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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토달기

업로드 연습 - 양양으로부터 한계령 정상 칠, 팔부 쯤 올라갔을까...?


양양으로부터 한계령 정상

칠, 팔부 쯤 올라갔을까...? 

드디어 왼쪽에 거대한 울산바위 사이사이로, 좌우계곡 사이사이로,
펼쳐지는 불타는 紅海! 빨주노초의 화려한 의상들은 울퉁불퉁하고
우악스럽기까지 한 남정네들을.. 저리도 곱게 물들여 입혔을까? 


눈이 시리다! 몽롱해진다! 여기가 무릉도원이지 天國이 따로 있나.

위로 올라갈수록 수북히 쌓인 紅葉, 靑葉들! 오만한 인간들에게
겸손의 美德을 일깨워주며.. 계곡따라 고개숙인 억새풀은
은빛물결 출렁이며 이름모를 잡초와 함께 벌써 모로누울 준비를 하는구나.


10월 중순경,

설악산


토요일에 강원도 근방에 출장을 가면,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냥 동해로 내 달음치는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날도 우리부부는
포천 일동부근에 업무차 들렸다가 백운산쪽으로 내달음쳐 속초로 빠져나왔다.
대체로 장호, 울진, 영덕 등까지 내려갔다가

영주 부석사등을 경유해 중부고속도로 귀경했던것과는 달리,
그날은 설악단풍이 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물치부근에서 바다가 보이는 방을 얻어 1박하고,
아침일찍 서둘러 한계령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양양에서 한계령 정상까지 차로 걸린시간은 무려 두어시간.
전국에서 모인 관광차, 등 각종차량은 왕복길 모두 뒤엉겨 북새통을 이루었다.
마침내 관광객들은 下車하여 걷기 시작하였으나, 누구하나
짜증내는 사람 볼 수없았고, 모두 희희낙낙하며 밝은미소로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로 눈인사까지 주고 받으니,
이게 다 가을, 단풍, 설악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인생에서 가을은 분명 축복이다. 특히 이 짧고 화려한 단풍 페스티발 때에는..
어쩌면 우리네 나이가 인생의 가을 쯤에 와 있지 않은가 싶다.

이 찬란한 아침,가을自然의 오묘한 극치를 또다시 발견하며,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인생이 멋이있고, 보람있는 인생일까..
잠깐 망상에 잠겨본다.

1년에 한 두번 쯤은 누군가와 함께 멋진여행을 하고, 또 한달에 한 번정도
아름다운詩를 발견하고,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나 연극을 볼 수있다면..
거기에 덧붙여서 1년에 몇 번쯤은 좋은사람과 맛있는 식사를하며
격의없이 대화를 나눌 여유를가진 사람이라면 잘살고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자기가 가진 돈이 얼마만큼인지, 지위에 높낮이가 어떤지 그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천하의 돈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그 재벌도, 그 이름 크게 날리던 코메디안도,
카리스마의 그 집권자도, 막판에는 허둥지둥대다가

그 어느것도 마무리짓지 못하고 아쉽고 억울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중견 여류작가의 컬럼중 한 대목이다.

몇 년전 청문회에서 보왔듯이.. 대통령의 아들들이 부정에 연루, 수감되어
줄줄이 오랏줄의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최근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치면서 검찰총장, 장관, 국회의원등
수 없이 잘려나가는 관리들을 보면서..

자기가 가진것보다 하나 더 가지기위해 몸부림치다가 결국에는
자기자신과 남까지 모두 다치게하는 사람들을 자주본다.
누릴만큼 누려온 사람들인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과 단풍.


지난 인생의 흩어놓았던 일들을 정리해야하는 끝자락을 염두에
둬야하는 때임을 알린다.
지난 여름 욕망의 이깔나무숲을 건너오는동안 무심코 자라난
귀를 한 번쯤 맑게 씻어줘야 할 때임을 알린다.
그리고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리 어렵지도않고 간결명쾌한 좋은詩와의
만남을 가슴 설레며 기다리게 된다.

"오~매 단풍 들것네/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라오아/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추석이 내일 모래 기둘리니//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을 앞 둔 이 맘때의 격정과 아름다운 단풍 뒤섞인 가을빛 절절한
"김영란 詩"에 녹아든다.

"山은 홀로 있어도 슬퍼하지 않는데.. 나는 비가와도 酒幕에 있다."
어느 이름모를 詩人의 두 줄 짧은詩와의 만남은 또 한번 가을홍역을
치르게 한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갔다온 최근 꽤나 알려진 K詩人은 이렇게
詩를 말하기도 한다. "詩가 따로 있읍니까?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날,
뚜껑 열린 맨홀옆으로 자동차 한 대 지나간다. 잠시 멈춘차는 다시
돌아와 맨홀뚜껑을 닫아놓고 아무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그런 풍광이
詩 아닙니까?" 카 라디오에서 들린 이야기이다.

어자피 우리네 人生자체가 모방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창작이니, 걸작이니 하는것들도 다 옛부터 먹는 거, 입는 거, 사랑하는 거,
자연을 벗삼아 노는 거 등 조상들이 대대로 다 해 본 그 삶, 그 테두리안에서 조금씩 다르게, 감명있게, 재미있게 글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원로가 될수록 글은 함부로 쓰지않고 겸손해 하는 지도 모르겠다.

동해중부바다에서 귀향하는 어선


가을이 짧다. 요즈음같이 찬란하고 화려한 단풍철은 더더욱 그렇다.

오는 주말에는 옛 친구들 여러명과 오손도손 바둑을 두고 허스름한
지하 부대찌게집에서 소주 한 잔 기우리며 막역한 이야기 주고받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에 감사한다.

가는길 설악산 산신령이라도 만나게 되면,
가을은 너무 짧다고 말씀드려야지..
가을은 한 열흘 쯤 더 얹어주셔야 한다고 생떼라도 부려 봐야지..


04년10월 중간 쯤. 이 가을 찬란한 아침에..


 'K대 65동기회보 24호(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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