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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찬란한 빛/한국을 빛낸 사람들

나폴레옹을 뛰어넘는 고 선 지




동양의 한니발 고선지 장군 시리이즈01




나폴레옹을 뛰어넘는

고 선 지



 

고선지의 원정은 "한니발과 나폴레옹의 업적을 뛰어넘는 것이다"


20세기초 돈황문서를 발굴했던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오럴 스타인(Stein)이 로마를 정복한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과 시대의 영웅 나폴레옹보다 높게 평가한 고선지(高仙芝 702∼755)


세계 역사는 그를 1200년 전 실크로드 일대의 중앙아시아를 평정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파키스탄까지 장악한 뛰어난 명장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고선지가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 유민의 후손으로 당나라 장수로 활약했다는 이유에서 별다른 연구를 하지 않아 왔고, 특별한 고선지 전문연구가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연구해왔고 존경해 마지 않았던 한국의 수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세종대왕, 이순신, 강감찬, 김유신, 정약용, 안창호, 김구, 이승만, 박정희.... 그러나 이들은 한민족의 역사와 과거를 좌지우지했을 뿐이지 세계사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당장 이순신 장군만해도 그렇습니다. 물론 구국의 영웅이고,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1910년 한일합방이 아니라 1592년부터 수백 년동안 한국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한국 내에서 추앙만으 받을 뿐이지.... 사실은 세계사에 영향을 주거나 세계 문화사에 기여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고선지는 실크로드의 역사를 좌지우지 했으며.... 더 나아가 유럽 문명의 성장에 막대한 기여를 했던 인물입니다. 바로 한국의 고구려 출신이었던 고선지였기 때문입니다.


1200년 전, 죽음의 준령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서역까지 정복했던 고선지는, 군사들 모두가 두려워서 더 진군하지 못하고 있을 떄에, 당(唐) 황제의 명을 받은 감독관 마저 꺼려했던 원정이었지만 하지만, 고선지는 1만 5천 명의 군대와 함께 주저없이 출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이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었었고, 세계사는 그를 실크로드를 지배한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세계사의 영웅들인 한니발, 나폴레옹의 업적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한민족의 영웅 고선지의 삶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고구려의 멸망과 당나라의 이주정책으로 동방의 강국 고구려는 당나라·신라 연합군에 의해 너무나 허망하게 멸망하였던 것입니다. 

당나라는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해 4월에 고구려 주민에 대한 이주정책을 결정하고서는 많은 고구려의 주민들을 당나라 땅 곳곳에 흩어서 각 곳으로 뿌렸던 것입니다.



이는 고구려 멸망 이후에 고구려의 유민들은 항당복국투쟁(抗唐復國鬪爭)을 지속적으로 감행하였고, 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주정책을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또 이주의 대상은 중산 이상의 계층과 건장한 자로 되어 있었는데, 이들을 그대로 남겨 둔다면 항당군의 훌륭한 유인 대상과 가담자가 되기 쉽다는 타산(打算)에서 당은 이러한 추호책(推戶策)을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인들의 항당투쟁(抗唐鬪爭)이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치소(治所)인 평양성(平壤城)과 그 부근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추호대상자(推戶對象者)는 평양성과 그 부근의 주민 중에서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당의 각처에 이주된 고구려인들 중에는 당의 추호정책에 의하여 강제로 이치(移置)된 유민 외에 전쟁에서 당군에 포로가 되어 이송된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습니다.


[출처]  http://cafe.daum.net/stargeter/ea3i/1