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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산책(가나다順)/기독교 바로알기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 (롬 14:5-8,9)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 (롬 14:5-8,9)

롬 14:5-8 말씀으로 저는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I. 서 론

  1.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나요? 

   1) 나를 위해 사는 이는 이기주의자

   2) 가족을 위하여 사는 이는 진실한 자

   3) 나라를 위하여 사는 이는 충성된 자

   4) 인류를 위하여 사는 이는 고귀한 자

   5)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살고 죽는 이는 가장 귀한 생애입니다. 

  2. 남을 중히 여기는 것도 주를 위하여 

   1)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나 절기나 월삭 등의 특수한 날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번거롭기도 하고 또 까다로웠습니다.

   2) 그러던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하여 그 날을 중히 여기는 관념과 해석과 절차에 차이가 생겨서 충돌이 되고 대립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3)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을 위하는 심정으로 나를 지키게 되어야 보람이 되고 또 의의가 있고 또 축복을 받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3.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주를 위하여 

   1) 먹는 자도 먹지 않는 자도 다 주를 위하여 하라는 고귀한 교훈인 것입니다.

   2) 신앙적 양심을 통하여 모든 식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3) 의심이 생기거나 의식의 까다로운 절차와 견해의 차이로 먹을 수 없다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4) 특수한 목적으로 금식이나 하는 일까지도 그 궁극적인 목적은 다 주를 위하여 하면.... 마찬가지로 그리해야만 합니다.

   5) 먹지 않는 자들이 먹는 자들을 함부로 정죄하여도 안 되고, 또 먹는 자들이 먹지 않는 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되거나, 연약한 믿음이라고 손해를 끼치거나 방해를 해도 안 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매사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6)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선 그리해야만 합니다. 

  4.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생의 목적과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일 것입니다.

   2) 우리는 무엇 때문에 먹고 마시며 살아야만 할 것인가?일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고귀한 생명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1)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① 목적과 목표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② 곧 주를 위해서 살라는 것이었고,

        ③ 또 이왕에 한번은 반드시 죽어야 될 몸들인데....

        ④ 별 가치 없이 살다가 아무 의미 없이 죽을 것인가?

        ⑤ 아니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2) 주를 위하여 떳떳하게 죽어간다면..... 이 또한 멋진 아름다운 생애가 아니겠습니까? 

II. 본 론

  5.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면.... 

   1)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처음을 시작했다면....

     (1) 그 마지막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지 않습니까?

     (2)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3) 아름답게 마지막을 장식해야만 할 것 아니겠습니까?

   2)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1) 왜냐하면,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는 저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셨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2) 그 유종의 미를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신령하게 거룩하게 열매를 맺을 수가 있을까요? 

  6. 저와 여러 분들도.... 우리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아름답고 신령하고 거룩하게 살다가 죽어야만 우리는 십자가를 목표로 삼고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1) 그러한 아름답고 신령하고 거룩한 삶이란....

   2) 그 길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가는 삶인 것입니다.

   3) 그 길은 마태가 갔던 길이고....

   4) 그 길은 마가가 갔던 길이고....

   5) 그 길은 누가가 갔던 길이고....

   6) 그 길은 요한이 갔던 길이고....

   7) 다름 아닌.... 12제자들이 갔던 길이고....

   8) 롬 14:5-8의 말씀을 깊이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겠지요!?

 

  7. 롬 14:5~8의 말씀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합니다. 

   롬 14:5 혹(或)은 이 날(one day)을 저 날(another day)보다 낫게 여기고(sacred) 혹(或 :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各各) 자기(自己) 마음에 확정(確定)할찌니라(Each one should be fully convinced in his own mind....각 사람은 자기 마음에 확신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롬 14:6 날을 중(重)히 여기는(one day as special.... 어떤 하루를) 자(者)도 주(主)를 위(爲)하여 중(重)히 여기고 먹는 자(者)도 주(主)를 위(爲)하여 먹으니 이는(for.... 왜냐하면) 하나님께 감사(感謝)함이요 먹지 않는 자(者)도 주(主)를 위(爲)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느니라

   롬 14:7 우리 중(中)에 누구든지 자기(自己)를 위(爲)하여 사는 자(者)가 없고 자기(自己)를 위(爲)하여 죽는 자(者)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主)를 위(爲)하여 살고 죽어도 주(主)를 위(爲)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主)의 것이로라

   1) 어떤 날을 중히 여겨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1) 5절 / 당시 초대교회 안에는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2)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믿었지만, 율법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안식일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3) 이방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율법의 완성이기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4) 특히 유대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을 그냥 스쳐 지나가면, 혹시 하나님께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까지도 갖고 있었다.

