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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산책(가나다順)/기독교 바로알기

◆《 “부활 후의 증인들의 음성” 》◆ 김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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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후의 증인들의 음성” 

김  상  구





"知彼知己,百戰百勝,不敗!" "必死卽生,必生卽死!" 

이 공유는 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下記作成者의 글 = 共有出處告知]


"부활 후의 증인들의 음성"


I. 서  론입니다.


  1. 부활 후의 증인 12명의 음성들


      1) 부활절의 증인 12명의 음성


감람산에서 붙잡히심부터 고통스러워하는 십자가의 죽음까지의 예수님의 어두운 고난의 시간동안 친구들과 따랐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렸으며, 원수들은 그를 아주 맹혹하게 공격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믿음의 음성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대중적인 범죄, 로마의 군사 그리고 따분한 여행자 등 부활절의 이야기들이 부활절을 축하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이야기 는 한 가지 사실을 예고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유동적인 자세 는 지식을 추구하는 빌라도처럼 불신앙입니다. 

당신은 막달라 마리아, 클레오파스, 도마 등 이들의 소식에 동참할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이 주님으로 부활했으며, 죄인들의 구주이심을 발견하길 원하는가? 당신은 베드로 같이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길 원하시며 당신에게 새로운 구원의 기회를 주기를 애타게 원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Dr.Woodrow Kroll과 Keith Ghormley가 쓴 것으로 당신을 풍성한 부활절의 축복 속으로 인도할 것이다. (from : http://www.backtothebible.org)


     (1) 유다(Judas) http://kcm.co.kr/easter/easter072-1.html

          부활절의 12명 음성 (가롯의 유다 배반의 목소리)

          마 26 : 14-16, 마 26 : 47-50, 마 27 : 3-5


나는 낭떨어지의 끝에 서 있다. 내 목 주위의 밧줄, 다른 한 쪽은 나무의 가지에 묵여져 있다. 어두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나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생각했다. 

나는 지도자였다. 나는 위대한 유다지파 이후 유다라고 불려졌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의 첫째로, 베드로가 아닌 나는 12 중의 첫째가 되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나는 내 주인을 배반했다. 나는 배반의 목소리이며, 죽음이 예비 되어 있다. 그렇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적어도 누구도 내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나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한다.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이 내 이름을 사용하려 한다. 그들 모두가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예수님을 체포하길 원한다. 나는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고, 그들은 나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얼마를 지불했다. 


나는 생각하길 예수님 역시 나를 이용하신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세운는 일에 나를 이용하시길 원하셨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변화시키려 했다. 나는 돈 상자가 올라올 때마다 그의 눈동자에서 이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은 내가 돈을 훔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는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나를 미워하셨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속였지만 그러나 예수님 만은. 그리고 그를 미워하는 마음은 자꾸만 커져갔다. 이 나무와 낭떨어지는 그들의 모든 계획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분은 나를 원하셨다. 정말로, 그러나 나는 그분을 용납할 수 없다. 더 이상 심부름이나 하는 꼬마가 싫다.. 더 이상의 선생님이나 돕는 사람이 싫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다. 그들이 그분을 잡아갔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유월절 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일어났다. 우리는 윗층에 둘러 앉았 예수님과 함께 명절을 축하했다. 나는 갑자가 분명한 한 목표에 사로잡혔고, 놀랄만한 힘으로 결심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찾아 올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쉬운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기에 안성맞춤인지를 알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식탁의 대화는 유월절 축제였다. 한 두가지는 방해하는 로마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배부분의 대화는 오래 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셨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조용히 있었다. 예수님은 나의 눈을 잠시 동안 바라보셨다. 그러나 나는 다른 곳을 그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화를 가로체시며 우리들 중의 한명아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방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식탁 주변의 모든 얼굴들은 기절하며 놀란 표정들이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관리들이 만약 예수님을 잡는 일에 도움을 준다면 포상한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주인을 배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한 사람씩 자신이 그 사람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나도 물었다. 물론. 낮은 목소리가 걱정스러운 대화의 식탁 주변을 맴돌았다. 식사는 계속 진행되었고, 내가 손을 그릇에 넣었을 때 예수님은 무엇인가를 그의 곁에 있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경계하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분이 그것을 어떻게 아셨는지를 몰랐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넘겨 줄 것을 제의했었다. 어떻든지 그분은 이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었다. 


나는 그곳을 나올 뛰처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바로 그 시간, 그들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면 그는 항상 홀로 기도하시는 것을 즐기셨다. 나는 바로 대제사장에게 갔고, 그들에게 빨리 준비하라고 했다. 만약 다른 제자들이 나의 계획을 알아 차린다면, 그들은 아마도 모든 것을 망처놓을 것이다. "우리는 반듯이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나는 말했고 그들이 동의했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의 경찰을 데리러 갔고, 나머지는 만약을 대비해 군인들을 대리고 가기 위해 로마의 수비대로 갔다. 


내가 길을 인도했다. 아주 기분이 상쾌했다. 내가 바로 대장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따랐다. 내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할 때 내가 기대했던 대로 예수님을 기도하고 계셨다.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예수님은 오는 소리를 듣고 제자들을 깨우셨다. 주변은 매우 어두웠고, 횃불을 들었으나 그리 밝지는 않았으며 나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두움 속에서 예수님임을 알려주는 표시를 미리 말해놓았었다. 나는 그에게 볼에 입을 맞추며, 우리가 평상시에 인사하는 것처럼 "선생님"하며 인사했다. 이것은 인사를 통한 완전범죄였다. 나는 주님을 배반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말했지만. 그는 항상 주(主)가 되는 것과 섬김 받는 것을 원하셨다. 그는 항상 주님이었다. 그가 비록 왕이나 다른 무엇으로 태어났을 지라도. 지금은 그들이 그분을 잡고 있다. 그가 과연 어떤 종류의 왕국을 물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햇볕이 언덕을 비치는 동안 몇몇의 제자들과 영세한 농민들을 사로잡았던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보라 누가 어두움과 밤의 시기에 그분을 따르는가? 어떤 사람도 십자가를 딛고 일어설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행동에서 나는 자유롭다.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방법, 자유.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밧줄, 낭떨어지의 끝에 서있는 것이. 나는 이제 자유롭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내가 생각하기로는 한 사람의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강압적이 아닌, 자진해서 자신을 죽음에 허락한다면, 자신을 죽음에 내준 그 사람이 무엇을 완성할 수 있는가? 그러면 나무에 목 매달아 죽은 사람도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찾으러 갈 것이다. 나는 단지 자유를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일 뿐이다.


