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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 노래 어니언스(Onions)의 " 편 지 "

 


추억의 그 노래

어니언스(Onions)의

" 편 지 "



70~80년대 통기타 포크송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듀엣은 아마 송 창식, 윤 형주의 '트윈 폴리오' 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시봉을 중심으로 대학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하던 포크송을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데 기여한 이들이 아마 어니언스(양파들)가 아닐까 싶습니다.

임 창제, 이 수영 두 사람의 화음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곡이 임 창제 작사, 작곡의 "편지" 입니다.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인기를 끌었던 곡으로 젊은시절 한번 쯤은 불러보고 흥얼거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편지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인지.... 그래서 편지가 그리워지는 세대입니다. 지금은 TV에서 '어니언스'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한 때는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이라 일컬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남성 포크 듀오(Folk Duo)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1974년도 연말에 '가요대상'을 수상한 경력과 '동경가요제'에 참가했던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남성 듀오였습니다. 특히 이수영씨는 원조 꽃미남이라 해도 될 정도로 곱상한 외모를 지닌 탓에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임 창제씨는 털털한 외모와 성격으로 누님 팬과 남성들에게까지 두루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많은 히트곡을 남겼지만, 가장 대표적인 곡을 꼽으라고 한다면 '편지'를 꼽고 싶습니다. 이 '편지'라는 가사에 등장하는 내용처럼 학창시절 혹은 젊은시절 편지에 얽힌 사연 하나 쯤은 누구나 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편지'가 유일한 통신수단이었기에 편지를 통하여 소식을 주고 받고, 편지를 통하여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편지'에는 수많은 사연이 실려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기쁜 소식, 때로는 이별을 통보하는 슬픈 소식, 혹은 군대에서 보내오는 반가운 친구의 '편지'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영길( 3반 ) LA거주, 김용갑( 5반 ), 본인 >


그런데 어니언스가 부른 '편지'에는 이별을 고하는 슬픈 내용이 담긴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우표 대신 눈물이 묻혀져 직접 배달된 슬픈 내용의 편지입니다. 아마도 오래도록 쥐고 있다가 망설이고 망설임 끝에 상대방의 손에 쥐어 주고는 달아난 편지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은 상대방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 내려가면서 역시나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였으리라...

예전 가요의 가사들은 이렇게 서성적이고 아름다운 시에 곡을 넣어서 만든 노래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듣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지고, 메말랐던 감성에도 나무의 연한 가지에 물이 오르듯 촉촉해짐을 느끼게 되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노래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위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노래 한 곡만으로도 시계를 거꾸로 돌린 양 예전의 장소, 예전의 사건으로 곧 바로 여행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까마득하게 먼 아날로그 시절에 듣던 노래들이 생각나고 그리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록이 짙어지는 오월입니다.

e-mail이 아무리 편리하고 속도가 빠르다지만, 편지를 붙이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던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했었던지 모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들을 기억 속에 떠올리며 편지지에 펜으로 직접 쓴 편지 한 통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요?


친구들과 함께 했던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TBC-TV는 1971년 말. 인기 프로인 '쇼쇼쇼'에서 신인을 공개 모집했습니다. 230여 명의 응모자 가운데 윤 혜경, 이 수영, 임 창제 군 등 트리오가 뽑혀 새해 가요계 신인 제1호가 됐습니다.


이들은 1월 1일 저녁 새해 첫 '쇼쇼쇼' 시간에 이 봉조 작곡의'고향'으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어니언스'는 1972년 새해 첫날 남녀 혼성3인조 '히치하이커' (윤 혜경, 이 수영, 임 창제)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동양방송(TBC)라디오 "가요중계실"의 PD 정 홍택 씨로 하여금 "벗겨도 그대로인 양파처럼 돼라"며 '어니언스 (Onions : 양파들)'이란 이름을 얻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정규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윤 혜경이 결혼 문제 등의 이유로 팀을 탈퇴, 남성 듀엣 체제로 활동하며 1973년 5월에원조 개그맨 고 영수와의 스플릿(Split) 앨범 형태로 된 데뷔 앨범을 발표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김 정호의 곡 '사랑의 진실'등 6곡이 실려 있었습니다.

