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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수비병법 - 완벽 해설


       


       

理致順理事理~思理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손자의 수비병법 - 완벽 해설

1. 가치부전(假痴不癲): 못난 소처럼 행동한다. 


'가치부전'이란 어리석은 체하면서도 미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여기서 어리석은 체한다 함은 귀머거리나 벙어리 흉내를 내거나 모른 체하는 것을 말한다.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공연히 동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전체적인 의미는, 바보짓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은 매우 냉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우둔한 체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좋고 총명한 척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침착한 행동으로 조금이라도 기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흡사 겨울 뇌운(雷雲)이 힘을 길러 때를 기다리고 있듯이…… 


삼국 시대, 사마의(司馬懿)는 노쇠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정적(政敵)인 조상(曹爽)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마침내는 그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슬기롭게 싸워서 승리를 거두는 자는 그 지모로 이름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또 그 용맹으로써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 왕과 대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 때 국경 부근에서 적의 횃불이 오르고 적이 내습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왕은 당황하여 바둑돌을 내던지고 중신들을 소집하려고 했다. 그러자 대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왕을 제지하면서,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 횃불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바둑을 계속했다. 


왕은 반신반의하면서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나 마음이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했다. 


한참 후에 국경에서 전령(傳令)이 달려와, 적이 기습한 것이 아니고 실은 이웃 나라 왕이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을 잘못 보고했다고 알려 왔다. 왕은 놀라운 표정으로,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었소?" 하고 물었다. 대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웃 나라에도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 그 나라의 왕이 사냥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후 왕은 그 대신을 경계하여 결국 조정에서 내치고 말았다. 


이 고사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한 가지는 그 대신이 적국의 사정에 대한 얘기를 구태여 할 필요 없이 그것이 우연의 일치처럼 꾸몄으면 어리석은 왕의 경계심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또 하나는 능수능란한 대신을 잘 다룰 능력이 없는 무능한 왕이 유능한 신하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2.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 위험함을 미리 생각한다. 


'거안사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알려준다. 편안할 때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위험과 재난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준비가 있게 되며, 준비가 있으면 돌발적인 재난을 면할 수 있게 된다. 


춘추시대 송나라·제나라·진(晋)나라·위나라 등 12개 나라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정나라는 당황하여 12개 나라 중에서 제일 큰 나라인 진나라에 화해를 구하였다. 진나라가 이에 동의를 표시하자 기타 11개 나라도 공격을 중지하였다. 


정나라는 진나라에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많은 예물과 저명한 악사 3명, 갑사까지 딸린 전차(戰車)와 가타 전거 100승, 가녀 16명, 그리고 종경 등 악기를 보내어 주었다. 


진왕은 예물을 보자 매우 기뻐하며 가녀의 절반을 그의 공신 위강에게 주면서, "그대가 이 몇 년 동안 나를 위하여 계책을 내고 많은 일들을 순조롭게 처리하여 마치 음악과 같이 잘 어울리고 절주가 맞았으니 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오. 지금 우리 둘이 함께 한바탕 즐겨 보기로 하오." 그러나 위강은 진왕이 나누어 주는 것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빌려 진왕에게 한 차례의 충간을 올렸다. 이때 위강이 한 말인즉슨.... '좌전' 양공 11년에 기록되어 있는데, 대체적인 뜻은 이러하다. 


"우리 나라의 일들이 순리롭게 처리된 것은 우선 대왕의 공로이고 다음은 동료들이 일심 협력했기 때문인데 소신 같은 개인이 무슨 공로가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안락을 누릴 때 국가의 많은 일들을 아직도 계속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 주십시오. '서경'에 이르기를 '편안할 때 위험함을 생각해야 하나니, 생각하면 준비가 있게 되고 준비가 있으면 후환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소신이 감히 대왕에게 드립니다." 

 

3. 고 육 계(苦 肉 計): 내 몸을 상하게 하여 거짓을 진짜로 믿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에 상처를 입게 된다면 그것을 대단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 점을 이용하여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고육계의 핵심이다. 


삼국 시대 적벽 대전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날, 무고한 죄로 참수된 위나라 장수 채모의 종제이며 수군부장(水軍副將)인 채중(蔡中)·채화(蔡和) 두 형제는 조조에게 원환을 갚기 위해 오나라로 투항해 왔다고 울면서 호소했다. 


오나라의 대도독 주유는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면서도 그들이 첩자로 온 것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며칠 뒤 오나라의 군사 작전 회의에서 모의에 능한 장수 황개(黃蓋)는 화평론을 고집하다가 드디어 주유의 비위를 거슬러 목을 베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앞으로 항복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베리라." 라는 오왕 손권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중에는 감녕(甘寧)처럼 목숨을 걸고 그를 변호하는 등 모두가 입을 모아 그를 변호했기 때문에 마침내 감형되어 태형 백 대의 형에 처해졌다. 


항개의 살가죽은 터져 유혈이 낭자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둥이가 진지에 있는 그의 막사로 옮겨졌을 때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를 문병간 부장 노숙(魯肅)은 참상을 보자 못해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며칠 후 황개의 참모인 감택은 밀서를 갖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그 밀서에는 "부대를 이끌고 투항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조조는 이를 의심했으나 그때 마침 채중·채화 형제의 보고서가 도착하여 황개의 밀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감택은 조조의 지시를 받고 진지로 돌아와서 황개와 은밀히 의논하여 "뱃머리에 파랑색 깃발을 단 배가 가까이 가면 우리 부대인 줄 아시오"라는 내용의 밀서를 다시 조조에게 보냈다. 


드디어 결전의 때가 왔다. 오나라 군사는 수륙 양면에서 한구(漢口) 부근까지 진출, 돌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21일, 화선대(火船隊)를 지휘하여 오나라 군사의 선두에 선 황개는 해가 지기를 기다려 조조에게 다음과 같은 밀서를 급히 보냈다. 


"주유의 감시가 심해서 탈출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후방에서 식량선이 도착하여, 나에게 그 지휘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오늘밤 이경(二更)에 청룡기를 뱃머리에 달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만재한 식량선과 강동에서 이름난 장수들의 목을 선물로 가지고 가겠으니 기쁘게 받아 주십시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주유의 전군은 전진을 개시했고, 오왕 손권이 이끄는 본진은 그 뒤를 따랐다. 때마침 달은 휘영청 밝았으나 강 위는 밤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고 동남풍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수군의 본진에 있으면서 달빛 아래 출렁이는 강상을 바라보고 있던 조조는 이윽고 약속대로 황개의 부대가 오는 것을 보고, "과연 내 뜻대로 되는구나." 하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만약 황개의 배가 식량을 실었다면 흘수(吃水:배가 수면에 뜨는 정도)가 깊이 잠겨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얕고 그 속력이 너무 빨랐다. "멈춰라!" 하고 조조가 명령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바람을 타고 불을 뿜는 선단은 성난 파도처럼 수상 요새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그때 조조의 배는 쇠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미처 피할 수가 없었다. 불길은 삽시간에 다른 배로 옮겨붙어 막을 길이 없었다. 이런 대혼란 속에 주유의 수군이 돌격해 왔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조조의 눈에는 육상과 해상을 막론하고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측근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도망을 갈 수는 있었으나 그 결과는 처참한 참패였다.


