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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고집으로 만든 한글 글자꼴 - 이 남 흥 -





한글 서체 이야기 3

한 개인의 고집으로 만든

한글 글자꼴

- 이 남 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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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의 생애의 역사 가운데.... 50여 년 이상을 출판과 글꼴과 선교를 위해

몸 담아 온 여정의 편린 가운데서도.... 이 땅의 후학들을 위해 남기고 가야만 된다는

사명감의 발로라고 저 자신을 좋게 평가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는

그런 순수한 마음에서 이 글을 본인이 올린 글은 아니지만.... 다소 조금은

수정하거나.... 보완하여 나를 대신하는 것 보다는, 이 게재한 내용의 글을 더

빛을 내고, 또 앞으로 이 분야에 종사할 많은 분들을 위해....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와 그동안 나의 식견을 조금이라도 밝힘으로서 참고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게재하였고.... 또 시간이 허락하면 솔직한 비평도

할 것임을 감히 밝혀두는 바이다. <心想 亞鼎 金相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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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이지만,

과거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혼불을

밝혀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오늘’에 글자를 대입하면 어떨까?

조선일보에서 20여 년간

서체를 만들어 온

이남흥 선생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자신의 고집을 태워 한글의 글꼴을

빚고 또 빚어왔다.

조선일보의 서체가 신문서체 가운데서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것으로

평가 받는 핵심적인 이유도....

그의 이같은 고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지만

모두가 잊고 있던

그 이름을 만나

과거의 글자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 이용제 / 에디터 정윤희 / 사진 스튜디오 salt




이남흥 선생



#1. 글자라는 업


이용제: 글자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남흥: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각을 했어. 쉽게 

말해 도장을 만든 거지. 

우리 집에 책 궤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든 것 

전부 도장이 찍혀있었어. 

낙관 같은 것들. 어려서부터 그것만 가지고 놀았거

든. 

그래서인지 전각을 곧잘 했었어. 초등학교에 가니

까 교장 선생님께서 내 재주를 예쁘게 보셨는지, 

도장 파는 칼이 아니라 일반 조각도를 주시면서 초

등학교 직인을 파보라는 거야.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래서 그 도장 찍은 졸업장을 받았어.


이용제: 전각을 했던 경험이 굉장히 중요했었네요? 

이남흥: 문자의 꼴은 거기서 다 나와. 

말하자면 도장에서 쓰는 전서체에 자꼴 방식이 

다 나와 있는 거지. 활자를 만드는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서부터 인장을 잘 했었기 때문인 

것 같아. 당시 인쇄소에서는 글자를 몇 개 안 사다 

놓고 쓰니까 이상한 글자가 나오면 만들어서 합성

을 시켜야 됐거든. 

이상한 글자가 나오면 여러 글자에서 필요한 부분

만 떼어다가 글자를 합성해서 썼지. 

그래도 안 되는 글자가 있어. 

그러면 종이에 글자를 써서 파는 거야. 

나무에다 파는 게 있고 납에다 파는 게 있지.

주로 인쇄소에 가면 납 활자 꽂아서 인쇄하는 방식

이라, 이 활자들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야 되는데 

글씨 쓸 사람이 없었거든. 내가 그걸로 시험 봐서 

쇄소에 들어갔어. 

글자라는 게 명필이라고 되는 게 아냐. 간결하게 

쓰면서 알아보기 쉬워야 되거든. 

빨리빨리 찍어내야 되니까.


이용제: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어떻게 글자를 업으

로 삼으셨어요? 

이남흥: 먼저 최정호, 최정순 선생 이야기부터 해

야겠네. 최정호 선생의 글씨는 이야기책(서적용)에 

주로 쓰였지. 가로쓰기로 만드는 책 말이야. 

그 분이 재주가 많았어. 일본에서 예술고교(요도바

시 미술학원)를 졸업하고 글씨 그리는 걸 연구하고 

왔어.

최정순 선생은 서울신문에서 동판을 조각기에 넣고 

조각해서 활자를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 상품화할 

만큼 되니까 신문사를 퇴사하고 자기 글씨를 그려

서 납품하기 시작했지.

최정순 선생이 하는 걸 보니까 나도 글자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최정호 선생을 모셔서 내가 

만든 글자를 보여드렸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내가 그분께 가르침을 받은 거지. 

누군가에게 글자를 배운 건, 최정호 선생께 받았던 

그 한 번이 전부야. 

당시 최정호, 최정순 선생이 그린 글자들을 조금씩 

갖고 있어. 샘플 식으로. 

중국이니 일본의 글자들도 구색을 맞춰 조금씩 갖

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따라 그리기 시작했지.



조선일보의 납활자 시대를 종언할 때 만들었던 기념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남흥 선생의 전각 도구들 



#2. 신문 서체의 파랑


이용제: 조선일보에 입사하신 건 언제인가요? 

이남흥: 1976년 6월 25일에 입사했지. 내가 나이

가 먹어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그건 절대 안 잊어

버려. 


이용제: 조선일보에서 일하시면서 서체의 많은 변

화를 겪으셨죠? 