     (2) 베드로(Peter) http://kcm.co.kr/easter/easter072-2.html

          부활절의 12명 음성 (베드로 부인의 목소리)

          마 26 : 32-35, 마 26 : 57-58, 마 26 : 69-75 


당신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었는가? 그 소리에 잠을 깼는가? 

나는 지금도 그 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계속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괜찮다. 내 생각으로는 내가 단지 놀랐던 것 갔다. 나는 밤을 세운 적이 있으며, 날이 밝아 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어두움이 있었다. 너는 거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 나는 갈릴리출신이다. 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분명하지 않은 일에 연류 되었는가? 

나는 고기 잡는 어부였다. 나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전에도 암탉의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 때문에 우리가 잡은 고기를 강가로 옮길 때 새벽을 밝히는 암탉의 소리를 듣곤 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배에 골아 떨어져 잠을 잤다. 그 때 수탉의 소리를 들었고 멀리서 들리는 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고, 밤새 얼마나 잡았는지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는 약간 어두운 불빛에 나를 바라보았고, 우리의 눈과 마주쳤다. 


암탉의 울음소리는 밤과 추위가 끝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집과 따듯함 그리고 음식을 나타낸다. 그러나 오늘 밤 만은 예외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그분은 가야바의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내 생각으로는 나는 두려워하고 있다. 로마 군인들이 그분과 함께 있다. 


그 주님은 나에게 경고하셨었다. 그분은 사단이 마치 밀을 체질하는 것 같이 나를 체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그분은 나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자신은 죽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안 됩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대신 죽겠습니다.'라고 말했었다. 얼마나 용감한 말인가? 그러나 지금 나는 부인의 목소리이다. 


이른 저녁 나는 저녁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가 그분은 보호 하려했었다. 우리는 갑자기 잠에서 깨었으며, 거기에는 횃불들, 군인, 군중들이 몽둥이를 갖고 있었다. 나 또한 역시 단검을 가지고 있었기에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나는 눈 깜작할 사이에 그들 중 한명을 향해 칼을 찔렀다. 그러나 마니막 순간 그가 몸을 돌리는 바람에 그의 귀를 자르고 말았다. 그 때 예수님은 나를 꾸짖으며 그 칼을 도로 집어 넣을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군인들이 나를 붙들어 내가 저지른 행동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냈다. 거기에는 시끄러움과 혼란이 뒤범벅이었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무시하면서 예수를 잡아갔다. 어두움 속에서 겟세마네 동산의 길이 좋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들은 분명하게 예수님을 잡아 가 버렸다. 


요한과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그분은 시내로 끌고 갔다. 우리는 어두운 길을 따라, 군인들과 적당한 거리 간격을 두며 뒤따랐다. 온 시대를 지나 우리는 그들이 예수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왜? 관리들은 밤에 모임을 갖지 않는다. 제사장, 서기관, 성전을 지키는 사람들은 문을 지나 안뜰로 갔다. 로마의 백부장도 수비병을 세우고 나머지 군인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는 바로 바깥 문의 기둥 안쪽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여자 하녀가 요한을 알아보았고, 내 생각으로는 나를 의심했다. 그러고 그녀가 다른 문으로 가버리자 우리는 더 안 뜰로 들어갔다. 우리는 대제사장의 안뜰까지 들어갔다. 요한은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넓은 방으로 갔고, 나는 이곳에 온 적이 없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종들과 함께 안 뜰에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랬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이 나를 알아 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성전의 어떤 수비병이 내가 단검을 갖고 있었던 것을 알아 챌 수도 있었고, 귀를 잘렸던 종이 나를 고소할 수 도 있었고....!


나의 가슴은 거의 얼어붙어 있었다. 바로 그 귀 잘린 종이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그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멀쩡한 귀를 보았다. 내가 그를 잘 못 바라본 것인가? 내가 그 귀를 잘랐었는데... 아마도 내가 계속해서 어두움 그림자 속에 있다면 나는 아마도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에 스쳐 지나갔던 여종이 말을 하기까지 모든 것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가 "너는 그의 제자들 중의 하나이지? 그렇지?"라고 물었고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정말로 "그래"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니야. 나를 예수의 제자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로부터 떠났다. 그녀가 사라지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녀는 약간 더 머물렀고 다른 친구에게 나를 가리키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자리를 뜬 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이 제사는 그들 중의 한명이다. 그가 나사렛에서 예수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며 내가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비난했다. 분노와 꾸짖음이 독약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 사람들아 나는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이 그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화제 속으로 들어갔고, 오늘 밤의 일들로 떠들어 댔다. 이제 모든 것이 가라앉은 것 같이 보였다. 나는 그들과의 씨름이 끝난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제까지 두 번씩이나 부인했으니 내 목숨은 안전할 것이라고. 


그 밤은 왠지 길었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새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무엇하고 있을까? 나는 안을 들여가 볼 수 있는 곳까지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갔다. 나는 요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드디어 관리들 앞에 서 있는 예수를 볼 수 있는 위치를 찾아냈다. 그는 시끄러운 소리들과 혼란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니 너 갈릴리 사람이지?"라고 물었다. 그리고 몇몇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두 세 명이 불가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아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어"라고 화나듯이 훙분하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저주했다. 나는 내가 전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맹세까지 했다. 