이리하여 조조의 천하 재패의 대야망은 한 가닥 꿈이 되어 강상에 짙게 깔린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황개의 고육계가 대성공을 거두는 순간이기도 했다. 

 

4. 금선탈각(金蟬脫殼):원형을 그대로 두고 알짜를 빼낸다. 


글자의 원뜻은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것으로, 진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위세를 보임으로써 우군에게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고, 적에게는 침공할 용기를 갖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은밀히 주력을 딴데로 옮김으로써 적을 어리둥절하게 한다는 계략이다. 


'금선탈각'은 항우(項羽)에게 성을 포위 당한 유방(劉邦)의 고사에서 나온 말인 것이다. 


그는 항우군에게 성을 포위당해 꼼짝도 못하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없다. 그러나 항우에게 잡히는 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한 꾀를 생각해내고, 동쪽 성문으로 부녀자들을 나가게 하였다. 그러자 적병들이 구경하려 우루루 몰려든 틈을 타서 서쪽 문으로 탈출했다. 항우가 성안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유방은 도망을 치고 난 뒤였다. 

 

5. 대지약우(大智若愚):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듯하다. 


'노자'는 "마음이 대단히 곧은 사람은 도리어 비굴해 보이고 대단히 교묘한 사람은 도리어 졸렬해 보이며.... 대단히 말을 잘하는 사람은 도리어 말을 더듬는 것 같다"고 하였다. 


또 송나라의 소식은 "대단히 용감한 사람은 도리어 두려워하는 듯하고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은 도리어 어리석은 듯하며 지극히 귀한 사람은 초헌면류관이 없어도 영화롭고 지극히 인자한 사람은 양생을 하지 않아도 장수한다"고 하였다. 


원래 지모가 뛰어나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척한다. 이것은 내심의 큰 포부를 감추기 위하여, 또는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부러 무능한 척하며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기원 239년에 위나라 황제 조예가 병으로 죽자 겨우 8살밖에 안되는 조방이 왕위에 오르고, 사마의는 아무런 실권도 없는 태부가 되었다. 그리하여 병권은 송두리째 대장군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조상이 조정을 제 마음대로 하자 사마의는 이로 하여 그와 갈등이 생기었다. 병권을 되뺏아 오기 위하여 사마의는 고의로 늙고 병든 척하면서 잠시 재간을 숨기니, 조상은 그것을 진실로 알고 조금도 방비하지 않았다. 


그후 위나라 가평 원년 정월에 사마의는 조상이 조방을 호위하여 고평릉에 가서 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틈을 타서 거짓 태후의 칙지를 전하고 성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사도 고윤을 파견하여 조상의 군영을 접수하게 하고 연후에 조방에게 표를 올려 조상의 죄상을 낱낱이 고하였다. 이에 조방은 어쩔 수 없이 조상을 면직시켰다. 


사마의는 또 군대를 보내어 조상의 집을 포위하고 모반죄로 조상과 그 도당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사마의는 그때로부터 조정 대권을 혼자 틀어쥐었다. 

 

6. 도회지술(韜晦之術): 자기 재간을 감춘다. 


'도회'란 자기의 재간을 감추어 남들의 이목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도'의 원뜻은 활을 넣어 두는 주머니로서, 들어간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회'는 암흑 또는 은회의 뜻을 가지고 잇는데 회월이라고도 한다. 음력으로 월말은 달이 자취를 감추어 암흑한 날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본래의 면모를 숨기기 때문에 자기를 보전하기가 쉽다. 이렇게 되면 합당한 환경에서 상대방이 경계하지 않을 때에는.... 그 예정한 기도를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회지술은 "현명한 사람은 바탕을 드러내지 않고, 바탕을 드러내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는 속담과 뜻이 아주 가깝다. 


이 성구는 실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하다는 도덕적인 면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지만, 도회지술은 난세의 호신술을 반영한 것이다. 


은나라 주왕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연을 벌이면서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 가는 것도 몰랐다. 그가 좌우 대신들에게 물었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을 보내어 왕궁에서 대현인이라고 소문난 기자(箕子)에게 물었다. 


기자는 옆에 있는 시종에게 탄식하며 말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라는 사람이 날짜도 모르니 세상이 변하기는 변하여야 하겠다. 그렇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날짜를 모른다는데 만약 나만 안다고 한다면 모두 나에 대하여 경계심이 생길 것이니, 내가 위험하게 되겠지." 


말을 마친 기자는 날짜를 물으러 온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취해서 날짜를 잊어버렸다." 

 

7.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 


'만천과해'의 원뜻은 황제를 속여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는 뜻으로, 의역하면 상대 심리의 맹점을 찌르라는 것이다. 스스로 방비가 완벽하다고 여겨 적을 깔보는 것은 패전의 지름길이 된다. 


북해 태수 공융(孔融)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였다. 태사자(太史慈)는 포위망을 돌파하여 원병을 청하러 가야하는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는 활과 과녁을 두 기사에게 들리고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안에 있는 군사나 성밖에 있는 적병들이 이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태사자는 태연히 말을 끌고 성 가까이에 있는 언덕에 과녁을 세우고 활쏘기 연습을 시작했다. 이윽고 연습이 끝나자 그는 다시 성안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이렇게 활쏘기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자 성밖에 있는 적병들 중에는 그것을 구경하는 자도 있고,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자도 있었다. 


사흘, 나흘 그는 변함없이 이렇게 활쏘기를 계속하자, 적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관심조차도 갖지 않게 되었다. 


그 때를 틈타 태사자는 갑자기 말 위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비호처럼 적의 포위망을 뚫었다. 적들이 "속았구나!" 하고 손을 쓰려 했을 때는.... 그는 이미 멀리 가버린 후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또 있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손책(孫策)이 수일을 연하여 회계성을 쳤으나.... 성은 좀처럼 깨어지지(무너지지) 않았다. 성벽은 높고 해자는 또한 넓고 깊었다. 손책이 무리를 모아 놓고 성 칠 일을 의논하니, 군중에 함께 따라와 있던 그의 숙부 손정(孫靜)이 계책을 말했다. 


