 더그레
떨쳐입은 수직나졸은 당장 불퉁가지를 내었다.
"도임행차는 왜 묻소?"
"이놈 봐라?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성깔을 부리느냐? 왜 묻소라니, 내가 바로
남원 도임하는 변부사가 아니더냐."
그런데 이 하찮은 나졸이란 놈의
행동거지가 변학도가 보기에는 가히
실성끼가 없지 않았다. 나졸은 본색을
밝히는 변학도의 매골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들고 간색하더니 히죽 실소를 하면서 이죽거렸다.
"그러고보니 임자의 상판이 추물인
변사또의 매골을 얼추 닮긴했군 그랴.
도임부사가 너와 막역한 반련이라 한들
대중없는 희롱 말고 별반거조 내리기 전에 썩 물렀거라."
미복이라지만 옥색 도포 떨쳐입은
변학도를 미친놈 취급하여 처음에는
공대로, 나오던 말도 해라로 바뀌었다.
관복 떨쳐입은 변학도 면전이었다면,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고패를 떨어뜨려
국궁(國躬)한 채 설설 기고 있어야 할
나졸이란 놈의 버르장머리없는 언사와,
얼굴을 되들고 얄기죽거리는 거조에 화가
꼭두까지 치민 변학도가 분을 삭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이죽거리고 있는
나졸의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하게 귀쌈을 후려쳤다.
"이놈, 시방 뉘 앞에서 해라를 내부치며
키꼴은 껑충하였으나, 하루 두 끼 섭생도
변변치 않아 항상 허기가 져 있는 나졸은
후려친 뺨 한 배에 휘청하고 쓰러질 듯하다
가 가까스로 휘어진 몸을 수습하였다.
그러나 배를 주리는 나졸의 신세라 해서
아침나절부터 개평으로 얻어맞은 뺨 한
대가 아프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관자놀이에 시뻘건 손자국이 난 나졸의
눈자위에 그 순간 불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그는 들고 있던 방망이를
겨드랑이가 찢어지나 싶게 높게
치켜들더니, 변학도의 견대팔을 겨냥하고 힘껏 내리쳤다.
"이 미친놈이 감히 뉘게다 행패냐."
뼈가 부러져 나갈 정도로 매몰찬 매질을
당한 변학도가 견대팔을 싸잡고
가까스로 몸을 가누려는데, 나졸은 그
사이에 쭈르르 달려와서 변학도의 등짝에다
또다시 대중없는 매찜길을 내렸다.
"이놈, 감히 도임사또를 사칭하길래
아침나절부터 웬 미친놈인가 해서 달래
내쫓으려 하였더니 천하에서 내노라는
관원을 손찌검하려 든다면, 이건 실성한
놈의 행패가 아닌 터, 너 이놈, 어디서 굴러온 행악꾼이냐."
개평으로 얻어맞은 분풀이가
호락호락할리 없더라. 문경새재 깊은 산
속에서 베어낸 박딸나무 방망이로 등줄기를
참없이 내리찍는데, 금방 코에서 누린내가
날 지경이었다. 옥색도포에 찢긴 살가죽이
묻어날 지경이었는데, 악증이 상투 끝까지
치민 수직나졸(守直羅卒)의 설분은 좀처린
객사 앞 한길을 지나던 길손들까지
때아닌 난장질에 흥미없지 아니하여 발길을
멈추고 고경소가 되었는데, 소시적
집장사령(執仗使令)으로 거행하였던 완력을
가져 사람 두들기는 일에는 이골 난 나졸의
사매질은 매우 옹골차고 혹독하더라.
하물며 평생 매맞아본 경험이 없는
변학도의 처지로서는 찍고 후려치고
둘러치고 매치는 날렵한 매질을 재간 있게
피할 수 있는 방도조차 막연하더라. 곱다시
어육이 되어 미상불 주저앉고 말아야 할 딱한 지경이 되었다.
악연이로다. 하향천기의 꼬임에 회가
동하여 하룻밤 동품했던 것이 기필코
악연이었도다. 무 푼짜리 굿거리에 두부
값이 닷 푼 이더라고, 서 푼짜리 오입질에
것도 근자에 없었던 날벼락이었거니와
잰걸음으로 게트림하며 행차했어야 할
어엿한 객사 분전에서 눈앞에 은하수가
왔다갔다하는 사매질을 당하고 있으니
가슴에 맺힌 이 포원을 어디다 하소연할꼬.
어허 흉한지고. 그러나 구곡간장
끌어올리며 장탄식 할지라도 지금 당장
변학도를 구명시킬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객사문간이 쩌링쩌렁
울리는 한마디가 나졸의 등뒤에서 들려왔다.
"너 이놈, 이 어인 행패냐."
매질이 진력 날 즈음에 들려왔던
대성일갈이었던 터라, 나졸이 힐끗 등뒤로
시선을 돌렸다, 도포자락 떨쳐입은 골이
그토록 말쑥하지는 않았으나, 쏘아보는
자제쯤으로 보였다. 나졸이 대답하였다.
"행패라니오. 이놈이 감히 남원
도임부사를 사칭하며 관원을
손찌검하는지라 버릇이 팔자소간되기 전에
냉큼 고쳐주고 있는 판국이오."
"남원 도임부사를 사칭하더라?"
"그렇소."
뒷짐지고 섰던 이몽룡은 그때 발뒤축을
구르며 나졸을 꾸짖었다.
"설사 도임부사를 사칭하였기로서니
관아로 모시고가서 사칭하였던 자초지종을
조용조용 사문(査問)하는 것이 순서이거늘
여럿 청중이 구경하는 면전에서 감히 도포
입은 사대부를 사매질로 봉욕시키는 게여?"
"횡설수설하는 미친놈을 관아로 데려가서
사문을 하라는 것입니까?"
앞에서 함부로 지절거리는가."
"도임행차는 지난 오밤중에 서둘러
남원길로 올랐는데, 해가 중천에 뜬 지금
객사 앞에 나타나서 제가 바로
도임부사라고 삿대질에 손찌검한다면 이게
실성한 놈 아니고 그럼 올곧은 정신 가진 놈이란 말이오."
"남원행차가 때 아닌 오밤중에
발행하였다는 말은 실성한 놈의 말이 아닌가?"
"제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객사로 들어가
보시지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을 것이오."
이몽룡이가 고개를 문안으로 기웃하니
디밀고 횡하니 비어 있는 객사를
휘둘러보았다. 물론 개미새끼가 아니라
빈대 한 마리 조차 눈에 띨 리 만무였다.
"이분이 도임부사를 사칭하였고 또한
언사에 실성끼가 있었을지 언정 도포 업은
사대부를 한질에서 사매질로 욕을 보이는
것은 경계가 근엄해야 할 관원으로서 큰
질책이 아니냐. 실책이 아니라 불법을 자행했음이렷다?"
찔끔해서 말문이 막힌 나졸을 옷소매로
쳐서 먼발치로 내친 이몽룡은 축담 아래
늘어진 변학도를 곁부축으로 일으켜 세워
가까스로 들쳐업었다.
변학도를 들쳐업은 이몽룡이 모여선
구경꾼들을 향하여 잡아먹을 듯이 목자를
부라리니, 그 시퍼런 서슬에 주눅이 든
길손들은 찔금해서 비켜섰다.
이몽룡도 허우대가 잔망스런 축은
아니었지만 변학도 역시 그에 못지않게
뒤뚱거리는 오리걸음이었다. 가까스로
객사어름을 벗어나 남의 눈총이 없는
호젓한 고샅길로 들어섰을 무렵 사뭇 끙끙
앓기만 하던 등 뒤의 변학도가 넋두리를 하였다.
"나 죽소."
"죽고 싶은 심정은 나도 마찬가지요.
사또의 똥개가 어찌나 무거운지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 오. 몸에 쇠붙이라도 지녔소?"
"아시다시피 미복차림에 살구씨 하나도 지닌 게 없소."
"그런데도 이렇게 똥개가 무겁다니
이상한 일이오. 이 경황중에 빨리 뛰는
것이 상책일 터 사또의 몸에서
걸기적거리기만 하고 지금 당장 무거운
"내 몸에서 지금 당장 무겁고
걸기적거리는 것이 무엇이오?"
"하초에 달린 고깃방망이란 것이 이
다급한 경황 중에는 걸기적 거리기만
하였지 아무짝에도 소용될 데가 없는 것 아니겠소."
"주장군(朱將軍)을 때버리잔 말이오.?"
"이 모든 환난과 질곡이 그로부터 비롯된
것일 뿐더러 또한 장차까지도 그것을 달고
있음으로 하여 사또가 봉욕할 가망이 없지
않겠으니 걸기적거리는 차제에 때어버리는
것이 사리에 온당한 처분이 아니겠소."
"안 되오. 차라리 팔다리를 자르는
봉변을 감내할지언정 그것만은 안 되오."
그 순간. 이몽룡은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어느 여염집 축담 아래에 변학도를
젖은 솜뭉치처렴 기력을 못하고 담벼락에
기대 주질러 앉았다.
"왜 이러시오? 나를 한길가에다
내박지르고 떠나려는 게요?"
이몽룡이 낭폐한 얼굴을 하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도대체 도임부사란 지체를 가진 분이
어쩌다 이 꼴이 되었더란 말이오?
도임행차중에도 오입질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 그런 창피를 당하는 중에 우연히
마주친 내가 해웃값까지 입체하여 창피를
모면시켜 주었더니 곧장 뒤돌아서서 객사의
수직나졸에게 매찜질을 당해 가위 초주검이
되었지 않았소, 그 자리에 또한 내가
없었더라면 사또는 필경 그 몸서리치고
무엄한 사매질에 십중팔구 명줄을 떨구고
그렇다면 이승에서 명줄을 떨군 사람이
가는 곳이란 뻔하지 않소. 지금쯤 염라국의
저승야차가 거동이 굼뜨다는 것을 빌미
잡아 사또는 또한 몽둥이질 발길질에
처참한 신세가 되었을 것이오. 그런데 시방
그 봉변의 화근이 된 고깃덩이 한 가지를
떼어버리자는 데도 그토록 인색하게 군단 말이오?"
변학도는 눈앞이 아득하여
적막강산이었다. 이몽룡의 요구가 무엄하기
짝이 없으되 사리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당장 말문이 막히었다. 딱 잘라 거절하면
피칠갑이 되어 기동이 임의롭지 못한
자기를 버리고 달아날 조짐이 역력하고,
다시 업혀가자면 호랑이 어금니같이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하초의 고깃방망이를
게다가 옥죄이고 도는 이몽룡의 위협이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내가 사또를 업고뛸 제 힐끗
뒤돌아보자니 그 수직나졸이란 놈이 동패
졸개들을 조발하려고 어디론가 뛰고
있습디다. 머지않아 우리 두 사람
추심(推尋)하여 뒤쫓을 것이오.
그놈들이 떼지어 나타나면 애꿎은 나까지
그놈들 신명떠름에 삽시간에 어육되고 말
것이니, 나 역시 여기서 그리 지체할
처지가 아니지 않소.
그놈들이 벌써 사또를 실성한 놈으로
규정짓고 말았으니 내가 나서서 사또가
남원부사를 사칭한 것이 아니라고
증거한다면 이젠 나까지 미친놈 취급하여
모진 닦달 끝에 은사죽음 당할 건 불을
그 한마디 떨군 이몽룡은 소매에 바람을
일으키며 해적해적 고샅 밖으로 걸어가는
것 , 사방을 휘둘러보았으나 혓바닥으로
핥아낸 듯 인적이라곤 없었다. 듣기에도
처절한 한마디가 변학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보시오. 걸음을 멈추시오."
저만치 먼발치에서 이몽룡이 뒤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러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았소. 우선 이리와서 내 말 들으시오."
"듣기 거북한 말이오?"
"그럴 리가 있겠소."
"때지어 몰려오기 전에 어서 말하시오."
"내가 남원도임하는 즉시로 황우소 열
그리고 남원 낭도한다 하더라도
기안(妓案)에 올라 있지 않은 계집은
천하에 짝이 없는 국색이라 할지라도 절대
수청을 들이라는 분부를 않겠소. 이 두
가지를 약조한다면 가위 내 하초에 달린
주장군을 잘라내 버리는 것과 다름아니지 않소."
뒷짐지고 서 있던 이몽룡은 잠시 뜸을
들이는 눈치더니,
"지금한 약조를 명토 박아 쏘고
수결(手抉)할 수 있겠소?"
"당장 지필묵이 있다면 명토 박아
적바림하리다만 한길가에서 지필묵을
주번할 수는 없으니 내 말을 믿으시오."
"내가 파락호의 별호를 차고 다니는
신세라지만 근본은 선비 의 지체가 적바림하시오."
이몽룡이가 콩소매 속을 뒤져
필낭(筆瑯)을 꺼내더니 변학도의 턱 밑으로
디밀었더라. 필낭까지 콩소매 속에
마련하고 다닐 줄이야 꿈에서조차 예견치
못했던 변학도는 그제서야 움치고 뛸
여지조차 없게 된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굼뜬 변학도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농간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더라.
떨리는 손으로 필낭을 받아쥔 변학도는 제
입으로 말한 두 가지 약조를 적바림하고
수결까지 둔 두루마리 종이를 이몽룡에게
건네주었다. 이몽룡은 다시 변학도를 추스러 들쳐업었다.
"우선 여염집으로 들어가서 피칠갑이 된
행색이나 수습하여야 되지 않겠소."
떠났다는 행차를 따라 잡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오."
"사또의 행색이 가위 뜯다만 꿩이오.
그런 꼴불견으로 설사 행차를 뒤따라잡는다
한들 또 다시 실성한 놈 취급받기 십상이니
호젓한 사삿집에 들러 수습하십시오."
"사람 만난다는 일이 범보다 더 무서우니
마을과 썩 떨어진 곳 집이나 서낭당이
있으면 들어가서 쉬는것이 좋겠소."
마을을 썩 벗어나니 숲속 당나무 아래로
찌그러진 서낭당 한 채 가 바라보이는 터라
두 사람은 그곳으로 들어가서 피멍도
닦아내고 옷매무새도 대강 수습하였다.
일각이 다급한 처지에 이몽룡은
천연덕스럽게 이죽거리는 것이었다.
"그놈의 무엄한 사메질에 뼈라도
사처를 잡고 구완부터 받으셔야 하지 않겠소."
"삭신이 욱신거리고 뼈가 어긋난 것도
같으나 시방 노래기가 우글거리는 서낭당에
누워서 약주부를 불러 약을 닳이고 있을
처지가 아니지 않소.
비단 금첨에 모잽이로 누워서 남색짜리
계집이 턱 밑으로 조아려 바치는 약사발을
응석으로 내쳐가면서 구완을 받는다 해도
성에 차지 않을 판국인데 노린내 등천하는
서낭당에 코를 박고 엎드려 병 구완 받다니
죽어도 나는 싫소. 하룻밤 사이에 내 팔자
운세 이 모양된 것은 필경 그 배행꾼놈의
농간에 빠진 게 분명하오."
"배행꾼의 농간이라니 금시초문이 아니오?"
주었던 그놈을 일컬음이오."
"배행꾼이라면 그 지체가 상것이
분명한데 감히 목도를 쳐들고 쳐다보기조차
거북한 도임부사를 농간하려 들겠소.
미친놈이 아니라면 언감생심 엄두조차 못할
일이오. 사또께서 봉변당한 설분을 못하여
억측만 구구한 것입니다."
"그놈의 농간이 아니라면 어째서
한밤중에 도임행차를 휘몰아 발행할 수 있겠소."
"그 배행꾼이 간덩이에 털난 놈이라
하더라도 사또의 안면을 익히 알고 있을
수행 아전들의 총기 있는 눈썰미를 속일 수 있겠소."
"내가 보기엔 농간이 있었다면 그
배행꾼이 아니라 수행 아전놈들의 농간이
"아전놈둘이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고
원한이 있어 감히 도임부사인 나를 함정에
삐뜨리는 일을 저지르겠소."
"그럼 사또의 말씀대로 이 모든 경난이
그 배행꾼이 저지른 악행이라 합시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수행아전들의 비호를 받지
않고 성사될 일이란 말이오?"
이몽룡의 말에 모순이 없는 터라
번학도는 입을 닥치고 가만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채비를 수습하고 노린내가
둥천하는 서낭당을 나섰다.
사뭇 변학도를 업고 틜 수는 없는
처지라, 이몽룡이가 곁부죽읕 하고
쉬엄쉬엄 걷는 수밖에 없었는데, 마음은
벌써 남원에 당도한 지 오래건만 몸뚱이는
아직 5백 리 상거에 놓여 있으니 답답하고
옮겨놓을 적마다 수행 아전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것이겠다.
"남원 고을 들어서는 길로 이방과 형방을
잡아들일 것이오. 아갈잡이에 뒷결박을
지워서 저간의 세세한 곡절을 물어볼 것도
없이 장도감을 칠 것이오.
한 놈은 장판(將板)에 엎치고, 한 놈은
주리(周俚)를 틀 것이요. 장판에 엎친 놈은
곤장에 살점이 묻어날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주릿내에 하초가 틀리는 놈은
가랑이가 뒤틀리고 뼈가 부서져 나가지 않겠소.
그렇게 되면 누깔에서 피가 튀게되면서
살려달라는 아우성소리가 동헌 담장을 넘게
되겠지. 온 남원부중 백성들이 설한풍에
사시나무 떨듯하며 납죽 엎드려 숨조차 보이는 것이오."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오.
선처수령(善治守令)으로선 할 짓이 못 됩니다."
"그런 말 뒀다 하시오. 내 그놈들을
싹쓸이로 갈아먹고 말겠소."
변학도가 남원 도임하면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불어 길청의 아전배들과 그
떨거지들이 설한풍에 낙엽 흩날리듯 죄책을
피하려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길 것이 눈에
선한 터라, 이몽룡의 입에서 한 숨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직임을 방지하여 남원부중 백성들을
개잡듯 올가미 씌워 잡아들일 변학도와
길벗하여 남원에 당도하였다가 그 곳
백성들로부터 한통속으로 싸잡혀 원성 들게
헤집고 보던 이몽룡은 그제야 아뿔사 하였다.
입체를 서준 해옷값을 받아내겠답시고
남원까지 뒤따라갈 작심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철부지들이나
다름없는 경거망동이 아닌가. 이런 경솔한
행각이 어디 있는가. 춘향이 훼절당할까
두려웠던 나머지 장돌림과 채련까지
끌어들여 변학도를 골탕먹일 일을 꾸미긴
하였지만 변학도와 작반하여 남원부중으로
가겠다는 작정이 얼마나 경솔하고 미련한 짓인가.
뇌물로 직임을 사들인 처지겠으니
선치수령되기는 싹수부터 노란 처지에
세페(稅弊)와 가렴주구는 얼마나 극심할꼬.
남원 당도하는 길로 당장, 도임하였다
저울 단다 간색미(看色米), 세입
거덜났다 복호미(復戶米)아전들 구실 준다
인정미(人情米), 창고지기 먹인다
타석미(打石米), 벌충한다 낙정미(落庭米),
양병(養兵)한다 군보미(軍保米), 쥐 먹는다
작서모(作犀耗), 순시 나간다
노부세(路浮稅), 세곡 받을 때
창작세(倉作稅, 봇물 펴가니
보수세(堡水稅), 도적 잡아준다
초장료(草將料), 굿거리 벌이려면
신포세(神佈稅),옛날부터 받아오던
호별세(戶別稅), 이 핑계 저 핑계 온갖
잡세 거둬들여 남원 백성 구차한
살림살이를 씨앗조차 남기지 않고 거덜낸
게 분명한 터. 이런 놈과 동행하였다가
날벼락 맞기 십상 아니가.
없음이라 햇발이 나절 기웃으로 기울
때까지 남원길로 동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라. 중로의 주막거리에서 얼요기로
끼니 대신하고 성환(成歡)못 미처 호젓한
숲속길로 접어드는데, 볼거 리를 앓고 있는
한 사내가 길가 풀섶에 낙맥을 하고
처연하게 앉아 있었다.
이몽룡은 먼빛으로 보아도 대뜸 위인의
본색을 알만하였다. 변학도에겐 수행별베로
가장하였던 바로 그 장돌림이었다. 그러나
변학도 먼저 눈치를 첼 동안 이몽룡은
시치미를 잡아떼고 내색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간 변학도 역시 사람
알아보는 눈썰미는 없지 않아서 처연한
몰골인 장돌림을 발견하고 당장 울화가
치밀어 서슬 시퍼렇게 뇌까렸다.
화들짝 놀란. 장돌림이 벌떡 일어나려다
말고 턱을 땅에다 질질끌며 너부죽하니 엎드렸다.
"나으리, 이제사 행차하시었습니까."
변학도는 손바닥을 허공으로 쳐들며
장돌림의 따귀를 내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당한 매질로 겨드랑이가 결리는지
허공으로 올라갔던 손바닥이 무기력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분을 삭일 수 없었던
변학도는 온 삭신을 떨며 땅에서 먼지가
풀썩하도록 뒤축을 구르고 나서 오지투가리
깨지는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 육시를 해서 처참을 시킬 놈. 네놈의 죄를 알렸다?"
냉큼 대답하지 않았다간 변학도의
발길질에 콧등이 피칠갑이 되리란 것은
장돌림은 여전히 턱을 땅에 질질 끌면서 대답하였다.
"미욱한 쇤네인들 사또께 작죄(作罪)한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나으리의 행차를 뵙자니 쇤네의
처지가 해수(咳嗽)에 헐떡증을 겸하고
울화허파에 물조갈을 겸한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습니다. 쇤네가
구종텔배(驅從別陪)에 불과한 미천한
지체라지만 이런 낭패는 난생 처음이랍니다."
"이노옴, 이 오살할 놈. 엇따 대고.
핵변이 낭자하냐. 네놈을 당장
밟아죽이리라."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김을 삭이지 못한 변학도는 마른땅에
새우 튀듯, 도토리 삼킨 고양이 숭어띔하듯
먼발치에서 뒷짐지고 서 있던 이몽룡이가
변학도의 괴춤을 잡아당기며 무안을 주었다.
"사또깨서 무인지경인 이런 산험길에서
악증을 부린다 한들 누가 대견하다 하겠소.
저놈이 엇뜨거라 해서 장달음을 놓아버린
다면 사또께선 날 샌 부엉이 골이라 당장
어디가서 분풀이 못한 하소연을 할 것이며
누굴 잡고 농간버 소종래(所從來)를 따질 수 있겠소.
남세스런 꼴 당하기 전에 고정하시고
저놈을 달래어 저간의 경위부터 듣는 게
체통 가진 사대부의 처신이 아니겠소."
이몽룡의 핀잔에 머쓱해진 변학도는 그
순간 사위를 둘러보았다. 이 별배란 놈을
당장 잡아 엎치려 한들 그의 분부를 좇아
입이 걸고 말이 달아 그의 비윗장을 척척
맞춰줄 아전배 한 놈인들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별배란 놈도 역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란 말인가. 한 풀 죽은
변학도는 소리질렀다.
"이놈, 네놈이 감히 나를 사칭하여
도임행차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렸다?"
"나으리, 쇤네가 감히 남원부사를
사칭하겠습니까. 또한 도임행차로 말하면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저 역시 모르고 있습지요."
"모르다니 가마를 배행하지 않았더란 말이냐?"
"배행이라니요. 여기까지 당도할 땐
외람되나마 보교를 배행한 것이 아니라
나으리 대신하여 타고 왔습지요."
날 조롱함이렸다? 이놈아 보교를 타고
왔다면 나를 사칭했다는 증거가 뚜렷함인데
그래도 억탁의 말이라고 거짓 밤명함이냐?
구름 끼어 안 보인다고 보름달이 어딜 가나?"
"그렇게 된 경위를 세세하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이노음. 사실대로 이실직고 않으면
네놈의 농간하는 입살을 찢어서 쌍언청이로 만들리라."
"쌍언청이 아니라, 눈파 귀까지 멀게
하여 청맹과니를 만드셔도 달게 받겠으나,
사단의 실마리를 소상하게 아뢸 수 있는
말미를 주셔야 하겠습니다."
"고정하시고 저놈의 실토정을 들읍시다."
이몽룡이가 거들자 변학도는 그제사 한
"그 창기(娼妓)의 집에서 나으리의
지위를 받는 길로 한눈 한번 팔지 않고
곧장 객사로 달려갔습지요. 마침 어둑발이
내려 서너간 앞에 있는 사람의 형용도
분벌할 수 없는데다가 수직꾼들의 경계도
삼엄하지 않아서 나으리 침방까지 숨어드는
동안 검색은 물론이요 수하(誰何) 한 번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문고리를 걸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쇤네의
미천한 팔자소관으로선 너무나 과분한
침방이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지요. 혹여
수직꾼들에게 본색이 탄로 날까 가슴은
널뛰듯 울렁거리고 뒤통수는 누가 덥석
잡아당기는 듯 쭈뻣거렸으니 모골이
송연하여 자연 조급증이 나고 목이 타기 마련입지요.
있는 처지에 마음마저 조급하니 목을
화롯불 위에다 드리운 듯 매말랐습지요.
물을 마셔야 하겠는데 웃목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떠다놓은 자리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서둘러 횃대에
걸어둔 나으리의 관복을 모양 있게
떨쳐업고 문을 열었습지요.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무작정 자리끼를
대령하라고 호령하였습니다. 그때 누마루
아래 이 졸고 있던 보교꾼들이 놀라깨더니,
난데없는 보교를 대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허리를 조아리며 어서 보교로
오르시라고 부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쇤네는 보교꾼들이 보교를 들이대는
까닭을 알 수 없었으나 그 순간 사대부의
풍속으로는 물 먹으러 갈 때도 보교 타고
보교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달라는 물사발은 아니 주고 해가
떠서 아침 선반머리가 될 때까지 줄곧
쇤네를 싣고 달리기만 하는 것이어서 물
마실 길이 이렇게 먼 것인가 해서 쇤네는
보교 안에서 자꾸만 길을 재촉하였습지요.
그런데도 줄곧 어디론가 뛰어가기만
하는지라 그제서야 쇤내는 이런 때아닌
변고가 일어난 까닭을 꼽꼽하게 따져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쇤네가 오밤중에 문을 열고 느닷없이
자리끼를 대령하라고 소리쳤을 때,
보교꾼들은 그것을 귀여겨 듣지찮고
경황중에 앉을 자리를 대령하라는 줄로
잘못 듣고 보교를 대령한 것입니다.
자리끼 대령하라는 분부가 앉을 자리된
쇤네가 본색을 밝히게 되면 그와 연좌되어
도임행차 하루만에 사삿집 창기의 집에서
살 송곳을 들이대고 있는 나으리의 처소도
실토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실토정을 하게 된다면
근엄해야 하실 도임 행차의 채통에 곱다시
똥칠하는 일이 되는지라 마침 이곳에
이르렀을 때, 소피본다 핑계하고 보윗에서
내려 저 숲속으로 줄행랑을 놓았습지요.
한동안 숨어 있다가 나와보았더니 행차는
어디로 갔는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 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탈기하고 앉아 나으리 당도하시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도무지 딴 방책이 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네놈의 농간은 아니란
변학도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렇게 묻는 사람은 이몽룡 이었다.
"쇤네에게 농간이 있었다면, 오밤중에
기갈이 들어 자리끼 대령하라는 한마디
분부 내렸던 죄밖에 없습지요."
"수다한 말 중에 거짓은 없느냐?"
"거짓이라니요. 지금 이 시각부터 또한
나으리를 배행하여 남원까지 가야 할
처지가 아닙니까. 쇤네가 거짓 둘러댔다면
남원 당도하는 날로 들통나고 말 것인데,
임시 모면하자고 철부지들처럼 둘러댔겠습니까."
"승교바탕 대령했을 때, 물 가져오라고
다시 한번 깨우쳐줬어야 할 일 아닌가."
"쇤네가 말씀드렸듯이 사대부의
처신으로선 물 마시러 갈 때도 발바닥에 알았습지요."
주저앉았던 변학도가 그때 장돌림을
해집고 드는 이몽룡을 만류하였다.
"그만두시오. 모두가 내 박복했던
불찰이었소. 저놈을 다뤄보았자 행방불명된
도임행차가 다시 여기로 나타나겠소."
낯 부엉이 울음소리만 처연한 숲속을
휘둘러보던 이몽룡은 초췌한 몰골로
다리쉽을 하고 있는 변학도에게 푸념 겸해서 물었다.
그렇다면 장차의 노정이 낭패 아니겠소.
벽제(劈除)소리 요란 해야 할 남원부사의
존귀환 행차길이 어쩌다 시궁에 빠진
족제비 보다 못한 이 꼴이 되었소."
"모두가 내 박복한 불찰이오."
"박복한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다니는 주제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사또께서 이런 경난을 겪게 된
근저에는 색탐에 환장하여 여색에 근엄한
경계를 두지 못했던 불찰이 아니었겠소.
오늘의 경난은 사또와 시생이 장차
살아감에 본보기로 겸아야 할 것입니다.
남원 도임 하시더라도 오늘 겪었던 수모와
봉변을 거울삼기 바라오."
"공자님댁에서 곁방살이를 하였소?
수다스런 공자말씀 듣기가 거북하오."
"그런 봉변을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차린 것이오."
"시방 날 꾸짖는 게요?"
"꾸짖자는 것이 아니라 장차는 근신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원성듣지 않는 선치수령이
되시라는 것이오."
받아야 할 딱한 처지인 변학도는 기가 한풀
꺾이어서 대답하였다.
"알아듣겠으니 어서 발행합시다."
"시생은 여기서 한양으로 회정하여야겠소."
변학도의 두 눈이 빙판에 자빠진
소누깔처럼 휘둥그레졌다. 그는 눈을
흰자투성이로 뜨고 이몽룡을 쳐다보았다.
"회정하다니 어인 연유로 불퉁가지를 내시오?"
"사또를 곁부축해서 보필할 저 배행꾼을
만났으니 난 회정하는 게 순서 아니겠소.
설마 남원부중 앙도까지 시생으로 하여금
곁꾼 노릇 시킬 염치까지는 두지 않았겠지요?"
"말인즉슨 사리에 온당하시오만 남원에서
"나중 받더래도 여수(輿受)질기다는
험담은 않을 것이니 염려마오."
"햇곡머리에 남원행보 한번 하시려오?"
"여부가 있겠소."
변학도가 겉으로는 못내 섭섭한 눈치를
보이는 것이었으나 속으로는 이런 천행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든든한
수행 별배를 만나게 되었으니 참없이
깐죽거리며 허물 잡아 거북하기만 하던
이몽룡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차에 때리기도
전에 울기부터 먼저하더라며 저 먼저
자진해서 가겠다 하니 두 손들어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반가운 내색하면 잔 속이 들통날
일인 터라 소매를 떨구며 처연한 기색으로
이몽룡의 회정길을 걱정하더라.
여기까지나마 명줄을 달고 당도했음이니
결초보은인들 이 은혜 못다 갚을 것이오.
그러나 사람이 모두 제 갈 길이 따로
있음이니 어찌 족하의 회정길을 밀 막으며
만류하리오. 부디 햇곡머리에는
남원행보하여서 나로 하여금 오늘 입은
은혜의 만에 하나라도 앉게 해주시오.
그땐 내가 남원부중에서 내로라는 화냥년
하나를 불러 족하에게 수청 들게
엄중조처하리다. 기안에 오른 계집들
중에는 햇조개도 없지는 않을 터이요."
"햇조개도 싫고 묵은 조개도 난 싫소. 그
동안 떠먹이듯 일러줬건만 신색(愼色)할
염의를 차리지 못한단 말이오?"
"그럼 족하는 고자(鼓子)란 말이오?"
"고자는 아니오만 사연 없는 구들막
"꽤나 까탈을 부리는구려. 죽도 싫고
밥도 싫고 수청조차 싫다면 나로선 보답할 길이 없지 않소."
"사또와 시생 같은 사이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기 십상 아니겠소. 차차 보기로 합시다."
잘 가라 배웅할 사이도 없이 돌아선
이몽룡은 뒤통수를 보이며 저만치 사라지는
터라, 변학도는 서너 발짝 물러서
국궁(國躬)하고 있는 장돌림을 닦아세웠다.
"이놈아 날 냉큼 업지 않고 뭘하고 있느냐."
네 소리 길게 뿐은 장돌림이 늙은 암말
엉덩이 둘러대듯 냉큼 등을 돌려대자,
엄장이 큰 변학도는 철부지처럼 납짝
등뒤에 업혔다.
"있더냐?"
"백여 리 밖 성환 당도하여야 세마 내는
보행객주(步行客主)를 만날 수 있습지요."
"네놈이 날 업고 성환까지 띌 제,
발가벗은 계집을 등에 업은 호랑이처럼
뛰어야 하느니, 내 분부 각굴명심하렸다?"
"쇤네 두 다리가 작신 분질러지기
전까지는 날 비 자(飛)범 호자(虎)
비호처럼 장달음을 놓겠습니다."
"네 놈의 두 다리가 작신 분질러진다
해도 날 내려놓는다면, 네 놈의 모가지를
분질러 놓을 것이니 아로새겨라."
장돌림은 똥개가 가볍지 않은 변학도를
들쳐 업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뛰었더니
금방은 삭신에 땀이 비오듯 하는데 옛 말에
비루먹은 똥개 똥 싸질러가며 짖더라고 하였다.
한밤 중에 성환 당도하여 보행객주에서
세마를 내려 하니 민갑드리지 않고 시뻘건
호령소리 한 가지로는 흥정조차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물론 변학도가 남원부사 도임차에 당도한
어엿한 벼슬아치라면 세마뿐만 아니라 말을
몰고 가서 잡아먹는다 할지라 도 두 마디
하기 전에 선뜻 내줄 것이지만 변학도가
미복차림인데다가 남원부사라는 증거조차
없으니 외삼새마를 달라고 때를 쓰다가
당장은 봉변 아니 당하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야 하였다.
야박한 인심을 한탄하고 신분을 증거할
물증 없음을 통탄한들 갈 길만 지체될
뿐이더라. 앞길이 막막하여 망연자실로
별이나 해이고 있는데. 나갔던 장돌림이
껑충한 안장의(鞍奬馬) 한 마래를 몰고
돌아왔다. 죽은 사람이 환생한 들 그토록 반가울까.
어인 농간으로 멀쩡한 안장마를 주변한
것이냐고 물어볼 겨를 조차 주지 않고
변학도는 덜컥 가랑이를 올려 안장마에 올랐다.
"가자."
고삐잡고 있던 장돌림은 놀라서 물었다.
"다급하다지만 요기라도 하고 가얍죠."
"이놈아. 아침요기를 달게 먹자면
저녁요기는 굶어야 하느니."
"저녁끼니 거르면 휘진 몸으로 아침 역참
당도가 무난하지 못할 터입니다."
"너 이놈. 납죽납죽 지껄이며 지체할
역참 벗어나서 한 오리정까지 가서야 변학도는 물었다.
"너 안장마는 어떻게 구처하였더냐."
"마침 세마장이와 안면이 있는 사이라
엄대 긋고 빌렸습지요."
"세마장이와 안면은 언제 텃느냐."
"서울길 자주 내왕하다보니 자연 안면 트게 되었습지요."
"난 또 네놈이 다급한 김에 훔쳐 온
말이줄 알고 저녁요기 거르고 냉큼 떠나자 하였다."
"나으리 뱃속이 출출하신 모양이군요.