그 말들이 내 목에 걸렸다. 예수님이 관리들 앞에 서 있는 곳으로부터 그분이 고개를 돌려 안 뜰을 처다 보았고 그분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바로 그가 예언했던 대로였다. 그분은 내가 세 번 그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수탉의 우는 소리가 내가 누구였는지를 말해 주었다. 나는 치욕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며 문을 행해 갔다. 그 하녀가 나를 내 버려 두었고, 따뜻함, 사람들, 불빛이 멀어져만 갔다. 너무나 늦었다. 밖의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나는 그분을 저버렸다. 나는 12제자 중의 첫째였었으나 나는 그를 부인했다. 세 번씩이나. 나는 그를 버렸다.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릴 수있는가? 지금 나는 내가 정말로 그분을 사랑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들을 되 세겨 본다. 만약 내가 그분을 사랑했다면 나는 그분의 말씀을 간직했을 것이며 나는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가? 수탉의 우는 소리는 나를 발견하게 했다. 나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나는 12 중의 첫째였었다. 나는 산 위에게 내 신앙을 고백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밤에 그분을 부인했다. 앞으로 나는 부인의 목소리로 알려질 것이다.


     (3) 대제사장(Chie Priest) http://kcm.co.kr/easter/easter072-3.html

          부활절의 12명 음성 (대제사장 속임의 목소리)

          마 26 : 32-35, 마 26 : 57-58, 마 26 : 69-75


내 이름은 아비수아(Abishua)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중의 한명이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신성한 의무이며 이것은 영광의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희생 제사를 주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이스라엘)에서 성경과 함께 가장 귀한 것이며,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다. 

우리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혈통을 알기 때문이다. 아론으로부터 시작된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졌기 때문이다. 그분의 결정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언제나 까지나 항상 동일할 것이다. 우리도 이것이 깊은 학문적인 입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최근 갈릴리에서 이러한 문제는 나의 이러한 관점을 잘 나타내 준다. 그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그것이 성전의 교사들에게 까지도 의문이 되었다. 아주 위험한 과격분자였다. 그는 우리의 권위를 거부했으며, 오랜 전통을 통해 세워진 우리의 이해와 경험을 초월하려 하려했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전통종교를 파괴하며 가리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의 예수처럼 위험스러운 인물은 지금까지 없엇다. 그의 추종자들과 동정자들은 수 천 명에 달했다. 어떤 사람들은 감히 그가 대망의 메시야라고까지 선포하고 다녔다. 그러나 설상 그렇다하더라도 우리 제사장들이 그분, 메시야를 높이며 칭송하는데 첫 번째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주 쉽게 현혹된다. 우리 역시 이미 예수를 대해 보았었지만 그에게서 아무런 중요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아무런 근거 없이 떠들어 대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우리는 먼저 요한의 세례 사건 때 그에게 경고했다. 우리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이 예수가 물에서 나올 때 있었던 엄청난 일들을 보고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해변의 물에 햇볕이 반사돼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주 쉽게 이 일을 믿어 소문은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작은 그룹이 이내 큰 그룹이 되었다. 따라서 예수는 분명하게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 당신도 알 듯이 그는 안식일에 발라 비뜰어진 한 사람의 손을 치료했으니 이것은 분명한 순종을 위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그는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 선포했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그는 성전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그는 성전에서 환전하는 사람을 내쫓았으며 그들의 가판대를 둘러 엎어버렸다. 내가 값자기 흥분하는데, 우리는 어떤 일에든지 관대할 수만은 없다. 성전과 그 구내는 우리의 책임 아래 있다. 충분한 권위가 없이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가벼운 죄가 아니다. 


그는 우리들이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목적을 숨겼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지냈으며, 자신의 기적을 이용해 비유적으로 시골 사람들을 가르쳤다. 우리는 그 일을 그냥 묵과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잘못 오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를 체포하려 했었다. 그리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오랫동안 구상했다. 


유월절 바로 전, 그의 추종자 가운데 한명이 우리에게 와 그를 배반할 것을 제의함으로서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일반적으로는 가룟 인이라고 불리는 무서운 사람 유다였다. 그리고 그에게 적당한 대가, 은 삼십 개가 제의되었고, 그는 우리에게 예수를 넘겨주기로 약속했다. 


유월절 밤, 우리는 유다가 찿아 오기 전까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예수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집에서 바로 달려왔다. 유다는 말하길 예수님과 제자들이 동쪽 문을 지나 성 밖으로 나가 기드온 골짜기를 지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항상 반복했던 습관이었고, 이것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호위병들이 준비되었고, 폭력은 금지되었다. 


우다는 우리를 동산으로 인도했으며 그는 통상적인 인사말로 "선생님"하며 예수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예수의 체포 작전은 성공했으며 그를 대 제사장의 집으로 압송했다. 그리고 안나스에게 일차 심문을 받고, 가야바 앞에 서서 심문을 받았다. 


그 심문은 아슬아슬했다. 우리는 될 수 있는대로 빨리 그리고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시켰다. 예수의 죄는 증인들에 의해 실증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증인에게 증언의 대가로 돈을 지불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강제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증인 심리를 쉽게 만들었으며, 그는 그 자신의 입술로 죄를 시인했다. 그는 심문에서 신성 모독죄를 범했다. 


재판자로서의 가야바의 선고, 그러나 우리는 로마 통치자의 폰티우스 필라도의 승인이 필요했다. 우리는 통치자의 승인이 없이는 최고형인 사형을 집행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로마 통치자와 이러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모든 통치자들은 로마의 권위에 민감했다. 우리는 예수가 아주 위험한 폭도라는 확신을 그들에게 납득시켰다. 


