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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북한산성 14대문 사진 (종주산행을 위한)

 



북한산 북한산성

14대문 사진

(종주산행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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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서문(大西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입니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 최헌길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대서문(大西門)의

앞 모습입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서문(大西門)의

뒷 모습입니다.


담쟁이넝쿨이 우거진 한여름의

대서문(大西門) 모습입니다.


대서문 육축(陸築) 윗부분에

배수를 위한 시설물로

성문 안쪽의 빗물이

흘러나가도록 성벽에 돌출되게 설치한

석루조(石漏槽)의 모습입니다.


②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산능선 해발 488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서 부근 산성 안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령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리웠답니다.


※ 암문(暗門)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통로로 출입문 위에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 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입니다.

성 안에 필요한 병기 및 식량 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할 때

이 통로를 사용한답니다.

참고로 현재 북한산성에는

모두 7개의 암문(暗門)이 남아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 본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의

앞 모습입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 본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의

뒷 모습입니다.


③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 사이

산 능선 해발 521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暗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입니다.

최근까지 성문 우측에

'소남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듯이

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 안 동쪽에 있는

부왕사(扶旺寺)로 내려 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입니다.


※ 홍예(虹霓)란

성문 얼굴의 윗머리가

무지개같이 반원형(半圓形)이 되게 만든

구조물 또는 그러한 구조로 만든

문 즉, 홍예문(虹霓門)을 말합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의

앞 모습입니다.

홍예형태로 이룬 성돌 위쪽에

우에서 좌로 '小南門'이라 새겨 놓은

글자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門'자는 마멸되어 잘 안 보이나

'小南'이란 두 글자는 육안으로도

식별할 정도로 드러나 보입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의

뒷 모습입니다.

·
·

④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수봉(文殊峯)과 나한봉(羅漢峯) 사이

해발 694m 에 위치한 성문으로

산성 주능선과 의상 능선 그리고 비봉 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의

앞 모습입니다.

청수동암문은 1999년에 해체 된 후

보수 되었습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의

뒷 모습입니다.


⑤ 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던

성문입니다.

해발 715m 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 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鞍部)에 위치 해 있습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대남문(大南門)의

앞 모습입니다.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주년을 계기로

북한산성 복원계획을

세워 1991년에 첫 번째로 문루(門樓)등

성문을 복원했습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남문(大南門)의

뒷 모습입니다.


여름철 구기동쪽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앞 모습입니다.

참고로 대남문의 복원된 문루에 걸린

현판의 '대남문'이라는

커다란 액자(額字)는

서예가 조재호라는 분의 글씨라고 합니다.


겨울철 위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대남문의

앞 모습입니다.


성 안쪽, 대남문 뒷 편 공터에는

두 개의 문루주춧돌이 놓여 있습니다.



⑥ 대성문(大城門)


보현봉(普賢峯)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입니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답니다.


※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국도(國都)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別宮)으로....

북한산성 내 행궁은 산성을 축조하던

조선 숙종37년(1711년)에 지워졌답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대성문(大城門)의

앞 모습입니다.

대성문은 대남문에 이어

1992년에 복원되었고

현판의 글씨도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 임금의 친필을 집자해서

새로 걸었습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성문(大城門)의

뒷 모습입니다.

대성문은 높이 13척(4m)에

폭 14척(4.5m)으로 대남문(11척/11척)과

대서문(11척/13척)에 비해

월등히 규모가 큰 성문입니다.


⑦ 보국문(輔國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보국문(輔國門)의

앞 모습입니다.

보국문은 1993년 완전 해체된 후

복원되었습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보국문(輔國門)의

뒷 모습입니다.

성문 안쪽 성돌에는

북한산성을 축조 할 당시인 1711년에

공사 책임자와 기간 그리고 구간을 표시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⑧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 진달래능선이 끝나는

해발 5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대동문(大東門)의

앞 모습입니다.

대성문과 마찬가지로 1993년에 복원 당시

현판의 글씨도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 임금의 어필을

집자해서 걸었답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동문(大東門)의

뒷 모습입니다.

보국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안쪽 성 돌에

축조 당시인 1711년에

공사 책임기관과 구간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⑨ 용암문(龍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 일대의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巖寺)가

부근에 있었답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용암문(龍岩門)의

앞 모습입니다.

용암문은 1998년 보수가 완료되어

복원되었습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용암문(龍岩門)의

뒷 모습입니다.

특이하게도 성문 뒷편에도 현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⑩ 위문(衛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일컫고 있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합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위문(衛門)의

앞 모습입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위문(衛門)의

뒷 모습입니다.

용암문과 마찬가지로 윗문 뒷편에도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⑪ 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중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 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문루(門樓)가 폐기되어 없어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 문루(門樓)는 성문 위에 지은

다락집으로 유사시

장수의 지휘소가 되며

성 밖의 적을 조기에 발견하고자

감시하는 기능을 가진

건축물입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북문(北門)의

앞 모습입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북문(北門)의

뒷 모습입니다.

북문을 동·서·남쪽의 방위를 대표하는

다른 성문들처럼

큰 대(大)자를 앞에 붙혀 대북문(大北門)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순전히 조선시대의 관례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서울 도성(都城)도

마찬가지로 다른 문은 동대문·서대문·남대문이었으나

북문만은 북대문이 아니고 숙정문(肅靖門)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성문 위에서 바라본 북문(北門)의 바닥이 없는

상단부 모습입니다.


늦은 오후의 햇살에 그림자를 드리운

북문(北門)의 모습입니다.

아직 복원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여타 다른 성문들 보다

더 고색창연한 유적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성문입니다.


⑫ 시구문(尸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안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주민들에게 시구문(尸柩門)이라고 불리웠고

이 이름이 원래 성문 이름인

서암문(西暗門)을 대신하여

고착화(?) 되어 현재도

성문에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시구문(尸柩門)의 

모습입니다.

부왕동암문과 마찬가지로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장대석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성문입니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시구문(尸柩門)의

뒷 모습입니다.

북한산성 암문중 유일하게

뒷편도 홍예(虹霓)형태 띄고 있습니다.


시구문(尸柩門)과 연결된 성벽은 'ㄱ'자 모양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할 수 있습니다.


⑬ 수문(水門)


대서문 북서쪽 근처 산성계곡에 있었던

폭 50척(15.5m)에 높이 16척(5m)인

큰 규모의 수문(水門)으로

1925년 8월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때

성돌과 장대석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수구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보이는

시구문과 대서문으로 오르는

계곡 양옆 산비탈에 남아있는

성곽의 흔적만이 이 두 성곽 사이의 협곡에

웅장했던 수문(水門)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할 뿐입니다.


※ 성곽의 배수를 위한 시설로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 경우

수문(水門)이라고 하고 규모가 작은 것을

수구(水口)라 합니다.


[출처]  http://sunrin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