나으리 도임행차에 쇤네가 말을 훔칠
일이야 저지르겠습니까만 세마낸 값으로 오
푼변으로 갚는다 했으니 그것이 큰일입니다."
세마값만 나오겠느냐. 그건 그렇구 널
데려가서 당장 이방을 시켜줄까?"
"싫습니다."
"그럼 수직사령(守直使令) 시켜줄까."
"싫습니다."
"그럼 형방사령(刑房使令) 시켜줄까."
"사람 엎어치고 매질하는 직임 쇤네는 싫소."
"그럼 옥사장(獄獅長)을 시켜 줄까."
"감옥에 갇힌 죄수 보기 싫어 싫소."
"그럼 이놈아, 남원부사를 겨냥함이더냐?"
"갈지자가 어디 붙어 있는
나무토막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런 말씀
마십시오. 누가 듣겠습니다."
"그럼 뭐가 되고 싶으냐."
"그놈, 보기보단 허욕이 없구나."
"허욕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랍디까."
변학도 안장마에서 졸고 견마장이
장돌림은 등줄기에 땀이 마를 사이도 없이
서둘러 말을 몰았다. 천안삼거리,
김제역(金蹄驛)에서 다시 세마 내어
덕평(德平), 인주역(仁州驛),
모로역(毛老阮) 거쳐 공주감영(公州監營)
비껴갈 제, 아직도 수행아전들과 별배하여
보교꾼들은 털끝조차 보이지 않았다.
은진(恩津)지나, 여산(礖山)지나,
삼례(參禮)지나, 전주성(全州城) 당도
때까지도 신연행차 보이지 않자, 변학도는
적지 않게 의아하게 사추리에 가래톳이
서고 콧구멍에는 흙먼지가 가득 낀
"이놈아, 길을 잘못 든 것 아니더냐?"
"길을 잘못 들다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약 앞서 떠난 그 고얀 놈들이 먼저
남원 당도하였다면 내 없다는 것을 당장
알아채고 서둘러 회정하여 또한 내 행지를
수소문 할 터. 한길이 혓바닥으로 핥은
듯이 적적한 것이 도무지 있을 수 있는 일이더냐?"
"빈 교자를 메고 가는 행차가 남으로
갔는지 북으로 갔는지 방위를 알 수
었으나, 이 길이 남원 가는 한길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쇤네가 이 한길에다 개처럼
콧등을 스리며 서울과 남원 간 내왕행보한
것이 수십 번이었는데 쇤네가 해망쩍은
위인인들 남원 내왕길을 잊었겠습니까?
하는 것은 틀림없으렸다?"
"십중팔구 그렇게 되겠지요."
"기왕에 이런 경난 겪는 김에 그놈들과
한길에서 마주치지 않고 잠행(潛行)으로
들어가서 수행아전 들을 본때 있게
잡아엎치면 반설분을 할 것 같은데 네 의향은 어떠냐?"
"탁견이십니다만, 잠행어란 암행어사
하는 짓이 아닙니까?"
"내 지체가 암행어사에 꿇릴 게 있느냐? 잠행으로 가자."
숱한 봉변과 갖은 행역(行役)치른 끝에
남원땅에 잠행으로 당도 하니 안장마에
타고 온 변학도나 안장마 견마 잡은
장돌림이나 지친 것은 매일반이다. 남원
서쪽 기린산(麒麟山) 성황당(城隍塘)
질맥진하여 초주검이 되었겠다.
마상에서 지친 변학도의 콧등 말갈기에
파묻히고 고삐잡은 장돌림의 휘진 허리도
꼬꾸라져 콧등이 땅에 닿을 지경이었더라.
그러나 앞에 가로놓인 요천(寥川)을 전너
오리정은 더 가야 서문(西門:望美接)을
넘을 수 있겠다. 우선 요천 건널 생각하니
장돌림 먼저 눈앞이 아득하였다.
관아의 동헌방까지 잠행으로만 들어가겠
다고 아득바득 고집을 부리는 변학도를
면박줄 기력도 이젠 없었고 전대에 챙겼던
노자도 이젠 깡그리 거덜이 나고 말았다.
설상 가상은 그뿐 아니었다. 미복으로
잠행하는 처지에 사공을 불러 본색을
밝히고 배를 대령하라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없는 터, 급기야는 변학도를 또 다시 되었다.
일색이 저물어 사방에 땅거미가 내리고
달이 떠오르니 요천내 물여울 위로
부서지는 달빛이 교교하더라, 저녁끼니조차
굶고 기다리던 장돌림은 풀대님울 풀고
옹구바지를 훌렁 벗었다.
시꺼먼 하초의 거옷이 온전하게 드러나서
고기방망이가 흔들거렸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고 벗은 옹구바지 똘똘말아 입에 물고
변학도에게 등허리를 디밀었다, 납죽 업힌
변학도에게 들쳐업고 여울을 건너자니
이끼먹은 돌자갈은 메기 잔등처럼 미끈거려
발짝 떼놓기 적지 않게 두렵고, 잔허리를
갈게치며 스치는 물살은 그 차갑기가
뼛속까지 아렸다. 물살의 부대낌에 자칫한
발이라고 헛디디면 곱다시 여울 속으로
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여울물을 건너니
서문 오른손 편으로 관왕묘(關王廟)가
나타나고 관왕묘 비껴지나가니
남문(南門)에서 꺾인 성곽이 눈앞에
서꺼멓게 가로 누웠겠다. 그 또한
순라꾼들의 눈을 피해 몰래 넘어야 하였다.
그러나 성벽은 높이가 열두자나 넘어 보였다.
관왕묘 맞은편 성벽만 무사히 넘는다면,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에 동헌(東軒)과
내아(內衙)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변학도는 벌 써 육방관속 잡아들여 곤장
안길 흥으로 온 삭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나으리 설한풍 몰아치는 동삼도 아닌
터에 왜 그렇게 떠십니까,
"이틀거리가 아니다."
"그러면 불각시에 소매에서 바람이 날
지경으로 떠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놈들을 엮어들여서 주리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고소하고 치가 떨려
이빨이 딱딱 맞힌다."
"고정하시고 순라장이들 검색에 걸려들기
전에 성벽을 넘으셔야 합니다, 이린 고초
겪으셔도 끝내 잠행으로만 동헌까지
당도하여야겠습니까."
"내가 잠행으로 동헌 당도하려는 것은
귀신도 몰래 동헌방에 들어앉은 나를 보고
남원부중 육방관속들이 놀라서
기절초풍으로 자지러지는 골을 내 두눈으로
몸소 목도하려는 것이다. 내 의향이
그러하거늘 이놈아, 넌 어째 쉴 참마다 드느냐."
"마지막으로 한번 여쭤본 것이니 역증은 거두십시오."
"냉큼 성벽 넘을 궁리를 트지
못하겠느냐. 밧줄부터 구해 오너라."
"밧줄 구하려고 이리뛰고 저리뛰다 보면
필경 순라장이들께 색출되어 혼찌검이 날
터이니 쇤네의 옹구바지를 찢어서 밧줄 대신 하옵지요."
"궁하면 통한다더니 네놈의 궁리가 그럴싸하다."
장돌림이 벗어들었던 옹구바지를
변학도에게 건네준 뒤, 허리를 구부려
목덜미를 변학도의 가랑이 사이에다
집어넣고 벌떡 몸을 일으키니 목말을 타게
된 변학도의 치켜든 손끝이 성첨(城堞)가장
변학도의 사추리를 떠받치고 있는 장돌림은
밭은 숨을 몰아쉬며 묻는다.
"나으리 잡으셨습니까."
"잡은 게 없다."
"아직 잡지 못하셨습니까."
"이놈아, 참새집을 털자는 것도 아닌
터에 엉뚱하게 뭘 잡으라고 성화냐."
"나으리께서 손을 뻗어 성첩 끝을
낚아채셔야 성위로 올라서실 것 아닙니까."
"난 네놈이 둔갑장신하여 날 목말을 태운
채로 성벽을 넘는 줄 알았다."
"쇤네가 선불 맞은 호랑이도 아닌 터에
어찌 나으리를 목말 태우고 열두 척 성벽을 넘겠습니까."
"네놈의 속셈을 이제야 알겠다만 손끝이 닿지 않는도다."
어깨를 발로 밟고 일어서시면 손끝이
성첩에 수월하게 닿을 것입니다."
"이놈아, 내가 무동 춤추는 사당패도
아닌 터에 네놈의 어깨 위에서 자라춤을 추라는 것이냐."
"이렇게 지체하시다간 여축 없이
순라꾼에 발견되어 사매질에 녹아나리다."
그 말에 놀란 변학도는 장돌림의 상투
끝을 두 손으로 뒤틀어 잡은 채, 늙은 암탉
횃대 타듯 떨어질 듯 꼬꾸라질 듯 자빠질
듯 넘어질 듯 휘뚱휘뚱 뒤채이다가 겨우
상반신 일으키고 손을 뻗었더니 그제야
성첩 가녘이 손끝에 닿았다.
성첩 가녘에 닿은 손끝에 힘을 넣고 딛고
있던 발을 힘껏 차 던졌더니, 변학도는
후딱 성곽위로 올라섰으되 아래에서 목말을
차여 벌건 알 궁둥이를 땅에 찧고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더라.
변학도가 위에서 보자 하니 칠칠치 못한
장돌림의 알사추리만 을씨년스러웠다.
한겹도 밉지 못한 알 궁둥이로 돌니가 박힌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으니
찢겨나간 살피듬을 타고 옥죄이고 드는
아픔에 장돌림은 오장육부조차 비수로
도려내는 듯하였다. 눈앞에서 별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참고 있던 장돌림은
그러나 물었다.
"나으리 무사하십니까."
"저놈 넉살보거라. 이놈아 내가 무사한지
탈을 입었는지 누깔로 쳐다보면서 모르겠느냐?"
면박당한 장돌림이 소스라쳐 쳐다보니
변학도의 형용이 절간 사천왕문에 버티고
선 금강역사(金剛力士)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더라. 그 형용이 지금까지 장돌림의 등에
업혀 꼬박꼬박 졸기만 하던 신세 딱한
변학도로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말구멍조차 막힌 장돌림은 흩어진 기신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우두망찰하고 있는데,
성벽 위의 변학도는 여벌 옷도 가진 게
없는 장돌림의 이를 북북 찢고 있었겠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을 밧줄 삼아 성벽
아래에 있는 장돌림을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변학도의 거동은 장돌림이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변학도는 밧줄 한 끝을 말아 성첨 가년에
고리로 걸더니 다른 한 끝을 성밖에 있는
있었다. 변학도의 고약한 컷속을 짐작할 수
없었던 장돌림은 성 아래쪽에 서서 발악을 터뜨렸다.
"나으리 밧줄 끝을 쇤네에게로 내려줘야
쇤네가 잡고 올라갈 것아닙니까."
"그놈 꿈자리 뒤숭숭한 소리 하구 있네."
변학도가 지절거린 혼잣소리를 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장돌림은 이번엔
손나팔을 만들어대고 물었다.
"나으리 밧줄을 쇤네 쪽으로 드리워 주셔야지요."
"그놈 상것답게 염치 한번 좋다."
이번에는 장돌림이 손바닥으로 귀를 감싸며 묻것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성 위의 변학도가 부릅뜬 눈을 아래로
"이 우라질 놈아. 시방 네놈의 형용이
어떤지나 알고 대중없는 엄살떨고 있는 게냐."
"쇤네의 형용이 어떻다고 나무라십니까."
"어허. 저놈이 이젠 실성까지 보이는
게여. 네놈이 나를 수행하지 못해 상승을
했기로서니 네놈의 몰골조차 돌볼 겨를이
없다는 것이냐? 내 아직 한평생을 못다
살았으되 하초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천둥벌거숭이가 감히 남원부사를
수행하여 관부(官俯)의 담벼락을
넘나들었단 고약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
체통과 위엄을 삼엄하게 경계해야 할
남원부사의 행차에 가웃에 칠칠치 못한
고기방망이를 드러낸 미친놈을 수행시켜
도임한다면 그 꼴불견은 고사하고 내 아니냐."
언죽번죽 주워대는 말이긴 하였으나 듣고
보니 그럴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잠돌림이 창피를 무릅쓰고 벌건
하초를 드러내게 된 까닭이 어디에 있으며
변학도 자신이 성곽 위까지 무사히 올라선
까닭이 또한 어디에 있는가.
과천에서 남원 당도하기까지의 까마득한
행보 동안 보행객주에 엄대 그어 하루 세
끼 거둬 먹이고, 세마 내어서 안장마에
태워 모셔왔고,또한 말고삐 잡고
견마하느라고 넓적다리에 가래톳이 섰건만
아무리 상놈의 대접 이기로서니 이런 홀대
가 어디 있으며, 이린 야박함이 어디 있을꼬.
하찮은 상것의 지체일지언징 당장
때려주고 싶었지만 성벽 아래에 있으니 그
또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낭중
무일푼이라 전대는 거덜나서 먼지만
풀썩거리고 미투리도 뒤축이 떨어져
맨발이나 다름없었지만 지금 당장 신세
고단하게 된 것은 벌거벗은 하초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돌림이었다. 그런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건만 꿇어 엎드려
살려달라는 적선을 빌지 않고 있었다.
장돌림은 덤덤한 얼굴로 말하였다.
"나으리 의향이 그러시다면 쇤네와는
여기서 하직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겠지요. 사실 이런 천둥벌거숭이를 보면
남원부중 순라장이들이 남원부사가
도깨비를 수행시켜 도임했다 해서 온갖
좋지 못한 소문을 백성들께 뿌리고 다닐
명석하신 나으리께서 쇤네보다 한발 앞서
그것을 생각하셨으니 망정이지 자칫
해망쩍었더라면 윈 챙피당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놈 경황중인데도 헤아리는 셈속은
멀쩡하구나."
"그러면 한양 이도령께서 입체 서신
해웃값과 쇤네가 노정중에 입체 선 식대와
세마비는 어떻게 조처하시렵니까."
"이놈 뻔뻔스런 놈 헤읏값 입체 선 것은
이도령이란 위인과의 일이었으니 네놈이
건방지게 나서서 가타부타 아퀴를 지을
일도 아니고 노정중에 쓴 식대와 세마비는
네놈이 엄대 긋고 외상으로 한 것이니
네놈이 알아서 수습할 일이다."
변학도가 밧줄을 타고 성벽 안쪽으로
조아리며 하직인사 여쭙는다.
"나으리, 부디 보중(保重)하시어 무사하십시오."
남원 관아는 쥐새끼 한 마리
얼쩡거리지도 않아 그야말로 달빛만
고즈넉할 뿐 휑뎅그렁하기 짝이 없었다.
내아 뒤편에 있는 마방에는 말 한 필 매어
있지 않았고, 도헌 오른손 편에 있는
길청에도 숙직하는 아전 한 놈 없었을
뿐더러 내아에서 수발하는 급창은
물론이요, 군불 지피는 종놈 하나 보이지
않아 문자 그대로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있었다.
변사또 도임행차 수행한답시고 한양으로
올라갔던 길청의 아전들과 배행꾼이며
교자꾼들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남원
알았던 변사또는 보이지 않았다. 사태는
심상치 않았다. 불상사도 이만저만한
불상사가 아니었고 세상에 낭패스런 일이
많다지만 그런 낭패가 없었다.
남원관아의 길청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였다. 우왕좌왕으로 잣대질이 오가고
서로 제 불찰이 아니란 발뺌으로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이 허둥지둥 지나왔던 전주나 삼례
그리고 은진이나 공주에는 보행객주가 여럿
있었지만 그들 보행객주들을 수색하여
변사또의 행지를 수탐한 적은 없었다.
앞서간 변사또의 빠존 행보를 따라
잡겠다는 일에만 골똘하다 보니 연도의
사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정하고 노독을 풀고 있는 변사또를
지나쳐왔음이 분명하였다.
나중에는 침책(侵責)을 당해 곱 다시
구설이 떨어지고 길청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될지라도 지금 당장은 남원에서 지체할 수
없었다. 관아의 마방에 있던
관마(官馬)들은 물론이요, 마계(馬契)에
있던 안장마들까지 빗자루로 쓸듯이 몽땅
조발하고 순라청(巡邏廳)의 수직꾼들까지
조발하여 왔던 길을 되짚어 올랐다.
마방에는 병각마(病脚馬)한 두 마리가
남아졸고 있었고, 북문 앞에 있는
뇌옥(牢獄)을 지키는 옥사쟁이들과 대문
지키는 수직 나졸 몇이 흉내로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동헌 마당에서 타고 있던 횃불도 꺼지고
지루한 밤시각을 죽이던 수직꾼 둘도 이젠
새벽졸음에 취해 대문지도리에 등을 기대고
턱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런 수직꾼의 귀에 난데없는 호통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게 누구 없느냐."
몇 번인가 땅땅 벼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였더니 아무런 대꾸가 없자,
이젠 도저한 호통에 욕지거리까지 실었다.
"이 박살할 놈들 게 누구 없느냐."
방망이로 문지방을 박살내며
주라통(朱螺筒)이 터져라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황소 영곽켜는 조려가 아닌
필경 사람의 호통치는 소리였다. 당장
눈앞에 형용은 보이지 않았으나 호통소리는
가위 서릿발 같은 터라. 졸 고 있던
수직꾼들이 박차고 일어나 기왓골이
쩌렁쩌렁 울어대는 호통소리를 따라 동헌
뜨락으로 허둥지둥 내닫는다. 물론 동헌
뜨락은 달려온 두 수직꾼 외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휑덩그렁하게 넓은 동헌방에는 입성이
남루한 미복의 사내가 미닫이와 여닫이문을
활짝 열어제치고 앉았다가, 섬돌 아래에서
국궁하는 두 수직꾼에게 천장 삿간반지에서
흙이 우수수 떨어지게 호통쳤다.
"게 누구 없느냐."
"예. 여기 대령하였습니다."
"모가지를 뽑아서 밑구멍에 박아 죽일
놈들 너희 두 놈 대령으로 성이 찰 것
같으냐 내가 이제 도임한즉슨 세(稅)는
어떻게 되었느냐."
"날아가? 아니 벌써 어느 놈이 농간해서
처먹었더란 말이냐."
"처먹다니오. 잡은 적도 없는데 어느
놈이 처먹는단 말입니까."
"두 말 거푸 지절거럴 것 없다. 그놈
당장 잡아들여라."
"수천 가지 새 중에 어느 새를 잡아오란 것입니까."
"이 미련한 놈들 보았나. 내가 새를
잡아오랬나. 세 먹은 놈을 잡아오라 하였다."
"새를 잡아먹었다는 일 한 가지로
잡아들여 혼찌검을 낼 만한 죄적(罪籍)도
아닐 뿐더러 설혹 잡아들인다 할지라도
그럴싸한 혐의가 있어야 잡아들일 것입니다."
중도에서 낚아채 처먹은 놈이 있었다고
실토정을 했었지 않았나."
그런데 섬돌이 콧등에 닿을 정도로
국궁하고 있던 수직꾼들의 허리가 어느
사이에 점점 퍼지는가 하였더니 그중 한
사람이 뜨아 해서 물어봤겠다.
"도대체 꼭두새벽부터 새타령이 낭자한 댁은 뉘시오?"
"이놈들아. 명색 부사가 도임을 하게
되면, 남원부중 백성들에게 거둬들일
명하세(名下稅)가 수월찮을 터, 그 세를
내가 도임도 하기 전에 어느 놈이 거 꿀꺽
삼켰더란 말이냐, 길청에서 구실 산다는
아전놈들 한 놈 남김없이 잡아들여라."
그러나 조짐머리는 심상치가 않았더라.
성돌 아래에 서 있던 수직꾼 하나가 썩
올리고 문지방을 잡고 호통치는 변부사에게
다시 물었다.
"댁은 뉘신가 묻지 않았소."
묻는 말은 다리미로 학 다린 듯이 매끈한
공대였지만 거동에는 장난끼가 역력하였다.
"내가 뉘신가 물었더냐 이놈아?"
"그래 이놈아."
"너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호놈이 낭자하냐."
"너 이놈. 엇따 대고 호놈이 거침없느냐."
"이 박살할 놈."
"똥물에 튀겨 수채구멍에 쑤셔박을 놈."
변부사의 입술 가녘에 허연 침버캐가
부글거렸다. 그러나 그때 변부사에겐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더라. 그것은 바로
봉변이었다.
아직까지도 허리와 어깨가 결려서
욱신거리고 있는 그날의 봉변이 뇌리에
떠오르는 순간, 변부사는 뒷덜미가
섬짓하였다. 과천에서 남원부사의 직함을
사칭하였다 해서 매찜질을 당했던
것이라면, 지금 당장 남원관아동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도 그와 흡사함이
아닌가, 도대체 길청에는 숙직하는 당번
야전도 없더란 말인가, 있었다면 진작
이소동을 알아채고 달려왔을 것 아닌가.
아니 그렇다면 자신은 수행 아전들보다
한발 앞서 당도했더란 말인가. 그때
변부사는 모골이 송연하고 등골에 진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이 낭패를 어떻게
무사히 따돌릴꼬. 당장 신분을 증거할
수령으로서 기거할 등헌에서 섭산적이
되도록 곱다시 매찜질을 당할 판국이었다.
범강 장달 같은 수직꾼은 가파른 눈길로
변부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벌써 미친놈
대접을 당한 것이다.
실성한 놈이 마침 경계가 허술한 관부로
숨어들어 명하세(名下稅)를 대령하라고
호통치고 있다면, 덮쳐서 포박하지 않을
수직꾼이 어디 있겠는고. 그제사 성밖에
버리고 온 장돌림이 생각났더라. 그가
있었다면 자신이 남원부사라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증거해 줄 터이지만 그러나
소용가치 없다하고 매몰차게 차버린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변사또는 눈앞이 더욱 아득하고
땀은 흘러 잔허리께가 축축하게 젖어왔다.
하백(河伯)의 친구가 되지는 않는 법이다.
어째서 진작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가.
변부사는 그때 역발산의 기백으로
동헌방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잰
걸음으로 대청으로 나가겠다. 그는
콩소매에 넣어 두었던 교지를 꺼내 들었다.
변학도란 이름을 명토 박아 남원부사에
서임(敍任)한다는 지엄하신 나랏님의
사령장이었다.
들기름 먹인 붉은 색 종이에는 옥쇄를
찍고 나랏님의 수결(手決)까지 적바림을
하였다. 교지를 손에 들고 벌벌떠는 시늉을
하며 변부사는 으르렁거렸다.
"이노오옴. 이것이 바로 주상께서 이
변학도를 남원부사에 서임한다는 교지다."
변부사의 갑작스런 서슬에 수직꾼은 흠칫 사이였다.
냉큼 교지를 낚아채서 할짝 펴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직꾼은 교지를
순식간에 북북 찢는가 하였더니 무엄하게도
발바닥으로 지신지신 밟으면서 이죽거렸다.
"이놈이 미쳐도 계획적으로 미친
놈이구만. 이놈아 이게 교지인지 복날에
잡은 개껍질인지 내가 알게 뭐야."
그럴 법한 말이었다. 진서(眞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언필칭반글이라는 언문도
아래에 토달린 글자는 읽지 못하는 처지인
수직꾼이 붉은 종이에 촘촘하게 박아쓴
진서를 한 획인들 해독할리 만무였고 또한
수직꾼 반평생에 도대체 교지란 것을
한번도 구경한 적도 없었으니 멀쩡한 흰
종이 두고 붉은 종이에 괴발개발 그려넣은
십상이었다.
그러나 나라에 한 분분인 지엄하신
주상께서 내리신 교지를 한낱 개껍데기로
비견하여 이죽거리며, 밟고 있으니
변부사도 울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제력을 잃어버린
변부사는 손을 쳐들어 수직꾼의 볼따구니를
눈물이 쏙 빠져라 하고 후려쳤다.
"이노옴, 가랑이를 찢어놓을 놈."
사태는 점입가경이었다. 따귀 맞은
수직꾼은 변부사의 매질에 질끔해서
설설기는 시늉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었다. 제 볼따구니를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면서 반죽 좋게 히죽 웃는가 하였더니,
"내 오늘 일진이 왜 이 모양이여. 이런
당장 포박해야겠는걸."
그때까지 섬돌 아래에 서 있던 둥배간이
쏜살같이 날아서 동헌 대청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변부사를 딴죽걸어 넘어뜨리고 등뒤에서 두
팔로 목덜미를 옥죄이고 들자 변부사는
밭은 기침을 토해내었다.
"이놈들 감히 고을수령을 포박하다니,
이런 미친 놈들 있나. 게 누구 없느냐."
"이놈아, 모두들 한양길 회정하고 관부가
텅텅 빈 터에 네놈이 고을수령 아니라
옥황상재인들 혼수해 줄 위인이 남아 있을까."
오랏줄로 모양 있게 뒷결박을 지운 뒤
대청에서 섬돌 아래로 질질 끌고 내려가니,
변학도에게 다소 근력이 남아 있다
감당할 수는 없었다.
마침 뜨락 가녁 축담 밑에 치워두었던
장판(仗板)을 끌고 오더니 변학도 뒷결박
지운 채로 장판에 옆치고 서슴없이
볼기짝을 벗겨내렸다.
"이놈 곤장 내릴 때마다 네놈 주둥이로
수효를 복창하렸다. 자고로 미친놈과
곱사등이는 상판에 잡아 엎치고 매로
다스려야 병을 고친다 하였다.
그러고 난 뒤 다짜고짜 벌건 볼기짝에서
딱 소리가 터졌다. 다시 한번 딱 소리가
터졌다. 두 대를 내렸건만 변학도의 입에선
하나 소리는 물론이요 둘 하는 복창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금니가 부서져라 하면서 사려물고
뼈골까지 파고드는 맵짠 통증을 삭일지
고분고분할 수는 없었다. 이래뵈도
남원부사가 아닌가.
"너 이놈. 복창하지 않은 곤장질은 모두
공다지로 맞는 게다.
감히 남원부사를 사칭한 죄는 곤장 얼백
대에 결곤(決棍)한다는 것을 네놈은 모르고
있쟈?"
다시 곤장이 볼기짝에 떨어졌다.
오장육부가 단근질을 당하는 것처럼 눈앞이
새까맣게 아팠다. 그때 변학도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하나- ."
단내가 훅훅 풍기는 변부사의 업에서
열다섯을 세는 소리가 가녀리게 들려왔을
무렵이었다. 동헌으로 들어오는 솟을대문
어름에서 느닷없이 자지러질 듯한
"게 멈췄거라."
"열여섯."
"이놈들 멈추지 못햐겠느냐."
"열일곱."
"난장질 멈추지 못할까."
"열여덟."
"곤장질 거두지 못할까."
"열아홉."
"이 아수라 같은 놈들 물러서지 못할까."
"스무우울."
난데없는 이방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동헌
뜨락 우르르 내달아 매타작이 낭자한
장판을 가로막고 꼬꾸라지며 수직나졸의
견대팔을 잡고 늘어졌다.
치도곤을 먹이느라 온몸에 땀투성이된
수직나졸이 시뻘건 눈으로 내려다 보노라니
아전이었다.
얼떨결에 허공에서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던 곤장질이 멈추었다. 난장개가 된
변부사의 볼기짝에선 누릿내가
설핏하였더라.
"나으리 이 어인 고초이십니까."
신색이 하얗게 질린 이방이 장판 앞에 착
무릎을 꿇고 난 뒤 콧등으로 땅의 먼지를
쓸며 하정배 드리고 나서 다시 엎드려
서럽게 곡지통을 내쏟았다. 울다 말고
아직도 생버드나무로 만든 청태장을 꼬나쥔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수직나졸에게
대성일갈이었다.
"이놈들, 양념도 없는 주제에 나으리를
산적으로 만들 작정이었더냐. 아니면
육장(肉醬)을 담을 작정이었더냐."
가녘을 잡고 또한 서럽게 울어쌓는 것을
목도하제 된 수직나졸은 그제서야 아뿔싸
싶었다. 장판에 엎드린 이 미친놈은 이방
아전과 종반간이 아니면, 서당의 동접배가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이것은 하늘이 두
쪽 날 불상사였다.
"이놈들, 냉큼 샅바를 풀지 못할까."
울다 말고 벌떡 몸을 솟구치는 이방의
분부에 따라 장판에 엎치고 사지를 묶었던
샅바를 풀고 있는데, 가련한 변부사는 이미
기신을 잃고 혼절한 뒤였다.
예로부터 호환(虎患)보다 더 무서운 것이
관욕(官辱)이라 하였거늘, 청태장에 살점이
묻어나는 혹장(酷醬)에 기골이 든든했던
변부사도 산 놈이 염라국에 가서 고초를
겪는지 죽은 혼백이 포도청 끌려가 악형을
모르게 까무라치고만 것이었다.
그가 혼절한 것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역시 이방이었다. 샅바를 풀고 벗겨내린
바지를 끌어올려 벌겋게 드러난 볼기짝을
덮다보니 장판에는 생똥까지 묻어 있었다.
혹여 식은 방귀를 뀐 것은 아닐까 해서
얼른 진맥을 헤보았더니 맥은 아련하게
살아 있었다.
"나으리를 냉큼 내 등에다 업혀라."
혼절한 사람을 등에 업으려 한다면 이
또한 보통일이 아니었다.
경위를 물어볼 겨를도 없이 섭산적되다만
변부사의 삭신을 거둬 이방에게
업혀주었다. 이반이 동헌방으로 뛰면서
기연가미연가해서 우두망찰인
수직나졸들에게 분부하였다,
영렴하다는 의원과 약주부들에게
사발통문을 놓아 지체없이 들라 하여라."
"어느 의원을 들라 할깝쇼?"
"이놈들아. 의원으로 자처하는 놈들은
죄다 들라 하여라. 냉큼 나서지 못할까."
서릿발 같은 이방의 분부에 겨 먹던 개
쫓기듯 동헌을 나선 수직나졸들은 서로
무안당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이방이 왜 저러나?"
"글쎄. 곤장 맞은 놈이 필경 친동기간인
게야."
"변동기간이라면 불문곡직 우릴 다스릴
텐데 가만두지 않았나."
"우리에게 분풀이를 하지 않는 것은
시새당장 분부 거행할 수하것들이 눈에
띄지 않으니까 아쉬운 대로 거행케 하자는
"구수실살이 이십 년에 이런 대실책은
처음이구만, 어떻게 할까? 의원이구
약주부구 작파하고 줄행랑을 놓을까? 필경
우리 두 사람 난장질한 것을 허물 잡아
또한 태벌로 다스릴 게야. 그렇게 되면
우린 두 번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네."
"줄행랑이라니? 오리정 밖의 물정에도
어두운 우리 주제에 튀면 어디로 튈까.
천하를 섬렵하였다는 손오공도 부처님
손바닥에 있더란 말도 못 들었나?"
"이방의 추심(推尋)쯤이야 따돌리지
못할라구."
"이방의 추심이 두려운 게 아니구,
장판에 생똥 싼 그놈의 본색이 누구냐는
것이야. 내가 보기엔 이방의 동기간이나
피붙이도 아닌 듯하이, 이방이 그놈더러 몇
그놈이 얕잡아 보아도 좋을 한미한 가문의
출신이 아닌 듯 하이."
"그럼 누구란 말여?"
"그걸 알았더라면 난들 사다듬이로
분풀이를 했겠나. 어쨌든 오늘의 일진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네."
두 수직나졸이 남원부중 일경 을 벌집
쑤시듯 하면서 연통한 결과 의원
명색한다는 사람들과 약첩이나 짓는다는
약주부들이며 심지어는 약주릅들까지 동헌
대장에는 장마 뒤에 줄남생이 늘어앉듯
당도한 순서대로 놓여 않았더라.
의원들이 듣자하니, 장독(仗毒)을
다스려야 할 잡본인은 도임한 남원부터
변학도라는 것이었다. 도임행차가
당도하였다는 소문조차 없었고, 또 한
수직나졸들에게 태별을 당해 까무라쳤다는
것도 그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문이었다.
그러나 이방이란 사람이 변부사임에
틀림없으니 모쪼록 뒤탈없게 장독을
다스리라니 시큰둥한 가운데
약방문(藥方文)이랍시고 붓으로 끄적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채근과 분부에
못이기는 척 게으름을 피고 있는 의원이든
만나기만 하면 저고리섶을 뒤틀어
잡아당기며 앙탈을 부렸다.
"시방 나으리께서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이걸 약방문이라고 끄적거리고들 있는가?"
"아니 피를 토하였다면
복령보심탕(宓笭補心湯)으로 다스려야 하지
않습니까.복령피(宓笭皮)로 말하면
"대소변이라니? 대소변이라면 벌써
장판(仗板) 위에다 죄 싸버린 것인데,
또다시 복령피를 먹인다면 창자를 녹여서
대소변을 만들겠단 얘기여?"
"그렇다면 사향소합원(麝香蘇合元)을
달입시다. 백출(白朮), 목향(木香),
침향(沈香), 사향(麝香), 안식향(安息香,
배단향(白檀香), 주사(朱砂), 서각(犀角),
맥아(麥芽), 감초(甘草)가 들었으니 원기가
되살아날 것이오."
"장독을 두드러기쯤으로 아는가? 아니면
하찮은 개좆부리로 아는가? 우선
장창(仗蒼)날 것을 방비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것보다 우선 윈기부터 차리게 한 뒤에
장독을 다스려야 할 것이오."
쾌복되시어 떨치고 일어나셔하네."
"그렇게 성급하게 구시면 편작(扁鵲)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가망없는 일입니다."
"명색 영험하다는 의원이 오줄없는 말만
골라 하는가. 자리보전하고 누우신
나으리가 뉘신가? 바로 남원부사의 지체가
아니신가?
"남원부사가 아니라 남원할애비라
할지라도 방문(方文)없는 첩약을 달여 올릴
수 있겠습니까? 난상개가 되도록 얻어맞고
까무라 쳐서 자리보전한 분을 당장 떨치고
일어나도록 만들 영험 가진 사람은
약사여래(藥師如來)뿐일 것입니다.
"약사여래는 어디 있나?"
"동문(東文:向日鞍)밖
선원사(禪阮寺)에도 있고, 기린산 언덕
그 순간 이방의 두 소매자락이 삭풍에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었다. 그는 섬돌
아래 부복한 채인 두 수직나졸을 식지를
내뻗어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이놈들. 이 미련한 놈들. 약사여래와
같은 영험한 의원을 두고 이
허섬스레기보다 못한 놈들을 의원
명색들이라고 불러모았더란 말이냐. 당장
뛰어가서 약사여래 거처를 수탐해서
잡아끌고 오너라."
떨고 있기는 섬돌 아래 국궁하고 있는
수직나졸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들은
이제나저제나 하고 날벼락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당장 하옥시키겠다는
말 대신 느닷없는 약사여래를 끌고 오라니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없었더라. 그러나
뱉으라 하였다.
분부를 따라 무작정 문 밖으로 뛸 듯
하던 수작꾼이 엉거주춤 되돌아서서 입가에
침벌캐나 허옇고 눈가장자리가 벌겋게
상기된 이방에게 말했다.
"약사여래를 끌고오자면 쇤네 두 사람의
완력으로는 힘에 부칩니다."
"왜? 그놈이 영험하다는 것을 잘난
채해서 감히 남원부사의 영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긴 개뿔이 아니더냐. 그놈이 어떤
놈이관데 감히 남원부사 진맥하기를
거역한다더냐. 그놈은 남원땅 일경에서
거둔 곡식과 나물로 뱃구레를 채우지
않는다더냐."