"성이 원체 견고하고 왕랑이 또한 죽기로써 지키는 터이라, 이대로 쳐서는 깨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회계땅의 전량(錢糧)이 태반이나 사독에 있고, 그곳이 여기서 불과 수십 리니, 먼저 그곳을 점거하는 것이 어떨까? 이것이 이른바 '공기무비(攻其無備)요 출기불의(出其不意)'라, 그 방비 없음을 치고, 예상치 못한 때에 나아간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손책은 크게 기뻐하였다. 


"숙부님의 묘계로 족히 적을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즉시 각문에 영을 내려 불을 밝히며 기호(旗號)를 많이 세워 의병(擬兵)을 삼게 하고, 밤을 이용하여 에움을 푼 다음 사독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 한 장수가 말했다. 


"주공께서 대군을 거두시어 떠나는 것을 알게 되면, 적이 필연코 성을 나와 뒤를 쫓을 것이니 기병(奇兵)을 쓰시는 것이 마땅할까 합니다." 


"내 이미 준비를 하여 놓았네. 회계성은 오늘밤 안으로 우리 장중에 들어오게 될 걸세." 


손책의 군마가 물러갔다는 첩보를 받은 회계성의 장수 왕랑은 무리들과 함께 성루로 올라갔다. 성밖을 두루 살펴보니, 성 아래에 연기와 불이 함께 일어나며 무수한 정기(旌旗)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왕랑이 마음에 의심하기를 마지않을 때, 부장 주흔이 말했다. 


"손책이 겁을 집어먹고 군사를 거두어 달아나는가 봅니다. 그래서 정기를 휘날려 우리를 의심케 하는 것이니, 지금 곧 군사를 내시어 뒤를 치도록 하십시오." 


이때 한 장수가 말했다. 


"손책이 이번에 간 것이 혹시 사독을 치기 위함이나 아닐까요. 일군을 따로 뽑아 뒤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랑은 드디어 뜻을 정하였다. 


"사독은 곧 우리의 둔량처(屯糧處)이니 아무래도 방비를 엄히 해야만 하겠소." 


왕랑의 군사는 남으로 사독을 향해 급히 뒤를 쫓아 20여 리를 갔다. 때는 초경이 가까운데, 갑자기 밀림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며 횃불이 일시에 일어났다. 


왕랑의 군사들이 깜짝 놀라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할 때, 한 장수가 창을 빗겨 잡고 말을 내달아 나오니 그는 바로 손책이었다. 


이 싸움에서 왕랑은 크게 패하여 마침내 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는데, 이는 바로 상대를 속여 그 약점을 누르고 때를 보아 기습하여 전승을 거둔 예이다. 

 

8. 무중생유(無中生有): 없어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위장한 모습으로 적을 속임에 있어서 한없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허(虛)로부터 실(實)로 바꾸어 적을 착각시키며, 크고 작게 가장한 모습으로 진짜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것은 분명히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속임수는 길게 가지는 못하고 언젠가는 적에게 들키게 마련이므로, 없는 상태를 끝까지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당나라 때 영호조(令狐潮)가 옹구를 포위했다. 성을 수비하고 있던 장순(張巡)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허수아비 천 개를 만들게 하고 여기에 검정옷을 입혀 줄에다 매달아서 밤에 성벽에서 밑으로 내려보냈다. 


영호조의 군사들은 사람이 내려오는 줄 알고 일제히 활을 쏘아댔다. 이래서 장순은 수십만개의 화살을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장순은 이번에는 진짜 사람을 성벽 밑으로 내려보냈다. 영호조의 군사들은 또 허수아비가 내려오는 줄 알고 비웃을 뿐,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 틈을 이용하여 장순은 5백 명의 결사대를 내려보내 영호조의 진지를 습격, 영호군을 대파하였다. 

 

9. 미우주무(未雨綢繆): 비가 내리기 전에 낡은 문을 손질한다. 


명나라 때 주백로의 '치가격언(治家格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비가 온 후에 문을 수리하고 목마른 다음에야 우물을 파려 하지 말라." 


옛말에 "배불러도 간량을 가지고, 개인 날에도 우산을 지니라"는 속담은 세인이 다 아는 바다. 


고명한 책략가 치고 높이 서서 멀리 내다보고, 앞서 획책하고 후에 행동하며, 우환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맹자·공손축'에 의하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후 장상들이 국가가 태평 무사할 때에 즉, 미연에 문을 수리하는 준비 작업을 할 줄 모르면서.... 향수(享受)만 추구하고.... 안일만 탐내는 것은 기실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10. 부저추신(釜底抽薪): 적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어도 적의 기세를 꺾을 수는 있다. 즉, 유(柔)하게 하는 것으로 능히 강(剛)함을 이기는 방법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부저추신'이란 솥 밑의 장작을 빼낸다는 뜻으로, "장작을 꺼내 물이 끓는 것을 그치게 하고, 풀을 먼저 베고 그 뿌리를 뽑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즉, 적의 계략을 근본적으로 부수어 버리라는 뜻이다. 


후한 초에 오한(吳漢)이 대사마였을 때, 한밤중에 적이 진지를 습격해 온 일이 있었다. 


그 때 온 부대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데, 오직 오한만은 태연히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군사들은 이러한 태연스런 오한의 태도를 보고 곧 평정을 되찾았다. 


뒤이어 오한은 지체없이 정예부대를 가려 뽑아 밤을 이용, 반격을 감행하여 적을 무찔렀다. 이것이 직접 적과 부닥치지 않고.... 계략으로 적의 기세를 꺾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11. 비득불용(非得不用): 득이 없으면 군사를 쓰지 않는다. 


'비득불용'은 만약 군사를 써도 얻는 것이 없거나 이길 수 없으면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을 신중하게 대하는 자세이다. 


전국 시대 조나라 명장 이목은 흉노군에 대비하여 안문 일대에 군사를 둔쳐 놓고 "득이 없으면 군사를 쓰지 않는다"는 방침에 다라 군사를 훈련시키고 적정을 수집하되 군졸들은 성밖에 못 나가게 하였다. 


그는 끈기 있게 시기를 기다리다 군사를 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계책을 써서 적들을 일거에 대패시켰다. 흉노군은 그후 10여 년 동안 조나라의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12. 비리부동(非利不動):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손자 병법' 공편에는 "고명한 임금은 비리부동해야 한다. 이익이 없으면 동하지 않고, 수확이 없으면 군사를 쓰지 않고, 위험이 핍박하지 않으면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사기' 권73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백기를 대장으로 하여 조나라의 도읍 한단을 치게 하였다. 