그날은 휴일이었으나 우리들은 통치자의 집으로 찾아가 소원을 신청했다. 졸린 눈과 관심어QT는 듯한 빌라도는 우리의 고소를 청취했고, 우리는 빌라도가 어리석게도 예수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행동하는 순간 분노를 참아야 했다. 그러나 상황을 거슬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다에게 배반의 값을 지불했고, 증인들에게고 그들의 증언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멈출 필요는 없었다. 


빌라도가 나사렛 사람을 심문할 때 우리는 대중 속에서 우리의 일을 진행시켰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를 우리 앞에 세웠을 때 군중들은 한 목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외쳤다.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성난 독사의 꿈틀거림 같이 매아리쳐 왔다. 그는 결국 예수는 반듯이 사형시켜야 된다는 우리의 요구를 받아 들였다. 


빌라도는 대세를 대항할 기세가 아니었다. 그는 예수를 군중들에게 내 주었고, 예수는 해골의 골짜기로 끌려갔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우리의 임무가 마쳐진 것이다. 빌라도 마지막으로 나무에 매달린 예수의 머리 위에 아랍어, 라틴어, 헬라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쓴 표시를 달도록 했다. 


우리는 "유대인의 왕"이라 쓰는 것을 거절했고, 대신 "스스로 나는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했다"고 쓸 것을 제의했으나 빌라도는 거절했다. 고집센 로마인, 그러나 그것은 작은 문제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아주 위대한 승리였다. 하나님이 택한 제사장을 대적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의 위치와 일이 안전해졌다. 제사장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들의 구속을 위해 희생제자를 드리게 되었다. 이것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


     (4) 가야바(Caiaphas) http://kcm.co.kr/easter/easter072-4.html

          부활절의 12명 음성 (가야바 - 유죄 판결의 목소리)

          마 26 : 59-68


어떤 사람들은 나를 꼭두각시라고 부르나 나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나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강력한 가족들 간의 연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나의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실제적으로 내 장인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안나스는 아주 힘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팔레스틴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지녔을 것이다. 큐리니우스 25년에 정부로부터 대제사장에 지명되기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산해드린 공회는 그 규모가 개인적인 재판관 모임보다 작았다. 물론 그가 벌써 15년 전에 퇴임해 버렸다고들 말할 수 있으나 그는 아직도 정계와 제사장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항상 교모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그는 그의 성공을 사무실에서 옮겼고, 그의 아들인 엘리야가 대제사장으로 봉사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대제사장직을 다시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의 목적은 나에게서도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직도 4명의 아들과 또 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을 찬성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고, 안나스가 권력을 갖고 있다. 나는 사무실이 있으며 나는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무엇 하기를 원하는 지를 내가 알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바로 그날 밤 역시 내가 전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무리들이 내 집의 안뜰로 몰려 들어왔고, 죄수를 묶어 끌고 왔었다. 그들은 먼저 그를 내 장인에게 데리고 갔었고, 나는 보통 그 다음 차례이다. 언제든지 대제사장의 결정을 위해서 말싸움이 항상 발생된다. 왜냐하면 결정하기 전에 심문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안나스가 먼저 심문했다. 


그 날은 늦은 밤이었다. 나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었고, 외관상으로 안나스는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따라서 그는 내가 옷을 입는 동안 죄수를 심문했다. 내가 본관으로 내려 왔을 때 가장 높은 제사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때 도시의 장로들과 산헤드린의 회원들이 도착했다. 군중들에 끌려 왔던 사람은 나사렛 사람인 예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소를 열거해 나갔다. 그것은 신성을 모독한 죄였다. 따라서 이 사건은 바로 판결해야 했으며, 그것은 최악의 범죄였다. 그러나 솔직하게 나는 이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나는 급히 산해드린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오는 도중에 있었다. 우리는 증거들을 청취했고, 솔직하게 분명한 증거는 없었다. 안나스와의 예비 심문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이것은 우리가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증거가 필요했다. 나는 사형에 대한 판결을 전체 회의 없이 결정하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회의를 휴회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에 모였을 때 회의를 다시 시작하려 했다. 나는 예수를 내 집의 지하 감옥에 수감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증거가 수집될 때까지 그를 쇠사슬에 묶어 두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다른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새벽이 되기 직전 우리는 다시 모였다. 사람들의 장로들과 함께 가자 높은 제사장, 서기관등 대부분이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증인들, 예수가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하는 고소자도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증인들의 말은 일치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분명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각하해야 했다. 


끝으로 산헤드린의 한 회원이 예수에게 물었다. "네가 만약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자백해라" 그것은 예수가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엉뚱하게도 "내가 만약 말한다해도 당신은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 팔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을 격분하게 했다. 다시 한 사람이 "그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냐?" 바로 그때 예수는 분명하게 "내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 방안이 값자기 발칵 뒤집혔다. "신성 모독자! 반역자! 이교도!"란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소리쳐 나왔고, 산헤드린 회원들은 격분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을 지켰다. 


물론 이것은 철저하게 잘못된 것이었다. 어찌 우리가 이것을 변명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정식 심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법에 의하면 밤에 심문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써 밤새도록 진행했다. 우리는 단지 예수의 제자들 중 한명에게 뇌물로 준 피의 댓가 때문에 그를 앞에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피고 측의 변론 자를 세우지도 않고 그냥 그에게 물었다. 이것은 법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유죄의 판결이 나기 전에는 사형을 선고할 수 없음에도 나는 사형을 선고했다. 우리가 무슨 생각 했었나? 


이것은 지금까지 당신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일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내 아버지의 관점이 나에게도 전가 되었다. 이것은 이 사건을 상급 법원에 올리고 나는 이 사건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내 생각을 짓밟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안나스가 있었다. 그의 의중이 여름철의 햇볕처럼 나를 두둘겼다. 단지 안나스의 의중을 따라 결정하고 가장 높은 제사장을 기쁘게 하는 것말고는 나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러나 내가 어쩔 수 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부활의 12 음성 가운에 하나이다. 내 음성은 유죄판결이다. 바로 그것이 나의 무죄를 선언해 준다. 신성모독 죄의 나사렛 사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당신은 우리 가정에 있는 힘의 실체를 이해할 수있는가? 혹은 대제사장직의 중요성을?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날 아침의 그 방에서 한 자연인이 실세인 자신의 아버지의 의중을 따른 것뿐이다.