약사여래는 얼핏 사람의 형용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돌로 빛은 부처님이시니 뫼셔온다
할지라도 몸져 누우신 나으리를 진맥할 수
없을 터입니다."
"그렇다면 선원사에 있다는 약사여래도
그 모양이냐?"
"역시 돌로만 빚은 부처님입죠."
이방은 그때서야 혼자서 갈팡질팡 수선을
피다보니 정신을 차리지 못해 의원의 말을
횡듣고 횡설수설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칫하다간 미친놈 소리 듣겠다 싶었던
이방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부아통을 삭인
다음 도저한 어투로 수직나졸에게 일렀다.
"약사여래는 형용이 그러하니 그렇다자고
그럼 편작을 뫼셔오너라."
그런데도 섬돌 아래 부복하고 서 있는
꿈쩍도 않고 버티는 더라. 이방은 미련한
꼴을 더 이상은 바라보며 참을 수 없어
눈에 불똥이 튀려 하는데, 등뒤에서 있던
한 의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편작(扁鵲)이라면 인도의 기파(耆婆)와
쌍벽을 이루는 천하의 명의로 곽나라
태자의 급환을 고치신 분입니다. 그러나
편작은 중국 전국시대 사람으로 지금은 그
뼈까지 진토되어 바람속에 흩날리고 있을
터이니 편작을 뫼셔오라 말고 차라리
바람을 동여오라 하십시오."
그 순간, 아니래도 질려 있던 이방의
안색은 하얕게 질려버렸겠다. 그는 낙맥을
하고 동헌 대청에 털쩍 주저앉고 말았다.
탕약을 끓여 턱밑에 대령하기는커녕
약방문을 가지고 이방과 의원들이
있던 중에 혼절하여 누웠던 변사또는
재출몰로 기력을 되찾는 차도를 보여
부시시 반눈을 뜨고 기척을 하기
시작하였다.
얼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헌 대청에선
까닭모를 입씨름들만 낭자한 터라, 마침
고래등같이 부어오른 불기짝을 물수건으로
찜질하고 있던 낯선 다모(茶母)에게
힘담없는 목소리로 물었겠다.
"문 밖에서 낭자히 떠들고 있는 저놈들은
어느 구멍에서 내질린 것들이냐."
"관향(官鄕)이나 태자리는 쇤네가
모르겠습니다만 가근방 고을에서 방귀께나
뀐다는 영험한 의원들이 차출되어 나으리의
장독을 구완한답시고 장떡에 개똥보다 못한
약방문을 가지고 삿대질과 입씨름으로
"약전(藥箋)에 약탕기는 걸었더냐?"
"약전(藥箋)조차 주변하지 못한 터에
이찌 빈 약탕기를 걸고 맹물을 끊일 수
있겠습니까.나으리의 장독이 골수에 박혀
인사불성이 되어 바로 눕지도 못하고 엎뎌
있는 판국에 입씨름난 낭자한 터라 소견
없는 쇤네가 보기에도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가까이에 시궁창이 있느냐?"
"내아(內衙)의 중문 뒤에 큰 시궁이
있습지요."
"네가 지금 당장 뛰어나가서 그 시궁의
수채를 한동이만 퍼다가 저놈들에게 끼얹어
주겠느냐."
"쇤네도 그러고 싶은 마음 진작부터
굴뚝같습니다만 백주대낮에 발칙한 짓을
"내 한마디 분부라면 털끝 하나 다칠 것
없으니 간곡한 내 청을 내쳐서 쓰겠느냐."
누구의 분부라고 감히 가역하겠는가.
아니래도 눈에 가시 같던 위인들에게
신명떠름까지 하게 생겼으니 다모는
어젯바람을 일으키며 단숨에 시궁창으로
달려가서 불동이 가녘으로 넘쳐흐르도록
수채를 퍼담아 동헌 대청으로 성큼
올라섰겠다.
시큼하고 니굴니글한 수채냄새가
난데없이 동헌 대청에서 코를 찌르게 되자,
십수명에 이르는 의원들과 약주부들은
갑자기 실성기를 보이고 있는 다모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일제히
다모에게로 시선을 모으는 그 찰나,
수채동이는 반완을 그으며 동헌대청을
낯짝에 시궁 칠갑이 된 의원들은
엉덩방아를 찧고 나동그라짐에 반질거리던
동헌대청은 산시간에 오물투성이로
질척거렸더라. 누구의 입에선가 대성일같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동헌방 미닫이가
부서질 듯 열리면서 변사또의 서릿발같은
분부가 떨어졌다.
장독 때문에 일어나 앉을 수가 없었던
변학도는 들기름 먹인 장판에 베를 깔고
엎뎌 있기는 하였지만 두 눈에서는 불똥이
튀고 있었다.
"이 박살할 놈들. 지절거리기만 하는 그
혓바닥으로 대청을 얼음알같이 핥아내지
못하면 지금 당장 주리를 틀어 하조를
결단내고 맡리라."
변학도는 미닫이문을 닫지 않았다.
노려보고 있는 면전에서 한미한 신분의
의원들이 해야 할 일은 뻔했다.
탈선한 채 인사불성으로 누워 있을
줄로만 알았던 변사또가 제출물로 쾌차되어
목자를 부라리며 시궁까지 끼얹고 나설
줄이야 예견인들 했을까. 옥색 도포자락을
가림하며 대정 널판자를 핥는 척 시늉하는
일변 널판자 사이의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후비며 힐끔거리자니 의원된 것이
모쪼록 수치되고 한스러웠다.
동헌방으로 들어간 이방은 가랑이를
벌리고 엎더 있는 변부사의 시뻘건
볼기짝을 등 뒤쪽에서 바라보며 애끓는
목소리로. 설왕설래로만 한나절을 보내며
아직 약탕기도 걸지 못한 죄를 제가
뒤집어쓰겠다고 부복사죄(俯伏謝罪)하는
볼기짝에다 이겨바르고 있었다.
꿀 아닌 조청에 버무렸다 할지라도 그
상약(常藥)은 짐밖의 창자에서 나온 개똥이
분명하고 또한 그것이
당약처방(唐藥處方)에 버금갈 만한 효험이
있다 할지라도 남원부사의 존귀한 몸에다
칠갑을 시키기에는 무엄하고 외람된
처방이라, 부복사죄하던 이방은 목에서
떨꺽소리가 나도록 놀라서 짐작없는 다모를
꾸짖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꿀에 버무린 장떡과 개의 똥입죠."
이방은 방구들에서 천동소리가 나도록
뒤축을 근력껏 들었다 놓았다
"이런 고얀 년이 있나. 사람의 똥도 아닌
개똥이라니 그 상약으로 말하면, 여항간의
하찮은 처방이 아니냐."
기절초풍을 해서 오금조차 펼 경황이
없을 줄 알았던 다모는 그러나 얼굴을
되들고 이방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꿩잡는 게 매입죠. 반나절을 가타부타
푸념으로만 허송한 것도 심에 덜 차서
개똥처방을 두고 호통이십니까."
이방이 되받아치기도 전에 변학도의
입에서 이방을 쥐어박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모의 말이 속시원하다. 이방은
쓸데없는 일에 근력 탕진하지 말고 냉큼
달려가서 파장기(把掌記:결세액과 납세액을
가려적은 장부)와 도행장(導行將:결세에
대한 장부) 그리고 마상초(馬上草:납세자의
이동을 적은 장부)와
대령하렸다."
한 대 쥐어박힌 이방이 또 다시 변학도의
볼기짝을 바라보며 조아렸다.
"아직 미령(靡寧)하신 터에 쾌차되시와
도임행차 배웅 나간 육방관속들이 회정한
연후에 공사(公事)를 수습하시어도 무방할
것이니다."
"내가 시방 방 구들에 배를 깔고
꼴불견으로 엎뎌 있는 관장이라 해서
업수이여기는 게냐?"
"언감생심 그런 불측한 심지를 품을 수
있겠습니까. 당장 분부 거행해 올립지요."
"그런데 이제 보니 수상쩍군. 이방아전은
어째서 도임수행에서 빠져나와 이제까지
부중에 남아 있었더란 말인가?"
"시생은 소시적에 앓았던 산증(疝症)으로
적지 않은 시달림을 받아왔습지요.
게다가 천리노정인 한양 내왕행보에
토산불알 쪽에 있는 가랑이에 가래톳이
생겨 여산대호(如山大虎)가 알가리를
벌리고 뒤쫓아온다 해도 따돌리기 거북하게
되었습지요.
그래서 한 발짝 뒤쳐져서 토산불알을
동이고 가래톳이 들보나 하고 되짚어 떠난
행차를 뒤따라가려던 참에 알 궁둥이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사삿집 계집의
고쟁이를 옹구바지 대신으로 꿰어 입은
낯선 놈이 난데없이 달려와더 나으리께서
시방 동헌마당에 잡아 엎치어 난장질을
당하고 있으니 냉큼 달려가너 구명치
않으면 조금에 식은 방귀를 뀔 것이라고
숭어띔을 하였습지요."
소동 가라앉은 뒤에 그 기특한 불알 한번
보여다오."
그때까지 비지땀을 찔찔 흘려가며 대청
마룻바닥을 훔치고 있는 의원들과
약주부들의 거동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던
중에 많은 장책을 싸안은 이방이 다시
동헌방으로 들어섰다. 그제사 문을 닫고
엎딘 채로 책갈피로 뒤적이던 변학도는
물었다.
"노부세(路孚稅)는 무엇인가?"
"가령 나으리 같으신 현직(顯職)들이
도임할 때 드리는 노자입죠."
"도임 노자가 수월찮았으니 푼전의
백징(白徵)도 없도록 수쇄(收刷)하라."
"거행하겠습니다."
"회량미(回糧米)란 무엇이냐."
지금와서 수쇄하면 엉뚱하고 야박하다 해서
원성이 자자할 것입니다."
"아무리 원성이 자자한들 너의 고을에
당도하는 길로 미천한 수직나졸들에게
난장질당해 장독으로 굴신을 못하게 된
설분을 반타작이나 할 수 있을까."
"거행해 올리겠습니다."
"곡상미(斛上米)는 무엇이냐."
"세곡(稅穀)이 축날 것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벌충하기 위하여 한섬에 석 되씩
증수(增收)하던 세미(稅米)입죠."
"수쇄하라."
"거행해 올립지요."
"복호미(複戶米)는 무엇이냐."
"고을에 충신, 효자 절부(節婦)가
생겨나면, 그 가문에는 요역과
감수(減收)를 벌충하기 위해 거두던
세미입죠."
"그 또한 결안(結案)해서 수쇄하라."
"이 삼수미(三手米)란 무엇이냐?"
"삼수(三手)란 곧 포수(咆手)와
사수(射手)그리고 살수(殺手)를 일컬음인데
이것은 한양의 훈련도감에서 거두는 세미일
뿐 남원고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오늘부터 남원부 형방 수하에 포수와
사수 그리고 살수 한 놈씩을 두고
단련시키도록 조처할 것인즉 수쇄하라."
"군정(軍丁)은 어디서 조발합니까."
"수직나졸들 중에서 세 놈을 뽑으면 될
터 떨떠름한 면판 짓지말게."
"거행에 올립지요."
"징세할 매 문서를 만드는 데 쓰이는
종이값으로 받던 세미입죠."
"수쇄하라."
"해올립지요."
"칭후전(稱後錢)은 무엇인가."
"새미를 부과한 뒤에 수수료와 같은
비용을 감안하여 거두던 것 입니다."
"수쇄하라."
"예."
"장세(匠稅)는 무엇인가."
"갓바치나 갖바치들에게 거두는
징세입지요."
"수쇄하라."
"그런데 이 무단미(無端米)란 무엇인고?"
"문자 그대로 아무런 까닭없이 시도 때도
없이 거둬들이는 세미 입지요."
눈여겨보았지만 그 중 아름답고 갸륵한
것이 바로 이 무단미였다. 그런데 이 숱한
세목 중의 백미(白尾)인 무단미는 바로
총기 있고 영특하신 전치수령(前治守令)이
한림(李韓林)의 탁견이었더냐."
"그것이 아닙니다. 이 세목은 나라의
살림이 도탄에 빠져 궁핍을 겪었던 시절
농투산이들로부터 임시로 거둬들였던
세미로써 전조(前朝)인 고려시대
공민왕께서 다신들의 뜻에 따라 궁리를
트신 것입니다."
그때 변학도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며
탄식하는 것이었다.
"애석하고 비통하다. 그렇게 명특한
탁견을 가졌던 주상께서 어찌 전조에
태어나시어 일찌감치 나와 유명을
책 한 권을 던지고 난 뒤 변학도는 다시
양안(量案)을 끌어당겨 뒤적거리기
시작하였다.
"여기 적바림된 구분전(口分田)이란
무엇인고?"
"예, 그것은 싸움터에 나가서 죽은
군정의 식솔들이나 연로한 군정, 그리고
관원의 유자녀들에게 나눠주는 토지를
이르는 것입니다."
"거둬들여서 모두 관둔전(官屯田)에
귀속시킬 일이다. 이 급주전은 무엇인고?"
"그것은 역졸들에게 녹봉 대신 나눠주어
갈아먹게 하는 토지입지요."
"내가 도임할 제, 말은 고사하고 낭나귀
한 필 내어준 역졸을 보지 못했다.
몰수하라. 그렇다면 이 도전(渡田)이란 건
"나루터에서 거행하고 있는 사공들이
토지에서 나오는 소출로 연명하고 또한
소용되는 경비에도 충당하고 있습지요."
"내가 남원땅 당도하여 요천(寥川)을
건널 제 사공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손수 다리 걷고 세찬 여울을 건너느라고
고초가 뼈에 사무쳤다. 몰수하라. 그렇다면
여기 있는 지위전(紙位田)이란 무엇인고?"
"예, 그것은 능묘의 제사 때 쓸 제물과
경비를 꾸려나가기 위해 있는 토지입니다."
"방자하고 간사한 것들 남원 인근에 무슨
능묘가 있다고 난데 없는 지위전을
두었더란 말이냐. 이것은 필경 길청에서
구실 살고 있는 아전놈들의 농간질이
아니더냐, 이름만 그럴싸하게 지위전이라
해두고 그 소출은 너희 아전놈들이
거둬들이라. 면종복배(面從服背)하는 너의
이전놈들의 간사한 버르장머리를 내가
고쳐줄 것이니 그렇게 알라."
신색이 하얗게 질린 어방마전은 이제
떨면서 아뢰더라.
"사또께서 이제 겨우 소생(蘇甥)이
되셨습니다. 그 수구(瘦軀)에 평복(平服)이
되시려면 여러 날을 두고 조섭을 받으셔야
합니다.
모쪼록 심기를 편하게 가지시고 마음을
비우셔야 하루라도 빨리 병줄을 놓게 될
것입니다.
"반죽떨지 마라. 내가 사내 구실을 못할
만큼 녹장이 난 줄 알 고 있느냐.
양생(養生)을 받으면 사나흘 안짝에 벌떡
일어날 것이니 이방은 염려를 놓게나."
되신다 할지라도 약차하면 후더침이 될
가망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방의 말을 새겨듣자니, 내가 후더침이
되어서 평생 자리보전 으로 누워 있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억탁의 말씀입니다."
그러다가 변학도는 느닷없이 물었다,
"약채목(藥債木)이 무엇이냐?"
"예. 백성들이 약값으로 바치는 포목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 말 한번 잘했다. 명색 내로라 하는
남원부사가 임지에 도임하는 그날로
두억시니 같은 놈들의 난장질로 돌이키지
못할 장독(仗毒)을 입고 굴신을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온 남원부중에 짜하게
퍼졌을 텐데, 염치없는 백성들은 약채목 한
못하였다.
이것은 필경 관장(官長)을 업신여기고
능멸하려 함이니 가만 두고볼 수 었다.
이방은 복호(復戶: 효자나 효부가 난
집으로 세금을 물지 않음)이든
반호(半戶:세금이나 추렴을 반씩만 내는
집)이든가 가릴 것 없이 백징(白徵)을 두지
않고 결안(結案)해서 약채목을 추렴토록
조처하라."
이방이 두 번 다시 둘러댈 말을 하지
못하도록 변학도는 방바닥을 치며 핏대를
곤두새웠다.
"냉큼 시행치 못하겠느냐."
변학도는 시퍼런 서슬에 풀 죽은 이방이
설설 기는 시늉으로 동헌 섬돌로 내려설
제, 다모는 약방에 서둘러 달인 탕약
그릇을 받쳐들고 동헌방으로 들어섰다.
"나으리 탕제(湯劑) 달여왔습니다. 어서
잡수시고 쾌차하십시오."
"시방 뒤숭숭한 판에 탕제 들이킬 경황
아니다."
"응석하시지 말고 어서 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쇠락햐신 기운을 되찾으실
것입니다."
"이방이란 놈이 몸져누운 나를
잘코사니로 여기고 후더침이 되라고 헐뜯고
있는 판국에 내가 설사 쓸개에 뜨물이 든
반실이라 한들 탕제 마실 비위가
있겠느냐."
"그런 경솔한 언행으로 푸대접을
받으실수록 탕제를 연복(漣服)하시어야
병줄을 놓으시고 길청 아전들을 잡도리하실
것입니다.
그때 변학도는 고개를 되돌려 다모를
힐끗 쳐다보았다. 소금에 절인 자반같이
푸르죽죽한 살신을 가진 오십줄 늙은이가
약사발을 들고 처량하게 서 있었다.
"그 약사발 이리 다오."
그러나 다모는 잽싸게 반몸을 비틀어
비켜나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외람되나마 쇤네가
곁부죽해서 마시도록 주선하겠습니다."
"남의 비윗장 건드리지 말고 약사발 이리
다오."
"아닙니다. 굴신을 못하시는 터에 불가불
쇤네의 약수발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때 변학도는 배밀이해서 솟구친
상반신을 두 팔로 버텨 지탱하면서 다모를
허옇게 닦아세웠다.
한답시고 볼기짝에다 개똥 이겨바르고 나서
생좀 내고 있는 것이냐? 별반거조
내리기전에 약사발 건네주지 못할까."
부릅뜬 눈자위에 기가 질린 다모의
손에서 약사발을 빼앗아든 변학도는
대청으로 나가는 비닫이를 얼었다.
그 동안 대청은 얼추 행굼질이 되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라 오라는 지엄한 분부가 없었던
터라 의원과 약주부들은 탈기한 채늘어앉아
먼산바래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동헌방에서 패대기친 약사발이
대청으로 날아와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대성일갈이 변학도의 목구멍에서
더져나왔다.
"이 육시럴 놈들. 네놈들이 그 간특한
것을 내가 눈치채지 못할 성부르냐?
네놈들의 약방문(藥方文)이 편작에
버금가는 처방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고로 약이란 그 처방보다 약수받하는
개집의 기운을 채난(採煖)하는 일도 약의
효험못지 않게 따져서 다스려온 것인즉,
이제 명줄을 저승문턱에 걸고 염라태수가
와서 업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호호야
늙은이로 하여금 약수발을 시킨다는 것은
후더침도기를 바라는 이방놈과 통을 짰다는
증거가 아니냐."
한 사람에게 하나뿐인 입이긴 허였지만
합치면 열 개가 넘는 수효의 입이었다,
그러나 무시때는 달변들이 촬촬 쏟이이는
입들에선 대꾸 한마디 없었다. 그러나 닭
열 마리 중에는 필시 봉 한 마리가 섞여
재치 있는 의원이 없지 않아서 동헌 대
정에서 더끄러지듯 빠져나와 약방으로
달려갔다, 약방에서는
약방기생(藥方妓生)들 대여섯이 모여앉아
탕제를 달이느라고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신연행차하신 부사가 약방기생
점고(點考)하신다, 으름장 놓았더니
약방기생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
어안이벙벙하이 영문을 모르겠더라, 그러나
의원의 말이 도저하고 근엄한지라 분부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경황없이 옷매무새를 고치고 난 뒤
빼죽거리는 오리걸음으로 동헌대청 섬돌
위로 가서 나란히 서게 되었더, 고패를
떨어뜨린 약방기생등이 힐끗 곁눈질하자니,
동헌방에논 매폼이 걸쭉하게 생긴 한
문지방에 턱을 얹고 엎더 있는데, 아예
덕목을 가진 사대부로는 보이지 않았고
색탐이나 하게 생긴 왈페로만 보여서
초대면부터 피차간 입맛이 달지 못하였다.
대청 가년에 늘어선 약방기생의 모색들을
바라보고 있던 변학도는 맨 오른손 편에
쭈그리고 서 있는 기생을 턱짓하며
물었겠다.
"너는 누구냐?"
"예, 쇤네 운향(雲香)이라 하옵니다."
이번엔 묻지도 않고 시선만 건너갔다.
"쇤네 금향(錦香)아라 하옵니다."
"너는 누구냐?"
"쇤네 추향(秋香)이라 하옵니다."
"너는."
"계향(桂香)이라 하옵니다."
"쇤네 도향(桃香)이라 불러주십시오."
"맨 끝에 선 너는 누구냐."
"쇤네 향춘(香春)이라 하옵니다."
시무룩한 상호를 하고 있던 변학도의 두
눈이 그때 화등잔만하게 떠졌다.
"뭣이? 춘향이라고?"
"아니옵니다. 향춘이라 합지요."
"그렇다면 춘향이와는 사촌간이냐?"
"쇤네는 단출하여 동기간에 사촌은 두지
않았습니다."
"그럼 육촌간이냐?"
"아니옵니다."
"요 발칙한 계집, 그럼 어째서 뒤축으로
밟아놓은 쑥떡 같은 매골을 가진 네년이
당돌하게 춘향이 명함을 사칭하는 것이냐."
"쇤네 나이가 올해로 스물넷이
임시에는 남원고을 백 리 지경 안짝에는
향춘이든 춘향이든 그 이름 가진
계집아이는 없었습니다. 만약 춘향이란
이름을 가진 규수가 있다면. 필경 쇤내의
이름을 교묘하게 모방하여 사칭했다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이년, 엇따 대고 암팡진 말대꾸냐."
"쇤네의 이름을 두고 수상쩍게 여기시니
억탁이 되어서 해혹(解惑)이 되시라 하여
여쭙는 것입니다."
"해혹이구 혹부리구 토산불알이구 간에
듣기 싫다. 차후로 네 이름은 향자와는
팔자가 닿지 않는 담선(淡仙)이라 고쳐라.
와룡담(臥龍潭) 맑은 물아 청청(淸淸)할손
담선이. 그것이면 네 꼴같잖은 신색에는
과분해도 아주 썩 과분하다."
기생이 해죽해죽 웃는 말로 청하였다.
"나으리, 제 이름에도 향자가 없지
아니합니다."
"넌 채련이로 고쳐라.
부용당(芙容堂)안개 속에 연지(漣枝)캐는
채련(採憐)."
"나으리 쇤네는?"
"너는 소주로 고쳐라.
청파만리(靑波萬里)에 외로운 배가 뜨니
소주(小舟)가 격이다."
"나으리, 저도 향자가 있사온데......"
"넌 비취진주(斐翠盡株)자랑마라.
천하보배 산호주(珊瑚株)로하라."
바로 그때였다. 변학도는 느닷없이
미닫이문을 꽝 닫아버리는가 하였더니 두
번 다시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여섯
굽기야 문자식견이 바닥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방이 월매의 집을 찾아간 것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 물론 월매는 최씨가 하옥된
이후로 인사불성이 되어 시난고난하면서
자리 보전으로 누워지내는 판국이었다.
삽짝 밖 출입조차 못하는 처지였지만 대문
밖 출입을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하고
있는 향단이 덕분에 여한간에 떠도는 소문
한 가지는 손금 보듯 소상하게 꿰고
있었다.
남원부증에 찌하재 퍼진 소문으로는,
신관사또가 도임하였건만 도임행차 수행
갔던 작사청의 아전배들과 육방관속들은
서로 길이 어긋나서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과 도임사또 변학도가 하찮은 수객나졸들
새끼 밴 돼지처럼 노상 엎뎌서 공사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소문 듣고, 있던 차에 주걱턱에
염소꼬리 같은 수염을 달고 있는 이방이
엎어질 듯 허겁지겁 대문 안으로
달려들었으니 그 또한 예사소동이
아니었다. 향단이가 먼저 와서 연통하기도
전에 미닫이를 밀어붙이고 방으로
미끄러지는 이방의 안색은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벌써 진땀이 맺혀었다.
월매는 퇴기(退妓)요, 이방은 작사청의
구실바치라 하지만 남녀간에 내외가 엄연한
터에 드시라는 허통도 없이 제 집 안방처럼
당돌하게 호들갑을 떠는 이방의 서술에
이마를 수건으로 동인 채 누워 있던 월매가
소스라쳐 상반신을 일으켰다.
작사청 아전배들이라면 꼴도 보기 싫어진
월매는 술도 마시지 않은 놈이 뛰어들어
생주정인가 해서 눈꼬리를 치뜨며 푼수없는
소란을 나무랐다.
"내 시방 자네 문병 왔네."
냉큼 둘러대는 말이지만 비위에 거슬리긴
마찬가지라 대꾸하는 말도 아담할 리
만무였다.
"날 문병 왔다면 당장 나가시오. 작사청
사람들 얼굴만 쳐다봐도 차도가 있던
우환이 오히려 후더침이 되어 울화통이
터지게 되었으니 올곧은 문병 하실려면
당장 나가주심이 날 살려주는 일입니다."
"너무 박절하게 굴 것이 있나. 다소
비위는 상할지언정 속담에 우는 사람
얼굴에 침 뱉기로 문병 왔다는 사람 두고
"이런 시절 보소. 내가 언제 무엄하게
명색 남원부중 이속의 낯짝에다 침을
뱉았다고 되술레를 씌우나그래. 멀쩡한
사람 토옥에 내려가두고도 그 또한 개운치
않아 이젠 나까지 무단한 익명 씌워
하옥시킬 계략이 아니오."
"내가 자네 되술레 씌우려 달려온 사람은
아닐세."
"그렇다면 뱉지도 않은 침은 누가
뱉았다고 억탁의 말을 하였소."
"자네가 날 대접하는 꼴이 가위 질 뱉는
격에 진배없다는 얘기였지 침을 튀겼다고
했는가. 자리보전으로 누워지내고 있으니
고적하기도 하고 공연히 밸이 뒤틀리기도
하겠지만 고정하시고 내말 귀여겨 듣게."
"은근한 말로 날 회유하는 척 말고 썩
세미(稅米) 속여바친 혐의도 가지지
않았으니 모함잡아 날조해서 잡아가두려
말고 나가시오."
"자네가 시방 최씨부인 내려가둔 일로
관가에 매원을 두고 결이 솟은 듯하나 사실
오늘 내가 불시에 찾아온 것은 최씨를
방면시킬 수 있는 방도가 없지 않기
때문일세."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허황된 흰소리를 지걸거리겠나."
이방의 말이 설혹 한 번 쓰고버릴
흰소리였다 할지라도 월매에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씨부인의 애꿎은 옥살이
때문에 월매 자신 화병으로 앓아누워
약탕기를 턱에 걸다시피하며 몸져누웠고
춘향은 또한 심덕이 진국이라 하루 두 끼
옥바라지에 한결 같이 진력하니 형용이
초췌하여 지난날의 푸짐하던 육덕을
기억조차 하기 어렵더다.
춘향 대신 옥바라지하려 하였더니
그때마다 가슴 한복판에서 불덩이 같은
울화가 치밀어올라 숨이 턱에 와닿아
헐떡증이 생겨나고 눈앞이 캄캄해서
말구멍조차 막혀버렸다. 자연 기동이
임의롭지 못하니 춘향과 향단이가 짝이
되어 걸핏하면 찍자를 부리는 윽사장의
비위를 맞춰가며 옥바라지라는 곡경을
치러가고 있었다.
소식 단절된 이몽룡은 이제 안중에도
없었지만, 춘향 모녀 딱한 처지 거든답시고
설레발치다가 관원을 야료했다는 엉성한
죄목으로 팔자에 없던 옥살이를 하고 있는
약사발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날 것 같았다.
표독스럽던 월매의 말투가 한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방석 깔고 앉으시오."
"자네도 모 꺾어 앉지 말고 바로
앉게나."
"정말 이 구차스런 신세를 모면할 방도가
있소."
"내가 안목은 다소 졸렬하다는 평판은
듣고 있지만 심성은 순박하고 올곧은
사람이란 것을 자네도 익히 알고 있음이
아닌가."
"뜸만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하시오."
"내가 워낙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관령이나 받고 채는 작사청 이속으로
구실을 먹고 산다지만 내가 여항간에
"울화통만 건드리지 말고 어서 말씀해
보시지요."
"자네도 소문 들어 알 터이지만
신관사또가 도임을 하였으나 용모단자도 본
일이 없었던 동헌 수식나졸이란 놈들이
남원부사를 사칭하는 미친놈으로 알고
장판에 엎치고 신관이 멀끔하던 분을 아주
어육으로 만들고 말았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그렇게 혹독한 난장질을 감당했다면
장독(杖毒)이 오죽했겠나.
시방 굴신을 못하고 엎뎌 있는 말 못할
처지에 놓여 계신다네. 그런데 후더침이
될까 해서 정성껏 달여서 바치는 약탕기를
부릅뜨고 내치고만 있으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으며 또한 남원부중 백성들의
"약사발을 내친다면 죽이라고
지다위한다는 얘깁니까. 지엄하신 사또께서
약사발을 마다 하시면 여항간의 상것인
내가 약사발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이
외람되기 그지없음이 아닙니까."
"그래서 남원 일경의 백성들이 사또
쾌차되시기를 축수하고 있는 터에 저렇게
고집을 부리시니 가까이서 뫼시고 있는
우리들로선 전전긍긍일세."
"약사발을 내치는 까닭이 있을
터이지요."
"춘향이가 드리는 약사발이 아니면 용의
여의주를 고아온 탕제라 할지라도 들지
않겠다는 게야."
"이제 뭣이라 하였소."
"춘향이라 하였네."
"내가 한 입으로 두 가지 소리를
하겠나."
"정녕 춘향이를 찾았소?"
"그렇다니까. 한 번 한 말 곱씹지
말게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요."
"어째, 솔깃하지 않은가? 춘향이가
선걸음에 달려가서 사또께 공손하게 초인사
올린 뒤 섬섬옥수 정하게 씻고 달여놓은
탕제를 사또의 입언저리까지만
디밀어준다면, 억울한 일로 옥에 갇힌
최씨부인 방면이야 따놓은 냥상이
아니겠나, 춘향으로 봐서도 마른 날 굿은
날 옥바라지에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될
터이고 자네 역시 화병이 쾌차된 것이니,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 바로 도랑 치고
차리고 일어나시면 남원부중 백성들이
안도할 것이니, 이것은 또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돈 줍고 논에 물 대는 경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화색이 돌던 월매의 안색이 그
순간 어두워졌다. 이방이 물었다.
"왜? 내 말이 허황되어서 그러나?"
"변사또의 성정이 매우 포악하고
음흉하여 비윗장 틀리면 부중백성들 한둘
작살 내는 일이야 일같찮게 저지른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그건 헛소문일세."
"소문 틀리던 일 본 일이 없소."
"장담할 수 있다니깐 그러네. 사또께서
포악한 성정을 가지지 않았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다네. 보통사람 같았으면 명줄을
수작나졸 두 놈을 당장 모가지를
날리기는커녕 잡아가두란 분부조차
었었다네, 당신의 허물로 벌어 진
불상사로만 여기시어 그 발칙한 놈들은
털끌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니 이런
무골충이 어디 있으며 그런
선치수령(善治首領)이 역사에 있을 수
없음이 아닌가.
불학무식하고 표학한 성정을 가진
사또였다면, 그 두 놈을 잡아다가 당장
능지처참을 시켰을 것 아닌가. 이것은 내가
구태여 핵변하지 않더라도 관가의 물정에
밝은 자네 먼저 알고 있을 터."
"하긴 남원고을 스쳐간 숱한 수령들이
있었지만 관장을 능멸하고 관장을 실성한
놈 취급하여 행비를 부리는 수하들을
옥사(獄事)를 벌이지 않았던 수령은
없었소."
"그러기에 내가 뭐라던가. 무단히 옥고를
치르는 최씨부인이야 당장 방면될 것
아닌가."
"수직나졸들 내려가두지 않았다는 건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말이오."
이방이 주먹을 내둘러 증거하면서
장담하기를,
"내가 헛되이 거짓 둘러댔다면 이
손가락에다 장을 지지게."
"그래도 안 될 일입니다. 춘향이 딴에는
이 서방인가 빈대 서방인가 하는 그놈에게
일편단심이다. 사또의 약수발이라 한들
외간 사내를 병간하는 외람된 일이라
생각해서 내가 부릅뜨고 윽박지르면 제
우리들끼리 공론한들 소용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최씨인가 하는 그 여편네가 옥에
갇힌 이후로 춘향이가 날 받들고 보필하는
거조가 지난날과 같지 아니하니 그런
춘향이가 날 측은하게 여기고 첫고 지나
듣겠습니까."
"그러나 춘향을 다독거릴 사람이라면
하늘 아래에선 자네뿐이지 않은가."
"가망없는 일입니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예기치 않았던
말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어머님, 신관사또 약수발이라면 제가
가겠습니다."
놀란 월매가 허공에 대고 물었다.
"춘향이냐?"
"예. 본의 아니게 방안의 좌담을 엿듣게
그때 또한. 이방이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다소 수척은 하였으나 언제 보아도
월궁항아(月宮姮娥)와 같이 도화진 용모에
햇미나리같이 물이 오른 춘향이가 섰다가
이방에게 다소곳이 목례를 올리는데,
이방은 춘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에서 떨꺽 소리가 나도록좋았다.
"문밖에 가마 대령하였네."
방안의 월매도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았다.
"고맙소 나으리. 내 딸 춘향께 가마
호강까지 시켜주시다니."
별당으로 달려간 춘향은 녹두비누로
세수하고, 얼굴에 꿀을 발라 싹싹 문질러
때를 밀어낸 뒤 장분을 물칠하여 바르고
이곳에 밀초를 섞어 기름에 끓여 업술에
쪽진머리 정갈하게 빗질하여 가다듬은 뒤
매죽비녀에 호박 뒤꽂이를 곁들여
간드러지게 꽂았다. 입었던 옷은
고쟁이까지 활활 벗어 던지고 연두 반회장
숙고사 저고리와 남색 갑사치마 떨쳐입고,
칠보가 곁들인 삼작(三作) 노리개를
늘어뜨렸으니 남색짜리 새 각시로선 따를
만한 미색이 없더라.
지벌 있는 대갓집 여인네가 나들이할 제
분홍저고리를 입거나 장옷을 쓰지 않는
것이 법도인지라 치마를 쓴 춘향이가
월매에게 하직 여쭙고 뜨락에 대령한
보교(步轎)의 휘장을 제 손으로 살짝
들치고 들어앉을 제, 대청에 서서 지켜보던
이방의 벌어진 입이 닫힐 줄 몰랐다.
거침없는 춘향의 거동에 적지 않게 놀란
하고 일변 회광을 누리게 될 짓 같기도
해서 심기가 뒤숭숭하던 월매도 뜨끔하긴
마찬가지였다.