이남흥: 당시 서체가 대부분 4:5의 비율로 옆으로 

조금 넓은 서체였어. 그래서 편평체라고 불렀지. 

안정되고 튼튼한 글자였어. 작은 글씨지만 크게 잘 

보이고. 그런데 컴퓨터가 생기면서 글자를 바꿔야 

되는 상황이 생긴 거야. 정방형으로 글씨를 고친 거

지. 문제는, 정방형으로 그리는 감각으로는 정체를 

그리기가 힘들어. 자꾸 원래 형태로 가게 돼서 글자

가 넓고 좁고 해. 

지금은 장체로 돼 있을 거야. 그러면 한글은 좀 늘

씬해 보이는데, 문제는 문이지. 한글은 장체로 

되어 있는데 한자는 여전히 정방형에 가깝거든. 

래서 제 꼴이 안 나오는 거야. 지금도 신문 보면 

덜 좁혀져서 나오는 게 어. 날씬하게 보여야 되

는데. 


이용제: 신문에 사용하는 글자수가 굉장히 많은데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이남흥: 당시 회사에서는 서체개발팀을 구성해서 

서시철, 민창기 씨한테 겼지. 컴퓨터로 서체를 

개발하라고 했어. 나는 고수하던 한글, 한문을 

었어. 인원도 부족했고, 또 내가 실력을 보여준 

적도 없는 말단 사원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양쪽에 같은 일을 시킨 거야. 그게 회사의 운영 

식인 거지. 어떤 회사고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

는 게 아니라 경쟁을 붙이는 게 운영 방식이거든. 

서시철 씨는 미술부에 있으면서 타이포그래피를 

붙들며 편집도 하니까 회사에서 보기에는 곧잘 할 

것 같았는지 팀을 들어 줬어. 

그런데 나는 누구랑 같이는 안 하거든. 글자라는 

게 같이 할 수 없는 일이아. 여러 사람이 한 글자

를 만들면 서로 모양이 달라져서 일이 되지 않아. 

어쨌든 그렇게 시작해 중국까지 가서 글자를 얻어

오고 별 짓을 다 했는데도 깨끗한 글씨를 만들기가 

힘들더라고. 회사에서 좋은 글씨를 한 번에 사오지 

않고 나눠 사서 조합해 쓰니까 글자가 깨끗하질 못

한 거야. 

그것까지 파악하진 못했어. 자꾸 신문 활자를 놓고 

크게 만들어라 작게 만들어라 지적만 하고. 그러니 

부장들은 매일 깨지는 거야. 인쇄 잘못됐다고. 


이용제: 전산화 과정을 직접 작업하셨나요? 

이남흥: 전산화가 시작되니까 일본에서 전산 교육

을 받아야 했어. 내가 갔어야 했는데 위암에 걸려서 

못 가고 밑에 있던 사람 둘을 보내서 글자 만드는 

훈련을 시켰어. 그렇게 훈련을 시킨 다음에 여직원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을 데리고 글자를 만들기 시작

했지. 내가 직접 배웠어도 손이 느려 소용이 없으

니까 안 배웠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사무

원들 쭉 앉혀 놓고 화면 띄우게 한 다음 그 옆에 앉

아서 이래라, 저래라 수정을 시켰던 거야. 

컴퓨터가 안 되니까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수

정을 지시했지. 

그중 김영균이라는 친구가 있었어. 

내가 그 친구를 뽑아서 그렇게 훈련시켰지. 

이것만 할 수 있으면 굶을 걱정은 없으니 소질이 있

는지는 모르나 죽기 

살기로 매달리라고 했지. 

그 친구가 컴퓨터에는 소질이 있었는데, 어지간히 

잘 하더라고. 

내가 데리고 있던 잘 하는 사람들은 여러 회사에서 

다 데려갔지.


이용제: 그러면 조선일보 계실 때 한글, 한자 서체

는 모두 끝내신 건가요? 

이남흥: 끝냈는데, 3~4년 전에 김영균 씨와 조의환 

씨가 중국, 일본, 대만에 가서 서체 일부를 받아왔

어. 

조선일보 서체를 가운데 놓고 비교하는 거지. 

좋은 건 심으면 되니까. 조의환 씨가 자꾸 점심 먹

자고 해서 만났더니 글자 가져와서 수정을 해달라

고 하더라고. 

중국식으로 글자를 써도 되냐 안 되냐 물으면서. 

당시에 내가 중국 책을 많이 보고 있었거든. 

나는 낯설지 않아서 좋은데 독자가 반발하면 어떻

게 할 거냐고 그랬지. 

하지만 사람들은 메시지만 전달받으면 되지 글자

에는 관심이 없잖아.


이용제: 지금의 조선일보 글자는 어떻게 보세요? 

이남흥: 뜯어보면 문제가 많아. 그 전에는 가로로 

‘ㅡ’자를 그을 때 이게 선으로 올라갔어. 

그러다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넘어가면서 직

선으로 갔단 말이야. 