     (5) 군중(The Mob) http://kcm.co.kr/easter/easter072-5.html

     (6) 빌라도(Pilate) http://kcm.co.kr/easter/easter072-6.html

     (7) 강도(Thiefs) http://kcm.co.kr/easter/easter072-7.html

          부활절의 12명 음성 (빌라도 회피의 목소리)

          마 27 : 11-26


이것은 내가 내 인행을 향해 기대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로마 시민으로 내 가족은 부유했었다. 우리의 이름은 명예롭고 존경 받았다. 어른이 된 후 나는 스스로 보다 상류층이 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나는 로마 황제 가이사로부터 총애를 받는 자리에까지 왔다. 나의 영광은 세계의 거대한 제국의 한 부분으로 그의 분부대로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왕와 그 제국은 반듯이 사라진다고 알고 있었겠지만 로마만큼은 여원하다. 내 이름의 영광은 가이사황제를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제국이 나를 이곳에 유다에 보냈다. 무슨 영광과 위신이 이런 미친 짖거리의 통치자가 되는 것에 있겠는가? 유대인인 로마의 백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인의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로마에서는 사람들의 사색을 공유하며 평화와 번영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무모하며, 반항적이며, 참지 못하며, 발광하는 사람들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사랑, 감탄이 없다. 고위한 것이라고는 없다. 로마는 이곳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갓난 아기를 돌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응 종교적인 유죄판결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고집스럽게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구 시대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었으며 자동적으로 그들은 나를 미워했다. 만약 내가 그러한 미친 짖을 사랑했었다면 그것이 나에게 두려움이 되었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나와는 연관이 없었다. 그들은 로마의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가르침을 받았으나 배우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을 성나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했었다. 나는 그들의 성전 안에 있는 보물로 수로를 건설하는데 비용으로 지불했으며, 한번은 로마의 잔을 그들의 성전으로 가져다 놓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금 방패에는 로마의 신들의 이름과 형상을 세겼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이 신성모독과 신성의 더럽혀짐에 대해 경악했겠는가? 그들 또한 나의 이곳 근무를 힘들게 만들었다. 나 또한 그들을 초라한 로마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지중해로부터 내가 있는 가이사랴까지 불어오는 바닷 바람을 깊게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봄을 유대인의 유월절이 망쳐 놓곤 한다. 나는 기대하길 유대인들이 축제 기간 동안 나에게 문제를 만들지 않기를 바랬다. 아마도 이 봄은 다른 때와는 달랐다. 그것이 내가 바랬던 것이다. 


나는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조상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이며, 자신의 나라가 아직도 로마제국을 무찌를 구원자가 저 멀리 사막에서부터 나타나실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독립에 대한 열기가 한창 일때는 신중하게 이들을 관찰하는 것이 요구됐다. 


나는 이른 아침에 해가 떳을 때 산헤드린 회의,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내 집 문에 있는 성난 군중들이 내 잠을 깨웠다. 나는 폭도들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았다. 그들은 아마도 한 사람을 고문하려 했을 것이다. 나는 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에게 나아가 그들의 화를 누구러 뜨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은 열려 있었으며 그들은 나의 안뜰로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내려가 장래를 숙연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이 희생자를 알아 채는 것을 쉬웠다. 그는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군중들의 분노의 대상이었다. 그는 묶여 있었으며,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지도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질문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유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고 말했으며, 사람들에게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했으며, 자신이 그들의 메시야라고 주장했다고 대답했다. 


이 유대인들의 엉뚱한 것을 보라. 누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싫어하는가? 그들 모두가 로마의 세금을 거절하고 있지 않는가? 실로 그들은 온통 불평뿐이다. 만약 그가(예수) 자신이 메시야라고 생각했었다면 자신을 위해 얼마간의 세금을 거두어 드리려 했을 것이다. "네가 정말로 유대인의 왕이냐?"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빈정거리는 말을 듣게 되길 원했다. 시골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유대인의 왕! 이것은 웃기는 고소 사건이었다. 


산헤드린과 대제사장은 그들의 어리섞은 생각에 눈이 멀었다. 나는 이 사람이 중요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에게도 말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온통 불안을 조장했었다 고집했다. 


"그가 갈릴리 사람인가?" 나는 물었다. 나는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한 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갈릴리의 사법권은 현제 예루살렘을 방문한 헤롯 안티파에게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들과는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무능력했고, 그러나 그는 일종의 소수민족의 귀족이었다. 그리고 로마는 그점을 활용했다. 


나는 이 성난 군중들을 헤롯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내 조수를 딸려 보내 살펴보게 했다. 그리고 나는 안티바스를 위해 한 가지 일을 꾸미기 전까지는 이 문제로부터 해방된 것에 즐거워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그들이 다시 되돌아 왔다. 이것은 헤롯이 그의 지혜와 예리한 정치적인 감각에 따라 예수를 조롱한 후, 그에게 기적을 나타내라고 비아냥 거렸다. 그 죄수가 기적을 나타내지 않자 헤롯은 그의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그에게 호화스러운 관복을 입혀 다시 나에게 돌려보낸 것이다. 