   2) * 바울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는 말씀을 통해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정작 봐야 할 것은 

        ① 예수 그리스도요, 

        ② 율법이나

        ③ 규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 그러므로 구태여 날들에 대해 구분을 짓는 것은 의미가 없고

        ①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하루하루가 하나님의 날이요,

        ② 시간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니,

        ③ 그 시간을 빌려서 쓰는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

        ④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해야만 하는 것일 것입니다.

   3) * 그러기에 바울은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라]는 말씀을 기록하면서,

    (1) 내가 안식일과 주일 가운데 어느 날을 지키더라도,

    (2) 이미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받으셨을 것이고, 

    (3) 거룩한 날에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4) 유대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하더라도,

    (5) 죄책감을 갖지 않고 당당하게 생각해도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4) * 이러한 바울의 주장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1) 거룩한 날을 육체적인 날로 잘못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 즉 “꼭 주일을 구별해서 교회를 가야만 할까요?

    (3) 매일 매일이 하나님의 날인데...”라는 말을 하는데,

    (4)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매일 매일을 거룩하게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5)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이 자기변명으로 하는 말일 경우가 많을 수가 있습니다.

   5) * 이에 대해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거룩한 날을 “지키고 안 지키고”에 대해서 자유를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2) 육체를 위해 본능대로 살면서 거룩한 날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6) * 또 어떤 이들은.....

    (1) 바울의 주장을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워 받아들여서

    (2) 너무 자유분방하게 살면서,

    (3) 그래도 순수하게 주일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보고 

    (4) 신앙의 틀이 좁다고 판단하고 업신여기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5) 그래서 바울은

      ①『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8:9)』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7) * 바울이 하고 싶었던 말은 

    (1) 신앙은 타인과의 관계보다 

    (2)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져야 하며,

    (3)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다고 생각하면(자기 마음에 확정하면...)

    (4) 그 무엇에도 거리낌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8. 그러기에 지키는 자도, 지키지 못하는 자도, 

   1) 모든 날을 똑같이 지키는 자도,

    (1) 하나님 앞에서 자기 믿음의 확정으로 지키는 것이니,

    (2)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2) * 그러나 분명한 것은, 

    (1)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정하여 지키는 것은,

    (2) 이날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요,

    (3) 우리가 매일 매일을 거룩하게 살 수 없기에, 

    (4) 이 날 만큼이라도 성별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자는 의미인 것입니다.

   3) 이 날을 구별하여 드리지도 못하면서,

    (1) 매일 매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고백하는 것은 거짓말일 뿐이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9. 6절 말씀입니다. 

   1)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의 중심도 안식일이 하나님의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1) 주일을 지키는 사람의 믿음도

     (2) 주일이 예수님의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3) 그리고 음식을 먹는 사람도

        ① 음식이 하나님이 지으신 선하신 것이라 믿기 때문이요,

        ② 음식을 안 먹는 사람도 

          1> 내 몸이 거룩한 주의 전이라 생각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2> 이러한 선하고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성도들끼리 먹는 문제와 안식일 문제 때문에, 

          3> 교회가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 우리는 때때로 수용과 거부에 대한 한계의 범위(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부터 거부할 것인가?)를 안에서 논쟁을 할 때도 있고, 

    (1) 내 것을 지키려는 본능이 작용하여,

    (2) 타인을 비판하고 업신여기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러나 중요한 것은....

       ① 내가 나의 양심과 신앙적 판단으로 결정했듯이,

       ② 타인도 믿음으로 결단한 것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3) * 그렇다고 이단까지 인정해 주자는 말은 아닙니다.

    (1) 이단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2) 이단들은 근본적으로 사도신경의 고백을 무시합니다.

    (3) 사도 신경의 고백이란 무엇인가요? 