춘향의 결심이 억울하게 나직(羅織)되어
토옥에 내려갇힌 최씨부인을
구명시키겠다는 일념 한 가지 때문이라는
것은 짐작 못할 리 없었지만 다소곳하고
정숙한 줄로만 알았던 춘향에게 그런, 당찬
강단이 있었다는 것에 월매는 놀란 터였다.
이방이 선머리로 나서서 벽제하고 향단이
배행하는 보교는 삽시간에 평대문을
벗어나서 관아로 가는 지름길로
접어드는데, 앞채꾼 뒤채꾼이 쓴 산수털
벙거지가 걸음마다 펄렁이여 숲속에 든
호랑이처럼 충충거리며 나가더라.
동헌에 당도한 춘향이는 먼저 신관사또
길로 약방으로 달려가니, 탕약 끓이느라
여념이 없던 약방기생들이 냉큼 자리를
비켜준다.
서둘러 약사발 받쳐들고 동헌으로
나아가자니, 잔허리와 볼기짝이 드러난
변학도는 문지방에 턱을 걸고 너부죽하니
엎드렸다가 월용화태 방불한 춘향이가
약사발 받쳐들고 세류 갈은 잔허리를
얄기죽거리면서 섬돌로 올라서자, 뱀 만난
여치처럼 제풀에 놀라 벌떡 상반신
일으키려다 말고 허리가 끓어질 듯 결리는
터라 힘에 겨워 다시 문지방에 턱을 걸고
엎드렸다.
춘향이 대청으로 올라서더니 난데없는
수채 냄새 설핏하였지만, 반들거리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지방
섬섬옥수로 약사발을 이마 위에까지 받쳐
올리고 얼음 위로 옥구슬 굴러가는 듯이
동글납작한 목소리로 아뢰었다.
"나으리, 탕제 드십시오."
뛰는 가슴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던
변학도의 입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염치없게 꿀꺽하더니,
"네가 누구더라?"
"춘향이라 하옵니다."
"약사발에는 무엇이 들었느냐?"
"당귀수산(唐歸鬚酸)입니다. 타박상이나
어혈을 푸는 데는 직효이니 조선팔도에
영험하다는 탕제 치고 이만한 약이 있을 수
없다 합니다. 어서 드시고 쾌차되시어
기신을 차리시고 일어나셔야 남원부중
백성들이 안도할 것입니다."
일어나기를 축수하느냐."
"축수만 하고 있기에는 외람되어
지엄하신 동헌에 황망히 달려와서 탕제를
끓여 조섬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네 말이 갸륵하고 기특도 하구나. 대저
외양이 반반하게 생긴 계집들 치고 고쟁이
벗기를 헤프게 저지르지 않는 계집 없고
심성 또한 표독스럽지 않는 법이 없거늘.
너는 어찌 그 오묘한 색태(色態) 심덕조차
무던하여 나로 하여금 애간장을 태우게
하느냐, 소문만 듣고 춘향 곱다 하였더니
너를 몸소 보자하니 과연 듣던 말 틀리지
않구나."
"칭송이 외람되어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서 탕제를 드십시오."
"탕제 이리 다오."
부릅뜨고 내치기만 일삼던 변학도는 춘향이
손에 들린 약사발을 빼앗듯 낚아채서
단숨에 들이키니 금방 새알이 들어서
캑캑거리며 눈자위조차 허옅게 치뜨고 밭은
기침을 토해내었다.
화들짝 놀란 춘향이는 황망히 일어나서
변학도의 등뒤로 돌아가서 뒷덜미를 손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변학도는 밭은 기침을
토하면서도 분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곁에 엉거주춤 모꺾어 앉지 말고
가랑이를 벌리고 내 잔허리에 걸터앉아서
등을 쳐라 앉음새가 올바라야 목에 걸린
약이 썩 내려갈 것 아니냐."
"하신 말씀 틀리지 않으나 쇤네는 한낱
여항의 본데없는 계집으로 언감생실
존귀하신 나으리의 잔허리를 가랑이로
거둬주십시오."
"여항의 계집사람인 것을 자처하나 이
시각부터 그것에 구애될 것이 없으니 염려
붙들어매어라."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나으리께서
안목이 뚜렷하신 터에 쇤 네의 귀밑머리가
쪽진머리된 것을 목도하셨을 터인데,
여항의 본데없는 계집사람일지언정
외간사내의 잔허리를 가랑이 벌리고
걸터앉았다면 그런 망칙한 일이 어디
있겠으며 그런 올곧잖은 분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네 말이 제법 수수하긴 하다. 하지만 넌
이제 여항의 사삿집 계집이 아니다. 내가
도업하는 길로 이방에게 분부 내려 널
기안(妓案)에 착명(着名)토록 하였으니,
되었고 또한 너로 말미암아 나직되어
애꿎은 옥살이 치르고 있던 최씨부인은
네가 동헌 당도하기 직전 삼엄한 분부 내려
방면하였으니, 명석하고 사리에 밝다는
네가 내 앞에서 몽니를 부리고 심술을 부릴
까닭이 없지 않느냐."
"제 어미가 기안에 올라
행수기생(行首妓生)으로 거행한 적은
있사오나, 그것을 빌미로 어였한
남진어미를 기적에 적바림한 것 은 횡포가
아닙니까."
"얼굴보고 말 들으니 안팎으로 일색이다.
반반한 계집 치고 열행(烈行)여 적다더니
꽃 같은 그 얼굴에 옥 같은 그 마음이
어여쁘고 아름답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네 안목의 졸렬함이로다.
이몽룡은 시방 한양에서 황음(荒淫)에
빠져들어 성균관 출입은 진작에
그만두었다. 남북촌 색주가를 밤낮 없이
드나들며 은군자며 이패 기생 삼패 기생
들병이할 것 없이 벗기고 농탕질하고
심지어 아비 이한림의 세력을 핑계하고
궁궐까지 드나들며 혜민서(惠民署),
상의원(尙衣院), 내의녀(內醫女)며
침선비(針繕婢)들까지 꼬드겨 살송곳을
꿰다가 창병(瘡病)까지 얻어 신세 망치게
된 것은 나뿐만 아니고 신연행차 수행하려
한양 왔던 이방까지 목도한 일이다,
이몽룡이 신세가 오죽 고단하게 되었으면
노자조차 빠듯한 이방아전이 주머니를 털어
밥과 술을 사며 신세 가다듬으라고 침이
마르도록 달래주었겠느냐.
심란하기 그지없다만 네 미욱한 수절타령이
보기 딱해서 귀띔하는 것이니 날 야박한
사람으로 보지는 말아라."
"서방님 행사가 설사 개차반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리고 손수 쓰신
불망기(不忘記)가 썩어 바람되어
흩날릴지라도 쇤네 이미 이씨댁(李氏宅)에
허신(許身)한 엄연한 남진어미겠으니
서러운 팔자란들 허튼 계집의 몸가짐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몽룡의 신세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
네게 시름을 안기기 위해 내가 백지
애매하게 날조한 말로만 여기느냐."
"그러실 가망이 없지 아니합지요."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냐?"
"그러합니다."
제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
들고 제 구미에 맞는 것만 믿으려 한단
말이냐. 최씨부인 방면한 것은 믿느냐?"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네가 끝내 빼죽거리며 몽니
부리기를 일삼는다면 방면한 최씨의 죄상을
날조하여 다시 잡아들여 내려가둘 수도
있다는 것은 믿느냐?"
춘향의 입에서 두 번 다시 말대꾸가
없었다. 냉큼 다리 걷고 변학도의 잔허리로
올라탈수도 없었고 엉거주춤 앉아 꿀 먹은
벙어리로 입 닥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
사이 빈정거리는 변학도의 욕지거리가
터져나왔다.
"네 가랑이 속 씹구멍에 꿩대가리가
박혔느냐, 왜 갑자기 안절부절이냐?"
기어드는 듯한 나직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쇤네 외람됨을 용서하십시오."
최씨부인을 또다시 잡아들이겠다는
으름장에 기가 질린 춘향은 가만히 일어나
변학도외 잔허리를 살짝 깔고앉았다.
그러나 잔허리를 깔고앉은 그 찰나 춘향은
자지러질 듯 놀랐다. 얼굴은 숯불을 끼얹은
것같이 달아올랐고 심장의 고동은 일시
멎는 듯 소스라쳤다.
장독(杖毒)을 다스리자 하였으니
변학도의 볼기짝을 벗겨놓게 되었고
볼기짝을 까놓자 하니 잔허리 역시 벌건
살피듬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변학도의
처지는 이상할 것도 없었고 수상할 것도
없었다. 가당찮은 처지가 된 것은 바로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이방이
춘향집으로 달려와서 재촉이 낭자했던
터라, 경황중에 치마 속에 입을 고쟁이를
잊고 달려온 것이었다, 보교를 올라탈
때부터 어딘가 미심쩍고 허전했던 것을 떨
칠 수가 없었으나 치마 속에 입을 고쟁이를
잊고 보교에 올랐던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그래서 춘향의 거웃과 변학도의 잔허리기
살과 살로 서로 맞닿고 말았으니
치마폭으로 가려지지만 않았어도 변학도와
춘향이가 말롱질로 희학질을 벌인다 해서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번 올라탄 잔허리를 또다시
벌떡 일어나게 되면 변학도의 입에서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터 엉거주춤
앉아만 있는데, 변학도의 입에선 가당찮은
"어, 시원하다. 오뉴월 더운 날에
폭포수를 맞는다 한들 이토록 시원할까,
내가 경황중에 널 기안에 착명토록
분부하였다만 썩 잘한 일이 아니냐. 날
약수발하겠다고 달려온 네가 고쟁이까지
홀딱 벗고 올 줄 뉘 알았겠느냐, 어여쁘코
착한 줄로만 알았더니 국량과 짐작이 또한
팔도 계집 중에 너 따를 만한 계집이 있을
수 없구나. 새알 들어 중치 막고 있던
약찌기가 썩 내려가고 말았구나."
"고쟁이를 입지 않고 달려온 것은.
경황중에 저지른 쇤네의 실수였을 뿐,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집작하고 서푼짜리
속셈이 있어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네 하초를 내 잔허리에서 떼지
말고 팔만 뻗어 내 어깨를 주물러
잘된 일이 아니냐."
설혹 변학도의 잔허리를 깔고 앉았다
하지만 치마 속을 들치고 본다면 춘향의
흐벅진 알사추리가 그대로 드러날 판국이라
등줄기에 진땀 나고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데, 속셈이 따로 있는 변학도의
입에서 이제 그만 거두라는 분부는 떨어질
리 없었다.
혹여 이방이나 약방 기생들이 문틈으로
방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고약하고
온당치 못한 광경을 엿보기라도 한다면,
상서롭지 못한 소문이 삼시간에 남원부중
여염에 퍼질 것이고 춘향이 또한 음탕한
계집이라 해서 동네에서 조리돌림을 당할
것이었다. 경황중에 저지른 잠깐 실수로
변학도가 춘향을 겉 다르고 속 다른 음탕한
하지만 이 곤경에서 쉽사리 빠져나갈
궁리가 없었다. 빼도 박도 못할 수렁에
빠진 춘향의 입에서 그 순간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더라. 그런 수모를 참고 견디기가
수월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어디서 들려오는 계집의
곡성이냐. 감히 동헌방에서 상서롭지 못한
곡성이라니? 여기가 염라국으로 가는
삼도천(三途川)이더냐?"
꾸짖는 변학도의 말이 서릿발같은지라 그
순간 춘향의 입에서 터져나오던 울음소리
뚝 그쳤지만 두 팔로 베개를 끌어안고
너부죽하니 엎뎌 있다가 등뒤로 고개를
돌리는 변학도의 두 눈에선 불똥이 튀고
있었다. 그러나 변학도는 곧장 울화통을
가라앉히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헌방이다. 그런 처소에서 홍색짜리
계집의 울음소리가 낭자한다면 불길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냐. 서슬 시퍼런
남원관아를 흉가로 만들 작정이냐?"
"존귀하신 나으리의 잔허리를 깔고앉은
외람됨을 더 이상 저지를 수 없음에
터져나온 울음소리였으니 모쪼록
용서하십시오."
"네가 겉으로는 아담하게 둘러댄다만
곡지통을 내쏟은 속내만은 나도 짐작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네가 저지른 오욕이
수치되어 터뜨린 곡성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내가 진작부터 그런 수치에 구애될
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더냐.
성춘향이란 이름 석 자는 이미 기안에
적바림하였으니 이제 넌 한 지아비의
아니지 않더냐. 그런 네가 괴팍스럽게 수치
된 것을 찾는다면 가소로운 일이 아니냐."
"억탁의 말씀입니다. 쇤네에게 지아비가
엄연하다는 것은 나으리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는 일이온데 지아비를 둔 남진어미가
벌거벗은 하초로 외간남정네의 잔허리를
깔고앉은 실책을 저지른 터에 어찌 오욕이
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한 쇤네는
일찍이 기방과는 인연을 둔 적이 없사온데
무슨 연유로 어머니와 연좌시켜 쇤네를
기안에 적바림한다는 것입니까.
이 나라에도 율과 법도가 엄연한 터에
무명색한 백성이라 한들 이런 날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네가 고쟁이를 벗은 채 동헌방으로
뛰어든 실책을 스스로 설분 할 곳이 없어
야무지다만 네가 저지른 실책은 그것뿐만
아니다."
변학도가 두 팔을 뻗어 상반신을
일으키는가 하였더니 엉금엉금 기어가서
문지방에 몸을 기대었다. 문을 열고 누마루
아래 국궁하고 서 있는 통인을 불러
지체없이 이방아전을 불러오라는 분부를
내렸고 이방이 숭어띔으로 누마루 아래로
달려왔겠다. 변학도가 물었더라.
"이방은 듣거라. 여기 있는 성춘향이란
계집에게 지아비가 있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이방이 턱을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그 동안 나으리께 수차 아뢰었듯이
춘향에게 지아비가 엄연하다는 것은
세삼스런 일이 아니옵니다."
아니면 실망의 빛이 완연했어야
옳았다.그런데 그때 변학도는 난데없이
방긋 미소를 짓것다. 게다가 목소리조차
나지막하고 은근하더라.
"인사를 담당한다는 이방아전의 말도
춘향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겠으니
춘향을 덜컥 기안에 적바림한 것은 내가
남원도임해서 첫번째로 저지른 실책임이
분명하구나.
그런데 총각과 처자가 서로 만나 초례를
치르고 질발부부가 되었다면 관아에는 필
경 그들의 호적단자(戶籍單子)가 비치되어
있을 터 당장 가져와서 내게 보이고 잘못
적바림한 기안은 꺾자 쳐서 바로잡으라."
누마루 아래 조아리고 서있던 이방이나
동헌방에서 하초를 까치 다리로 꼬고 앉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변학도의 분부는
하찮은 식은땀 흘리는 꼴을 보여달라는
것은 아니었으니 궁색한 대로 둘러댈 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관아에 비치된 호적단자는 없으나
춘향어미 월매에게 이몽룡이 써준
불망기(不忘記)가 있다는 것은
적실합니다."
그 순간, 변학도의 목멀미에 핏대가
곤두서고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는 이방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동헌방 대들보가
부러지는가 싶게 고함소리를 내 쏟았다.
"너 이놈 이방거행 십오 년에 아직
호적단자와 불망기를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한다는 얘기냐? 불망기란 것은 수천장을
써 갈긴들 허섭스레기에 다름 아닌
직함으로 증거된 공문서가 아니냐.
흙 토자(土)와 선비 사자(士)를 바로
읽지 못하고, 날 일 자(日)자와 가로 왈
자(曰)를 분별해서 쓸 줄 모르는 한심한
놈이 십오 년 동안 이방아전으로
거행하면서 야금야금 구실을 처먹었다니
이는 필경 나라에 망쪼가 들었다는
조짐이다.
그렇다면 남원부중 백성들은 사문서 한
장이면 하늘의 별도 땠다 붙였다 하겠구나.
이놈, 냉큼 대답하지 못할까."
"춘향 내외만 불망기로 혼인한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 남원부중 모든
가시버시들은 호적단지에 적바림되어
있습니다."
"요런 알량한 놈을 보았나, 이몽룡과
걸쳐 내게 증거했음인데, 이들이 혼인한
증거를 호적단자에 남기지 않았다면,
이것은 필경 춘향이가 지벌도 없는 한미한
집안인 것을 얕잡아보고 이방아전의 직무를
소홀히 거행한 직무유기가 아니냐."
어떻게 보면 언사에 조리가 정연하였고
어떻게 보면 생다지로 겁박(劫縛)하려 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이방으로선
곱다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중언부언
둘러댈 말도 없었다. 그때 변학도의
손바닥이 담벼락 멀찌감치 비켜서서 떨고
있는 통인에게 건너갔다.
"여봐라. 관정(官庭) 한가운데다
별반거조를 차려라."
장판(杖板)을 대령하라는 말이었다.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기를 일삼는
있는 게 없다. 냉큼 장판 대령하고 저놈을
엎쳐 되우 쳐라."
하늘의 별도 땠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서슬 시퍼런 불호령에 어찌 거역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구실아치들 중에서도
심성이 무던하다는 평판이 있는 이방을
장판에 엎찌고 치라는 분부임에 통인의
거동이 굼뜨지 않을 수 없었겠다. 힐끔힐끔
등뒤의 동정을 살피며 내키지 않는 발짝을
옮겨놓는데 또한 서릿발이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이놈들. 나를 장판에 엎치고 치도곤을
내릴 때는 똥 본 개처럼 숭어뜀으로
날뛰더니 내 분부거행에는 게으름을 피고
굼뜬 까닭이 어디에 있느냐."
화증이 상투끝까지 치밀어 올라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게 아니었다. 통인의
연통을 받은 나졸 두 사람이 금방 형틀을
끌고와서 관정 한가운데다 벌려 차렸다.
"너 이놈, 냉큼 달려가서 장판에 엎디지
못하겠느냐."
장판으로 가서 엎디는 그 순간. 당장
식은 방귀를 뀌고 칠성판에 묶여
북망산으로 업혀가는 서러운 신세가
될지언정 어느 안전이 라고 거역할 수
있겠는가. 이방이 사색이 되어 장판에
졸들은 달려들어 손목과 발목을 장판에
모양 있게 동여묶고 중치막자락 썩
걷어붙인 뒤에 바지를 벗겨 내려 볼기짝이
백일하에 썩 드러나도록 조처하였다.
"곤장에 살점이 묻어난다 하더라도
구애될 것이 없다. 그놈의 볼기짝에서
쳐라."
추상같은 분부를 내린 뒤 변학도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새파랗게 질린 채로
몸사리고 앉아 있는 춘향에게 물었다.
"너 오늘밤 내게 수청을 들이겠느냐?"
문밖에서는 장판에 곤장 떨어지는 소리가
떡 치는 소리에 방불한데, 방안에서 나누는
말은 어찌 이토록 은근하단 말인가. 이렇게
음흉하고 야비한 위협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훔치며 춘향이 대답하더라.
"설혹 쇤네가 오늘밤 나으리의 침석에
들어 곱다시 시침(侍寢)들어야 할 애꿎은
처지에 빠졌을 망정 지아비와 해연(解緣)한
적이 없고 또한 유곽(遊廓)에 기대어 몸을
파는 계집도 아닌터에 어찌 간통을 자행할
"네가 혼인하였다는 증거는 없으되
기적(妓籍)에 올라 있다는 증거는 적실한
것 아니냐."
"게다가 나으리께선 장독(杖毒)으로 하초
쓰기가 임위롭지 못하신 터에 요분질로
기력을 축 내시면. 필경 후더침이 되어
장차 쾌차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쪼록
지각을 차리십시요."
"내가 곤장을 맞아 볼기짝에는 장독이
들었으나 천행으로 거읏에 달린 다리미
자루와 부랄만은 온전한 터 장독 핑계 말고
수청 들라."
"수구(瘦軀)에는 양생(養生)으로
몸가축을 하심이 도리온데, 어찌
나으리께선 도임한 임시부터 육허기만
채우려 드십니까."
차올라 있다. 하초의 응어리를 서둘러 풀지
않는다면. 내가 쾌차되기 힘들 것이요,
또한 너와 같은 햇조개와 동침하여
채난(採暖)치 못한다면, 천하에 없는
탕제를 입에 달고 있다 한들 약발 받기는
글렀다는 것은 너도 익히 알고 있으렸다?"
"외설(猥褻)이 낭자하십니다. 양기가
차오른게 아니라 호경골을 잡수시어
양도(陽道)가 하늘을 뚫을 지경이라 한들
나으리께 수청을 들지는 못할 처지이니
모쪼록 분부를 거둬주십시오."
바로 그때였다. 문밖의 관정에서는 사람
살리라는 외마디 소리가 사무쳤다.
변학도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곤장을
꼬나들고 있는 나졸들을 율기하고 바라보며
이죽거리는 투로 물었다.
소리가 낭자한 것이냐. 너희놈들이 그놈의
토산부랄을 해코지한 것이냐?"
"아닙니다요. 볼기만 쳤습지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살려달라는
엄살이냐?"
나졸들이 곧장 대답을 못하고 머쓱하니
꾸부린 채 서 있었다.
춘향을 위협하여 수청들이기 위해 애꿎은
이방아전에게 무단한 악명 씌워 장판에
엎치고 겨 먹은 개폐듯 두들기니 변학도의
음흉한 셈속을 손금 보듯 일목요연하게
넘겨짚고 있는 나졸들이 이 딱딱거리는
사또를 훔쳐보는 눈초리가 아담할리
없었다.
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리기는 하였지만,
속으로는 이방 아닌 사또를 끌어내려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는 짚검불같이
여위디 여읜 어린 것들이 고창병(鼓脹病)에
걸려 누워 있고, 나무 비녀 몽당치마에
물거미 뒷다리같이 육탈이 된 여편네는
씀바귀나 뜯자 하고 마을 뒷산중턱을
헤집고 있을 것이며, 늙어서 입에 구접이
돌고 있는 칠십 노모는 목맺힌 영계소리로
된신음하면서 부들자리 위로 띔굴며
칭얼거리고 있는 철부지 혈손들을
만수받이하느라 여념이 없을 터, 무슨
협기를 부려 사또를 장판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까.
천둥지기 다랑논에 한 포기의 나락이나마
심을 만한 땅꽤기가 있었던들 뒷박곡식
구실살이에 목이 매인 누추한 더그레는
진작에 벗어 던졌을 것이었다.
뒷덜미는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듯
뜨끔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동헌의
솟을대문 밖에서 여러 사람의 낭자한 발짝
소리가 들려왔다.
연달아 중동 밖으로 낯설지 않은
육방관속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신연행차
수행하고자 한양 갔던 아전배들이 마중길어
엇갈려 길바닥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또 다시
남원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이방아전은 볼기를 까내린 채 장판에
엎뎌 있었고 나머지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의 아전들이 턱방아를
찧어가면서 동헌중문으로 줄래줄래
들어서는데, 그 매골과 입성들이
가관이었다.
먼지가 켜켜로 앉은 갓모에 짓눌린 듯한
모양 있게 차려입었던 중치막자락들은
먼지치레와 개똥치레였다. 노독에 시달림을
받으며 지향없이 한길 바닥만 휩쓸고
다녔으니 중치막자락에 묻은 것이
개똥뿐이었을까.
동헌 누마루 아래로 삐죽거리며 앞다투어
달려가며 너부죽하니 하정배(下庭拜)를
올리며 힐끗 곁눈질하자니, 장판 위에
실신한 채 상투바람으로 옆뎌 있는 사람은
천만 뜻밖에도 낯익은 이방아전이었다.
길청에서 책상다리하고 게트림하며 앉아
있어야 할 이방이 어인 연유로 장판에 엎뎌
불찌똥을 싸고 있는 것일까. 동골이
써늘하도록 놀랐으나 사또께 당돌히 여쭤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뿐만
아니었다.
들쑥날쑥하도록 허리를 깊숙히 조아리며
하정배를 드리는 육방아전들을 바라보고
있는 변학도의 얼굴은 고즈넉하였다.
입술에 문은 침네캐를 혀 끝으로 서둘러
핥아 거두면서 변학도는 물었다.
"나와 길이 엇갈려 수행관속들이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노고에 고초와 시름인들
오죽했겠나."
"나으리, 시생들이 마땅히 죽을 죄를
저질렀음인데 관대하신 하교는 시생들
이마에 구리를 깔았다 한들 무슨 염치와
반죽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죽다니. 그런 불길한 말은 섣불리
발설할 일이 아니다. 내 설혹 막된
위인이기로서니 나를 수행하려다 저지른
관속들의 실수를 탓하여 서둘러
육방서리들이 모두 출타하여 길청이 텅비어
공무에 구애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서리와 형리들이며 보교꾼들
돌아오게 되어 천만다행 아닌가."
"시생들의 안목이 졸렬하여 저지른
실수로 도임행차에 풍파를 겪게 한
시생들의 죄값을 무엇으로 탕감하리까."
"내 눈에서 저승 문턱이 왔다갔다 하는
고초를 여러 번 겪긴 하였지만, 아전들이
한다리로 달려 와서 부부이(俯伏謝罪)하는
형용들 보자 하니 끓어오르던 울화퉁이
봄눈 녹듯 하는구나. 이방아전도 풀어주고
서리들은 길청으로 돌아가서 공사에
임하라."
그 사이에 춘향은 빈 약사발을 들고
동헌방을 빠져 나와 약방으로 돌아와
돌아온 일이 춘향에겐 선반에서 떨어진 떡
받은 격이 되었다.
다모(茶母)에게 사또 구완 당부하고
관아를 삐져나와 잡으로 달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최씨부인 방면되어 돌아와 대방
아랫목에 몸져 누워 계시더라. 게걸스럽걔
달려들어 목덜미 뒤틀어 안고 한바탕
낭자히 울음 터뜨리니, 심성 한 가지는
최씨부인이 오히려 춘향의 도화 진 두 볼을
쓰다듬으면서 불철주야 무릎썼던 그간의
옥바라지에 여위디 여윈 춘향 모색
한탄터라.
무단한 악명 쓰고 옥살이하던 최씨부인
월매집으로 찾아와 조섭받을 채비를 차림에
이마 동여매고 된신음 토하며 방에서
튕굴던 월매는 발딱 떨치고 일어나
그제서야 소스라친 춘향이는 말하였다.
"어머님은 어서 이방의 집으로 찾아가서
병문안 드려주시겠소."
"병문안이라니? 멀쩡하던 이방이
날벼락을 맞았다냐 생주정을 하다가
실족하여. 다리가 부러쳤다냐?"
이방이 저를 역성들고 두둔하다가 직임을
소홀히 했다는 악명을 쓰고 장판에 엎쳐져
모진 형장을 당했소."
"이방이 너 대신 난장질을 당했더란
것이냐."
"저 대신 난장질당한 것이나 조금도
다름없지요."
"애그머니나. 이 낭패를 어찌할꼬."
놀란 것은 탈기하고 누웠던 최씨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새파랗게 질린 두 여자에게
일을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그제서야 뜨끔해진 월매는 최씨부인
조섭을 춘향에게 맡기고 처행하며 몸소
이방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방의 집은 동문
밖 임준루(臨春樓) 어름이었으니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으나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으니 숨은 줄곧 턱에 와
닿았다. 과연 춘향이 말대로 이방은 집으로
돌아와 장독(杖毒)을 다스리고 있었다.
장독 구완이란 것이 몰골 사나운
볼기짝을 다스리는 일이라 이방의 여편네는
썩 내키지 않아 집에 없다고 얼버무리며
따돌리는 것을 이방이 방에 누워 듣고
있다가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월매가 엎어지듯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
들어가면서 흐느끼었다.
누워있던 이방이 부시시 일어나며 넉살이
낭자한 월매를 손짓으로 만류하였다
"소동 피지 말고 진중하시게. 내가
난장질을 당한 소상한 내막을 부엌에 있는
여편네가 혹시 엿듣기라도 한다면 장독
구완은 고사하고 저녁밥도 얻어먹기
그렀네."
하긴 옳은 말이었다. 하찮은 춘향 모자를
역성들다가 얻어맞은 곤장이었다면
걸핏하면, 강새암을 일삼는 여편네가
곱상스럽게 대접을 해줄까. 우정 목소리를
낮춘 이방이 말했다.
"그나마 살점이 흩어지는 혹장(酷杖)을
맞은 건 아니여서 앉은뱅이 신세될 것은
모면하였네."
"아니, 그 막된 놈들이 사정두지 않고
"평소에 실인심하지 않고 올 곧은 말만
해왔던 덕을 톡톡히 보았네. 겉으로
보기에는 나졸들이 사정을 두지 않고
곤장을 휘둘렀던 것이지만 살점에 와닿는
것은 맵짠 회초리 정도였네."
만약 그랬다면 그런 천행이 없다고
나졸들을 칭송하고 나서 월매가 물었다.
"춘향의 말을 듣자 하니, 사또께서
이서방이란 위인이 파락호신세되어 장안을
휩쓸고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창병까지
얻어서 머지 않아 거리귀신될 것이란
악담을 늘어놓았다는데 그 말은 흰 소리가
아니오?"
차렵이불을 끌어안고 앉아 있던 이방이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 말은 사실 밑절미 없는 흰소리가
백수건달로 배회하면서 안면이 미숙해서
서먹서먹한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서슴치
않고 술을 사달라고 짓조르고든다네."
아득한 시선으로 이방아전을 바라보는
월매의 질린 안색이 가긍하더라. 이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가.
흰소리로만 알아야 할까.
"이도령이 뉘댁 자제분이오. 서울 장안이
떠르르한다는 동부승지 이한림의 자제가
아닙니까. 사람을 헐뜯어도 분수
나름이지요."
"하긴 나도 믿기 어려운 일이였으니
발설하기 주저되었네. 그래서 지난번 내가
자네 집으로 찾아갔을 때도 허튼소리될까
봐서 일언반구도 않았던 게야. 내가 한양의
사또댁에 신연인사 차리고 나오다가
이도령을 만나 빠듯한 노자를 쪼개어
술요기까지 시켰던 게야.
내가 쳐다보기조차 민망해서 글공부는
개물려 보내고 말았느냐고 이죽거렸더니,
대꾸하는 말이 가관이더군. 그 새파란
나이에 수전증이 생겨서 갈지자도 온전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처지라고 실토정을
하였다네. 기왕 말구멍이 터진 김에 한
마더 더하겠네만. 달포 안짝에 방자놈을
남원으로 내려보낸다더군."
"방자는 왜요?"
"자네가 장롱 속에 숨겨둔 사천(私賤)을
넘보는 게야. 내가 남원으로 내려가면
자기의 딱하게 된 사정을 자네에게
소상하게 얘기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주선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더라네."
"정말 아니면? 시방 내가 자네와
노닥거리고 앉아 흰소리를 농할 처지인가?"
"억탁의 말씀이 아니오?"
"억하든지 탁하든지 자네 내키는
대로하게."
"분하고 억울한 일입니다."
"내가 공연한 말을 하였나?"
"아니올시다. 말씀 잘 하시었소."
"자네 복장만 뒤집어 놓은 것 같아서 안
되었네만 길거리 한복 판에서 날 만났을
때도 자네 모녀 안부 먼저 묻는 게 아니라
내 쌈지에 든 노자가 얼마냐고 먼저
묻다군."
"창병 얻었다는 사또의 말이 허황된
험담이 아니었군요."
"내가 가랑이 속을 벌리고 직접 목도한
색주가라면 창병이 동부승지 자제 따위가
무서워서 범접하지 못할까."
"섭섭한 일입니다. 그 말을 왜 이제 와서
실토정을 하시는 것입니까."
"평생 딸자식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자네의 애뜻한 복장에 차마 송곳
박아줄 말을 쉽사리 할 수가 없었네.
자네가 다시 몸져눕지 않겠나."
"그런 일이 없을 것이오."
조섭 잘하시라는 당부에 덕담을 남기고
이방의 집을 나섰다. 그러나 집밖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눈물이 흘러 앞을 가렸으니
발걸음이 온전할리 없었다. 술 취한
계집처럼 한길로 나서니 해는 져서 서산
뒤로 숨고 있었다.
흘리지 말자는 눈물은 자꾸만 흘러
허공에 뜬 것인지 알 수 없었더라.
구곡간장은 소금을 뿌린 듯 애끓고 여염집
아녀자들은 엉성한 울바자 틈으로 발짝이
온전치 못한 월매의 거동을 훔쳐보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 날벼락이 없었더라.
이방아전이 춘향의 딱한 처지를
두둔하다가 날벼락을 당하고 관아에서
쫓겨나 집으로 업혀와 굴신을 못하고
꽁꽁거리고 있을 제, 문병차 다녀간 사람은
월매뿐만 아니었다. 월매가 다녀간지
한식경이나 되었을까.
이방의 집 대문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나더
통자를 넣는다. 이방의 아내가 화들짝 놀라
나가보니 안면이 낯설지 않은 장돌림이란
사내였다. 지난번에 달려와서 변부사가
수직하던 나졸들에게 뒷덜미자 잡혀
고자질해 주었던 그 사내였다. 안면이
낯설지 않았으니 들라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인심은 야박해서 이방이 사또에게
노여움을 사서 난장질을 당했다는 소문이
남원부중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간 이후부터
조석으로 문안인사 뻔질나던 위인들까지
안면을 싹 바꾸고 코빼기도 디밀지
않았기에 스산하고 울적한 병석에 낯선
문병객 한 사람이 오히려 고맙고
대견스럽지 않으랴.
"나으리, 이것이 어인 변고란 말입니까."
섬돌로 올라선 사내가 허리를 깊숙하게
조아리며 하정배를 올리는데, 눈
가장자리에는 눈물자국조차 선명하더라.
방구석에 쭈그리고 누웠던 이방이 부스스
반몸을 일으키고 앉으며 대꾸는 아니하고
"내가 사또께 침책(侵責)을 당해 이
몰골이 되고 말았네."
억울하게 난장질을 당한 일이 속으로는
울화통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어 사또를 헐뜯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침책을 당했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으로 취급당해 무릿매를 당하고
있는 불상사를 이방 나으리가 달려가서
활인을 한 것인데, 그 은혜를 모르고
이방께 형장(形杖)을 내리다니 천하에 그런
본데없는 불상놈이 어디 있소."
명색 남원부사를 일컬어 불상놈이라니.
이방도 깜짝 놀라 장돌림을 바라보았으나
당장 나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할말을 장돌림이 대신 해주었으니 오히려
그러나 살얼음판을 건너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닌 차제에 그런 외람된 언사를
함부로 쓰다간 또 어떤 불벼락이 떨어질까.
"사또를 일컬어 불상놈어라니? 자넨
모가지를 몇 개나 가지고 다니나?"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칼날을 입에 물고
뜀뛰기를 하는가."
"내노라 하는 양반이든 서슬 시퍼런
벼슬아치든 은혜를 모르는 놈이 어찌
인두겁을 쓰고 내질렀다 할 수 있겠으며
하물며 어육이 될지도 몰랐을 난장질에서
목숨까지 구해준 나으리께 이런 혹독한
형장을 내렸다면 불상놈은 고사하고.
창귀(脹鬼)나 다름없는 놈이 아닙니까."
핏대를 곤두세우고 사또를 험담하고 있는
이방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
"주둥이를 험악하게 놀려대다간 하나뿐인
모가지 날리네. 시방 자네꼴은 입에 칼
물고 맨발로 작두 위를 걷는 꼴일세."