분명했던 것은 관복을 입을 예수의 모습이 헤롯이 보다 훨씬 나았다. 실로 유대인의 왕처럼 보여다. 대제사장과 사람들의 지도자들은 재판을 요구했다. 이 사람을 향한 그들의 증오는 대단했다. 다시 나는 죄수를 심문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죄수를 심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률이 항상 모든 사건에 대하여 알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같은 사람을 재판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은 그리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실수 할까봐 매우 긴장되어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는가? "죄 없는 사람에게 유죄를 판결하라고?" 이것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매우 복잡하게 얽힌 사건, 내 아내가 끼어들어 나를 갑자기 불러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고, 죽은 사람 같이 걸아 왔다. 그리고 그녀가 이 사람에 대해 꾼 이야기를 하며 이 사람에게 아무런 일도 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무서워했다. 솔질하게 말해 나도 용기를 잃었다. 로마제국에서 꿈과 환상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사건을 끌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가 로마를 위협한다."라고 응수했다. 이것은 단지 세금에 관한 문제가 아이었다. 예수는 그들의 법률 역시 범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그를 당신들이 종교법정으로 끌고가라고 제안했다. 그들은 펄펄 날뛰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법으로는 사형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헤롯은 이 사건을 떠맞지 않았고, 유대의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나는 목소리를 높여 이 사건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불가능했었다. 내 생각으로 그들은 정말로 그를 십자가에 죽이려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로마의 십자가 처형은 유대인들에게 누가 그 땅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십자가 처형은 그들은 원하지 않고 전혀 대적할 수 없는 로마 황제를 생각나게 했다. 나는 단지 그들을 내 좇는 것이 필요했고, 그러나 그들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타협을 제안했다. 


나는 매년 이맘 때에 죄수 한명을 석방해주는 풍습을 선택했다. 이것은 로마의 친절과 관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예수를 석방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제사장은 그렇지 않았고, 군중들도 예수 대신에 바나바를 요구했다. 이것은 완전히 난처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이 나사렛 사람을 싫어 할 수 있을까? 나는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예수를 포기하지 않았으나 바나바를 석방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방법은 예수를 채찍질해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일이었다. 로마의 군인들은 몇줄의 끈에 끝에는 날카로운 놋쇠나 뼈로 만든 채찍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등을 갈겼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깊은 채찍 자국이 생겼으며 동맥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예수를 군중들에게 보였다. 왜냐하면 그의 피가 군중들의 성난 감정을 누구러 뜨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그의 죽음을 외쳐댔다. 나는 세 번씩이나 그가 부되하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군중들은 외치기 시작했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군중들은 그의 사형 집행으로 통하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듯싶었다. 탈출구가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이 발생하던 상관하지 말고 예수를 그들에게 내어 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대야를 가져다 그의 유죄판결에 대해 내가 본 그의 무죄함에 대해 손을 씻고 그를 군중들에게 내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예수의 문제는 항상 나에게 맡겨졌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로마의 가이샤에게 돌아가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단지 행운이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의 실체를 알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위로했다. 내 이름이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 그리고 로마에 가이샤의 영광과 존귀와 함께 기억 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왕국은 영원할 것이다. 내 목소리(책임회피의 목소리) 침묵할 것이나 그러나 내 이름은 영광스럽게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왜냐하면 재수 없는 한 사람이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8) 백부장(Centurion) http://kcm.co.kr/easter/easter072-8.html

     (9) 아리마테 요셉(Joshep of Arimathea) http://kcm.co.kr/easter/easter072-8.html

     (10)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 http://kcm.co.kr/easter/easter072-8.html

     (11) 글로바(Cleopas) http://kcm.co.kr/easter/easter072-8.html

           부활절의 12명 음성 (백부장 인정하는 목소리)

           마 27 : 54 


나는 로마의 백부장이다. 물론 나의 나라에서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돌과 해골의 땅에서 로마를 위해 일하고 있다. 나는 약100여명의 군인들을 책임지며, 나는 이러한 로마의 군대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말하던지 그들은 복종한다. 군인들은 그들의 의무가 있다. 군대는 언제나 조촐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군대가 없이 존재할 수있겠는가? 로마의 칼과 방패는 오직 세계 평화의 기초였다. 나도 이러한 것을 경험하길 원했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에 만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명령을 받는다. 당신도 때때로는 이러한 명령에 분명한 감각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로 그날 까지 어느 누구보다 군대 생활을 어려워했다. 


실제로, 그것은 내 상관이 안토니요새 안에 있었던 우리 막사에 명령을 하달 하기전 자정쯤에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이 그들이 체포하고자하는 어떤 반역자에 대한 소란과 난리로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로마 군대가 함께 동행해 주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당신도 이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 이 저주받은 땅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는 바로 그들의 해방을 축하하는 기념일이었으며, 축제의 한 부분에 로마 군인이 구원자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수백명의 사람을 통솔하고 나섰다. 우리는 도시의 동쪽 기드온 골짜기르 지나 올리브 동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실로 유다라 불리는 사람을 따르는 괴상한 동행자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성난 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따랐다. 군중들은 몽둥이와 왯불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을 지키는 사람들도 데리고 갔다. 나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반역자이간데 로마의 군대와 성전의 서기관, 몽둥이와 횃불 그리고 우리들의 철 창과 칼이 필요할까? 


우리는 올리브의 작은 숲에 도착해 나는 처음으로 그 반역자를 바라 보았다. 그래 우리가 저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군대를 이끌고 왔는가? 유대는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고 이것이 신호가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어떤 공포가 나에게 몰려왔다. 모든 무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대 소동을 일으켰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주변에는 온통 군인들이 있었다. 만약 그 곳에 어떤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우리들은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뻔 했다. 


나는 소리를 질러 명령을 내렸고 무리들은 그들 스스로를 둘러쌓다. 그 나사렛 사람을 체포되었고, 유대의 대제사장의 집으로 압송되었다. 나는 소수의 호위병을 그들 곁에 붙였고, 다른 사람들은 요새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죄수를 통치자의 법정으로 대려와 빌라도를 향해 외치던 시간은 거의 새벽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재판을 마친 상태이고, 통치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형집행을 허가해 주기를 원했다. 