‘ㄷ’자의 이음부분도 확 올렸다고. 최정순 체가 

그래. 최정순 선생이 그거 하나는 고집했어. 

그런데 이렇게 해 놓은 글자를 확대하면 ‘ㄷ’자 한 

자만 이상해지거든. 

그런 문제 말고도 문제점이 아직 있어.







#3. 폐기된 역사


이용제: 퇴임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남흥: 여기저기서 제안이 있었지. 근데 일을 많

이 하진 않았어. 

한 번은 삼성 서체를 개발해야 되는데 감수를 해

달라더군. 기존 서체를 수정해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 

그것도 안 한다고 했어. 납품할 때 누가 감수했느

냐가 관건이거든. 

나는 무명이지만 조선일보 서체를 완성한 사람이

라는 타이틀을 이용하려는 것이지 좋은 글자를 

만들어서 납품하려는 게 아니잖아. 

필요하다면 자문은 해 줄 수 있지만 감수는 싫다

고 했어. 

그래서 내가 고집쟁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고집 

없으면 어떻게 글씨를 만드나. 

물론 내 얘기가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주장

하고 살았어. 

하지만 사람들이 한 번 볼 수 있느냐고 연락하면 

오라고 해. 

알려 달라는 건 다 알려줘. 

요즘 세상에 혼자만 갖고 있어선 안돼. 오픈하면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보이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니까.


이용제: 저도 글자 디자인한 지 19년 정도 됐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럴 때에는 최정호 선생님

이 그린 원도 보면서 공부해요. 

이남흥: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해. 인쇄 공학을 모

르고는 글자 만들어 봐야 허탕이잖아. 

예를 들어 ‘木’자도 가로 획 두께는 이렇게, 세리프

는 저렇게, 또 기둥 두께는 또 이렇게 하고… 그게 

관건이야. 

공학적으로 이걸 1mm로 놨을 때 35% 확대되고, 

잉크가 번지고 이런 게 중요한 단서거든. 

일본에서 인쇄에 관해 나오는 출판물을 보면 아무

렇게나 놓고 그리는 게 아니고 이런 공학적인 것들

을 생각하면서 설계를 해. 

같은 군의 글자끼리 모아서 설계를 한다고. 

뚱뚱한 글자, 날씬한 글자끼리 모아놓고 같이 연구

를 해야 돼. 

기술만 가지고 글자 꼴만 예쁘게 만드는 건 아니야. 

그래서 난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용제: 예전에 작업하신 원도를 정리해서 사용하

실 생각은 없으세요? 료가 아깝잖아요. 

이남흥: 원도는 회사에 있고, 복사본을 갖고 있지. 

나름대로 갈무리해서 모아 놓은 것이지 완전무결

하게 정리해서 갖고 있는 건 아니야.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또 쓸 데가 

있어야지. 


이용제: 글자꼴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실제로 글자들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혹시 선생님께서 글자 그리시면서 쌓으신 경험을 

기록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남흥: 내가 고집쟁이긴 해도 오픈된 늙은이야. 

만나자고 해도 고민인 게, 뭘 알려주나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게 잘 안돼. 

내가 편지글도 못 쓰는 사람인데,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해. 


이용제: 후배 입장에서 선배님들이 하셨던 걸 보

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자료

가 거의 없거든요. 

이남흥: 조선일보의 활자 역사 자료는 내가 따로 

가지고 있긴 하지만 관리

하고 보관하는 사람이 없어. 원도도 다 폐기처분 

했을 거야. 

잘못된 역사라도 보관해야 하는데, 그 많은 자료를 

다 창고에 쌓아 놓으니 

나도 애석한 부분이 많아. 

조선일보 나오면서 잘 보관해 두라고 했는데 다 버

렸더라고. 

담당자가 있어도, 떠나면 그만이잖아. 우리나라는 

보관하는 게 없어. 

자리에 있을 때나 써먹지 떠나면 그만이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자료들이지. 

작은 칼 하나라도 말이야. 

어떤 사람이 활자 역사 편찬하는데 쓰던 칼 한 자루 

달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 글자 다 버리고 칼만 주면 뭐 할 거야. 

그냥 이게 활자 파던 칼이다, 하고 마는 거지. 이치

를 모르니까. 

어쨌든 이런 것들이 잘 정리되어야 하는데…. 


이용제: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이남흥: 재주 있는 젊은이 보고 글자 하라고 권하

고 싶진 않아. 

먹고 살 걱정이 해결되지 않는데다, 10년을 매달

려도 눈에 보이게 

진전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

여도 애써 찾다 보면 보이겠지. 그리고 공부라는 

건 훔치는 기술이 있어야 하거든. 

아무리 책을 들여다 본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더라

고. 어깨너머로 배웠다고들 하잖아. 

옆에서 슬쩍 보고도 딱 들어오는 게 있거든. 

그게 진짜 자기 걸로 만드는 거야.




[출처] http://cafe.daum.net/stargeter/e2z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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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IDEA

작성자: 김상구가 인용,下記作成者之文-共有出處告知,我意見相異良知願^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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