백기는 진나라가 비록 장평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자기 군의 희생도 절반이나 되고 국내가 텅 비었기 때문에 다시 싸움을 벌이면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결연히 대장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소양왕은 왕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치게 명령했으나 오랫동안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소양왕은 다시 백기를 대장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기는 병을 칭탁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서, "대왕께서 저의 권고를 듣지 않더니 오늘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고 말하였다. 


소양왕은 대노하여 그에게 비록 병중이지만 출정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백기는 엄숙하게 말하였다. 


"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친다고 해도 틀림없이 패할 것이니 역시 죄를 짓게 될 것이고, 만약 신이 출정을 거절하면 대왕에게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조나라를 칠 시기가 아니므로 응당 군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돌보면서 제후들의 변을 방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대왕에게 죽더라도 수치스러운 대장은 되지 않겠습니다." 


소양왕은 끝내 백기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그는 이해를 따르지도 않고 고집스레 기병했다가 참혹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은 "이익이 없으면 동하지 말라"는 원칙의 반례인 것이다. 

 

13. 비위부전(非危不戰): 위급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이것도 역시 '비득불용'과 마찬가지로 싸움을 신중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위급한 상황에 이르러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아니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위부전'의 전제는 물론 국가의 이익이다.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면 싸우고 부합되지 않으면 중지해야 한다. 


'투필부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무릇 군사를 일으켜 싸운 것은 모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목적은 국가의 화란의 뿌리를 뽑고 민중의 폭란을 평정하기 위한 것이지, 민중을 참살하고 혼란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14. 삼군탈기(三軍奪氣): 삼군의 사기는 꺾을 수 있다. 


'삼군탈기'의 계략을 운용하는 목적은 상대방의 사기를 저락시키고 군심을 환심시킴으로써 아무리 많은 수의 군대가 있어도 전투력이 없는 오합지졸로 되게 하는 것이다. 


진나라 때 대장군 유곤은 변방을 지키다가 호병(胡兵)에 의해 성중에 포위되어 몹시 위급하였다. 유곤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문득 마음에 일계가 떠올랐다. 


그는 하늘에 별과 달이 밝고 광야가 조용할 때 세 차례나 성루에 올라가 호가를 불었다. 호가란 고대 북방 민족이 사용하던 일종의 악기로 퉁소 비슷한 것이다. 


침침애원한 사향곡(思鄕曲)은 호인들에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그들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군사를 물려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뛰어난 전략가 나폴레옹이 말한 바와 같이 "군대의 전투력은 4분의 3이 사기로 구성된 것이다." 

 

15. 수도보법(修道保法): 길을 닦고 법칙을 확보한다. 


'수도보법'이란 사전에 각 방면으로부터 꼭 이길 수 있는 길을 닦아, 즉 조건을 구비하여 자기를 보전함으로써 전면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전쟁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손빈은 이렇게 말했다. 


"도를 아는 자는 위로는 하늘의 도를 알고 아래로는 땅의 도를 알고 안으로는 민심을 알고 밖으로는 적정(敵情)을 알며 진(陳)에 임하면 팔진법을 알아야 한다. 승리할 수 있으면 싸우고 승리할 수 없으면 싸우지 않는 사람이 바로 뛰어난 지휘자이다." 


어느 날 한고조 유방은 한신에게 권하여 같이 여러 장수들을 평가해 보라고 했다. 장수들은 제각기 점수가 달랐다. 


고조가 물었다. 


"짐은 몇 사람의 군사를 거느릴 만한가?" 


"폐하께서는 십만 군의 장수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고조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짐에게 사로잡혔는가?"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될 그릇은 아닙니다만, 장수의 장수가 될 그릇을 가지셨습니다. 이 점이야말로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이는 하늘이 점지한 능력이라 인간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16. 와신상담(臥薪嘗膽): 풀섶에 눕고 쓸개를 핥다. 


춘추 시대 강남의 오·월 두 나라는 세세 대대로 원수여서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오왕 부차가 즉위하자 오나라는 또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쳤다. 


당시 오나라 국도는 오이고 월나라의 국도는 회계였다. 


두 나라는 고성 일대에서 싸움을 벌였는데, 결과는 월나라가 대패하였다. 


월왕 구천은 대부 문중을 오나라의 백비에게 보내어 화해를 구하게 하였다. 백비는 문중이 가져온 황금과 백옥 등 진귀한 예물이 많은데다 또 미녀까지 있으니 아주 득의하여 곧 함께 가서 오왕을 보았다. 


문중은 오왕에게 월왕이 오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며 월나라의 땅까지도 오나라에 합병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오왕은 이에 동의하여 예물을 받은 후 월왕 구천으로 하여금 오나라로 와서 자기를 모시라고 하였다. 


그후의 일에 대해 '사기·월왕 구천 세가'와 오월춘추'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월왕 구천은 국사를 문중과 다른 대신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아내와 함께 대부 범려를 데리고 회계를 떠나 오나라로 갔다. 


오왕 부차는 구천 부부를 합려 묘(합려는 부차의 아버지로서 얼마 저 오·월전에서 패하여 죽었다) 옆의 돌방에서 말을 먹이게 하였다. 범려도 그들 부부와 함께 잡일을 하였다. 


구천은 부차를 위하여 3년이나 말을 먹여 주면서 항상 몸을 삼가고 모든 언짢은 일들을 참고 견디었다. 


오왕 부차가 매번마다 수레에 앉아 나갈 때면 구천은 수레를 매고 말을 끌면서 아주 각근히 시중을 들었다. 그 사이 문중도 국내에서 종종 백비에게 예물을 보내주어 백비는 항상 오왕 앞에서 구천을 위하여 좋은 말을 해 주었다. 


한번은 오왕이 병들어 몸져 누웠을 때 구천은 백비와의 관계를 통하여 오왕의 침궁에 들어가 친히 시중을 들기도 하였다. 


오왕 부차는 매우 감동되어 병이 나은 후 곧 구천 부부와 범려를 석방하여 월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구천은 월나라에 돌아오자 고생을 참고 분발하여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문중으로 정치를 다스리게 하고 범려로 군사를 훈련하게 하며 전국 백성들에게 분발하여 강성을 도모하자고 호소하였다. 


그는 십년간 생육을 장려하고 재물을 모으며 동시에 교육을 진흥하고 군민을 훈련하니, 이것이 이른바 '십년생집 십년교훈'으로서 십년 후에 오나라를 칠 계획이었다. 


구천은 자기의 투지를 견지하기 위하여 조금도 편한 생활을 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요도 깔지 않고 풀을 깔았으며 또 쓸개를 준비하여 밥먹기 전이나 앉아서 휴식할 때면 반드시 쓴맛을 보곤 하였다. 이것을 바로 와신상담이라고 한다. 