 

 어니언스1집 ( 1974. 유니버샬 레코드 )


1973년 10월 성공적인 드라마 센터에서의 첫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그들은 서서히 스타덤에 올라서기 시작했고, 1974년 3월 15일에 발매된 첫 번째 독집이 특히 10대와 20대의 여성 팬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초고속 인기 행진을 벌이게 됩니다. 어니언스의 이 앨범에는 화제의 노래 '편지' 외에 '작은 새', '외기러기' 등 김 정호의 곡이 6곡 실려 있었습니다.

 

 

'어니언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1974년 5월엔 그들이 출연한 영화 '그대의 찬손'이 개봉되었고, 5월 4일에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리사이틀은 몰려든 청소년 관객들로 인해 공연이 1시간이나 지연될 정도의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해 하반기에 발표된 그들의 2집은 비록 1집만큼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미 불붙은 '어니언스'의 인기 행진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인기 듀엣 '어니언스'와 신인 여배우 유 지인(兪知仁)을 기용, 그야말로 신인들만의 '청춘영화'로 화제가 된 '그대의 찬 손

( 박종호 (朴宗鎬) 감독 )'이.... 이 영화는 섹스와 폭력을 배제한 깨끗한 사랑을 주제로 하여 순애에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1974년 말, 그들은 'TBC방송가요 대상'에서 '편지'로 중창 부문과 작곡 부문을 수상했으며, 'MBC10대 가수상'에서도 중창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1974년 한 해를 자신들의 해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식을 줄 모르던 열기는 1975년 이 수영이 병역기피 논란으로 한 동안 떠들석 하더니 75년 말에 불어닥친 대마초 광풍으로 임 창제가 구속되고, 더불어 81년 이 수영이 재미동포인 아내를 만나 미국 이민 길에 오르면서 팀은 1982년 1월 에 해체 되고 맙니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3년 여 정도에 불과하지만 가요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입니다.

 

'그리움 찾아' / 어니언스

(김 정호 작 사, 작 곡 )

 

'편 지' / 어니언스

김 미선 시, 임 창제 작 사, 작 곡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 보낸다

(반복)

 

< 임 창 제 와 김 정 호 >




황해도에서 태어나 '6.25전쟁'으로 월남하여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임 창제는 이 상일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음악적 집념은 우이동 산 속에서 동고동락했던 요절가수 김 정호( 金正浩 )와 함께 지내면서 그의 음악력에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스킬보이스' 록 그룹을 결성.... 미 8군 무대로 진출했던 임창제가 이 수영과 함께 '듀엣 어니언스'로 데뷔 하자 김 정호는 '사랑과 진실'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연가(戀歌)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들의 히트 넘버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 자신의 작곡 능력도 만만치 않았으며, 그러한 음악적 능력이 1970년대 중반에'어니언스'가 '포크-팝 대중화의 기수'로 떠오를 수 있는 저력이 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작년 가을(2013.10.18) 'TV조선 인생수업' 토크쇼 '대찬인생'에 출연해서 과거 그의 힘겹던 시간들을 이렇게 회상하였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후에 그는 가수로 재기하려 했으나 '성대결절'로 인해 노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어쩌면 가수로서 인생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큰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약물치료로 해결해 보려 했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 결국 수술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수술 후 그는 목소리를 잃고 2년간 말을 못하게 됩니다.

가수로서 인생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직면한 임 창제는 깊은 절망에 빠졌으나 ‘꼭 가수로서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로 마음을 다잡고 노력한 끝에 2년 후, 성대결절 수술 실패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전성기 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고통과 싸운 노력의 흔적이 목소리에서 묻어 나옵니다. 누구보다 힘겨운 시간을 극복해 낸 가수 임 창제~!

그의 가수 인생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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