       ① 창조주 하나님,

       ②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신성,

       ③ 성령으로 잉태하였으나

       ④ 마리아에게서 낳은 인성,

       ⑤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고난,

       ⑥ 3일 만에 부활하심, 

       ⑦ 승천하신 예수,

       ⑧ 심판주로 오실 예수,

       ⑨ 성령, 교회, 성도의 교제, 

       ⑩ 죄 사함,

       ⑪ 영생(천국)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아래 단계의 규례에 대해서는 억압이 아닌 자유로움을 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5) * 그러나 이단들은 

       ① 이러한 사도신경적 고백을 무시하고,

       ②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으며,

       ③ 기존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고,

       ④ 언제나 자신들의 교주를 앞세우고,

       ⑤ 목회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⑥ 이 땅의 윤리와 도덕을 경시하고,

       ⑦ 질서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4) * 예수는 우리에게 넓은 틀 안에서 자유로우라고 말씀하신 것이지,

    (1) 틀을 깨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방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작금의 현실인 것입니다.

    (3)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 5:17에서....

       ①『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②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③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 * 우리가 지금 꾸려가고 있는 신앙의 틀이 

    (1) 사람의 생각이나 방법대로 이뤄진 것이라 여기는 것이 인본주의요,

    (2) 이 틀이 형성되어지는 과정에서....

    (3)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4) 그러기에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우려는 것은 

       ① 자신의 육적인 본능대로 살아가려는 욕심 때문이요,

       ②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리려는 마음이

       ③ 온전한 신앙인의 자세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0. 7절 말씀입니다. 

   1) 우리는 모두가 각각의 개인에게 허락된 자유를 인정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2) 자기만을 위해서 살려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무시한다면,

     (3) 그 사람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것임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2) * 그래서 바울은 갈 2:20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2)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3)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4)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5)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고 고백하면서, 

     (6) 큰 틀, 믿음의 틀 안에서 사는 삶이

     (7) 곧 온전한 신앙인의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1) 예수께서 십자가에 희생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2) 그러기에 우리는 좋든 싫든 간에 예수께 구속되어졌고,

     (3) 우리는 육적인 내가 존재하기 이전에, 

     (4) 영적인 예수와의 관계 속에서의 내가 존재하는 것뿐이니,

     (5) 예수를 떨어뜨려 놓고서는

     (6) 나 자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 이러한 고백이 있어야만

     (1) 예수를 위해 과감하게 순교까지도 할 수 있는 것이요,

     (2) 예수께서도 

       ①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②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말씀하셨고,

     (3) 바울도.....

       ①『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②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③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④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⑤ 이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요,

       ⑥ 이러한 고백이 있어져야

       ⑦ 비로소 신앙의 자유 함을 만끽하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5) *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요?

     (1) 어떻게 사는 것이 온전한 피조물 된 삶일까요?

     (2) 어떻게 사는 것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빚진 자의 삶일까요?

     (3)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가?를 끊임없이 되물어 보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 것입니다.

   6) * 피조물의 운명은 전적으로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그러기에 나의 의지대로 살고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신론자의 자세일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의 생과 사를 맡기는 자세가 온전한 성도의 자세일 것입니다. 

  11. 8절 말씀입니다.

   1) 우리는 가끔 소유주와 관리자의 관계를 혼동하면서 살 때가 있습니다.

     (1) 우리의 소유주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나는 단지 관리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막 사는 것인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나에게 맡겨진 시간이 나의 것이라 생각하니까 허비하며 사는 것인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5) 맡겨진 물질이 나의 것이라 생각하니까 욕심을 갖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2) * 자기가 죽어야 남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1) 즉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의 것(생각을 포함한)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2)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먹는 문제, 안식일의 문제에 대해서 좀 더 폭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3) 이러한 깨달음이 바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3) * 약 1:14-15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 먹는 문제를 보더라고

        ① 몸이 내 것이 아니요,

        ② 음식이 내 것이 아닌데,

        ③ 뭘 그렇게 끝까지 우기려하고, 

        ④ 안식일, 주일이 내 날이 아닌데, 마치 내 것인 양 고집을 부리느냐? 라는 말입니다.