과연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십년이 되기도 전에 월나라는 국력을 회복하고 강대해졌다. 그리하여 몇 싸움에 월나라는 번번이 오나라를 이기었다. 


그후 또 몇 년이 지나 마침내 구천은 문중·범려와 함께 친히 대군을 영솔하여 오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오나라 군대는 패하여 백비는 투항하고 부차는 자살함으로써 오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그후 '와신상담'과 '십년생집 십년교훈'은 스스로 격려하며 힘쓰고 분발하여 재기를 도모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씻고 원수를 갚는다는 격언이 되었다. 역시 사람들은 실패나 좌절을 당한 후에야 더욱 큰 힘이 생겨나게 되는가 보다. 

 

17.용적위아(用敵爲我): 적을 나를 위하여 이용한다. 


적이 있기만 하면 무조건 철저히 없애버리려는 것은 본능에 의하여 행동하는 사람의 졸렬한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정치 책략가들은 그 정치적 수요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경우에는 고의로 일정한 양의 반대파를 남겨 놓았는데, 이러한 책략은 깊이 음모해 볼 만한 것이다. 


'전국책'에 의하면 한나라 재상 공숙과 한왕의 애자 기슬이 대립되어 서로 반목하였다. 결국 기슬이 실세(失勢)하여 외국으로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공숙은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기슬이 망명하기 전에 자객을 보내어 그를 암살하려 했다. 그러자 한 모사가 권고하였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태자 백영은 지금 당신을 비상하게 중히 여깁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기슬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슬을 제어하여야 하기 때문에 비로소 당신이 중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죽어 버리면 당신도 반드시 경시를 받게 됩니다. 오직 기슬이 있어야 태자에게 두려움이 있게 되고, 그래서 당신도 중히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적의 역설적인 존재 가치이며 동시에 적의 역량에 대한 적극적인 이용이다. 적은 물론 적으면 좋겠지만 적의 존재 가치를 다각도로 냉정하게 분석 계산하여 역량을 균형시키고 원활하게 자기의 책략에 조정하여야 한다. 

 

18. 이덕위본(以德爲本): 덕으로 근본을 삼는다. 


'논어'의 위정편에 의하면, 공자는 말하기를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마치 북극성처럼 일정한 위치에 있어도.... 다른 별들이 모두 그를 에워싸고 돌게 된다"고 하였다. 


무릇 불패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덕위본을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진나라 문공(文公)이 원(原)이라는 곳을 칠 때, 군사들에게 7일 동안에 성을 함락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7일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자 군사들에게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세를 탐지하러 갔던 첩자가 돌아와서 문공에게 보고했다. 


"원은 곧 항복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막료 장수들도 모두 원이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였으나 문공은, 


"신의야말로 나라의 보배이다. 원을 얻고자 보배를 잃어서는 안된다." 


라고 하며 끝내 군사를 거두었다. 


다음해에 문공은 다시 군사를 일으키며, 이번에는 반드시 원을 쳐서 깨뜨리겠다고 맹세했다. 원의 군사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항복하였다. 


또 위나라도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문공은 정말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여 그들도 마침내 귀속하였다. 흔히 '원을 공격하여 위를 얻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 이독공독(以毒攻毒): 독으로 독을 친다. 


'이독공독'은 원래 의학상의 용어이다. 의미는 독약으로 독증을 치료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후에 책략 용어로 인용되어, 악인으로 악인을 다스린다든가 나쁜 방법으로 나쁜 방법을 대처한다는 비유로 되었다. 


즉, 원수로 원수를 대처하고, 원수의 손을 빌려 원수를 제압하며, 비열한 수단으로 비열한 수단을 대처한다는 것이다. 


'동주 열국지'에 진문공(晋文公)이 책략으로 화를 면한 이야기가 나온다. 진문공은 국군(國君)이 된 지 얼마 안되어 진회공(晋恢公)의 옛 신하인 여성·각예가 불을 놓아 궁실을 태워 버리려고 기도하였다. 


이 음모를 진문공의 원수인 사인피가 알게 되었다. 사인피는 사사로운 목적으로 이를 진문공에게 알려주었다. 진문공은 이로 하여 준비가 있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과 각예의 음모는 분쇄되었다. 


그러나 여·각의 도당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각이 죽은 후 그들은 황황 불안해 하면서 각종 요언을 퍼뜨려 진나라의 안위를 크게 위협하였다. 


진문공이 바로 이 일을 근심하고 있을 때 두순이라는 자가 찾아왔다. 이 사람도 진문공의 원수였다. 


"큰 죄인인 저를 등용하여 쓰기만 하신다면 진문공은 옛 원한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고 인심도 곧 안정될 것이니 저를 써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진문공은 그의 말대로 성을 돌아본다는 구실로 행차를 할 때 두순으로 하여금 자신의 옆에서 배행하게 하였다. 여·각의 도당들은 두순이 진문공에게 특채된 것을 보고 안심하게 되었도 요언도 점차 그쳐 진나라도 차츰 안정되었다. 

 

20. 이일대로(以逸待勞):편안함으로 피로한 상대를 기다린다. 


'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리 전장에 나가 적을 기다리고 있으면 쉬운 싸움을 할 수 있으나, 뒤늦게 전장에 나가 허둥지둥 응전을 하게 되면 힘든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싸움을 잘 하는 자는 교묘히 적을 섬멸하며 적에게 당하는 일이 없다." 


독일의 유명한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도 "방어는 공격보다도 더 견고한 전투 방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방어하는 쪽이 편하고 안전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고로 방어만으로 싸움에 이긴 예는 없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방어 쪽이 정신적으로 위축되어 소극책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손자도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기다리고, 편안함(逸)으로써 피로함(勞)을 기다리며, 배부름(飽)으로써 배고픔(飢)을 기다리는 것이 곧 힘을 다스리는 자이다"라 말한 바 있다. 

 

21. 이정대화(以靜待譁): 진정된 것으로 들뜨기를 기다린다. 


'손자 병법' 군쟁편에는 자기쪽의 진정된 것으로 상대의 들뜬 것을 이기라고 하였다. 


진정되어 침착하고 안정된 태세로 기회를 노려 들뜨고 조급하고 불안하며 불안정한 상대를 공격하라는 것이다. 


기원 617년, 즉 수양제 13년에 이세민은 곽읍 전투에서 송로생의 정병 2만이 곽읍에 둔치고 나오지 않자, 건성과 함께 수십기를 거느리고 성을 포위하는 태세를 보이고 채찍을 들어 군기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일군의 대장이 되어 아녀자처럼 겁을 집어먹고 싸우려 하지 않다니, 참으로 쥐새끼 같은 놈이로구나!" 