"시생의 지체가 일개 장사치에 불과한
상놈의 처지라, 감히 나으리 대신하여
사또께 앙갚음은 할 수도 없으니
속시원하라고 입을 험악하게 놀리는
것입니다."
"자네와 나 사이에 상종도 많지 않았던
터에 나를 위하려는 자네의 심성은
갸륵하이. 그러나 지체로 말하면 사또와 나
사이 또 한 땅과 하늘 차이가 아닌가. 나
또한 뜨물인편에 내질린 반편이 아닌
다음에야 사또의 배은방덕을 모를까만 이
지경되어 내쫓기고 보니 이방의 지체나마
꿇어앉았던 장돌림이 책상다리로 고쳐
앉으며 방구들의 먼지가 풀썩 날아오를
만치 방귀를 뀌고 나서,
"아니, 나으리의 구살까지 떼버려겠다고
벼르더란 말입니까."
"한 계집아이의 처연한 신세를
두둔하다가 사또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으니
그 시퍼런. 서슬에 이방아전 구실
떼버리기야 자반 뒤집기가 아니겠나.
볼기짝 얻어맞은 것이야 조섭을 받게 되면
쾌차가 되겠지만 이방아전 구실 떨어지면
나는 오갈 데 없는 백수건달로 툭수리 차고
나다니며 빌어먹기 심상일세."
"앙갚음은 엄두조차할 수 없는 일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실까지 떨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줄 초상 난 것이나 다름없는
이방아전 십오 년에 구설을 받아 우리
식솔들이 그럭저럭 연명은 하였지만 사또의
말 한마디에 우리 일곱 식솔은 그날부터
영락없이 툭수리 차고 거리로 흩어져야
하네."
이방이 토해낸 한숨소리가 다시 한 번
방구들의 먼지를 일으켰다. 장돌림이
처연한 시선으로 이방을 바라보다가 바싹
조여 앉으면서 한마디 풀쑥 던졌다.
"나으리께선 시방 이방아전 구실 때일까
걱정이 태산이십니다 그려."
"한미한 가문에 태어나 그나마 이방아전
자리하나 붙잡은 것을 천행으로 알고 그
손바닥만한 권세에 기대어 초라하게 살던
나로선 걱정이 태산에 방불함이 잇겠나."
"공연한 걱정이십니다."
"시생으로 말하면 매골은 뜯다만 뀌같이
후줄그레합니다만 서울 삼개(三蒲)
난전거리에 있는 객주와 여각 그리고
경주인(京主人)치고 이 장돌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몇십만 냥의 급전이라
하더라도 시생의 어음 한 장이면 하루
사이에 긁어모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방 고을의 난전을 돌고 있는
선길장수들 가운데서도 서울 삼개나 남대문
밖 철패 저자거리에 출입했다는 놈치고
시생의 면상을 모르는 놈이 없지요."
"자네의 말은 밑절미 없는 거짓이 아니란
것은 얼추 짐작하겠으나 자네가 마포나
칠패 장시에서 떠르르한다는 장사치라는 게
시방 겪고 있는 내 고초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편입니다그려."
"날더러 귀가 어두운 인사라니? 그런
말을 두 번 다시 지절거리지 말게. 내가
학문에는 어두우나 귀 밝은 탓에 이방아전
자리 십오 년을 근근이 지켜온 것일세."
"고을 항간에 떠도는 숙덕공론들읕
귀담아 듣고 사또께 고자질하는 일쯤이야
시생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안목을 크게 가지시라는 애깁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시생의 말을, 시방 남원관야에서
여차여차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인데,
이것은 남원에 있는 육방관속들의 안목이나
능력으로선 매우 처분하기 힘든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자칫 조정에서
눈치라도 채게 되면 남원부사 변학도
서울로 압송되어 옥살이까지 감당하는 패가
망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차여차한 일을 여차하게 해결을
하신다면 시생은 나으리의 주선을 좇아 이
여차한 일을 소문없이 처분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으리로선 꿩 먹고 알
먹고 깃털로 부채 만드는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방이 듣고 보니 그럴싸하고
솔깃하였다. 곰곰이 해집고 보니 그 사또
역시 이런 일까지는 미처 염두에 두지
않았었고 사리가 분명하고 총기가 있다는
칭찬을 듣는 이방 자신도 아직 그런
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자네 지금 한 말은 객적은 흰소리가
"장사치란 것은 이문을 좇는 일이라면
저승 삼도천이라 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할
위인들이 아닙니다. 하물며 저승도 아닌
이승에서 몇만 냥의 이문이 생기는 일에
하찮은 흰소리를 낭자히
지절거리겠습니까."
어금니를 지그시 깨문 이방이 남원관아
동헌으로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사흘째가
되는 해거름년이었다. 작사청 앞을 지날 제
동배간 아전들 몇 사람이 이방과
마주치기도 했으나 눈길이 마주칠까 두려워
저들 먼저 쨉싸게 시선들을 돌렸다.
구실 떨어질 날이 머지않은 이방을 아는
체해 보아야 소득이 있을 수 없었고, 또한
이방과 친숙하다는 눈치라도 보였다가
사또의 노여움을 사게 될까겁에 질렸기
탄식하며 동헌으로 걸어가 통인을 불러
사또 뵌 것을 청하였다.
통인이 난색이었으나 이방과는 지난날의
돈독했던 안면을 보아 동헌방에 아뢰었으니
뜻밖에도 들라는 분부가 떨어졌다
이방이 어깨를 스리며 동헌방으로 들어설
제, 변사또는 장독에 차도 있어 안색은
수척하였으나 비단보료 위에 너부죽하니
앉아 있었다. 계면쩍은 상호를 가진 이방이
구멍에서 금방 빠져나온 망아지새끼처림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문안인사 올리고
사또가 진작 쾌차된 것은 나랏님의 은총
때문이라고 모양 있게 주워섬겼다.
그러나 변사또는 아는 척도 않고
댓바람에 오금부터 박았겠다.
"내가 통기해서 들라한 적도 없거늘 무슨
"긴히 아릴 말씀 없지 않아 뵙고짜
하였습니다. 쾌차되시어 정녕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알랑방귀는 그만 뀌고 어서 찾아온
곡절부터 실토정하라."
"지난번 분부하신 세곡(稅穀)들과
명하전(名下鐫)때문입니다. 그 세곡을 모두
거둬들인다면 남윈관아에 있는 창고의
사정으로는 태반을 한길가에
노적(露籍)으로 쌓아두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노적으로 쌓아두면 십중팔구
애옥살이로 도탄에 빠진 남원백성들이
발호가 심하다 해서 인심이 흉흉해지고
민란의 빌미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터라. 이러한 일로 사또께서 탄핵이라도
일이기에 사전에 방책을 도모하여
사또께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주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방이 메 맞고 쫓겨나서 생각했던 일이
그것이었더냐?"
"예."
"기특한 사람이다. 이방이 돌아가서
이빨이나 갈고 있을 줄 알았더니 그
경황중에 시종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였다니
남원부중 백성들이 모두 이방과 같이
아담한 심성들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겠나."
"시생에게 한 방책이 있습니다."
"방책이 뭔가?"
"지난날부터 친숙하게 알고 지내는 서울
삼개의 여각의 주인이 있사온데 그로
하여금 관무첩(官貿帖)을 주어
세곡들을 흥정하여 넘긴다면 노적가리로
쌓아둘 일이 없을 것이니 남원부중
백성들로 하여금 민란의 빌미를 주기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삼개 여각의 주인은 성품이
괴팍스럽지 않아 흥정이 수월하고 여수도
질기지 않아 셈이 분명하여 허황되지
않습니다. 또한 경솔한 위인이 아니겠으니
이번의 일을 은밀히 조처할 것입니다."
경사(京司)에서는 서리라 부르고 지방의
관아에서는 아전이라 부르는 이
구실바치들의 폐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더라. 백성은 논과 밭을 토지로 삼지만
아전들은 백성으로써 논과 밭을 삼았더라.
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이 바로 아전들이 농사 짓는 방법이다.
과만(瓜滿)이 되어 돌아가거나 혹은
교체되어 들쑥날쑥하지만 그 고을 출신인
아전이란 것들은 한 번 발탁이 되어
작사청에 들어오는 그날부터 망녕나기
전까지는 좀처럼 내쫓김을 당하는 법이
없다.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걸핏하면
교채되는 수렴들은 도임하는 고장의 물정과
풍속에 어두워 제도를 살피고 다스림에
서툰 터라 자연 모든 공사(公事)를
집행함에 아전들의 계교를 빌릴 수밖에
없었더라. 그러한 연유로 수령은 자주
바뀌어도 아전은 바뀌는 법이 드물다.
그둘 아전들은 때로는 자벌레처럼
움츠리고 바퀴벌레처럼 숨어서
기어다니지만 수령을 뫼심에 물 흐르듯
깔보고 얕은 꾀나 호령소리로 그들을
내키는 대로 조롱하고 잡았다 놓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아전이란 솟막집의 식주인처럼 나그네 비위
맞추는 일에는 탄고닮아 이골 난
위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수령들은
많지 않더라.
수령 앞에 이르러 콧등을 땅에다 박고
지당하다는 말을 쉴새없이 늘어놓지만
속으로는 수령의 미련함과 어줍쟎은 계교
따위를 환하게 꿰고 있어서 저희들끼리는
몰래 소매로 옆사람을 꾹꾹 찌르고
킥킥거리고 웃다가 관정(官庭)을
벗어나기만 하면 비웃고 헐뜯기를
일삼는다는 것을 수령들은 모르더라.
혹세(酷稅)로 거둬들인 곡식과
장사치와 거랭할 적에는 필경 호방이
맡아서 주선할 일임에도 변학도는 이방의
조청과 같이 달짝찌근한 감언이설에
솔깃하여 이방으로 하여금 주선케 하였다.
그리고 당장 그 자리에서 얼굴조차 본
일이 없는 장돌림에게 관무첩(官貿帖)을
발급하였으니 관무첩을 가진 상인은 그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으로 세곡이나
관아에서 취급하는 공물 따위를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는 것이다.
관무첩에 수결과 도장을 찍어 건내면서
변학도는 은근히 물었다.
"보노라면, 조선팔도 삼백육십 고을에는
토산물 없는 곳이 드물다. 일테면
강계(江界)는 인삼과 담비가죽이 자랑이오.
경성(鏡城)은 다리와 삼베를 자랑한다.
담양(潭陽)의 채색 상자, 동래(東萊)의
담배 기구, 경주(慶州)의 수정, 그리고
해주(海州)의 먹과 보령(保寧)의 벼루는
저마다 그태깔과 쓰임새가 돋보여서
팔도에서 소문난 토산물을 손꼽히지
않더냐. 남원에는 그런 이름자한 토산물이
없쟈?"
남원땅 백사지가 변변치 못하여 이렇다
할 토산물 한 가지인들 천거할 것이 없었던
이방은 오금이 쥐어 박힌 채로 머쓱하게
앉아 있을 법하였다. 그러나 이방은 까닭
모를 웃음을 입가에 해죽해죽 흘리면서
대꾸하였다.
"조선팔도 삼백육십 고을에 저마다
자랑삼을 물산이 있다는 것이야 시생인들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고을에서
자랑삼는다 할지라도 조금도 부러울 것이
없고 또한 허물 될 짓도 없습니다."
눈에 될 만한 토산물 없는 것을 빌비잡아
이방을 한 대 쥐어박는 답시고 던진 말에
주눅들지 않는 것이 괴이쩍다 생각한
변학도가 뜨아해서 물었겠다.
"허물될 것이 없다는 방자한 언사는 뜻이
어디에 있는고?"
"강계에 담비가죽이 있고 경성에 삼베가
있고 경주에 수정이 있은 들, 강계의
담비가죽이 농익은 홍시같이 야들야들한
속살을 지닐 수 없으며, 경주의 수정이
제아무리 기묘한 빚을 가졌단 들 코끝에
새큼하게 감기는 오얏 같은 향기를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경성의 삼베를 수천 동이 쌓아둔들
채난(採煖)할 수 없을 것이며, 나주의
부채가 제아무리 살랑거린들 얄기죽얄기죽
결음을 옮겨 놓을 적마다 야릇한 바람을
일으키는 남원땅 춘향의 색태를 흉내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해주의 먹이 제아무리 검다지만 춘향의
불두덩에 핀 터럭만큼 검기를 자랑할 수
없을 것이고, 보렴의 벼루와 마르지 않는
것을 겨룬다 할지라도 춘향의 옥문에 고여
있는 물이 마르기를 바라지는 못할......"
그때였다. 눈이 시뻘개진 변학도가
서둘러 손바닥을 내뻗어 이방의 입언저리를
싸잡고 가로막으며 단내 나는 입으로 쏘아
부쳤다.
"그만, 그만하게. 남의 부아를 질러도
분수나름이지, 내 오장육부를 발칵
난장질 당했다고 이제 와서 분풀이인가?"
"언감생심 그런 불측한 싯지를 품고 있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 복장을 발칵 뒤접어 놓는
언사는 어디서 꿔온 것인가?"
"남원에 자랑할 만한 토산이 없다는
사또의 푸념을 듣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깨우쳐 드린 것입니다."
"자네의 명석한 총기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터, 형방시켜 당장 춘향을
불러오라."
"허겁지겁 분부만 내리실 게 아닙니다.
사실은 춘향과 갈이 잘난 체하는 계집을
고분 교분하도록 다루는 솜씨에 있어선,
외람된 말씀이오나 풋나기인 이몽룡을
따르지 못하시니 시생이 보기에도 적지않게
"내가 이몽룡을 따르지 못한다?"
"돼지를 돼지우리에서 수월하게
끌어내려면 앞에서 우직하게 귀를 잡고
당길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서 꼬리를
잡고 당기면 제발로 결어서 우리에서
나온다 하였지요. 앞에서 귀를 잡고 당기면
돼지는 한사코 뒷걸음질만 할뿐입니다."
"자네의 언사가 의미심장하군. 그게 뭔
소리쟈?"
"벽을 치면 대들보는 올기 마련입니다.
이몽룡은 그 풋나기 주제에도 그 순리를
깨닫고, 춘향의 어미를 먼저 찾아가서
비위를 맞추고 담판해서 춘향이 거처하는
별당까지 별 소동 없이 들어가 동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이몽룡이의 술수를 사또께서 그대로
입으실 가망도 없지는 아니합니다. 그러나
속담에 꿩 잡는 게 매라 하였으니 이
조급한 판국에 체모에 다소 손상이
되시기로서 구애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춘향어미가 코머리기생으로 거행한 적이
있어서 화류계의 야비한 물정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고 또한 여식을 덜컥
기안에다 착명한 일에 원한을 두고 있을
법한데 내가 찾아가서 여차여차하게
꼬드긴다 해서 고분고분할까."
"그것은 염려를 놓으셔도 별반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춘향어미 월매는 물욕이
남다른데다가 또한 한양 간 이몽룡이가
장안의 색주가를 휩쓰는 파락호로서,
창병까지 언은 폐인이라는 것을 알고난
뒤부터는 여식이 기안에 학평된 일을 두고
여식으로 하여금 사또를 밉상으로 보지
않도록 은근히 부추기는 기미도 없지
않았으니 사또께서 월매의 집에 한번
납시기만 하면 일은 수월하게 풀릴
것입니다."
그때였다. 변학도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방에게 분부를 내렸다.
"자네가 편의를 좀 봐주게. 선머리에서
향도해서 나를 춘향의 어미집으로
안동하게."
그러나 이방이 황망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됩니다."
"아니되다니, 자네가 시방 된다고
장담하지 않았나."
"이런 대낮에 여염집으로 미행(黴行)을
하시려면 변복(變服)으로 납시어야 말썽
"날 보구 미복잠행(黴服潛行)을 하라는
수작인가?"
"그렇습니다."
"자네가 내 복장 속을 요리조리 뒤져가며
뒤집어놓고 있군, 내가 한양에서 남원까지
미복으로 도임하다가 육백 리 도임길에
숱한 경난에 돌이킬 수 없는 사매질에
수직나졸들에게 난장질까지 당했다는
수치를 몰라서 시방 날 보구 또한
미복잠행을 하자는 것인가? 이제부터 나는
이 관복만큼은 잠자리에서도 벗지 않을
것이니 뒤숭숭한 소리로 오장 뒤집지 말고
앞장서되 관아를 삐져나갈 때만 뒤쪽
평대문으로 나가세."
해는 한낮이 기운 뒤라지만 그야말로
대낮이었다. 땅거미라도 내릴 때쯤해서
변학도란 위인은 한 번 작심하였다 하면
체통을 가리지 않는 불길갈이 급한
성미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이방이
앞장서서 춘향의 집까지 당도하였는데
변학도는 그나마 다소 깨름칙하였던지
사위를 돌아보며 이방에게 분부하였다.
"자넨 대문 밖에서 가다려줘야 하겠네.
자네의 체통에 다소 내키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하였으나 내가 안에 있을 동안
잡인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파수를 서주게."
이방이 허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슬쩍
대문을 밀어 보았더니 대낮이라 빗장은
걸려 있지 않고 문을 그냥 짓질러만 놓아
일 같잖게 열리었다. 당장 뜨락으로
들어서서 통자를 넣자, 정주간에서
향단이가 달려 나왔다.
껑충한 허우대에 관복까지 입은 사내가
눈발도 곱지가 않은 터라 향단은 놀란
가슴에 어디서 온 뉘시냐고 되물어 볼
경황도 없이 손바닥 납죽 들어 안방을
가리켰다. 대청에 올라서서 기침으로
인기척을 하고 서둘러 미닫이 문을 열고
한약 냄새가 설핏한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빈 약그릇이 놓여 있는 아랫목에 한 여인이
곤하게 누워 있었다.
"자네가 춘향어미인가."
"그렇소."
돌아누운 여인네의 뒤통수를 보고 물었던
말이었고 누워 있던 여인네는 난데없는
사내가 묻는 말에 반몸을 비틀고 바라보며
대답한 말이었다. 대답은 시큰둥하게
하였으나 힐끗 돌아다보니 관복을 걸친
부시시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앉으라는 권유도 었었지만 변학도는
아랫목으로 내려와 털썩 가부좌를 틀고
앉는데 최씨가 보기에는 무례하고
비루하였다. 관원의 신분이라 하여 이런
패덕(悖德)을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것인가.
최씨로선 두고만 볼 수 없는 살풍경이었다.
"이런 상스럽고 추잡스런 거동 을
보았나. 명색 동방예의지국이란 평판이
자자한 이 나라에는 내외의 경계가 또한
삼엄하거늘 아녀자가 소슬하게 누워 조섭을
받고 있는 그윽한 내실에 일면식조차 없는
사내가 관복을 빙자하여 족제비처럼
뛰어드는 못된 소행머리가 어디 있소?"
변학도가 최씨를 본 적이 없고 최씨 또한
변학도를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믿고 있었고 춘향어미로 거리낌이 없는
최씨는 변학도를 엉덩이에 뿔 난
벼슬아치로 알았다.
불끈 화증을 돋구며 쏘아부치는 최씨의
언사가 맵짜고 암팡진 터라 머쓱해진
변학도는 한풀 죽어서 최씨의 비위를
맞추었다.
"자네의 불편한 심기를 모를 턱이
있겠나. 하지만 사화를 하자고 바쁜
공사(公事)조차 황망히 덮어두고 찾아온
내게 이런 고약한 푸대접이라면 속담에
우는 얼굴에 침뱉기가 아닌가."
푸대접을 받든 흔연대접을 받든 그것은
찾아 온 과객의 행세하기 나름, 아녀자가
탈진하여 누운 방에 난데없이 뛰어들어
푸대접을 허물하고 드는 것은 그 알량한
"어허, 계집사람 주제에 어인 성깔이
이토록 매몰찬 것인가."
"엇따 대고 반말이요?"
"내가 반말해서 심기가 뒤틀린 것인가?
내게 반말 듣기 싫거든 날 별당의
춘향에게로 냉큼 안동하시게. 그렇게 되면
귀에 거슬리는 말 듣지 않을 것 아닌가?"
"춘향이라니?"
"자네가 나를 보자 불쑥 배알이 뒤틀리고
울화가 치밀어서 소매를 부르걷고 험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십분 짐작하겠네. 그러나
이런 문전박대에도 내가 국 눌러 참고
견디는 것은 오직 춘향을 수청들이고자
하는 내 일편단심의 소치인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감히, 나랏님이 내린 관복차림으로
엽색행각을 벌이고 다니다니, 이는
나랏님에 대한 능멸이오 만고에 있을 수
없는 불충이 아니냐."
그런 말이 최씨의 입에서 쏟아지기
바쁘게 최씨의 왼손이 바람을 가르며
변학도의 따귀에 가서 맞았다. 홧김에
후려친 따귀였으니 변학도의 눈에서 눈물이
쭉 삐지는 듯 하였다.
아니래도 억울하게 옥살이로
관욕(官辱)을 당한 분풀이까지 겹친 맵짠
손찌 검이 였으니 변학도의 볼따구니에는
금새 벌건 손자국이 드러났다. 그러나
경난은 거기에서 그 않았다. 처음에는
서툴게나마 춘향어미의 비위를 맞춰
담판하고 춘향의 살맛을 보려 했던
변학도는 난데없는 따뀌 한 대를 공다지로
말았다.
감히 관복입은 벼슬아치의 귀뺨을 일개
퇴기(退妓)주제가 섣불리 손찌검하다니,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이토록 이지러져서야
무슨 망신인가. 그 순간, 변학도의 눈에는
불이 튀는 것 같았다. 그는 지체없이
주먹을 들어 최씨의 목덜미를 모양 있게
내리쳤다.
"이년, 미천한 주제에 이 무슨
행패인가."
눈에서 저승삼도천 샛볕이 갔다왔다
할만큼 화끈하게 손찌검을 당한 최씨는
앉았던 자리에서 그대로 콧등을 박고
꼬꾸라졌다. 그러나 최씨는 순식간에 범떡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고미다락의 분을 열고 방아고
방아고를 변학도의 어깨짬에 대고
내려찍은 것도 역시 눈깜짝할 사이였다.
최씨 눈에 있던 샛별이 어느새 변학도의
눈시울에 좌르르 쏟아져 내리는데 왼쪽
어깨짬을 한번 내려찍던 방아고는 다시
오른쪽 견대팔을 겨냥해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미복잠행을 하자는 이방의 권유를
하찮게 여기고 관복으로 행세하자고 고집을
부린 것이 또한 화근이었던가.
아니면 남원부사에 제수되고 난 뒤
푸닥거리 아니하여 몸에 무슨 악귀가
덮씌웠는가. 미복으로 가로막아도 아니되고
관복으로 가로막아도 악귀의 행패를 막을
수 없으니 어인 팔자가 남원부사에
제수되고부터 이토록 험악하단 말인가.
하지만 삼십육계 중에서도 으뜸인 것은
순식간에 벌떡 몸을 솟구친 변학도는
문지도리가 부서져라 하고 미닫이문을
밀어부치고 눈자위를 어떻게 뜬 채
대청으로 튕굴듯 뛰어나가며 이방아전을
몸달게 불렀다.
문밖에서 잡인의 범접을 가로막는다 하고
지키고 셨던 이방도 황소 영각켜는 소리가
난 뜨락으로 뛰어드니 관복자락을 뒤틀어
쥔 천둥벌거숭이 하나가 대청 가역으로부터
섬돌로 튕굴듯 떨어졌고, 방아고를 어깨에
울러멘 늙은 계집 하나는 막 뒤쫓아 나오는
찰라에 있었다.
사또를 수행하는 아전배는 사또의 세력에
의탁하면 사또보다 더욱 기세등등해지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청에 서 있는
낯모를 늙은 계집을 발견한 이방은
발뒤축을 들었다 놓았다.
"이녀언, 이 어인 무엄한 행패냐."
뜨락을 설설기고 있던 변사또를 서둘러
곁부죽할 요량은 않고 방아고 집어든
계집부터 꾸짖는다. 그러나 이미
이판사판으로 오장육부가 뒤집힌 최씨의
언사가 사끈사근할리 없었다.
"이놈, 너는 어느 울타리에서 뛰어든
족제비냐?"
어엿한 길청의 구실바치를 보고 족제비라
하였으니 이방의 대답도 아름다울 수
없었다.
"이년, 누깔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
"이놈아, 누깔에 보이는 것이 있으니
족제비라 하지 않았더냐."
"월매를 사칭한 네 년의 죄를 알렸다."
전치수령(前治守令)이 한림이 부사로
제임시에 네 놈 아전배들이 서로 결탁하여
관고(官庫)의 곡식을 족제비처럼 횡령한
사실을 수령께 고발하겠다."
이방이 과연 족제비의 별호를 들어서
마땅한 것이 최씨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뜨락에서 횡하니 사라져 버리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만치 먼발치 앞에 뒤뚱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변사또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잡은
이방이 다급하게 말하였다.
"사또 아니 됩니다. 이러시면
아니됩니다."
"어서 가자, 냉큼 동헌으로 돌아가자.
아무래도 내게 악귀가 덮씌운 것 같으니
어서 가서 푸닥거리라도 해서 이 원귀들을
"원귀 내쫓는 일보다 시세 당장 수습하실
일이 있습니다."
"뭐냐?"
"사또의 왼쪽 뺨에 얻어맞은 손자국이
너무나 역력한 터에 어찌관복을 차려입고
한길을 행보하신단 말씀입니까. 오늘 당장
남원부중에 사또가 늙은 계집에게 따귀
맛고 구루병 앓는 당나귀처럼 허둥지둥
달려가더란 조명이 퍼질 것 아닙니까."
그 순간, 변학도는 딱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허공을 쳐다보며 뇌까리는
것이었다.
"갸륵하다. 이방의 총기가 갸륵하다. 이
경황중에도 오직 나의 체통을 염두에
두었던고. 이 방의 국량이 저토록
현명하다니....."
뒷길로 안동하겠습니다."
그때 변학도는 욱신거리는 한쪽 어깨를
들썩해 보이며 가련한 목소리로
호소하더라.
"왼쪽 어깨 욱신거리는 품에 견지뼈가
부러진 듯하이."
"견지뼈가 부러졌다 하더라도 시생의
체수가 워낙 잔망스러워 사또를 업고
뛴다면 시생의 등에 업힌 사또의 무릎
종지가 땅에 질질 끌릴 것이니 차라리 업지
아니하는 것이 모양에 변변치 않겠습니까."
"내왕 없는 뒷길로 안동한다고 장담하지
않았었나."
"여항의 상것들 내왕은 없더라도
순라꾼들과 개는 다니지 않겠습니까."
"남원부사의 직임이 가지고 있는
날아가는 새도 호형 한마디로 떨어뜨릴
만한데 내가 참없이 사매질을 당해도 어째
분풀이할 곳이 없는고?"
"동헌 돌아가시는 길로 형방시켜 그
기막힌 늙은 년을 등시에 잡아들이도록
분부하십시오."
"귀 막힌 년을 잡아들여 봤자, 무슨
화끈한 분풀이가 되겠나."
"대꾸가 낭자한 것으로 보아 귀 막힌
년은 아닙디다."
"이방이 방금 귀 막힌 년이라 하지
않았나."
"기막히다 하였지 귀 막았다는 말씀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자네의 자발없는 주동이나 막고 있게.
월매란 년을 분풀이하자면 빌미를 만들어야
"그 늙은 년은 월매가 아닙니다."
"월매가 아니라."
"예."
"네놈이 조청같이 달짝찌근한 말로
꼬드겨 날 월매의 집으로 데려간다 하구선
엉뚱하게,기막힌 칭맹과니년의 집에다 등을
떠밀어 패대기를 쳐서 관장(官長)의 체통에
똥칠시키고 따귀 두 대에 견지뼈까지
부러뜨렸으니 네놈으로썬 속시원한
분풀이가 되었겠다? 삼촌삼촌하면서 짐
지운다더니 이건 네놈의 사악한 간계에
미련한 내가 속아넘어간 것이 아니냐?"
그 순간이었다. 이방이 두 무릎을 맨땅에
착 꿇리고 업드렸다.
"나으리. 나으리의 말씀이 십분 사비에
온당하십니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꼬인
월매의 방에 그런 늙은이가 월매를
사칭하고 누워 있으리라곤 시생이 미처
탐문하지 못한 불찰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
집에 담살이 하고 있는 향단이란 년도
한통속으로 시생을 속인 것이니, 이런
기막힌 내막은 그 늙은이를 잡아들여
분초를 한다면 시세당장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내가 잡아들여 곁에 두고자하는 것은
춘향인 것을 도임초부터 네놈이 빤히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네 놈은 주둥이만
열었다 하면 말끝마다 주둥이에서 흙냄새만
나는 늙은 할망구들만 잡아들이라고 성화를
부리느냐. 이것이야말로 나를 훼방
놓으려는 네놈의 속 깊은 간계를 드러낸
짓이 아니냐?"
"잡아들이고 아니고는 형방이 주선할 일,
데데한 네놈이 오줄없이 남의 제사상에
뛰어들어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촐싹거릴
일이 아니쟎느냐. 네놈의 오지랖이 그렇게
넓고 세상만사를 무불통지로 알고 있다면
내친김에 날 동헌에서 내쫓고 남원부사
직임까지 도맡지 그러느냐?"
속으로 욱하는 기분대로라면. 남원부사
나라고 못할 것 없지요 하는 말이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도록 기어올랐으나 겉으로는
대경실색 몸둘 바 몰라하며 조아리더라.
"나으리, 시생이 온당치 못하여
절도(節度)가 없고 주변도 미숙하여
나으리의 진노를 샀을지언정 말씀이 지나쳐
길 가던 상것들이 들을까봐 간이
떨꺽합니다, 시생이 주책바가지라 한들
"네놈과 입씨름 낭차히 벌이고 있을
말미도 없고 처지도 못되는 터 어서
동헌까지 윈들 당듯만 시켜라. 네놈의
말대로 그 기막힌 늙은이를 잡아다
하옥시킨다면 월매를 사칭한 세세한 내막이
백일하에 드러나긴 할 터이다.
그러나 한 청맹과니 늙은이가 월매를
사칭한 소상한 내막을 문조하여 밝혀낸다
한들 춘향을 수청들이려는 내 본래의
의도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그 늙은이로 하여금 수청들이게 할
것이냐? 그 늙은이를 잡아들일 게 아니라
늙은이의 죄상을 빌미잡아서 춘향을
잡아들여 혼찌검을 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소득을 얻을 게
아니냐?"
않았음인데 무엇을 빙자하여 잡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런 해망쩍은 놈을 보았나. 그러기에
연좌죄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연좌죄가 있다는 것은 시생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만 그 늙은이가 월매를 사칭하였을
뿐 사실은 춘향이 그에 동조하여 저지른
죄상이 없는 터에 어찌 연좌죄를
씌우리까?"
"그럼 내가 따귀 맞고 견지뼈 부러진
것은 도깨비나 물귀신에게 당한 봉변일
뿐이란 것이냐. 그 집이 월매의 집이
분명하고 또한 담살이 하는 계집조차
춘향어미가 분명타 하였으니 이로써 증거가
없지 아니하다, 그로써 그들 일가가 교묘히
결탁하여 감히 관복입은 내게 폭행을
있느냐?"
"그 고약한 늙은이는 털끝조차 건드리지
않으시겠단 것입니까?"
"늙은이라면 손끝도 건드리기 싫은
성미에 털끝인들 건드려서 뭣하나."
"춘향을 불러서 한 번 더 순리대로
다독거려 보심이 현명하옵니다."
"벽을 치면 대들보는 울기 마련이라는 네
놈의 감언이설을 첫고지 듣고 벽을
치겠답시고 넙죽거리다가 조상께서
물려주신 견지 뼈만 부러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견지뼈 부러졌다는 것은
엄살이었을 뿐 선머리에서 길을 안동하는
이방의 뒤를 변학도는 종종걸음으로
뒤따라오고 있었다.
견지뼈가 부러진 것이라면 그 부러진
고래등같이 부어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천행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동헌까지
당도한 변학도는 동헌에 좌정하는 길로
불거진 눈망울로 형방에게 잡아오라는
분부를 내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당장
그러하지 못할 광경이 당도한 동헌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동헌에는 춘향이가 소슬히 앉아 있었다.
문득 뇌리를 치는 생각으로는 형방이란
놈의 동작이 전광석화처럼 민첩하다는
생각이었다. 아직 잡아오라는 분부조차
내리기도 전에 두 번 다시 잔소리들을 것도
없이 냉큼 춘향을 잡아다 동헌방에
대령시킨 이런 기막힌 기민성이 남원
길청의 형방에게 있다는 것에 놀랐다.
변학도가 미닫이를 성깔 있게 밀어부치고
일어나 내외를 차리다가 놀란 변사또가
뜨악 한 채로 좌정하자,
"나으리 탕제 드실 시각입니다."
"탕이라니? 설렁탕이냐 미꾸라지탕이냐."
"당귀수산입니다."
"형방은 어디 갔느냐?"
"형방은 상면치 못하였습니다."
"아니 그놈이 널 여기다 패대기쳤다면
응당 포박하여 둘 일이지 오라조차 짓지
않고 곱게 앉혀둔 까닭이 뭐라더냐."
"쇤네 형방께 오라받고 끌려온 것이
아니옵니다."
"아니라면? 도임행차 수행 갔던
육방관속들이 돌아온 북새통을 틈타서 몰래
장달음을 놓은 것이 적실한데 그럼 제발로
다시 걸어 들어 왔더냐? 네가 형방에게
"나으리께서 쇤네를 포박하여
잡아들이라는 분부를 내리셨다면, 쇤네는
어찌 형방의 형용조차 상면하지 못했더란
말입니까."
"그래?"
하긴 사리에 온당한 말이었다. 형방을
불러 추포령(追浦令)을 내린 적도 없을
뿐더러 동행하였던 이방에게 형방을
대령시키라는 분부를 내린 적도 없었다.
느닷없이 춘향이가 동헌방에 앉아 있음에
지레짐작으로 형방이 한 일로만 넘겨집은
것이었을 뿐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춘향의 말은 가위 흰소리가 아니었다.
정상이 그러한 만큼 저년 내려 가두라는
말이 당장 입에서 쏟아져 나올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순리대로 다독거려
마침 춘향은 약사발을 뚜껑을 열고
새끼손가락을 집어넣어 두어 번 저었다.
그리고 약사발을 들고 상큼 웃으며
아뢰더라.
"나으리 이제 탕제가 알맞게 식었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그럼 네가 그 북새통중에 장달음을
놓았던 게 아니더냐?"
"장달음울 놓았다면 쇤네가 나으리 탕제
드실 시각에 맞추어 약방으로
되돌아왔겠습니까. 쇤네 미거하나 나으리
약수발을 드리겠다고 약조 드린 이상 어찌
행설을 경솔히 가질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어떤 효부가 있어 평소에
육고기를 즐겨하는 시아비의 병환을
수발하다 못해 넓적다리를 떼어내어 구워
보필하고 구완함에 그 효부의 갸륵한
희생은 미처 따르지 못할 망정 탕제는 끓여
올리는 일에야 부질없이 게을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넓적다리를 먹었다더냐?"