빌라도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유대인의 종교적인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정치적인 문제를 덧붙였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빌라도가 그에게 기아사로마 황제를 대적한 죄로 사형을 선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로마를 위협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었다. 통치자는 예수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보이기 위해 나에게 나사렛 사람을 채찍질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여 응답했다. 내 부하들이 그를 채찍질했다. 그의 등에는 깊은 채찍 자국이 생겼고, 설덩이가 떨어져 나왔다. 만약 당신이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는 채찍을 본적이 있다면 나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채찍질로는 유대인들에게 충분치 않았다.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발라도는 마지막으로 그를 유대인들에게 내 주었다. 먼저 우리는 그를 전투대형으로 둘러쌓다. 그들은 그 죄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했다고 그를 조롱했으며, 그들 중 한 사람은 담장에 있던 가시로 아주 구식 왕관을 만들어 그에게 씌웠다. 


그런 일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년만에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이마로 밀어 넣을 때 약간 주춤했었다. 그들은 그의 얼굴을 때렸으며, 침을 뱃었고, 그를 조롱했다. 몰론 우리는 그런 것을 죄수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 안에는 "너희들은 반듯이 힘과 두려움으로 다스리던지 아니면 다스릴 수 없다."라고 배웠던 것에 반대되는 다른 감정이 싹터 올랐다. 


나는 도시의 바깥 언덕에서 사형집행을 지휘했다. 예수는 다른 어떤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십자가를 운반해야 했다. 우리는 다른 두명의 죄수와 함께 그를 십자가에 못밖았다. 어떤 대제사장는 그곳에 있었고 이것은 매우 일반적이지 않은 참관이었다. 


그들은 조롱하는 것을 끝이지 않았다. 그들은 "만약 네가 말한 그 사람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원하라."라고 말했고, 내부하들도 "만약 네가 유대인의 왕이면 네 자신을 구원하라."라고 조롱했다. 


나도 보통은 함께 하지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죄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흐느껴 울거나 애걸하지도 않았다. 나는 저주가 없이, 침을 뱃지 않고, 두려움이 없이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감정을 잃고 고통하며 흐느껴 울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내 말은 그가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아주 뻐져린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과연 그가 십자가 위에서도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것이 그에게서 다른 점이었다. 


아주 이상한 감정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것으로 내가 십자가 처형이 다스리는 오직 한 길이며, 이것이 인간의 모든 범죄에 대한 마지막 처방이라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한 채찍질이 내 자신에게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 있는 그를 바라보는 것은 로마의 정의가 아니었다. 


정오에 어두움이 몰려왔다. 내 말은 해가 구름에 가리워졌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검정색 잉크와 같았다. 수 많은 구경꾼들은 그들의 감정을 잃고 그 곳을 떠났다. 물론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군사들은 죄수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 곳을 떠날 수 없다. 분명하게 우리는 죄수들의 가족, 친구들이 죄수가 죽기 전 그들을 십자가에서 끌어 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다. 


우리는 보통 교대를 한다. 왜냐하면 아주 강한 사람은 최소한 이틀에서 삼일을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서 나는 예수가 벌써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를 지켜 보았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이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그는 말은 그가 질질 끄는 시간을 피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누구도 죽음을 이겨내는 힘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나는 "분명하게 이 사람은 바른 사람이었다."고 내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일을 경험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다시 그런 장면을 하나님의 저주가 있는 땅, 거룩한 사람들과 해골들의 땅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켜 놓을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이것이 그가 나에게 한 것이었다. 저네는 나도 무식한 로마 군인이 이었으나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정말로 옮은 사람의 죽음을 본 것이다. 지금 나는 그가 누구였는 지를 발견할 때까지 진정한 평안이 나에게는 없을 것이다.


     (12) 도마(Thomas) http://kcm.co.kr/easter/easter072-12.html

          부활절의 12명 음성 (글로바 보증의 목소리)

          요 20:19-29 


그는 떠나 버렸다. 나의 주인이 가 버린 것이다. 우리의 모든 계획도 수포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소망도 부서져 버렸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죽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내려 그의 시신을 무덤에 장사 지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12명의 제자 중 하나인 도마이다. 나는 그분을 사랑했었다. 나는 그에게 내 삶을 헌신했었다. 나는 그를 믿었으며, 정말로 나는 그분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예수는 말하길 자신은 그들이 살고 있는 베다니에 갈 것이나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했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과 그의 적들이 그를 체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혼자 가는 것을 막았고, 다른 제자들의 동의를 얻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와 함께 죽을 지도 모르지만 그와 함께 내려 갔다. 특별히 나는 그를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물론 나는 그의 가르침을 기억한다. 나는 그가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순간에 그를 본 사람이 없다. 그는 말하길 그는 우리를 위해 장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했었다.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주님! 우리는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길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것은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고 나는 단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는 언제나 말보다는 무엇인가를 볼 때 훨씬 빨리 이해한다. 마지막에 나는 그가 우리를 떠나는 것에 대하여 그의 말씀이 함께 했던 것을 보았다. 골고다의 공포 


그 후 우리는 도망쳤다. 우리의 생명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대제사장이나 로마 군인들이 다음으로 그분의 제자들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 동안 예루살렘 주변의 한 집에 숨어 있었다. 그 다음 날 아침. 베드로, 요한 그리고 어떤 여인들이 무덤에 갔으며 그들은 돌아와 무덤이 비어 있었다고 말했고,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 났다고 주장했다. 그 날 밤 우리는 비밀리에 만났으며, 그들이 예수를 만났고 예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무덤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 났다고? 나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나사로는 신비하게 나타나지 않았었고 잠겨 있는 방에서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의 온 몸이 온전했었다. 그는 육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는 로마 군인의 창에 찔리지 않았었던가. 나는 그의 못 자국에 손을 넣지 않고는, 내가 그의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지 않고는, 내가 붙빛과 내 손으로 그 증거들을 확인하지 않고는 그가 살아 났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들이 살아난 주님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들 중 두 명은 자신들은 그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갔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게 자신이 그를 동산에서 만났는지를 다시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앞세워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스스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 대하여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만나, 만져보고,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의심의 목소리이다. 


