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촌 이모저모 알림이/지구촌 문화소식들

◆ 동무생각 (사우, 思友) ◆ - 이은상 시 / 박태준 곡 Dreaming Of A Friend / 테너 박세원

http://m1000.org/wiz/user/Biblestudy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방문하시는 기념으로 방명록에 짤막한 한 구절이라도 남겨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촌한마음운동 -

⋙⋙⋙GOM + NWN ]⋘⋘⋘

Mythology365 of GOD

理致順理事理~思理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오늘의 핫이슈]⋘ 

◆ 동무생각 (사우, 思友) ◆ 

이은상 시

박태준 곡 Dreaming Of A Friend / 테너 박세원


"知彼知己,百戰百勝,不敗!" "必死卽生,必生卽死!" 

이 공유는 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下記作成者의글=共有出處告知]


동무생각 / 이은상 시, 박태준 곡 - 테너 박세원

1.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2. 더운 백사장에 밀려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 새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3. 소리없이 오는 눈밭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이은상 시, 박태준 곡, 테너 박세원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나언덕위에 백합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나언덕과 같은 내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새 같은 내 동무야

내가 네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소리없이 오는 눈발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맘에 가등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작품 배경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 선생(1901~1986년)이 마산 창신학교 교사 시절(1921~23년) 노산 이은상 선생과 교분을 쌓게 되었으며, 박태준 선생이 1911~1916년까지 계성학교에 다녔던 자신의 집(현 섬유회관 인근) 앞을 지나던 한 여고생을 잊지 못했던 짝사랑이 작곡의 동기가 되었던 노래라고 알려졌다. 동산은 그가 현재의 제일교회 옆 3·1운동 계단을 지나 등교하던 길이었다. 그 여학생은 한 송이 흰 백합 같은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박태준 선생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으며, 그녀는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고 한다.

이은상 선생이 이 사연을 듣고 ‘노랫말을 써 줄 테니 곡을 붙여보라’고 박태준 선생에게 권유함으로 탄생한 것이 ‘동무생각’이다.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쓰고 있는데, 이 ‘청라’가 지금도 푸른 담쟁이로 뒤덮은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 일대의 언덕을 말한다고 한다. ‘동무생각’이 청년 박태준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그 여고생이 당시의 신명여자학교(현 신명고) 학생이냐,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현 경북여고) 학생이냐 하는 논란도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경북여고 교화가 백합이었고,

경북여고 개교는 1926년인데 비해 신명여고 개교는 1907년으로 ‘동무생각’ 작곡 시기(1922년)보다 빠르기 때문에 신명여자학교가 맞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박태준 선생의 집과 신명여자학교의 등굣길은 일치한다는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동무생각’ 3절에 나오는 가사 ‘서리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의 연못은 동산에 물을 대주던 ‘선황당 못’이라는 것도 이번에 밝혀졌다. 이 연못은 1923년 서문시장 확장과 함께 메워졌다.


박세원, 1947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이탈리아 “Santa Cecilia" 국립음악원 졸업. 1982년 이탈리아 Roma에서 데뷔 이후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등 유럽전역과 일본에서 Opera 'Tosca', 'La Traviata', 'Carmen', 'Rigoletto', 'Salome' 등 오페라 주역가수로 활약. 1984년에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로부터 “올해의 테너”로 선정되어 전 유럽에 리사이틀 방송됨. KBS 초청음악회, 대한민국 음악제, 영국 로얄 Phil 오케스트라, 프랑스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Phil 오케스트라, 우크라이나 Phil 오케스트라와 협연. 대한민국 음악가상(성악부). 대한민국 방송대상 수상. 대한민국 옥관문화 훈장 수상. 국내에서는 Opera 'Tosca', 'La traviata', 'Carmen', 'Rigoletto', 'Don Carlos', 'Aida', 'Madama Butterfly', 'Turandot', 'Andrea Chenier', 'Nabucco', 'Un Ballo In Maschera', 'Cavalleria Rusticana', 'Adriana Lecouvreur', 'Fedora'로 소개됨.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이은상(李殷相, 노산, 1903. 10. 22 ~ 1982. 9. 18.)


시조시인·사학자.1920년대 후반에 일어난 시조 부흥운동에 참여한 뒤로 시조의 현대화에 힘썼고, 〈가고파〉·〈봄처녀〉 등의 작사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본관은 전주(全州). 필명은 남천(南川). 두우성(斗牛星). 호는 노산(鷺山)·강상유인(江上遊人)·노산학인(鷺山學人). 1918년 아버지가 세운 마산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가 1923년 그만두었다. 창신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과에서 공부했다.


일본에 잠시 머물며 〈신생〉의 편집일을 도왔고, 귀국한 뒤로는 1931~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지낸 뒤 〈동아일보〉·〈조선일보〉에서 근무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며, 1945년에는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8·15해방이 되어 풀려났다. 같은 해 호남신문사 사장을 지냈고, 1950년 이후 청구대학(지금의 영남대학교)·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9년부터 충무공이순신장군 기념사업회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등을 맡아보았다.


1967년 시조작가협회장, 한글학회 이사를 지냈고, 1969년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1972년 숙명여자대학교 재단이사장이 되었다. 1970년 경희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 1974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 시조작가협회 종신회장, 1978년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981년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976년부터 노산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노산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박태준(朴泰俊, 1900 ~ 1986)


아호는 금호(琴胡). 작곡가. 합창지휘자. 경북 대구 출생. 기독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대구 계성중학, 평양 숭실전문학교(1921년)를 졸업하고, 경남 마산 창신학교, 대구 계성학교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동요 <오빠 생각>, <맴맴>, 가곡 <동무 생각>(일명 <사우(思友)> 등을 지었고, 1929년에 동요곡집 <중중 때때중>, 1931년에 동요곡집 <양양 범벅궁>을 발간하였다. 1932년 미국에 건너가 터스칼럼대학, 웨스트민스터음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1938년까지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지냈고 1939년 가곡집 <물새 발자욱>을 발간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오라토리오합창단을 창설하여 1973년까지 이끌었다. 1947년 <박태준 동요곡집>(음악사) 등을 발간하였고, 1946년 경성여의전 교수를 거쳐 1948년 연세대로 옮겨와 1974년까지 26년간 교수로 있었다. 1955년에는 연세대 종교음악과를 창설하고, 1964년에는 음악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초대학장이 되었고, 1966년 정년퇴직 후 1973년까지 명예교수로 강의를 계속했다.


1952년에 미국 우스터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0년부터 1968년까지 한국음악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57년 서울시 음악문화상과 1960년 예술원 음악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대통령장), 1970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역서로 <화성학>, <초보화성학>이 있다.


[출처] : 누리터, http://goo.gl/G1IWy

[음원 출처] : http://www.daegong.org


---

♥♥♥ ♥♥♥ ♥♥♥

---

""*•ڰۣڿڰۣڿ•*""" 공유 및 출처에 대한 고지 ] """*•ڰۣڿڰۣڿ•*""

[ 공유를 원하지 않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삭제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게재한 후 5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허락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___*~!!! ]

다음 주소의 자세한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http://wonemind.tistory.com/254 감사합니다 ! ]

이 글은 본 블로그(지구촌한마음운동)의 의견과 다를 수 있으며,

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ڰۣڿڰۣڿ•*"""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ڰۣڿڰۣڿ•*""

[ 출처: http://wonemind.tistory.com/402, http://goo.gl/G1IW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