"미주알이 찢어지는 애옥살이에 육고간에
가서 고기를 살 수 없었으니 각고 끝에
넓적다리를 베어 육고기 대신하였지
않았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그 기특한 효부의
희생으로 그 생송장은 병석을 떨치고
일어났음직하다. 그러나 일개 티끌 같은
촌부(忖婦) 명색은 넓적다리를 베어
시아비를 구완함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거늘 너는 어찌 행실이 완악한
넓적다리를 한 번 만져만 보자는 데도
엇뜨거라 해서 앙탈에 빼죽거리고만 있으니
이건 어인 가당찮은 불측인고? 내가
채난(採暖)해서 하루 빨리 쾌복이 되자면
약소하나마 네 넓적다리쯤은 만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외람된 말대꾸겠으나 나으리께서 쇤네의
넓적다리를 보자는 분부는 내리신 적이
없습니다."
춘향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기만 하던
변사또의 핏기어린 두눈이 그 순간 허옇게
떠졌다. 아니 이건 넓적다리쯤이야
떡주무르듯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춘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무턱대고 수청들라고만 완악한 언사로
억지를 부리고 쥐어박기만 했을 뿐, 정작
만져보자든지 발을 보여달라는 말로 춘향을
달래본 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꿀꺽
침을 삼킨 변사또가 혓바닥을 내둘러
입술을 적시고 나서,
"그럼 지금 당장 넓적다리를 내놓을 수
있겠느냐?"
"내놓으면 어찌하시려오?"
"물론 떡판의 백설기떡 주무르듯 용이
여의주를 물고 돌리듯 내가 한번 주물러
보려는 것이다."
"아니됩니다."
"왜? 네가 달거리가 있어 사추리에
개짐을 차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슨 구애가 또 있어서
버르장머리없는 말만 골라서 남의 복장을
내놓겠다는 의향이 아니었더냐."
"하초를 보여드리는 것은 해롭지
않겠으나 하초를 백설기 주무르듯 하신다면
쇤네로선 곁을 주는 것과 다름없겠으니
허락할 수 없습니다."
"기골이 멀찡한 내가 햇미나리처럼 물이
오른 네 넓적다리를 황달든 놈 붕어
들여다보듯 군침이나 삼키면서 구경만
하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앓느니 죽겠다. 그러나 네 말에는
모순이 없지 않다. 들어앉은 사삿집의
계집이라면 모를까. 속담에 화냥년
수절타령이더라고 기안에 착명된 논다니
계집의 처지에 걸핏하면 훼절 운운하고
있으니 도대체 오장이 니글니글해서 듣고
"기안 착명 웬일입니까, 쇤네가 동헌에
와서 약수발을 드리고 있는 것은 다른
허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쇤네의 어미를
방면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일 뿐
따라지목숨일 망정 기안에 얽매이어
나으리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비마다 기안 착명된 것을 들춰
쇤네를 충하하고 생다지로 위협만 하신다면
비위가 뒤틀려 흔단만 생겨날 뿐 도대체
무슨 소득이 있겠습니까. 산협 고을의
궁상스런 계집이라 해서 행로(行露)도 없는
한미한 사삿집의 계집이라 해서 법에도
없는 기안에 착명시켜 오직 쇤네로 하여금
나으리를 시침(侍寢)들게 하는 일에만
골돌하시니 이렇다 할 계책이 없는
뿐입니다."
"흰소리 집어치고 넓적다리를 내놓아라."
"차라리 넓적다리를 배어내고 구워드릴
수 있을 망정 나으리께서 떡 주무르듯 하는
것을 감내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해괴한 계집의 앙탈을 보았나,
기생이 정절타령하는 것은 배꼽 밑에 털난
이후로 처음 본다. 이방의 말을 듣자 하니
네가 겉으로는 수절을 빙자하면서
뒷문으로는 관속 건달들이 무상출입한
다더니 그 말 흰소리가 아니구나.
내 분부만을 기필코 거역하고 드는 것은
간부(姦夫)에게 둔 정분이 간절해서
앙탈하는 모양인데 간부의 사정 봐준답시고
관령을 거역하면 형틀에 매달리는 불상사를
겪는다는 것은 모른단 말이더냐? 형틀
그때 춘향은 눈살을 살천스럽게 치뜨고
변학도를 노려보았더라.
추잡스럽고 비루하다. 한낱 계집을
수청들이기 위해 걸출한 사내로 자처한다는
변학도가 있지도 않은 간부를 만들어
위협하고 든단 말인가.
"사또께선 내노라 하는 사대부가
아닙니까. 사대부의 예절로써 어찌 한미한
여염집 계집을 상종하여 밑절미도 없는
간부가 웬 말입니까. 자고로
절행(節行)에는 양반 상놈의 차등이 없다
하였소.
충신도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데.
열녀가 어찌 두 남편을 둘 수 있겠습니까."
"수절타령에 열녀타령으로 넘어가느냐."
"그런 말씀 마십시오. 해서(海西)기생
청주(淸州)기생 화월(化月)이,
평양(平壤)기생 월선(月仙)이,
안동(安東)기생 일지홍(一枝紅)은 모두
내노라 하던 열녀(烈女)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네년이 시방 열녀 흉내
내느라고 그렇게 삐죽거리고 만 있느냐?
모반하는 자는 능지처참이요, 관장을
조롱하는 자는 대매에 처죽이고 관장의
분부를 거역하는 자는 정배(定配)시킨다.
"그걸 아느냐?"
"그중에서 유부녀를 겁탈하려는 자는
하초에 달린 생고기를 잘라버린다는 것은
왜 빠트리십니까."
그 말을 듣게 된 변학도는 드디어 눈앞이
아득하여 곁에 있던 연상(硯床)을 탁 치자,
망건편자가 툭 끊어지고 상투코가 덜덜
달래보려고 좋은 말로 내심을 떠보려
하였으나 지나치게 건드리다가 이제 와서
욕까지 얻어먹고 수치되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더라. 살기등등한 변학도가
미닫이를 열어젖히고, 소리 질렀다.
"이리 오너라."
동현 뒤곁 감나무 아래에서 홍시 따서
주전부리하고 있던 통인놈이 입안에 있던
것을 꿀떡 삼키고 동헌방 누마루 아래로
구르듯 달려오며 (네) 소리 길게 하였다.
"이년 잡아내려라."
뉘라서 주저할 수 있을까. 급창과
형리들이 달려와서 준향을 끌어내려 훨씬
넓은 동헌 트락에다 사정 두지 않고
패대기를 쳤다.
"요년, 감히 어떤 분의 안전이라고
것이냐."
제비행전 날렵하게 졸라맨 형리들이
벌때같이 울울총총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의 뒤끝이를 뽑아 던지고 한강
사공이 닻줄 감듯 손바닥에 칭칭 감아
동댕이처서 장판(長板)에 엎지른다.
형 리들의 완력에 춘향은 육자배기로
엎어졌구나. 버선 벗겨 두 발 괴고 고쟁이
벗겨 박 속같이 희디 흰 볼기짝이 훨씬
드러나게 노둔(露臀)시킨 다음 두 팔 뒤로
돌려 결박하고 무명 수건으로 눈 가리고
치마로 허연 볼기짝 다시 가린 연후 물 한
동이 덮어씌워 물볼기 칠 만반의 준비를
갖추더라.
대체로 죄인이 사내일 경우에는 바지를
벗겨 내리고 노둔시킨 채생다지로 곤장을
볼기짝을 치맛자락으로 덮은 다음 물을
부어 달라붙게 한 다음 다스리는 것이
법도였다. 그러자 형방이 달려와서 춘향의
볼기짝에다 붓으로 신획(身劃)을 그었다.
그러자 짐장사령(執杖使令)이 나섰다.
팔척장신에 전통(箭筒) 같은 팔을 빼어
형장을 듬뿍 안아다가 춘향 앞에 좌르르
쏟아놓으니 그 소리만으로도 구곡간장이
애이더라.
그중에서 호리낭창한 삼모장(三矛杖)
하나를 골라쥐고 넙죽 형틀 옆에 부복하니,
동헌방에 턱을 얹고 기다리던 변사또의
지엄한 분부가 떨어졌다.
"그년의 넓적다리에 피가 튀도록
사정없이 치되 만약 집장사령 네놈이
사정을 두기로 한다면 네놈부터 물고를
분부 내린 연후에 집장사렴은 삼모창
둘러메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큰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며 매 한 대를 아주 딱
붙여서 내려치니 오뉴월.
소낙비에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형장가지 하나가 허공 중에 튀어 올라
팽글팽글 돌다가 떨어진다. 딱하는 소리가
기왓골을 울리자, 섬돌 위에 서 있던 통인
놈은 붓으로 종이에다 바를 정 자(正)의 첫
획을 그으면서 목덜미 길게 빼고 어스름
달밤 벼랑 위에서 울부짖는 여우같은
소리로 아뢰더라.
"하나요."
그러나 형틀에 엎든 춘향의 입에선
놀랍게도 아프다는 한마디가 흘러나오는
법이 없었으나 굳게 사려 문 입안에서는
변사또가 물었다.
"이제 또 분부 거역할 것이냐?"
"만번 죽어도 봉행치 못하겠습니다."
"되우 쳐라."
두번째의 곤장이 떨어지자,
"이런 행패 꾸민다 해서 제가 어찌
변하겠소."
"매우 쳐라."
세번째의 매가 떨어진다.
"이부(二夫) 아니 섬긴다고 이런 거조
가당찮소."
다시 한번 딱 소리가 터졌다.
"사지를 찢더라도 사또의 처분이요."
"되우 쳐라."
"저승 삼도천으로 떨어뜨린다 한들 몸은
아니 줄 터이오."
"바를 정 자가 모두 여섯이오."
"나비가 변하여 송골매가 된다 하여도 내
가랭이는 못 벌리오."
매를 내릴 때마다 딱장을 받는다 한들
목도를 쳐든 춘향은 앙칼지고 걸찍한
악담만 뇌까리는 터라 가슴이 써늘한
사람은 오히려 동헌방에 앉아 있는
변사또였다. 그러나 집장사령의 거동
보아라.
벼락틀에 친 호랑이처럼 숭어뜀에 자반
뒤집기로 요동을 치면서 입가에서 침버캐가
삐죽거리도록 열불나게 물볼기를 내리더라.
그 때 진저리치던 변사또가 역중난
목소리로 분부하더라.
"그년 저승구경 시켜주기 전에 처분할
일이 있는 터, 태벌은 멈추고 큰 칼 씌워
기왓골을 울리던 곤장질이 멈추었고
형리들이 우루루 달려가서 형틀에 매인
춘향을 풀어 일으켜 세웠다. 춘향 형용
보자 하니 굴뚝에서 빼놓은
족제비꼴이었다.
새 종아리 같은 두 다리에 유혈이
낭자하니 산 체로 염(殮)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집장사령은 춘향의
귀에 슬쩍 입을 대고 한다는 말이
고잉하다.
"얘 춘향아, 정신차려라. 외상은 보기
딱하게 되었으나 헐장(歇杖)을 하였으니
내상(內傷)은 없을 터이다. 정신
가다듬어라."
그때였다.
"너 이리 좀 올라오너라."
다름 아닌 집장사령이었다.
"나으리, 쇤네 말씀입니까."
"그래 너 말이다."
집장사령이 입귀를 실룩거리면서 한편
어깨를 첫드리고 설설 기어와서 댓돌 아래
엎드렸다.
"내 너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으니
누마루까지만 올라오너라."
집장사령이 옛 상전 만난 종의 자식같이
정신없이 떨면서 누마루 위로
기어올랐더라.
변사또의 목소리가 그 순간 나직하였다.
"너 춘향을 대매에 어육지변 내려
하였더냐?"
묻는 말에 곡절을 몰라서 집장사령이
어물어물하고 있는데 오금을 박고들었다.
주걱턱이 표독스럽게 생기긴 하였다만
영계처럼 야들야들 살결에 그토록 요량분수
없는 매질은 어인 행패냐. 춘향이가 외양은
빼어난 해어화(解語化)라지만 허우대는
대살져서 섬섬약질이 아니더냐.
그런데 성미 팔팔한 네놈이 뛰어들어
삽시간에 쥐 뜯어먹던 송곳자루 모양새를
만들어 놨으니 장차 이 눈물겨운 사연을
어찌할 것이냐."
길게 늘어놓는 언사를 새겨듣자 하니
말하고 웃자는 흰소리가 아니었다. 목도를
쳐들고 노려보는 눈밭에 살기가 동둥하매
처음엔 겸연좀기만 하던 집장사령은 식혜
먹은 고양이상이 되어 떨기 시작하였다.
"매에 쳐죽일 놈, 대저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 하였다만 춘향으로
아니더냐. 설혹 내 분부가 지연하다 한들
네놈이 눈치껏 삼가해서 태벌을 내릴 줄
알았던 게 내 불찰이었다.
안질에 고춧가루라더니 설 삶은 말대가리
같은 네놈이 저지른 낭패를 어이할꼬. 내
마음이 겨울철 원두막같이 허전하다."
그때였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집장사령은 갖은 풍상이 스쳐간 하안
턱수염을 누마루 위로 스라며 울먹일 제
변사또는 난데없는 회초리 하나를 집어들며
옹구바지를 걷으란 분부를 내렸다. 허연
눈꼽이 비어지도록 울고 있던 집장사령이
바짓가랑이를 걷어 부치며 일어서자
댓바람에 종아리 위로 회초리가 떨어졌다.
"이놈, 도끼 가진 놈이 바늘 가진 놈을
못 당한다 하였다. 따끔한 맛을 보아라."
회초리 맛은 맵쌌다. 집장사령이 도토리
먹은 강아지처럼 제자리에서 팽글팽글 돌며
회초리를 감내하자 변사또는 이죽거렸다.
"이놈이 개구리 삼시랑이 들었나, 폴싹
뛰기는? 아프다고 내숭 떨지 마라 이놈."
"나으리 종아리가 터져나가는 듯 쓰리고
아픕니다."
변사또가 매질을 멈추고 물었다.
"그래 오장육부가 니글니글하도록
아프냐?"
"그러하옵니다. 나으리."
"네놈같이 엄장 크고 허우대 단단하게
생긴 놈도 이 칠칠찮은 회초리 몇 대에
오장육부가 니글니글하도록 아파
메뚜기처럼 폴싹폴싹 뛰는 판국에 춘향
같은 섬섬약질에 삼모장(三矛杖) 삼십 대를
수시(水枾)처럼 야들야들한 볼깃살은 필경
젓국이 되어 흩어졌을 게 분명할 터. 창귀
같은 네놈이 끼어들어 다 끓인 죽사발에 코
빠드린 격이다. 너같이 흉포한 놈을 내가
두고만 볼 수는 없다. 당장 멱을 따서
본때를 보이리라."
그때였다. 바지괴춤을 양손에 사려잡고
사시나무 떨듯 하던 집장사령이 누마루에
어깨를 스리며 납죽 업드려 실토정을
하였다.
"나으리 사실대로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사실대로라니."
"내막을 알게 되시면 나으리께서 분기를
삭힐 수 있을 것입니다. 실토정인즉슨
나으리의 지엄하신, 분부를 받들어
별반거조 차리고 곤장을 내렸으나 쇤네
구천에 사무친 적도 없을 뿐더러 또한
춘향이 심성도 갸륵한 터라 겉으로
보기에는 숭어뜀으로 걸쩍한 곤장을
내렸으나 내상이 나지 않게 시늉으로만
살짝 곤장을 안긴 것입니다."
이놈이 간풀어진 의뭉 떨고 있는 꼴어
필경 나를 청맹과니로 알고 있구만.
그렇다면 춘향이가 형틀에서 놓여날 제
가랑이에 낭자하던 선혈은 어디서 꿔온
것이냐?"
"그것은 쇤네가 치자 열매 한 줌을
콩소매에 감췄다가 곤장 내리기 전에
춘향이 넓적다리에다 슬꺽 집어넣은
결과였습니다."
"치자 열매를 춘향의 사타구니에
집어넣었으니 그것은 선혈이 아니라 치자
"그러하옵니다. 나으리."
변사또는 잠시 쥐 죽은 듯이 입을 다물고
집장사령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집사령의
갸륵한 소견머리 때문에 매질한 것이
무안하여 수작이 어울리지 않아 덤덤하게
앉아 있는 줄로만 알았던 변사또의 입에서
그러나 뜻밖의 걸찍한 악담이 터져나왔다.
"이 흉물스런 놈이 똥줄이 당기니까 말탄
년의 거시기처럼 넉살 좋게 너부적너부적
잘도 뇌까리고 있네 그려. 네놈은 이제 두
가지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 한 가지는
되우 치라 했던 내 지엄한 분부를 거역하고
사사로운 정리에 따라 속임수로 관장을 능
욕하고 조롱한 죄요.
다른 한 가지 죄는 아직 나도 만져보지도
못한 춘향의 넓적다리를 네놈 먼저 치자
것이다. 이는 암고양이에게 생선 가게 맡긴
꼴이 되었으니 미련하고 아둔한 건 바로
나였구나."
구루병(句樓病)앓는 당나귀처럼 왜소하게
찌그러진 집장사령은 면상이 쪽쟁이
(아편쟁이)같이 누렇게 떠서 핵변을
늘어놓았다.
"나으리의 분부를 하찮게 여기고
곤장질에 도섭을 부린 죄는 따돌릴 수 없게
되었으나 치자 열매를 핑계하여 춘향의
사타구니 속에 요량분수를 모르고 손을
집어넣지는 않았으니 그 말씀 한가지 만은
억탁이옵니다. 모쪼록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염치가 초상술에 권주가 부를 놈.
저절로 터진 입이라고 말은 너부적너부적
네놈도 지체가 상것이긴 하지만 배꼽 밑에
털난 놈은 분명한 터, 기왕에 집어넣었던
사타구니에서 분수를 지켜 손을 빼었더란
말이냐?"
"쇤네가 만약 그런 고약한 짓을
저질렀다면 앙칼지고 다구진 춘향이가
쇤네의 외람된 버릇을 두고만
보았겠습니까."
"네놈이 가당찮은 색념이 동하여
추잡스런 짓을 했을까봐 한시름 되더니
분수를 지켜 외람된 짓은 않았다니 그 말은
속시원하게 실토정을 하였다. 그러나 이젠
눈꼴시려 못보겠으니 공연한 턱방아 찔지
말고 내 눈앞에서 냉큼 없어져라."
집장사령 설설 기어 동헌 마당 가로질러
삼문 밖 한길로 내달아 여차여차한 일을
비루하지 않아 무사히 방면되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며 설치는 터라 그
소문이 삽시간에 남원부중 여염집으로
퍼져나갔더라.
춘향 어미 월매가 향단을 데리고
집안으로 날아든 새처럼 허둥지둥 토옥으로
달려온 것은 그날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었다. 그러나 설마했던 춘향이는
토옥의 간살을 잡고 눈자위는 허공에 걸고
있었다.
월매는 녁장거리에 공중거리로 날뛰다가
제풀에 혼절하고 말았더라. 그러나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춘향이가 간살
사이로 내다보니 식해 먹은 고양이 상을 한
향단이와 새벽 참에 논둑으로 빨래 나온
여편네처럼 입성이 뒤숭숭한 월매가 넋은
허옇게 뜨고만 있는 터라.
"어머님."
"에고. 네가 아직 죽지 않았더냐."
"어머님, 서러워 마십시오. 죄없는
춘향이를 설마하니 옥사를 시키겠습니까.
그렇게 낙맥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불효의 말씀이오나 돌아가지
않으시면 자결이라도 할 것이니 그렇게
알으소서. 어머님 울음소리 저의
구곡간장을 녹여서 경작에 죽겠오."
"용 못된 이무기 심술만 남더라고 그
후레자식이 널 수청들이지 못한 심술로 널
사지(死地)로 떨굴 작정이고 이 지경으로
만들었구나."
월매가 방성대곡(放聲大哭)으로
넉장거리로 뒹구는 중에 향단이가 가져온
"용미봉탕(龍尾鳳湯)이라 한들 목에
넘어가겠느냐. 만일 내가 통체로 죽거든
육진장포(六鎭長布)로 염습(殮襲)하여
한양성 내로 올려다가 도령님 다니는 길에
묻어 주면 도령님 내왕 때 음성이나마 듣게
하고 사또가 만약 내 육신을 둘로 내어
죽이든지 오장을 도려내든지 하거든 목만을
거두어서 한양성 내에 묻도록 해다오."
그러나 침버캐를 입에 문 월매는 그 말
듣는 둥 마는 둥 울음사설로 등뒤에 늘어선
옥사장이의 비위만 건드린다.
"여보소 장청(帳廳)의 집사(執事)님네.
길청의 이방님네 네 딸이 무슨 죄요. 무슨
원수가 맺혀 이 지경을 만들었소. 애고애고
내 딸 볼기짝에 장처(帳處)난 것 보시오.
빙설 같은 두 다리에 연지(嚥脂)같은 피
딸도 원하더라, 그런데 가서 못생기고
기생의 딸이 되어 이 곡경을 치루는구나.
애고애고 내 신세야."
"이머님 어서 집에 가오. 가지 않으면
정녕 자결할래요."
향단이 손에 이끌려 토옥을 나서던
월매가 마침 동헌에서 나오던 형방과
마주쳤다. 사태가 이러아러하게 되어
여차여차해서 변사또를 현신하고 적선을
빌어야겠으니 만나도록 주선해 달라는 청을
넣었다.
변사또가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라
때아니게 불쑥 청을 넣었다지만 두말 없이
동헌으로 들라는 허락을 내렸다.
동헌방으로 들어간 월매는 서둘러 입성을
수습하고 나부죽하니 절을 올린 뒤에
"쇤네의 여식이 맹랑한 지경을
앙하였으니 나으리 뵙고 좌우단간에 담판을
짓자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쇤네의 딸
춘향이는 기생의 소생임에는 틀림없으나
기적에 올라 있던 창기(娼妓)는
아니었습니다.
기생이라면 아직도 천기(賤妓)의 허울을
벗지 못하고 있는 쇤네이겠으니 나으리께서
기어코 기생 수청을 들이셔야겠다면 쇤네를
가리켜 지휘하시는 것이 가합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천만뜻밖의 말이 월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터라 담이 큰 변사또도 적이
놀랐으나 떨떠름한 심기만은 감추고 있을
수 없었다.
"코에서 흙냄새 나는 늙은이가 제법
"쇤네가 늙었다 하나 세류(細柳)같은
허리만은 아직도 남부러울게 없으니,
침석으로 들어가면. 요분질에는 미숙하지
않아 늙은 암코양이가 달걀 굴리듯
간드러지리다. 쇤네가 절등한 남색짜리가
아니여서 시큰둥하실지는 모르겠으나 달을
보시면 그만이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야
때묻은 송곳자루 같으면 어떻소."
"도깨비 방귀 잡는 소리 접어치게.
청자접시에 보리개떡 담으란 얘기지 그게
가당키나 한 얘기여?"
"사또의 허우대가 그처럼 깍짓동같이
장대하시다면 침석에서도 항우(項羽),
번쾌(繁會)못지 않은 예우각행(曳牛脚行)의
용력을 지니셨겠지만 그러나 무쇠가 굳다
하나 풀무에는 녹는다 하였습니다
담아드릴 것이니 성찰하시어 쇤네의 소청을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이 늙은이가 아무래도 노망 아니면.
환장한 소리지. 엇따 덤터기를 씌우려고
염치가 밑바닥까지 빠진 얘기를 예사롭게
뇌까리고 있나. 역증 내기 전에 오도방정
떨지 말고 냉큼 비켜나게."
"누워서 떡먹기보다 앉아서 똥누기가
수월한 법입니다. 가군(家君)이 엄연하고
성미 팔팔한 춘향에게 수청들이라
지분거리지 말고 공방살이로 지내는 쇤네를
지휘하여 주십시오."
"부러진 칼자루에 옻칠하는 소리
집어치지 못할까."
변사또가 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섬돌
아래 부복하고 서 있는 형방에게
"촌닭이 관청닭 누깔 빼먹는다더니. 길게
두었다간 누깔 아니 라 오장까지 빼먹을
흉물스런 계집이다. 모질지 못한 내가 낭패
당하기 전에 냉큼 끌어내지 못할까."
통인과 형리들이 우루루 월매에게
달려들어 뒤꼭지를 잡고 삼문밖으로
끌어내어 패대기를 치자 한길에서
궁싯거리고 있던 길손들은 쇠똥 덩어리에
쇠파리 끓듯 먼지투성이가 된 월매에게
모여들어 방앗고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삼문 밖에서 기다리던 향단이가
구경꾼들을 해집고 달려들어 부축하지
않았다면, 업신여김 당한 설분 못하고
발길질당한 앙갚음 못한 월매는 또 한
차례의 혼절을 겪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이
사무치고 육신은 아프지 않는 곳이 없어
최씨와 월매가 더불어 아랫목을 다투며
몸져누워 있는데 덜컥 한양에서 내려왔다는
위인이 방자놈이었더라.
춘향 모녀가 한데 싸잡혀 어육지변에
형옥(刑獄)까지 치루고 있다는 사실은 알
턱이 없는 방자놈은 남원 초입 삼거리
숫막에서 요기를 한답시고 낮술까지 몇 잔
들이켜 낯짝이 원숭이 똥끝처럼 발갛게
농익은 채로 월매집 대문을 박차고
들이닥치며 누구 었느냐 호기 있게 통자를
넣었다.
그러나 집 안은 역병이 할퀴고 지나간
자국처럼 냉기차고 휑뎅그레할 뿐 누구
없느냐는 걸찍한 채근에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구경들 갔나? 오리궁둥이 빼죽거리는
향단이는 어디 갔나."
섬돌에 걸치고 앉아 손가락으로 이똥을
긁어내며 똥 밟은 중놈처럼 혼자서
두리번거리며 고시랑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향단이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너부적너부적 뇌까렸다.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시름 되더니 잘
만났구만."
"아니 이게 향단이 아닌가."
"청개구려 밑에 실뱀 따라다니듯 이도령
꽁무니만 따라다니던 방자가 외톨이로
웬일이여."
"어허 뉘게다 목도를 쳐들고 하게를
던지나?"
"흉허물 없는 사이에 던지면 어떤데?"
"엿을 물고 개잘량에 엎어졌나. 저나
나나 미천한 주제꼴에 수염까지 길렀네."
"왜 내 때 벗은 품이 어때서? 이목이
깎은 서방 아닌가."
방자놈이 눈자위를 굴리다 말고 문득
생각하였다. 달갑지 않는 수작에
비아냥거리는 투가 역력한 향단의 무엄한
언사에는 뭔가 곡절이 있을 법 하였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남원 와서 한양 갔다 때벗고 온
본때도 보이고 행색까지 내려 하였더니
어딘가 아귀가 잘 맞아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이도령 궁색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어느새
남원까지 당도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장차의 일이 순탄치는
까닭도 그런 연유가 아닐까.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안방의 미닫이
문이 열리면서 이마를 수건으로 동여맨
월매의 누렇게 뜬 얼굴이 나타났다.
"이게 누구더라?"
육백 리 길을 오직 이도령 간찰 하나를
가지고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달려온
방자에게 간드러진 환접은 아니라 할지라도
빤히 알고 있을 방자의 면상을 바라보면서
누구더라고 미심쩍은 말로 퉁기는 뚱단지
같은 언사는 또 뭔가?
"춘향어미 아니요. 나요 방자요. 어째
고뿜에 울화증이 겹치셨소. 이마 질끈
동이고 자리보전 텐일이요?"
"자넨 넓적다리에 종기가 났는가, 다리에
행전(行纏)은 왜 둘렀나?"
빽빽하오. 나로 말하면 한양의 이도령이
춘향이 보고 싶고 장모의 안부가
궁금하여서 일필휘지로 쓴 간찰(簡札)을
품속에 넣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남원
행보육배리에 오금이 가뿐하라고 둘러
친제비행전 아니겠소."
한양 이도령의 간찰을 가지고 육백 리
길을 달려왔다고 호기 있게 떠벌이는데도
월매는 별반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 떨떠름하면서도 궁금한 것은
사실인 터라 내키지 않는 말로 물었더라.
"간찰이라면 진서(眞書)로 쓴 것이냐
언문(諺文)으로 쓴 것이냐."
"춘향모 읽기 수월하라고 반글로
썼답디다."
"이리 다오."
건네겠소만 어인 푸대접이 이렇게도 맵짠
게요."
"푸대접이라니. 그건 무슨 대중없는
생트집인가."
"손자밥 떠먹고 찬장 쳐다보구 있네그려.
내왕 천이백 리 길을 달려온 사람에게
치하금은 내리지 못할망정 입맷상 내놓아
요기조차 시키지 않고 간찰부터 내놓으란
게요?"
"꼴에 몽니께나 부리며 지분거리고
있네그려. 입맷상 내놓지 않으면 그 간찰
네가 삶아먹울래, 꼴같잖은 간찰 한 장
가져온 놈이 유서통(諭書筒) 짊어지고 온
놈처럼 감히 칙사(勅使)대접을 보고 호들갑
떨고 있네. 이 흉물스런 놈.
생색 내려거든 그 간찰 네놈이 삶아먹고
내어 대청 바닥을 치며 욕사발을 퍼붓는
터라, 남의 사타구니 긁는 일에 이골 나고
비윗장 좋은 방자로서도 달리 방책이
없었다. 서둘러 풍속에 간직하였던 간찰 한
장을 대청 위로 내던지듯 하고 섬돌 아래로
물러섰다.
그러나 봉함된 간찰을 뜯고 몇 줄 읽는
시늉하던 월매는 별안간 간찰을 북북 찢어
뜨락으로 내던지며 소가지를 부렸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있나. 우리
불쌍한 춘향을 토옥에서 끌어내라 하고
속전(贖錢)으로 바칠 어음 한 장 곱게
접어넣고 애간장 타는 장모님에게도 정표로
다시 어음 한 장 접어넣은 글발은 아니
보개고 가당찮은 입체(立替)를 서달라니,
이서방인가 개서방인가 그 놈 내앞에
내어서 산채로 염(殮)을 시키리라! 너 이놈
방자야."
"나 여기 있소."
"너 이놈, 섬밥으로 호궤(縞饋)을
시켜줄까. 몽둥이 찜질로 박살을 내줄까.
냉큼 한양으로 회정하여 창병(瘡病) 얻어
다리미자루도 못 쓰게 된 그 후레자식을
끌고오지 못하겠느냐."
"우리 도령님 두고 후레자식은 웬말이며
창병 얻었다고 어느 개아들놈이 그럽디까."
"이놈이 가재는 게 편이라는 것은 알아서
팔을 안으로 굽히나?
이놈아, 창병 걸린 놈이 아니라면 의원
찾아갈 돈은 왜 입체 서 달라는 말을
하였나."
그제서야 턱살을 고이고 앉았던 방자도
것이었다.
이도령이 남의 사정 잘 봐주는
호협사(豪俠士)라는 것은 춘향모도 잘 알지
않소. 한양의 색주가에 있는 홍색짜리
논다니들이 이도령의 준수하고 걸출한
외양에 환장하여 길모퉁이마다 지키고 서서
추파가 간드러지는 터라 그 애틋한
사정들을 괄시하고 두고 만 볼 수 없어
바지를 대중없이 자주 벗다 보보니
화류병이 들었는가보오."
"이놈. 허황된 말로 개도령.두둔하여
복장거리시키지 말고 썩꺼지거라."
"내쫓으면 가겠지만 옥에 갇힌 춘향이는
장차 어떤 고초를 당하겠소."
"누가 두 푼짜리 금어치도 없는 그
불망기(不忘記) 한 장에 눈이 멀었던 이
개도령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 푼짜리
금어치도 안되는 수절타령으로 저런 고초
겪지 않고 지금쯤 동헌 내당에서
호의호식에 갖은 영화를 누리며 내노라
하고 살았을텐데. 모두 미련한 이 어미
탓이여."
그때였다. 안방으로부터 버럭 화증을
돋구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 무슨 개 같은 언사인가. 춘향이
수절타령이 한 푼짜리 금어치라니.
나잇살이나 먹었단 주제에 크걸 말이라고
지절거리고 있나? 불망기를 건냈든 아니든
여염접의 규수가 한 사내에게 곁을 줬으면
그것으로 정절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비루잡년들 흉내내어 이놈 저놈에게
남원부중에서 내노라 하는 코머리
기생이라서 행세하자는 겐가."
놀란 것은 한 대 쥐어박힌 월매가 아니라
섬돌에 우두커니 앉았던 방자였다. 방자가
곡절을 몰라서 부시시 몸을 일으키고
일어서는데 미닫이가 열리면서 기골이
엉성하게 생긴 여염집 늙은이가 대청으로
나섰다.
말대꾸라면 얼음 위로 박을 밀듯 거침이
없는 월매조차 구린 입도 때지 못하고
주점주섬 마루로 나서는 그 낯선
늙은이에게 공손한 말로 물었다.
"어딜 가려고 불각시에 나서는 것이오."
춘향이를 옥에서 끌어내자면 속전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
집구석에 죽치고 앉아서 개도령을
늘어놓는다 해서 그 완악한 사또란 놈이
거들떠나 보겠나."
"요량분수나 알고 설치시오. 사또란 놈이
춘향을 내려가둔 것은 수청들이지 못한
설분이었지 속전 따위를 넘보고 저지른
짓이 아니지 않소."
"동에 닿지 않는 소리 그만하게. 세상에
돈으로 틀어막아도 아니 되는 것은 딱 한
가지 재채 기뿐일세."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수월찮을 속전을
우리 주제에 어디 가서 주선하겠소."
"그럼 집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하늘에서 돈푸대나 떨어지라 하고 축수나
할까. 관변의 앞잡이를 찾아가서 통사정을
하든지 아니면 저자거리에 나가서 매복하고
있다가 지나는 도부꾼 뒤통수쳐서
월매도 쥐어박힌 설치를 한답시고
이죽거렸다.
"도부꾼 뒤통수치러 간다는 분이
걸핏하면 휘두르는 방앗공이는 왜 가져가지
않소."
"몽둥이 찜질도 이젠 신물나고 진력나서
아니래도 나 시방 대장간으로 가려는
길일세."
"때 아닌 대장간에는 왜 가오?"
"식칼 벼르러 가네."
몰골이 후줄근한 늙은이들끼리 주고받는
말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깜냥을 짐작할
수 없었으나 어쨌든 최씨부인은 섬돌에
쭈그리고 앉은 방자는 한 번 거들떠보는
법도 없이 뒤축 떨어진 짚신을 꿰고
해적해적 대문 밖오로 나서는 것이었다.
베개하고 누웠다가 비몽사몽간에 한 잠을
꾸었더라. 날개 돋힌 새가 되어
주유천하(周遊天下)하다가 문득 집으로
들어가니, 문설주 위에 난데없는
허수아비를 달았고 뜨락에는
앵도화(櫻挑化)가 떨어졌고 별당에 있을 때
항상 들고 보던 거울 한복판이 깨어져
있거늘 문득 놀라 깨어나니 잠시 노루잠을
자던 사이에 꾸었던 꿈이더라.
꿈이 너무나 의미심장하고 불길한 터라,
무심한 옥졸을 넌지시 불러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 앞 못 보는 판수를 불러달라고
당부하였다. 옥졸에게 기별받은 판수가
그날 밤 늦게 옥으로 달려왔다.
판수는 뒤숭숭한 꿈자리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불문곡직 장창(杖瘡)난 다리나
끌러보았더니, 음흉한 판수놈이
외상(外傷)이 난 종아리는 만지지 아니하고
때묻은 손바닥을 넓적다리 안쪽으로 쓱
디밀었다.
"아뿔싸 몹시도 쳤구나. 김사령이 치더냐
최사령이 치더냐. 그놈들 내게 굿날 받으러
오면 절명한 날 앞당겨 가리어 줄 것이니
이 설치는 내가 따끔하게 해주마."