송로생은 대노하여 2만 정병을 이끌고 성을 뛰쳐나왔으나 결국 계책에 떨어져 대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안정된 것으로 조급하고 들뜬 것을 이긴 실례의 하나이다. 


경황하면 꼭 실책이 생기게 마련이다. 임금의 마음이 흔들리면 신하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대장의 마음이 흔들리면 군심이 흔들리게 된다. 


자고로 책략가들은 모두 흔들림이 없는 것을 수양의 중요한 근본으로 삼았다. 

 

22. 이치대란(以治待亂): 엄정하게 다스려진 것으로 혼란하기를 기다린다. 


'손자 병법' 군쟁편에는 "엄정하게 다스려진 것으로 혼란하기를 기다리고 조용한 것으로 떠들어대기를 기다리는 것이 곧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고 하였다. 


'치(治)'란 매우 광범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나라가 다스려지면 안정을 구할 수 잇고 군대가 다스려지면 승리를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이 다스려지면 인격 수양을 기할 수 있다. 


기원전 564년 진락공 때 진나라는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진나라가 정나라를 토벌했을 때 정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초나라 군대는 주야로 행군하여 진나라 군대가 준비 없는 틈을 타서 밤중에 기습을 감행, 수비대가 영채를 나올 사이도 없게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는 불리한 형세에도 조금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침착하게 영내의 부엌과 우물을 메우고 대열을 지어 진세를 펼치고 3분4군의 방법으로 초나라 군대와 싸워 오히려 초나라 군대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다. 


초공왕은 원래 불의에 습격하여 진나라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인데 도리어 진나라 군대에 의하여 어이없게 무너지고 말았다. 

 

23. 장계취계(將計就計): 상대방의 계책을 이용하여 자기의 계책을 쓴다. 


'병경백자·차조'에는 "계책이 없을 때는 적의 계책을 빌려야 한다""남의 재간을 내 재간으로 만들고 남의 계책을 이용하여 내 계책을 성공시킨다. 즉, 적의 지모를 빌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장계취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 219년 조조의 부장 조인이 촉나라 장수 관우에게 번성에서 포위를 당했을 때였다. 


오나라의 손권은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어 은밀히 말하기를, 지금 강릉과 공?나 두 성을 쳐서 번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비밀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고의로 손권의 편지를 조인의 부하들과 성을 에워싸고 있는 관우의 부하들에게 슬그머니 공개하였다. 


그러자 포위된 조조의 부대들은 사기가 크게 오르는 반면, 관우는 유예미결하게 되었다. 마침내 손권의 부대가 강릉·공안 두 성을 치자 관우는 패배하고 말았다. 


손권은 조조로 하여금 관우를 붙들어 놓게 한 다음, 강릉과 공안을 빼앗으려 했는데, 조조가 손권의 계책을 미리 알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번성의 포위를 풀었던 것이다. 


이 책략의 전제는 반드시 적의 기도를 완전히 파악한 기초 위에서 적의 계책 위에 자기의 계책을 이용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24. 장기취계(將機就計):기회를 이용하여 계책을 쓴다. 


장(將)은 이용한다는 뜻이고 기(機)는 기회 또는 시기를 말하며 계(計)란 계교 또는 책략을 가리키니, 장기취계란 기회를 잘 이용하여 계책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책을 쓸 좋은 기회는 조금만 늦추면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추호의 유예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삼국 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남양성의 장수(張繡)를 칠 때였다. 원소(袁紹)가 군사를 일으켜 허도를 범하려고 하자 조조는 마음이 황황하여 그날로 회군할 차비를 차렸다. 


첩자가 나는 듯이 이를 장수에게 알리자 장수는 곧 군사를 휘몰아 그 뒤를 쫓으려 하였다. 


그러나 가후가 고개를 모으며 내저었다. 


"쫓지 마십시오. 쫓았다가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장수가 그 말에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다른 무리들이 권하였다. 


"아니오, 쫓읍시다. 지금.... 오늘 쫓지 않았다가는 영영 기회를 잃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글세……" 


"아니오, 이번에 뒤를 쫓기만 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빨리 쫓읍시다." 


장수도 한편 생각하니 이번에 쫓으면 반드시 이길 것만 같아서, 군사 만여 명을 인솔하고 곧 조조의 뒤를 쫓았다. 


십여 리를 가니 조조의 후대가 저만치 보였다. 장수는 그대로 군사를 휘몰아 그 뒤를 급히 쳤다. 


그러나 조조 군사의 형세가 만만치 않아 한바탕 싸움에 크게 지고, 장수는 패군을 수습하여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장수가 가후에게 말했다. 


"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과연 이처럼 낭패를 당하였소그려." 


가후는 말했다. 


"곧 군사를 정돈해서 다시 한 번 쫓아가 보십시오." 


"지금 마악 패하고 돌아온 길인데 또 쫓아가 보라구요? 이번에야말로 쫓아갔다가는 또 패할 것이 아니겠소?" 


장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가후는 빙그레 웃으며 장담을 했다. 


"이번에는 쫓아만 가시면 반드시 크게 이기실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거든 내 머리를 베십시오." 


장수는 가후가 그렇듯 장담하는 것을 보고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그 뒤를 쫓았다. 


조조 군사가 과연 크게 패하여 거마치중(車馬緇重)을 길에다 어지러히 내어버리고 서로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당수는 분발하여 그 뒤를 더욱 급히 쫓아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심히 의아하여 가후에게 물었다. 


"처음에 우리가 정병(精兵)을 가지고 적의 퇴병(退兵)을 쫓으려 했을 때 공은 반드시 패할 것이라 했는데, 이번에는 패졸로 승병을 쫓으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 하더니, 과연 두 번 다 공의 말씀과 같았소. 이것은 대체 어인 까닭입니까?" 


가후가 대답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조 군사가 비록 황황히 돌아가기는 하지만 반드시 맹장과 정병을 뒤에 두어 추병을 방비하려 할 것이니, 우리 군사가 비록 정예하다고는 하지만 도저히 그들을 당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패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또 이번에는 조조가 그렇듯 서둘러서 퇴병하는 것은 반드시 허도에 무슨 일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라, 이미 우리 추병을 쳐서 물리친 뒤에는 경거(輕車)로 속히 돌아가기만 꾀할 것이고 다시 아무 방비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시 쫓기만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므로 저는 목을 걸고 이길 것을 장담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모두들 탄복하여 마지않았다. 

 

25. 제복중상(制服中像): 중상을 제어한다. 