     (2) 소유의식이 사람을 좁게 만듭니다.

        ① 그래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III. 결 론 입니다. 

  12. * 우리는 나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1) 은연중에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2) 내게 있는 것은 모두 주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면서도,

   3) 은연중에 내가 애써서 번 것이기에 나의 것이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4) 소유로부터 자유하지 않는 한, 

     (1) 생각으로부터 자유 할 수 없고,

     (2) 생각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데 어찌 믿음과 진리 안에서 자유 할 수 있을까요?

   5) * 그러기에 우리는

     (1)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함이요,

     (2) 나의 모든 것은 주께로부터 왔기에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있어져야 할 것이다.

     (3) 그 고백이 나를 살리는 것이요,

     (4) 교회를 살리는 것일 것입니다. 

13.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 바라기는 넓은 신앙의 틀 안에서 자유한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2) 내 생각과 나의 신앙이 중요하듯,

     (1) 다른 사람의 생각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2) 타인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요,

     (3) 무엇보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에,

     (4) 내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함이라는 신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1) 아름다운 삶,

     (2) 신령한 삶,

     (3)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 그리고 7-8절의 ‘우리’라는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1) 초대 교회의 교인들을 말합니까?

     (2) 나아가서는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우리들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3) 아니면,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까요?

   5)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 말씀은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1) 여기에 인간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에게만 향한 인간의 순례만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3) 이렇게 살면 더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4) 설교도 필요가 없고....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노래만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5) 자기를 위해 죽는 자,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① 이것이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어야 합니까?

        ② 아니면, 우리의 기대치를 말하는 것입니까?

        ③ 우리들의 기도에도 8절의 내용은 얼마나 인용이 많이 됩니까?

        ④ 사실 이런 기도를 할 때에는 마음 속에 깊은 떨림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⑤ 제대로 된 정신이라면 이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⑥ 실제의 현실 속에서는 그 말씀의 반도 못하면서 말로만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6) 우리들의 실생활에서는 어떨까요?

        ① 모두는 아니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살지 않나 싶습니다.

        ② 나를 위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③ 내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④ 내 아파트의 평수가 넓어지고 자식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사업이 번창하고, 회사에서 진급하는 데. 후원군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⑤ 더욱 기가 찬 것은 죽어서도 영생복락을 위해 지금 보험을 들어놓기도 합니다.

        ⑥ 내 자식이 죽을 병에 걸려서 기도할 때에도.... ‘아버지 하나님! 어떤 일이 있어도 낫게 해 주십시오! 낫게 만 해주시면(이것은 거래입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 선교도 나가겠습니다.’ 하는 이런 식의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⑦ 그러고는 낫는 은혜를 받으면,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느라고 난리가 납니다.

        ⑧ 그렇지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내 뜻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2> 저는 이렇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중국 선교를 어려운 때에 그 사역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3> 그래서 어느 정도는 자신 있게 그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수는 있지만 오늘은 그만 두도록 하겠습니다.

        ⑨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하라는 것 아닙니까?

          1>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하나님의 것인데.... 어떻게 거기에 자기의 주장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2> 오늘 이 말씀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감으로 다가옵니다.

          3> 중압감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저로서는 너무나도 올라가지 못할 산처럼 높기만 합니다.

          4> 저의 한계를 넘는 말씀인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5> 우리들의 옛말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에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언도 있습니다.

          6> 또 이런 말도 있지요!? ‘송충이는 솔잎만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세상살이에 찌든 현대의 모든 신앙인들은 세상이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7> 왜냐하면, 괜히 어정쩡하게 흉내를 내어 설치다가는 혹시라도 꼴만 우스워지기 마련인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8> 또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하는 척하면 위선의 경건으로 나를 치장하게 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9> 이제.... 이 나이에

             <1> 경건한 척,

             <2> 신실한 척하면

             <3> 위선의 경건으로 살기에는 그것마저 피곤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도우심으로....

             <5> 신실한 마음으로,

             <6> 그리고 경건한 마음을....

             <7> 내 속에 함께 동고동락하시면서

             <8> 살아계신(창 1:1)

             <9> 창조주 하나님이신 엘로힘과 함께 하시면 넉넉히 감당할 수가 있을 것을 믿고 살아갈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