지절거리며 시그적시그적 고쟁이 속을
헤집고 손바닥을 점점 디밀다가 아니
들어와야 할 불두덩 언저리까지 기탄 없이
디미는 터라. 춘향이가 화들짝 놀라 분통이
터졌으나 비윗장 건드렸다 점괘를 이상하게
낼까 걱정되어 좋은 말로 달래었다.
"저의 부친께서 불행히도 먼저
하세(下世)하셨습니다만 판수님은 일찍이
하셨습니다. 상없이 그리말고 어서 점괘나
풀어주시오."
판수놈이 그 눈치 알아채고 서둘러
손바닥 수습하고 나서,
"네 말 옳다. 성참판 살아 생전 나와는
풋고추에 된장 궁합으로 막역한
사이였느니라. 부친과의 친교를
생각해서라도 단작스럽게 너와 복채를 두고
다투겠느냐. 꿈이나 소상하게 일러다오."
춘향이가 비몽사몽간에 꾸었던 꿈을
소상하게 듣고 난 판수는,
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宬實)이오.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문상(門上)에 현괴뢰(懸傀儡)하니
만인(萬人)이 개앙시(皆仰視)라.
이를 해제(解題)하건데, 꽃이 떨어지면
어찌 소리가 크지 않을까. 문설주 위에
허수아비를 달았으니 이는 이도령이 반드시
급제하여 쉬 만나볼 점괘로다
"어찌 그걸 바라겠소."
"내가 옷고름을 맺고 맹세한 것이니
조만간 그렇게 아니되나 두고 보게."
영험하다는 평판을 듣는 판수라면
모르겠으나 돌팔이로만 호기난 판수라차마
믿을 수 가 없었다. 곤장 삼십 대에 큰칼
차고 감옥에 내려갇힌 딱한 춘향의
넓적다리부터 해집고 드는 고얀 놈의
점괘가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맞을까.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이 겨릅이라도 잡는
법.
한 가닥 여망이 없지 아니하여 가슴속만
뒤숭숭 한데 이튿날 아침에는 구메밥을
방자가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지난 밤의
점괘가 사람 농락시키자는 흰소리만은 아닌
못하여 춘향이는 가슴이 덜컥하였다.
방자가 옥중을 둘러보니, 앞문에는
간살이 얼기설기 걸쳐 있고 뒷벽에는
외얼기만 남아 동지섣달 찬바람이 살
쏘듯이 들여불고 섬거적자리와 흙먼지는
발등을 덮었다. 들이치는 찬바람에
뼈마디가 져려옴직한데 큰칼 찬 춘향이의
매골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만치
수척하여 피골이 상접하였고 머리는
봉두난발이었더라.
방자가 눈물을 왈칵 쏟으며 간살 앞으로
엎어졌다.
"춘향아 이게 웬일이냐, 어찌하다 수채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나."
세 번 봐도 방자였다.
그리던 님이 아닐지언정 반갑기는 님
본듯하였다.
"방자가 어인 일이냐. 꿈인가 생시인가."
"꿈은 아니오만 아씨가 호들갑스럽게
반길 일은 아니랍니다."
춘향이 말 냉큼 가로채어 볼멘 소리한
것은 구메밥을 간살 사이로 디밀던
향단이었다.
"반길 일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무엄한
언사냐, 방자로 말하면 남원에서부터
도령님을 지성껏 배행하던 처지가 아니냐.
도령님 뵈온 것과 다름아닌 터에 어디서
자발없는 입정을 놀리느냐."
쥐어박힌 향단이가 샐쭉해서 야멸차게
쏘아 부쳤다.
칙사 대접하랍디까."
"불난 집에 키질이라니 그런 불길한 말이
어디 있느냐."
향단이가 이도령이 화류병을 얻어 의원
찾아 갈 돈이 궁해 월매 더러 입체
서달라는 간찰을 가져왔더란 말은 차마
못하고,
"아씨 속전을 주선할 일조차 막연한
판국에 어머님 사천을 꿔달라는 간찰을
갖고 온 방자를 흔연 대접하여 보낼까요."
"어머님 사천을 꿔달라니?"
"아마도 유흥비가 궁한 모양이지요."
"한양 같은 대처에서 준수한 사내가
우세당하지 않고 체통을 지켜 행세를
하려면 어째 유홍비가 들지 않겠느냐.
게다가 도령님은 나와의 인연으로 하여
못하는 어려운 형편일 게 분명하다.
오죽 절박하였으면 염치를 무릅쓰고
어머님께 입체를 서달라는 간찰을
보냈을까."
향단이가 기죽은 척하고 듣고 있자니
부아통이 터지는 터라 하지 않으려고
다짐두었던 말을 기어코 발설하고 말았다.
"유홍비가 아니라 화류......."
그러나 향단의 한마디가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춘향은 분연히 결을 내어
향단의 말을 가로채었다,
"화류, 화류 하지 마라. 누워서
침뱉기다."
그리고 가위가 질려 봇도랑에 박힌
말뚝처럼 꿈쩍 않고 서 있는 방자에게
묻는다.
"필낭 여기 있소."
방자가 괴춤에 차고 있던 필낭을 열고
지필묵을 꺼내주었다. 방자가 건네주는
지필을 잡고 간찰 사연 쓰려 하니 눈물부터
먼저 떨어져 그대로 수묵이 되었다.
춘향이가 눈물을 가다듬고 적되,

오늘 도령님 간찰을 가지고 남원에
당도한 방자를 옥중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애당초 도령님께서는 소첩이 당하는 고초를
모르시도록 감추려 하였던 좁은 소견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소첩이 겪었던 고초의 대강을
말씀드리면, 신관 사또가 도임하여 문득
소첩을 기안 (妓案)에 적바림하고 소첩으로
하여금 지위하여 난데없는 수청 들라 하니
아닌 여염의 아낙네로 일부종사로 정절을
지켜야 할 몸이라고 말하였으나 흉악한
사또가 중곤(重棍)을 내리고 덜컥
하옥시켰습니다.
나라의 곡식을 도둑질해 먹은 사실이
없거늘 엄증한 태벌이 웬일이며, 살인한
적이 없거늘 족쇄까지 채우는 흉악한 일은
어디있고 역률(逆律)한 적이 없는데 사지를
결박하는 것은 어인 까닭입니까. 그러나
가을 들판에 홀로 된 국화가 아침 찬서리와
저녁 삭풍에 부대끼지만 그 고결한 절개를
자랑하듯 소첩 역시 이만한 곡경에 훼절을
당하여 도령님께 떳떳하지 못한 계집되어
구차한 목숨에 기대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옥중을 바라보니 철옹같이 두른
담에 사람소리 끊어지고 외얼기만 남은
어렵습니다. 섬거적에 득실거리는 물것에
시달림을 당하고 깊은 밤에 들려오는
밤부엉이 소리는 애간장을 도려냅니다.
옥문으로 바라보이는 뜬 구름은 높기도
하고 귓결을 스치는 바람은 빠르기도
하건만 저는 어찌 사람되어 도령님 곁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방자 인편에 듣자 하니
도련님께서는 한양 가신 이후로 거의 문밖
출입조차 삼가시어 부도 공양에 진력하시고
또한 글공부에만 극력 몰두하시어 밤부엉이
소리조차 들으실 겨를조차 없다 하시니
심란한 중에도 그런 천행 없으시고
밤부엉이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소첩이
오히려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배행하는 방자에게 내리실
채통보전이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
방자로부터 듣고 소첩이 가군(家君)을
공양함에 이렇듯 소홀했음에 적지 않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리하여 이젠 낭군 없는 소첩에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다리(머리채) 끊어
방차 편에 보내드리니 방자가 이것을
저잣거리에 내다 팔아 몇 푼의
행하돈이나마 마련하라고 신신당부
하였으니 그렇게 아시옵고 밤을 도와 글을
읽으시는 도령님에게 잡념이 털끝만치도
있지 않게 하소서. 뵙게 될 날
학수고대하며 이만 총총 옥중에서
줄입니다.

붓을 놓고 춘향이가 뒤에 서 있던
덜컥 끊어내어 간찰과 함께 간살 사이로
내밀어 주었다. 춘향의 과단성에 기가 질린
방차가 선뜻 받아채지 못하고 뒷걸음치다가
춘향의 채근에 벌벌 떨리는 손으로 간찰과
다리를 받아쥐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
방자보다 향단이었다.
잠시 딴전을 팔다 보니 삼단 같던
머리체가 싹둑 잘려나간 터라 향단은
꿈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스럽지 못한
야단이 있을 수 없었으나 비윗장 좋게
다리를 받아쥐는 방자를 보고서야 꿈 아닌
생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정근(情根)이 그토륙 깊다
한들 색주가에 갖다 줄 유홍비로 쓰라 하고
머리채를 잘라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심상찮은 징조가 아닌가. 감옥살이 고초에
올곧은 정신 못 가진 것은 아닐까.
노망 가질 나이도 아니고 환장할 일도
없는 터수에 이런 요방분수 없는 불상사는
왜 저지는 것일까. 파랗게 질린 기색으로
입귀를 삐죽거리고 있던 향단의 입에서
곡지통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시끄럽다
면박하는 옥졸은 본체만체 간살 사이로
소을 디밀어 족쇄에 걸려 있는 춘향의 두
다리를 뒤틀어 잡았다.
"아씨. 이게 웬일이오. 당나귀 귀 떼고
나면 남는 게 뭐 있소.
아씨 설령 너울가지 있고 소견 넓다
할지언정 계집사람에겐 신주단지 진배없는
머리채를 끊어주다니오. 어머님 역증은
어찌 감당할 것이며 다리 팔아 한양
밑닦기로만 쓰신다면 어떻게 하실래요."
떨지는 못하고 긴 사설 늘어놓으며 앵두만
똑똑 따고 있는데, 향단으로선 미처 알 수
없는 한마디가 춘향의 입에서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내 딴엔 도령님의 의표를 찌른다 하고
다리를 끊어준 것이다. 어머님껜 고자질
말아라."
춘향이가 옥졸들이 보란 듯이 볼기짝을
드러내놓기 시작한 것은 방자 인편에
다리를 끊어 보낸 그날부터였다.
형방 아전들이나 옥사장이 죄수
점고(罪囚點考)를 나올 때는 물론이요,
옥졸들이 옥문 밖에서 파수(把守)를 설
적에도 영락없이 단속곳을 배꼽노리까지
휠씬 걷어올려 박속같이 희디 흰
넓적다리를 드러내놓고 훔쳐보는 일에
하는 것이었다.
옥졸들이 처음에는 춘향의 과단성 있는
거조에 놀랐다. 여염집에 들어앉은
규수이든 기방으로 나와앉은 계집이든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걸핏하면, 볼기짝을 드러내놓고
파수서는 욕졸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것은
버릇이 옳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울화가 치밀다보면 넓적다리를
노둔(露臀)하여 울화증을 다스릴 수도 있는
법이고 또한 진력나는 파수에 힐끗힐끗
훔쳐 보는 눈요기도 짭짤한 터라 외자하게
소문은 아니 내고 저회 동패들끼리만
숙덕거리고 옆구리를 툭툭 치며
킥킥거렸다.
그러나 발없는 소문이 빠르기는 살 같은
형방아전들에게까지 외자하게 퍼지고
말았더라. 아전들이 귀띔을 받았으니
형방이 알게 되었고 긴가 민가 소문의
진위를 손수 목도하고 싶었던 형방이 몰래
간옥으로 내려가본즉슨 허튼 소리가 아니란
것이 판명되었다.
한 번 가보고 두 번 가보고 또한 세 번을
가보았으나 허연 볼기짝을 기탄 없이
드러낸 춘향이가 큰칼에 상반신 의지하고
죽은 듯이 앉았더라 형방이 변사또를
뵈옵고 간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서롭지
못한 변괴를 낱낱이 고변히여 아뢰었다.
귀를 기울여 듣고 있던 변사또는 울컥
치미는 울화와 쓰린 속내는 감추고
태연스러우나 오지투가리 깨지는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구들방에서 넓적다리 내놓는 것을 딱 잘라
거절했으면서 섬거적에 물것들이
득실거리는 토옥에선 미천힌 것들에게
선심을 쓰는 게군. 그러나 그년의 알량한
깜냥을 나는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혜고
있느니라."
"춘향에게 딴 꿍심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치 않구. 그년이 지체가 하찮은
옥졸이나 판수가 바라보는 면전에서
볼기짝올 까발리고 있는 것은 그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어야서 나로 하여금 울화통이
터져 물볼기 맞은 설분을 하자는 알량한
심뽀가 아니더냐."
"명특하옵신 사또의 말씀 듣고 보니 정녕
못된 심뽀가 아닙니까."
갈보가 아니라고 핏대를 곤두세운 터이지만
토옥에 갇혀서까지 뭇사내의 시선을
어지럽혔으니 그로써 이젠 요조숙녀되기는
글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년의 눈꼬리가 갸름하되 아래로
처지지 않았고 면상이 거위나 거북이처럼
오똑하고 손바닥의 핏기가 붉을 뿜더러
어깨가 둥글고 옆몸통이 퉁통한데다가
눈썸이 꺾였으되 눈동자가 까맣고 눈
거죽이 덮이지 않았다는 것은 자식 내기를
잘한다는 징조가 아니더냐.
거기에다 젖꼭지만 까맣다면 그건 낳는다
하면 아들일세. 내가 젖꼭지도 볼 겸사해서
정녕 볼기짝을 드러내놓고 있는지 몸소
목도해야겠으니 오늘 밤에 형방이 와서
땅거미가 내린 그날 밤 또 다시 볼기짝을
드러낸 채 쥐죽은 듯이 누워 있다는
옥사장의 통기를 받은 형방이 선걸음에
달려가서 변사또를 토옥으로 안동하였다.
그러나 사또가 가보았을 때는 볼기짝은커녕
발목조차 치마 말기를 덮고 앉았던 터다.
눈요기나마 하려던 변사또는 또다시
창퍼당하고 머쓱해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볼기짝은커녕 발등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
형방이 쥐구멍이나 찾아들려는 듯
조아리며 둘러대었다.
아마도 밤기운이 매서운 터라 한속을
달랜다 하고 치마 말기를 발등까지 내린
모양입니다
이튿날 옥졸들은 수짜리 샅러 간 낭군
기다리듯 안달하면서 춘향이가 치마
걷기만을 학수고대하다가 또다시
야들야들한 볼깃살을 드러내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구르듯 작사청으로 달려가서
형방에게 통기하니 형방이 또한 엎어지고
자빠지며 동헌으로 달려갔다. 변사또가
형방의 발뒤축을 밟을 듯이 뒤따라
토옥으로 달려갔으나 볼기짝은커녕
바람벽을 마주하고 돌아앉은 춘향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명색 남원부사의 지체로 두 번씩이나
춘향의 희롱에 놀아났고 주변머리 없고
미련하기로 소문난 형방에게 농락당했으니
체통에 똥칠하고 비루한 사내로 남의
웃음거리 되었으니 변사또의 국량이
없었다.토옥을 나서는 길로 서슬 시퍼렇게
이방을 불렀다.
그러나 퉁인이란 놈이 납죽 업드리려다
말코 묵도를 쳐들고 아뢰는 말이
괴이쩍었다.
"이방께서 작사청에 얼굴을 디밀지 않은
지는 며칠 됩니다."
그 말에 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오른
변사또가 앞뒤 생각 없이 미닫이가
부서져라 밀어부치며 소리질렀다.
"이방이 안 보인다? 그 육시랄 놈이 어디
갔다더냐."
"나으리께서 관무첩을 건네주신
경주인(京主人)과 함께 서울 가는
대동선(大同船)을 탄 것은 오래전
일입니다."
일이라면 응당 호방(戶房)에서 주변할
일일터 어째서 이방아전이란 놈이 산신
재물에 청개구리 뛰어들듯 아는 체하고
주책없이 뛰어들었더란 것이냐."
"쇤네가 알기로는 나으리께서 엄히 영을
내리시어 이방에서 주선하게 된 것입니다."
통인이 내막울 분명하게 따져서 아뢰는
말에 울화를 터뜨리던 중에 식언을 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된 변사또가 이번에는 호방을
불러들이라는 분부였겠다. 호방이
달려갔더니 천만뜻밖에도 형방을 잡아들여
형틀에 잡아업치고 곤장 일백 대에
처하라는 분부였다.
엉뚱한 대꾸를 하였다간 당장 들고 있던
장죽으로 목덜미를 후려칠 기세가
역력하였으나 사또의 분부에는 위낙 허물이
"죄인을 잡아들여 치죄하고
사실(査實)하는 일이라면 응당 형방에서
주선할 일일터 시생에게 분부내리시면 자던
입에 콩가루 털어넣기가 아니겠습니까."
"아둔한 주제에 제법 변설께나 늘어놓고
있네그랴. 이놈아, 형방을 잡아들여
징치하자는 일에 형방더러 분부를 내리란
말이더냐? 식칼이 제 자루 찍는 걸 본 일이
있느냐."
말구멍이 막힌 호방이 내려가 서 형방을
끌어내라는 분부를 내렸고 춘향의 볼깃살
눈요기 못한 설분으로 미욱한 형방이 태벌
백대의 매타작에 애꿎은 볼깃살이 섭산적이
되어 흩어지도록 얻어맞고 곱다시 토옥에
내려갇히는 처연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의든 아니든 형방이 두 번씩이나
매타작이라 하였더라도 명분이야 없지
않았다.
그러나 호방도 직분에 없던 일에
뛰어들어 형방에게 욕을 안긴 결과를
낳았으니 작사청 아전배들에게
무릎맞춤이라도 당하고 따돌림이라도
당할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형방을
구명한답시고. 며칠 뒤 가만히 변사또를
찾아가 아뢰었다.
"나으리 지금 남원부중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무슨 이상한 소문이 떠들고 있길래
호방의 안색까지 이상한 것이냐."
"여염의 백성들이 과중한 혹세(酷稅)에
시달림을 당해 저자의 장꾼들의 수효가
요사이 둘어 부쩍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도로 고을의 물산들이 삽시간에
메말랐습니다."
"저자에 물산이 메말랐다는 것은 겨듭된
한재(旱災)로 흉년이 들었으니 당연한
이치요, 흥정이 되지 않는 것은 물산을
팔려는 남원 인근의 장꾼들이 이문을
과도하게 탐하여 억매 흥정 하려드는 데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였으니 뻔한 이치를
두고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는 망발은 어인
까닭인고."
"대저 벼슬아치란 것이 뇌물과 인정전이
많고 적음에 따라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에거늘 청맹과니도 아닌 호방도 익히
알고 있는 관변 퐁속이 아닌가. 그걸
가지고 이상하다면 또한 나와 농을 하자는
것인가."
않아 어사 출두가 있으리란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왜자하게 퍼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화들짝 놀란 변사또가 파랗게 질려
자리를 고쳐 앉을 줄 알았으나
천만뜻밖에도 미동도 않고 코방귀만
뀌었다.
"어사 출두?"
"예 그렇습니다."
"그거, 당하게 되면 낭패 아닌가?"
코방귀를 뀌었다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뜨끔했던지 겸연쩍은 얼굴로 호방을
바라보았다.
"소문의 출처는 차치하고서라도 방귀가
잦으면 똥 싸는 법. 소문이 왜자하게
퍼졌다면 멀지 않아 어사 출두가 있어
본때를 보이지 않겠나."
애 은 호방을 꾸짖고들 것 같았는데
시무룩해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래 호방은 방책이 있나?"
"젖었거나 말랐거나 신발이란 발에 붙어
있는 법. 시생으로선 나으리의 분부만을
따를 뿐입지요."
"자칫 경솔하게 굴었다간 패가망신
아닌가."
"대책없이 앉아 있다간 풍진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어사 아니라 어사의 할애비라
하더라도 뇌물로 막지 못하는 것은
억수장마에 불어나는 계곡물뿐이다. 호방은
당장 나가서 결세(結稅)하되 사결(四結)은
한 집에 열 말, 그리고 육결(六結)에는 석
섬씩이다.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에는
채워놓으라."
어사 출두의 침책(侵責)을 따돌릴 묘책이
있는가 해서 귀기울여 듣고 있던 호방의
안색이 그 순간 새파랗게 질렸다. 가만히
되세겨 보아도 똥눈 자리에 주저앉은
꼴이었다. 그러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혹세로 말미암은 불상사일진대
엎어진 놈 뒷덜미 짓누르는 격으로 과증한
결세로 방책을 꾸미시면 하늘을 찌르는
원성을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어사께 뇌물을 건네려면 창고에 쌓인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창고에 있던
것은 이방과 경주인이 대동선에 실어
한양으로 가져갔을 터, 빈 창고를 두고
어사를 맞이할 수는 없다."
변사또를 우두망찰하는데,
"네 입으로 젖었거나 말랐거나 신발이란
발에 붙어다니는 것이라고 다짐두며
장담했겠다? 다짐뒀으면 당장 시행하라."
"어사 출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다 하였지 당장 출두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꽃게나 방게나 옆으로 기기는
마찬가지라더니 이놈, 또 형방처럼 나를
두고 농간하자는 것이냐? 네놈의 입으로
대책 없이 있다간 풍진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맞장구친 것도 금방 잊었더란
말이냐? 이놈아 유비무환이라 하였다.
어사가 오늘 당장 들이닥치면 앞뒤 분간
없는 네놈이 나서서 뒤치다꺼라 다 할래?"
"시생이 어찌 그런 주변머리를
수 있는 탁견을 가졌다 하더라도 지체가
엄연한 터에 어사가 지방고을 작사청에서
구실사는 아전인 시생을 상종이나 하리까."
"그런데 엇따 대고 불손한 말대꾸더냐.
그러나 네놈이 미숙하고 주변없어 이를
시행하기가 수월치 않다면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도가 있다면 시생이 발 벗고
나서서 주선해 올립지요."
"호방이 나서서 춘향이를 노골노골하게
삶아서 내게 데리고 올수 있겠는가."
"춘향이는 시방 남간옥(南間獄)에 갇혀
있는 몸이 아닙니까."
"춘향이 토옥에 갇힌 것이야 너도 알고
나도 안다."
"호방이 잠시 가다듬고 생각해 보자니
수청들이지 못한 설분일시 분명하였다.
형방을 메타작으로 젓국을 만든 뒤
동간옥(東間獄)에 내려 가둔 것도 모두
춘향의 살꽃맛을 못 본 심술이요, 미주알이
터져나가는 애옥살이에 아침죽끼니조차
끊일 곡식도 없는 백성들에게 또다시 어사
출두를 빌미잡아 결세를 하자는 것도
춘향을 수청들이지 못한 설분이었다.
호방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분연히 일어나 시행해 올리갰다고 장담한
뒤 선김에 토옥으로 달려갔다. 옥문 간살
앞에 호방이 자지러질 듯 엎어지면서 반은
우는 목소리로 춘향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여봐라 춘향아. 남원부중 백성들 목숨
살리고 죽이고는 모두 네 한번 마음먹음에
앙갚음으로 형방을 매찜질하여 어육으로
만들어 동간옥에 내려 가두고 그로써도
심에 차지 않아 남윈부중 백성들께
혹세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으니, 너 한번
마음 바꿔먹으면 남원부중 백성들은 염병
난 동네에 도깨비 팔자로 거칠 것이 없게
되고 형방 역시 방면될 것 아니냐."
춘향이가 듣고 보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게 된 터라 겨우 고개를 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방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너는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너로
말미암아 형방이 태벌 백 대를 얻어맞고
동간에 갇히었다. 그러한즉슨 호방인 내가
간옥까지 찾아와서 너의 선처를 바라는
것이다. 편의를 봐다오."
보러왔소."
"코에서 흙냄새가 나는 내가 네
넓적다리를 훔쳐본들 회가 동하 겠느냐. 네
넓적다리에 환장한 사람은 다름아닌 사또일
터. 네가 남원부중 백성들의 목숨을
건지려거든 나와 같이 동헌방으로 가자."
"가서 뭘 하게요?"
"사또의 소원이 너를 동헌으로 데려만
와달라는구나. 동헌방에 너와 사또가 둘이
있을 제, 그 방에서 무슨 북새통이
벌어지든지 내 알 바 아니지 않느냐."
"쇤네가 꼭 가야 하겠소?"
"꼭 가줘야 하겠기에 늙은 내가 몸소
간옥까지 찾아오지 않았더냐."
"남원부중 백성들이 나로 인하여 모진
고초당하고 있소?"
네 앞에서 거짓 둘러대겠느냐."
잠자코 있던 춘향이가 고개만
끄덕이었다. 호방이 옥졸 시켜 서둘러 칼을
벗기고 족쇄를 벗기었다. 춘향이가
호방에게 아뢰었다.
"계집사람의 처지로 이토록 남루하고
또한 매골이 꾀죄죄하여 동헌으로 나가기가
내키지 않습니나."
옥졸들이 동이로 물을 떠와서 머리 빨고
세수시키고 호방은 옥사장 시켜 솔기가
빳빳한진솔 일습을 주선해 와서 업히고
담장화복(淡粧華服)하였으니 그동안 시각은
흘러 땅거미가 내리고 둥근 달이 휘영청
밝았더라.
호방이 몸치장 곱게 시킨 춘향이를
이끌고 성큼성큼 동헌으로 들어가 누마루
"사또 나으리 춘향 데려왔습니다."
잠시 노루잠에 떨어져 졸고 있었던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로 늑장을 부리더니
변사또의 얼굴이 미닫이 밖으로 나타났다.
"어인 소동인고?"
춘향이 데려왔다는 말을 들었음직한데
묻는 말은 손자밥 떠먹고 천장
쳐다보기였다. 그러나 호방은 생색낸답시고
다시 한번 우렁찬 목소리로 아뢰었다.
"나으리, 춘향 대령하였습니다."
"데려왔으면 냉큼 들어올 일이지 어인
수선인고."
호방이 춘향을 이끌고 등촉 불빗이 눈에
시린 동헌방으로 들어 갔으나 춘향은
수인사도 없었을 뿐더러 변사또를 쏘아보는
눈길이 곱상스럽지가 않았다. 변사또가
"너는 심기를 고쳐먹었더냐?"
"쳐먹을 것이 없사온대 무엇을
고쳐먹으란 것입니까."
"호방이 네게 한 말이 없었더냐."
"동헌방까지 동행하자고 우는 소리로
권유하는 터라 뒤따라온 것뿐입니다."
"그럼 심지를 고쳐잡지 않았더란
것이냐."
"벼룩이가 둔갑하여 호랑이가 되는
세상이 온다 하여도 쇤네가 나으리 앞에서
가랑이 벌리는 일은 없을 것이오."
빙판에 자빠진 황소 누깔이 된 호방이
고깃덩이만 남아서 춘향을 등뒤에서
바라보는데, 변사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어쩐셈인지 나지막하였다.
"네가 쓰고 있던 칼과 족쇄는 어느 놈이
"파옥이 아니라 옥사장이 풀어준
것입니다."
변사또의 눈길이 가위질려 있는
호방에게로 건너갔다.
"내가 춘향을 방면시키라는 신칙(申飭)을
내린 적이 없고 또한 신칙을 내렸다
하더라도 이것은 형방의 직분으로서 주변할
일일터. 호방인 네가 무슨 배짱으로 형방의
직분을 넘보고 죄수 방면을 시켰더냐."
언사를 보자 하건대 이치에 틀림이 없고
또한 장차 뒤집어쓸 죄책이 눈앞에 선한
터라 느닷없이 벌떡 몸을 일으킨 호방이
변사또에게 너부죽하니 큰절 올리며
아뢰었더라.
"사또 나으리 성찰하십시오."
"똥싼 주제에 매화타령이라더니 이놈이
지절거리나. 네 놈이 저지른 죄를 알렸다?"
"사도 사또의 심중을 해아림에 시생의
안목이 졸렬하여 이런 실책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이놈아. 내가 이르기를 이 계집올
데려올 수 있겠느냐는 의향만 넌지시
물었을 뿐인데 칼 벗기고 족쇄 벗기고
유두분면(油頭扮面)으로 단장 곱게 하여 달
밝은 밤에 데려온 것은 날 복장거리
시키려고 데려온 게 분명한 것 아니냐.
이것은 작사청의 간특한 아전배들이
저들끼리 통모하여 나로 하여금 실성케
만들어 관장으로 서의 직무를 중도
파기시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증거가
뚜렷한 터, 네놈을 그냥 둘 수 없다."
"나으리, 시생을 측은하게 여기시어
변사또는 호방의 쥐어짜는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문을 열고 호령하였다.
"게 누구 없느냐?"
"예, 대령하였습니다."
"이 춘향이년을 끌어내어 두 번 다시
파옥하지 못하도록 잡도리해서 하옥시키고,
이 호방이란. 놈도 여축 없이 뒷결박해서
동간에 내려 가두어라."
<네> 소리 길게 늘어뜨리던 통인
사형들이 또 다시 우루루 달려와서 춘향과
호방을 밖으로 끌어내었다. 춘향 갇히고,
형방 갇히고, 호방까지 갇히었고 주변머리
있다는 이방은 한양 가고 작사청에 남아
이제나 저제나 하고 떨고 기다리는 것은
예방과 공방뿐이었다.
그러나 변사또 남원부사로 도임한 이래로
타먹기 겸연쩍고 사람들은 빈축이라,
작사청에 등청을 해선 해질녘까지 밖으로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저녁 굶은 시어미
판으로 앉았더라.
장돌림에개 관무첩을 건네주고
경주인으로 발탁한 다음 그를 떠라 한양
갔던 이방이 남윈으로 회정한 것은 발행한
지 두달포가 되어서였다. 당장 작사청으로
달려가지 않고 예방의 사처를 찾아갔다.
예방은 지난날 소시적에 한 서당에서 글을
읽었던 동접배인 그를 보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영문을 몰랐으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이방이 새파랗게 질려 곡지통을 쏟아붓는
예방을 손사래 쳐서 만류하였다.
"족하(足下)는 왜 이러시는가. 체통올
터뜨리다니. 권속(眷屬)들이 보면 웃겠네.
고정하시고 체통을 가다듬으시게."
"아직 노독도 덜 풀린 터수에 내가
소매를 잡고 누추한 꼴을 보여
죄만스럽네."
"필유곡절(必宥曲折)일태지. 오십연갑에
이른 사람이 까닭없이 질질 짜겠나. 그동안
차를청에서 겪은 곡경이 수월찮았던 게재."
"곡경뿐이겠나. 여북했으면 구실살이
집어치고 산간벽지로 들어가서 화전이나
일구며 살겠다는 각오를 수십 번이나
했겠나.
그러나 진작 작정을 고쳐가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동접배인 이방의
얼굴이나 보고 떠나자고 차일피일하고
있었던 것이네."
멈추게 하고 그 동안 남원부중에서
일어났던 불상사의 자초지종올 세세하게
들었다.
"구실살이 이십오 년에 이토록 비루하고
지저분한 시달림을 받아보긴 처음일세.
길거리에 나가면 혹세에 부대끼는 부민들이
삼삼오오 짝패를 이루고 축담 뒤에
숨었다가 돌을 던지고 수채바가지를
덮어씌우는가 하면 집에 오면 성참판의
내자(內子)였던 최씨 부인이란 엄장 큰
계집이 하루도 빠찜없이 삽짝을 지키고
섰다가 내 딸 춘향이 내놓으라고 포달을
떨며 넉장거리로 딩굴고 있으니 심란하기
그지없었네.
작사청으로 나간들 언제 끌어내어서 덜컥
하옥을 시킬지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내게
있는가. 재수 없는, 강아지는 낮잠을 자도
호랑이가 꿈에 뵌다더니 무슨 놈의 팔자가
늙바탕에 와서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가."
이방이 맞장구를 쳤다.
"뒤에서 쫓아오는 호랑이는 속여도
앞에서 오는 팔자는 못 속인다 하지
않았던가. 헌데 사또께선 춘향을 방면시킬
의향은 조금도 없어뵈던가?"
"방면 같은 얘긴 입에조차 담지 말게.
형방이 갇히고 호방이 갇힌 것도 모두
춘향이로 말미암은 것인데, 간옥에서 목숨
떨구어서 송장되기 전까지는 방면되지 못할
것이야."
"춘향이도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던가?"
"굽히는 게 뭔가. 날이 갈수록 입에
둔갑장신을 하여 호랑이가 되는 세상이
온다 해도 춘향이 가랑이는 벌리지
않겠다고 땅땅 별러서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이 사또의 복장만 뒤집고 있다네. 그런
골을 뻔히 바라보고 있는 사또가 춘향을
내놓겠나."
"월매가 나서서 사또를 구워삶지는
않던가."
"구워삶기는커녕 되려 이간질이나 하고
다니는 푼수를 보자하니 기가 막히더군.
사또에게 말미만 났다하면 동헌으로
달려가서, 춘향을 수청들이게
꼬드겨보겠다고 알랑방귀를 뀌고.
춘향을 찾아가선 인종지말이
이도령이라고 갖은 욕설과 공갈에
협박이지만, 사또는 들은 척도 않고 춘향은
이튿날 해질 무렵 이방은 한양 대녀온
회정 인사 여쭙는다 하고 동헌방으로
찾아갔다. 좌우를 물리친 연후 호젓한
가운데 이방이 현신하고 아뢰었다.
"사또 시생 한양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두 달포 간이면 두 번 내왕도
수월했을 노정인데 이렇게 지체된 까닭은
뭔가?"
"그것은 길미를 노리는 안목이 출중한
경주인을 뒤따라 다니면서 물리를 익히느라
지체된 것입니다."
"임자가 장사 물리를 익혔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지방 고을마다 시겟금이
들쑥날쑥이라, 어는 고을에서는 나락 한
섬이 소금 열 말 금어치가 되는가 하면
어느 고을에선 나락 한 섬이 소금 두 섬
그래서 맨 처음 시생이 가져간 것은
나락이었습니다만 소금값이 눅은 고을에선
나락을 팔아 소금으로 바꾸어서 소금값이
천세가 나는 고을로 가서 팔고 다시
나락으로 바꾸었으니 한양 마포나루에
당도하고 보니 남원에서 가져갔던 나락
이백 섬이 어느덧 삼백 섬이 되더이다."
그때였다. 변사또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무릎을 치는 것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방이 길미를
놀리는 솜씨가 탁견이란 것을 내 진작부터
알아채고 그 주변머리 없는 호방을 제치고
이방을 한양으로 보낸 것이 아니더냐."
"그래서 한양 조창(曺倉)에 넣은
세곡(稅穀) 이백 섬을 떼고 나니 이문으로
남은 것이 또한 일백 섬이라 경주인이
객주에 넘기자 십오만 냥의 눈먼 돈이
고스란히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십오만 냥이라면 서울 북촌 내노라 하는
대가집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는
사고도 남을 돈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육십 간 집 한 채는 사고도
남을 전량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 십오만 냥을 나귀등에 싣고
왔나? 아니면 어음으로 갖고 왔나."
"어음이었습니다."
"내가 임자의 노고를 외면할 수 있나.
이십 냥을 뚝 때어서 상금으로 내리겠네."