한 주일 후 우리는 다 같이 이전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그 방에 다시 모였다. 갑자기 그가 나타났다. 예수가 우리의 중앙에 나타났으나 나는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문은 아직 굳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와 인사를 나눈 후 나를 향했다. 내 가슴을 주기 시작했고, 그의 눈이 똑바로 나를 주시했다. 그는 손을 내밀어 내 손에 대었다. 그리고 그는 "도마야! 너의 손가락을 여기 내 손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너의 손을 내 옆구리에 대어 보아라. 그리고 믿어라." 


그는 왜 내가 의심했었는지를 알고 있었고, 내가 말했던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내 손으로 그의 못 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한 것처럼 그분은 나에게 "내 손을 보아라."라고 말했고, 내가 제자들에게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가 살아 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하고 말했다. 


나는 그 자국들을 만졌다. 군인들과 대제사장들의 자국, 그를 거절했던 사람들의 자국, 그를 경멸했던 사람들의 자국, 잔인하게 그를 학대했던 자국. 그들은 그들이 믿지 못하는 그분에게 자국을 남겼다. 바로 불신앙의 자국들이었다. 의심의 상처들. 그들은 자국을 만들었다. 내도 얼마나 그들과 달랐는가? 나도 그를 불신앙의 사람이었었다. 바로 나의 믿지 않음의 자국도 거기에 있었다. 못 자국, 창 자국. 그 흉터는 나의 불신이다. 나는 무릎을 꿇고 "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II. 우리는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야만 할까요?


당신은 어떠한가? 예수가 살아났다는 것을, 그가 살아 계신 주임이라는 것을,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당신도 의심하는가?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부드럽게 꾸짖으셨다. 그는 위대한 축복이 나 같이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임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부활하실 예수님을 직접 보게 될 때, 의심의 목소리는 잠잠할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의 목소리를 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로 인해, 주님으로 인해,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무덤에 머무르시지 않음으로 인해. 그는 살아 나셨다.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소망은 다시 살아 났다. 지금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로 찾아 온다. 주님이 정말로 다시 살아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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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마지막으로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벧전 1:7-16 - 7 너희 믿음의 시련(試鍊)이 불로 연단(鍊鍛) 하여도 없어질 금(金)보다 더 귀(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稱讚)과 영광(榮光)과 존귀(尊貴)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榮光)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結局) 곧 영혼(靈魂)의 구원(救援)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救援)에 대(對)하여는 너희에게 임(臨)할 은혜(恩惠)를 예언(豫言)하던 선지자(先知者)들이 연구(硏究)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自己)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靈)이 그 받으실 고난(苦難)과 후(後)에 얻으실 영광(榮光)을 미리 증거(證據)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指示)하시는지 상고(詳考)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自己)를 위(爲)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爲)한 것임이 계시(啓示)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聖靈)을 힘입어 복음(福音)을 전(傳)하는 자(者)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天使)들도 살펴보기를 원(願)하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謹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恩惠)를 온전(穩全)히 바랄찌어다  14 너희가 순종(順從)하는 자식(子息)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私慾)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者)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行實)에 거룩한 자(者)가 되라  16 기록(記錄)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IV.  오늘 말씀의 핵심 히브리어 단어는?


   1) 부 활 절            


   (1) 롬 7:21-23 –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法)을 깨달았노니 곧 선(善)을 행(行)하기 원(願)하는 나에게 악(惡)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肢體) 속에서 한 다른 법(法)이 내 마음의 법(法)과 싸워 내 지체(肢體) 속에있는 죄(罪)의 법(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 롬 7:24-25 –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死亡)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自身)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法)을 육신(肉身)으로는 죄(罪)의 법(法)을 섬기노라

   (3) 롬 8:1-11 –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者)에게는 결(決)코 정죄(定罪)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生命)의 성령(聖靈)의 법(法)이 죄(罪)와 사망(死亡)의 법(法)에서 너를 해방(解放)하였음이라  3 율법(律法)이 육신(肉身)으로 말미암아 연약(軟弱)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罪)를 인(因)하여 자기(自己) 아들을 죄(罪) 있는 육신(肉身)의 모양(貌樣)으로 보내어 육신(肉身)에 죄(罪)를 정(定)하사  4 육신(肉身)을 좇지 않고 그 영(靈)을 좇아 행(行)하는 우리에게 율법(律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肉身)을 좇는 자(者)는 육신(肉身)의 일을 영(靈)을 좇는 자(者)는 영(靈)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肉身)의 생각은 사망(死亡)이요 영(靈)의 생각은 생명(生命)과 평안(平安)이니라  7 육신(肉身)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怨讐)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法)에 굴복(屈服)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肉身)에 있는 자(者)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萬一)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靈)이 거(居)하시면 너희가 육신(肉身)에 있지 아니하고 영(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靈)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罪)로 인(因)하여 죽은 것이나 영(靈)은 의(義)를 인(因)하여 산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者)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靈)이 너희 안에 거(居)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者)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居)하시는 그의 영(靈)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4) 요 16:33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平安)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世上)에서는 너희가 환난(患難)을 당(當)하나 담대(膽大)하라 내가 세상(世上)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5) 엡 1:4-10 – 4 곧 창세(創世) 전(前)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擇)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豫定)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自己)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者)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恩惠)의 영광(榮光)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恩惠)의 풍성(豊盛)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罪)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智慧)와 총명(聰明)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秘密)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經綸)을 위(爲)하여 예정(豫定)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6) 사 43:1-2 – 1 야곱아 너를 창조(創造)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造成)하신 자(者)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指名)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江)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沈沒)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行)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大抵)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者)요 네 구원자(救援者)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贖良物)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代身)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尊貴)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百姓)들로 네 생명(生命)을 대신(代身)하리니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子孫)을 동방(東方)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西方)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北方)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南方)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遠方)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者) 곧 내가 내 영광(榮光)을 위(爲)하여 창조(創造)한 자(者)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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