만약 아무런 정신적 준비와 방위적 대비가 없을 때 모략 중상의 화살에 맞으면 후회막급이다. 그러므로 미리 그것에 대처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진나라는 줄곧 한나라의 군사 요지인 의양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였다. 진왕은 이 임무를 감무에게 맡겼다. 감무로 하여금 위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한나라를 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전 지역이 여러 나라의 이익과 세력에 연계되어 있어 그 관계가 매우 복잡하였다. 


진나라 대부의 권력을 쥔 자들은 많은 나라와 제각기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다. 그래서 감무는 자신에 대한 중상이 생길 것을 근심하였다. 


진군이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감무는 휴양에서 진왕을 배알하고, 진왕이 그에 대하여 진정으로 신임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로 하였다. 


"이번 작전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한번 출진하면 밖에서 분망할 것입니다. 권력있고 세력있는 중신들이 중도에 나서 작전을 저지시킬 수도 있고 소신까지 중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대왕이 소신에 대한 신임이 변하지 않을까 근심됩니다." 


라고 감무가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진왕은, 


"나는 장군을.... 굳게 믿을 것이며, 절대로.... 다른 사람들의 중상을 곧이듣지 않을 것이오." 


라고 맹세하였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휴양지세'이다. 


과연 5개월이 지나 적의 성을 아직 함락도 하지 못했는데 진나라 중신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감무를 중상하였다. 진왕은 즉시 감무를 불러들이고 공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하였다. 


진왕의 말이 끝나자 감무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휴양에서 하신 맹약을 잊었습니까?" 


진왕은 즉시 모든 것을 깨닫고 계속 공격하라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의양은 곧 함락되었다. 

 

26. 주위상계(走爲上計):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다. 


후퇴하여 적을 피하고 물러남으로써 기회를 보아 적을 공격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용병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적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이쪽에 승산이 없을 때에는 투항하거나, 강화를 맺거나, 퇴각하는 세 가지 길밖에 없다. 투항은 전면적인 실패지만, 퇴각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에로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왕경칙(王敬則)은 '남제서(南齊書)'에서 "단공(檀公)의 36책, 도망치는 것이 가장 상책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비롯되어 '삼십육계 주위상계'라고 흔히 말해진다. 


그러나 괜히 도망만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도망하게 되면 적어도 당장은 승리를 단념하고 그때까지의 모든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게 되므로, 싸움에서 도망간다고 하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못한 전법이다. 


예로부터 병가에서는 '도망'에 대하여 언급한 사람들이 많다. 


"도망치는데 그를 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행동이 민첩하기 때문이다."(孫子) 


"강하면 이를 피하라."(孫子) 


"이쪽은 이웃나라의 도움을 받고, 큰 나라가 도와주는 나라가 적일 때는 피하는 데 주저치 말라. 가망이 있으면 공격하고, 가망이 없으면 이를 피해야 한다."(吳子) 


"이길 것 같지 않으면 빨리 도망가라. 도망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라야 한다."(吳子) 


"병가에서 이르기를, 끌어당겼다가 피하라고 하였다. 적이 나보다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서다."(李衛公問答) 


송나라의 필재우가 금나라와 싸웠을 때, 금나라의 병력은 강대하고 송나라 군사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필재우는 어느 날 밤 전군 후퇴를 결심했다. 깃발이나 장막 등은 그대로 고스란히 두고 미리 염소를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 염소 발이 북에 닿도록 해 놓았다. 


거꾸로 매달린 염소는 괴로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굴리는 바람에 그것이 북에 닿자 둥둥 하고 북이 울렸다. 


금나라 군사들은 밤낮없이 북소리를 듣게 되어 설마 필재우가 철수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눈치를 채게 되었을 때는 이미 송나라 군이 멀리 철수하고 난 뒤였다. 

 

27. 주졸보차(?卒保車):졸을 주고 차를 보전한다. 


본래는 장기의 전술 용어이다. 이 말은 이미 사회의 여러 영역에 광범하게 응용되고 있다. 그 의미는 전반 국면의 이익을 위하여 어떤 경우에는 부분적인 이익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예컨대 어부가 낚기 위하여 미끼를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라든가 상인이 고객을 끌기 위하여 먼저 먹어 보고 사게 하는 것, 전략가가 전술상의 이유로 작전을 바꾸는 것 등이다.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목숨을 잃고 조그마한 손해를 보고 낯색이 변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은 물론, 거의 십중팔구 실패하게 마련이다. 


"두 가지 손해를 서로 가늠하여 그가 배운 것을 잃는다"는 것, 즉 궁(宮)의 안전을 위하여 차나 말을 잃을 수 있고, 차를 지키기 위해서는 졸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8. 퇴피삼사(退避三舍):열세로 우세를 이긴다. 


'퇴피삼사'에서는 물러서는 것이 소극적으로 물러서거나 피동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후퇴로서 물러서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격할 기회를 찾고 공격할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위나라의 맹장 장합과 촉나라의 노장(老將) 황충이 가맹관에서 결전을 벌였을 때였다. 장합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위나라에서는 한호와 하후상 두 장수를 보내어 장합을 돕게 하였다. 


두 장수가 즉시로 기행(起行)하여 장합의 채중에 이르러 군정(軍情)을 물었다. 


"노장 황충으로 말하면 보기 드문 영웅이니 함부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한호가 말했다. 


"내가 장사(長沙)에 있었으니만큼, 이 늙은 도적을 잘 알고 있소. 그는 바로 우리 형님을 해친 자이니, 이번에는 내 마땅히 원수를 갚아 천추의 한을 풀까 하오." 


드디어 한호는 하우상과 함께 서둘러 군사를 영솔하고 영채를 떠나 전진하였다. 


한편 황충은 잠시나마 해태한 날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널리 사람을 퍼뜨려 근방의 지리를 정밀히 초탐케 하여 큰 길과 작은 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익혀 두었다. 


측근이 황충에게 건의했다. 


"이 근방에 천탕산이 있는데, 그 산상(山上)이 바로 조조의 둔량소라니, 우리가 바로 그곳을 무찔러 저들의 양초(糧草)를 끊는다면 한중(漢中)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듣고 나자 황충은 무릎을 치며, 


"그 말이 바로 내 마음과 같구려!" 


한번 칭찬하고, 낮은 소리로 계책을 상의하였다. 


다음날이었다. 황충은 하후상과 한호가 싸움을 돋군다 듣자, 곧 군사를 몰아 나갔다. 진전(陣前)에 섰던 한호가 황충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 그대로 꾸짖었다. 


"네 이놈! 의리없는 늙은 도적놈아!"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소리를 마치지 못하고 창을 휘두르며 황충에게 달려들었다. 하후상 역시 달려나와 황충을 협공했다. 