"그런데 어음은 시생이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자가 지니고 있든 경주인이 지니고
있든 내 수중에 둘어오면 되었지 무슨
"경주인의 수중에 있긴 합니다만 그
음흉한 놈이 사또와 홍정을 벌이겠다 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한양에서
남원회정 때까지 시생이 그 어음을 넘겨
받으려고 수십 번이나 경주인놈을 공갈하고
다독거리고 위협하고 또한 좋은 말로
꼬드겨도 보았습니다만 그놈이 고집을
부리며 오히려 비수를 들이대고 시생의
뱃구레에다 맞창이라도 낼 것처럼 위협하는
터라, 가까스로 목숨만 붙여가지고 남원
당도한 것입니다."
"이제 뭐라 하였나?"
"겨우 모가지만 붙여가지고 남원
당도하였다고 여쭈었습니다."
"버릇 배우라니까 과부집 문꼬리 빼들고
엿장사 부른다더니, 이 육시를 할 놈이
단불에 기름 끼얹은 셈이었다. 아니래도
울화가 치밀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판국에
세곡(稅穀) 싣고 대동선 타고갔다 돌아온
이방이 경주인에게 십오만 냥의 어음을
잘취당하고 죽 쑤어서 개 퍼주고 말았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지절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복장 치고 자빠질 일이었지만
소상한 내막을 알아보고 난 연후에 방책을
마련할 일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경주인이란 놈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남의 어음을 가로채고
무슨 흥정을 하자는 것인가, 오장육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변사또는 가까스로
억눌러 참고 물었다.
"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더니 흡사 그 짝이 되었구만.
"시생이 궐놈의 거처를 알고는 있으나
지금 당장 말씀드리기 거북합니다."
"지금 나와 각축을 벌이자는 수작인 것
같은데 올바른 정신으로 말하고 있나?"
"시생이 잘난 체하고 궐놈의 거처를
이실직고 하게 되면 사또께서 분기탱천하여
당장 포졸들을 풀어 궐놈을 덮쳐
추포(追捕)하려 들겠지요. 궐놈이 위급하게
된 것을 눈치채고 손바닥만한 어음을
불살라버리거나 씹어 삼켜버린다면 그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아닙니까.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를 살 금어치의
어음이 없어진 뒤에 궐놈을 엮어들여
분풀이한들 도대체 무슨 소득이
있겠습니까. 완력만이 힘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기와 꾀도 힘이 될 때도 있는
욱하는 화증대로라면 이 알량한 이방놈을
대매에 쳐서 박살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분김이 솟구치는 대로 숭어뜀을 하기엔
너무나 애 은 일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깨달았다.
"놈이 감히 나와 홍정하자는 게 뭐냐."
"사또께서 미복잠행(微服潛行)으로
궐놈의 거처로 찾아오시되 춘향을
배행(陪行)시키라는 엉뚱한 청입니다."
"춘향을?"
"그렇습니다."
"아니, 그놈의 춘향을 넘보고 이런
도섭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냐?"
"시생도 궐놈의 꿍심을 미처 해아리기
어렵습니다. 궐놈이 춘향과는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 한양 내왕 길목에선 들병이를
술한 색주가에서 논다니들의 추파를
받았건만 색을 탐하여 계집의 옷을 벗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궐놈이 남원땅
춘향이가 국색이란 것은 소문 들어 알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춘향이를 볼모로 잡고 난 연후에 어음을
건네주겠다는 수작임이 분명하군."
"그러나 사또께서 춘향 한몸 수청들이기
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정성이 어떠하며
춘향으로 말미암은 수치와 억울함을
감내하시느라 침식조차 잊다시피 하셨는데,
십오만 냥의 돈이 아니라 백오십만 냥의
거금이라 할지언정 어찌 춘향을 볼모로
잡히고 어음을 건네받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니 시생으로선 주둥이가 열
없습니다. 변고가 여기에 이르렀음에
사또의 보필에 소홀했던 것은 돌이 킬 수
없는 죄책이 되었고, 또한 십오만 냥의
거금을 그 두억시니 같은 놈의 손에서
거두지 못한 죄도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생이 가야 할 길은 뻔합니다.
시생은 비수로 자문하겠으니 사또께선 만에
하나 만류하실 일이 아닙니다."
이방이 힐끗 보자 하니 변사또가 깔고
앉은 비단 보료가 흠뻑 젖어 있었다.
식은땀을 얼마나 홀렀으면 보료가 흠뻑
젖었을까.
저렇게 많은 땀을 흘렸으면 속은 얼마나
뒤집혔을까. 그런데도 과단성을 보이지
않고 국국 눌러참고 앉아 버티는 변사또의
짐작하기 어려운데 변사또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죽는다는 소리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시생이 흰소리로만 지절거린 것은
아닙니다."
"임자가 죽고 나면 그 경주인이란 놈이
매복하고 있는 잠처(潛處)를 어디 가서
찾아낼 수 있겠나. 임자 역시 그런 정상을
익히 눈치체고 내게다 그놈이 매복하고
있는 사처를 실토정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놈의 간특한 속셈 못지 않은
꿍심은 내게도 없지 아니하다. 그 미천한
것이 감히 춘향의 살꽃을 넘보고 십오만
냥과 바꾸자는 수작임이 분명한데, 그놈이
알아했다지만 춘향의 절개가 돌처럼 굳다는
것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불찰이 없지
아니하다. 날아가는 새도 분부 한마디로
떨어뜨릴 만한 남원부사의 권세와 눈 한번
부릅뜨면 남원부중이 떠는 으름장으로 안
될 것이 없다지만 알량한 볼기짝에
손바닥만하게 불어 있는 춘향의 절개만은
꺾지 못하였다.
그놈이 항우와 번쾌의 용력을 가지고
변강쇠 뺨칠 만한 절륜한 생고기를 하초에
달고다닌다 할지라도 춘향이 가랑이는
벌리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삼강행실도를 터득하여 내외가
분명한 춘향이가 실성하지 않았다면 그런
불상놈에게 곁을 주기는커녕 말대꾸나
제대로 하겠더냐. 가자. 춘향을 옥에서
곱게 다뤄 데리고 가서 십오만 냥
찾아내자."
"아니됩니다. 춘향이가 옥에서 풀려나는
것만 천행으로 여겨 그 창귀 같은 놈에게
추파라도 던지게 된다면 사또께선 꿩은
거두었으되 알은 놓치는 격이 아닙니까.
차라리 꾀를 써서 춘향이 몸종인 향단이를
춘향처럼 꾸며서 데려가는 것도 경황중이라
하나 생각해 봄직합니다."
"그놈이 춘향이와 일면식도 없는
처지라면 이방의 꾀가 그럴싸하다. 또한
향단이를 잡아업쳐 두들기면 따라올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방 네놈이 그 자발없는
주둥이로 춘향의 모색을 세세하게 그놈에게
고자질하였겠으니 그놈이 천하에 짝이 없는
숙맥이 아닌 이상 춘향 아닌 딴. 계집
어찌 듣고 보면 이방의 계략이나 경주인
장돌림의 속셈까지도 손금 둘여다보듯
환하게 꿰고 있는 듯한데 변사또는 또한 그
나름 대로의 그럴싸한 기책(奇策)이 없지
않았던지 전혀 주저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변사또는 도임한 이래로 단 한번도
벗었던 적이 없었던 관복을 거침없이
벗어먼지고 비복(微服)차림으로 동헌
대청으로 나서면서 춘향의 거동이 왜
이토록 굼뜬 것이냐고 호통이었다.
통인이 설설 기면서 남간의 토옥과 동헌
뜨락을 몇 번인가 내왕하던 끝에 가까스로
얼추 입성치례를 시킨 춘향을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그놈이 수행(隨行)을 두지 말라고
경계하였다니 딴 도리 없이 이방이
이방이 배행꾼이 되어 동언 뜨락
가로질러 중문으로 나설 제, 변사또는
절룩거리는 춘향을 곁부축해서 뒤따라
나섰더라. 춘향은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는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고 변사또 역시 그 동안에 벌어졌던
사단의 시말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남문(南門)인 완월루(翫月樓)를 벗어나
성벽을 오른손 편으로 끼고 서쪽으로
발행하니 멀지 않아 관왕묘(關王廟)가
나서고 축천정(丑川亭)앞을 흘러
용투산(龍鬪山) 산자락에서 함류하는
요청(川)이 가로막고 있었다. 잠자는
사공을 깨워 요천을 건너는데 뒤쪽으로
바라보이는 서문(西門)인 망미루(望美樓)를
바라보면서 변사또는 이방의 귀에 대고
"내 수하에는 백여 명이 넘는 포졸들이
있다. 그놈이 춘향을 낚아채서 달아날 제,
날개 달린 천리마만 타지 않았다면 삼십 리
안짝에 두 연놈을 냉큼 추포(追捕)할 수
있다. 내가 분수 없이 미행(美行)을 나설
어설픈 위안으로 보았다면 그놈 날 대단히
잘못 보았다."
그리고 뱃전 가녘에 장옷 쓰고 기대앉은
춘향 보고 묻더라.
"몇 달포를 찬서리 치고 바람소리 스산한
토옥에 갇혔다가 오늘 이토록 소술한 달을
보며 선유가(船遊歌)가 없고 술 없고 안주
없어 섭섭하다 할지라도 남원절색 춘향
있고 충직한 이방 있고 또한 노 젓는
사공이 있으니 가위 무릉도원이 아니냐.
오늘 너 춘향과 잠시잠깐 나와 이별할
뒤쫓아가서 네 손목을 낚아챌 터, 어느
놈이 널 끌고가더 라도 푼수를 모르고 희희
낙락하지 마라."
입 무거운 사공이 배를 나루에 갖다 대고
허리 굽혀 조아린 뒤에 서둘러 배를 몰아
돌야설 제, 족등을 손에 든 이방은
종종걸음으로 선머리에 섰다. 그곳이
곧바로 기린산(麒麟山)산자락 아래인터라
아뿔사, 사공더러 강 건너지 말고 나루에서
기다리고 있으란 말 잊엇구나 하였지만
선머리에 선 이방의 발걸음이 선불 맞은
노루처럼 경황없이 빠른 터라 변사또 역시
바지가랑이 걷어부치고 종종걸음이었다.
당도한 곳이 기린산 산자락 아래에
깊숙이 들어앉은 여염집 사처인 터라 늙운
노파가 나와서 삽싹을 마추는데, 그 노파의
알아챈 사람은 눈치 빠른 춘향이 더라.
변사또는 노파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한
번 거들떠 보는 법도 없이 잰걸음으로
손바닥만한 뜨락으로 들어서면서 불 켜진
봉노를 가리키며 이방에게 물었다.
"그놈이 저 봉노에 있느냐?"
"그렇습니다."
"춘향은 여기 서 있을 것인즉 이방이
들어가서 어음을 가져오라."
이방이 들어가서 한동안 숙덕거라는가
하였더니 황망히 섬돌을 밟고 내려서면서
사또에게 나직히 아뢰었다.
"사또께선 잠자코 시생을 따라오십시오."
"또 무슨 간계더냐?"
"간계가 아닙니다. 춘향을 잠시 뜨락에
세워두고 시생을 따라 오십시오. 어음이
"그놈은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더냐."
"사또와 마주쳐서 좋올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달을 보면 되었지 가리키는
손가락이야 구태여 가려서 뭘 합니까."
변사또가 엉겁결에 춘항을 세워두고
십오만 냥짜리 어음이나 마찬가지인 이방의
뒤를 따라 저만치 삽짝 밖으로 나섰다.
"어음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사또
도임할 임시에 요천 건
성첩(城牒)가장자리를 뛰어넘어
오셨다지요. 그때 그 성첩자리에 십오만
냥짜리 어음을 돌 하나로 짓눌러 놓았다니
시생이 살같이 달려가서 어음을 찾아올
것입니다.
사또께선 여기 머물면서 춘향을 엄중히
파수하고 계셔야 하겠습니다. 자칫 한 발
당할 것입니다. 만약 사또께서 시생을
의심하여 시생더러 춘향을 파수하라시고
몸소 요천을 건너신다면 시생이
섬섬약질이라 십중팔구 저 흉포한 경주인
놈에게 춘향을 탈취당할 것입니다."
말인즉슨 그럴싸하였다. 그러나 의심은
또다른 의심을 낳는 법, 이방의 말이 이방
자신이 거기 남고 변사또에게 성첩
가장자리에 있는 어음을 가져오라 하고
부추겼다면 변사또는 필경 이방더러
다녀오라는 분부를 내렸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변사또는 이방 또한 경주인과
한통속이 아닐까 해서 당초부터 의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변사또가 손사래를 치고 나섰다.
"아니다. 내가 다녀오겠다. 기골로 보나
잔망스런 이방보다는 내 걸음이 한결 빠를
터. 이방은 여기서 꼼짝말고 춘향을
파수하라. 저놈이 설혹 흉포한 놈인들 감히
남원부사를 끝까지 농락하려들 뺏심은 없을
터. 그렇게 되면 오늘밤 밝기 전에 제
신세가 어찌된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그 한마디 남긴 변사또가 숭어뜀을 하며
뛰어갈 제 삽짝 밖에서 벌어지고 있던
광경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던 최씨부인이
그때 울타리 곁에 서 있는 춘향의 손을
덥석 잡아 끌었다.
"가자 포졸들이 기찰(譏察)을 펴기 전에
어서 가자."
"어머님 한 치 앞을 못 가리는 이 밤중에
어디로 가자는 것입니까. 그리고 제가
장달음을 놓는다면 이는 필경 파옥(破獄)이
"파옥이라니? 옥사장이 손수 옥문을
열어주었고 사또란 놈이 너를 여기까지
동행해온 것도 파옥이란 말이냐. 입씨름
하고 있을 겨를 없다. 선걸음에 지채 말고
어서 여기서 떠나자."
그로부터 달포 뒤에 월매의 집 삽싹문
밖에 한 사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춘향이가 옥중에서 모매불망 기다리던
이몽룡이더라. 이몽룡이 남원 당도하여
해질녘을 기다리려 월매집을 찾아가니 바깔
남새밭의 개바자는 말할 나위도 없고
울타리조차 자빠져서 마당은 개똥밭이
되었더라.
지붕은 서까래만 남아서 들쑥날쑥인데
개조차 짖지 않더라 마침 마당 귀퉁이에
입성이 남루한 월매가 쪼그리고 앉아
싶었으나 우선 통자를 넣었다. 그러나
월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뒤돌아보는
법도 없이 대답하되.
"뉘신데 이 심란증에 부르는고."
이몽룡이 대답 없자, 무심결에 힐끗 뒤를
돌아다보더라. 갓모자 없는 헌
파립(破笠)을 초사(草紗) 갓끈 달아
동여쓰고, 구멍 숭숭난 헌 도복(道服)에
무명실 띠를 흉중에 둘러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송방울 선추(扇錘) 달아 햇살을
가리었고, 괴춤에는 툭수리 하나늘 꿰찬
천둥벌거숭이 하난가 쭈그리고 서 있는
터라.
"툭수리는 차고 있다 하나 누깔은
온전하게 갖고 있을 터. 타개 죽 끓이고
있는 궁핍한 애옥살이를 몰라서
쏘아부치는 월매의 입정이 맵짜다.
"장모. 내 모색을 알아보지 못하겠나."
"이놈이 환자(還子)독촉하러 온 놈인가.
냉큼 돌아서지 않고 왜 자꾸 지분거리나.
날 보구 장모라니, 용이 개천에 떨어지니
각다귀가 대들더라고 내 매꼴이 사납게
되었다 해서 툭수리 찬 상거지가 하게 말로
대접 아닌가."
"장모 나 이몽룡일세."
"이놈이 감히 누굴 사칭하나."
아궁이에 삭정이를 걷어넣던 불당그래를
들어 목덜미를 내려치는데, 마침 뒤곁에서
돌아나오던 향단이가 월매에게 얻어맞고
있는 사내가 이도령인 것을 알아채고
월매를 잡고 포달이다.
"사위는 백년지객이라 하였는데, 어찌
그제서야 월매가 소매로 눈시울을 닦고
상거지를 눈여겨보았다.
이몽룡이란 것을 알았으나 월매는 병반
놀라는 법도 없이,
"이 꼴이 왠 일이요."
"양반이 그롯되매 형언할 수가 없게
되었네. 그러나 방자가 허행해서 내 다시
찾아왔네."
"이런 무정한 위인이 있나. 일차 이별
후에 입체 서달라는 간찰한 장 방자 편에
띄워보낸 이후 종무소식이더니 상거지가
되어왔구나. 그러나 쏘아놓은 화살이요
엎질러진 물일지언정 내 딸 춘향
어쩔텐가."
화가 머리 꼭두까지 치밀어 오른 월매가
달려들어 이몽룡의 코를 입으로 물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한다는 말이
고이하다.
"장모 내 탓이지 코 탓은 아니지
않은가."
"양반 그릇되매 간롱(奸弄)조차
들었구나."
"애꿎은 코 물어뗄 요량은 말고
허기졌으니 밥이나 한술 내놓게."
그때 향단이 우루루 달려와서 이몽룡의
바지를 뒤틀어 잡고 늘어지며 긴 사설
늘어놓았다.
"향단이 문안이요. 대감님 문안
어떠하옵시며 대부인 기후 안녕 하옵시며
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히
행차하셨습니까."
"오냐 고생 어떠하냐."
먹다 남은 조밥덩이에 시퍼런 섞박지와
된장 한 술 찍어 떠서 개다리소반에 얹어
마루끝으로 내놓았다.
"더운 진지할 동안 시장하실텐데 우선
요기부터 하옵소서."
게걸들린 이몽룡이 선뜻 섬돌 딛고 마루
끝으로 엉덩이를 걸치려하는 찰나였다.
불당그래 손아귀에 잔뜩 힘주어 쥔 월매가
달려와서 개다리소반을 대매에 박살내고
말았다.
이놈아. 그 꼴에 양반 자세하는 이
미련한 불상놈아. 무슨 염치로 처가라고
찾아와서 끼니를 구걸하느냐. 당장
도륙내기 전에 썩 비켜나지 못할까."
담벼락 위로 구경꾼들의 머리통이
들쑥날쑥하는 가운데 월매에 쫓긴 이몽룡이
월매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네놈의 주린 배를 채우려면 변사또
생일이 바로 오늘이어서 관아에서
성연(盛宴)을 베푼다 하니 거기 가서
네놈의 양반놈들 구미에 맞는 음식이나
구걸하거라."
그러나 이몽룡이 뒤돌아보며 한 마디
던진다.
"춘향만은 보고 가야 할 것 아닌가."
"변사또인가 두억시니인가 그놈에게
물어볼 일. 우리 춘향이 집에는 없다."
월매에게 쫓겨난 이몽룡이 하릴없이
홍살문 안으로 들어가서 탐지하였더니,
과연 본관(本官)의 생일날이라. 가근방
수령(守令)들이 모여들고 있더라.
운봉(蕓峰)영장(營漿), 구례(求禮),
진안(鎭安), 장수(長水)의 원님들이 차례로
모였더라. 왼쪽에 행수군관(行首軍官),
오른쪽에 청령(聽令), 사령(使令),
한가운데 본관은 주인이 되어 통 인 불러
분부하되,
"관청색(官聽色) 불러 다담상 올려라,
육고자(肉庫子) 불러 큰 소잡고 예방(禮房)
불러 장고 대령하고, 승발(承發) 불러
차일(遮日)치고, 사령은 범접하는 잡인을
금하라."
이몽룡이 문밖에서 기웃거리다가
수직사령 잠시 소피보러 간 사이에
동헌으로 숨어들어 청상에 올라 한마디
거들었다.
"여보게 사령들 먼 곳에서 온 걸객이
오늘 성연을 맞이하여 고기 한 점
여쭈어보게."
사령이 그 말 듣고 화중 돋궈 꾸짖었다.
"저놈이 환장을 하였나.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서 감히 너나들이로 대청을
청하는게 사령들이 바삐 끌어내려고
북새통하는 중에 마침 대청 가년에 앉았던
운봉영장이 보자하니,
폐포파립(廢怖破笠)의 형상이 꼴불견이긴
하나 본래 가진 풍골은 귀골이요 허우대는
준수하더라.
사십안짝에 틀림없이 정승 될
관상이었다. 운봉영장이 사령들을 나직한
말로 꾸짖고 대청 끝 마루에다 한상 차려줄
것을 분부하였다. 시큰둥해 있던 사령들이
이윽고 개다리소반 하나를 이몽령의 발치에
덜컥 갖다 놓았다.
한개, 대추 두개, 밤 하나, 소금 한 줌에
이빠진 사발에 탁주가 놓였으니 괄시가
대단하였다, 그러나 멀찌감치 이몽룡의
거동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던 윤봉영장이
민망했던지 자기가 받았던 상을 들어다
주라고 분부하였다.
때마침 운봉영장이 곁으로 다가오는 터라
이몽룡이 시치미를 잡아떼고 염치없는 청을
넣었다.
"죄만스러우나 걸객이 언제 기생을
농하겠오. 어느 년이든지 기생 한 마리만
보내어 권주가나 시켜주오. 소시적부터
버릇이 되어 그냥 술은 못 마시겠소."
운봉이 어느 기생에게 눈짓하니 기생이
아니꼬워서,
"기생 노릇 하려니까 별꼴 다 보겠네.
고시랑거리고 있는 것을 운봉영장이 듣고
있다가 화를 벌컥 내었다.
"이년이 뭐라고 고시랑거리느냐, 내일
당장 운봉으로 잡아다가 다리를 작신
분질러놓기 전에 길손의 청대로 권주가
한자리 불러올려라."
기생이 운봉영장의 으름장에 가위가 질려
이몽룡 곁으로 와서 외면한 채 술을
따라주자, 이몽룡이 대희하여 옥수(玉手)를
덥석 잡고 뇌까리더라.
"헛, 고년 살결이 말량말랑한 것이
하룻밤 데리고 희롱희롱하였으면 객고중에
쌓였던 하초의 응어리가 쑥 빠지겠구만,
그러나 그것은 나중 일이고, 우선 권주가나
한자리 목청 빼고 불러다오."
기생이 마지못해 권주가 한마디
"먹지 그려 먹지 그려. 이 술 한 잔
처먹지 그려. 천만년을 거지꼴로 살 것이니
이 술 한 잔 처먹지 그려."
"허어, 고년의 권주가 한번 묘하구나.
하긴 시골 기생 말버릇을 누가 올곧게
가르쳐 주었겠느냐. 그래 너의 향기로운
이름은 무엇이냐."
"초선이요."
"초선이라. 그것은 범같이 무서운
여포(呂布)를 한손아귀에 넣고 떡 주무르듯
농락하던 그 초선(貂蟬)이가 아닌가."
"얼씨구, 툭수리 차고 다니는 주제에
삼국지 읽은 소리는 귀동냥한 모양이군. 내
이름은 풀 초 자 신선 선 자요."
"그래 기특한 년이로다. 오늘부터 내
수청을 들겠느냐."
공짜술을 얻어 마시고 나니까 이알이
곤두서서 검사 아니면 어사라도 된 듯
기광부리고 있네."
이몽룡이가 기생과 노닥거리고 있는 것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운봉영장이
가만히 대청을 내려와서 다가와 이몽룡을
손짓하였다.
이몽룡이가 마지못해 일어나서
운봉영장의 뒤를 따라 동헌뒤곁 반빗간
쪽으로 갔다. 이몽룡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운봉영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춘향이를 찾아온 사람 아닌가?"
정곡을 찔렸음에 쑥스럽고 무안하였으나
실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 알성급제(謁聖及第)하여 마패 차고
왔는가?"
것이었습니다만 신세 딱하게 되어 그렇치가
못합니다."
"그럼 일은 대단히 잘못되었네. 춘향은
여기 없네."
"춘향이가 없다니오. 저 흉물스런 사또가
토옥에 내려가둔 것이 아닙니까."
"한양 삼개(마포)에 있다는 경주인이
데리고 간 지 달포나 되었네."
"춘향이가 파옥(破獄)을 한 것입니까."
"춘향이가 파옥한 일은 없지만
최씨부인과 함께 경주인을 따라간 것은
분명하니, 남원에서 춘향을 찾을 게 아니라
한양 삼개에가서 찾아보게."

이몽룡이가 알성과(謁聖科)에 급제를 한
것은 그로부터 삼 년 뒤인
변사또의 성연(盛宴)에 왔던 운봉영장의
손에 이몽룡은 한 편의 시구를 건네준 일이
있는데 내용은 이러하였다.

금동이에 담긴 아름다운 술은 일천
백성의 피요. 윽반상(玉盤床)의 맛깔스런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적에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스리도
높으리.

- 끝 - .


* 어휘 해설 *

감창소리 : 남녀가 서로 교합할 때 들리는 소리.
개바자 : 갯버들의 가지로 엮어 만든 바자.
개잘량 : 방석처럼 깔고 앉기 위하여
털이 붙어 있는 채로 제조한 개가죽.
개차반 : 행등를 더럽게 하는 사람을 욕하는 말.
개호주 : 범의 새끼.
게트림 : 거만스럽게 거드름을 피우며 하는 트림.
겨끔내기 : 자주 번갈아 하기.
견대팔 : 어깨뼈.
전달하는 하인.
경주인京主人: 서울에 머물면서 지방
관청의 사무 일체를 대행하던 사람.
고소원 : 본디 바라던 바임.
고염무顧炎武: 청나라 초기의 대학자.
중국 고증학의 기초를 닦았음.
곡지통 : 목을 놓아 슬프게 울다.
관무첩 : 관청의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위임장.
구경소 : 구경거리가 됨.
구메밥 : 옥문의 구멍으로 죄수에게 주는 밥.
국궁鞫躬 :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굶힘.
권속 : 한집안의 식구.
극세목極細木: 발이 아주 가는 무명
길나장이 : 길을 인도하는 배행꾼
나직 : 없는 죄를 얽어서 꾸며 만듬.
남갑사藍甲紗: 쪽빚 갑사.
남새밭 : 채소밭.
남색짜리 : 머리를 쪽지고 남색 치마를
입은 스물 안팎의 새색시.
내아內衙지방: 관청의 안채.
너울가지 : 남과 잘 사궐 수 있는 솜씨. 붙임성.
넉장거리 : 네 활개를 펴고 뒤로 나자빠짐.
논다니 : 웃음과 몫을 파는 계집
농투산이 : 농사꾼
다리밋자루: 남자의 성기를 빗댄 말.
당혜唐鞋 : 울이 깊고 작은 가죽신.
대궁 : 먹다 남은 밥
대살지다 : 몸이 강파르다.
댓바람 : 일에 당하여 맨 첫번으로.
더그레 : 각 영문에 군사들이 업는 세 자락의 웃옷
도섭 : 변화, 요술
도저하다 :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고 뺏뺏하다.
동달이 : 군복의 한 가지.
동배간 : 나이, 신분이 서로 같거나 비숫한 사람들 사이.
동자 : 밥 짓는 일.
동티 : 지신地神의 성냄을 입어 재앙을 받는 일,
두억시니 : 사나운 귀신의 하나
둔갑장신 : 귀신을 불러 변신하여 남에게
보이지 않게 하는 술법.
드잡이 : 먹살잡이
들병이 : 병술을 들고 다니며 파는 장수.
딱장받다 : 때려가면서 그 죄를 불게 하다.
때벗다 : 촌티가 없어지다.
뜸배질 : 버릇없이 굴다.
매골 : 사람의 꼴. 꼴이 못 되었을 때 쓰는 말.
매화틀 :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된 요강.
면분 : 얼굴이나 알 정도로 사권 정분.
명토박다 : 이름을 대다.
몽니 : 음흉하고 심술굿게 욕심
무산십이봉巫山十二琫: 평안남도 성천에
있는 열두 봉우리의 기이한 산.
미술媚術 : 남자를 호리는 여자의 미색.
민갑주다 : 선금주다.
밀화단추 : 호박琥珀으로 만든 단추.
밑절미 : 사물의 기초. 본디부터 있던 바탕.
바라지 : 바람벽의 위쪽에 낸 작은 창.
반빗간 : 음식을 만드는 주방.
발막 : 조그만 오막살이 집
발섭 :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님.
배꼽노리 : 배꼽이 있는 언저리
배자 :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
배행꾼 : 읏사람을 모시고 따르는 사람.
엉켜서 뭉쳐진 찌끼.
범강장달 : 키가 크고 흉악하게 생긴
사람을 가리키는 말.
별반거조 : 특별히 다르게 차리는 노릇.
여기서는 형틀을 차리는 것.
병각마病脚馬: 다리를 저는 말
복장 : 가슴 한복판.
부담負擔 : 옷이나 책 같은 것들을 담아
말등에 싣는 농짝.
부슬자리 : 부들의 입이나 줄기로 엮어 만든 자리
불각시 : 갑자기, 혹은 느닷없이.
사다듬이 : 사매질
사매질 : 권세 있는 자가 사사로이
사람을 때리는 짓.
사삿집 : 여염집.
사추리 : 샅, 허벅지.
사품 :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계재나 바람.
산매들다 : 요사스런 산귀신이 몸에 붙다.
살천스럽다: 쌀쌀하고 매섭다.
삼도천 :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길 중에 있다고 하는 내(川).
삿갓반자 : 천장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바른 반자
상승하다 : 환장하다.
상없다 : 본데없다.
상침上針 : 좋은 바늘 혹은 가장자리에
실밥이 드러나지 않게 꿰매다.
상화방賞花坊: 창기娼妓를 두고 손님을
서시西施 :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미녀.
섞박지 : 양념 없이 젓국에 아무렇게나 버두린 김치.
석황石黃 : 누른 빛의 물감.
선치수령 : 선정善政을 베푸는 지방의 수령.
설분 : 분풀이
섭산적 : 살이 갈갈이 찢기고 떨어져
나가도록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는 뜻.
성첩城堞 : 성벽의 가장자리.
세백저細白苧: 발이 가는 모시
소종래所從來: 지내온 내력.
수탐 : 수하하고 탐지함.
수하誰何 : 누구냐고 불러서 물어보는 일.
된 정열부인.
승교바탕 : 가마바탕, 혹은 가마.
시갯금 : 곡식의 가격.
시갯자루 : 곡식 자루.
시생 : 선비가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신들메 : 신을 들메는 끈,
신색愼色 : 여색을 삼가는 것,
실토졍 : 사실대로 진정을 말함.
아갈잡이 : 소리 지르지 못하게 입을 솜
따위로 틀어막는 것.
아금받다 : 알뜰하게 발밭다.
아퀴짓다 : 일을 결정짓다.
악소패거리: 성질이 고약하고 못된 젊은이들
악악루岳陽樓: 오吳나라에선 동쪽으로,
누각인데 조망이 넓다함 .
안동眼同 사람을 따르게
하거나 물건을 지 니고 감.
안장마鞍漿馬: 가죽으로 만든 안장폼 얹은 말,
안침솔집 : 골목 안에 숨어 있는 술집.
알사추리 : 벌거벗은 채로 드러낸 알몸
애옥살이 : 가난에 쪼들려 고생스럽게 살아감.
약주릅 : 한약재의 매매를 거간하는 사람.
어마지두 : 몹씨 놀람.
어섯눈 : 사물의 대강만 알아첼 정도의 시선.
억탁 : 억측.
얼요기 : 충분하지 못한 요기.
물건 값을 표하는 짧은 막대기.
엄대 : 긋다 엄대를 가지고 하는 외상 거래
열멍길 : 저승길,
염의 : 염치.
영각켜다 : 암소를 찾는 황소의 울움소리.
오지투가리: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뒤에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질그릇
옥진玉眞 : 양귀비의 별명.
옹구바지 : 대님을 매지 않은 바지.
와룡소臥龍梳: 엎드린 용의 모 양을 본뜬
빗. 문장가
왜자하다 : 소문이 팽장하게 퍼지다.
외대머리 : 정식 혼례를 하지 않고
머리를 쪽진 여자. 기생,
갈보 등을 가리킴.
요분질 : 성교시에 여자가 남자에게
쾌감을 주기 위해 아랫도리를
요리조리 움직이는 짓 .
우두망찰 : 갑자기 닥친 일로 얼떨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유서통 : 왕의 유서를 넣어가지고 다니던 통.
육롱기 : 청나라 때 성리학의 대가.
육장肉醬 : 쇠고기를 잘게 썰어서 간장에
넣어 만든 장조림. 여기선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일.
나는 척수가 지나치게 긴 배
율기 : 안색을 바로잡아 엄정히 함.
은사죽음 : 보람 없이 억울하게 죽는 일
이징가미 : 질그롯의 깨어진 조각.
입매상 : 잔치 때 큰상을 들이기 전에
먼저 간단하게 차려 드리는 음식상.
입체 : 뒤에 상환받을 목적으로
굼전, 재물 등을 대신 지급하는 일.
자발없다 : 참을성이 없고 행동이 경박스럽다.
작사청 : 지방 관아의 아전들이 근부하는 집.
잘코사니 : 남의 불행이 고소하여 하는 
전통 : 화살 넣는 통
조발調發 : 징발.
조빙阻幇 : 오입판에서 계집과 사내
사이에 있어 온갖 일을
주선하여 심부름하여 주는 일
중치막 : 소매는 넓고 길이가 길며
앞은 두 자락, 뒤는 한 자락으로 된 웃옷.
지다위 : 남에게 등을 대고 의지하거나 때를 쓰는 짓.
지휘하다 : 특정 기생을 지적하여 불러들이는 일.
창귀 : 남을 못된 짓을 하도록
인도하는 사람에 비유. 못된 귀신.
청맹과니 :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눈 또는 그런 사람.
체수 : 허우대.
치도곤 : 곤장의 한 가지. 혹은 섬한 벌을 주다.
침책侵責 : 간접으로 관계되는 사람에게
책임을 추궁함.
코머리 : 기생 행수行首기생. 기생의 우두머리.
통행전 : 아래에 귀가 달리지 않은 예사행전.
투레질 : 젖먹이 아이가 입술을 떨며 소리를 내는 짓.
툭수리차다: 망하여 빌어먹다.
포달 : 암상이 나서 악을 쓰고
함부로 주워대는 말.
하님 : 하인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
학치뼈 : 정강이 뼈.
해망쩍다 : 총명하지 못하고 아둔하다.
해어화 : 여기서는 미인을 말함.
해자垓字 : 성 밖으로 둘러 판 못.
핵변 : 실상을 조사하여 변명함.
햇곡머리 : 가을 햇곡식이 날 무렵.
행역 : 여행의 괴로움.
행전 : 바지, 고의를 입을 때
정강이에 꿰어 무릎 아래에
매는 헝깊(제비 행전 날렵하게 묶은 행전).
행티 : 행짜를 부리는 버릇.
행하 : 1)경사가 있을 때 주인이 하인에게 내려주는 금품.
2)품삯 이외에 더 주는 돋.
3)놀이나 놀음이 끌난 뒤에 보수.
항낭 : 여기선 돈 주머니.
헐숙청 : 높은 벼슬아치의 집 대문
안에 있는 방. 그 벼슬아치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잠깐 쉬게 되어 있음.
호경골 : 범의 앞정강이 뼈.
호박고누 : 사발고누. 아래위 두 줄
사이의 동그라미를 열십자로
연결한 말밭에서 각각 세
개의 말을 놓고 노는 호궤
음식물을 베풀어 군사들을 위로함.
혹장酷杖 : 가혹한 형벌. 혼돌림 : 혼쫄내다.
홍색짜리 : 갓 시집온 새색시.
황학루黃鶴樓: 중국, 호북성 무창현
서남에 있는 누각.
희정 : 되돌아가는 길.
힘담없다 : 대담성이 적다. 혹은
우물쭈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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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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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첨삭(添削)하였음을 정중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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