황충이 두 장수와 함께 각각 10여 합을 싸우다가 견디지 못하는 듯 패주하니, 두 장수가 놓치지 않고 20여 리나 쫓아와서, 황충을 영채를 빼앗고 말았다. 


황충은 다시 새 영채를 세웠으나, 이튿날 이곳을 덮친 하후상·한호와 불과 몇 합을 싸우지 못하고 다시 패주하니, 승세한 두 장수는 다시 20여 리를 쫓아가서 그의 영채를 빼앗고, 장합을 불러 후채를 지키게 하였다. 


장합이 전채로 와서 간하였다. 


"황충이 이틀이나 연달아 달아나니, 필경 궤계를 꾸미는가 봅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후상이 소리를 가다듬어 꾸짖었다. 


"네 이렇듯 담이 작고 겁이 많으니, 어이 싸움에 지지 않겠는가. 아무 딴말 말고 우리 둘이 입공(立功)하는 거나 구경하라." 


장합은 얼굴을 붉히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다시 두 장수가 싸움을 거니 황충이 다시 패하여 20리를 물러서자, 두 장수는 기를 쓰고 뒤를 따르고, 그 다음날은 두 장수의 깃발만 보고도 황충은 달아나기만 일삼아, 그날만도 몇 차례 싸움에 패하고 나서 관상(關上)으로 사라져 버렸다. 


두 장수는 바로 근방에다 하채하고 싸움을 돋구었으나, 황충은 오직 지키기만 할 뿐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즉시로 유비에게 보고되었다. 


"황충이 연달아 패하고 나더니, 지금은 관상에 물러나와 겁만 먹고 있답니다." 


유비가 몹시 당황하여 제갈 공명에게 물으니, 공명은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이것은 모두 노장의 교병지계(驕兵之計)입니다." 


라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의자(義子) 유봉을 관상으로 보내어, 황충을 돕게 하였다. 


황충은 유봉이 이르름을 보고 물었다. 


"소장군(小將軍)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소?" 


"부친께서 장군이 여러 차례 패함을 들으시고,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황충이 웃으며, 


"모처럼 이 늙은 것이 교병지계를 썼더니, 염려만 끼치게 되었구려. 내 오늘밤 한번 싸워, 여러 영채를 도로 찾고, 양초마필(糧草馬匹)을 뺏으리다. 이제까지는 영채를 잠시 빌려 주어 치중을 쌓게 함이니, 오늘밤에 그것을 모두 빼앗을 것입니다." 


이날 밤 이경(二更)쯤 되어서였다. 황충은 5천군을 인솔하고 관문을 열고 짓쳐 나갔다. 


한편 하후상과 한호 두 장수는 연일 굳게 닫힌 관상만 바라보다가 어느덧 모두가 황퇴(荒退)해졌다. 이때에 황충이 짓쳐드니, 군사들은 갑옷을 찾아 입을 여가가 없고, 장수들은 말에다 안장을 올려 놓을 겨를이 없었다. 


두 장수가 목숨을 다하여 달아나니, 군마(軍馬)는 서로 짓밟아 이 통에 죽는 자가 무수하고 아우성이 진동하였다. 


새벽녘에 이르러 황충이 연달아 세 영채를 빼앗고 보니, 그 속에 버리고 간 군기(軍器)와 마필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이리하여 황충은 대승을 거두었다. 


자고로 경험이 있는 책략가는 먼저 전체 국면의 형세를 따지고 초전(初戰)의 형세로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는다. 

 

29. 항장무검 의재패공(項庄舞劍 意在沛公): 뜻은 딴 곳에 있다. 


'사기·항우 본기'에 나오는 말로서, 항장이 칼춤을 추는데 뜻은 패공에게 있다는 뜻이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 서울 함양을 공점하고 군사를 파견하여 함곡관을 지키고 있었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항우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하북을 평정한 후 서행하여 관으로 들어와 홍문에 주둔하면서 유방을 격파할 준비를 하였다. 


당시 유방의 군대는 십만도 채 안되어 유방은 스스로 힘이 모자람을 자인하고 있었다. 


이 때 항우의 숙부 항백은 유방의 모사 장량의 옛 친구였는데, 항백은 항우가 지금 유방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장량에게 알려주었다. 


유방은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장량과 함께 홍문희에 나가 항우를 만나 화해큽 뜻을 말하고 항우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였다. 


항우는 이를 진정으로 믿고 연회를 배설하여 유방을 환대하였다. 연회에서 항우의 모사 범증이 몇 번이나 항우에게 유방을 죽일 것을 암시하였으나 항우는 허락하지 않았다. 


범증은 가만히 항장을 시켜 칼춤을 추다가 시회를 타서 유방을 죽이게 하였다. 그러자 항백도 칼을 뽑아 춤을 추며 몸으로 유방을 엄호하였다. 유방은 맹장 번쾌가 검과 방패를 들고 들어와서야 겨우 몸을 빼어 달아날 수 있었다. 


이 고사에 나오는 항백처럼 어떤 목적을 위하여 겉으로는 이렇게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남모르게 달리 도모하는 바가 있을 때 이를 '항장무검 의재패공'이라고 한다. 

 

30. 현권이동(懸權而動): 추를 달고 무게에 따라 움직인다. 


'현권이동'중의 '현'은 건다는 뜻이고, '권'은 저울추를 가리키니, 전체적인 의미는 물체를 계량함에 있어 먼저 저울추를 저울대에 달고 그 무게에 따라 이동한다는 뜻이다. 


책략을 쓸 때 중요한 것은 행동이 경솔하지 ?고 반드시 이해를 따져 보면서 세 번 생각해 본 후에 행동하라는 것이다. 


당태종 때 이충신과 마수가 칙지를 받들고 이령요를 토벌하였는데, 이충신은 첫 싸움에 패하여 흩어진 군사가 십중팔구나 되었다. 


그는 싸움에 패한 후 회서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를 마수가 말렸다. 그리하여 함께 성벽을 튼튼히 하고 지키기만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그후 이충신은 마수와 함께 이령요의 군대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기습을 가해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이령요는 계속 싸움에 패하여 변주로 퇴각하였다. 


이를 추격한 이충신은 어느 날 밤 한 장수로 하여금 경기 수백 명을 거느리고 적진에 돌입하게 하였다. 그 소부대가 좌충우돌하며 수십 명을 베고 돌아오니, 적군은 싸우지도 못하고 붕괴되고 이령요는 황망히 도망치고 말았다. 


'현권이동'의 요결은 형세를 잘 계량하고 시기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다. 마수가 실패한 후에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은 것이야말로 현권이동의 책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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